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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땐 더 크고 싶었다. 나보다 좀 더 크다고 뽐내는 이들의 머리를 주어 박고 싶어 서였다. 좀더 커지니, 그것 보다 더 크고 싶었던 것이 나보다 더 큰 이들이 있어서 였다. 

1984년 겨울에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어릴때 처럼 몸이 더 크고 싶어 서가 아니 였다. 사회적으로 크고 싶었고, 영향력의 힘을 키우고 싶어서 였다. 그래서 학교 선정할때도 내게 능력의 키를 더해 줄, 영향력의 힘을 더해 줄 그런 학교를 찾았다. 지도 교수도 그렇게 힘있고 능력의 키가 큰 자를 선택하려고 했다. 

대학 교수가 되어 서도 마찬가지 였다. 처음에 Florida International University로 가게 되었다. 별로 알려 지지 않은곳이였다. 하바드 대학이나 MIT, UCLA, 예일 등 좋은 브랜드 네임의 학교가 아니여서 어느 학교 교수냐고 누가 물으면 플로리다의 조그만 주립대학이라고 말을 했다. 어느 후배가 내가 근무하던 학교 이름을 물어서 알려 주자 "선배님, 그것은 서울에 있는 국제대학* 같은 학교 아니예요?" 라는 질문에 내가 있는 대학이 모국의 서울대, 연세대, 및 고려대학 같이 유명세가 없어서 "서울에만 국제 대학이 있냐? 플로리다에도 있다!"고 대답하며 내심 시큰둥 했다 (* 나는 국제대학의 가치를 폄하하는것이 아니고, 나의 잘못된 가치관에 대한 고백을 하는것이다). Ohio University에서 교수할때도 모국의 선.후배들이 학교 이름 물을때 마다 꼭 토를 다는것이 있었다. Ohio State University"는 들어 보았지만 Ohio University는 어디에???? 더 크고, 잘 알려 지고, 더 영향력을 주지 못하는 학교에 있다는 것으로 나의 교수 직분을 그냥 그렇게 가격을 싸게 정해 버린것이다.

이후 인디애나 대학에 왔다. 내깐에는 더 이상 올라갈곳이 없다고 여기던 그런 학교였다. 그러나 그 대학 역시 모국에서 잘 알려진 대학이 아닌지라 나의 어머니 조차도 별 입맛이 없는듯 아들이 일하는 대학에 대해 더 알려 하지 않았다. 공대출신의 어느 친구는 Purdue University는 들어 보았지만 Indiana University라는 대학은 있는지 조차 몰랐다고 반응하기도 했다. 나는 남들이 붙여 주는 브랜드 네임으로 나를 저울질 하려 했다. 어디 까지가야 만족이 있을까? 얼마 만큼 더 올라 가야 마음에 진정한 기쁨이 있을까?

이제 칼빈 대학에 왔다. Calvin Klein이라는 브랜드는 알아도 Calvin College를 모르는 이들에게 이것은 아주 보잘것 없는 학교로 보인다. 길에서 지나가다가도 학교 건물조차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아담한 학교이다. 우리어머니 표현을 잠시 빌려 표현해 보면 "학교도 작고 건물도 작아 보여서 손을 조금만 올리면 지붕을 만질 만한 조그만 학교"에 지금 와 있다.

그런데 달라 진게 있다. 전에는 더 크고, 더 잘 알려 지고, 더 영향력 있는 대학을 동경하여 "상향지향적" 사고를 가지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 같은 가치를 화장실에 flush시켜 버린지라 남의 반응에 관심이 없어 졌다. 하나님 부르신곳에 내가 서 있으면 그곳이 황량한 사막일지라도 그곳이 내게 제일 가치 있는 곳이다. 내가 더 올라 가려고 하기 보다 내가 있는 곳에서 나 보다 그리스도가 더 높아질 일이 무엇일까를 순간 순간 생각하며 바라는 일은 나를 기쁘게 한다. 나를 부르신이가 너무 크기에 그 분이 가라고 하는 그곳은 내가 어떤 이름을 붙이며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그런곳임을 안다. 그래서 그곳이 내게 가장 적합하고 귀한 곳임을 은혜로 알게 되었다.

전에는 속아서 나의 성취를 위해 목숨걸고 애썼다. 많은 노력을 통해 나를 크게 하려고 애썼고, 그럼에도 커 보이지 않아서 나보다 더 큰 대학의 이름을 나와 동일시 시킴으로 나의 성공을 표현해 보려 애쓰기도 했다. 내 분야에서도 나의 이름을 돋 보이게 하기 위해 다른 명칭들을 추구 했다. 유명 학술지의 편집장, 연구소의 디렉터... 그같은 것으로 영향역의 범위가 큼을 표현하고 또 성공이라는 잘못된 가치를 달콤하게 즐겼던 것이다. 

내가 작아 지면 작아 질 수록 그리스도의 이름이 더 커지고 위대해 지는 그 비밀을 이제는 기쁘게 여기며 살게 된다. 그리스도는 가난과 낮은 지위로 일생을 보내신 후에 거기서도 더 낮은 곳인 골고다로 가셨고, 너무나도 잔인한 곳에서 누워서 돌아가시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세워지신채 돌아 가셨다. 전에는 내 입에서 얕은 입술로 부르짖던것을 이제는 내 마음속에서 아멘하며 받아 들이는 진리가 있다. 다음의 말씀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을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죽기 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 5-8).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그곳, 비단 그곳이 남들이 높이 평가하는 그런 곳이라도, 자신이 그리스도보다 더 커지지 않으려 하고, 오직 그리스도만 더 높아 지는 삶을 산다면 그것 역시 매일 작아 지는 삶일 것이다. 칼빈대학은 내가 몸 담고 있기에도 과분한 곳이다. 그러나 나를 믿고 이곳으로 보내신 하나님을 오늘도 찬양한다. 그리고 그분만이 높아 지도록 오늘도 더 작아 지고 싶다. 나의 섬김의 목적은 내가 작아 지고 오직 그리스도만 높아지게 하는데 있다. 그리고 섬김의 능력은 내가 아니라 내가 작아 질때 하나님의 큰 능력이 나를 통해 나타나는데 있음을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이다.

내 눈과 마음이 죄로 인해 이그러진 세상의 왜곡된 진리로 더 이상 속지 아니하고 매일 매일 더 작아 짐으로 그리스도가 삶속에서 더 커지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인지 나는 하루 하루가 기쁘고 감사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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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출간된 책 한권을 소개한다. CCM 아티스트인 마이클 카드의 ‘애가’(A Sacred Sorrow)이다. 번역은 ‘많은물소리’ 편집자인 황병구씨이다. 다음은 그 책의 일부이다. 

“주일 아침 나는 회중 가운데 서 있다. 방금 시작된 예배는 곧 ‘무르익는다.’ 내 곁에선 내가 알고 또 신뢰하는 사람들이 경배의 경험 속으로 ‘들어간다.’ 몇몇은 손을 든다. 모든 회중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니기에 모두가 그러지는 않는다. 또 어떤 이들은 눈을 감는다. 나를 둘러싼 이 사람들은 모두 내 친구이자 예수님의 신실한 제자이다. 이들은 내가 도달해 보지 못했고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깊은 곳까지 달 수 있는 이들이다. 20분쯤 지나면 경배의 시간은 마무리된다. 내가 느낀 것은 너무 오래 서 있어서 생긴 다리 통증뿐이다. 우리는 모두 앉아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를 들을 준비를 한다. 

지금 이런 사실을 독자들 앞에 시인하는 것이 내겐 참 부끄러운 일이다. 하나님 앞에서도 주일 아침마다 역시 부끄럽기 짝이 없다. 비로소 자리에 앉을 때면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아무에게도, 특히 하나님께 들키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반갑게도 이제야 끝났군!’ 여전히 다리에 통증을 느끼며 좌석에 그대로 주저앉는다. 사막에서 혼자 한참을 헤맨 느낌이다. 군중 한가운데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종류의 예민한 외로움이다. 그 사막은 역설적으로 파릇파릇하다. 다른 이들의 예배로 인해 새순이 돋아났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동일하게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치밀한 교제를 함께 나누었던 이들 한가운데서 나는 혼자 격리된 느낌이다. 그들은 내 주위에서 기뻐하며 생수를 마시지만 나는 암당하고 좌절스러운 갈증 속에 남겨진다.”

이 글은 경배와 찬양에 대한 마이클 카드의 예배 경험담이다. 동감이 되기도 하지만, 게 중에는 "마이클 카드 같은 훌륭한 CCM 찬양사역자에게 어떻게 경배와 찬양 시간이 지루할 수가 있지?" 이해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다. 종종 백발이 성성한 어른들이 오히려 젊은이들 보다 더 신나게 찬양한다. 그런가 하면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모던 워십보다 전통 예배의 장엄한 파이프 오르간이나 조용한 찬송가를 더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 

마이클 카드는 나중에 자신의 실수를 고백했다. 

“나는 속으로 그들이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꾸며내고 있다고 정죄했다. 내가 도달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그런 친밀함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지 못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깨달은 것은 그런 식으로 판단하는 자리에 앉아 있던 것이 죄라는 것은 물론이고, 내 판단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었다. 정말로 많은 이들이 깊고 진정한 예배에 들어가고 있었다.”

인간은 진실, 가치와 같은 본질의 문제에는 의외로 관대하면서 외형, 스타일과 같은 비본질의 문제에 목숨을 거는 경향이 있다.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예배의 진정성은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가의 이슈가 아니다. 형식과 스타일의 문제도 아니다. 흑백 논리로 따질 수 없는 본질의 문제이다. 스타일과 형식, 음악과 문화를 뛰어넘어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예배의 본질을 붙잡아야 한다.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가? 모든 것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불에 타 없어져도 끝까지 남는 것, 아무런 예배도구가 없고, 아무런 형식, 심지어는 음악이 없어도 붙잡아야 할 마지막 한 가지 본질, 그것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장엄하고 거룩한 형식의 전통예배라 할지라도, 첨단 멀티미디어와 완벽한 음향, 미디어 시스템을 갖춘 현대예배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었다면 헛것이다. 예배 후 그날 깨달은 말씀대로 살고 싶은 아무런 열망이 없다면 죽은 예배다. 기독교 최고 가치인 예수의 십자가 사랑에 감격한지 10분도 안 되서 식당에서 먼저 좋은 자리 잡으려고 다툰다면 영적 분열 증세이다. 하나님보다 찬양팀의 화장, 옷맵시, 설교자의 억양, 머리 스타일, 성가대의 곡 스타일, 재미있는 광고만 더 머리에 남는다면 장례의식에 불과하다. 그날 회개한 죄 문제에 대해 결연한 의지로 돌아서겠다는 열망이 솟아나지 않는다면 가짜 예배이다. 예배 때 열정적으로 부른 찬양 가사와 6일간의 생활이 전혀 다르다면 하나님이 역겨워하시는 예배이다. 이런 예배는 결단코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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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나가다 2009/07/29 11:52  Addr Edit/Del Reply

    "예배 때 열정적으로 부른 찬양 가사와 6일간의 생활이 전혀 다르다면 하나님이 역겨워하시는 예배이다. 이런 예배는 결단코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가 아니다." 너무나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정의하고 논하려고 한다면 아마 밤을 새워도 다 정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린아이에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성도에서 목회자나 신학교 교수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보는 관점은 다양하고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역사와 문화를 넘어서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할 때 찬송가 가사처럼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언급할 때 우리의 한계를 넘는 깊음과 넓음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한국기독교를 바라볼 때 한 가지 염려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 한 면으로만 치우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용납과 용서, 필요를 채우시고 보호해 주심, 장래를 인도하시고 축복해 주심 등에 대해서는 많이 강조한다. 이로 인한 결과로 사람들은 큰 부담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얻는 유익에만 마음을 두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죄에 대해 진노하시고 우리의 행위에 따라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고의 말씀도 또 다른 하나님의 사랑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마지막 심판 날에는 다시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과 성령을 통해 부지런히 죄 짓지 않는 거룩한 삶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에 대해 강조하고 계신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한국교회 안에서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절제와 희생을 요구하는 설교는 교인들이 듣기 싫어하고 목회자들은 이런 교인들에게 부담 주는 것이 싫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리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게 하라(고후7:1), 죄와 싸우기를 피 흘리기까지 대항하라(히12:4),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마10:26),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될 것이다(눅 12:3),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을 것이다(고후5:9-10),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고 각자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14:10-12), 마지막 심판 날에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들의 필요를 채워준 사람들은 영생에 들어가지만 그들의 필요를 외면한 사람들은 영벌에 들어갈 것이다(마25:31-46)...

이외에도 얼마나 많은 구절들이 성경 곳곳에서 마지막 심판 날에 대비하여 우리들의 거룩과 사랑의 삶을 위해 경고하고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 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또 다른 사랑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런 사랑에 대해서는 슬며시 눈감아 버렸다. 결과적으로 한국교회는 사람들로부터 ‘도덕성 상실과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이기적 집단’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2008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에 의하면 가톨릭과 불교에 대한 신뢰도 35.2%, 31.1% 인 것에 반해 개신교에 대한 신뢰도는 18%로 나타났다. 더욱이 종교가 없다는 응답자들 중 개신교를 신뢰한다는 답변은 7.6%에 그쳤는데 이는 가톨릭 37.9%, 불교 29%에 비하면 너무나 낮은 수치이다. 사람들은 기독교에 등을 돌리고 있다.

여론조사 뿐 아니라 좀 더 정직하고 적나라하게 개개 그리스도인의 삶을 깊이 있게 살펴보자. 우리의 눈은 그저 자신과 가족 그리고 우리 교회에만 머무르고 있고, 기도제목은 돈과 성공과 건강에 갇혀있다. 도덕적인 측면을 보자면 더 놀랍다. 굳이 통계수치를 내밀지 않더라도 혼전 성관계(이것은 간음이다. 간음은 혼인 관계에 있지 않은 모든 성관계를 의미한다.)를 즐기고 있는 교회 다니는 젊은이들, 외도와 폭력으로 멍들고 있는 교인 가정, 절제를 모르고 원하는 대로 충동적으로 돈을 사용하다 채무관계에 놓인 성도들을 우리 주변에서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하나님의 사랑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한 경고’이다. 이제는 이 말씀에 귀 기울이자. 그러면 우리를 향해 안타까워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큰 외침’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이제 가던 길을 빨리 멈추고, 좁지만 진리의 길로 돌이키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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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상담실에서는 많은 코스탄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을 가상의 코스탄과 멘토와의 대화를 통해 풀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실린 의견은 멘토님 개인의 의견이며 코스타와 소식기관의 의견은 아닙니다.

진로 및 직장생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너무 제 적성과 맞지 않아서 고민입니다. 그렇다고 갑작스레 그만둘 수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기 전에 제대로된 선택을 하는 것이 필요한 것같은데,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신앙적 조언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진로에 대해서 상담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 그런 선택이 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같습니다. 일을 시작한 이후 너무 적성에 안 맞아서 괴롭지만 그렇다고 다른 일을 찾는데는 한계가 있는 것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앙인으로 지혜롭게 행동하는게 뭘 의미할까요. 직장을 적성에 맞추어 찾는다는 말은 그 자체로는 심각한 문제이겠지만, 적성에 맞는 직장을 찾을 여유가 없는 냉혹한 현대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낭만적인 관념으로 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일(노동)은 하나님이 창조세계가운데 저희에게 주신 축복이지만, 죄로 인해 왜곡된 세상속에서는 저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실제적으로 고민하고 갈등하게 만드는 것이 됩니다. 더구나 노동이 생존에 위협을 주는 현장이 되어버릴 때 저희는 당황하고 불안하게 되며 또 세상에 편승하는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노동 그 자체가 신성하고 또 소명이라는 말을 들어왔는데 노동의 현장에는 정작 저희 영혼을 병들게 하고 가치관을 비트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거대한 힘이 또아리를 틀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적성에 맞는다 안 맞는다하는 조금은 개인적인 고민과 갈등을 조금 더 거시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우리의 직장은 왜곡된 이 세상에서 여전히 신음하는 인생들을 향한 예수님의 탄식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직장은 또한  예수님을 닮아 새로 태어난 저희 그리스도인이 예수님과 함께 탄식 (기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그루터기 씨가 그런 탄식 가운데서 자라나는 곳이 되기를 도모하는 신실함으로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거룩한 땅입니다. 여기에는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이겨나갈 용기가 필요한데요, 이 용기,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는 세상권세를 세상권세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거스리고 이기신 예수님의 방법과 능력, 즉 샬롬에서 온다고 봅니다. 이 예수님의 방법과 능력, 샬롬이 저희에게 이 세상을 이기는 용기를 줄 것을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평화, 세상을 이기신 용기의 가시적인 결과는 십자가 처형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평화, 세상을 이기는 힘, 여기에 신앙인의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개인적인 적성때문에 하는 고민이 심각하실 때, 또는 직장에서 여러가지 옳지 않아 보이는 일들을 인해 어려우실때, 그 고민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한 일군으로 소망가운데 살아가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으시기를 빕니다.

직업/진로의 선택에 적성을 고려하는 것은 상식적이긴 하지만 (그래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난 왜 적성이 맞지 않는 직장을 택해서 이고생일까 라는 고민은 어떻게 보면 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성과 무관한 직장에서 견뎌내며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인간적인 능력부족의 문제는 정말 고민이 됩니다. 우리는 전 인생을 걸쳐 능력을 극대화 하고 탁월해야만 성공이라는 인생관을 주입받아 왔거든요. 성경에 ‘크게 되어라’ ‘큰 꿈을 꾸어라’라는 명령이 없는데도 청년들을 위한 많은 조언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청년들을 선동하기도 합니다. 성경에 쓰여진 ‘크게 될 것이다’라는 것은 약속이지 명령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무슨 약속인가 하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사는 삶에 대한 약속입니다.  직업/진로/배우자 선택이 저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A냐 B 냐 하는 것보다는 A 나 B 를 선택하는 나 자신의 가치관을 보시는 하나님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직업/진로 선택 (심지어 배우자 선택까지도 포함해서)의 가장 중요한 관건은 성경적 가치관이거든요. 마치 아이가 성숙한 성인이 되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게 되면 그 선택을 하도록 허락해 주시며 기뻐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읽은 책에 공감이 되는 이런 말이 있더군요 “믿음이 모든 문제를 분명하게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라. 믿음은 확실성이 아닌 신뢰의 문제이다.” 세상적인 능력의 탁월함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부산물로 보아야 능력과 그 결과만 원하는 무리함으로 인한 인생의 어려움과 갈등되는 마음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동록 박사, 2지역 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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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세미나는 전체 집회 참석자 천여 명 중 아주 제한된 수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세미나의 중요한 내용이 모든 분께 전달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KOSTA VOICE에서는 코스타 기간에 열리는 세미나 중 다섯 분의 세미나 강사님들을 인터뷰하여 전체의 참석자이 지면을 통해서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만날 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김수지 총장 - Christian Professional Woman

1. 김수지 교수님, 안녕하세요, 미주 코스타에 다시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코스타에 처음 참석하시는 분들을 위해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수지 교수입니다. 연세대간호대학/이화여대간호대학 교수, 학장 여러 보직을 거쳐 원래 전공인 정신과환자의 재활간호를 위해 서울사이버대학에 편입하여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것이 인연이 되어 현재 서울사이버대 총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2. 기독교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기독교 세계관을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개인적인 신앙간증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는 믿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순전한 어렸을 아이들 노랫소리가 나는데 가보니 교회더라구요. 당시 놀이할 공간이 없었는데, 그럴때 교회 노래 배우고, 성경 배우고, 교회가 신앙 아니라 삶의 제공터였습니다. 교회에서 자라다가 2 거듭났습니다. 이전에는 착하게 살면 하늘 나라에 간다고 생각했는데, 요한 복음 3 니고데모에 관한 말씀을 듣고 굉장히 도전을 받았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가르쳐주신대로 매일 하나님과 대화. "good morning" 하고 말씀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기도하고 적고, 저녁에 뒤돌아 보며 대화하고 기도했는데. 좋았습니다. 남편도내가 만난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았는데, 당신은 그렇까?’  하는 궁금증으로 말씀을 보다가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없이 없음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방황하는 사람은 기독교가 진리다라는 것을 한번 가정하고, 성경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세상의 학문이 초등학문임을, 인간은 부족하고 죄인이라는 ,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 자녀로 누리는 감사와 기쁨, 어떤 일을 하라고 알려주시고, 사람을 붙여주시고, 보내주시고.. 그렇게 삶의 현장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3. 이번 코스타에서 여성 리더십에 대해서 강의를 맡으셨습니다.강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리더십이라는게 조직원들로 하여금 목적을 달성하도록 이끄는 지도력 또는 통솔력, 성과를 창출하는데 영향을 끼치는 능력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여성이 영향력을 행사할 있는 위치/직위에 있어야 하며, 현재 여성들이 확실한 소명감과 뚜렷한 사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지식의 가치가 점점 증가하는 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급속한 변화 (유비쿼터스, 전문가시대,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확산) 가운데서 크리스천으로, 여성으로서 그리고 전문직업인(전문가)으로 주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어떻게 있는가를 소개하고 토론합니다.

4. 여성들이 사회에서나 교회에서 기독교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특별히 계발해야 점들이 어떤 것이 있다고 보십니까?

섬김, 사랑, 멘토링, 제자화 등을 기독교 리더십이라고 여성 특유의 감성을 살려 자신의 은사를 발휘할 있는 전문성을 계발해야 한다고 봅니다인간사이의 친화력, 선천적인 돌봄 능력을 키우면 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발휘할 있을 것입니다.

5. 코스타를 포함해서 기독교 공동체 안에 여성이 지도적인 역할을 맡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어느 모임이든 의사결정 하는 역할에서 여성이 적은 것이 사실인 같습니다.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해결할 있을까요?

다른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문명 이전에는 모성사회에서 부성사회로, 그리고 부성사회에서 여성사회로 변하고 있는데, 교회에서는 권력 이양이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여성 목사나 장로와 같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직위가 여성에게 주어지기도 하지만 극히 일부이며, 실제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교회에 리더십을 가진 분들이 사회의 변화에 대한 민감성이 부족한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여성리더십을 주셨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조화를 이뤄나갈 있도록 해주셨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지금 시간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하시는지를 살펴야 하는데 여전히 전통적인 것에 얾매이고 있습니다. 물론 여성에게 유치부 교사 같은 자리는 주어지고 있지만 여성의 리더십이 최대한 발휘될 있는 자리는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경직되고, 어려운 것도 남성중심적인 모습 때문입니다. 여성에게 주어진 은사를 계발하여 리더십을 발휘할 있는 위치에 있으면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평화롭게 해결할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역할은 다른데 크리스천 여성이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여성이라는 ,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직업인의 세가지 역할을 있도록 환경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아내가 그리스도인인 남편과 함께 살더라도 남편과 동등한 자유와 시간을 누리지 않습니다. 너무 일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역할이 분담되고, 남편이 아내를 많이 도와 주고 사회 생활에서도 여성과 조화를 맞추어 있도록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노사 문제에도 너무나 남성의 강함이 문제입니다. 이는 감정의 문제인데, 이런것들은 여성이 리더십을 가지면 좋아질 있을 것입니다. 남성이나 여성,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되어야 합니다. 현재는 리더십이 너무나 남성 중심적인데, 권력을 이양하고 나누고, 서로 도와주고 역할을 분담하여야 합니다.

6. 코스타에 참석하는 많은 기혼부부들에게 건강한 가정을 세워나가는데 필요한 점에 대해서 조언 말씀 해주시죠.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째, 결혼은 부족한 배우자를 돕도록,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든 제도라는 . 결혼생활은 세상의 어떤 (부모형제, 직장, 교회, 국가…) 보다. 우선적인 관계적 삶의 근거지가 되어야 한다는 . 따라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은 누구도 대신할 없는 중요한 역할이고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역할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봅니다. 둘째, 우리 부부는 죽음 외에 어떠한 경우에서도 헤어질 없는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일심동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 셋째아내와 남편의 기둥이 서야 아이들이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편하다. 서야 한다. 특히 한국 남자는 .. 아내는 남편이 세워진 만큼 선다. 기둥이 같이 서야지 무너지지 않는다. 이것이 성경적이라는 점입니다.

7. 지금 서울 사이버대학교 총장으로 일하고 계신데요, 어떤 비젼을 갖고 일하고 계신지, 그리고 진로를 위해 고민하는 코스탄들이 어떤 비젼을 갖고 결정하는 것이 신앙적으로 바람직할 조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1세기를 유비쿼터스, 전문가 시대입니다흩어져 있는 선교사나 선교사가 아니라도 시공간을 초월한 재교육이 필요합니다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지식을 업데이트 하지 않으면 변화하는 지식 사회를 따라갈 없습니다인터넷으로 수업할 있기에 지식을 언제나, 어디서나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있습니다. 사이버 교육은 글로벌 시대의 로운 교육방법입니다. 우리의 집회도 오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들을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수요자의 필요를 채우고, 선교자들, 크리스천 사업가, 전문인에게 지식을 공급하는 것을 우리의 사명으로 생각합니다.

진로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선 전공 분야에서 하나님의 부름심이 있어야 합니다. 주변의 조건에 따라 맞지 않는 전공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분야를 본인이 좋아해야 하고, competent해야 하고, 하나님이 특정 직장에서 나를 부르시는가, 직장이 나의 기독교 세계관과 맞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물론 맞지 않아도 선교사적인 사명으로 있지만, 그런데 만큼 강하지 못하면 중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리고 곳에서 구체적인 미션이 무었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요즘은 월급으로 정하는데, 월급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이다.

한편, 하나님은 전문직을 통해서 전도하기를 원하시는데, 전문직도 해야 합니다. 엉망으로하고 전도 없다. 학교에 그런 분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는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전도를 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들의 눈에 띕니다. 학교가 offilne이라 국내에 방문하는 외국에 있는 분이 오시는데, 이분을 찾고 싶다고 합니다. 너무 성실하게 도움을 주시고, 분은 틀림없이 기독교인인구나 생각하는 거지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얼마나 기쁘시겠습니다. 코스탄 여러분들도 그렇게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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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eggemann, Walter, Peace (Understanding Biblical Themes), Chalice Press, 2001

 

기독교의 핵심어를 선택하라고 '평화' 제시하는 신학자의 설명을 듣고 싶다면 Brueggemann Peace (Understanding Biblical Themes) 권한다. 그에 따르면 샬롬은 창조의 의도, 질서이며, 하나님과 백성의 언약이며, 메시아의 통치의 핵심이며, 교회의 메세지, 완성될 하나님 나라의 새로움 (newness)이다. 그리고, 샬롬은 인간과 하나님, 인간과 인간, 인간과 피조세계의 깨어진 관계가 원상태로 회복되는 근본 질서를 핵심적으로 정의하는 단어이다. 성서적인 평화는 인간의 내적인 평안을 넘어 모든 관계에서 화평케 하는 의도적인 과정인 것이다.

 

평화에 대한 설명은 신약성경에서 다양하게 발견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이땅에 회복되는 , 평화가목적으로서 아니라 자체가 과정으로, 수단으로서도, 그리고 목적으로서 의미가 있음을 말씀하신다. 평화를 이뤄나가는 과정, 자체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찾고 평화의 태도를 유지해나갈 것을 강조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Shalom Church 구약의 비젼, 예수님의 평화에 대한 가르침, 구약의 선지자들이 제시하는 비젼을 평화의 방법으로 이땅에 적극적으로 구현해가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비젼을 갖고 산다. 기독교인들의 비젼의 핵심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주로 고백하는 예수님이 가졌던 샬롬의 비젼, 성경이 증거하는 샬롬의 질서, 비젼을 향해 사는 (Living Toward A Vision, 책의 원제목)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되어야 하겠다. 삶을 결정한 사람들, 비젼의 의미를 깊이 알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삶의 참된 의미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권한다

 

Swartley, Willard, Covenant Of Peace: The Missing Peace In New Testament Theology And Ethics, Wm Edermans, 2006

 

저자에 따르면 기독교 신앙, 윤리에서 평화라는 주제가 중요성에 비해 소홀히 다루어져 왔다. 학문적 주제로서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윤리규범으로서도, 의미의 깊이와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경시되어왔다. 그러나 주제는 4복음서뿐 아니라, 바울의 서신들, 요한의 서신들, 그리고 일반서신들에서 일관되게 주장되어오는 성경의 핵심 메시지이다.

 

복음서와 서신, 계시록 각권을 샬롬 (Shalom) 에이레네(eirene)라는 관점에서 개괄한 , 저자는 본격적으로 평화의 신학(Theology Of Peace) 의미를 탐구한다. 평화의 윤리를 실천한 예수님을 본받는 , 그리고 도덕적 기준의 근본으로서 윤리적 의미를 제시한다.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평화에 대한 메시지에 대한 신약 전체의 통일된 관점에 관심이 있는 경우 책의 전반부를, 근래에 많이 회자되고 있는 평화주의 전통의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경우 책의 후반부를 추천한다.

 

N. T. Wright, Surprised by Hope, 2008 라이트,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IVP, 2009

 

Surprise by Hope 라이트의 하나님의 나라, 부활, 교회의 미션에 대한 설명이자, 새로운 접근이 제시해주는 신약성서의 전체에 대한 의미에 대한 설명이다. 전통적인 입장의 기독교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주제이지만, 좀더 역사적인 배경을 염두에 신학적인 논증으로 설득력이 더해진 설명을 제시한다.  Part 2 6장부터 11장은 저자의 역사적 기독교에 대한 설명이고, Part 3 12장부터 15장은 결론이자 새로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교회의 역할에 대한 함의에 대한 설명이다. 기존의 기독교 변증에 비해 새로운 시각으로 제시한 기독교에 대한 설명은 역사적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이원론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설득력있게 논증하고 있고, 교회의 역할도 기존의 이원론적인 태도와 활동을 넘어서는 창조적인 미션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개인주의적 구원관이 지배하고 있는 현대 교회에 대해서 거시적인 전창조질서 차원의 구원을 강조함으로써 전인류적인 교회의 미션을 제시한다

 

이런 설명은 그리스도인의 용기의 근거 전통적인 신앙의 근거, 삶과 죽음의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 삶의 무의미성에서 벗어날 있는 근거가 된다. 한편 책의 내용이 코스타의 핵심가치와 공명하고 있다는 점을 금방 확인할 있다. 코스타가 강조하는 삶의 현장에서의 예배, 신앙의 요체로서의 삶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역사적인, 신학적인 연구로서 근거를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에 대해서 깊이 알수록, 우리의 전체를 그리스도인으로, 통합적으로 살아가야한다는 점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해주며, 목회적으로 방향을 지도해준다.

 

Dawn, Marva, Powers, Weakness, And The Tabernacling Of God, Wm Edermans, 2001 마르바 , 세상 권세와 하나님의 교회, 복있는사람, 2008

 

마르바 던은 성경의 연구를 통해 현실 윤리 문제를 선구적으로 다룬 “예수의 정치학”의 하워드 요더의 제자이며, 프랑스의 개혁주의자인 자크 엘룰을 사상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평가 받고 있다. “세상 권세와 하나님의 교회”는 세상의 권세들에 대항하기 위해 교회가 약함을 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는 교회가 세상의 권세를 십자가와 부활로 이기신 그리스도의 약함의 자리가 약함 위에 하나님의 권세가 내주(tabernacling)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눈으로 약해 보이는 그리스도인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인 교회의 모습에 비관적인 생각을 하기 쉽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 순종할수록 약해보이는 우리들의 모습에 회의와 절망을 때가 있다. 하지만, 세상의 질서 속에서 나약한 모습 속에 하나님이 내주하시며 (tabernacling), 약함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를 진전시키신다는 성경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그런 절망을 버릴 있게 한다. 오히려,궁극적으로 완성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그리스도인의 현재의 약함이 죽음의 표시가 아닌 부활의 예증임을 알고 용기를 가질 있다. 우리가 알고 믿고 있는 진리의 약함에 회의를 품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추천한다.

 

Stackhouse, John G., Jr., Can God Be Trusted: Faith And The Challenge Of Evil, IVP, 2009

 

세상의 무질서 속에, 악이 선을 이기는 모습 속에, 선한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선한 계획,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신뢰를 잃기 쉽다. 그리고 신뢰에 바탕을 용기를 잃기 쉽다. 피조세계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부정하는 (evil) 고통(suffering) 존재 앞에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세상에 나아갈 용기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신앙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용기에 대한 도전을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전지전능하시며, 선한 계획을 갖고 계시며 동시에 악의 승리를 내버려두신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악의 문제 (problem of evil) 또는 신정론 (theodicy) 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답이 주어져왔다. 그러나 그만큼 하나님의 선한 계획에 대한 회의도 제기되어왔다. 이런 생각의 프레임 속에서 대답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저자는 시각을 돌려하나님이 악을 허용하시는가라는 질문을예수님이 악을 어떻게 이기셨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꿀 것을 제안한다. 직접적으로 신정론에 대해 대답을 하기 보다 악에 대해 하나님이 어떤 태도를 취하셨는지 직접 것을 요구한다. 예수님의 , 죽음, 그리고 부활은 고통 당하시는 하나님, 인간이 겪고 있는 고통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며, 악의 세력에 대한 승리를 보여준다. 궁극적으로 악을 이길 하나님의 승리 속에서 현재의 무질서와 악의 승리, 고통에 절망하지 않고 용기를 가질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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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상담실에서는 많은 코스탄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을 가상의 코스탄과 멘토와의 대화를 통해 풀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실린 의견은 멘토님 개인의 의견이며 코스타와 소식기관의 의견은 아닙니다.

부부관계

“멘토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부부는 처음에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휴일에 뭘 하고 보내는가 하는 작은 일부터, 진로 같은 큰 일까지 사사건건 갈등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스스로, 그리고 상대방에게 변화를 기대하지만 이제는 지쳐서 더 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습니다. 주위의 몇 분들처럼 차라리 따로 사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잘 지내라, 희생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내용 말고, 실제적으로 관계가 변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남편과 아내처럼 서로를 다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르고 있는 사이도 없을 것입니다. 많은 커플들이 결혼식을 준비하는 시점부터 서로의 차이를 실감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10년을 연애해도 다 모르던 서로의 모습을 결혼생활 1달만에 많이 알게되는 경우도 흔합니다. 결혼은 우리의 연약한 모습이 가려지지 않은채 배우자에게 노출되고, 또 어떤 경우는 나의 연약함을 상대가 보충해주기를 원하기조차 하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기대와 실망이 교차하면서 행복을 꿈꿀 줄 알았던 결혼생활에서 잠 못 이루는 밤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고 몸과 마음이 지쳐가면 상대에게 기대도 하지 않고 실망도 하지 않는 그러나 행복은 남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조용한 절망의 상태'가 옵니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아내의 절망을 감지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남편의 무심함이지요. 그렇게 아무 변화없이 마흔 오십을 넘기는 것이, 허다한 한국부부들의 현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어떤 경우는 그간 소홀히 했던 교회생활(특히 선교나 봉사 등)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갈등의 에너지를 밖으로 돌려 부부의 문제 자체를 비켜가는 경우도 있는데, 겉으로 보아 원만한 부부로 보이지만 사실상 두사람 사이에는 해야할 이야기가 아직 많을 수 있지요. 주님께서는 많은 일보다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에게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에 더 큰 점수를 주실 지도 모릅니다.
 
위의 질문을 던진 부부는 먼저 이 부분에 대해 동의를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정말 관계가 회복되기를 원하세요?" 그 대답에 아내와 남편 모두 예라고 하실 경우, 다음의 처방을 따라보세요. 첫째, 먼저 남편과 아내 두 사람의 관계 이외에는 어떤 것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환경을 조성한다. (아이 없이 가는 부부리트릿, 혹은 매 주말 3시간 정도씩 서로 아이를 봐주면서 부부만의 시간을 계획하는 것, 부부가 새벽이나 아이를 재운 시간에 서로 시간을 가지는 것 등) 둘째, 정해진 주제를 놓고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 이 때 대화가 공격이나 방어 혹은 말싸움으로 가지 않도록 규칙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규칙: 상대가 이야기 할 때 끼어들지 않고 마음을 열고 듣기, 상대 이야기에 방어적 자세 취하지 말고, " 음, 그랬구나" 라고 받아주기, 서로 순서를 정해가며 이야기하고 듣는 것에 균형 맞추기. 셋째, 다음과 같은 주제들을 이야기 나눈다. 주제1, 나는 결혼을 통해 이런 것들(5가지 정도)을 기대했다, 주제2, 당신이 이렇게 할 때 나는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주제3, 당신이 이것만 고쳐주었으면 좋겠다, 주제4, 나는 내 부모님의 이런 모습이 좋고 이런 모습이 싫다, 주제5, 당신이 나의 이런 부분을 위해 도와주고 기도해주기를 원한다, 주제6. 당신 이런 모습이 정말 고압다. 넷째, 처음부터 대화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세요. 대화의 물꼬가 터지려면 시간이 좀 걸립니다. 대화하려다가 말싸움으로 끝나는 일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나아질 것이니 포기하지 마세요. 다섯째, 성 트러블, 중독증상, 정신질환적인 면, 가정폭력, 배우자 부정 등의 문제가 있는 경우는 대화만으로는 해결이 어렵습니다. 반드시 전문가를 만나 상담을 받도록 하시고요.여섯째, 그리고 누구보다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런 노력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고, 우리의 연약함을 조용히 아뢰고 서로를 위해 기도해줌으로 대화의 시간을 마치도록 하세요. 매일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는 훈련, 잊지 마시구요.
 
배우자 중 한 쪽이 관계 회복에 무관심하며 대화의 시간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는 정말 믿음의 노력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 때는 관계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마십시오. 힘든 배우자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그를 통해 나를 연단하시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려는 계획이실 수 있습니다. 남들과 비교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성격, 집안, 경제사정 모두 척척 맞아서 아무 문제 없는 가정과 비교하지 마세요. 힘든 배우자를 안고 눈물 뿌려 기도하는 그 남편이나 아내를 위해 중보하고 계실 예수님을 기억하세요. 예수님의 마음은 약한 자에게 늘 가있답니다. 상대가 나의 이런 노력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나의 몫을 다할 뿐입니다. 나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만 생각하면 됩니다. 상대 배우자를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남들처럼 재미나게 살지 못하고 늙을 수도 있습니다. 괜챦습니다. 그래도 나는 하나님께 배운 사랑으로 나의 몫을 감당하며 나의 배우자를 섬기는 것입니다. 혹시 그 배우자에게 조금이라도 들을 귀가 있다면 그 동안 못다한 쓴소리들을 토해내서 다시 관계를 악화시키는 대신에, 앞에서 언급한 여섯가지 주제들을 중심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전달할 방법을 찾아보세요. 이메일이 좋겠지요? 그 말을 듣건 읽지도 않고 지워버리건 그건 상대의 문제입니다. 나는 나를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배우자를 사랑할 힘을 달라고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영적 전쟁입니다. 힘든 결혼 생활에서 상대를 증오하지 않고 측은지심과 사랑으로 승리하는 것은 위대한 영적 성취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혼생활과 자녀양육을 통해 우리를 겸손하게 사람 만드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승리하세요. 조은숙 (가족상담가, S.U.C.C.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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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세미나는 전체 집회 참석자 천여 명 중 아주 제한된 수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세미나의 중요한 내용이 모든 분께 전달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KOSTA VOICE에서는 코스타 기간에 열리는 세미나 중 다섯 분의 세미나 강사님들을 인터뷰하여 전체의 참석자이 지면을 통해서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만날 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정진호 교수 - 샬롬의 언약궤를 찾아서
제 1강 : 존재의 이유 (the Reason of Existence)
제 2강 : 메시아적 선교의 본질, 칼-활-물 (The Substance of Messianic Mission, Sword-Bow-Water)
제 3강 : 하나님의 경륜 (Dispensation of God)


1. 정진호 교수님, 안녕하세요, 미주 코스타에 다시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코스타에 처음 참석하시는 분들을 위해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연변과기대의 정진호 교수입니다. 저는 90년 미국 코스타에서 헌신하여 선교 필드로 나가게 된, 여러분들의 코스탄 선배입니다. 그래서 더 미국 코스타 후배들을 향한 애틋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고요. <복음, 통일, 부흥>의 화두를 가지고 지난 15년간 중국과 북한을 섬기는 일로 달려왔습니다. 제 비전은 전 세계에 흩어진 코리안 디아스포라 청년들을 선교적 재원으로 훈련시켜서 임박한 통일시대와 동아시아 시대에 복음의 물류를 따라 흘러가며 쓰임받는 부흥세대를 키워내는 것입니다.

2. 평양과기대학교에 대한 책임을 맡으시고 여러가지로 일을 해오셨는데요, 그간 활동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지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 평양과기대는 이미 건축이 완공되어 장대한 캠퍼스가 나타나 있습니다. 개교준비를 하고 학생을 받아야할 시점에 밀어닥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정치적 긴장 속에서 지금 실마리가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주셨던 마음이 스룹바벨 프로젝트의 성전회복의 꿈이었는데, 이 일은 스가랴 4장 6절의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무너진 성전 회복의 역사는 하나님이 친히 움직이셔야 하는 일이기에 사람들의 힘(노력)과 능(재능과 학문적 지식 등)으로 준비는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때에 성령께서 그 땅에 돌아오셔서 임하시는 그날 새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역사속에서 <스룹바벨> 성전 회복을 위해서도 20년의 역사가 걸린 것처럼, 이 일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풀어가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3. 기독교인이 되면서 삶의 변화, 생각의 변화, 선교가 함께 시작되어야 한다고 할 때, 선교에 대한 인식과 행동이 더 강조되어야 할 것같습니다. 선교사적 삶을 산다는 것의 의미를 코스탄들에게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잃어버린 영혼을 살리시기 위함이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부터 선교적 사명은 시작됩니다. 선교적인 삶이란 생명을 살리는 일이요, 그것은 하나님이 처음 우리 사람을 만드시고 주셨던 문화명령과도 일치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 지음 받은 존재이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들이 생명을 살리는 비즈니스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직업과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하는 일을 Kingdom business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선교적 사명은 Kingdom Business가 우리들 주변 뿐만 아니라, 주의 재림의 때와 땅끝을 향해 확산되도록 나아가게 만드는 종말론적인 전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4. 세미나 연속 강의가 전문인선교 트랙에서 '메시아적 선교', 전방위 선교(all scope mission)라는 주제로 펼쳐지는데요, 좀 생소한 단어인 것같습니다. 강의를 듣지 않는 코스탄들에게 간단히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메시아적 선교>란 이땅에 찾아오셨던 완전한 선교사로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그분이 행하신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사명을 함께 이루어가는 총체적 선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활-칼-물>이라는 세 화두를 가지고, 비전과 전략 방향성에 대하여(활) 알아보고, 영성과 전문성의 양날이 선 (칼)에 대하여 살펴보며, 비록 활과 칼이 준비되어 있을지라도 샘물 근원에서 솟아나는 성령의 능력을 받는 (물)이 없으면 안되기에, 세 가지를 함께 구비한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총체적 선교를 배우고자 합니다. 그에 비하여 <전방위 선교>는 상황화와 컨택스트의 문제를 다루며, 21세기 시대적 변화와 종말론적 컨택스트에서, 과거의 지역화되고 특성화된 선교전략에서 벗어나, 개방사회와 유비쿼터스 사회 그리고 빛의 속도로 달려가는 종말적 징후들 속에서 (시간, 공간, 물질, 대상, 토양, 인력, 팀웤 등) 모든 선교적 변수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함께 고려되어야만 하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음을 직시하고, 선교전략적 차원의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업그레이드가 아닌 시스템 체인지로서의 사고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5. 선교가 한국 기독교인들과 코스탄들에게 어떤 시대적 사명이라고 할 때 어떤 근거를 말할 수 있을까요?

선교는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완성해 가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나타나 성령님께서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그들의 배교와 패역을 통해 열방 가운데 흩으신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사용하셔서 초대 교회의 신속한 확산을 이루셨던 성령님께서, 이제 한국 근대사의 부흥과 핍박과 배교의 역사를 통해 뼈아픈 고난과 분단을 허용하심으로 전세계에 흩으신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사용하셔서 마지막 때에 총체적인 전방위 선교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 시대적 사명과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6. 한편 근래 기독교인들의 배타적 태도, 근거없는 우월의식 등에 근거한 '공격적인 선교'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단계 성숙한 선교활동이란 어떤 모습을 띄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선교는 본질적으로 성육신의 낮아짐에서 시작됩니다. 서방 중심적인 선교가 한반도에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베푸는 선교, 선교사들의 우월적인 자세가 잘못된 선교관을 낳은 면이 없지 않았고, 이제 세계 제 2위의 선교 대국이라고 자랑하는 한국 기독교가 그같은 태도를 답습함으로써 믿지않는 사람들에게 배타적인 공격적인 우월적인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또한 피 선교지에서 동일한 관행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리될 때, 올바른 복음이 전해지지 못할 뿐 아니라, 복음이 확산되는 범위를 축소시킴으로 복음 유통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성숙한 선교란 높은 위치에서 나누어주는 시혜적인 선교가 아니라, 복음이 전파되는 순간부터 선교지의 제자를 즉시 동역자로 인정하고 그들을 선교의 주체로 세워 그들이 예배하고 일하는 방식에 따라 선교사가 따라가며 맞추어가는 선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예수님이 그리하셨듯이 선교사들의 끝없는 낮아짐의 자세가 요구됩니다.  

7. 좀 개인적인 질문을 드려볼까요? 많은 코스탄들의 관심사는 역시 진로, 그리고 결혼, 가정생활인 것같습니다. 선배 신앙인으로서 진로를 결정할 때, 그리고 가정생활에서 성숙한 결정을 내릴 때 필요한 지혜를 조언해주시겠습니까? 사역과 가정생활을 어떻게 균형잡고 계신지, 자녀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하고 계신지, 아버지의 역할은 어떤 것인지 등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가정이 근본임을 더욱 실감합니다. 30-40대에는 사역에 대한 열심으로 가정을 희생하고 놓치는 일이 많습니다. 즉 아내와 자녀들에게 마땅히 드려야할 시간과 희생과 노력이 결여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수많은 청년들에게 심어준 헌신과 희생에 비하여 내 자녀가 그 부분이 취약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직업을 정하는 문제는 물론 돈을 벌기위한 job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명하신 문화적 사명으로서의 occupation과 나를 지으신 분의 부르심의 목적에 합당한 calling으로서의 직업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혼관 역시 가정이 가장 기초적인 교회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 머리와 몸의 만남으로서의 한몸을 이룰 수 있는 배우자를 찾아 같은 목적과 사명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숙한 가장과 아빠인 저에게 젊었을 때 미처 다 깨닫지 못하고 이루지 못한 가정의 훈련을 다시 시키시기 위하여, 거의 10년터울로 하나씩 세 아이를 주셔서 지금 재수를 너머 삼수째 아빠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세 살짜리 늦둥이 막내 딸을 키우며 이번에는 정말 좋은 아빠가 되어서 합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특별히 요즈음은 선교적 사명이 땅끝까지 나아가는 공간적 사명 뿐만 아니라 세대를 통해 시간적으로도 바로 흘러 내려갈 수 있도록 하는 수직적 선교의 장이 바로 가정인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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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녕하세요 교수님.
    방금 막 교수님의 '떡의 전쟁'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이 곳에서 교수님의 글을 읽게되어 너무 반갑습니다 :)
    기도로 함께 할께요.. 언젠가 만나뵙길 소망하며..

  2. 허란옥 2010/07/19 13:04  Addr Edit/Del Reply

    안녕하세요~ 정교수님!

    인터뷰 내용을 읽으면서 다시금 세미나 내용이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귀한 세미나 강의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 드립니다.

    코스타로 불러주신 모든 청년들이, 복음의 물류를 따라 흘러가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코스탄들이기를 또한 간절히 소망합니다!

1. 한철호 선교사님, 안녕하세요. 코스타에 참석하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집안이 기독교 집안이지만 처음에는 성탄절에만 선물 받으려고 교회 나갔는데, 고등학교 때 선배의 등쌀에 밀려서 교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쁜 여학생들도 많고 해서 계속 나가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회심을 경험했습니다. 아직도 그 회심의 경험이 생생합니다. 어느날 기도회를 하는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엄청난 감격으로 다가왔고 나도 모르게 회개와 내 삶을 그 분에게 드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에는 교회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저희 집과 교회가 담 하나 사이로 연결되어있었거든요! 대학에 들어와서는 IVF를 통해서 말씀에 대한 깊이와 헌신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이번에는 후배들의 등쌀에 밀려서 IVF 간사가 되었고, 그 후 18년간 한국IVF 캠퍼스 간사와 졸업생담당대표간사로 섬겼습니다. 캠퍼스 간사로 섬기면서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었고, 졸업생사역을 하면서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삶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만드는 일에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IVF의 국제본부 사역인  IFES의 아시아권 사역자로 섬기면서 세계선교에 직접 관여하게 되었고,  2000년 부터는 선교한국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선교한국 상임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선교한국은 2년 마다 열리는 청년선교대회를 주도하는 운동입니다. 매번 5천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모이고 선교한국을 통해서 많은 선교 헌신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아내와 두 딸이 있습니다.

2. 오늘 설교의 주제와 내용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즘 제가 만나는 사람 마다 피곤하다고 합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래서 쉼이 필요합니다. 이번 수련회도 참가자들에 신체적으로, 영적으로 쉼의 공간을 마련해 주었을 것입니다. 오늘 제가 전할 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분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피곤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쉼을 허락 하십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쉬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세상의 무리들, 즉 세상의 온갖 필요와 문제를 가지고 있는 무리들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당시 제자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천명을 먹이시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이런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이 잘 이해되지 않았고, 그래서 대들기 까지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오천명을 다 먹일 수 있는 200 데나리온이나 되는 엄청난 돈을 다갖고 그들에게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것, 즉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되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을 드릴 때, 기적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엄청난 과제들이 우리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선교지와 우리의 일터와 학문현장과 가정과 세상에 엄청난 필요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 모든 필요를 채울 모든 자원을 우리가 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의 작은 것들을 그리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그 일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번 코스타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도전 받았을 것입니다. 동시에 여러분들이 마음 한편에는 그 일을 감당하기에 너무나 힘들고 벅차고 그래서 감히 도전하기 두려워하거나 주저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 많은 도전들 앞에서 화가 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역사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십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에게 있는 작은 것들을 가지고,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 믿음의 역사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소망하고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3. 이번 코스타 주제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생각하시거나 느끼신 점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가 감당하기 벅찬 주제 일 수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거슬러가는 삶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용기를 가진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닙니다. 세상은 때로는 우리가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그렇게 엄청난 힘으로 다가오는 세상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상을 만드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풍조와 힘이 제 아무리 강력해 보여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광대하심 앞에서는 세상은 바다의 물 한방울이며, 태산의 먼지에 불과합니다. 결국 믿음의 문제 입니다. 우리 인생에 중요한 것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으로 간다면 때로는 속도가 느리고 불편하게 간다고 할지라도 그 목적지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4. '선교한국'의 책임을 맡고 계신데요, 어떤 비젼을 갖고 계신지.

코스탄들이 그 비젼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부터 130년 전 한국에 복음을 전하러 온 아펜셀러와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나이가 25세였습니다. 하나님은 세계가 복음화 되어지는 일을 위해 항상 그 나라의 젊은이들을 사용하셨습니다.저는 이와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 지난 20년 동안 한국에서 수 많은 선교사들이 나갔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젊은 청년시절에 선교에 대한 도전을 받고 헌신하고 준비하여 나간 분들입니다. 이러한 일에  젊은이들을 선교에 동원하는 선교한국이 그 역할을 감당했다고 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선교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잘 준비된 헌신된 젊은 선교 헌신자들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가치보다 하나님의 가치를 더 우선시 하고, 세상에서의 명성보다 하나님의 이름이 열방에 알려지길 소망하는 준비된 젊은이들이 필요합니다. 지난 150여 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서구의 청년 지성인들로 하여금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보도록 했습니다. 저는 이제 남반구 선교시대의 선두에 서있는 한국의 젊은 지성인들에게 동일한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5. 근래 한국 기독교에 대해서 반성하는 견해들이 많습니다. 타문화와 타자를 존중하는, 무례하지 않은 기독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일까요?

상식은 기독교 진리의 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기독교가 배타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사상을 포괄할 수 있는 참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창조적으로 기독교의 유일성을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문화 안에 전달할 수 있는가 입니다. 성경에서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자꾸 기독교가 무례하게 전달되는 것은 복음이 선포로만 전달되고 삶으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삶으로 전달하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인내와 배려와 상호 존중의 과정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고전 13장에 나온 사랑의 정의는 상대의 부족한 것을 채워 주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상대에 대한 태도의 문제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부분에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것은 기독교가 그 나라의 문화와 삶 속에 뿌리를 내리고 문화를 변혁해 가지 않으면 그 기독교는 곧 소멸되고 맙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한국 문화 안에 뿌리를 내리고 그 문화를 변혁해 갈 것인가, 아니면 한국 사회와 계속 물과 기름과 같은 상태로 가다가 한국 사회로부터 배척 당할 것인가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비록 한국교회가 대통령을 배출하기도 했지만, 한국 사회는 한국 교회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본래적으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김수한 추기경의 선종 후에 나타난 한국인들의 반응에서 보여진 것처럼, 단지 최근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배척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에만 해도 없었던 일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1980년대 보다 덜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무례하다고 지탄을 받는 것은 단순히 복음 전파의 열심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난 얼마간 보여준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비상식적인 태도와 발언 때문입니다. 몇몇의 잘못된 지도자들 때문에 한국교회 전체가 배척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지도자들이 나와야 합니다. 겸손하고 섬기는 지도자가 나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스타와 같은 사역의 존재는 더욱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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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 상담실에서는 많은 코스탄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을 가상의 코스탄과 멘토와의 대화를 통해 풀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실린 의견은 멘토님 개인의 의견이며 코스타와 소식기관의 의견은 아닙니다.

이성교제

“멘토님, 안녕하세요. 저는 이제 막 이성교제를 시작한 코스탄입니다. 모든 인간관계가 힘들지만, 이성 관계는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제가 사귀기 시작한 사람은 저와 성격이 정반대라 서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의사소통하는 게 좋을까요. 이성 교제 과정에서 꼭 알아봐야할 점이 무엇일까요.어떻게 상대방이 하나님이 인도하신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요. 혹, 사이가 좋지 않아지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결혼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커서 잘못된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지 고민됩니다.”

이성교제. 쉬운 일이 아니죠? 사실 막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는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다툼은 거의 없죠. 그러나 데이트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눈에 콩깍지가 벗어지고, 다른 점이 발견되고 이때부터 다툼이 시작되죠. 이는 종종 이별로 발전하기도 하구요. 우리는 ‘달라서’ 싸운다고 하지요. 하지만 달라서 싸우는 일은 거의 없어요. ‘몰라서’ 싸우는 거지요. 남자와 여자는 원래부터 달라요.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요 의도이죠. 그 하나님의 계획에 초점을 맞추게 될 때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은 수수께끼가 풀리게 되죠. 그 수수께끼를 푸는 방정식은 첫째,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지 배워야 하며 둘째, 나와 다른 것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라는 대명제를 받아들이고 셋째, 나의 방식이 아닌, 상대방의 방식을 배워서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전달하고 넷째, 상대방과 달리 나에게만 있는 강점으로 상대방을 돕는 것이에요. 그 결과 두 사람은 하나 될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알맞은 짝이 되기 위해 성장해가는 과정이에요. 이렇게 차이들을 조율하는 과정 속에서 사실과 거리가 먼 정보들이 입력되고 이것이 오해로 발전하게 되는 거예요. 왜곡된 생각들을 지워내고 사실이나 진심을 확인해가는 과정이 바로 대화죠. 이 때문에 ‘결혼은 길고 긴 대화의 예술’이라는 말이 있어요. 먼저 남녀대화의 차이를 배워서 상대방의 언어로 말해야 해요. 인격을 다루지 말고 사건을 다루며, 과거를 다루지 말고 현재를 다루고, 상대방의 생각을 듣고 동의한 후에 나의 생각을 말하며, 감정통제가 불가능할 경우는 문제를 다루지 말고 감정을 다루는데 중점을 두고, 정 통제가 되지 않으면 타임아웃을 선언하기로 약속을 하세요. 하지만 결론은 하나에요. “진정성” 진심이 통하지 않는 경우는 없어요. 이성 교제시 알아보아야 할 것이 있냐고 하셨죠? 나이(Age) 물어야죠. 배경(Background) 확인해야죠. 성격(Character) 따져야죠. 학위(Degree) 아무나 안되죠. 경제(Economy) 많으면 좋지요. 그래서 ABCDE...Z(zeal) 그러다 보면 날새겠죠. 하나만 알아보세요. ‘평생 날 사랑해 줄 사람인가?’ 그러면 그것은 어떻게 아냐고요? 고린도후서 13장은 사랑은 오래참고..... 바로 거기 답이 있어요. 끝까지 읽어 보세요. 이기적이지는 않은지? 내게 무례한 짓(?)은 안 하는지? 쉽게 성내지는 않는지? 하나님의 인도? 이번에는 내가 물어보죠? 올림픽 경기에 금메달을 놓고 다투는 두 선수가 있었죠. 둘 다 크리스천이었어요. 둘 다 기도해요. 이번에 금메달을 목에 꼭 걸게 해 달라고. 하나님은 누구 기도를 들으셨을까요? 당연하죠. 땀을 많이 흘린 자의 기도를. 그래서 기도는 행동이다는 말이 있어요. 하나님의 뜻, 하늘에서 날벼락 치듯, 로또 복권 당첨되듯 오지 않아요. 그래서 멈춰 서 있는 차의 핸들을 꺾기보다 달리는 차의 핸들을 꺾는 것이 쉽다고 하죠. 움직이세요.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발견되지요. 가보지도 않는데 표지판이 보이나요. 달려봐야 시속 몇 키로로 달려야 과속이 아닌지 또 몇키로로 남아 있는지 갈림길에는 어김없이 그 표지판이 있을거에요. 헷갈릴 때면 무조건 달리지 말고 멈추어 보면 되죠. 그리고 나면 목적이 표시판이 반드시 있을걸요. 아 참, 이런 이야기 아세요?

남녀 한 쌍이 소개팅으로 만난 다음 근교 신도시 식당 촌으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출발하고 난 후 이내 속도를 내자마자 ‘오토 도어 록’이 찰칵 하고 잠기는 순간, 여자 분이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달리는 차량 안에서 문을 열려고 낑낑대다 꿈쩍도 않자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왜 이러세요?” 남자분도 놀라서인지 말까지 더듬어 가며 도어 록에 대해 설명을 했다. “아, 제 차는 60킬로(속도) 넘으면 안전 때문에 문이 잠겨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자는 더욱 얼굴을 붉히면서 볼멘소리로 대답했다. “저 몸무게 60킬로(체중) 안 넘거든요.” 이거 실제 이야기에요. 데이트할 때는 이런 이야기 많이 나누세요. 심각한 사람은 절대 아니에요. 유머가 있는데 사이 나빠질 전혀 없죠.사이가 안 좋아지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도 팔자네요. 사람이나 찾아보고 그런 소리 하세요. 착각 또 있어요. 상담실은 문제 있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그 사람 진짜 문제 있는거 아시죠. 코스타는 강의와 선택식 강좌 기도등의 영성 프로그램과 함께 상담을 통해 참가자들을 전 인격적으로 섬기는 탁월한 집회죠. 인생 선배와 단 둘이 만나는 달콤하고 향기로운 한 시간, 붙잡으세요.

상담디렉터로 섬기는 송길원 김향숙부부 (하이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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