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코스타에서 자주 들었던 문구 중 하나가 '영적 낭비'이다. 30명이나 되는 많은 강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영적 포텐셜에 비해 일주일
동안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주강의 한번, 또는 강의 몇 번에 상담이 전부라는 것이다. 그것도 사례를 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통비, 가족
등록비까지 책임지고 자비량으로 섬기는 것이다. 언뜻 보면 일리가 있는 말로 들린다. 실제로 한국, 연변,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 오신 강사들의
경우는 거의 10일 정도가 강의 몇 번을 위해 낭비(?)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은 이것을 낭비가 아닌 거룩한 투자로 본다.
사도행전
8:26이하를 보면 주의 천사가 빌립에게 이상한 명령을 내리신다. 명령의 내용은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가는 사막 길로 무작정 떠나라는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고 있었고, 사도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전 지역으로 흩어졌고, 아직 회심 이전의 사울은
보이는 교회마다 파괴하고 성도들을 붙잡아 감옥에 넘기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제자들의 복음전도 사역은 점점 확장되고 있었으나,
핍박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최대의 위기였다. 그런
긴급한 상황에서 아무도 보이지 않는 사막 길로 무작정 떠나는 것은 시간낭비는 물론, 뻔뻔스러운 도피로 보일 수도 있다. 태풍으로 교회가 침수되어
정신없을 때 교회의 지도자가 갑자기 성령께서 지시하신다고 먼 시골로 떠나는 것과 진배없다. 그러나 빌립은 성령의 음성에 순종했다. 사막 길에서
당시 에티오피아 여왕 밑에서 재정을 담당하는 큰 권세를 지닌 내시를 만나고, 그에게 복음을 전하고 침례까지 주게 된다. 이 내시는 분명
에티오피아에 복음을 전하는 평신도 선교사 역할을 감당했을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빌립도 나타나, 카이사랴에 이르는 모든 고을에서 선교활동을 하게
된다.
때때로
우리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에 못 미친다. 이사야 55:8,9에서 하나님은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고 했다. 코스타에서는 4번의 저녁집회가 있다. 미주에서 경험하기
힘든 천여 명의 예배자들이 드리는 감격적인 예배의 향연이 매일 저녁 드려진다. 1,000여명이 뛰면서 드리는 열정적인 찬양과 선포되는 복음의
메시지를 상상해보라. 그 안에는 2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직업과 소명, 평신도와 목회자, 교파와 교회, 세대와 문화를 초월한 진정한 찬양과
예배의 축제가 드려진다. 진정 천국의 모형 아닌가? 이 예배를 통해 올해도 100여명이 예수님을 영접했고, 200명 넘게 2년 이상 단기선교에
헌신했다. 그뿐이 아니다. 성인 참석자 반이나 되는 500여명의 학생들이 강사들과의 일대일 상담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는 최고의 상담실이
코스타 내내 운영된다. 우리 인간 편의 '낭비'가 하나님 편에서는 엄청난 '결실'로 바뀌었다.
세계어느나라에유학생들의영적부흥을위해이처럼
1세대가자신의재정과시간을낭비하는나라가있었는가?
눈물과땀과사랑을투자하는나라가있었는가?
그결과,
자신의편의와안락을포기하고,
아직복음이전해지지않는미지의땅을향해회중의
5분의
1이자리를박차고무대
위로나아가는그장엄한광경을상상해보았는가?
2006년현재전
세계
16개지역즉,
남미,
러시아,
남유럽,
북유럽,
토론토,
밴쿠버, 시카고,
인디아나폴리스,
북경,
상해,
동북차이나,
일본,
대만,
뉴질랜드,
호주,
필리핀에서이
'거룩한영적낭비'의역사가계속되고있다.
23년전,
이처럼말도안
되는
'영적낭비'를감히꿈꾸고이를실행에옮겼던우리의
1세대영적선배들이없었더라면이런영적축제는지금까지이
땅에없었을것이다.
오늘그분들에게가슴깊은곳에서우러나오는깊은존경심을표하고싶다.
어렸을 적에 교회에서 배운 말씀들이 참 중요한 것 같다. 나는 교회 안에서 자라면서 어렸을 적부터 많은 설교들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중에 아직도 눈에 선하게 남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 목요일 저녁 어린이 예배 시간이었는데 지금 한국에서 목회하시는 김원교 목사님이라는 분이 그때 우리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는데 그림을 잘 그려오셔서 설교를 해주시고는 하였다. 그 날도 도화지에 색 연필로 두 장의 그림을 가져오셔서 설교를 해 주셨는데 그 그림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바위 위에 지은 집이었다. 예수님의 산상 수훈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비유의 말씀을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설교의 주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어릴 때 보았던 그림이 아직까지도 눈에 선한 것은 왠일일까?
달라스 월라드 교수는 “하나님의 모략”이라는 책에서 바로 이 모래 위에 지은 집과 바위 위에 지은 집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일상적인 순종과 실천이 산상 강화의 마지막 주제이다. 그 분이 최선의 길을 아시고 일러주신 일들을 한사코 행하지 않기 위해 상상 가능한 모든 일들이 시도 되리라는 것을 그분은 분명 미리 내다 보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도 순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의 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계신 것이다.
내려놓음으로 많은 관심을 끌고있는 이용규 박사가 북경코스타에서 강의를 마치고 한 자매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살 수 있지요?” 라고 질문하였을 때에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길 원하세요. 그러나 우리가 가진 안테나가 너무 약하기 때문에 들을 수 없는 거죠. 안테나를 세우는 한 가지 방법을 말씀드린다면 ‘주님, 제가 말씀해 주세요. 제가 듣고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님의 말씀에 100%순종하겠다는 결단 없이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백지 수표를 주님께 온전히 넘겨 드리기 전까지는 주님의 뜻을 듣고 순종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하였다. 순종을 강조한 말씀이다.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로 안수받고 특히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사역을 하면서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많아지고 남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조금씩 잘 해가는 것 같다. 그런데 그 말씀을 아는 것 뿐만 아니라 또 잘 가르칠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순종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 분야는 여전히 어렵고 남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진리를 잘 가르치지만 나의 생활 속에서 실천하기는 주저하고 두려워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말로는 쉬운데 행동으로는 여전히 어렵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산상 수훈에서 하나님 나라의 귀한 진리들을 가르치시고 나서 제일 마지막으로 이 비유의 말씀을 주신 것은 우리가 좋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 말씀이 머리의 지식으로 끝이 나고 행동으로는 다르게 행동하게 될까봐서 마지막에 강조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영적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가 영적 지도자로서 많은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주님께 지도자 자신이 순종하는 것이다. 월라드 교수는 말하기를 “그 분을 “주”라고 부르거나 심지어 그분의 이름으로 놀라운 일을 행해도 그것이 순종을 대신할 수는 없다.”특별히 나의 경우에 선생된 자로써 무거운 책무를 느낀다. 알지나 못하고 또 남에게 가르치지나 않았으면 좋으련만 머리로는 잘 알고 남에게는 잘 가르치면서도 실제 나의 삶 속에서는 그 진리의 말씀 대로 살지 못하여 그 참된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에 “내형제들아너희는선생된우리가더큰심판을받을줄알고선생이많이되지말라”는야고보의권면이생각난다.
안녕하세요.
너무 좋은 글입니다.
이번 뉴질랜드 코스타에서 간사로 섬기는 김하영입니다.
이 글을 저희 싸이월드에 올리고 싶은데요.
스크랩을 할 수가 없네요.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에 들어가도
그 라이선스에 대한 설명뿐.
어떻게 스크랩해야하는지 알려주시겠어요?
그럼,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