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애틀 평강교회 집회를 마친 다음날, 오승현 전도사와 함께 후배 피아니스트 안선 집을
방문해서 오랜만의 반가운 회포를 풀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숙소가 넓은 만 건너편에 있는 관계로 페리호를 타고 건너 야 했습니다.
가는 길 앞차들이 속력을 내지 않아 겨우 제 시간에 도착했는데 이미 만 차(boat is
full)였습니다. 코앞의 뱃길을 포기하고 먼 길을 돌아와야 했지요. 문득 시애틀에 사는 모 교회 선배 원순이 전도사님이
생각났습니다. 선배는 1년 전에 폐암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라 시애틀에 오면 문안하려고 했는데, 혹시나 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마침 돌아가는 길목 인근에서 15분 즈음 남쪽에 살고 있었습니다. 스케줄 상 이날이 아니면 방문이 불가능했기에 바로 달려갔습니다.
금만 캐라
마중 나오신 선배 아버님의 갑작스런 접대로 저녁을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이 분은 저의
모교회인 서울 문화촌 소재 홍성교회에서 유명한 분이셨습니다.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다고
자식들까지 집에서 내 쫓는 무서운 분이셨지요. 그런데 그 분이 91년도에 미국에 와서 너무 심심해서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3년 전 이곳을 방문했을 때까지 만도 여전히 다가가기 어려운
분이셨는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딸의 아픔을 가까이 겪으면서 신앙이 연단되셨는지 한마디 한마디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말도 안 되는 목사도 있고, 말도 안 되는 장로들도 있어. 성도이건
목사이건 자기 비즈니스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러나 이런 것에 좌우될 필요는 없어. 목사님이 설교를 못해도 불평할 필요가 없어. 금을 캐러
갔으면 금만 캐야지 돌까지 캘 필요는 없잖아. 아무리 설교를 엉망으로 해도 그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금이 있거든.”
머리에 망치를 한 대 맞는 듯 했습니다. 그토록 복음을 핍박하던 과거의 모습은 온대간대
사라졌습니다. 암 투병 중인 딸의 아버지로
보기에는 그 고백이 너무 건강하고 힘찼습니다. 70대 노 성도의 입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씀마다 제 심부를 찔렀습니다.
폐암을 이긴 여장부
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선배를 만났습니다. 처음 얼굴을 본 순간 믿을 수 없을 만큼 건강한
모습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처음 폐암을
발견해서 의사가 개복했을 때는 이미 폐의 좌우에 모두 번져서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까지
갔었습니다. 의사는 2달 안에 죽으니 집에 가서 조용히 기다리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선배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답니다. 그녀의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죽음을 인정할 수 없어, 나는
살꺼야!”였습니다. 몇 번의 진단을 통해 의사는 폐가 돌처럼 단단해져서 더 악화 되었다는 말만 반복했답니다.
그러나 선배의 내면의 소리는 단호했습니다. “나는 아직 하나님을 위해 할 일이 많아. 나는
살아야 해” 그래서 24시간 찬양과 기도하는 IHOP이라는 곳을 찾아가서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주위의 교회와 한국의 가족이 다니는 교회에서 기도로
동참했습니다. 3개월 뒤, 믿음의 기도는 기적을 낳았습니다. 의사들이 놀랐습니다. 아주 작은 혹 하나만 남고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 극한 고통 가운데서도 순간순간 써내려간 수기가 200페이지가 넘는다니 역시 죽음의 그림자는 선배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헤어질 때 오히려 방문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선배의 목소리는 정상인보다 강인한 듯 힘이
넘쳤습니다.
잠 못 이루는 밤
이날의 독특한 경험 때문인지 숙소로 돌아와서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선배를
만나러 가면서 내심 예상했던 분위기는
어둡고, 자조 섞인 병실의 위로, 격려 모드였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문안 갔던 우리가 도전받고
돌아왔습니다. 오 전도사의 말처럼 ‘페리호를 타지 못한 뜻’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크리스천의 삶이란 거꾸로 사는 삶입니다. 편안한 뱃길 대신 돌아가는
길이 오히려 회복과 충전의 길이
되었습니다. 노년의 주름이라도 복음의 생명력에 젖을 때 오히려 청년보다 더 예리한 분별력을
발휘합니다. 죽음의 그늘도 기도의 집중력에 노출될 때 그 사기(死氣)를 잃고 정상인보다 더
활기찬 생기를 뿜어냅니다.
두 분의 삶은 거꾸로 사는 삶의 산 증거입니다. 선배의 아버지... 비록 병이란 병은 온몸이
다 지니고 있는 아내와 함께 넉넉지 못한 삶을
사는 노년의 나이이시지만, 복음 안에서 누리는 영혼의 자유는 세상 누구보다 부요해 보입니다.
원순이 전도사님... 비록 폐암 말기를 선언한 의사들의 사형선고 앞에 무능력한 중년의 여인이었지만,
하나님 안에서 믿음으로 고백한 불굴의 투지는 이미 세상이 이길 수 없는 승리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지금도 제 눈 앞에는 외로운 노년의 위기는 간대없고 신앙에 올인하신 어르신의 단호한 낯 빛,
가장 극심하다는 폐암의 고통을 참아내며
하나님의 치유의 강에 온 몸을 내어던진 선배의 여장부다운 패기, 그리고 이미 99%의 암을
극복하고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꿈꾸는 그 생명력 넘치는 눈빛이 아른거려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2008 KOSTA/USA 시카고 컨퍼런스의 오전 주제강의를 맡아주셨던 화종부 목사님을 eKOSTA가 만났다.
eKOSTA: 목사님께서는 청년 사역을 활발히 하고 계신데요, 제자들 교회가 청년 중심의 교회라고 할 수 있을까요? 특별히 하고 계신 청년 사역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소개 해주시겠어요? 화종부: 청년의 때에 말씀을 많이 접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영국에서부터도 청년 사역을 하고 싶어 했었습니다. 한국에서 청년 사역을 위해 특별히 하는 것은 많지 않지만 이번에 Joy의 이사장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청년 사역의 기회가 있었으면 했는데 좋은 통로인거 같습니다. 저희 교회도 말씀하신대로 비교적 젊은 교회이고, 큰 교회는 아니지만 청년, 대학생이 200명 정도 있습니다.
eKOSTA: 교회 홈페이지에서도 많은 결혼 소식들이 있는 것을 보고 청년들이 많이 있을 거라 짐작이 되었습니다. 화종부: 네, 1년에 20번 정도 주례를 하고 1년에 30명 정도의 아기들이 태어납니다. 저희 교회 청년부는 바울이라고, 대학부는 디모데라고 불립니다. 청년부, 대학부, 그리고 장년부가 각각 독립적으로 사역이 이루어집니다.
eKOSTA: 예전에 내수동 교회에서 섬기셨는데, 그때와 지금의 청년부가 다른 점이 있나요? 화종부: 그때의 청년들에게는 야성이 있었던 거 같고요, 지금의 청년들은 야성은 덜하지만 그때에는 없었던 창의력이 있는 거 같습니다. 어떻게든 장점을 최대화 해야겠지요. 지금의 청년들은 굉장히 창의적이고 개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아시아권 뿐만 아니라 세계 무대에 설 수 있는 인재들이 배출되는 거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걱정도 되고, 기대도 있습니다.
eKOSTA: 지금 말씀하신 야성은 열의라는 의미로 들리는데요. 화종부: 그런 거 보다는, 체제가 도움이 많이 안되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만날 때 그게 바로 들판에서 개인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거지요. 지금은 체제적으로는 상대적으로 잘 되어있으니, 들판에서 거칠게,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이 줄어드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세련되지는 못해도 선이 아주 굵직 굵직한 청년들이 아주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굵직 굵직한 청년들이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eKOSTA: 대략 15년 내지 20년 전쯤에는 한국 기독교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이들이 많았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들을 찾기 힘들다는 말들을 하거든요. 화종부: 네, 그런 것도 다 포함될 수가 있겠죠. 우리 때에는 조국과 민족이 중요했다면, 요즘은 개인과 세계가 화두가 되는 거 같아요. 개인에 너무 함몰되지 않도록 하면서 민족을 넘어서서 세계에 관심을 갖는다는게 더 좋은 거일 수도 있죠.
eKOSTA: 목사님 설교 중에서도 언급되시는 손희영 목사님, 백금산 목사님, 김남준 목사님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신 거 같은데, 이분들과의 관계를 소개해주시겠어요? 화종부: 손희영 목사님께서는 제가 자랐던 내수동 교회의 집사님으로 계셨습니다. 손희영 목사님께서 세브란스 병원에 의사로 재직하고 계셨을 때, 많은 사랑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저는 사역자였고, 목사님께서는 집사님이셨는데, 뵐 때마다 참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목사님을 알게 되었고, 지금 가끔 한국 오시면 저희 교회 부흥회도 해주시고, 그렇게 교제할 기회가 있어서 너무 많은 위로가 됩니다. 그리고 김남준, 백금산 목사님은 신학교 동기들입니다. 졸업한 이후로 20여년간 꾸준히 같이 공부를 해왔습니다. 혈육과 같이 너무 좋은 친구들입니다. 만날 때마다 많은 격려와 도전이 됩니다.
eKOSTA: 손희영 목사님은 작년에 저희가 인터뷰를 했었고, 올해도 세미나 강사로 오십니다. 작년에 강사 인터뷰를 했을 때, 윤종하 총무님의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목사님께서는 윤종하 총무님의 영향은 받지 않으셨나요? 화종부: 저는 윤종하 총무님의 영향을 받지는 못했고, 대신에 저는 제 평생의 스승으로 여기는 로이드 존스 선생님을 책을 통해서 만났고, 그 영향으로 다른 선생님들에게는 눈이 잘 가지 않았습니다. 신학교 친구들이 모여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로이드 존스에 대한 관점이 같았기 때문이었고요. 대부분의 친구들이 로이드 존스를 통해서 이제는 존 오웬이나 청교도들도 접하게 되었는데, 저만 아직 로이드 존스에 머물러 있죠.
eKOSTA: 특별히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존경하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화종부: 제가 전공했던 정치 외교학을 내려놓고 신학교로 부름 받았을 때, 한국 교회의 현실이나 신학교의 현실에 의해 방황하며 굉장히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 제가 예수를 믿는 것이,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런 일인가에 대해 그분이 책을 통해서 많은 영향을 미치신 거 같아요. 그분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이 감격스러워하고 좋아하며 목회를 하고 있지 못했을 거 같아요. 그런 면에서 참 귀한 선생이죠.
eKOSTA: 작년에 저희가 손희영 목사님 인터뷰 할 때, 목사님께서도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언급하시면서 훌륭한 설교자가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 목사님께서도 설교자로서의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존경하시나요? 화종부: 네 맞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이 또 특별한 이유는, 로이드 존스는 제자를 만들 때 자신과 똑같이 만들지 않고, 자기에게 속하게 만들지 않는 거 같아요. 대신에 그리스도에 속하도록 저를 도와주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도록 도와준다는 면에서 제가 너무 좋아하는 선생입니다. 저도 그렇게 좋은 설교자가 되기를 사모합니다.
eKOSTA: 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동영상에서, 소그룹보다는 전체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 만나도록 하고 싶으시다고 하신게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화종부: 예배가 참으로 하나님의 지혜로운 도구라고 생각이 되어요. 제가 제자 훈련을 하면서 느끼는 한계는, 잘 훈련 받아서 삶의 터전으로 보내는 것이 목적인데, 너무 많은 시간을 교회에서 보내게 되는 거 같아요. 그래서 되도록 많은 분들이 잘 양육 받아서 삶의 자리에서 잘 살아가도록 파송을 해야 되겠는데, 그렇게 하는데 있어서 소그룹이 너무 많아지면 물리적으로 모임의 숫자가 많아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좀 더 큰 모임에서 삶의 많은 문제들이 다뤄질 수만 있다면, 더 적은 시간내에 이루어지고 더 많은 사람들을 삶의 자리로 보낼 수 있겠죠. 그런 면들이 예배에 더 집중하게 만듭니다. 또한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으면 닿을 수록 더 좋은 일꾼으로 길러지기도 하지만, 그럴 수록 한계도 더 많이 보이는 거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람이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되,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우시는 그런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니, 결국 예배가 가장 좋은 도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는 결과들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복주시리라고 기대하며 꾸준히 가고 있습니다.
eKOSTA: 개인적인 양육 보다는 좋은 말씀을 통한 목양이란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화종부: 네 목양도 중요하지만 저는 최대한 빨리 성도들이 저를 그만 사용하고 그리스도께로 붙기를 기대해요. 목양자가 제가 아니라, 그분이신거죠.
eKOSTA: 청교도에 관해 매우 긍정적이신 백금산 목사님, 김남준 목사님과 달리 손희영 목사님께서는 부분적으로 부정적인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는데요, 목사님의 청교도에 대한 견해는 어떠신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화종부: 네 저도 동의하고, 존경하고, 따라 살고 싶어합니다. 그 친구들은 지금 한국 교회의 필요를 청교도가 공급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물론 그분들이 역사 속의 인물들이기 때문에 약점은 숨겨지고 장점들만 부각되는 면은 있죠. 그런 면은 조심해야 하지만 저도 조국 교회에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하죠.
eKOSTA: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되고, 어떤 면에서 현재 상황에 적용하기에는 문제가 있을지 말씀해주시겠어요? 화종부: 제가 목회를 하면서 부딪히는 것중의 하나가, 한국사람들의 정서는 너무 율법주의적이에요. 이렇게 율법주의적인 사람들에게 청교도 적인 것이 들어올 때,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더욱 묶어놓게 만드는, 그래서 위축되게 하고 억누르게 되는 경향이 있게 될 것이고 그런 면에서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지금과 같이 물질이 풍부한 때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고자 하는 열정은 참 귀하다 할 수 있겠죠. 너무 율법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가운데 그들의 정신이 잘 사용될 수 있다면 참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eKOSTA: 목사님 설교 중에 들었던 표현 중에서 ‘주 안에 사랑하는 여러분’ 이란 말과 ‘조국 교회’라는 표현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요, 목회자로서 생각하시는 조국 교회의 약점은 어떤게 있을까요? 화종부: 저는 조국 교회에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봐요. 하나는 복음에 대한 무지함. 예수의 사건에 대해 너무 모르죠. 그래서 예수를 믿는 것이 얼마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건지 잘 모르는 거에요. 주님이 하신 일과 그분의 성품에 대해 우리가 너무 무관심하기 때문이죠. 또 많은 설교들이 삶에 어떻게 적용되는 가를 말해주고, 윤리적인 면을 중시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스스로 생각하는 기회를 주지 않아서, 너무 약한 성도들을 만들어내는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또 하나는 교회론에 문제가 있다고 봐요. 교회가 얼마나 유기적이고, 상호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을 잘 하지 못하고, 너무 개별적이고 효율 위주의 구조를 많이 생각하지요. 그러나 교회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세상이 말하는 지혜로운 구조를 갖고 있지 않은 조직이죠. 세상은 다 잘 따라오는 소수를 위한 구조를 갖고 살지만, 교회는 따라오지 못하는 소수를 위해서 다수가 보폭을 늦추는 그런 구조를 갖고 있는 유일한 공동체라고 할 수 있죠. 그런 면에서 교회의 교회 됨을 잘 모르기 때문에 계속 한계에 부딪히고, 그리고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들이 못하는 그런 섬김들을 잘 하고 있지 못한다고 봐요. 이렇게 저는 구원론과 교회론이 한국 교회의 큰 약점이라고 봐요.
eKOSTA: 예전에 유학 전에 사역하실 때나 학생이실 때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비슷하게 갖고 계셨나요? 화종부: 네, 그랬습니다.
eKOSTA: 역사를 살펴보면, 예를 들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그런 교회로 부터 독립된 교회론을 주장하셨고, 존 스토트와 같은 분은 교회 내에서의 개혁을 주장하셨던 걸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그럼 로이드 존스 목사님을 존경하시는 분으로서 이렇게 종교의 문제를 헤쳐나가는 방법에 있어 누구의 생각이 옳았을까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화종부: 네, 저는 그 부분에 있어서는 로이드 존스 선생님과 입장이 다릅니다. 영국에서의 유학이 저에게 준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요, 유학을 가기 전에는 로이드 존스와 같이 언제든지 부패한 교회에서 떨어져 나와서 거룩하고 성결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유학을 가서 너무 뜻밖에 어거스틴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어거스틴이 저에게 강하게 심어준 이미지는 교회의 하나됨, 한 몸으로서의 교회의 교회됨과 진리와 성결, 그 두 개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두 개가 동시에 추구가 되어야지, 하나 때문에 다른 하나를 포기하면 안된다는 것을 영국에 가서 굉장히 강하게 느꼈어요. 그런 것들이 로이드 존스와도 다르고, 친구들과도 약간씩 다른 부분이죠. 저는 그런 면에서 계속 교회로 들어가야 하고, 교회의 한 부분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을 해야한다고 느끼고 있어요.
eKOSTA: 그럼 하워드 스나이더가 주장하는 교회 내 교회를 주장하시는 것이네요. 화종부: 저희 친구들은 대부분 교회를 개척했지만 저는 다른 사람이 개척한 교회를 받아온 겁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제가 원하는 목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교회를 개척했었겠죠. 그게 아니고 저는 기존의 한국 교회에 들어가서 그 교회를 새롭게 하고 섬겨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래서 교회들의 모임에 할 수 있는대로 참석하고 도우려고 노력하죠.
eKOSTA: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제가 젊었을 때는 이렇게 했을텐데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라고 말씀하시는데, 청년들을 위해서 해주고 싶으신 조언이 있으신지요? 화종부: 네, 20대나 30대에 그런 고민들을 해야한다고 봐요. 제가 50이 다 되어서 선택한 이 길을 지금의 20대가 선택하는 걸 저는 원치 않습니다. 공부를 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정말 목회와 교회의 교회됨이란 것은, 한없는 인내와 기다림과 포기하지 않고 믿어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인내하는 이 길을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의 20대, 30대가 지금의 저와 똑같은 선택을 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20대 30대 때는 뒤집고, 반대하고, 고민하며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때이기 때문에 그 일을 성실하게 하다가 와야지요. 그렇지 않으면 너무 쉽게 타협할 수 있겠죠. 저도 스스로 조심하는 것은 너무 타협하는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갖고 있어요. 타협하지 않고 정말 나이에 걸맞는 일을 해야되겠죠.
eKOSTA: 이전에 제자들교회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강해 설교를 14번에 걸쳐서 하셨는데, 그렇게 강해 설교를 하신 배경이나 의도가 있으셨나요? 화종부: 제가 계속 하고 있는 설교는 본문 강해 설교에요. 그러나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여러가지로 지식도 짧고 한계가 있어서 보통 그렇게 하지만, 때로는 특별한 주제를 다루기도 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강해를 하기 전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도 한 번 해봤죠. 여러 주제로 넓혀놓은 다음에 계시록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본문 강해 설교 뿐만이 아니라 특정한 주제를 중심으로 강해를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eKOSTA: 목사님 하나님 나라 설교 초반에 어서 계시록으로 가고 싶습니다 라는 말씀 정말 자주 하셨는데 그래도 또 하실 생각을 하시네요. (웃음) 저희가 설교 들으면서 조금 특이하게 느꼈던 점은, 목사님께서 upside-down 이란 말을 많이 쓰셨는데, 굉장히 개인에게 한정된 하나님 나라를 많이 말씀하지 않았나 싶어요. 교회 공동체를 위한 하나님 나라라든가 우주적인 주권, 또는 구약에 나오는 모습 등의 하나님 나라라기보다는 개인에게 집중된 하나님 나라였던 거 같은데, 그렇게 하신 이유가 특별히 있으신가요? 화종부: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그것이 한계라고 볼 수 있겠죠. 제가 에베소서를 하면서도 똑같은 것을 느꼈는데요, 역사적인 교회에 대한 논의들을 잘 다루고 나서 말씀을 보면 굉장히 넓게 다룰 수 있을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본문을 다루는데 급급했어요. 하나님 나라도 마찬가지이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전체적인 주제와 관련하여 폭넓게 여러 관점에서의 논의들을 다뤘으면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개인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더욱 풍성하게 다룰 수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기에는 제가 준비가 너무 부족했던 거죠. 그래서 본문 자체만 다루고 끝냈죠. 조금 더 넓혀져야 한다고 봐요. 제가 그런 면에서 더 많은 연구를 해야되는 거죠.
eKOSTA: 이번 코스타에서도 복음, 그리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신다면, 짧게 하셔야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개인적인 측면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거네요. 화종부: 네 그렇죠. 제가 개인적으로 계속 느끼는 것이 그런 거에요. 성경의 진리가 이상적인 것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게 아니고, 이게 정말 살아야 하는 삶이라는 생각을 해요. 저도 여러번 실패하고 안되죠. 말씀대로 살지 않을 때 많다는거 저도 알지만, 말씀대로 사는 것이 너무 어렵다던지 너무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절대 안해요. 저도 실패를 많이 하고 있지만, 아 정말 이렇게 살아야 진짜 사는 거구나 이런 것을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실제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거 같아요. 이상적인 삶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아주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에 바탕을 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어요.
eKOSTA: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을 생각하면 아주 추상적인 반면에, 사람들이 삶에서 부딪히는 문제나 상황들은 너무 구체적인데, 이 두가지를 연결시킬 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이번 코스타 주제에도 담겨있는 거 같아요. 저희가 개인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그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적용하며 살 수 있는지 조언을 해주실 수 있으세요? 화종부: 제가 목회를 하면서도 가장 많이 부딪히는 것중의 하나가, 한국의 교인들은 목회자가 어떤 결정을 해서 교회를 이끌어 가주기를 원하는 거 같아요. 근데 제가 목회를 하면서 계속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필요를 느끼는 자가 먼저 해야한다는 것이거든요. 기독교의 윤리라는 것이 절대로 공동체나 나라 전체를 배제하고 있지는 않지만, 언제든지 그 출발은 개인인거죠. 하나님 말씀에서 깨닫고 반응하는 그 개인에 의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공동체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깨닫은 개인이 전혀 보이지 않는 주변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 깨닫은 바를 댓가를 지불하면서 충성스럽게 전하는 거죠. 그게 제 개인의 경향이기도 하고 제가 계속 전하려는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어떤 운동 차원의 것을 함께 해가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보다는 개인이 변화되고 개인이 살면서 하는 것이 제 생각으론 훨씬 더 지혜롭고 효과적인 방법이란 생각이 들어요. 두 가지를 최대한 묶되, 적용은 철저히 개인과 내 주변에서부터 시작해야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eKOSTA: 목사님도 유학 생활도 하셨고 이민 목회도 하셨는데, 다문화권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있는 저희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조언은 어떤게 있으세요? 화종부: 제가 유학 생활을 통해서 얻은 것은 공부 자체보다는 그 외국 생활의 다양성에서 배운게 더 많은 거 같아요. 그래서 유학 생활 중에 공부를 하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만이 아니라, 정말 오늘의 삶을 사는 것이죠. 제가 만난 많은 한인 학생들은, 그곳에서 공부를 하는 시간이 아주 특별한 기간이고 삶이란 건 언제부터인가 한국 가서, 또는 직장을 얻고 나서 살려고 합니다. 그게 아니라, 지금 사는 것이 삶인 거죠. 그 생활을 특별한 기간으로 여기지 않고, 주님 앞에서 시간과 우선 순위를 충실하게 드리면서 삶을 살아주는 거죠. 언제부턴가 삶을 새롭게 사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그곳에 딱 맞는 형태로, 분명하게 헌신하며 성도의 삶을 살며 공부해야, 나중에 한국에 와서도 정말 우리가 기대하는, 빛을 비추는 삶을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그 삶의 현장에서 충성스럽게 믿음의 원리를 따라 사는 거죠. 그런 기대를 제가 전해주고 싶어요.
요즘
한국 광우병 사태를 보면서 마음이 찹찹합니다. 우왕좌왕하는 정부도, 초등학생까지 참여하는 국민적 촛불시위도, 종교계의 대처 그 어느 곳에서도
가슴 시원한 해법이 보이질 않습니다. 생산적인 논쟁보다는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 ‘천민 민주주의’ 등 유희적 논쟁으로 매체가 들끓습니다.
비난을 위한 비난의 소리가 더 깊은 불신의 병을 낳을까 염려됩니다. 광우병을 둘러 싼 몇몇 입장에 묘한 공통점이 드러납니다.
시민들과
야당, 국민대책본부가 여당과 정부, 대통령을 향해 쏟아내는 성난 목소리, 그 속에는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졌습니다. 플래카드마다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비난의 소리가 가득합니다. 질책을 넘어 인격 모독입니다. 대통령을 무슨 길거리 촌부 취급합니다. 참여정권을 심판한다는 국민의 힘에 의해
압도적 표차로 뽑힌 대통령이 100일도 안 되어 그 국민에 의해 짓밟혔습니다. 국민의 권위가 국민에 의해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국민의
생존권을 책임지는 나라의 권력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 생명이 담보가 될 소지가 있는 소고기 협상 과정에서 국민을 배려한 최선의 신뢰적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문제가 터지고 촛불시위가 일어났을 때 국민의 입장에서, 민초의 마음을 읽으려는 낮은 자세도 없었습니다. 국정의
책임자들이라면 적어도 국민들이 ‘국민의 생명의 존엄성과 인권을 헌신짝처럼 취급하는’ 느낌이 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일부
크리스천 정치인이나 목회자가 ‘사탄의 세력’ 운운하는 것도 조심했어야 했습니다. 비 신앙인도 인간의 생명 그 자체로 존엄합니다. 긍휼과 사랑의
언어로 존중해야 합니다. 교회가 사회의 모든 현상을 성속의 이분법적 태도로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그 어느 종교보다 인간의 존엄성을
귀하게 여기는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지 100년... 최근 사회에 기독교 불신과 안티세력이 급속도로 커져가는 것이 아이러니합니다. 반기련 등
수십 개에 달하는 안티 기독교 단체들이 ‘한국사회에 패악질을 일삼는 기독교를 박멸’하겠다고 도전합니다. 심상치가 않습니다. 이를 한국교회 총체적
난관으로 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 자정의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 이것은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자유 민주주의의 기본 철학이며, 교육의 핵심개념입니다. 아무리 큰 잘못을 해도 인간의 생명이 붙어 있는 한
인간은 존엄합니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사형수라도 형틀에서 마지막 죽기 직전의 순간만큼은 엄숙합니다. 바로 생명 그 자체가 존엄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기치로 삼고 달려왔습니다. 이제 그
민주주의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성숙이 무엇인지 돌아볼 때 입니다. 80년대와 사뭇 달라진 좌파우파의 논쟁도, 물고 뜯기가 끝없는 국회의 야당과
여당도, 권력의 추가 정부에서 국민에게 이동하는 시국현장에서도, 노동자와 사주 사이의 협상 테이블에서도 인간존중의 언어와 소통의 미는 없고
비난과 반목질시만 난무한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역행입니다.
마가복음
5장에는 12년간 혈루증으로 앓고 있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당시에는 혈루증을 부정한 병으로 취급했기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없었고,
고통스럽게 살다가 생을 마쳐야했습니다. 그 사회에서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의사들은 말합니다. “이제 당신은 안 돼요! 이 병은 더
이상 치료 불가능합니다!” 병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끊임없이 괴로움을 주었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종교 지도자들도 말합니다.
“당신은 부정한 여인이요! 사람들에게 나타나지 마시오.” 종교적 기준으로 가차 없이 처단합니다. 이처럼 주변에서 들려오는 불가능과 절망, 비난의
소리에 갇혀 있던 여인이 예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문을 박차고 무리를 뚫고 예수께 가까이 가서 그 옷자락을 만진 순간 즉시 혈루병의 근원이
말랐고 병이 나았습니다. 근본적인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12년 동안 짓밟혀 있던 이 여인의 가치는 그 짧은 순간 예수 안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예수 앞에 나아가기 위해 인간의 외형적 껍데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저 살아있는 존재 그 자체로 충분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비난, 불신, 정죄, 절망의 소문이 아닌 예수의 소문이 필요합니다. 이름 난 대형교회의 소문이 아닌 예수의 소문이 필요합니다.
예수를 만나기 위해 그 어떤 정치적 입장, 이데올로기, 학술적 권위, 종교적 허울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존재의 회복을 열망하는 솔직한 한
생명이면 충분합니다. 이 예수 복음은 개인과 사회, 국가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와 신념의 근본적인 회복과 변혁을 가능케 합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이번 광우병 사태의 위기가 오히려 실종된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금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Dogville 기독교적인 세계관의 가장 기초는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죄의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일부의 사람들, 악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사실이 아니고 어떤 때에 선한 의도와 행동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사실이다. Dogville은 이 죄의 문제를 설득력있게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Dog과 달리 죄에 대해 인식할 수 있는 선한 마음이 있는 반면 그 죄를 이길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없다. 영화는 외부적인 갈등에서 벗어나 있는 평화로워 보이는 작은 마을의 순박한 사람들의 매일매일의 삶 속에도 죄가 깊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연극 같은 삶을 통해 자기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사람들에게 죄와 구원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Children of Men 예수가 태어났을 때 어떤 일이 있었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동화 같은 이야기로 비쳐지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식민지와 피식민지 간의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점점 심해지는 식민정권의 억압정책으로 강제로 호구조사에 응하는 여정에서 인간이 누울 수 있는 가장 낮은 곳, 말구유에서 태어나셨다.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은 너무나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힘의 메시야를 기대하고 있었으나 이러한 모든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가장 약해보이는 생명의 아기였다.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있었던 일을 현실에 비추어 재구성하고 있어 예수님의 탄생의 의미를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밀양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을 제시하는 영화. 예수님에 대한 오해처럼 하나님에 대한 오해도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들에게 퍼져있는 것 같다. 예수님 속에 계시된 하나님은 낮아진 곳을 향하고 있던 '숨어계신 하나님'이셨다. 이 영화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신에 대한 이미지, 곧 힘과 영광의 실체가 기독교적인 생각이 아님을 생각해볼 수 있다. 빈 곳과 초라한 곳, 약한 곳과 병든 곳, 낮은 곳과 조용한 곳에 비치고 있는 햇볓 속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우리들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김영봉의 책 <숨어계신 하나님>은 이 영화를 바탕으로 기독교인들이 고민해볼 만한 문제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소그룹에서 함께 읽고 나누면 많은 유익이 있을 것이다.
Cider House Rules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문학으로 형상화한 John Irving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주인공인 Homer의 가출과 귀환은 성서의 탕자의 비유를 모티프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이야기의 아버지처럼 Dr. Larch는 강요하지도 않고 아들의 결정을 들어주지만 끝까지 자신의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모습을 통해서 결국 어떤 규칙도 그 근본이 사랑일 때 가치를 갖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힘에 근거한 규칙은 사랑에 기반한 규칙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주제의식이 자연스레 예수님의 삶과 공명하고 있다. 결국 한 사람을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깊이있는 사랑이라는 주제의식을 잔잔한 영상과 함께 표현하고 있다.
Amazing Grace 영국의 노예무역제도 폐지 200주년 기념작. 노예무역폐지를 성경적 소명으로 받아들인 William Wilberforce의 생애를 그린 작품이다. 윌버포스가 당시 노예제도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노예무역 폐지운동을 벌이던 감리교회 공동체와 함께 인내심을 갖고 끝내 노예무역금지 법안을 통과시키는 긴 여정을 그리고 있다. 개인적인 소명과 공동체적인 비전 안에 기독교적 비전을 꾸준히 추구해간 한 인물의 생애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죄로 왜곡된 이 세상은 분리와 차별의 사회이다. 이곳에서는 서로간의 소통은 사라지고 오해와 반목과 갈등만이 존재한다. 하나님 나라는 이러한 세상의 나라를 거스르는 나라이다. 이 나라는 이런 세상의 질서를 거스르는 하나님의 성육신으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겸손의 하나님,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과 본체이시나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곳으로 내려오셨고 죄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속죄제물로 내어주셨다. 그분의 낮아지심으로 교회가 세워졌고 교회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눈물로 주님의 목소리를 전해왔다.
완성될 하나님 나라에서는 인간의 죄로 갈라진 모든 장벽이 무너지고 다른 언어지만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모든 성도들의 지향점은 그리스도 한 분이 될 것이고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피조 세계와 인간은 완전한 관계를 회복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사회는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다.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창조주와 회복된 관계를 갖고 구속된 세계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는 하나님의 화해에 대답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므로 다른 장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완성을 향해 가는 하나님 나라의 발전 속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은 왜곡된 세상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자신의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되찾고 그 나라에서 그분의 뜻과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 전달된 그 나라는 이어져 이제 이곳 휘튼 코스타 수양회에게까지 전달되었다. 그것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하나님 나라를 더 넓히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현실에 만드는 일일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 세계를 바라보며 자신의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만물이 하나되는 완성된 나라를 바라보고 있다. 자신을 다 내주신 하나님은 그분의 계획에 동참하며 그 뜻을 실현시킬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다리고 있다. 누가 이 요청에 응답할 것인가? 누가 그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할 것인가? 누가 이 열방을 향해 나아가 그들과 하나가 될 것인가? 누가 이 열방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할 것인가?
우리는 바로 우리가 그 일을 하겠다고 결단한다. 우리는 인간을 모든 억압에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해야 한다고 결단한다. 하나님 나라로 초대하고 그분의 질서에 따라 살아갈 것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권할 것을 결심하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우주적인 교회와 지역교회의 책임과 중요성을 믿고 그 공동체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기여하겠다고 결심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하나님의 은총으로 감사하여 그것에 부응하는 청지기적 소명을 다할 것을 결심하였다. 우리의 직장과 학교에서 그리스도인의 윤리에 따라 정직하게 살아갈 것을 결심하였다. 우리는 우리 가정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가정이 그분의 계획하신 질서에 따라 세워지기를 바란다. 주위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바라보며 우리를 희생하여 그들을 돌볼 것을 결심하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권능과 영광 중에 다시 오시어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시킬 것을 믿는다. 그날이 이를 때까지 우리는 우리의 생을 인도하시는 그분의 주되심을 믿고 즐거이 순종함으로 그분을 기다린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기꺼이 헌신하려고 한다. 열방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를 애타게 찾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불러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가 이 열방을 비추는 빛으로 살 것을 결단한다. 주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해 주시기를.
My bones suffer mortal agony as my foes taunt me, saying to me all day long, "Where is your God?"
Why are you downcast, O my soul? Why do disturbed within me? Put your hope in God, for I will yet praise him, my Savior and my God. (Psalm 42:10-11)
하나님 나라의 주권은 전 우주에 미친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온 시간을 규율하신다고 우리들은 믿는다.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 하나님 나라의 우주적 주권을 인정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는 세상의 나라의 질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모든 만물에 하나님의 주권이 적용된다면 의로운 사람이 당하는 고통, 고난을 하나님은 왜 허용하시는가?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주를 다스리신다면 왜 세상의 나라가 번창하며 이 우주에는 왜 죄와 악이 번성하는가? 이 세상의 수많은 악과 무질서, 그리고 세상 나라가 번창하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전지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가? 세상 나라의 질서, 그리고 악의 주권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계획 안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인가의 문제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모든 우주의 창조주이시며 그 질서를 유지하는 분(sustainer)이라는 믿음, 역사를 전지와 전능 그리고 전적인 선하심으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갖는다. 그러나 자주 우리들은 심각한 악의 존재에 이런 믿음을 포기하게 된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분이라는 믿음을 버리거나, 그분의 전지전능하심을 부인하거나, 그분의 전적인 선하심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지적으로 해결하기는 힘든 것 같다. 성경에서도 이에 대해 분명한 대답을 하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할 것 같다.
욥,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 욥의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주권은 전제되어 있다. 심지어 사탄의 어떤 행동이 하나님의 계획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욥은 하나님께 항의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대답한다. 욥의 항의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기다렸다가 대답하신다. 하나님의 대답은 그에게 닥쳤던 일들에 대한 설명은 아니었다. 다만 하나님의 대답은 욥과의 관계에서 과거에 있었던 많은 일들,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 형성되었던 믿음과 신뢰에 대해 지적하신다. 우주와 세상의 운행은 욥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하나님은 욥에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들을 알려주시고 과거에 그에게 쌓인 믿음과 신뢰를 다시 되살아나게 하신다. 지적인 설명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먼저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 고통 당하신 하나님 그러면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세상의 악과 그 악의 결과에 의한 고통에 대하여 무관심한 하나님이신가. 세상에서 생기는 절망과 고통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계신 하나님인가?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며 죽음을 경험하실 때 예수님 뿐 아니라 그와 완전한 일체를 이루고 계시던 성부 하나님도 죽음을 경험하신다.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은 성부 하나님에게도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건은 하나님 자신이 모든 악의 결과인 죽음을 스스로 감당한 사건인 것이다. 하나님은 고통을 당하신, 고통을 직접 경험하시는 하니님이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우주적 주권 하나님 나라의 운행의 구체적인 원리에 대해서 우리는 알 수 없다. 우리들의 지적인 한계로 역사와 사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 하에서 발전되어 가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선하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다. 그것은 지적인 동의가 아니고 영적인 결단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당하는 모든 고통에 관심이 있으신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셨던 그 하나님이 그런 믿음의 근거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궁극적으로 승리할 것이고 그 승리를 향한 역사의 발전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하에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어둠이 빛을 이긴 적은 없다는 그 믿음으로 산다. 그 믿음으로 산다.
우리는 기획기사를 통해 예수님의 비전은 하나님 나라였다는 것, 그분은 십자가를 지신 자신의 행동으로 하나님 나라의 삶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그리고 부활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뿐 아니라 그가 주장하고 보여주었던 하나님 나라가 궁극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의 확증이 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임재한 하나님 나라와 승리할 하나님 나라의 사이에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실현시키는 사명을 부여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 교회에 대해서 살펴본다.
예수님은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예수님은 당시의 세상의 질서를 적극적으로 거스름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그것에 걸맞는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기 원했다. 그 새로운 공동체는 다른 종교 운동을 추구하는 공동체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어떤 폐쇄된 집단, 분파가 아니었고 모든 사람들이 초대되는 곳이었다. 심지어 죄인이라도 손가락질 받던 세리들과 창기들도 초대되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신분과 직업, 종교적 성향, 지역에 상관없이 하나님 나라로 초청하셨고 그것에 반응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베풀어 주셨다. 곧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는 다양성과 예수님의 관심인 가난한 자와 약자에 대한 관심이 예수님이 원하는 공동체, 교회의 기본 성격이라 하겠다.
하나님 나라와 교회 그가 특별히 구별하여 자신의 사역에 언제나 동참하도록 부른 열두 사도 공동체도 비슷한 성격을 띤다. 그들의 출신은 매우 다양하여 그 안에는 강한 민족주의자(zealot)들 뿐 아니라 세리라는 식민지 정부 관리까지 포함되어 있다. 열둘이라는 숫자에는 이스라엘 전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고 새로운 이스라엘을 대표한다는 의미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말했는데 세상에는 교회가 세워졌다고 말한다. 사실 예수님은 교회에 대하여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새로운 공동체 속에서 자신의 의도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자신이 구체적으로 임재하는 장으로 삼으심으로써 자신과 그 공동체를 동일화하였다. 그것은 자기 자신인 하나님 나라와 그 공동체를 동일화하는 것이었다. (마 18:17, 20)
예수님의 새로운 공동체, 교회에 대한 사도들의 이해도 이와 다르지 않다.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는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충만함이 이루어지는 장이 된다고 사도 바울은 증언한다 (엡 1:22-23 -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골 1:18-20 -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의 실재이며 교회를 통해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다는 비전은 죄로 인해 분리되고 분열된 세계가 그리스도 안에서 갱신되고 통일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 7:10-11).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는 분열과 분리, 소외와 배타, 갈등과 반목을 극복하려는 모든 성도들의 노력 속에서 서서히 형성되어 가게 된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 나라'라는 이상은 그리스도라는 실체로 전이하며 역사 속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 점을 공동체가 공감하고 추구할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된다는 비전은 현실의 교회의 모습을 지도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만들어 내고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봉사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되며 우리들의 교회는 하나님 나라가 실재하는 몸으로, 그리스도의 실체로 변화한다는 말이다.
물론 이것이 우리의 노력없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죄가 그것을 막는 최대의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성도가 성령의 도우심에 의지하며 나아갈 때 그것은 가능한 미션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우심을 의지하며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실 것을 우리는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거의 누구나 관심있는 주제이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앞을 쉽게 내다보기 힘든 불투명한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더욱 호소력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복음의 시각으로 세상의 다양한 현상들을 해석하고 이해하고 그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데에 도움이 될 책을 소개해 본다.
알버트 월터스, <창조, 타락, 구속>, IVP 리차드 미들턴,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 살림출판사 이승구,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SFC 기독교인으로서 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 문제에 대하여 정확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세 책은 기독교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큰 틀을 제공하는 교과서적인 책들이다. <창조, 타락, 구속>은 세상의 창조, 죄에 의한 타락, 그리고 예수님의 사역에 의한 새로운 사회의 창조라는 주제를 교과서적으로 잘 설명해주는 입문서이고, <포스트모던 시대의 기독교 세계관>은 그런 주제를 좀더 확장하여 포스트모더니즘 등 현대의 사조와 비교, 대조한 책이다. <기독교 세계관이란 무엇인가>는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틀을 좀더 심층적으로 검토하여 대안적인 틀에 검토해보는 책이다. 세계관 문제를 좀더 지성적으로 정리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책이 될 것 같다.
리처드 헤이스, <신약의 윤리적 비전>, IVP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슈들을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예를 들어 기독교인들은 정치, 이혼과 재혼, 동성애, 반유대주의와 인종갈등, 낙태 등의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가, 그런 문제에 어떤 견해를 갖기 전에 성경에서 다양한 문제에 대한 원칙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책의 전반부에서 논의하듯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염두에 두고 성경을 연구할 때 바울서신, 복음서, 계시록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세윤, <하나님이 만드신 여성>, 두란노 <The IVP Women's Bible Commentary>, IVP 복음주의권에서 성적 차별의 문제, 여성성과 남성성의 역할 문제, 여성성의 의미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을 바라보는 몇 가지 시각 가운데 성적 차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면, 그에 대한 의미있는 문제제기와 성경적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여성>은 교회 안에 있는 가부장적인 문화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좀더 바람직한 공동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The IVP Women's Bible Commentary>는 여성 저술가들에 의해 여성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신구약에 대한 각 권 주석을 시도한 책이다. 본문 중 이슈가 될만한 70여 가지 주제에 대해서 논의하는 에세이도 포함되어 있다.
제임스 패커, 캐롤린 나이스트롬, <하나님의 인도>, 생명의말씀사 우리는 매일같이 삶 속에서 내리는 모든 결정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외부의 징후를 통해 확인해야만 안도감을 느끼고, 각자의 지혜와 분별력을 외면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무시한다든지, 혹은 지나친 신비주의를 용납하는 두 가지 극단을 피하면서 시편 23편에 등장하는 선한 목자로서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돕는다. 보다 실용적인 지침도 포함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직업을 선택하거나 진로를 결정할 때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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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글을 읽고 많이 도전하고 모든폐암덩어리들이
주님의 일을 하고 천국의 맛을 보여주기위한
하나님의 역사를 실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