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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OSTA 성경강해

회복되는 하나님의 나라, 치유되는 자아.

또 다른 전쟁 (엡 6:10-24)

최근 미국 갤럽기관에서 조사한 결과 미국인의 68%가 사단의 존재를 믿는다고 대답했다. 사단에 대한 인식여부는 종교적 성향에 대한 객관적 평가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나머지 20%만이 사단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대답했으며, 응답자 중 85.5%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대답했다. 미국 내에서 기독교의 종교적 권위는 많이 상실되었지만 그 영향력은 아직도 남아있음을 보여주었다.  
바울은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6:10,11)고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보이지않는 영적 전쟁터다. 사단의 주요 목적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영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단의 공격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개인적 그리고 공동체적인 이중적 성숙이 요구된다. 교회는 연합의 공동체를 유지해야 한다. 연합이 깨어질 때 사단의 모든 공격과 유혹을 견뎌내지 못한다. 이 시대의 교회가 연약한 이유는 개인의 성숙이 더디고, 교회의 연합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단은 성숙하지 못하도록, 연합을 깨뜨리기 위해 힘을 다한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 아시아센터 소장 프랑수아 고드망은 이라크 전쟁에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다. 사담 후세인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바그다드 국경 수비대는 다 어디로 갔을까? 새로운 국제 무질서가 도래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했다. 이라크가 허무하게 굴복한 이유도 수비대가 힘없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사단의 존재성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6:12). 사단은 정사와 권세, 세상 주관자로 묘사되고 있다. 세상을 둘러 싼

모든 정치, 경제. 문화,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사단의 권세의 지배를 받고 있다. 악의 영들은 악의

본부에서 파송된 대리자들로 그리스도인 들을 실족 시키고 믿음을 무너뜨린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11:3).

        ‘하나님을 향한 열광이라는 책에서 크리스토퍼 에드워즈는 이단에 빠졌다가 극적으로 벗어난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는 1975년 예일 대학을 졸업하고 석사 과정을 위해 버클리 대학에

등록한 후 주말에 한 농장에서 열리는 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참석하고 나서 확인해보니 통일교 문선명이

주관하는 행사였다. 그는 7개월동안 광적인 세뇌교육을 받았고 새로운 메시야 문선명에게 완전히

순종하는 제자로 변화되었다. 문선명의 절대 통치 아래 세계를 회복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 바치고자

맹세했다. 그의 아버지는 전문가와 함께 아들을 만나고 거의 1년이 넘는 치료와 상담과 교육 후 광기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사단은 오늘도 비진리와 거짓된 교리, 이단종파의 유혹으로 그리스도인 들을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하게 만든다.

        존 번연은 사단은 두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다고 가르쳤다. 하나는 핍박과 환란

통해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유혹하여 범죄 하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마귀가 그리스도인

들을 집중 공격하여 쓰러뜨리는 기본적인 5가지 영역이 있다.

의심.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께 멀어질 때 갑자기 의심이 반복된다. 자신이 받은 사명과 구원 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과 존재에 대해서까지 의심이 멈추지 않는다. 의심을 막을 수는 없다. 다만 믿음으로 모든

의심을 일일이 거절해야 한다. 새가 머리 위로 떠다니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머리 위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

낙심. 낙심한 그리스도인은 쓸모가 없다. 낙심은 영적인 것으로 보일지라도 악의 영이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낙심을 주시는 일이 없다. 사단의 가장 오래된 무기인 낙심은 가장 정확한 공격능력을

발휘한다. 낙심은 거의 실패율이 없다. 낙심에 빠진 그리스도인 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바쁜 생활. 바쁜 생활로 인해 우리의 관심을 영적인 것에서 다른 것에 몰두하게 한다. 모임도 많아지고

처리해야 할 일도 많아지며,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면 깨어 경계해야 한다. 너무 바쁜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없다. 바쁜 생활은 마치 닻이 끊어져버린 배와 같아서 조금씩 떠밀려가 버린다.

열등감. “넌 할 수 없어 사단은 우리의 무능의식을 자극한다. 하나님께서 너 같은 사람을 쓰시지

않는다 쉼 없이 우리 안에서 속삭인다. 열등감과 비교의식에 빠진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다.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 사울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로다 라는

여인들의 노랫소리에 무너져버렸다. 블레셋 골리앗 장군은 결국 사울을 처형한 결과를 가져왔다.

게으름. 게으름도 사단의 오래된 공격무기 중 하나로 구형무기이지만 강력하다. 성경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고 권면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나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그리스도인 들과 교회는 완벽한 무장을 갖추어야 한다. 바울은 두 가지 명령을 하고 있다.

        ꊱ 주안에서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 하라(10절).

        ꊲ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11,13절).

모든 일상생활에서 완전무장을 하고 행동해야 한다. 잠시라도 전신갑주를 벗으면 공격 당하기 쉽다.

완전 무장한 채로 식사하고 잠을 자고, 샤워를 해야 한다.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에 들어갈 때

전신갑주를 현관 입구에 벗어두기 때문에 가정에 많은 문제들이 일어난다. 전신갑주를 입어야 할 두 가지 목적이 있다.

        11절: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

        13절: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구약의 열왕기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셨던 왕들은 거의 모두 시작은 좋았지만 끝이 좋지

않았다. 끝까지 변함없는 충성과 헌신으로 주님을 섬기기 위해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만 한다. 6장11-14절에서 대적하라서라는 말이 각각 두 번씩 반복해서 기록되고 있다. 두 번씩

반복해서 권면 하는 것은 영적 전쟁의 중요성 때문이다.

마귀는 공휴일이 없다. 그는 결코 쉬지 않는다. 얻어맞고도 다시 일어난다. 앞으로 들어갈 수 없으면 뒤로

들어간다. 뒤로 들어갈 수 없으면, 지붕이나 바닥에 터널을 뚫고 들어간다. 그는 들어갈 때까지 결코

수고를 멈추지 않는다. 마귀는 교활하며 많은 방법을 사용한다. 하나가 실패하면 또 다른 방법으로 그는

이길 때까지 계속해서 공격한다. 그러므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 들이 되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한다.

        캠브리지의 시므온은 어디로 이사를 가든지 항상 H. 마틴의 초상화를 제일 먼저 새집에 거는 것

잊지 않았다. 그는 매일 마틴의 초상화를 보면서 이렇게 자신에게 말했다. 진지하라. 결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파멸의 구덩이로 몰려가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결코 너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영적인 깊은 진지함을 유지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주님께 우리 자신을 드릴 수 없다.

 

하나님의 전신갑주

        진리의 허리띠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14절) 허리띠는 갑옷이 아니라 속옷의 가운데를 묶는 끈이다.

속옷은 겉에서 보이지 않는다. 허리 띠는 힘의 상징이다. 허리 띠는 속 사람을 매는 경건의 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주님과의 오랜 교제를 통해 내면의 경건함을 성숙시켜야 한다. 또한 진리의

허리띠는 성령으로 계시된 복음의 교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바울은 이미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해

에베소서에서 간략하게 복음을 다시 설명했다.

        18세기 영국은 산업혁명으로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서 도덕적 부패가 심했다. 그 당시 런던으로 상경한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런던의 뒷골목 전당포에 취지하고, 가게 문을 열 때마다 지난 밤에 일어난 거리의 광란의 현장을 목격했다. 타락한 도시를 바라보며 소년은 절망했다. ‘이 도시에 무슨 희망이 있는가?’ 다른 사람들처럼 비참하게 살고싶지 않았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성경을 읽으며 기도를 시작했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5:3).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인생을 사용하셨다. ‘이렇게 비참하게 살고 싶지 않다고 기도했던 소년이 구세군의 창시자 윌리엄 부쓰였다. 매일 아침 주님과의 깊은 교제가 그의 인생의 새로운 허리띠를 매게 해 주셨다.

        의의 흉배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5:8).

흉배는 가슴과 등을 보호하는 군사장비다. 사단은 매일 우리 마음에 죄책감과 불안과 염려를 쌓아놓는다.

매일 부지런히 치우지 않는다면, 마당은 쓰레기로 넘쳐 날 수 밖에 없다. 죄책감과 염려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린다.

① 죄책감.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

하리요..(롬8:33-34). 그리스도의 피가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으며, 한 번 용서를 받은 사람들에게 죄를

고백하면 용서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매일 자신의 죄를 고백함으로 죄책감에서 자유 해야

한다(요일1:9).

② 염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6:33). 염려는 곧 믿음이 실종되었다는 확실한 증거물이다.

캔자스 주립대학 교수 팀은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두 가지 생각이 든다라는 사실에 대해 연구한 결과

뇌는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사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결정

메커니즘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두 개의 시스템이 동시에 작동한다. 하나는 신중한 시스템이고 하나

는 감성적인 시스템이다. 계산영역의 신중한 시스템은 수학과 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반면, 감성적

시스템은 뇌의 원시적 부분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리스도인 들이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두 가지 시스템이

동시에 작동한다. 염려는 뇌의 원시적 부분이다. 염려는 해결방법이 아니다. 해결 능력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도 믿음을 더하여 주소서 기도해야 한다.

③ 질투.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 의의 흉배가 떨어져나간 그리스도인 들의 가슴이 질투심과 열등감의 늪에 빠진다.

심리학 교수 살로비는 미국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20%가 질투때문이라고 보고했다. 질투의 임상 학

저자 화이트 박사는 이혼하는 부부의 30%도 질투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질투는 열등감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결함을 질투로 바꾸는 사람은 불행하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이 모든 질투심에서

해방되고, 겸손의 갑옷을 입을 수 있으며, 용서와 평화의 사람으로 공동체의 화목을 추구할 수 있다.

 

        복음의 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15절). 신자들에겐 두 가지 신발이 필요하다.

복음을 전하는 신발과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신발을 신어야 한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미국 주도의 이라크전쟁이 세계의 종교적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인간의

비극이 종교적 재앙이 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발표했다. 이라크 전쟁이 기독교와 이슬람의

광범위한 충돌을 가져올 경우 종교가 분열될 위험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점령함으로 기독교 보수주의단체에서는 중동선교의 새로운 역사의 문이 열렸다고 전제하고 더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남 침례교단엔 이미 2만5천 여명의 전도자들이 중동선교를

위해 떠날 준비를 마쳤다.

        주님께서는 “내가 전도하러 세상에 왔노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 들과 교회는 매일

복음의 신발을 신고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따라 주님을 섬겨야 한다. 해외선교센터에서 세계기독교인구를

발표했다. 20억7662만 명으로 연평균성장률 1.27%가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해외선교사는 43만4천 여명

이며, 전세계 기독교인들이 매년 1900억 여 시간을 전도에 힘쓰지만 미전도 인구는 0.5% 증가했다.

한 신학생이 선교에 대한 막연한 기대를 품고 필리핀에 있는 선교훈련원에 입학하고 언어훈련을

받았으나 한 학기를 마치고 곧 좌절감을 느끼고 말았다. 그는 훈련을 중단하고, 여름방학 동안 필리핀

여행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학기가 끝나고 거리전도 요청을 받고 필리핀 오지로 거리전도를

다니다가 그는 선교에 대한 확실한 소명을 받게 되었다. 좌절감에 빠져있다가 그는 전도여행을 통해

다시 부르심을 받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다. 전도는 전하는 자와 듣는 자에게 생명을 더한다.

 

        믿음의 방해.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16절). 로마군인의

방패는 몸 전체를 가리는 방패로 길이가 1.2m 너비가 77cm로 두 겹의 나무판자로 만들었다. 전신을

가리는 방패가 필요했던 이유는 당시 고대전쟁의 가장 무서운 무기는 불화살이었다. 두 겹의 방패는

가운데가 비어있어 불화살을 맞으면 즉시 꺼지도록 만들어졌다. 사단의 모든 불화살의 공격을 믿음의

방패로 막아내야 한다.

        테레사 수녀께서 유명한 변호사 에드워드 윌리엄즈를 면담하기로 했다. 변호사는 AIDS환자

치료수용소 재정후원을 정중하게 거절하는 문구를 조수와 함께 작성한 뒤 테레사 수녀의 요청을 듣고,

이미 준비한대로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자 수녀께서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기도한 뒤 다시 후원을

요청했다. 변호사가 거절하자, 수녀께서는 다시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변호사는 두 번째 기도에서

자신이 이 게임에서 졌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인정해야 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앞으로 한달간이라도

계속 기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기도가 끝나자 변호사는 즉시 사업후원을 약속했다.

정채봉의 간장 종지 중에 이런 글이 있다.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한가지 공통점은 꾸물거린다는

사실이다. 누가 불러도 벌떡 일어나서 달려 나오는 일이 없다. 망설이고 꾸물거리다 끝난다. 마귀 군대는

매일 충격과 공포 작전으로 우리를 공격한다. 믿음으로 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면, 방패 없이 전쟁터로

나간 군사와 같다. 꾸물거리고 살다간 죽음뿐이다. 비참한 패배를 반복해야 한다. 방패 없는 군인이

생존할 가능성이 있을까?

 

        구원의 투구.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17절). 투구는 머리를 보호하고 계급을 나타내는

장식이 있어 군대 내의 질서 유지와 군인의 생명을 보호했다.

        ① 구원의 투구는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가치관을 의미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모든 일에 하나님나라를 먼저 구하는

철저한 삶의 목표의식을 가져야 한다.

웬디스 햄버거 창업자인 David Thomas는 “나는 10억 배의 축복을 받은 자라는 책에서 그가 성공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나는 원래 사생아 출신으로 학교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일당 6천원을

받던 간이식당 종업원이었으나 근면과 정직과 헌신이라는 삼대정신으로 햄버거 장사를 시작하여

6조원 규모의 기업가가 되었다.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 들은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나라를 먼저 구하는

분명한 삶의 정신을 보여야 한다.

        ② 구원의 투구는 자신에 대한 자아상을 의미한다. 바울은 모든 서신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나 바울 이라는 표현을 즐겨 말했다. 세속적 관점에서의 자기 가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

에서 자신의 가치를 깨달은 사람들이 아름답다.

에이즈로 죽어가던 한 여인을 심방한 목사는 어떤 위로의 말도 거절하는 냉담한 그녀를 바라만 보고

있어야했다. 난 버림받은 영혼입니다. 내 자신의 일생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행복까지 망쳐놓은

사람입니다. 고통스럽지만 전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제겐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목사는

그녀의 옷장에 걸려있는 사진을 발견하곤 물었다. 저 귀여운 여자아이 사진은 누구입니까 제 딸입니다.

제겐 소중한 보물입니다. 만일 저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당신은 도울 건가요? 실수해도 여전히

사랑하고 용서할 건가요? 물론이죠. 뭐든지 그 아이를 위해서 라면 할겁니다..그런데 왜 물으시죠?

하나님의 옷장에 당신의 사진이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항상 기억하는 투구를 써야

한다.

        ③ 그리고 구원의 투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또 다른 삶의 기대를 의미한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

무디는 나는 수년동안 설교할 때마다, 설교가 끝나기 전, 그리스도께서 오실 수 있다고 생각하며

설교했다.고 말했다. 캠벨 몰간은 나는 매일밤, 내일이 마지막 날일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잠이 들었다

고 고백했다. 재림의 진리는 성경의 진리 가운데 가장 귀중한 것이다. 중국 선교사로 평생을 섬겼던

허드슨 테일러도 이렇게 말했다.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소망이 내 사역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성령의 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17절). 예수께서도 광야에서 시험 받으실 때에 모든 마귀의

시험을 기록하였으되 라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승리하셨다. 우리도 매일의 영적 전쟁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모든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야 한다.

        한 청년이 한평생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살았던 무디의 성경책을 보고싶다고 했다. 무디가

성경책을 보여주자 청년은 놀랬다. 성경 전체가 빽빽하게 색연필로 칠해져 있었고, 성경 곳곳에 T.P

표시가 되어있었다. 무슨 뜻입니까? 묻자 무디는 실험해보고 입증되었다는 뜻이라고 대답했다.

말씀이 곧 그의 삶이었다. 매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이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결론: 세가지 헌신(6:18-24)

바울은 마지막으로 세 가지 헌신을 에베소 교회에 요청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우리는 그

몸의 지체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위해 세 가지 헌신으로 연합된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23-24절)들로 구분될 것이다.

        1. 기도의 헌신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18절). 기도는 쉴 수 없는 헌신이다. 무시로 판티 카이로 모든 시간에, 항상, 늘

기도에 힘쓰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세계적인 골프 선수명단엔 항상 게리 플레이어 이름이 남겨있다. 그는 남아프리카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과 역경 가운데 성장했다. 8살에 어머니를 사별하고, 탄광 광부인 아버지 손에서

자라났다. 신발을 아끼려 신발을 신기보다 들고 다니는 시간이 더 많았을 정도로 가난했다. 1953년 그는

프로 골퍼로 전향하여, 150여 개 대회를 우승했다. 우승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수없이 무릎 꿇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다. 왜냐하면 골프의 재능은 하나님께서 빌려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재능에 대해 바른 이해를 갖고 있었으며 기도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었다. 기도에 헌신하지 않고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을 풍성하게 받을 수 없다

(23절). 기도는 기도로 배운다. 운동선수가 오랜 연습을 필요로 하듯이 기도도 많은 시간의 기도가

필요하다. 스펄전은 기도는 성령만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실 수 있는 기술이다라고 가르쳤다. 성령께

우리에게 마땅히 기도할 수 있는 힘과 기술을 주신다. 우리는 기도함으로 성령님과 진정한 동반자가

될 수 있다.

 

        2. 동역의 헌신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19-20절).

에베소 교회는 기도로 바울과 동역자가 될 수 있었다. 우리는 기도로 수술실 의사의 동역자가 되고,

오지의 선교사들과 동역자가 될 수 있다. 바울은 쇠사슬에 묶인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주를 섬겼다.

복음 전도를 위해 그의 생애 전부를 주님께 쏟아 부었다. 로마의 감옥은 바울에게 그의 설교단과 전도

센터가 되어주었다.

        조지 포먼은 45세의 나이에 권투를 다시 시작했다. 그가 권투를 다시 시작한 이유는 휴스턴에

세운 청소년 회관과 교회 때문이었다. 청년시절, 포악한 삶을 살았던 그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만난

후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 포먼은 마약과 범죄에 빠진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기 돈으로

교회와 회관을 세우고 복음 사업을 추진했다.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게 되자 그는 다시 권투 글러브를

끼고 다시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다.

오늘도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하게 하소서 기도로 동역하는 진정한 동역자들이 세계 복음화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다. 우리는 세계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시카고 무디 성경학교에서 매주

토요일 밤 9시에 세계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여러 달 기도한 뒤 한 사람이 물었다. 부흥이

왔습니까? 아직 오지않았습니다. 다만 부흥이 올 때까지 우리는 기도할 것입니다. 복음 전도와 부흥을

위한 기도의 동역이 하나님의 능력의 손을 이끌어낼 수 있다.

 

        3. 교제의 헌신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게 하려 하노니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또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저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21-22절).

김명혁 목사께서 인생에 필요한 것은 참된 만남이다.라고 정의하셨다. 복음적인 삶이 되기 위해 만남의

확장이 요구된다. 누군가가 구원 받고, 헌신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도 만남에 있다. 목회도 선교도

만남이다. 김명혁 목사께서도 미국 유학시절 도서관만이 그의 유일한 삶의 전부였으나, 어느날 만남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셨다. 그는 외국 학생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주말에 학생들을 초청하여 식사와 교제를

가졌으며, 피크닉과 운동회를 열기도 하셨다. 그 모임들이 나중에 한인 회와 한인교회를 세우는 동기가

되었다고 하셨다.

        바울은 마지막까지 알게 하여 서로의 교제를 위한 모든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로마의 감옥도

바울을 가두어 두지 못했다. 바울에겐 언제나 그의 친구들과 동역자들이 함께 있었다.

 

        ‘회복되는 하나님나라, 치유되는 자아 2002년 코스타 주제를 따라 10번에 걸쳐 에베소서 요약

강해를 함께 나누었다. 복음의 비밀을 깨달은 지성인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와 진정한 자아를

회복할 수 있다. 우리에게 계시의 영을 주소서 기도하며, 복음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는 이 시대의

젊은 지성인들이 되었으면 한다. 복음을 깨달은 참된 지식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께 헌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윌리엄 부쓰에게 그의 성공 비결을 물었을 때 부쓰는 잠시 침묵하다가 눈물어린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보다 훌륭한 두뇌와 기회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지요. 그러나 저는 저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했었습니다.

이제 우리 시대는 이미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 바울처럼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고 고백하며 하나님나라를 회복해가는 암흑의 시대를 밝히는 코스탄들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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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과 치유의 신학 - 내 아버지의 뜻

사랑, 부르다가 죽을 그 이름이여..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타락한 인간의 에로스 사랑에 대한 완전한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의 선포와 그에 따른 영적 전쟁으로 이루어져 왔다.

(1)

청춘 예찬을 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가장 애틋하게 남아있는 감정이 있다면 아마 젊은 날의 뜨거웠던 첫 사랑의 열정이 아닐까? 오직 젊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요 그 이름 만큼이나 순수하고 설레는 말... 첫 사랑!! 인간만이 지닌 보석같이 빛나는 그 사랑의 감정을 통해 얼마나 많은 시와 노래들이 탄생했을까? 그러나, 섣부른 첫 사랑의 함정에 발을 헛디뎌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상처와 수렁에 빠져버린 연인들이 또 얼마나 많았을까? 채 피어보지도 못한 인생의 젊은 꽃봉오리들이 실연의 구덩이 속에서 눈물과 고통으로 몸부림 치다가 지쳐서 쓰러져버리기도 한다.

 

첫 눈에 홀딱(?) 반하는 그런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랑을 못 해본 것이 정말 아쉽다고도 한다. 물론 상상 속에서는 멋있고 좋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사랑은 가급적 말리고 싶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경험상(?) 그런 사랑은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후유증이 너무나 크고 깊게 마련이다.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깊이와 넓이를 미처 깨닫기도 전에 표피적인 감정에서 바로 파국으로 흐를 가능성이 더 높다. 더구나 첫 사랑이 그렇게 다가온다면 대개 실패할 확률이 크고 상처도 깊게 남는다. 예방 접종이 안 된 어린이가 급성 바이러스에 걸리듯, 인생의 경험도 예비지식도 없는 순수한 젊은 남녀가 그런 사랑에 노출되면 그들은 고열과 오한에 시달리며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감정의 혼수상태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그 같이 잘못 내딛은 어설픈 첫 사랑의 후유증으로 청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대학 생활을 완전히 날려버린 대표적인 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같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인생 후배들과 언젠가 청춘의 열병을 앓아야 할 사랑하는 나의 두 아들을 위해서...)

 

나의 어린 시절을 회고해 볼 때, 나는 책벌레로 지내어 몽상에 쉽사리 빠져들고 더러 이상주의적 성향을 지닌 것을 제외하면 아주 평범한 학생이었다. 더욱이 사회적 관행을 따라 인생의 모든 척도를 좌지우지하는 대학 입시에 목매달며 오직 학교와 집 밖에 모르던 모범생이었다. 마침내 원하던 대학에 합격한 후, 그 당시 풍습을 따라 자랑스러운 S대학 배지를 달고 첫 등교를 하던 그 시절의 설렘은 아직도 추억 속에서 생생히 다가온다. 마치 온 세상을 내 손안에 얻은 것 같이 느껴지던 나날들이었다. 장미 빛 꿈과 희망이 내 인생의 앞길에 거침없이 펼쳐질 것만 같았던 그 무렵에 나는 친구의 소개로 신촌의 한 여대생을 소개 받았다. 그리고 그날 그 자리에서 첫 사랑의 타오르는 불꽃으로 눈앞이 혼미해지며 아마도(?)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그 날 이후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오직 그녀를 보고 싶은 한 가지 생각으로 내 머리 속은 진공 상태가 되고 말았다. 호젓한 찻집에서 두근거리며 그녀가 나타나기를 애태워 기다릴 때는 온 우주의 시계가 잠시 멈추어 선 것만 같았다. 만나서 신나게 거리를 활보하며 다닐 때면 세상에 아무 부러울 것 없이 마냥 그렇게 좋았다. 무작정 행복했고 잠시라도 헤어지기가 그토록 아쉬울 수가 없었다. 마치 소꿉장난하는 어린아이들처럼 자신의 작은 세계에 폭 빠져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연애 경험이 전혀 없었던 나는 여자가 항상 남자보다 현실적이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그녀의 어느 정도 계산된(?) 순진한 표정과 춤추듯 하는 감정 변화에, 그리고 혼을 빼앗아가듯 하는 그 웃음소리에 내 온 마음과 정신이 홀려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녀의 웃음 뒤에 조금씩 다가오는 감춰진 불안을 전혀 읽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동성동본이니, 집안이 전혀 맞지가 않는다든지 하는... 점차 현실적인 문제가 다가오기 시작하자, 그녀가 먼저 헤어짐에 대한 불안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용히 떠날 준비를 한 것 같았다. 첫 해 크리스마스의 아련한 추억을 마지막으로 이별의 편지를 한 장 남기고 그녀는 모질게 사라져버렸다. 그 편지에는 그 동안 자신이 내게 고백했던 모든 말들은 거짓이니 이제 자신을 찾을 생각을 하지 말고 깨끗이 잊으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대처승이라고 하던 그녀는 마치 속세를 떠나버린 비구니처럼 내 시야에서 갑자기 종적을 감춘 것이었다.

 

문제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사실 나는 문제의 본질을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내가 그토록 열망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왜 내 안에는 손에 잡히지 않는 깊은 허무와 갈증이 심연처럼 출렁이고 있었던지, 그 공허를 채우기 위한 내 몸짓과 몸부림이 무엇을 향한 것이었는지, 그것을 미처 깨닫지도 못한 채 나는 술과 담배로 자신을 자학하며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 시절 세상 사람들을 향해 실연당한 사람의 표본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수염을 거칠게 기르며 장발의 히피처럼 살았다. 전공과 대학 생활의 의미는 완전히 상실해 버리고 말았다. 인생의 목적도 모르고 도로를 질주하던 어린아이가 막다른 골목을 만난 것이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세상의 온갖 우수와 슬픔을 머금은 채 끝없는 허무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나는 점차 시인이 되어가고 있었고, 주변에는 술 취한 아마추어 철학자의 취중 담론을 즐기는 더 많은 술친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후에 나는 몇 번인가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내가 그녀를 만나게 되는 날은 항상 마음을 고쳐먹고 무엇인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결심한 날이었다. 마치 그녀가 풀어내는 불가(佛家)의 끈질긴 인연의 실 타래가 누에고치처럼 나를 칭칭 휘감고 있는 듯, 그런 날이면 영락없이 길거리에서 우연히 그녀를 만나곤 했다. 그 때마다 나는 다시금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원점으로 떨어지는 감정의 혼돈을 겪곤 했다. 대학가의 데모로 어지러웠던 80년의 봄, 그녀를 잊기 위해 나는 다시 다른 여인을 사귀고 있었다. 두 번째 여자는 아무 소망도 없어 보이던 나에게 미안할 만큼 헌신적인 사랑을 표현했다. 그 여인을 통해 어느 정도 삶의 안정을 되찾고 있었던 대학 졸업반의 어느 날, 첫 사랑의 그녀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자신이 내게 보였던 지난날의 설명하기 힘든 행동 방식에 대한 변명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만일 지금 이 순간 그녀를 끊지 못한다면 내 인생은 이제 회복될 수 없는 낭떠러지로 떠밀려 갈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간신히 잡고 그녀를 냉정히 돌려보냈다. 그리고 나는 두 번째 여인과도 헤어진 후 졸업을 맞았다.

 

두 번째 여인은 큰 부잣집(?) 딸이었다. 처음엔 그런 사실에 관심도 없었던 나는, 그 일이 가져 다 줄 또 한번의 상처를 짐작조차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의 딸을 가난하고 힘없는 불량(?) 소년으로부터 강제로 격리시키기 위해 국외로 출국 시키는 그녀의 집안으로부터 또 다른 형태의 수모와 소외를 당하는 동안, 나는 세상에 대한 심한 염증을 느꼈다. 그리고 분노가 끓어올랐다. 나는 그 분노를 삭일 도피처가 필요했다. 군대를 마치고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첫 번째 여인은 종종 내 시야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TV의 뉴스 앵커가 되어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시절 나는 순수했던 나에게 무자비한 상처를 입힌 그녀들의 세상을 향해 복수의 칼을 갈며 오직 인생의 성공을 위한 질주에 매진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All A+의 성적을 받아보기도 했다. 내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나를 무시하던 세상에게 과시하기 위한 도전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장래에 대한 성공 야망으로 불타 올랐다. 그 가운데에서도 내 생활은 술이 없으면 잠시도 견디지 못하는 알코올 중독 초기 증상에 빠져들고 있었다. 손이 떨려서 커피 잔을 들기 힘든 상황까지 되었다. 나는 심신의 깊은 상처에 허덕이며 극심한 편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더 이상 내 자신을 견딜 수 없는 절망감으로 깊은 심연의 바닥까지 내려간 무렵...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녀는 내가 만난 여자들 중에서 처음으로 신앙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 시절 만나기만 하면 술만 마시고 아무 말도 없이 음산한 정물화의 실루엣처럼 앉아 있던 나를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받아주었다. 그녀와의 짧은 만남 끝에 프로포즈도 한번 안 한 상태에서, 무작정 그녀의 집으로 쳐들어가 부모로부터 결혼 승낙을 받아버렸다. 그녀의 의사를 무시한 일종의 폭력이었다. 그 같은 나를 어찌 된 영문인지 그녀가 받아들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야말로 나는 수렁에서 건진 남자가 되었다. 그리고 영적 치유와 회복을 위한 첫 걸음을 떼게 되었다.

 

요즈음은 첫 사랑이 TV에 등장해도 담담히 바라볼 수 있는 내가 참 신기하다. 얼마 전 어느 정치 신당의 대변인이 되어서 그녀가 또 다시 화면에 나타났을 때 왠지 그녀가 측은하게 느껴졌다. 아내가 옆에서 장난스럽게 저렇게 매력 없는 여자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었냐고 눈을 흘겼다. 그 말을 들으니 나도 정말 저 여자가 옛날에 내가 그토록 사랑(?)하여 미칠 것만 같았던 그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그 순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렇구나... 참 사랑의 본질을 알지 못할 진데, 인생이란 까딱 잘못하면 실상도 아닌 신기루에 속아서 허겁지겁 달려가다가 지쳐서 쓰러지고 마는 사막의 목마른 나그네에 불과하구나. 참 생수가 솟아나는 그 샘물을 발견하기 전에는 말이다.

(2)

그리스의 시인 헤시오도스는 미와 사랑과 풍요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의 탄생을 이렇게 묘사한다. 천공(天空)의 신 우라노스와 그의 아들 크로노스와의 싸움에서, 크로노스는 대지(大地)의 여신인 어머니 가이아의 음부 속에 숨어 있다가 아버지의 성기를 낫으로 잘라 바다에 던진다. 이렇게 하여 바다를 떠다니는 성기 주위에 하얀 거품(아프로스)이 모이고, 그 거품 속에서 아름다운 처녀 아프로디테가 생겨났다. 징그럽고 불쾌하기까지 한 이야기 속에서 미와 사랑의 화신이 탄생하는 이 설화가 담고 있는 의미의 이중성이 있다. 친부(親父) 살해를 통해서라도 권력을 획득하고자 하는 음모와 욕망... 그리고 바다를 떠다니는 거품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아름다움... 그것이 바로 인본주의적 사랑의 정수인 에로스(Eros)의 개념이다. 권력과 욕망의 부산물로서 나타난 아프로디테는 남편인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 몰래 군신(軍神) 아레스와 통정하여 아들 에로스(큐피드)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사랑의 화살을 쏘아 연인들을 사랑에 빠뜨리던 큐피드는 자신의 화살에 거꾸로 맞아 공주 프시케(Psyche)를 사랑하게 된다. 인간 정신과 혼(魂)을 상징하기도 하는 프시케는 지금도 큐피드의 화살을 맞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정신을 잃게 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맹목적 사랑에 빠지게 하곤 한다. 

 

첫 사랑도 그 본질을 살펴보면 대부분 자기 성취와 만족을 위한 에로스적 욕망의 산물이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생겨나는 실연의 고통과 분노, 그리고 세상을 향한 야망과 질주 그 모든 것이 자기만족이라는 바위덩어리를 더 높은 욕망의 언덕 위로 끌어올리고자 하다가 끊임없이 실패하는 시지프스의 신화에 불과하다. 

 

그러나 예수는 사랑에 대한 우리들의 통념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린다. 그가 가르치는 사랑은 우리가 도무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사랑이란 자기 본위가 아니라 철저히 사랑을 받는 대상이 본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의 사랑, 아가페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일지라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 사랑으로 사랑했기 때문이다. 간음한 여인을 붙들어와 고소하며 예수를 시험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질문 공세를 받으며, 허리를 굽히고 앉아 묵묵히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적고 있었던 예수... 그가 그 순간 적었던 글이 바로 ‘아가페’가 아니었을까? 자신의 불의는 끝없이 감추면서도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 용납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완악함에 예수는 서글픔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그들을 위해 자신이 져야 할 아가페의 십자가에 대해 다시 한번 묵상한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예수는 고개를 들어 그들에게 말한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 한 마디로 성난 군중을 모두 물리친다. 그리고 일어나 죄로 인해 죽어 가는 그들을 구원키 위해 마침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십자가는 아가페 사랑, 그 절정의 현장이다. 예수는 십자가상에서 우리가 정말 부르다가 죽을 사랑이란 에로스가 아니라 아가페임을 몸소 보여주었다. 에로스의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 끝나고 말지만, 아가페의 죽음은 수많은 사람을 살리는 생명의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에로스는 자기 성취를 위해 주변에 상처들을 남기지만, 아가페는 자신이 홀로 상처 받는 그 희생으로 주변의 상처 받은 영혼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킨다.

(3)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다.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 사랑을 전하기 위해 고향 땅을 떠나 먼 타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을 통해 쓰인 사랑 이야기들이 지금도 세상 어디엔 가 보석처럼 빛나며 남아있을 것이다.

 

아무리 퍼부어도 사랑을 받을 줄 모르는 닫힌 영혼들... 겨우 그 마음 문 열어 놓으면, 받고 또 받기만 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얻어내려고 끝없이 욕심만 부리는 사람들... 겨우 한 사람 변화시켜 놓으면, 이리 저리 눈치를 보다가 곧 실속을 챙겨 달아나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 애태우며 기도하다가 속상하고 힘이 들어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그 서러움...

그 마음을 체험한 사람만이 그 사랑을 배운다

 

1995년 겨울 티베트의 수도 라싸를 방문했을 때 만났던 어느 선교사 부부가 생각난다. 고산지대의 겨울은 음산하고 황량하여 길거리마다 모래바람이 죽음의 그림자를 몰고 이리 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비좁고 을씨년스러운 집으로 들어가며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하고 기가 막힌 심정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부인을 바라보았다. 미국에서 살다가 왔다는 그녀의 얼굴은 매서운 고산 바람에 온통 갈라지고 거칠게 터져 있었다. 양 볼은 자외선에 오래 노출되어 현지의 티베트 여인들같이 마치 설익은 사과처럼 발갛게 물이 들어 있었다. 그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는데 그냥 이유도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날 밤, 그 부부로부터 들었던 이야기... 티베트에서의 첫 크리스천을 얻기 위해 그들이 쏟았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서장의 대학생 하나를 섬기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퍼붓기 몇 년만의 일이었다고 한다. 그들을 철저히 무시하고 욕하며 따돌리는 그 집 앞에서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들고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리며 몇 시간을 떨고 서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그 학생이 나오더니 당신은 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거야 하며 엉엉 울음을 터뜨리며 결국 품에 안겼다는 것이다.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절대로 변할 것 같지 않던 제자가 어느 날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이 받은 사랑을 고백할 때 나 역시 함께 눈물지며 그 사랑을 느낀다. 중국 남방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또는 여러 나라에 유학을 떠난 제자들이 틈틈이 보내오는 편지들을 통해 그 사랑의 감격을 느낄 때도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유학중인 어느 제자가 보내온 편지 한 통....

정진호 교수님께,

 

안녕하세요?

교수님의 학생 M 입니다.

 

지금 저는 코스타 사이트에 방문하여, 교수님이 쓰신 글들을 읽고 있습니다.

읽으면서, 우리들이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런데도 적다고 푸념까지 했던, 우리들이었군요...

그리고 교수님과 사모님, 그리고 다니엘의 고난에 가까운 삶을...

 

어린 다니엘을 배워줄 때, 좀 더 열심히 가르치지 못한 것이 후회 되는군요. 걔가 저보고  "형, 저 힘들어요."라고 했던 말의 뜻도 이제야 많이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그냥 막연하게 이국 땅에서 생활하는 게 힘들겠지 라고 만 생각했었어요...

 

행운스럽게도 몇 년 동안 교수님의 지도학생으로 가르침을 많이 받아왔지만, 교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지금에야 제가 아주 행운스러운 놈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끔씩 내가 만약 교수님과 같은 처지라면, 이렇게 중국까지 올 수 있었겠는가 생각도 해봅니다.

 

아직은 교수님의 제자라고 하기는 참 부끄럽군요.

교수님, 기다려주세요. 꼭요.

교수님이 원하는 제자로 클 때까지요.

언젠가는 교수님이 중국 땅을 밟으신 것처럼, 저도 북한 땅을 밟고 싶습니다.

그분이 이끄심과 함께...

 

한밭, 계룡산 기슭에서, 제자 M 올림.

2002년 겨울 토론토를 방문했다가, 1888년 조선 땅을 밟았던 캐나다 선교사 게일의 생가를 찾아간 적이 있다. 어느 목사님께서 나이아가라 폭포 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아침 일찍 찾아오셨다. 폭포를 향해 가던 중 게일 선교사 이야기가 나와 가던 차의 방향을 중도에 북쪽으로 틀었다. 그러나 그날 따라 폭설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차 앞의 시야를 가렸다. 여기 저기 길목에서 경찰들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더 이상 올라가면 위험하다고 가로막았다. 그러나 모처럼 찾아온 나에게 게일의 생가를 꼭 보여주길 원하셨던 그 목사님은 끈질긴 집념으로 가시거리(可視距離)가 전혀 없는 위험한 눈길을 이리저리 헤매며 몇 시간 만에 마침내 그 집을 찾아내었다. 차에서 내려서 약 100m 정도의 길을 걸어가는데, 얼마나 바람이 무섭게 몰아치는지 몸이 번쩍번쩍 들리는 것만 같았고 안경은 곧 성애로 얼어붙었다. 게일의 생가 앞에서 겨우 사진을 몇 장 찍고 황급히 돌아서서 다시 차 안에 앉았다. 차 안은 따뜻하고 조용하여 바깥의 눈보라를 전혀 의식치 못하는 딴 세상 같았다. 묵묵히 기도를 하는데, 눈물이 쏟아졌다. 바로 그 먼 옛날 이 곳에서 어두움에 갇힌 조선 땅을 밟기 위해 소명의 길을 떠났을 스물 다섯의 젊은 청년 게일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들의 헌신과 사랑의 수고를 통해 조선 땅에 빛이 들어오고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힘들고 지칠 때마다 사무실과 집의 벽에 붙여놓고 한번씩 읽어보는 시가 있다.

 

 

<뵈지 않는 조선의 마음>

                                                                언더우드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우리 앞에 가신 믿음의 선진들... 그들이 남긴 사랑의 발걸음들, 그 발자국 위에 우리가 서 있다. 양화진에는 국적을 초월하여 죽기까지 조선 백성을 사랑했던 외국인들의 아름다운 아가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그들의 믿음대로 이루어진 오늘날 한국의 실상을 확인하며, 중국과 북한 땅을 향한 새로운 사랑의 역사를 믿음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부르다가 죽을 그 사랑의 이름은 십자가에 새겨진 아가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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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교회생활

공개하여 마귀를 물리치자

한인 교회에 분열이 잦습니다. 분열로 인한 상처로 교회를 외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 분열의 원인을 사람에게 두고 있습니다. 목회자와 지도자간의 갈등을 원인으로 생각합니다.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는 악한 영의 역사 때문에 교회가 분열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악한 영들에 대함이라고 말했습니다(엡 6:12).

마귀의 주무기는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8:44). 악령은 거짓말을 통하여 교인들의 마음에 목회자에 대한 오해가 생기게 만들고 목회자와 교인들과의 관계에 쐐기를 박습니다.

악한 영이 역사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에 이를 물리치는 방법은 공개하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음성적으로, 속삭임으로, 어두움 가운데에서 불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령의 궤계를 깨기 위하여서는 노출시켜야 합니다. 빛이 비추면 어두움이 사라지듯이 진리와 사실이 밝혀질 때에 거짓말은 힘을 잃습니다.

개인의 삶에서 악령의 역사를 물리치려면 공개해야 합니다. 중독증의 예를 들어도 그렇습니다. 중독증이 깊어지면 악령이 개입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서는 중독의 사실을 노출시켜야 합니다. 남부끄럽다고 감추어서는 안 됩니다. 감추면 감출수록 악령이 점점 더 역사하여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숨기기 말고 공개하여 악령이 역사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앤 후에 주위 분들의 기도와 도움을 청하여야 합니다.

이웃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악령이 거짓말로 인하여 오해가 생겨서 관계가 깨지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피하거나, 뒤에서 불평하지 말고 얼굴을 맞대고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악령이 역사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저는 담임 목사로서 가능하면 투명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회자 코너라는 칼럼을 매주일 주보에 실어서 제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를 성도님들에게 노출시킵니다. 설교 시에도 제 자신의 얘기를 많이 합니다. 교회예산도 누구나 원하면 열람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담임 목사의 목회 방침에 의문이 있을 때에는 직접 물을 수 있는 통로도 열어놓고 있습니다. 공개된 곳에 악령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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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바다를 살리고 계시는 하나님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니며
사슴의 목마름을 알게 된 엔게디 산 뒤로 해가 지자

염해의 하늘과 바다가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립니다.

엔게디의 맑은 물이


죽은 바다를 살리시겠다는

그 언약을 오늘도 붙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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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의 삶 (9)

하나님의 손을 보는 유학의 삶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 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엡 1:17-19)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라는 제목으로 유학생의 삶에 대하여 글을 쓰기 시작한 지도 벌써 일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 시작할 때, 일년을 계획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이제는 마감을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매달 마감일에 쫓겨서 편집부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원고를 보냈는데, 이번 달에는 유난히 늦어졌다. 한국으로 여행을 한 이유도 있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 글을 마지막으로 쓴다는 생각이 정말로 나의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부담으로 작용했던 탓이다. 수도 없이 글을 썼다가 지우곤 하면서 이 글을 적는다. 정말로 나의 마음속에 나의 생각을 사로잡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아내와 함께 이민가방 7개에 짐을 싣고 매릴랜드에 와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것이 1992년 여름,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에, 나와 아내는 학위를 받고, 직장을 구하였고, 두 아들을 낳았고,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얼마 전에 부교수로 승진을 하면서 Chaired Professor의 자리를 받기도 하였다. 유학 와서 온 첫 주, 이곳으로 오기 일주일 전에 이태원 가게에서 산 신발을 신고, 학생 아파트로 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지름길로 가려고 하다가 시궁창에 빠져서 새 신발이 엉망진창이 되었던 기억, 학생 아파트의 열쇠를 받아서 들어간 첫 날, 아내하고 둘이서 집안에 있는 유일한 등이었던 부엌의 등 밑에서 담요 두 장과 수건을 둘둘 말아서 잠을 청하였던 그 장소, 그곳에 도착한 이틀 째에 만난 지도교수가 만나자 마자 엄청난 양의 일을 넘겨줄 때 가졌던 황당한 부담감, 그렇게 열심히 도왔던 지도교수가 박사과정 일년차가 지날 무렵에 나를 쫓아내려고 한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던 때, 일주일에 50불을 가지고 생활을 하기 위해서 먹어본 과일은 세일을 하는 사과와 바나나 외에는 없었던 박사과정 시절, 첫 째를 가진 아내가 좋아하는 사과를 잔뜩 담았다가, 가지고 갔던 돈이 모자라서 몽땅 그곳에 놓고 떠나야 했던 때의 아픔--그 아픔을 차마 나에게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공부를 모두 마치고 직장을 구한 다음에야 말을 해야 했던 아내의 고생, 난 지 이제 한 달이 된 아이를 한 손에 안고, 다른 한 손에 첼로를 들고 다니면서 공부를 해야 했던 아내의 모습 등등…

이런 삶의 과정 속에서 나의 마음을 지켜준 한 성경구절이 있다면, 바로 에베소서 1장 17-19절 말씀에 있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관한 말씀이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 나를 유학생으로 이곳에 부르셨다. 그리고 그분은 나에 대하여 소망을 품고 계시다. 그 소망 속에는 내가 상상할 수도 없는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있다. 그리고, 그분은 그 모든 일에 엄청난 능력으로 나를 공급하신다는 바로 그 말씀이었다.

나의 고통에 의미가 있고 나의 연단에 소망이 있다는 그 약속이 나에게 힘이 되었다. 지금도 힘이 된다. 나를 내 보내려고 생각하는 지도교수에게 최선을 다해서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것은 지도교수를 넘어서 그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박사과정 2년차는 정말로 힘들었다. 지도교수가 나를 내 보냈기 때문에 학과에서는 나를 4명의 교수들에게 나누어서 시간을 배정했다. 모든 교수는 나를 full-time으로 이용하기를 원했다. 결국, 나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4배의 시간을 들여서 조교의 일을 해야 했었다. 그 중의 한 중국교수는 매주 수업시간에 강의를 하려고 학교에 올 때면, 나에게 학장실에 가서 임시 주차 증을 받아서 자기를 주차장에서 기다리도록 하였다. 날이 좋을 적은 상관이 없지만,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서서 그 교수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나의 모습이 한없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 때도 나의 연단에 소망이 있다는 사실로 인해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었다.

2년차 말에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나는 5년 동안 보장 되어있는 줄로 알았던 장학금이 2년 말로 없어지고, 그 이후는 지도교수가 알아서 해결해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눈앞이 막막했다. 나를 돌봐줘야 하는 지도교수는 나를 쫓아내었던 바로 그 사람인데, 나에게는 어떤 소망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나에게 힘을 준 말씀이 바로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라는 말씀이다. 그 힘은 바로 죽은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신 그 힘이라고 사도바울은 설명하고 있다. 그 힘은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보다 뛰어나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었다. 그 힘이 내 속에 있는 힘이라는 것을 기도할 때 깨닫게 되었다. 내 속에서 역사하는 힘이 나의 지도교수보다 더 뛰어나다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 믿음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하나님은 그 믿음에 한번도 실망을 시키신 적이 없었다. 나를 내 보려던 지도교수는 그 와중에서도 자신의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하는 나의 모습을 보고 나를 다시 받아들였고, 그 프로젝트로 인해서 그야말로 스타교수가 되었다. 곧 그는 학과 장이 되었고, 그는 나의 배후에서 나를 돕는 최고의 동역자가 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다. 하나 하나 세심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유학생활 내내 나의 삶을 주장해 온 한 생각이 있다면, 바로 나를 부르신 그 하나님의 소망을 깨닫는 것이었다. 그 부르심의 소망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나의 소망이었다. 그것이 나의 직장을 구하는 일에, 그 이후의 삶에, 그리고 각종 사역에 참여하는 데에 가장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1995년 가을 나는 박사과정 4년차였다. 논문은 거의 마감이 되었고, 아내는 둘째를 임신한 상태였다. 지도교수는 나에게 학교에 일년 더 있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다. 일년동안 프로젝트를 더해서 논문을 몇 개 더 실으면 외국인으로서 미국대학에서 직장을 구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좋은 생각이기는 하지만 둘째를 곧 낳게 되는 데, 그러면 도저히 박사과정 월급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지도교수는 자신이 어떻게 해보겠다고 하면서 학장과 약속을 내 앞에서 하였다. 나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잘 안되면, 4년차 말에 job market으로 나가서 아무 학교나 직장을 잡겠다고 말하였다. 10월 31일이 그 날이었다. 내 생일이었기에 아직도 기억이 난다. 오후 3시에 학장실로 내려간 지도교수가 오후 5시 30분이 되어야 나타났다. 얼굴에 웃음을 가득 띄고는 "일년동안 Visiting Professor로 너를 쓰기로 했다. 월급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는 두 배 이상 되겠지" 하면서 "Happy birthday to you!"라고 했다.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했다. 이미 학교의 예산이 다 정해진 상태에서 학장이 자신의 비상예산에서 나를 고용했다고 했다. 솔직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visiting faculty가 필요한 상태도 아니었고, 설상 필요했다고 해도 나를 그 자리에서 쓸 이유가 아무리 생각해도 없었다.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는 듯했다. 일년동안 내가 그곳에 더 머무르면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6년은 40일 연속 새벽기도와 아침 금식으로 시작하였다.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기드온의 이야기가 강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기드온 당시의 추수할 곡식이 바로 미국의 이민 사회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한국 교회와 우리들의 1.5세 2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을 하나님이 쓰실 만 하니까, 사단이 그들을 빼앗아 간다는 말씀으로 기드온 시대의 이야기가 나에게 도전으로 다가왔다. 그 해 여름 JAMA에 참석을 하게 되었다. 셋째 날인가, Sammy Tippit이 인도하는 저녁 기도회였다. 미국의 지도를 보여주면서 미국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이었다. 그때 나의 입 속에서 나도 모르게 "주님, 저 지도 속에 있는 캠퍼스로 나를 보내소서. 저곳에 있는 한국계 학생들에게 나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라는 기도가 나왔다. 그 날 이후, 그 기도가 나의 삶의 방향을 정하는 기준이 되었다.

1997년 이곳 클리브랜드에 오자마자, 한국에서 모교를 비롯해서 많은 학교에서 귀국하라는 초청이 있었다. 어떤 때에는 정말로 한국에 귀국하고 싶었다. 기회도 무척 좋았고, 그때가 마지막 기회처럼 보이던 적도 있었다. 내가 지원하기만을 기다리는 그런 경우도 있었다. 나이가 드신 부모님들에게 귀국해서 하나뿐인 아들로 떳떳하게 아들노릇을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모교의 강단에 서서 후배들에게 강의를 하는 그런 꿈을 쉽게 버릴 수 도 없었다. 하나님께 사정도 해봤다. 그리고, 내가 귀국을 하면, 그 캠퍼스를 위해서 복음을 전하는 교수가 되겠다고 기도도 해봤다. 그때 마다 하나님은 1996년 JAMA에서 기도하는 나의 모습을 다시 보여주시곤 했다. 아무 말씀 없이, 그 모습이 비디오처럼 나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이제까지 한번도 한국에서의 초청에 응답할 수가 없었다.

이제는 아무런 미련 없이 모교의 자리에 지원하는 친구를 위해서 정말로 축복하면서 추천서를 써 줄 수가 있다. 그리고 그 친구가 그 자리에 정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다. 아마도 앞으로 또 좋은 기회가 한국에서 생기면 마음이 싱숭생숭해 질 듯하다. 이번에도 한국에 짧게 방문하면서, 내가 한국에 가면 참 할 수 있는 일이 많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내가 그 일로 다시 기도한다면, 하나님은 아마도 또 똑같은 비디오를 내 마음속에 틀어보이실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 무슨 소망을 가지고 오늘을 살고 있는지 묻고 싶다. 무엇이 당신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대답하여 보라. 유학생활을 향한 당신의 비전은 무엇인가? 아니, 당신을 유학생의 자리 (아니면 유학생 배우자의 자리)로 부른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에 대해서 당신은 궁금해 본 적이 있는가? 그 부르심 의 소망을 붙잡고 고민해 봤는가? 그 부르심의 소망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묵상해 보았는가? 그 능력의 지극히 크심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는가?

그 소망에 붙잡히라. 그 소망이 당신의 삶을 주관케 하라. 하나님의 생각이 당신의 생각을 주장하게 하라. 유학생의 자리가 바로 당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깨닫는 그 자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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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 리포트

가족 요법 (Family Therapy-2):

Psycho-Educational Family Therapy

지난 달에 이어 이번 달 이코스타에서는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을 위해서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사용하는 치료 방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장애 학생들의 부모님들과 아이의 교육 문제에 대해서 상담을 하다 보면 한결 같은 말씀들을 하십니다. "도대체 우리 아이에게 왜 이런 장애가 생겼는지 알 수가 없어요. 제대로 가르치려고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책도 많이 읽어 주고 아이와 대화도 많이 했는데, 왜 우리 아이에게 장애가 생겼는지… 내가 아무래도 전생에 죄가 많아서 그런가 봐요. 우리 가족들이 무언가 죄를 짓고 있기 때문에 우리 아이가 대신 죄 값을 치루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아이가 갖고 있는 장애는 가족들의 잘못으로 인해서 생긴 것이고 아이는 그 죄 값을 치루는 희생양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가족 중에 있을 때 가족들은 그 질병의 원인은 하나님으로 받은 죄의 삯, 혹은 흔히 가족들의 잘못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이런 그릇된 고정 관념을 조금이나마 바꾸고자 생긴 가족 치료 요법의 하나가 Psycho-educational Family Therapy입니다. 현대적 가족 요법 (Post Modern Family Therapy)에 속하는 Psycho-educational Family Therapy는 단어 그대로 'psycho+Educational' 즉,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교육이라는 뜻으로 일반인들에게 그들이 갖고 있는 질병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병으로 인한 현재의 상태를 이해하며 앞으로의 해결책에 대한 지식을 배우게 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가족들은 대부분 의사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환자의 정서적인 면에 무관심 하기 쉬우나 이 치료 요법은 가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환자의 치유에 함께 관심을 가지기 때문에 일반적인 정신과 치료의 부족함을 메울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가족요법을 통해서 그 질병이 생긴 원인이 그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님을 스스로 깨닫기도 하고, 병을 앓고 있는 환자를 돕는 일을 통해서 섬김의 자세를 배우게 되기도 합니다. 한편, 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 자신의 병을 이해하는 가족들 덕분에 따뜻한 가족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정서적으로 안정될 수가 있습니다. 결국, 질병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으며 가족들의 역할이 의사의 역할 만큼 중요하고 가족들은 긍정적인 시각에서 이를 받아들여 해결책을 찾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Psycho-educational Family Therapy는 강조합니다.

가족 요법은 우리 기독교 세계관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유사한 점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삶 속에서의 고통(질병, 장애, 고난)의 문제는 누구의 잘못으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삶을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 9장에 보면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치시는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당시 사람들은 그가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잘못인 지를 따지자,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나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 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장애(질병)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루시고자 하는 계획이 있고 그 계획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십니다.

둘째, 어떤 장애(질병)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니 Psycho-educational Family Therapy의 또 다른 특징 중에 하나가 서로를 위한 섬김의 자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룻 (Ruth)과 나오미의 예화를 보면 흉년이 들어 여러 가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살아가는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언제나 그녀와 함께 하려는 며느리 룻을 통해서 어려움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을 엿 볼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이 가족 치료 요법을 장애인 가족들에게 한 번 적용해 봅시다. 장애아이를 둔 가족들은 그 아이의 장애가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죄책감 때문에 늘 고민과 근심 속에서 그늘진 얼굴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psycho-educational Family therapy를 적용했을 때 상황은 매우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다운 증후군 (Down Syndrome)을 가진 장애 아이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아이의 가족들은 왜 우리 아이가 다운 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가졌는지에 대해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 보다는 다운 증후군의 정의와 특징, 그리고 다운 증후군 성장 발달 과정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먼저 필요 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다운 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갖고도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서 잘 적응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지, 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 사회에서 다운 증후군 아이를 둔 부모님과 그의 형제 자매들의 역할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다운 증후군 장애를 가진 가족들을 위한 모임 같은 곳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좀 더 유익한 정보들을 교환하며 사회적인 네트워크도 형성해야 합니다. 이는 다운 증후군이라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위해서 만이 아니라 그 가족 전체를 위한 사랑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다운 증후군이라는 장애 아이는 가족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사랑을 먹고 자라게 되고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아이보다 정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가 있겠지요.

서로의 문제점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하기 보다는 그 문제점을 이해하고 배우려는 자세에서 시작되는 이 가족 치료 방법을 통해서 장애나 오랜 질병을 앓고 있는 가족들에게 오히려 그 문제점들은 사랑의 열매를 맺는 씨앗이라고 볼 수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로마서 8장 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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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6/01 23:46 책이야기/eKOSTA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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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선아 사랑해

여기 한 자매가 있다. 3년전 만 하더라도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끔찍한 교통사고를 겪고 난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었다. 이 자매의 이름은 이지선. 이번달의 책 "지선아 사랑해"의 주인공이다.

이지선 자매는 교통사고시 흘러나온 휘발류로 인한 화재로 전신의 55%를 화상입었다. 7개월간 온몸을 칭칭 감고 지옥과 같은 회복의 시간을 견디었다. 사고 전의 예쁜 모습은 사고 이후에는 찾아볼수 없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단다. 왼쪽 손가락이 오른쪽보다 덜 절단된것이 감사하단다. 변형된 얼굴로 실망하기 보다 이제는 아프지 않다는 것이 고맙단다. 그 고통이 소망이 됨을 이해할수 있다고 말한다. 이제는 자기와 같은 사람을 돕는 공부를 하러 미국유학을 계획하고 있다.

이책은 병상일기와 가족들의 편지, 그리고 본인의 생각들을 모은 글모음이다. 이 책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첫번째로 드는 생각은 "와, 대단하다.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가질수 있구나"였다. 두번째로는 "내가 당하는 어려움은 아무것 도 아니구나"이다. 세번째로는 감사다. "건강하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세가지 보다 우리가 이지선자매로 부터 도전받는 메세지가 있다면 그것은 자매의 탁월한 사건 해석능력이다. 우리 앞에는 날마다 크고 작은 사건이 닥친다. 사실 이 사건들 자체 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을 어떻게 해석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는 자신의 아픔을 주님앞에서 재해석 했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며 자신을 연예인으로.
아픔을 축복으로.
장애인이 된것을 그들 돕기위한 사명으로.
화상 입음을 하나님의 "기름부으심"으로.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전진 할 수 있는 힘은 믿음에서 나온다. 그 믿음은 내가 선 자리에서 확증되고 증명된다. 황무지를 장미꽃 밭으로 바꿀수 있는 능력, 믿는 우리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고난은 축복입니다. 힘겹고 괴로운 시간을 보내고, 이기고 나면 주어지는 보물이 있습니다. 고난을 통하지 않고서는 배울 수 없는, 가질 수 없는 열매들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 저는 이제 알 수 있습니다." P263

그의 말이 야고보서의 한 말씀을 떠올리게 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약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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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탄의 소리

로마를 꿈꾸는 나라에서 (2)

- 애국심 (On Patriotism)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All a man's ways seem right to him, But the Lord weighs the heart." (잠언 21:2)

들어가며

두 가지 장면들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몇 해전에 뉴욕에 있는 어떤 한인교회를 방문했을 때, 광복절을 기념해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앞세운 목사님의 입장으로 예배가 시작된 것이 첫 번째로 떠오르는 장면입니다. 두 번째는 담당부장으로 지난 1년간 섬겼던 대학부에서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1.5세 또는 유학 온 학생들이 한국의 전쟁반대 분위기와 이라크 전쟁 이후 고양된 미국적 애국심 사이에서 갈등 하는 장면입니다. 첫 번째 장면이 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는 낯설지않은 '한국적 민족주의' 또는 '애국심'의 단면이라면, 두 번째 장면은 이민 1세 부모를 가진 친구들과 부모의 학업이나 회사 일로 영주권을 취득한 학생들이 가지는 자기정체성(identity)의 문제가 노출된 것입니다.

이 장면들과 함께 이런 질문들이 뇌리를 스칩니다. 기독교인은 결코 어떤 정치적 소속감도 가져서는 안 되는가. 기독교인들 사이에 전쟁이나 민족적 갈등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가. 과연 1.5세 이민자와 한국국적을 포기한 친구들에게 한미 간 정치적 갈등이 일어날 때 미국시민으로서가 아니라 한국인으로서 판단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좋은가. 북한을 폭격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말하는 한인 1.5세나 2세들을 미국인을 대하듯 쳐다보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무조건 전쟁은 안 된다는 논리로 문제들을 지나치는 것이 좋은가. 복음은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좋은 것이나, 정치는 현실이라는 이분된 초점 없고 무원칙적인 이야기만 할 것인가. 모두 답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의 믿음과 대립될 수 있는 선택들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와 애국심

학문적 토론을 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 민족주의를 대중동원수단이나 사회 병리적 집단행동을 가져오는 원인의 하나로 취급하는 반면, 애국심은 가족에 대해서 가지는 연대 감 만큼이나 자연 발생적인 감정으로 간주하는 이유를 간단하게 살펴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식민지배, 오랫동안 단일민족공동체를 유지해왔다는 자부심, 이러한 자부심이 해방과 전쟁, 그리고 개발독재의 동원과 민주화의 과정 속에 너무나도 큰 역할을 해 온 우리에게는 민족주의를 한갖 이데올로기로 이해하는 것이 의아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아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일본이 서양지식을 받아들이면서 만든 '民族'이라는 단어가 전달하는 정체성이 언제부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분노와 수치, 기쁨과 우월감을 동시에 가질 수 있도록 만든 원인이 되었는지 누구도 고민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또 기독교인들이 '민족'이 '하나님의 나라'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고민하기를 오히려 주저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의아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민족이 민족주의운동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민족주의운동이 민족을 형성시켰다는 소위 '상상의 정치적 공동체' (imagined political community)로 민족을 정의하는 구성주의 시각에서 민족주의 확산과 관련된 인식론적 변화라고 주장하는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내용들은 (1) 왕과 교회를 중심으로 했던 유럽의 정치질서가 붕괴되는 가운데 성경에서 등장하는 천년왕국의 정치적 응용이 있었고, (2)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그리고 이후에 전개된 사도들의 목숨을 건 포교활동을 대중동원과 설득으로 이해한 지식인의 계몽운동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대를 초월하는 정치적 충성, 수 천년 전에 이 땅을 밟았던 사람들 조차 우리의 아버지요 어머니라고 믿게 만드는 시공을 초월한 일체감, 이런 충성을 번영(prosperity)과 영속(eternity)의 확신으로 변화시키는 매개체로 '민족'이 창출되고 또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재생산되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수 천년 전에 일어난 십자가의 사건이 동시적으로 느껴지고 경험되도록 만든 바울사도의 활동이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한 사건에 대해 유사한 생각을 공유하게 만든 신문의 등장과 맞물려 계몽주의 운동의 초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참고, 갈 2:20). 만약 민족주의의 확산과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민족'으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한 영웅의 죽음'으로 뒤바뀌는 과정이 서양에서 벌어졌다면,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동양이 무의식적으로 답습하고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민족' 또는 '민족주의운동'을 바라보아야 할까요.

둘째,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이후에 '민족주의'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애국심(patriotism)도 다시 살펴봐야 할 시점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로마공화국, 그리고 이탈리아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도덕적 품위를 제공했던 '조국에 대한 사랑 (amore della patria)'이라는 화두에서부터 미국인들을 일시에 숙연하게 만드는 'Die for Country'라는 구호에 이르기까지 애국심은 자기가 살고있는 터전과 함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자연적인 감정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애국심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사회적 덕목입니다. 임금이 나라였던 시대에 君師父一體를 도덕적 근거로 여겼고, 잃어버린 자유와 주권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던졌던 독립 운동가들이 愛國愛族의 정신으로 자신들을 무장했었고, 신세대에게도 '대한민국'을 힘껏 외치며 기뻐할 수 있는 용기가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도록 만드는 이유가 됩니다. 아버지의 나라를 지키고, 어머니의 언어와 자기의 생활터전을 아끼는 애국심은 개인주의로 얼룩진 현대사회에서 개개인을 묶을 수 있는 시민적 덕성으로 강조됩니다. 그러나,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아버지의 나라를 지킨다는 애국심도 자기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너무나도 공격적일 수 있다는 사실때문에 새로운 평가를 받아야 할 시점입니다. 아버지의 나라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위대한 제국의 건설이라는 소명과 이기적인 욕망의 확대된 집단심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알게 된 우리에게 애국심도 더 이상 아름다운 감정일 수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애국심이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경향으로 전환되었을 때 침묵하는 것이 더 이상 용납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 속 '민족' (Nation)

민족주의와 애국심 모두가 공격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성경을 묵상해 보면서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고정관념이 성경이 전하는 '민족'과 관련된 내용들을 무의식적으로 과장하거나 왜곡할 수 있다는 염려가 생긴 것입니다.

신학적 지식이 일천하지만 나름대로 정리하자면 구약에서 민족(nation)으로 번역되는 단어 고이(gowy)는 족속과 '하나님의 약속'이 합해진 의미를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민족이 가지는 국민주권과 정치적 통일체와 같은 의미들은 여기서는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혈족이 가지는 역사적 혈연적 동질성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아브라함의 핏줄이 기준이라면 이스마엘의 자손들도 이스라엘과 같은 민족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이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그리고 이들의 후손들로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다른 사람들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믿음에 상응하는 축복을 기준으로 이방인(the Other)과 우리(We)를 구별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민족'이 이스라엘을 지칭할 때보다 이방인(the Other)을 지칭할 때 더 많이 사용되는 사실도 구별의 기준이 인간적인 잣대가 아니라 하나님의 눈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참고:시편22:27). 이런 이유에서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은 하나님의 기준을 핏줄로, 약속을 선택으로 이해해서 만들어낸 차별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통일 유다의 왕 다윗에게도 따져보면 이방인의 피가 섞여 있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신약에서도 민족은 '족속'의 의미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을 구별할 때 사용된 단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약성경에서 민족으로 번역되는 단어는 ethnos입니다. 출생을 의미하는 라틴어 natio와 유사하게 삶을 공유하는 집단 또는 족속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헬라 어입니다. 민족의 고대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근대 민족국가 이전에 형성된 정치적 문화적 공동체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ethnicity라는 단어가 여기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방인 기독교인(Gentile Christian)을 지칭할 때 ethnos를 사용했고, 개역성경에서 번역자들은 '족속'이나 '민족'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예, 마태 22:19). 여러 가지 맥락에서 '민족'은 자기 스스로를 지칭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었고, 이 기준에는 혈연적 언어적 동질성의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지'의 여부가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약의 민족 관은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통해 고난과 위로를 받으면 모두가 같은 민족이 되는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중동의 끝없는 민족분쟁과 공격적인 미국의 애국심이 기초할 수 있는 성경적 근거는 없다고 말하는 것이 지나친 해석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1)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출 22:21, 23:9, 예레미야 7:6), (2) 약한 자를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잠 22:22), (3) 고아와 과부를 두둔해 주라는 (이사야 1:17) 말씀을 받습니다. 만약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러주고 멍에를 풀어주고, 압제 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버리기 위해서" 일으켰다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통해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이사야 58:6). 그러나, 미국이 이기와 욕망에 이끌려 전쟁을 했다면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는" 하나님께서 허무한 결과로 우리 모두를 가르치실 것입니다 (로마서 3:29). 로마를 꿈꾸는 미국이 '힘'의 면류관(stephanos)만을 받아쓰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는 흰 말을 탄 자같이 행동한다면 무엇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요한계시록 6:2). 때늦은 감은 없지않지만 미국에서 기독교인들이 무분별하고 공격적인 애국심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와 애국심이 남다르게 강한 우리나라도 민족주의와 애국심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입장이 진지하게 토론되고 정리되어야 할 시점이 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민족주의나 애국심에 호소하기 전에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정당한지 하나님께 먼저 물어보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대신해서: Christ Inside & Love Outside

민족주의와 애국심에 호소하는 국민교육을 세계인류의 보편적 도덕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정치 철학자들의 주장이 서구중심의 '보편'으로 차별만 가져온다고 반대하는 학자들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 있습니다. 이들의 논쟁을 지켜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랑 (Love)이 차이를 극복하고 편견을 보편으로 바꿀 유일한 매개체가 될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국가간 민족간 갈등 이전에 예수님의 마음을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면 설사 총부리를 맞들고 있다 하더라도 순화시키고 또 선한 일로 이끌 그 무엇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유는 사랑은 주는 사람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기쁨이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수록 서로의 거리가 좁혀지기 때문입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도, 처 처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도 예수님을 마음 속 깊이 묵상하는 사람들에게는 사랑이 넘쳐 날 것이며 이 사랑은 곧 모두가 싫어하지 않는 보편의 근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코스탄의 소리를 써오면서 저 같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또 말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키아벨리로 박사논문을 쓰면서 인간의 욕망과 믿음의 언어들이 구별되어 사용되지않는 것을 보면서 가지게 된 책임의식이 저를 지탱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지금까지 실패와 좌절, 기쁨과 환희를 가져 다 준 시간들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너무나도 부족한 저에게 격려를 아끼지않으셨던 동역들과 이코스타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주님 주신 사랑으로 하나님의 소망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하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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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을 이야기 하자

소담한 찬양이 울려 퍼질 2003년 코스타를 꿈꾼다

2003년 코스타가 어느덧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2002년 7월, 위튼 칼리지 에드만 채플에서 울려 퍼지던 찬양의 벅찬 함성 소리와 도전적인 메시지들의 파릇파릇함, 채플을 가득 채우며 수많은 이들에게 찾아가 만지시던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감동이 나의 영혼 깊숙이 또 다시 이번 코스타를 기다려지게 한다.

모두에게 마찬가지이겠지만, 바쁜 매일 매일의 수많은 사역들을 감당하면서 보내는 나로서는 코스타와 같은 집회는 지친 나의 영혼을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으로 재 충전시키시며 억수로 쏟아 붓는 폭포수와도 같은 시간들이다. 찬양 사역을 맡게 된 지난 3년 동안은 아무래도 받을 은혜보다는 해야 할 일과 사역에 집중하다 보니 그럴 기회를 많이 놓치긴 했지만, 어쨌든 코스타를 통해서 내 영혼에 채워진 감동과 결심들은 오랜 시간동안 나를 붙들어 놓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이제는 미국 코스타에 참석하는 것도 햇수로 7년째가 되어가면서 집회에 참석하는 나의 마음 자세도 많이 타성에 젖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늘 다시 기억하고 다짐하는 것은 코스타를 처음 경험하면서 내 영혼에 채워졌던 숨 막힐 듯한 그 감동의 시간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또 수많은 새내기 코스탄들에게 새겨지기를 기대하는 마음, 그것뿐이다.

바쁜 일상생활에 묻혀 살던 얼마 전 나는 무작정 웹 서핑을 하던 중에 어느 한국에 있는 교회의 웹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중보기도 게시판에서 '우리 딸이 이번 여름에 시카고 코스타에 참석하는데 거기에서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라는 간절한 어머니의 기도제목을 보게 된 일이 있었다. 그 때 내 등뒤에 흐르던 소름 끼치는 듯한 감동과 한줄기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곳곳에 숨어 있을 기도의 제목들은 '그냥 어쩌다 보니 말씀이 좋은 사역자들과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찬양 팀을 구성해서 집회를 진행하기 때문에 집회에 감동이 있는 것이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들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그 어머니와 같은 이들의 땀과 눈물의 범벅으로 드려진 기도들이 하늘의 보좌를 열며 집회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 가는 원천적인 근원이 된다는 사실을 단순히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과 삶으로 인정하고 낮아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나는 그만 그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말하면 참 부끄럽고 쑥스럽지만, 코스타의 찬양 팀을 기획하고 팀을 구성하는 것도 어찌 보면 권력이요 특권이다. 코스타라는 집회의 성격이 전국에서 모이는 각 지역교회에 속한 학생들의 수련회이기 때문에, 그 집회의 찬양팀을 맡게 된다는 사실은 일종의 '국가대표 선수단'이라는 헛된 환상을 심어 줄 사탄의 공격이 늘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집회 시간 중에서 자주 눈에 띄고 조명을 많이 받기 때문에 시선이 집중되는 그런 사역이다. 자연히 우리의 영원한 '자칼 형사'인 사탄은 늘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유혹과 달콤한 무기를 가지고 찬양 사역자들의 영혼을 삼켜버릴 심정으로 덤벼들고 있는 것 역시 받아들여야 할 사실이다. 찬양 사역 팀에서 3년째 이름을 드러내고 사역하다 보니 어느덧 나도 모르게 나의 이름 석자가 알려지게 되고, 또 그렇게 알려지는 것을 즐기게 되고, 나에게 찾아오는 유혹들과 도전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생각하기에는 이제는 코스타의 '꽃봉오리'와도 같은 이 사역에서 물러나서 어디론 가 옮겨야 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올해 역시 '이번 코스타에서 찬양 팀으로 같이 섬기고 싶다'는 적잖은 형제/자매들의 연락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순수한 이들의 마음 마저도 괜스레 오해하고 있는 것 같고 있는 내가 싫어진다. 생각해 보면, 그냥 낫 놓고 '아 그게 기역자구나'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첫해 2001년 찬양 팀의 기억들과 '낮아지신 예수, 섬기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멋진 주제와 어우러졌던 그 모든 감동의 순간 속에 경험했던 섬김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다시금 첫 마음으로, 새해 첫날 찬물로 세수하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음악성과 인기와 그 모든 아지랑이 같은 것들에서 벗어나서 오로지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하기로 작정했던 내 삶의 그 모든 첫 마음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 소담한 마음으로 다시금 찬양을 준비하며 그 분께 올려 드릴 때 흥건히 받아주실 아버지의 품을 다시금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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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젊은 기독인의 초상

진로 선택 이야기 하나 : 이 길이냐 저 길이냐

지난달에는 한동대 정시 면접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대학'으로 널리 알려진 우리 학교에서는 면접하러 온 지원자들로부터 "하나님의 대학",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영광" 등 일반인에게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는 용어들을 듣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학대학이 아닌 일반 종합대학으로서는 매우 특이한 분위기라 할 수 있지요.

그 날 우리 팀에는 생명윤리에 관심이 많은 교수님 한 분, 연극연출과 번역으로 유명한 교수님 한 분, 그리고 제가 면접위원을 맡았습니다. 면접위원 세 명이 오전과 오후에 각각 20여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판에 박힌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다 보면, 오후에는 '모든 것이 귀찮다' 싶을 정도로 심한 피로가 몰려듭니다. 그런 피로감 속에 면접이 거의 끝나갈 즈음, 한 학생이 면접실로 들어왔습니다. 약간의 두려움이 감춰진 생기 있는 얼굴은 여느 학생들과 다름이 없었지만, 이 친구는 유난히 더 떨고 있었고, "한동대에 왜 지원하게 되었습니까?"라는 첫 질문에 대한 답부터 상당히 특이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보통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님의 대학이라서" 아니면 "무전공 입학제도가 좋아서" 둘 중 하나입니다. 거의 예외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은 "저는 사실 한동대에 들어오려고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습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학생은 이미 다른 대학에 합격한 상태였고, 언젠가 선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능시험이 끝난 후 어머니로부터 "하나님의 대학 한동에 가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권유를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본인은 한동대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마음에 드는 대학에 이미 합격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머니의 말씀을 그냥 흘려들었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자꾸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1) 한동대에 원서를 넣지 않으려고 시간을 끌다가 마감일 12시를 넘어 그냥 한 번 한동대에 접속해 보았더니, 아직도 인터넷 접수를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게 하나님의 뜻인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마음이 들어 할 수 없이 원서를 넣게 되었습니다. (2) 그 이후에도 한동대를 잊어버리려고 노력했고, 면접하러 올 교통편도 마땅치 않아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면접 전 날 저녁, 아는 분이 갑자기 전화를 걸어 한동대로 자동차를 태워주겠다고 했습니다. (3) 이 두 가지 일을 겪고 나니 한동대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데 내가 거역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한동대로 면접을 보러 왔습니다."

거의 울기 직전인 학생의 모습을 보면서 위기를 느낀 것은 저 뿐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세 명의 교수들은 그 때부터 면접을 뒤로 미룬 채, "하나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학교를 선택하도록 하지 않으신다. 학생이 가고 싶어하는 다른 대학도 한동대 못지 않게 좋은 대학이며, 그곳에 가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다"는 설득을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학생은 눈물을 흘렸고, 들어올 때에 비해 훨씬 안정된 모습으로 면접장을 떠났습니다. 그 학생이 최종적으로 한동대를 선택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위의 (1)(2)(3)번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않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물론 (1)(2)(3)번과 같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진로를 열어주시는 경우도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움을 통해 우리의 길을 인도하지 않으십니다.

따지고 보면 젊은이들의 인생에 진로선택 이상의 큰 고민도 없습니다. 어느 길로 가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지, 어느 길이 욕심의 노예가 되는 것인지... 고민은 끝이 없습니다. 열심히 기도해 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보지만, 의외로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실 때가 많으십니다. 명확하게 "너는 ○○(교사, 목사, 변호사, 의사, 목수, 사업가, 회사원....)이 되라"고 말씀해 주시면 좋으련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침묵과 그 뜻의 불명확성 속에서 고민하다 보면, 위의 학생처럼 이상한 느낌 또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저 역시 이런 불명확성 속에서 지금까지 많은 진로선택을 해 왔습니다. 그 중에는 하나님의 뜻에 합한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는 이번 호와 다음 호에서 제가 지금까지 해온 여러 진로선택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것들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진로선택'하면 제일 먼저 사법시험에 실패했던 대학 4학년 때가 생각납니다. 그 때 부딪혔던 고민은 간단했습니다. '목회자가 될 것이냐, 법률가가 될 것이냐.' 저는 오랜 세월 교회를 다니면서도 다행히(?) 한 번도 '서원'이란 것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법시험에 낙방하고 나니 제일 먼저 '목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고등학교시절 수업시간에 어느 선생님과 오간 대화 한 토막도 떠올랐습니다. 그 때 저를 무척 아껴주셨던 선생님께서는 지나는 말로 "김두식, 너도 서울 법대 갈 거냐?"고 물어보셨습니다.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은 하나같이 서울 법대로 목표를 정했던 시절이었으니 선생님께서 '너도 뻔하지?'라고 시큰둥하게 물어보신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아니요. 저는 목사가 될 겁니다!"라는 엉뚱한 대답을 던져 선생님의 허를 찔렀습니다. 그냥 "예"라고는 말하기 싫어 무조건 삐딱하게 답변했던 것이지요. 그 대답이 신기하게 생각되셨던지, 그 때부터 선생님은 저를 "김 목사"로 부르셨습니다. 인권 변호사가 뭔지도 모르면서 인권 변호사가 되겠다고 법대에 진학한 이후 한동안 잊고 지냈던 이 대화가 하필 고시 떨어지고 나서 다시 생각난 것도 묘한 일이었습니다.

동시에 '원래 목사가 되어야 할 사람이 자기 욕심 때문에 고시 공부를 시작한 것 아닌가?'하는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습니다. 고민 끝에 찾은 곳이 강원도 태백의 예수원이었지요. 예수원에 2박 3일을 머무는 동안 당시 부원장이었던 주 예레미아 신부님과 함께 기도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고, 신부님은 저에게 "준비하던 공부를 계속하라"는 대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거기에 힘을 얻어 산에서 내려온 뒤의 이야기는 이미 지난달에 적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주 신부님께서 저에게 무척 지혜로운 조언을 주셨던 것 같습니다. '목사'라는 새로운 길은 현재의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선택의 범위 안에 들어온 도피성 상상에 불과했습니다. 마음의 90퍼센트 정도는 한 번 더 시험에 도전해 보는 쪽으로 방향 잡혀 있었습니다. 결국 제게 필요했던 것은 진로에 관한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였던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저의 이런 마음을 읽으신 신부님께서,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저에게 대언의 형식을 띤 위로의 말씀을 던지셨던 게 분명합니다. 저는 그 때 제가 목사의 길을 선택하지 않도록 선하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목사가 되었다면, 한국 교계나 저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안 되었을 것이 분명한 까닭입니다.

시험이나 사업에 실패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저와 같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단순히 공부량이 부족해서 시험에 떨어져도, 예수 잘 믿는 형제자매들은 거의 예외 없이 '하나님께서 내게 목사나 선교사가 되라고 길을 막으시는 것 아닌가'라는 고민에 빠집니다. 이런 고민이 심해지다 보면, 평소에 안 들리던 하나님의 음성도 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은 대개 "주의 종이 되라"는 것입니다. 저도 그 비슷한 하나님의 음성을 몇 번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저는 그 때 이미 "주의 종이 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결코 "목사가 되어라"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닫고 있었습니다. 목사도, 변호사도, 교사도, 회사원도, 다른 어떤 직업도,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주의 종의 길'임을 알고 있었기에, 덮어놓고 신학교로 가는 오류를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원론적 세계관은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 불필요한 목사님들을 양산해 낼 수 있는 취약한 논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목회자가 된 '주의 종들'은 자칫하면 하나님을 '일할 사람을 억지로 구하고자 그 사람을 실패에 빠뜨리는 사악한 신'으로 만들어 버리기 쉽습니다.

이야기가 좀 옆으로 샙니다만, 성도들 중에는 의외로 '인간만도 훨씬 못한 괴팍하고 무서운 하나님'을 믿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하나님은 성도가 주일 성수를 제대로 안 하면 교통사고를 당하게 하고, 십일조를 제대로 안 내면 사업이 쫄딱 망하게 하며, 이른바 '주의 종'인 목사님을 비방하기라도 하면 불치병에 걸리게도 하는 이상한 분입니다. 저는 그런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도 자녀가 비뚤어진 길로 갈 때, 눈물과 사랑으로 기도하며 자녀가 돌아오기를 인내로 기다립니다. 결코 교통사고, 부도, 불치병 등을 겪도록 함으로써 자녀가 돌아오도록 만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최소한 내 육신의 아버지가 베푼 사랑보다 더 높고 크다'는 확신이 제 신앙의 뿌리가 되었음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이상한 하나님의 이미지를 전파하는 주의 종들'에게 당장 벼락(!)을 치지 않으시는 것만 보아도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넓고 큰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거짓 복음을 전하는 이른바 '주의 종들'까지도 인내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물론 우리가 당하는 불행에 대한 해석은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런 해석들을 통해 살아갈 힘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나가던 어린이를 사망하게 한 교통사고를 내어 교도소에 들어간 성도가 성경말씀을 묵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불신앙을 반성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주일성수하는 성도로 새출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일부러 주신 고난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면 결국 하나님은 A성도가 성수주일 하도록 만들기 위해, B라는 어린아이를 죽이는 가혹한 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해석이 어떤 한계를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목사의 길이든, 변호사의 길이든 그 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면 그게 '주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종에 따라 주의 종 여부를 결정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제가 첫 고민을 통해 얻은 교훈이었습니다. 시험이나 사업에 실패했을 때는 그 시험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 여부를 일차적으로 검토해 보고, 자신이 최선을 다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실패의 원인을 찾은 후 다시 도전하거나, 다른 진로를 찾아보아야 합니다. 다른 진로를 찾는 과정에서 혹시 "주의 종이 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해도 너무 쉽게 목회자의 길을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도 이 나라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주의 종이 되라"는 음성을 듣고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이 음성을 목회자가 되라는 뜻으로 잘못 해석한다면, 한국 교회는 정말 큰 재난을 만나게 됩니다. 신도는 없고 목회자만 있는 교회만 넘쳐나게 될 테니까요.

두 번째로 어려운 선택에 마주친 것은 군법무관으로 3년간의 의무 복무가 끝나 갈 때였습니다. 사법연수원 시절, 저는 판검사를 거치지 않고 변호사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판검사 되는데 목숨을 건 연수생들의 분위기에 동참하고 싶지 않았던 데다가, 이왕이면 남들이 기피하는 직종으로 인생을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일찍이 이런 마음을 먹은 탓에 사법연수원 2년간은 다른 누구보다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요. 진로를 결정짓는 연수원 2년차 시험을 목전에 둔 시기에 아내를 처음 만났고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연애의 시간도 가졌습니다. 법원 시보, 변호사 시보 등으로 일하며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대학 후배들을 모아 신앙서적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모임을 이끌기도 했습니다.

이런 편안한 마음으로 연수원 2년을 보냈기 때문에 좋은 친구들과 선후배들도 많이 사귀게 되었습니다. 특히 서울대 첫 직선 총학생회장을 지내며 감옥까지 다녀온 후 고시 3과에 합격한 L형과의 만남은 저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내수동교회 출신인 L형은 가끔 신앙이 오락가락해 보일 때가 있기는 했어도, 그 마음 깊은 곳에 본질적인 순수성을 간직한 신앙인이었습니다. 형식화된 기독교인들의 모습을 많이 불편해하던 L형이었지만, 억지로 팔을 붙잡고 연수원 신우회 모임에 가자고 하면 못이기는 척 웃으면서 따라나서곤 했습니다. 가급적 술 먹는 모임에는 가지 못하도록 제가 억지로 붙들고 있기도 했는데, 하도 옆에서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늘어놓다 보니 나중에는 저를 '수호천사'로 부르기도 했지요. 신우회 모임에 L형을 끌고 다닌 대신에, 저는 기회가 될 때마다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형의 탁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비범한 사람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흔치 않은 기회였습니다. 사법연수원 마칠 때쯤에는 형과 의기투합하여 함께 변호사 일을 해보자는 약속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그 때, 'L형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내 인생을 한 번 맡겨 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늘 듬직하고 신중했고, 지혜로움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무엇보다 욕심 없이 순수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군 미필자로 사법시험에 합격했던 저는 먼저 군대부터 다녀와야 했습니다. 사법연수원을 마치면서 저는 영천의 제3사관학교에서 장교 훈련을 받아야 했고, L형은 제3세계 국가들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판검사, 변호사의 길 대신 세계여행을 떠난 L형의 선택은, 늘 공부 안하고 노는 것처럼 보였던 그가 이번에도 선두에 속하는 성적으로 연수원을 수료했다는 전설과 함께, 연수원에 큰 화젯거리를 남겼습니다.

군법무관 3년은 제대 후를 준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저는 "L형과 함께 변호사하면 되지" 하는 마음으로 별다른 준비 없이 세월을 보냈습니다. 마침 딸 희수가 태어났고, 갑작스럽게 늘어난 가사노동의 부담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많지 않았습니다. 강원도와 대구에서 군법무관으로 일해야 했기 때문에 서울에 갈 기회도 찾기 어려웠습니다(이 시기에 저의 책 <칼을 쳐서 보습을>의 단초가 된 여호와의 증인들도 처음 만났습니다). 아내가 공부를 계속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도 저에게는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훌쩍 3년이 지나가 있었습니다.

세상일이 인간의 계획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3년 동안 많은 것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L형은 워낙 살기 어려운 나라들만 골라 돌아다닌 덕분에 몸이 약해져 여행을 중단하고 얼마간의 휴식기간을 가진 뒤 귀국하여 조그만 로펌을 만들었습니다. 얼마 후에는 법조계가 너무 복잡하고 재미없는 동네임을 깨닫고, 고시 특강으로 학생들을 만나고 생계를 해결하는 새로운 진로를 개척했지요. 처음의 약속대로 저와 함께 변호사를 하기는 어렵게 된 셈이었습니다. 저도 군법무관 생활을 하면서 법조계의 어두운 뒷모습을 알아가던 시절이라 그런 결정을 내린 L형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L형과의 만남을 통해 저는 굳이 남과 똑같은 결정을 내릴 필요는 없다는 가르침을 받았고, 나중에 남과 다른 선택을 할 때마다 L형의 사는 모습에서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군을 제대할 시간이 다가오면서 진로를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내내 한국 사회의 높은 벽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손꼽히는 대형 로펌이든, 이른바 '운동권' 변호사들이 모인 조그만 로펌이든 한결같이 공개 채용 대신 '알음알음을 통한 사람 찾기' 방식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알려진 로펌이 서울대 출신만을 뽑는다는 사실은 공개된 비밀에 속했습니다. 서너 손가락 안에 드는 로펌에서 함께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돈을 많이 버는데 목표를 둔 변호사는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로펌의 파트너였던 잘 믿는 기독 변호사님 한 분은 "로펌에서 일하는 것도 국익과 공익을 위하는 길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저에게는 별로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비록 수입은 적어도 사회문제에 관심 있는 로펌에 합류하고 싶은 열망이 강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로펌들은 운동권 선후배 관계로 연결된 저의 동기생들이 일찍부터 빈 자리를 채운 뒤였습니다. 기독변호사 운동이 태동되고 있기는 했지만 젊은 신참 변호사를 맞아들일 역량을 갖춘 사무실은 전무했습니다. 결국 변호사가 되기 위해 남아있는 길은 독자적으로 개업하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개업하기에는 돈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었지요. 마음으로는 동네 어귀에 부동산중개소처럼 변호사 사무실을 차려놓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변호사가 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용기도 경험도 부족했습니다. 변호사 개업을 하면 의뢰인들에게 직접 돈을 받아가며 살아야 한다는 것도 저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차마 의뢰인들에게 "수임료는 얼마입니다. 사무장에게 내고 가주세요"라고 말할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때 정면으로 도전하지 못하는 저의 태도를 보면, 이 연재물의 제목도 '어느 겁 많은 기독인의 초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저런 길이 다 막혀 있다고 느껴지는 답답한 상황에서 저는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모두 판사 또는 검사로 임용을 받기 위해 서류 접수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판검사 임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에서 받은 성적이었습니다. 성적이 가장 좋은 그룹은 판사를 지망했고, 그 다음 그룹은 검사를 지망했습니다. 판사들은 성적에 따라 서울-수원-대전 등의 순서로 발령을 받게 되어 있었고, 검사들 역시 성적에 따라 서울-부산-대구 등의 순서로 발령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판사로 가장 순위가 밀리는 사람들과 서울권의 검사들이 보통 비슷한 성적대를 형성했습니다. 지원을 앞두고는 치열한 눈치작전도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성적 때문에 바로 변호사로 나가야 하는 친구들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가끔 판검사를 포기하고 대형 로펌을 택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런 그룹은 절대적으로 소수였습니다.

관심 밖으로 생각하고 한 번도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던 저의 연수원 수료성적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게 된 것도 이 때였습니다. 제 성적은 중간을 약간 웃도는 성적으로, 판사를 하려면 지방으로 내려가야 하고, 검사를 하려면 서울 근무가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나마 하나님의 은혜로 합격한 사법시험 성적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유지된 등수였습니다. 대학원을 막 시작했던 아내는 아기를 키우기 위해 1년간 휴학했다가 다시 복학하기 위해 준비중이었습니다. 딸아이를 키워주기로 하신 아버지께서는 판사로 지망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연좌제가 폐지되었다 해도 검찰 쪽은 좀 어려울 거라는 소문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복잡한 선택의 기로에서 저는 일단 검찰에 지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 큰외삼촌 문제로 인한 임용 탈락의 가능성이 남아 있었으므로 임용에서 탈락되면 가벼운 마음으로 거리의 변호사를 택하겠다는 생각과 (2) 아내가 미국으로 떠난 이후 저라도 서울에서 딸아이 옆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결심의 주된 동기였습니다. (3) 군법무관으로 일하는 동안 비리 수사가 번번이 좌절되는 것을 경험하며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었던 '제대로 수사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의지가 발동된 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좋게 말하면 '제대로 수사 한 번 해 보고 싶다'였지만,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무시당하지 않고 일해보고 싶다'는 편에 가까웠을 겁니다. 제 인생의 여러 선택 중 가장 인간적 동기가 강했던 결정이었습니다.

큰외삼촌 문제를 하나님의 뜻을 시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삼아보겠다는 괘씸한 동기를 가지고 지원한 검사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997년 봄과 여름의 6개월은 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선 무엇보다 권력을 가진 국가조직이 운용되는 과정을 내부에서 지켜보는 기회가 되었고, 대전과 의정부의 법조비리 사건이 터지기 직전의 생활화된 부패 관행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 3시간 정도만 자면서 사람을 잡으러 다니기도 했고 덕분에 일 잘하는 검사 소리도 들었습니다. 초임 검사가 좀처럼 하기 어려운 일을 벌여놓고 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가장 강력한 수사수단을 활용해 볼 기회도 가져보았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경험하고 느꼈던 많은 것들과 검사직을 사임하게 된 구체적인 이야기는 지면에 담기에 적절치 않은 것 같아 생략합니다. "아내가 미국 유학 중이었고, 딸아이를 키워주시던 부모님께서 너무 연로하셨기 때문에 아내를 돕기 위해 검사직을 그만 두고 미국으로 떠난다"는 것이 저의 공식적인 사임 이유였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만은 적어놓겠습니다. 당시 묵상하고 있던 성경말씀은 열왕기상이었는데, 마침 17장을 읽던 날에 사표를 냈습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미국으로 떠나 초기에 많이 고생할 때에 열왕기상 17장에 나오는 그릿 시냇가의 엘리야 이야기는 우리 부부가 힘과 용기를 되찾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검사를 그만 둘 때에는 참 재미있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제가 사표를 낸 다음날, 검찰청 내의 신우회 모임에 참석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제가 사임했다는 것이 알려졌지요. 모임을 마치고 나오는데, 몇 명의 일반직 직원들이 저를 붙잡았습니다. 평소 안면은 있었지만 이름도 잘 모르던 분들이었습니다. 한 분이 입을 열었습니다. "김 검사님. 참 신기한 일이 있었어요. 신우회에 참석하는 우리 일반직 아줌마들 몇 명이 어제 점심식사를 같이 했거든요. 그런데 ○○○씨가 그 자리에서 전 날 밤의 꿈 이야기를 했어요. 글쎄 김 검사님이 자기 꿈에 나오더라지 뭐예요. 그런데 꿈 속의 김 검사님이 어딘가 멀리 떠나시더래요. 그리고 얼마 후 돌아오시는데 글쎄 세상에서 볼 수 없는, 하늘에서 온 것이 너무나 분명한, 오색 영롱한 음식들을 잔뜩 그릇에 담아서 들고 오시더랍니다. 우리가 어제 그 이야기를 듣고 유부녀가 딴 남자 꿈을 꾸었다면서 한바탕 웃었거든요. 그런데 오늘에야 김 검사님께서 사표 내셨다는 소식을 들었지 뭡니까? 어디 가시든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그 분들은 제가 미국으로 가기 위해 사표를 냈다는 사실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저는 하나님의 장난스러우심에 미소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려운 선택을 하고 우리 나라를 떠나려는 저를 위로할 방법을 억지로 찾아보다, 결국 이런 방법까지 동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그 꿈이 무슨 의미가 있든지 간에 저는 이 자매님의 꿈을 통해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적을 때마다 제가 굉장히 이상한 신비주의자로 비칠까봐 조심스럽습니다만, 저도 가벼운 마음으로 적은 것이니 읽는 분들도 가볍게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어쨌든 검사직 선택과 그 사임을 경험하면서 저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동기로 선택한 직업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직업을 통해 여전히 우리에게 복 주려 하신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진로를 선택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 또는 두 개의 선택 가능성을 놓고 갈등합니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면 괜히 한 쪽은 하나님의 뜻인 것 같고, 다른 쪽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선택을 하면 한없는 복을 받을 것 같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로 점철된 좌절의 인생을 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기도원을 찾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길은 '오직 하나'일 것이므로 간절히 하나님께 부르짖어 보지만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이 정도 되면 표적을 구하게도 되지요. 제가 "하나님, 큰외삼촌 때문에 검사 임용이 안 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검사에 임용된다면 그게 하나님의 뜻인 줄 알겠습니다. 만약 임용이 안 된다면 거리의 변호사로 나서겠습니다"라고 기도한 것이 그 예입니다. 이런 때는 사사기 6장에 나오는 기드온 이야기가 많이 인용됩니다. 기드온의 경우처럼 표적을 구하는 이에게 하나님께서는 표적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저는 검사직을 사임하고 미국에서 2년 동안 아기를 키우면서 새로운 깨달음 하나를 얻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머물며 인터넷을 통해 우리 신문들을 읽어볼 때마다, 저는 저와 함께 검찰청에서 근무하던 검사들이 유난히 잘 나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검사장 승진이 좌절되어 실의에 차 있던 지청장은 정권교체로 인해 청와대에 입성하여 상종가를 치고 있었고, 직속상관이던 부장 검사와 다른 동료검사들도 검찰 내 꽃 보직들을 찾아가며 승승장구하고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서 저는 '하나님께서는 내가 검사를 택했든, 변호사를 택했든 양쪽 길 모두에 복 주실 작정을 하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검사로 남았다면 검사로서 잘 커가도록 모든 준비를 해 놓으셨고, 검사를 그만 두고 집에서 애를 키우는 동안에는 또 그걸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해 놓으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진로선택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이 직업이냐 저 직업이냐가 아니라 '오직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내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삶을 사는 것'임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법률가로서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지 간에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찾은 것이 됩니다. 반면에 제가 이 말씀에 반하여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는' 삶을 살게 된다면 아무리 좋은 직업을 선택했다 해도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이런 새로운 발견은 저에게 큰 자유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근거 없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국 검사직 선택 여부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복 주실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든 그것이 선한 동기에 기초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아마도 검사직 선택보다, 그걸 그만두는 쪽이 동기 면에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했던 것 같습니다. 너무 범위가 적은 결단이었는지 모르지만 저는 '아내와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더 이상 악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검사를 그만 두었고, 하나님께서 그런 작은 헌신도 선하게 보셨던 것 같습니다. 검사를 그만둔 이후, 저는 보다 모험적인 인생에 뛰어들어 삶을 즐기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저 감사드리는 것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요.

진 로선택을 눈앞에 두고, 이 길인지 저 길인지 고민중인 분들에게 저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길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 헌신하기를 바라시고, 가난한 이들에게 우리 자신을 내어주기를 원하시지만, 우리에게 그런 헌신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헌신의 길에 나설 때까지 충분히 기다릴 줄 아는 분이십니다. '이 길에도, 저 길에도' 모두 복 내릴 준비를 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걸 알고 나면, 진로선택은 고민과 고통의 시간이 아니라 즐거운 축제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2002년 9월부터 월간지 <복음과 상황>과 eKOSTA가 기사 제휴를 하고 있습니다. "복음으로 역사와 사회를 조명하는" 복음주의 정론지 <복음과 상황>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복음과 상황> 홈페이지 (http://www.goscon.co.kr) 나 이메일 goscon@chollian.net 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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