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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09 20:03 책이야기/eKOSTA 서평

이 달의 소개할 책은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 (고든 맥도날드, 윤종석 옮김, IVP) 이다.

축 복이란 단어는 우리의 신앙 단계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다가온다. 초신자일때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을 축복으로 알았다. 우리의 요구를 세심하게 들어주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 그러나 우리의 한심한 요구 조차도 맘씨좋게 들어주시던 하나님이 언젠가 부터 바뀌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No"를 경험 하게 되었다. 하나님 이게 뭡니까? ....원망과 혼돈의 시간을 지나보낸 뒤, 하나님의 "No"가 그의"Yes" 보다 훨씬 나에게 유익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어서' 더 많은 축복을 쟁취 할 것인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원망과 혼돈의 시간들-고난으로 변장된 순간들-이 얼마나 우리의 삶에 축복인가를 설명하고 있다.

저 자는 말한다. "폭풍은 다가온다. 영혼이 시험받는 힘겨운 순간들은 떠오르는 해만큼이나 확실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하나님은 왜 이런 어려운 순간들을 허락 하시는가?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은 우리가 깨어지길 원하신다. 위기의 순간을 통해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눈에 보이는 것에서 우리의 내면(영혼)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는 계기를 주길 원하신다. 그러면, 영성을 추구 할때 무엇이 따르는가? 자기 발견의 고통과 굴욕이다.(p125).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바울의 고백에서도 보듯이 많은 영적 스승들은 욕망, 정욕, 분노로 가득찬 우리 영혼의 하수구까지 내려와 본 사람들이다.

주님은 우리가 먼저 비우길 기대하신다. 우리 자신을 철저하게 비운뒤, 그 다음에는 주님은 무엇을 원하시나?

"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삶은, 그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자세하게 알고자 하는 집요한 열망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분의 본질, 그분의 능하신 행사, 그분의 뜻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계획 등을 알아 가는 것이다. 실은 이런 연습이 바로 신학이다"(P221).

이 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신학'을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화학을 통해 '신학'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의 말미에 '엄청난' 신학을 했던 한 중국인 목사님의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다소 길지만 꼭 인용하고 싶다). 이 목사님은 신앙때문에 18년간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지낸 경험을 말해 주었다.

" 제 친구들은 제가 강제 수용소에서 어떤일을 했길래 몸의 건강을 지킬 수 있었는지 궁금해 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들에게 그곳에서의 삶은 너무너무 고된 것이었다고 대답 합니다. 수용소 당국자들은 제게 인분 구덩이를 치우는 일을 시켰습니다...간수들과 모든 수감원들은 악취 때문에 가까이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거기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혼자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강제 수용소에서는 보통 모든 수감원이 엄격한 감시하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혼자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 구덩이에서 일했기에 혼자 있을 수도 있었고 주님께 큰소리로 기도 할 수 있었습니다...그것이 바로 내가 인분 구덩이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던 이유입니다...

당 시 내가 제일 즐겨 부르던 찬송 중 하나가 '저 장미꽃 위의 이슬'입니다. 그것은 체포되기 전에도 제일 좋아하는 찬송가였지만 그때는 그 찬송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치 못했습니다. 인분 구덩이에서 일하면서 나는 우리 주님과의 놀라운 교재를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저 장미꽃 위의 이슬 아직 맺혀 있는 그 때에

귀에 은은히 소리 들리니 주음성 분명하다

주가 나와 동행을 하면서 나를 친구 삼으셨네

우리 서로 받은 그 기쁨은 알 사람이 없도다

그 구덩이 안에서 몇번이고 반복해서 이 찬송을 부르면서 나는 주님의 임재를 맛보았습니다. 그분은 결코 나를 버리거나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살게 되었고 그 인분 구덩이는 나의 은밀한 동산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 삶에 복 주시기로 택하신 한 평범한 사람의 고백이다. 결국, 우리의 상황이 어떠하던지, 우리의 삶을 통해 쌓아가는 주님과의 관계가 축복의 최고봉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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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국인의 하나 되는 정서는 한 솥 밥을 먹는 데서 나온다. 그래서 구한말 보부상들이 다닐 때 남의 집에서 신세를 지더라도 솥만큼은 따로 가지고 다녔고, 손님은 따로 솥에 밥을 지어주었던 번거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데 비빔밥, 그것도 모듬 비빔밥은 이런 하나됨을 한 차원 더 올리게 한다. 어릴 적 자랐던 교회에서는 여름마다 산 집회를 갔었다. 일주일간 천막을 치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각 천막 별로 공동식사가 이루어진다. 야외인지라 식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래도 여분의 숟가락만 있으면 걱정하지 않았다. 깊숙하게 파진 큰 양푼 그릇에 남은 밥과 반찬을 넣고 휘 젓 거리면 훌륭한 비빔밥이 만들어졌다. 킬킬거리며 머리들을 맞대고 입 속에 무엇이 들어가는 지도 모를 정도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즉흥 모듬 비빔밥이었다. 이런 모듬 비빔밥이 한 솥 밥을 먹는 식구의 의미를 피부로 미각으로 체감하게 한다. 현란하게 오가던 스텐 숟가락의 공중곡예들, 먹으랴, 말하랴, 튀기던 침과 다시 양푼 속으로 낙하하던 밥알들, 그리고 흔들거리는 머리칼에서 반짝거리며 떨어지던 하얀 가루들! 선택의 여지가 없이 다 먹고 소화시켜야 했었다. 한 식구(食口)가 될 때 비로소 한 가족(家族)이 되었다. 그래서 가족이란 모름지기 식구여야 하는 것이다. 요즘 생각하면 B형 간염의 주요 감염경로라고 펄쩍 뛰겠지만, 위생의 이해 득실을 넘어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그 때 이루어 졌다. 물론 디즈니의 만화영화 건달과 숙녀(Lady and Tramp)에도 두 마리의 남녀 개가 달빛과 아코디언의 생음악을 배경으로, 한 가닥의 스파게티를 나누는 진한(?) 장면이 나온다. 그렇지만 한국인의 모듬 비빔밥과 스파게티 국수 한 가닥과는 그 농도와 풍성함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분명 한 그릇에서 너와 내가 같이 떠서 먹지만, 한국인의 모듬 비빔밥은 먹을 때마다 숟가락에 무엇이 건져질 지 모른다. 바다에서 낚시하듯, 다양한 종류가 걸려서 올라온다. 친구의 침 속에 무엇이 섞여 있을까 걱정하면 절대로 못 먹을 밥이다. 신뢰의 농도가 진한 만치 다양한 반찬이 섞인 모듬 비빔밥을 먹게 된다. 흩어졌던 다양함이 신뢰로 모일 때, 우리네 삶이 당장 풍성하여 지는 것이 한국인의 잠재적인 비빔밥 파워다. 오늘도 한 양푼에 재료를 넣고 친구끼리 먹는 모듬 비빔밥은 서울의 한 복판에서 버젓이 팔린다.

조화로 먹는 비빔밥; 융화를 부추기는 비빔밥

기 왕 비빔밥 이야기가 나왔으니 좀더 우리의 먹거리 이야기를 하여보자. 서양의 먹거리는, 쪼개고 구별해서 차이점을 부각시키는 선택을 통해서 음식의 맛을 찾는다. 한국인의 음식은 다른 음식과 융합과 조화의 맛을 느끼게 조리한다. 내친 김에 한식 이야기를 좀 더해보자. 비빔밥이 문헌에서 최초로 언급된 것은 18세기 말엽 시의 전서라고 하며, 골동반(汨董飯)으로도 불린다. 어지러울 골(汨)자에 비빌 동(董)자가 아우러져서 나온 음식이다. 주식에 곁들여 먹는 서양의 샐러드와는 달리, 비빔밥은 주식이다. 그리고 각 재료들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반찬이다. 그렇지만 각각으로 섭취하면 온전한 미각의 기준에 아쉬운 감이 드는 음식이기는 밥과 고추장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함께 섞어지면 모두의 맛이 살아난다. 이런 비빔밥의 유래는 다양하게 설명된다. 임금의 가벼운 점심상으로, 또는 섣달 그믐날 새날을 맞기 전 묵은 음식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시작되었다고도 하며, 그릇이 여의치 못한 야외에서, 편리하게 식사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에서 유래를 찾기도 한다. 분주한 농번기에 농부들의 식탁에서, 성묘 시 차례를 마치고 제물을 골고루 음복하기 위한 신인공식(神人共食)에서, 심지어는 동학 혁명군의 야전 음식에서, 다양한 출신과 배경을 가진 한국인에게 통일된 미각과 음식을 공유하게 하는 길이 비빔밥이다. 중, 고등학교 시절 점심 시간, 자리 지키고 열심히 제 도시락 파먹는 얌전 파와 도시락을 들고 교실 안팎을 방황하는 배회 파가 있었다. 무말랭이 같은 메마른 짠지 종류를 반찬으로 싸오던 급우들도, 교실 한 바퀴 돌면 각 양 고급(?)반찬으로 도시락 통이 채워지고, 그 양철 도시락 통을 들고, 김치 국물 배어 나오기까지 한참 흔들고 나면, 비빔 도시락이 만들어졌다. 당장은 어지럽게 보여도 비비고 부대끼다 보면 함께 어울리는 상생의 길이 열린다. 한국인은 비빔밥으로 이 진리를 체득한다.

찜 닭 속에 계셨던 예수님

이 와 유사한 음식문화는 중동인 들에게서도 보았다. 세인트루이스에서 공부할 때였다. 이란 유학생들의 초대를 받아서 여러 나라 유학생들, 그리고 지도 교수들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통상적인 식탁은 아예 치워놓았고, 아파트의 거실 중앙에 큰 신문지들이 겹겹이 펼쳐 져있었고, 가운데 큰 대접을 놓은 것이 영 판 소풍 가서 점심 시간 먹는 모양새였다. 향긋하게 찐 쌀밥과 짭짤한 배추절이가 수북하니 담겨져서 나왔다. 그리고 금방 돌아가신 듯, 아직도 눈을 지그시 감은 요염한(?) 자태의 발가벗은 치킨들이 가지런히 대접의 원을 따라서 누워있었다. 우리는 먼저 오른 손을 씻었고, 둥그렇게 앉아서 손바닥에 고기와 야채와 밥을 오므려 싸서 먹었다. 한국인은 그래도 숟가락이라도 쓰지만, 원색적 손가락들! 힘껏 쭉쭉 빨던 그 손가락으로 덥석 고기도 밥도 주물럭거렸다. 미국인 교수들이 엉거주춤하니 당황해 하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왼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먹는 것도 힘들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손으로 직접 먹는다는 행위 자체가, 역겨울 정도로 버거운 요구이었음에 분명하다. 대부분이 곧 포크를 요청해서 식사를 마쳤다. 그들은 포크를 사용함으로 자기 침을 남들에게 줄 기회는 놓치고, 남의 침 튀긴 쌀과 고기, 반찬을 먹는 선택을 한 것이다. 제 3세계 국가에 속한 자유로움을 만끽하였다.

비빔밥에서 화목 제물로

그 래서 중동의 식사 문화는 밀접한 신체적 접촉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함께 식사를 나눈다는 것은 한 집단에 소속함을 의미한다. 손을 씻는 결례 (潔禮)의 전통에 무지한 무례한 사람들이나,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이 전통적인 유대인들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타 그룹을 제외하는 용도로 쓰였던 식탁이 예수를 통해서 포용의 자리로 변화되었다. 각 양의 사람들이 초청되고 포용되었다. 예수가 그 당시 기득권자들에게 드러나게 눈 밖에 나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식사와 관련된 이슈였음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마태 9:10-11). 그 분이 한국인으로 태어나셨다면 아마도 천민들과 함께 모듬 비빔밥에 숟가락 꽂고 잡수시다가 양반들에게 심한 핀잔과 질책을 받다가 가문의 호적 명부에서 이름이 파임(?)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성경의 화목제물을 먹는 장면도 이와 흡사하게 실용적인 의도를 참석자에게 유도한다. 기름은 제단에 불태우고, 갈비 살과 오른쪽 넓적 다리는 성전에 남겨두고, 나머지 고기들은 집으로 가지고 와서 식구들과 친지들을 불러 함께 먹는다 (레위기 3장). 굳이 신학적 이유를 몰라도, 마음이 불편한 사람과, 함께 손에 침 발라가며 같은 밥그릇을 주물럭거리며 먹는 것은 급체의 원인이 될 것이다. 화목제의 밥상 위로 오가던 것은 음식만이 아니었다. 이웃과 마음을 주고받아야 비로소 화목제의 온전한 모습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레위기의 혁명적 시도는 이런 밀접한 만남이 일어나도록 디자인 된 의식이다. 출애굽의 가장 드라마틱 한 모습은 역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라암셋에서 가나안을 향한 진군을 시작하는 해방의 장면이다. 보행하는 장정만 60만, 무수한 무리 들 가운데, 중대한 잡족이 함께 섞여서 출발한다 (출애굽기 12:37).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그들을 출애굽의 신민으로 묶어준 상징적인 식사가 유월절 식사였다. 말하자면 그들은 한 솥 밥을 먹는 식구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너희와 함께 거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를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우거한 이방인에게나 이 법이 동일하니라 (출애굽기 12: 48-9). 예수님의 유월절 식사도 음식 정서 상은 이런 것이었을 것 같다. 성찬은 중동식 레위기 비빔밥의 완성이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서로 손가락 빨아가며 양고기와 반찬을 무교병에 상추 쌈 먹듯이 그렇게 먹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침을 사람이 먹고, 사람의 침을 하나님이 먹었다. 침 한 방울에 우리의 모든 유전자를 다 추적해 낼 수 있는데, B형 간염 같은 죄성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우리로 인해서 거룩하게 망가지신 하나님의 모습이다.

초(超)인이 아니라 초(初)인이다

세 상이 목말라 기다리는 사람들, 세상이 기대하는 사람은 여기에 있다. 이 육사가 목말라하던 초인은 백마를 타고 인간을 건너뛰는 초(超)인이 아니라 인간의 원래 모습을 회복시켜주느라 너무나 인간다운 모습을 지니고 사는 초(初)인이어야 한다. 천년 후에 오실 기약 없는 바람만 주는 분이 아니라 과거에도 오셨고 현재도 오시면 미래에도 오시는 분이어야 한다. 이 분이 오시면 과거의 원한과 상처로 눈을 흘기고 부라리며 살기가 등등한 얼은 밥상이 한 솥 밥으로 묶어주고 먹게 하는 모듬 비빔밥으로 바꾸어진다. 출신학교도, 소속 교회도, 지방과 풍속도, 억양과 사투리도, 집 평수와 학군도, 세대차도 막을 수 없는 사랑의 애찬을 먹는 사람은 천국에 사는 사람이다. 꼭 청포를 입고 오지 않아도 된다. 예수의 복음은 누구에게나 비빔밥이 가진 복음적 가능성을 경험하며 살게 한다. 그래서 세상을 예수께로 이끄는 화평의 한국인은 예수 만난 한국인이 될 때 비로소 가능한 이야기가 된다. 한국인의 모듬 비빔밥을 예수인이 먹을 때 산나물도 고추장도 화목제물 성찬이 된다. 세상의 화평과 인류의 평화는 구호와 현수막이 어지럽게 난무하는 요란한 선전무대 위에서 성취되는 것이 아닌 듯하다. 평화에 이르는 길이 아니라, 평화가 곧 길이다. 젖은 청포도 몇 알만 있어도 즙 묻은 손 닦을 하얀 모시 수건 준비하는 육사의 정성이라면 예수는 우리 가운데서 섬김을 받는다. 사람과 사람이 살갑게 꾸밈없이 만나는 먹거리의 현장에서부터 예수 보듯이 사람과 만물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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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3년 11월

讀者前 上書

잘 지내고 계신지요?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그렇듯 늘 만사형통하지는 않아도 세상이 줄 수도 살 수도 없는 그 평강으로 인해 안녕(安寧)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이곳 토론토에서 아홉 번째 안편지(內簡)를 드리는군요. 요 몇 달 새 제 영혼 안팎의 풍경들과 어우러진 묵상 몇 점을 그려내 보도록 하지요.

전태일은 과연 자살하였는가?

아, 이 어쩐 일인가. 생활고를 비관한 주부의 투신부터 현대 정몽헌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까지 조국에서 들려오는 도미노 식 자살 소식은 탄식을 절로 나오게 한다. 가히 자살공화국이라 할 만 하다. 혹자는 정몽헌 씨가 자신과 회사 안팎에 얽힌 문제들을 다 끌어안고 간 점 때문에 그 아버지인 정주영 씨로부터 시작된 현대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일종의 영웅비극에 비하기도 하고, 나아가 어떤 이는 우리 사회에 자살이 영웅시된 것으로 전태일의 분신을 예로 거들먹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전태일의 경우는 자살이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세상의 무게에 굴복하고 허무에 몸을 내어맡긴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 것에 가깝다. 바울의 예리한 통찰처럼 사랑이 없이 그렇게 하는 이들도 많다. 이를테면 영웅심에서 말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것보다 더 지극한 한국 어머니들의 자식 사랑도 알고 보면, 정신적으로 자식과 미분화된 상태에서 자식을 통해 정체성을 획득하고 자기실현을 해보려는 이상야릇한 심리적 병폐에 기초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태일은 그의 일기나 삶이 증언하듯이 사랑으로 자기 몸을 불사른 경우이다. 그것은 근본/복음주의자들이 쉽게 내뱉듯 조물주가 준 삶을 자기 맘대로 내팽개친 경우와는 전혀 다르다. 그의 분신(焚身)은 그와 동료 노동자들이 처해 있던 이루 말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 겪어보지 않은 이라면 어림하기도 힘든 극한의 상황에서 보일 수 있는 농담(濃淡) 깊은 사랑의 표현이었고 말도 안 되는 불의한 상황을 고발하는 강렬한 몸짓인 것이다. 물론 혹자는 그러한 공의와 사랑에 대한 강렬함을 꺼뜨리지 말고 묵묵히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면서--비록 그것이 계란으로 바위치기 일 뿐이고 전혀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애굽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비참한 노예 노릇 중에 부르짖었어도 하나님은 모세가 태어나고 준비되기까지 80년을 그 상태로 두셨듯이 주께서 더디게 역사하시는 것을 오래 참고 기다려야지 인간적으로 너무 서두른 것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볼 여지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자살을 했으니 당연히 지옥행이라고 입빠르게 단죄하기 보다는, 극한의 상황에서 저지른 방법적 실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공의를 향한 그의 중심을 헤아리셨을 것이라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복음주의자들은 너.무.나.도, 정말 너.무.나.도 반성하기보다는 정죄하기에 재빠른 족속들이라는 점이다. 전태일의 지옥행을 당연시하기 전에 지옥에 있을-만약 그들의 생각대로 됐다면-그와는 견줄 수조차 없을 정도로 희박한 소자(이 사회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한낱 별 볼 일 없는 이들)에 대한 사랑과 공의에 대한 갈증을 참회하는 것이 마땅한 순서가 아닐까? 너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않다면 결단코 천국에 가지 못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놓고 두려워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닐까? 이럴 때에만큼은 전태일은 혁명가가 아니라 기독교인이었다고 발뺌할 것인가?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복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신학적, 목회적, 실천적 외연(外延)을 넓히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내가 몸담은 종파, 교단에서 아무리 실망스러운 일이 벌어지더라도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심으셨다는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내가 속한 종파와 교단의 장점을 자랑스러워하며 그것을 잘 살려나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우주적인 차원에서-를 기름지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교회도 완전할 수는 없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다양한 교회를 주셨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 교회는 준이단이니, 기독교장로회 교회의 목사들은 다 정치꾼이고 심하게는 빨갱이라는 식으로 욕하던 것을 이제는 멈추어야 한다. 도리어 우리가 허약했던 부분인, 영성과 실천을 두 교회가 보완해왔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이제 근본/복음주의는 고개 들어 다른 종파와 교단을 보고 고개 숙여 배우지 안 된다. 알만한 사람은 1200만 성도라는 치수가 잔뜩 부풀린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과 90년 이후로 한국교회 역시 서구교회처럼 사양길에 접어들고 있다는 알고 있다. 이곳 토론토의 아름다운 예배당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교회가 고급 콘도나 도서관으로 개조되는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정통 신앙을 이어가고 있다는'근거 없는 자만에 의한 뿌리 깊은 배타성부터 내려놓고 허리를 동여 다른 자매(혹은 형제) 교회를 향해 가르침을 베풀어 주소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갈가리 찢어진 교회가 하나 되는 길은 그저 나보나 남을 더 낫게 여기라는 단순명료한 말씀을 교회 차원에서 실천하는 것에 있다.

근본/복음주의가 다른 자매 교회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허다하다. 예를 들어 산업화된 나라에 사는 기독교인들에게 소비문화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없건만 근본/복음주의권에서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은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 자신이 처한 시대의 영과 싸워야 함을 가르치는 기독교세계관을 논의하면서 이 부분을 다루지 않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복음주의권에서는 로날드 사이더와 리차드 포스터 등이 단순한 삶에 역설하기는 했지만 탁월한 논의는 단연 가톨릭 측이 돋보인다. 소비문화사회에서 그리스도 따라가기(Following Christ in a Consumer Society)를 쓴 존 카바놔(John Kavanaugh)나 장 바니에와 헨리 나웬의 뒤를 이어 토론토의 영성을 지켜가고 있는 메리 조 레디(Mary Jo Leddy)를 읽어보면 쉽게 수긍이 갈 것이다.

오래 전부터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는 문익환 목사님이 두루마리를 입고 마치 남북을 다 끌어안을 듯 두 팔을 넓게 벌려 강연을 하는 그림이 깔려있다. 오지랖 넓은 해민이는 압바 공부하는 거 간섭하려고 내 곁에 왔다가 문목의 사진을 볼 적마다"압바, 무니칸 목짜님!"하면서 뭘 안다는 듯이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그때마다 나는 내놓으라 하는 교계 목사님들이 네 살배기 아해보다 속이 좁아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얘기가 잠시 딴 곳으로 샌 것 같다. 토론토의 살림살이로 돌아가도록 하자.

꽃에 얽힌 옛날이야기

전번에 저희가 방갈로(작은 단층 주택)로 이사 왔다는 얘기까지 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집 얘기를 드리는 것에 앞서 옛적에 저희 집에 살았던 사랑스러운 두 사람에 대해 얘기할까 합니다.

옛날 토론토의 한 오두막에 한 남자와 그의 엄마가 정겹게 살았더랬습니다. 그 어머니는 꽃을 무척 사랑해서 그의 정원을 갖은 화초로 에웠습니다. 초춘(初春)부터 만추(晩秋)까지 꽃이 끊어지지 않고 쉬임없이 피도록 살뜰한 배려 하에 갖가지 여러해살이 꽃(perennial)을 정원 곳곳에 심어두었습니다. 그 결과 이른 봄이면 수선화와 튤립으로부터 시작해서 포도 히야신스와 시베리안 스퀼이 차례로 피어나고 늦봄에는 붓꽃이 뒤를 이어줍니다. 여름으로 들어서면 화려하기 그지 없는 작약과 샛노오란 중국 나리가 뜰을 가득 채워주고, 장미와 프록스는 여름 내내 눈을 즐겁게 해줍니다. 가을로 접어들면 집 옆과 앞을 두른 국화가 추정(秋情)을 돋워줄 겁니다. 새들도 이집 뒤뜰을 좋아해서 모이를 뿌려놓으면 참새와 홍관조(cardinal), 어치(bluejay) 등이 와서 지저귀는데, 한 번은 일흔 두 마리의 참새가 동시에 왔다 간 적도 있다고 하네요. 지렁이와 달팽이 및 민달팽이 등은 정원의 터줏대감들이고, 청설모와 미국너구리 같은 짐승들과 나비, 꿀벌, 무당벌레, 메뚜기, 풍뎅이, 잠자리 따위의 벌레들은 뒷마당에 자주 마을 오는 손님들입니다.

그 남자의 엄마는 오래 전에 하늘나라로 갔고, 그 남자 역시 늙고 병들어 요양소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와 각별한 우정을 나눴던 우리 옆집의 짐 할아버지가 얼마 전 그 엄마가 심었던 오십 년 된 장미 한 송이를 꺾어 요양소를 찾아가서 이번에 새로 이사 온 사람이 정원을 잘 가꾸고 있다고 전했더니 아주 좋아했다고 하는군요. 그 얘기를 들으니 왠지 코끝이 찡해지며 그 분을 한 번은 꼭 만나 뵈어야겠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 두 사람이 그토록 정성스레 가꾸어놓은 꽃밭을 더 가멸게 하기 위해 우리는 구석구석 빈 공간에 씨를 더 뿌렸습니다. 눈을 위해서는 나팔꽃과 해바라기, 코스모스, 금송화를 심어 꽃물결을 한결 더 일렁이게 하였고, 코를 위해서는 타임과 민트, 버질 등의 허브를 키워 영혼에 닿도록까지 향기를 깊이 들이마시기도 합니다. 입을 위해서는 세 종류의 토마토와 오이, 상추, 노랑피망을 가꾸어 우리 식탁도 맛나게 하고 이웃들과도 나누어 먹습니다. 참, 그리고 늦가을걷이를 위해 이틀 전 배추와 알타리무도 심었습니다. 이번 참에 뒤뜰에 살고 있는 관목과 꽃, 허브와 채소를 찬찬히 다 세어보니 무려 47가지나 되더군요.

꽃은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도 있듯이 공부는 뒷전에 두고(^^) 꽃밭만을 지성으로 돌보고 살폈더니 이제는 공부를 하다가 뒤뜰로 나와 둘러보자면 오감이 다 흐뭇합니다. 이웃들은 이웃들대로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면서 뒤뜰에 있는 저를 볼 때마다 이렇게 아름다운 뜰을 갖게 되어 행운이라며 이웃 모두의 정원이니 잘 가꾸어달라고 약간은 엄포가 담긴 부탁을 하기도 합니다. 노오란 해바라기와 보랏빛 나팔꽃이 어우러지는 요즈음에는 옆집 짐 할아버지와 매일 같은 시각에 개를 몰고 나오는 미셸과 켄 부부로부터 이 동네에서 가장 예쁜 정원이란 칭찬을 듣기도 했지요. 이웃들이 우리집을 지나가며 기쁨을 얻을 수 있다면, 그래서 밭일이 이웃사랑의 한 실천이 될 수 있다면 앞으로도 곱게 가꾸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해민이 역시 농사꾼인 제 아빠(해민 왈, "압바, 또 농사지으러 가?")를 거들다 보니 지렁이나 민달팽이, 쥐며느리 등을 아무렇기도 않게 손에 올려놓고는 장난을 칠 정도로 흙과 친해졌습니다.

손에 초록물이 들도록 텃밭을 가꾼 다음 땀과 흙으로 버무려진 몸을 뜨거운 욕조에 담그는 것은 제가 이곳에서 누리는 가장 큰 호사입니다. 해민이도 뒤질세라 압바 뒤를 따라 장난감 배를 안고 욕조에 텀벙 뛰어듭니다. 둘은 물고기 배에 들어간 요나, 바다 위를 건너신 예수님, 폭풍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 등의 성경 이야기를 구현하며 그렇게 놉니다.

죽음의 소식이 두 번 나를 두드렸을 때

지 난 오월 초부터 유월 초까지 한 달간 나는 아끼는 세 사람을 잃었다. 날벼락 같던 두 건의 사고 소식은 내 넋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오월 초에는 한국에서 같은 교회의 절친한 지체였다가 캘거리 근교로 이민 간지 정확히 1년 만에 송문규 형과 그 아들 시온이가 맞은편에서 중앙선을 침범한 차량에 의해 소천(召天)했고, 한국에서 개척교회 시절 아끼는 제자였던 기한이는 유월 초 오토바이 사고를 당해 홀아버지와 누나만을 남겨 놓고 우리 곁을 떠났다. 한동안 넋을 잃은 사람처럼 흐느끼다가 눈물을 씻기 위해 겨우 캘거리에는 다녀왔지만 한국에는 다녀올 수가 없었다. 이름 있는 백댄서였던 기한이를 위해 평소 절친했던 가수 채리나 양이 강타를 비롯한 여러 후배 가수들을 모아 추모공연을 열어 수익금을 가난한 기한이네 가족에게 건넸다고 하는 소식을 들으니 연예인들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누가 죽음에 대한 슬픔은 겪을수록 익숙해진다고 했던가! 죽음의 소식은 결코 낯익을 수 없는 존재이며, 그것이 내 영혼을 자주 두드릴수록 놀람과 아픔의 파동도 강렬해진다. 해민이가 내 곁에 앉아 장난을 치며 얄밉도록 사랑스럽게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시온이를 잃은 경아 누나의 아픔을 조금은 가늠해볼 수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이런 자식을 말도 안 되는 사고로 잃어버린 가슴은 대체 얼마나 갈가리 피눈물로 엉겨 있을까!

이번 일로 너무 놀랐던 것일까. 이제까지는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접하면서 오로지 연민만을 느꼈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공포가 느껴졌다. 연민과 공포는 언뜻 보기에 전혀 다른 감정일 것 같지만 고전적인 미학범주론에 의하면 그것은 한 끗 차이에 불과하다. 비극 관람 중에 극중 타자의 불행을 접하면서 도출되는 감정인 점에서는 양자가 공히 일치하지만 그러한 재앙이 내게는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으면 연민이, 내게도 그런 일이 덤벼들 수 있다고 느끼게 되면 공포의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사실 이번 일을 겪지 전까지는 하나님이 나를 그런 식으로 데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확신이 있었다. 안해와의 연애시절, 걸핏하면 헤어지자고 하는 그녀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 안해가 보는 앞에서 자동차가 질주하는 6차선 도로를 눈 딱 감고 지나가는 호기를 부린 것도 다 그런 믿음 아닌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하나님은 언제라도 나를 그런 방식으로 불러올릴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게다가 조금은 나이를 먹은 것일까. 몇 년 전부터는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이 시나브로 내 안을 비집고 들어왔다. 지금이라도 하나님이 나를 데려가실까 물으신다면 흔쾌히 "예"할 수 있다. 그것은 삶이 유난히 힘겹거나 유학생활이 고달파서가 아니다. 내남이 인정하듯이 나처럼 삶을 즐기면서 사는 이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감, 즉 내가 지고가고 있는 이 십자가의 중량을 차차 실감해가면서 그만큼 더 하늘나라를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남은 가족의 슬픔을 생각하면, 더구나 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안해의 말을 떠올리면 지금 죽어서는 안 되겠다 싶지만, 인지상정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일 수도 있겠다 싶다.

문규형을 생각하면 축구를 좋아해서 그 긴 다리로 즐거이 축구장을 누비던 모습. 내가 골을 넣을 수 있게 패스해주고는 "어시스트 멋졌지!" 하며 해맑게 웃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서로의 집이 수원과 성남으로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가끔 마실가서 밤늦도록 놀면서 얘기꽃 피우던 일들도 모락모락 피어난다. 이 둔한 사람이 지금에서야 깨닫는 것이지만 한국에 있을 때부터 문규형이 나를 얼마나 아꼈던가! 병상에 누워 있는 경아 누나의 첫마디가 "우리 문규씨가 총이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지?"였으니 말이다. 형은 캘거리 근교에서 학업을 하면서도 틈틈이 가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을 생활비에 보태라며 내게 보내주곤 했는데 그러면서도 자주 "총이보다 더 잘 살질 못하는 것 같다"고 하며 늘 자신을 채찍질했다고 하니 그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다. 하물며 형과 함께 하늘나라에 간 시온이, 해민이에게 친구의 대명사였던 그 아이에 대해서는 지금 무슨 말을 더 쓸 수 있으랴.

기한이의 경우도 나를 한없이 가라앉게 한다. 기한이는 홀아버지 아래에서 사랑에 주리며 자라나 조금만 잘해줘도 곧잘 감동을 받고 하던 녀석이었다. 단비교회에 발을 들이고 지체들과 더불어 지내면서 진한 사랑을 맛보았으리라. 특히 녀석은 춤꾼이 되고 싶어했지만 기존 교회에서 곱게 보지 않는 점을 늘 부담스러워했었다. 나는 기한이에게 사람들의 갈채 앞에서 춤추더라도 그 중심만큼은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서 춤추면 된다고 격려하면서 낮은울타리의 성준형에게 부탁해 당시 랩과 댄스를 곁들인 CCM으로 인기를 모으던 dc Talk(현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얼터너티브 락 밴드로 활동 중)의 뮤직비디오를 보여주기도 하고 춤과 음악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기독교의 전통에 대한 얘기를 나누기도 했었다. 제이, 유승준 등의 백댄서로서 제법 인기를 모으기도 하며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춤을 추던 녀석은 오토바이 사고로 우리를 두고 떠났다. 지금 그 누나로부터 기한이가 단비교회에 다니던 시절을 제일 행복했었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미어진다.

이제는 두 사람과의 별리(別離)를 인정해야 한다. 영겁을 살 우리이기에 이별이 비록 찰나라 하더라도 분명 두 사람은 내 곁에 없다. 문득 볼프강 보르헤르트가 이 시대의 우리를 '이별 없는 세대'(Generation ohne Abschied)라고 했던 것이 떠오른다. 참된 '만남'이 없으므로 '이별'도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정말이지 이별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문규형, 기한이와 이별할 만한 '해후'를 가졌었는가? 다행히 그렇다.

작별을 맛본지 두세 달이 훌쩍 지난 지금도 간혹 슬픔이 토할 듯이 울컥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럴 때에라도 시온이와 문규형이 지금 이 시각 낙원에서, 우리집 냉장고에 붙어 있는 사진에서처럼 환히 웃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가이없는 위로가 된다. "예수는 몸소 하나님 나라"라고 한 초대 교부 오리게네스로부터 게할더스 보스, 헤르만 리델보스, 조지 래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나라에 대한 수다한 논의를 접해왔고 또 그렇게 가르치고 살아왔지만, 그 모든 신학적 논의에 앞서 그저 천국이 있다는 '그토록' 단순한 사실에 대한 해민이 차원의 믿음이 '이토록' 큰 의미가 된다는 것을 이번 일을 겪기 전까지는 잘 몰랐다. 반대로 제자였던 기한이에게 분명한 회심의 체험이 없었다는 점과 단비교회가 없어진 뒤로는 교회와 떨어져 생활했던 것을 감안해볼 때 그가 구원받았을까 하는 불안감은 계속 내 영혼의 평안을 갉아먹는다. 부디 이 불안감이라는 것이 내가 회심의 체험 및 중생의 확신을 강조하는 근본주의/복음주의의 구원관에만 익숙한 연유이기를 바랄 뿐이다.

성인력(聖引力)

뒤 뜰 얘기로 시작했으니 수미상관법에 따라 뒤뜰에서 바람 쐬는 얘기로 글을 맺을까 한다. 가끔 저녁을 먹고 뒤뜰에 펴놓은 의자에 세 식구가 나란히 앉아 느긋하게 시원한 저녁 바람을 쐬며 편안한 웃음을 나누곤 하는데 그 시간이 참 좋다. 살랑살랑 이는 바람을 맞고 있으면 이 바람이 어디서부터 왔을까 생각해본다. 북경 시내를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한 마리 나비의 날개짓이 뉴욕에서는 거대한 폭풍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바람이 한국에서 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일본의 호시노 도미히로 선생의 글에 홍순관 님이 곡을 붙인 노래가 생각난다.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나무에 일면 녹색바람이 되고, 꽃을 보듬고 가면 꽃바람이 되건만 방금 나를 지나간 바람은 어떤 바람 됐을까 라는 노래다. 나 역시 예수에게 생명을 받았으니 적어도 주를 만나기 전 죽은 사람이었을 때 마냥 시체 썩는 냄새는 나지 않을 것이다. 그치만 샤론의 꽃내음이 나야 할 텐데 여전히 죄 냄새나 풍기고 다니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물도 매한가지다. 물은 무형(無形), 무색(無色), 무취(無臭)하지만 물이 풀에 들면 풀물이 되고 꽃에 들면 꽃물이 되고 시내에 들면 시냇물이 된다. 예수님에게 들면 생명을 담뿍 머금은 목마르지 않게 할 생명수가 되련만 내게 들면 '속물'이 되지는 않는지, 죄 썩은 물이 고인 고약한 침전수가 되는지 않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래도 요즘 뒤뜰에 퇴비를 만들면서 기쁨으로 깨달아가고 있는 것은, 지금은 악취가 나고 파리가 들끓는 썩은 잡초, 음식 쓰레기 등도 시간이 지나면 기름진 두엄으로 변하듯이 한 때 냄새가 나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나 같은 사람도 나중엔 하나님 나라를 위한 가멸찬 두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뒤뜰에 앉아 모여드는 새와 나비를 보자면 중세 가톨릭의 영성가인 빙엔의 힐데가르트(Hildegard of Bingen)의 명구(名句)가 생각난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그의 글에 곡을 부친 사뭇 신비적인 음반을 듣고 있는데, 그가 한 번은 "거룩한 사람은 땅의 모든 것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긴다."는 정말 인상적인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리적인 세계뿐만 아니라 영적인 세계에도 인력이 작용해서 거룩함이 남다른 이는 다른 존재들을 흡입하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나는 그것을 성인력(聖引力)이라 부른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께서 받음직하게 살았던 때에는 사람들이 내 얼굴에서 천사의 얼굴을 보았다고 했다. 이 세상에서 대체 누가 나를 미워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그때에는 나와 사귐을 갖는 이들이 내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 안의 주님께로 이끌리는 것을 나부터가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 힘이 조금은 남아 있어서인가. 지금도 많은 경우 사람들은 나와 우리 가족을 가까이 할뿐더러 선대하고 귀히 여기며 아낌없이 자기의 것을 베풀어주기까지 한다.

성인력은 사람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성 프란체스코에게 새들이 친근하게 날아든 것처럼 사람을 두려워하는 피조물조차도 거룩한 사람은 알아보고 모여든다. 내가 정말 하나님께서 보암직하게 살았던 때에는 나비와 잠자리까지도 나를 마다하지 않았다. 어디에선가 날아온 곱디고운 나비의 날개를 가까이 보고 싶어서 주님께 달아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아무리 바싹 얼굴을 들이밀고 보아도 나비는 미동도 하지 않고 풀잎 위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잠자리와 입맞추고 싶어서 묘목을 지탱하는 말뚝 위에서 내려앉은 한 마리에게 다가가 입술을 내밀면 그 잠자리는 내가 뽀뽀하는 동안에는 물론, 입맞춤을 받고도 한참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초록으로 보이는 듯 여치나 무당벌레 등이 날아와 내 몸에 앉은 경우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내가 예전처럼 임재의 우산 속에 그 분과 나란히 걷지 않기 때문일까? 뒤뜰에 이만큼 모이를 자주 주었으면 동네 새들이 타성에 젖어서라도 느긋해질 법 한데, 내가 인기척만 내면 소스라치듯 놀라 달아난다. 한국에서와는 달리 토론토에서는 좀처럼 나무들과 얘기를 하지 못해서 나무들이 나를 꺼려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조금은 우울해지곤 한다. 더욱이 뒤뜰에서 일하다가 토마토 열매를 크게 보기 위해 아래에 붙은 잔잎을 따주거나 주위에 돋은 성가신 잡초를 뽑거나 하면 여전히 팔 안쪽으로 풀독이 올라 가려운 것도 속상한 대목이다. 물론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를 적으로 보고 독을 내뿜는 것이야 풀들에게 있어서도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마는 아무튼 이런 일들이 바로 요즘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다.

나의 이러한 경험에서도 확인되듯이 땅이 악인을 토해낸다는 성경의 말마따나 거룩하지 않은 이는 확실히 피조물과 평화롭게 살 수 없는 법인가 보다. "잠시 산이 나로 꽉 차 있다"고 한 신대철 시인처럼 내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꽉 차 있을 뿐 아니라 바람과 흙과 나비와 새도 나로 꽉 차 있는 그러한 평화를 누릴 순 없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요즘 내게 회복에 대한 세 가지 간구가 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임재 연습』을 썼던 로렌스 형제처럼 한시도 떠나지 않았던 하나님의 선명한 임재 의식 속에서 그 분과 행복하기 이를 데 없던 사귐을 나누었던, 도무지 말로는 표현할 길 없는 예전의 그 기쁨과 평안을 회복하고자 하는 기도이다. 그때에는 이 죄 많은 세상을 보며 근심하시던 주님께서 얼마나 내 안에서 쉬시기를 즐거워하셨으며 그로 인해 노을빛 물결이 내 안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출렁였었던가! 하나님이 가장 머물기 좋아하는 장소는 사람의 가슴속이란 말을 그때처럼 체휼한 적도 없었다. 둘째는 우리 안해를 하루라도 기쁘게 해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밀월일기 시절처럼 안해를 철없이 눈멀게 사랑하고자 하는 기원이다. 내가 안해를 그토록 살갑고도 애틋하게 사랑했을 때 내 영혼이 얼마나 날아갈 듯 사뿐했던가. 길가의 꽃들조차 순순히 내 손에 꺾이기를 다투어 바라고 안해에게 안겨지기를 사모하지 않았던가! 셋째는 어떤 경우에라도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임을 잊지 않고 내가 스쳐 지나치는 모든 이웃을 사랑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전철을 타면 건너편에 앉아 졸고 있는 이이도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 날카로운 눈매가 좀체 가까이 하기 어려워 보이는 저이도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 이유 없이 나를 무시하는 듯한 얼굴로 쳐다봤던 그 사람도 내가 품고 사랑해야 할 사람임을 되새겼던 그 때의 그 눈길을 회복하고 싶다. 주위의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화나게 해도 하나님의 형상임을 떠올렸던 그때의 그 마음을 되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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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드림 2008/11/30 02:40  Addr Edit/Del Reply

    안녕하세요.
    하늘의 소리와 땅의 아픔을 노래하는 노래꾼 홍순관과 관련된 글과 노래를 귀 블로그에 올려주심을 감사합니다.

    홍순관을 사랑하며 함께 하는 모임이 다음 카페에 개설되었습니다.

    http://cafe.daum.net/sghong 음유신인 홍순관의 춤추는 평화 입니다.


    하나더....새 앨범이 나왔습니다.
    음반의 제목도 춤추는 평화입니다.

    최근 발간한 단상집 "네가 걸으면 하나님도 걸어"와 함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소극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보며 흔히 운명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미 정해져 버린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고 더러는 체념한다. 운명적인 팔자를 타고났다고 생각하면서도 미래의 일을 또 알고 싶어한다. 그래서 점이나 사주를 보고 별자리를 들여다보며 자신의 운명을 점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속에 자신을 가두어버린다.

적극적인 인생을 사는 사람은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기에 자신의 노력과 선택에 의해 운명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모두 자신의 선택의 결과로 받아들인다. 이들은 인간의 능력을 과신하여 미래를 자신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후자의 인생이 그래도 전자보다는 나아 보인다. 그러나 그 속에 하나님이 설자리가 없기는 둘 다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자리에 피조물 또는 자기 자신이 우상으로 들어 앉아있기 때문이다. 시간의 굴레 속에 던져진 인간에게 순간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세계관의 문제이다.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합니다" 라는 광고 문안이 있었던 걸 기억한다.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지배할 수 있다면 하루하루의 시간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결국 위의 두 가지 인생은 그들이 지닌 세계관이 닫힌 세계관이냐 혹은 열린 세계관이냐 하는 문제로 귀착된다. 닫힌 세계관을 지닌 사람은 운명론자 또는 숙명론자가 되고, 열린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더러 인본주의자가 되어 적극적인 인생을 살아간다. 그러나 열린 세계관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그 선택의 기준이 인간의 야망과 욕심에서 비롯된 것일 때 그 결과는 오히려 멸망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적극적인 인생을 펼쳐가던 재벌 기업가의 참담한 말로를 우리는 심심지 않게 목격하게 된다.

크리스천은 자신의 인생을 인도해 가는 초월적 존재로서의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이 인생의 주관자요 파란만장한 한 사람의 인생도 결국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언뜻 보면 크리스천의 세계관은 닫힌 세계관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어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였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것도 하나님을 택하든지 아니면 떠나든지 하는 가장 큰 선택권마저 인간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생각하면 크리스천의 세계관은 열린 세계관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크리스천의 인생은 하나님의 주권과 자신의 선택, 즉 섭리와 자유의지 사이의 미묘한 긴장 관계 속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모든 것을 선택하며 순간을 살아가는 것 같은데, 사실은 하나님의 주권이 그것을 이끌어간다는 모순성? 지구 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인간이 지구의 공전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듯, 우리 인생의 절대 기준은 더 큰 척도 안에서 운행되고 결정되고 있다는 인식...... 그러나 그 속에서 누리는 선택의 자유와 중요성은 지구의 공전 궤도마저 바꿀 수도 있다는 역설로 강조해도 좋을지?

크리스천은 운명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간섭을 믿는다. 인생의 순간들을 결정하는 자신의 자유 선택권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오류 투성이의 삶 속에서도 그것을 선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아름다운(?) 간섭으로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간섭이란 곧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에게 간섭하듯 옳은 길로 인도하는 포괄적 배려를 뜻한다. 이 같은 설명에 즉각 반발하는 무신론자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오히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악과 재앙과 전쟁을 그대로 방치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니 신의 간섭은 애초부터 없는 것이고 거꾸로 신이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반증이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바로 알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 오해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자녀가 잘못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손을 들어 야단치는 성미 급한 부모가 아니다. 오히려 자녀의 잘못을 알면서도 스스로 깨달아 돌이킬 때까지 일정 기간을 인내하며 지켜보는 지혜로운 부모에 가깝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모순과 전쟁들은 하나님이 원했거나 행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악한 길을 선택한 인간들이 자초한 죄의 결과일 뿐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며 내버려둔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 돌이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간섭은 인간의 역사와 운명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이 지닌 신비스런 질서와 오묘함..., 물 한 방울 눈 한 송이에도..., 무질서해 보이는 나노 원자의 세계 속에서도 또 다시 나타나는 새로운 질서와 소우주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연세계 전체를 이끌어 가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한다. 말씀으로 만물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그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고 계신 간섭의 손길이 없다면, 천체계를 운행하는 행성들의 모든 중력장과 빛의 세계를 지배하는 전자기장이 사라지고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소립자의 세계가 일시에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

이처럼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하나님의 손길 속에서도 하나님의 침묵 속에 더러는 하나님의 간섭이 미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영역이 있다. 모든 것이 지나고 난 후에는 그것마저도 간섭의 결과였음을 깨달아 알 수 있을지라도, 그 순간에는 하나님이 묵묵히 바라보며 우리 인간에게 전적인 선택권을 허용하는 부분이 있다. 마치 선악과의 선택처럼, 그들의 전 인생의 결과를 뒤바꾸는 엄청난 선택...... 다시 말해 필생의 선택이 있는 것이다.

*

1980년대 시인과 촌장으로 활약하던 <가시나무>의 가수 하덕규씨가 얼마 전 학교를 방문하여 시와 노래로 어우러진 가을밤의 아름다운 콘서트를 가졌다. 토크쇼처럼 진행된 콘서트에서 자신의 지나온 인생을 이야기하며 아름다운 시어로 작사된 노래를 불렀다. 순수 담백한 가사를 생동감 넘치는 선율에 담아 읊조리는 음유시인의 고백을 들으며 지난 날 내 모습을 또한 반추하게 되었다. 우연히도 하덕규씨는 나와 동갑내기였다. 58년에 태어난 개띠 인생으로 어둡고 답답했던 시대를 집나간 개처럼 방황하며 살았던 동지였던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되니 더욱 친근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동일한 고민으로 살아가고 있을 나의 제자들이 눈에 뜨여 그들에게도 연민의 정을 느꼈다.

나의 대학생활은 인생의 비전도 삶의 목표도 찾지 못해 고민하며 괴로워하던 허탈한 시간들로 점철된 시절이었다. 마치 이상의 시 오감도(烏瞰圖)에 나오는 13인의 아이들처럼 어디를 향해 왜 달려가는지도 모르며 그저 남들이 뛰니까 안 뛰면 불안해서 막다른 골목을 향해 달려가는 그런 인생을 살았다. 외적으로는 군사독재의 암울한 시대 상황 속에서 어디론가 탈출구를 찾아야만 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로 인해 하덕규씨는 자신의 음악세계에서 몸부림치며 현실을 잊기 위해 마약의 세계로 빠져들었을 것이고, 나는 내 취향에 맞지 않는 전공을 멀리하고 문학과 술과 여자로 도피처를 찾고자 발버둥치는 시간들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도피의 세계 속으로 점점 깊숙이 빠져 들어가면 갈수록 더욱더 내면의 허무감은 심연처럼 깊어만 갔다. 육체와 정신의 황폐함 속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극한 상황까지 내려갔을 때, 탕자의 어렴풋한 옛 기억 속에 남아있던 아버지의 집이 떠올랐고, 마침내 하나님을 더듬어 찾게 된 것이다. 그것마저도 그와 나는 닮아 있었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던 그 시절, 그 황폐해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가 부른 노래가 바로 <가시나무> 였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내 속엔 내가 어쩔 수 없는 어둠 당신의 쉴 자리를 뺐고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 숲 같네.

바람만 불면 그 메마른 가지 서로 부대끼며 울어대고 쉴 곳을 찾아 지쳐 날아 온 어린 새들도 가시에 찔려 날아가고

바람만 불면 외롭고 또 괴로워 슬픈 노래를 부르던 날이 많았는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당신의 쉴 곳 없네.

인생을 돌아보기에는 아직 마흔 다섯의 내 나이가 충분치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미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나는 하나님의 간섭의 흔적들을 분명히 느낀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이 자리의 나를 만들어왔음을 알게 된다. 인생의 목표와 비전이 없이 술에 취해 그저 친구들의 의견에 휩쓸리며 주관 없이 살아가던 나를,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기로마다 하나님이 조금씩 그 방향을 간섭하여 이곳까지 이르게 했다는 확신이 드는 것이다.

문과 취향의 적성을 지닌 내가 주위의 만류를 무릅쓰고 고등학교 시절 짝 친구(1)를 따라 이과를 선택했고 뜻하지 않은 공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 선택으로 말미암아 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공학박사까지 되었지만 여전히 문과 취향적 인생을 섞어서 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그때 내가 선택한 친구는 의사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언제나 찾아가면 반겨주는 마음의 고향처럼 남아 있으니 결코 손해 본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여 방황하며 1년을 보낸 나는, 어느 겨울 아침, 술에 만취한 상태로 쓰러져 있다가 친구(2)의 전화를 받고 부스스 깨어났다. 계열별로 입학하던 때라 그 날이 전공학과를 정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피곤한 몸을 추스려 할 수 없이 집을 나섰다. 등교 길에 우연히 한 고등학교 동창 친구(3)를 만났다. 자기와 함께 같은 과로 가자고 권유를 하였다. 청동기 시대 이후로 마침내 금속의 전성시대가 다시 도래할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을 그는 했다.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그의 주장이었지만 다른 전공을 선택할 특별한 생각이 없었던 나는 아무 이유도 없이 처음 들어보는 금속공학과를 택하였다. 그러나 전공을 선택한 후에도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나의 고민은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왜 공부해야 하는가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카프카와 까뮈의 노예로 남아 있었다.

친구(4)와 친구(2)의 소개로 재학 중 두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지금은 원숙한 여인들이 되었으리라 짐작하지만 사실 그 시절에는 풋내기 여학생들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들과의 심각한(?) 연애 행각으로 금쪽같은 대학 시절을 모두 맞바꾸어 날려 버렸다. 그녀들과의 사랑만이 내가 처한 허무와 절망의 늪을 빠져나갈 유일한 비상구라고 그 시절 생각했었다. 실연의 상처로 헤매던 아무 희망 없었던 대학 졸업반 시절, 나는 군대를 마지막 도피처로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잊고 현실을 벗어나고만 싶었다. 그러나 학수고대 현역 입영날짜를 기다리던 중 느닷없이 보충역 편입통지서를 받고 허탈해 하던 일이 생각난다. 그 해에,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났던 58년 개띠들 중에 유난히 현역 입영 대상자가 많아서 그런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고 후에 누군가에게 들었다. 사실 그런 신빙성 없는 이야기조차 나에게는 절망과 분노만 안겨다 주었다. 그 시절은 정말 한 가지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는 개 같은 인생을 살고 있었다.

방위병으로 동사무소에 배치받아 근무하였다. 똥개처럼 이리저리 채이며 정신적 육체적인 밑바닥 인생 체험을 하였다. 민원 창구에 앉아 몽롱하게 주민등록 초본을 떼어 주던 나른한 여름날 오후였다. 마치 <이방인>에 나오는 주인공 뫼르소오처럼 이유 없는 살인의 충동이 느껴지던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또 다른 친구(5)가 자기와 함께 대학원 시험을 치자고 권유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 일찍이 던져버렸던 교과서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대학원 입학 준비를 시작했다. (이쯤에서 내가 밝혀둘 것은 대학 시절 나의 별명이 피노키오였다는 사실이다. 학교 가던 중 여우의 꾐에 빠져 옆길로 샜던 피노키오처럼 나는 내 주관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항상 친구들이 말하는 대로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하곤 했다. 지금 와서 또 생각해보니 친구들에 의해 휩쓸리는 인생을 살았던 내가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자신 있게 이야기하며 그들의 인생 행로를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무척이나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이 대목에서는 어깨를 으쓱하며 Anyway... 라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릴 지 모르겠다. 그 이듬해, 함께 대학원을 가자던, 나보다 훨씬 공부를 잘 했던 그 친구는 떨어졌는데 나는 이상하게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는 계획에 없던 학문의 길에 나서게 된다. 역대 대학원 입학생 중 기록적인 최하의 성적으로 입학하여 교수님들을 놀라게 했다. 지도 교수를 정하는 면접 중 내가 신청했던 교수님이 내 성적에 놀라며 박사까지 계속 공부할 의향이 없으면 나가달라고 했다. 그 말에 오기가 생겨 끝까지 공부하겠다고 약속을 하였고 나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금속공학과에서도 밑바닥을 돌던 내가 지도교수의 주문에 따라 갑자기 기계공학과 대학원 과목을 전부 택하여 들었다. 옛날 명문 K 고등학교에서도 수재로 이름을 날렸고 20대에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돌아온 그 당시 나의 지도 교수님은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 대한 편애가 조금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의 눈 밖에 난 채로 입학을 한 나는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리고 첫 학기에 전 과목 A+의 성적을 따냈다. 그러나 그것은 공부를 위한 공부라기보다 망가져버린 내 인생에 대한 분노와 나를 무시하는 세상을 향한 복수와 야심을 불태우기 위한 교만한 몸짓이었던 것 같다.

바닥에서 정상으로 올라버린 내 성적에 놀란 그 교수님은 이제 오히려 나를 무척이나 편애해(?) 주셨고, 급기야 어느 날 나를 불러 박사과정을 위해 국비 유학 시험을 보라고 권유하게 된다. 당신이 국비 유학시험의 출제위원으로 뽑혔는데 새로 만들어진 우리 분야에서는 나밖에는 붙을 사람이 없으니 시험만 보면 된다는 것이었다. 유학에 대한 새로운 꿈을 안고 열심히 준비를 하던 어느 날, 그 해부터 국비 유학 시험의 전형 조건에 대학 시절의 성적이 B학점 미만인 사람은 시험 칠 자격이 없다는 새로운 조항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지도 교수님은 얼굴을 찌푸리며 잠시 고민하더니 그럼 자기 밑에서 빨리 박사를 마치고 미국의 Post-Doc. 과정으로 떠나라고 했다. 박사과정에 진학한 후, 예수 믿는 여자... 지금의 아내 최문선 동무를 소개받아 결혼을 하게 되었고, 나는 3년 만에 국제 저널에 논문을 4개 발표하고 박사학위를 받아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돌이켜보면, 내가 만일 현역병으로 군대를 갔다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을지? 박사과정으로 바로 유학을 떠났다면 아내를 만날 수 있었을지? 학위 과정으로 미국에 왔다면 그렇게 깊이 신앙생활에 빠져들 수 있었을지? 나를 믿음으로 인도했던 신앙의 선후배들을 만날 수 있었을지? 그리고 마침내 코스타 집회를 통해 인생의 비전을 발견할 수 있었을지? 여러 가지 생각이 감돈다. 그토록 하기 싫었던 전공공부를 끝까지 하도록 만들어 마침내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되었던 것이 지금 와서 얼마나 유용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지? 내가 전공하게 되었던 재료공학/기계공학을 접목하는 특수한 분야가 이곳 연변과기대에서 초창기 교수요원이 부족했던 그 시절 얼마나 유용하게 잘 사용되었던지? 그리고 나의 문과적 취향으로 인해 과학사 과목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의 마음을 열고 변화시키는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음악하는 아내를 얻은 것이 이곳에서의 사역에 얼마나 큰 도움과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세밀한 간섭 속에서 빈틈없이 준비되어 왔던 일임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하나님은 젊은 시절 방황하던 나의 그 모든 일 가운데서 나를 지켜보고 계셨고 준비하게 하셨으며, 그리고 때를 따라 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사람과 환경을 통해 특별한 방법으로 간섭하셨던 것이다.

*

그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간섭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할지라도, 내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기로에서 내가 스스로 결단해야 했던 가장 중요한 한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국 땅 중국, 그 낯선 곳을 향해 나의 사랑하는 가족을 이끌고 삶의 거처를 옮겼던 그 사건이었다. 그것은 진정 아브라함의 부르심에 대한 분명한 응답이었고 체험이었다.

성경에 나타난 대조적인 인물들 가운데... 아벨과 카인, 야곱과 에서, 아브라함과 롯, 다윗과 사울 등 우리에게 교훈과 경종을 주는 인물 쌍 들이 있다. 비슷한 환경에서 태어나 분명 하나님을 알고 자라난 사람들이었는데 어째서 한 사람은 영광과 축복의 반열에, 다른 한 사람은 모멸과 멸망의 길에 들어섰는가 하는 것이 우리들의 관심을 끈다.

무엇이 그들을 갈랐을까? 분명한 것은 축복을 받은 자들이 반드시 완전한 의인이요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서 선택받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벨의 삶에 대해서는 성경에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서 차치한다 할지라도 아브라함과 야곱과 다윗은 그들의 인생 속에서 많은 허물이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성격적 결함이 있었으며, 떡의 문제 즉 물질과 여자 혹은 명예심에 의해 다투기도 하고 시험을 받아 유혹에 빠졌던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들은 하나님의 부르심과 약속에 대해 믿음으로 반응했던 사람이었고, 그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을 유혹하는 떡 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택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소유보다 존재를 더 귀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이었다.

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졌던 그 귀중한 장자권을 육신의 정욕에 따라 떡 한 조각과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렸다. 구약시대의 장자권이란 하나님의 약속의 기업을 이어갈 권리를 의미하기에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요 백성이 되기 위한 영생의 선택이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만홀히 여긴 에서는 떡 한 조각을 소유하려다가 영생을 놓쳐버린 망령된 자가 되고만 것이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떠났던 아브람과 사래는, 중도에 정착했던 하란 땅에서 살아가던 중 다시 한번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는 두 번째 부르심을 받는다. 문화 도시 하란에서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던 그들에게 앞길을 알 수 없는 척박한 새 땅을 향해 다시 떠나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결단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 사이에는 그 문제로 인한 부부싸움도 많았을 것이고, 하란에서 모은 많은 소유물들과 그곳에서 쌓고 누렸던 커리어들을 두고 떠나기 아까워서 고민도 많이 했을 것이다. 결국 그들이 택했던 것은 그 많은 소유물들을 바리바리 싸서 낙타 등에 싣고 기나긴 대상 행렬을 이루며 사막 길을 건너는 것이었다.(창 12:5) 마치 우리 부부가 10년 전 눈물의 기도 가운데 40피트 컨테이너에 각종 세간과 피아노 오르간 등 그 많은 이삿짐을 싣고 중국 땅을 밟았던 것처럼. 아브람과 사래에게 소유의 문제가 없었던 것도 아니요, 그것을 초월한 인생을 살았던 것도 아니지만, 그들을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었던 것은 그 모든 소유의 문제보다도 하나님의 기업을 향한 부르심을 더 소중히 여겼던 그들의 믿음과 순종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축복을 누린다.

하나님의 부르심...... 그것은 바로 우리를 소유의 굴레에서 이끌어 내어 영원한 존재의 세계로 옮기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다. 영원한 기업을 향한 그 목소리를 우리는 소명이라고 부른다. 그 음성이 들릴 때 우리는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조심해야 한다. 잠시 있다가 사라질 떡 한 조각으로 인해 영원한 기업을 놓치는 망령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우리 인생 속에 나타나는 필생의 선택 앞에서 깨어 있도록.

초창기에는 항상 한국으로 돌아갈 궁리만 하며 살던 아내가 최근 들어서는 마침내 이곳에 마음을 붙였는지 아니면 체념을 했는지, 이제는 연길이 자기가 살 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속으로 흐뭇했다. 새로 이사한 집에서 아내의 취향대로 깔끔하게 꾸며놓고 안정된 생활 공간을 갖게 되었다. 예민한 성격의 아내에게는 그것도 그런 대로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내가 평양 프로젝트의 일을 맡게 되면서 아내는 몹시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마치 10여 년 전 포항에서의 악몽이 되살아난 듯, 안절부절못했다. 지금 당장 어딜 떠나는 것도 아닌데,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켜도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러다가 결국 어느 날 저녁, 크게 한바탕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왜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못하느냐고. 왜 당신은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만 맡아서 하느냐고. 이러다가 결국 옛날처럼 또 떠나자고 할 것 아니냐고... 이제 자기는 다시는 아무데도 떠날 수 없다고. 이제 겨우 마음 잡았는데... 엉엉... 아내는 한번 울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말린다. 끝날 때까지 지켜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냥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 완전히 어린아이처럼 쏟아내야지만 겨우 마음이 풀린다. 아내의 울음을 바라보며, 내 안에도 두려움이 생긴다. 정말 이곳은 우리에게 하란 땅일까? 가나안이 또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내처럼 예민한 여자가 이렇게 반응하는 걸 보면 어쩌면 맞을지도 몰라... 또 다시 떠나야 한다면? 겁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니 만일 평양에 대학을 세울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곳에서 북한의 청년들을 가르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명백하다. 그것은 어떤 떡 조각으로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일이고 나를 향해 부르시는 하나님의 기업이 될 것이다. 과연 우리의 믿음이 그 일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연변과기대에서 이루었던 기적같이... 제2의 출애굽처럼 수많은 무리들이 짐을 싣고 홍해바다를 건너 평양 땅을 향해 움직여 가는 새로운 환상과 기적을 바라본다. 오 주님! 그 일을 이루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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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01 02:00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3년 11월호

삶을 살아감

아침에 일어나면 졸린 눈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가장 만만한 것이 계란 후라이에 토스트와 커피 한잔. 한 손으로 만들며 한 손으로 먹으며, 점심에 먹을 샌드위치를 만들고, 한편에는 어제 먹었던 도시락 그릇을 설거지하며, 몇 가지 일이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활기찬 아침이다. 학기 시작하여 주어진 Syllabus.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수업 내용보다 프레젠테이션 어사인먼트와 텍스트북이다. 어사인먼트 확인되면 필요한 책과 textbook이 도서관에 있나 잽싸게 확인하고 다른 사람이 빌려가기 전에 빨리 빌린다. 수십 불씩이나 하는 교과서를 모두 샀다가는 렌트 값 못 낸다. 한두 달 빌린 책을 보다가 정말 필요하고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인터넷으로 유스드 북을 주문한다. 인터넷으로 사면 소비세가 면제되니 몇 불이라도 싸니까. 점심은 도시락으로 간단히 해결한다. 사 먹으면 빈곤한 식단에 돈까지 나가는 이중고에 시달리니까 아예 샌드위치로 먹는 게 마음도 편하다. 먹는 데에는 외국 학생뿐 아니라 미국 학생들도 다들 아끼고 절약하는 것 같다. 수업이 대충 끝나면 이메일 체크 겸 신문, 잡지를 도서관의 인터넷으로 읽고 필요한 부분을 스크랩하여 웹에 잘라 붙여 놓지만 프린트는 대개 하지 않는다. 종이 한 장도 아껴야 하니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싶을 때 도서관으로 향하여 인터넷의 무료 음악사이트에서 다운받고 영화는 티비에서 녹화했다가 틀어본다. 중간에 광고가 있긴 하지만 그런 대로 볼만하다. 그러나 가끔은 혼자 비참해진다. 공부도 힘들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하나님, 일과 안식의 주인공

하나님이 안식일을 쉬신 이유가 항상 궁금해왔다. 안식일 뿐 아니라 각종 절기, 안식년, 희년에 이르기까지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인간들에게 삶을 중단시키는 하나님의 질서는 무엇일까? 성경책을 펼쳐본다.
너희가 저마다 이웃에게 무엇을 팔거나, 또는 이웃에게서 무엇을 살 때에는 부당하게 이익을 남겨서는 안 된다. (레위기 25:14, 표준 새번역)
일곱째 해에는 씨를 뿌려도 안되고, 소출을 거두어 들여도 안 된다면,  그 해에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하고 물을 것이다. 그러나 여섯째 해에, 내가 너희에게 복을 베풀어, 세 해 동안 먹을 소출이 그 한 해에 나게 하겠다. (레위기 25:20-21, 표준 새번역)
같은 본문에서 언급되고 있는 일함에 있어서 정직과 안식을 취함에 있어서 근면은 일견 상반된 명령인 듯하다. 상반되어 보이는 일과 안식의 삶 속에 하나님의 일관된 메시지는 뭘까? 하나님이 정직하고 근면한 노동을 원하시는 건 분명하다. 열심히 일해서 정직한 대가로 돈과 재물을 얻고 불필요한 소비와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 칠 일째, 칠 년째, 오십 년째 되는 날과 해는 확실하게 또는 정직하게 쉬어야 함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일을 통해 나에게 베풂이 있다면 안식과 구제의 일을 통해 이웃에게 베풂이 있다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재물의 사용처 보다는 마음의 정직함이 아닐까 싶다. 일을 할 때는 일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고, 안식을 취할 때는 나에게는 쉼을 이웃에게는 베품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다하는 것이 하늘의 뜻인 듯 싶다. 하루의 피곤이 조금은 풀린다. 오늘 하루도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살았고 이제는 나에게 안식을 선물로 줄 때다. 일을 열심히 했으니 쉼에도 감사가 따르며 갑갑하고 가난한 일상에서도 보람이 뒤따라온다.

재정 생활의 원칙: 검소와 품위

대학교를 입학하여 재정적으로 반독립 상태에 들어선 이후 돈 문제에서 떠나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르바이트에 학과 공부에 어느 것도 제대로 하는 게 없어 좌절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거기에 교회와 기독학생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아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만 둔 실패의 기억이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다. 어느 곳에서도 이해 받지 못했다고 할까. 그 와중에 그래도 배운 것이 있다면 재정 사용에 있어서 검소와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 천 원 아끼려다가 만 원 잃고 만 원 아끼려다가 건강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유학 생활에 있어서 재정 생활의 원칙이 있다면 검소와 품위, 두 가지를 들고 싶다. 얼마 되지 않는 수입은 수입을 떠나서 그 일에 최선을 다하고 지출은 동전 세어가며 최대로 줄이지만 안식을 해야할 땐 최대한 감사하게 품위를 지키며 살고 싶다. 쪼들리는 가계부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방법은 안식일을 최선을 다해서 충실하게 즐기며 사는 것 같다. 안식을 위해 시간을 떼어놓고 쉼을 위해 돈을 구분하여 놓을 때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고 편안한 마음으로 나를 위해 쓸 수 있다. 그렇게 얻은 힘으로 다시 검소하고 성실한 일주일의 삶을 누리며 살 수 있겠다. 안식과 일 모두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때 감사한 마음으로 일과 휴식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가난의 영성

가난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돈의 결핍, 정서적 안정의 결핍, 사랑하는 사람의 결핍, 안전의 상실, 자신감의 상실 등이 그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가난한 장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임재하시길 원하는 장소입니다.                        
-Henry Nouwen, Bread for the Journey

미국에 와서 유학 생활을 하는 사람이 생활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호사스러운 일이 아닐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은 원해도 재정적인 문제로 오지 못하는 사실을 생각할 때  호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적은 수입으로 생활까지 영위해야 하니 가끔씩은 혼자만 고생 다 하는 것 같다. 유학 생활에서 가끔 느끼는 가난에서 내가 얻는 것은 힘들게 생활할 때 하늘의 위로가 더 크다는 것이다. 항상 약자와 가난한 자의 편에 서 주신 하나님은 가난과 결핍의 장소에 임재하시길 원하시며 그곳을 비울 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힘들 때마다 그 약속의 말씀을 떠올리며 다시금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곤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인 정직과 성실로 그 삶에 충실하며 안식으로 함께 하실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곤 한다.
가난의 영성으로 얻는 또 다른 유익은 나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한다는 것이다. 편하게만 살아온 내가 궁핍으로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 것은 그들과 함께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좀 더 충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 해준 것이다. 지금은 얼마 안 되는 물질로 나누는데도 인색할 수밖에 없지만 나중에 직장이 생기고 돈이 생기면 이때의 기억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물질위주의 사회에 편입되어 이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기를 바랄 뿐이다.
교회에 가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함께 하는 짧은 시간에 성도의 교제를 나누며 위로와 이해를 찾는다. 자주 서로 이해하지 못해 불신과 상처를 주고받지만 성령의 끈으로 하나된 공동체가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한다. 찬양과 말씀으로 하나되는 공동체, 얼마나 많이 듣던 이야기던가! 하지만 아직은 교회가 빈자와 약자를 돌보는 하나의 모습이 되면 더욱 좋겠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도 같은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되는 모임이 되면 좋겠다. 유학생의 처지를 인정받기 어려워 유학생은 유학생들끼리 모이게 되는 현상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만큼 유학생들도 교민들의 생활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다. 

다시 가계부를 꺼내며

저녁 5시가 되면 대개 집에 돌아간다. 그래도 한끼는 여유 있게 잘 차려 먹어야 하니까 고기도 굽고 국도 끓이고. 디저트로 과일도 한 조각. 쉬면서 보는 각종 고지서들 살펴보면 한숨만 나온다. 수입은 빠듯한데 빠지는 물구멍은 왜 이리 많은지... 가계부를 꺼내어 정리를 시작한다. 요즘 이래저래 너무 많은 돈을 쓰지 않았나 자책감이 몰려온다. 이런 추세로 학위 받을 때까지 수지를 맞출 수 있을지 걱정이다. 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까?
다시 마음을 정돈해본다. 하는 일에 정직하고 검소하게 그대로 신앙 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지 않고 품위를 잃지 않기. 결과가 어떻게 되건 이 길로 정진하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한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면 다음 단계의 일이 맡겨질 거라고 기대하며 최선을 다해서 하고자 한다. 만약 그게 안 된다면 아직 내가 그 일에 준비가 덜 된 거라 받아들이면 된다. 지출은 최대로 줄이며 생활을 지혜롭게 짜 내본다. 부지런을 더 떨면 좀 더 좋은 방법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주일이 기다려진다. 다음 주를 계획하며 머리를 쉴 수 있는 평안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내일의 시간표를 확인하며 가계부를 덮는다.
주님과 함께 한 내일도 무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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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


정말 제대로 알고 예배 드려야겠군!

"아는 만큼 누리는 예배" (홍성사, 2003),

송인규 지음, 233, 78백원

 

요즘은 조금 뜸해지고 그 열기가 식긴 했지만, 80년대 중후반과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송인규’란 이름 석 자는 일종의 문화 현상이었다. 그는 여러 책과 강의를 통해 기독교적 지성(Christian Mind), 기독교 세계관(Christian Worldview),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World Christian) 등 당시만 해도 고답적인 신앙 풍토가 만연하던 시절에 신앙 생활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신선한 개념들을 많이 소개했으며, 기독 청년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그의 독자들은 통과의례처럼 그의 책을 탐독하면서 비로소 궁핍한 시대를 넘어 무언가 말할 게 있고, 생각할 게 있고, 따져 볼 게 있는 기독교와 신앙 생활에 입문하게 되었다.

예배에 대한 설교식 에세이

저자로서의 송인규 교수(합동신학대학원, 조직신학)는 번역서와 설교 녹취 위주의 우리네 기독 출판계, 그 중에서도 복음주의권에서 아마도 본격적인 의미에서 저술 작업(Original Writing)을 해 온 선두 그룹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저자 이전에도 훌륭한 자질을 지닌 한국인 기독 저술가(Korean Christian Writer)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무언가 아쉽고 여전히 가려운 부분을 그대로 남겨 두는 경향이 있었다.

저자의 여러 특장점 중 하나는 본문성경공부에 탁월하다는 것으로, 이는 단순히 성경에 정통하다는 것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흥미를 느끼고 비교적 쉽게 그 본문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설과 질문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이다. 이 점은 IVF를 중심으로 한 그의 선교단체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터인데, 교회나 선교단체를 통해 성경공부를 충실히 해 온 이들이 적지 않지만, 그 가운데 교재나 글로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줄 아는 이들이 희귀한 상황에서 더욱 돋보이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아볼로 성경공부〉 시리즈를 들 수 있는데, 3부작 성경공부교재는 시중의 교재들과는 유가 다른 - 이 말이 꼭 누구에게나 최고의 교재라는 의미는 아니다 - 원숙한 면모를 보여 준다.

본지에 오래 연재되면서 평신도 신학의 새 지평을 열었던 『정말 쉽고 재미있는 평신도 신학』을 묶어 두 권으로 낸 바 있던 홍성사가 <송인규 교수의 신앙카페> 시리즈를 내기 시작해 그 기획과 구성에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책은 그 첫 번째 책으로 저자가 사역하는 새시대교회에서 3년 전 이맘 때 10주 연속으로 전한 “예배란 무엇인가?”란 주제별 설교를 독자들을 위해 새로 쓴 설교식 에세이(sermonic essay)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말을 통한 설교와 글을 매개로 한 책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여 모든 표현과 설명을 읽기에 적합한 형태로 바꾸고, 일반적으로 간략하고 단순히 전달되어야 하는 설교와는 달리 어떤 주제를 깊이 다루고 필요한 설명을 충분히 할 수 있으므로 설교 때보다 그 내용을 훨씬 자세히 정리”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섬김과 부복(俯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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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키워드

만약 우리에게 예배란 무엇인가에 대해 10주 동안 혹은 열 개의 주제로 나눠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주제들을 선정할 수 있을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모두가 매주 드리는, 하지만 썩 만족스럽지만은 않은 주일예배에 대해 할 얘기가 많지 않을까? 저자도 이 문제를 의식하고 열 장 중 2장부터 8장까지 일곱 장을 주일예배의 각 구성요소랄까 순서에 할애하고 있다. 말씀-기도-찬송-신앙고백-헌금-성례-축도가 그것이다. 각각의 의미와 한국 교회 예배에서의 문제점 그리고 보완책을 제시하는 방식을 취하고, 그 앞뒤로는 예배 본질로의 회복과 생활예배를 다룸으로써 예배에 관한 우리들의 고민과 불만, 무지와 편견, 관행과 전통을 두루 살피고 있다.

1장 “예배, 본질로의 회복”에서 저자가 내세우는 예배의 키워드는 섬김과 부복(俯伏)이다. 이는 곧 신령과 진정(진리)으로 드리는 예배 정신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진정한 앎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의 중심과 내면, 우리의 심령으로 예배”(23)하는 것을 말한다. 이어서 저자는 현대 예배의 예배 순서와 예배의 본질 또는 태도가 과연 연결이 되고 있는가에 의문을 던지면서 예배 의식 또는 순서로서의 예전(liturgy)의 필요성을 몇 가지 열거한다. 즉 예배에는 어떤 형식 혹은 일정한 틀이 필요하며, 질서와 일치 그리고 통일성을 위해서, 무시할 수 없는 전통으로서, 거룩한 공회(universal church)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예전의 도입이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예배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예전이 참 예배의 정신을 잡아먹는다는 데 있다”(26). 이후 저자는 이어지는 일곱 장에서 예전 즉 각각의 예배 순서를 하나하나 도마에 올려놓으면서 분석하고 있다.

한 번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은 것들

예배 순서에 대한 저자의 분석은 전체적으로 긍정적이며 따뜻한데, 이는 신학교 교수이자 현실 목회를 하는 처지에서 당연한 것으로 사료된다. 아마도 예배의 다른 당사자인 평신도가 이런 주제의 책을 썼다면 조금 또는 훨씬 다른 각도에서 접근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들은 현재와 같은 예전(禮典)에 별 문제가 없으며, 일부 보완하면 될 거라고들 생각하기 쉽지만, 예배에 수동적으로 일방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성도들의 관점에서 현대 예배들의 예전은 개선의 여지가 도처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자의 해설이나 지적이 그렇고 그런 수구적이며, 피부에 와 닿지 않을 정도로 피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또 대단한 오해이다. 추측컨대 대부분의 교회들은 저자가 논구(論究)하는 바 예전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교묘하게 편의적으로 왜곡해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무엇보다도 예배 순서에 대한 자세하고 친절한 교육을 하는 교회가 드물기 때문에 성도들은 알아서 눈치껏 따라가야 한다는 게 입증한다. 그러다 보면 교회를 수십 년 다녀도 예배 각 순서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채 습관적으로, 남이 하니까 따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새 신자들에 대한 예배 교육 입문서로 적당하다. 비록 저자는 이 책에 대해 “예배학 입문서나 예전에 대한 해설서가 아니며, 또 전통적 의미에서의 예배 갱신을 위한 안내서도 아니다”(6)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목회자나 신학생들이면 몰라도 성도들이 쉽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이런 책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 책은 실제적이며 유용한 안내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각 장 말미에 세 개씩 들어 있는 “송인규의 Think and Act”는 내용을 요약하면서 독자 자신의 예배 생활을 점검하고, 개선하도록 도와 주는 질문들이어서 소그룹에서 읽고 나누기에도 적당하다.

예배를 볼 것인가 아니면 예배할 것인가

예배의 여러 순서들을 하나씩 살펴보던 저자는 9장에서 예배와 관련된 통념들을 한시 바삐 던져 버리자며 ‘예배를 보다’에서 ‘예배를 드리다’로,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예 ‘예배하다’란 말을 쓰자고 주장한다. 저자는 공적 예배를 구성하는 세 요건으로 예배 정신, 공동체적 질서, 다양한 표현 수단을 거론하면서 “한국 교회의 예배는 예배에서의 공동체적 질서를 강조하고 음악이나 분위기 등 다양한 표현 수단에 대해서는 관심을 쏟으면서도, 정작 그런 것들을 통해 구현되어야 할 예배 정신에 대해서는 경시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201)는 통렬한 지적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마음의 강퍅함과 미혹에 얽매인 채 위선과 이중성으로 가득 찬 거짓 예배를 연출”하지 않기 위해 피해야 할 왜곡된 마음 상태로 외관주의(外觀, externalism), 형식주의(formalism), 수동주의(passivism), 감상주의(感傷, sentimentalism), 이분주의(二分, dichotomism)를 들며 경계하고 있다(207-9).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우리 각 개인과 한국 교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깊이 뿌리내린 예배와 삶 사이의 파편화된 분리를 회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활 예배’로 독자들의 시선을 옮기고 있다. 주일 예배와 같은 의식으로서의 예배가 아닌 일상 생활을 통한 예배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에게 아직 많이 생소하고 생경하지만, 저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 생활 예배야말로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참된 왕과 주인으로 높이는 일임을 알게 된다.

이 책의 배경 자체가 시리즈 설교에서 착안된 것으로, 저자가 친절한 설명과 구체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부분은 다소 이론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논리적인 모색을 하는 바람에 단조롭게 보이기도 한다. 이는 저자가 붙인 바 ‘설교식 에세이’가 갖는 장점이자 단점일 수도 있겠고, 한자가 섞인 개념어를 즐겨 사용하는 기성 세대들의 공통된 글쓰기 습관으로 읽혀진다. 그러나 적어도 이 책을 읽고 예배의 본질과 순서들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면 우리가 매주 드리는 예배나 일상 생활 속의 생활 예배를 좀 더 풍성하게 누리는 소득이 있게 될 것이 분명하다. 어제나 오늘이나 총론과 원론 수준에만 머물면서 디테일(detail)엔 무디고 약한 우리로선 이런 책을 통해 서둘러 변화와 개선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의식 있는 목회자들이라면 그저 관행에 안주하지 말고 이 책을 읽고 연구하면서 예배의 참된 의미와 예전의 바른 시행을 결심하면 좋겠고, 아울러 특히 젊은 독자들의 일독과 활발한 토론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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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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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야기 가운데서 우리는, 어떤 사람들에게 주어진 특수한 환경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부르심을 접하게 되며, 거기에 대하여 그들이 어떻게 반응하였고 그것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구체적으로 보게 된다. 이야기에 나오는 한 시대와 인물의 특수한 상황 안에 나 자신을 투영해 보는 일은 결코 놓칠 수 없는 묵상 포인트의 하나이기도 한데, 그것은 이러한 과정들 가운데서 성경은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도 동일한 생명력을 지닌 입체적인 말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야기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므로 우리는 어느 특정 인물의 입장에 선택적으로 서보게 된다. 이야기의 흐름이나 주제와 가장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람이 주인공이니 만큼 아무래도 그들의 입장에 서는 경우가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다가 시각의 폭을 넓혀서 조연들이나 단역들의 입장이 되어보기도 하는데, 이때에는 상대적으로 그 의미나 교훈을 건져내기가 쉽지 않거나, 아니면 반대로, 뜻밖의 깨달음을 선물처럼 얻게 되기도 한다.

성 경에 나오는 조연과 단역들에 대하여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시작한 것은 열왕기 시대의 이야기들을 묵상하면서 부터였다. 왕 한 사람이 정직한지 악한지에 따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좌우되는 것을 보면서, 그렇다면 일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의미는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궁금함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이름도 빛도 없는” 이들이 많이 나오지만, 대개 본문은 그들의 생각과 판단에 대하여 많은 언급을 하고 있지 않으므로 이러한 인생들의 구체적인 모습이나 의미를 헤아리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관찰과 묵상이 요구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성경의 다른 곳을 살펴보기도 하고,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일들의 인과관계를 성경적 원리라는 보편성의 빛 아래에서 음미하면서 시공을 초월한 두 시대의 상황들을 오버랩해보기도 한다. 오늘의 삶을 관찰하는 일은 성경의 이야기 안에서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그들의 삶을 묵상하는 일은 오늘의 삶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경우에, 이 시대의 한 부분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이야기는 더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이 된다.

그 래서, 때때로 묵상 가운데 건져올린 작은 깨달음 하나가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깨닫게 하는 신선한 시각을 주기도 하는데, 이렇게 얻는 깨달음은 그 대상 인물들이 이야기 속에서 스쳐 지나갔던 것처럼 스쳐 보내기에는 아까운 것인 경우도 종종 있다. 성경에 잠시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특별한 묵상의 의미를 주었던 이름들에는 아벨, 에서, 이름 모를 선지자들, 그리고 아말렉 족속도 포함되어 있었다.

1. 아벨: 이 생을 넘어선 영원으로의 시각

아 벨은 하나님 앞에서 제사 한 번 잘 드린 죄 아닌 죄로 인류 첫 살인 희생자가 되었으며, 가해자 가인은 모든 범죄자의 조상이 되었다. 가인은 결국 자기 죄에 상응하는 징계를 받았고, 또한 하나님의 긍휼의 손길도 경험하였다. 다만 아벨의 입장에 섰을 때 의문을 감추기 어려웠던 것은, 가인이 자기 죄에 합당한 형벌을 받았다고 해서 이미 죽임을 당한 그의 억울함이 온전한 위로를 받을 수 있었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내가 아벨의 입장이었다면 어떠했을까?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흠 없는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받았어야 할 기본적인 보호조차 받지 못한 채 끔찍한 일 가운데에 그대로 내버려졌다고 혹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아 벨에 관하여 그의 입장에서 곰곰히 생각해보면, 비록 죽임을 당하는 그 순간에는 몹시 억울하고 고통스러웠겠지만, 사실 그는 그 모든 일들 가운데서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게 된다. 아벨이 자기에게 닥친 일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아벨이 죽었을 때는 인류 최초의 인간이었던 그 아버지 아담조차 아직 생존해 있었다. 따라서, 아벨이 천국에 들어갔을 때, 그곳은 아직 텅 비어서 하나님과 천사들 이외에 사람의 영혼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천국 역사상(?) 처음으로 입성한 유일한 인간이었으며, 오히려 천국의 ‘설립자 스탭 (founding staff)’의 일원으로서 늘 주님 가장 가까이에서 동행하고 동역하면서 이후에 올 모든 영혼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먼저 된 자로서 섬김어린 주인의식을 가지고 다른 영혼들의 처소를 주님과 함께 마련하고 있었을 그의 마음은 지극한 영광스러움과 보람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더구나, 계시록은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순교자들이 먼저 살아나서 주님의 다스리심에 참예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니, 인류 최초의 순교자인 아벨은 천국의 맨 처음에 함께했던 사람이자 세상 끝날에 맨 먼저 예수님을 보좌하는 사람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아벨은 가엽고 안타깝게 생각되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부러워해야 할 대상이 아닐런지…

우 리는 종종 선인이 고통받고 악인이 형통하며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언제나 공평하게 이루어지지만은 않음을 목격한다. 죄에 의하여 왜곡된 세상이 되므로써,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반하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세상의 참 주인이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 일들 또한 하나님께서 그리 되도록 허락하신 것이 아닐 수 없음을 기억하게 된다. 이 생각은 더 큰 깨달음으로 우리를 인도하는데, 즉 조금의 불완전함이나 부당함도 용납하실 수 없는 주님께서 이 모든 일을 허락하셨다면 그것은 이 땅에서의 일이 결코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무언으로 역설하시는 그분의 메세지일 수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받을 수 없었을 아벨이 천국에서 얻는 더 큰 행복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일과 결과에만 집착하곤 하는 우리의 시선이 얼마나 현세적인 것이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다스림의 영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이 땅으로부터 영원으로까지 확장될 때, 이 세상의 일들 가운데서 우리가 가지게 되는 수 많은 의문들 역시도 비로소 많은 부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벨은 그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원의 삶이라는 시각을 일깨워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생을 넘어선 저 생의 소망을 가지고 경주하도록 큰 위로와 격려를 주고 있는 것이다.

“주님, 나로 하여금 땅만 보고 사는 자 되지 않게 하사, 눈을 들어 하늘을 보게 하여주소서…”

2. 에서: 물질을 구하는 자 물질로, 영혼을 구하는 자 영혼으로

야 곱의 꾀에 넘어가서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의 입장에 섰을 때 이해하기 어려웠던 점은 차별에 관한 문제였다. 약삭빠른 야곱은 이십 여년 간이나 인생의 쓴 맛을 경험하였지만 마침내 그 소원대로 영적 장자가 되어 그 자신이 하나님 백성인 이스라엘이 되었다. 그러나, 에서의 경우에는, 겨우 어릴 때의 작은 실수로 여겨질 수도 있었을, 소위 ‘팥죽 사건’에 대하여, 그는 끝까지 회개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였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그는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입지 못하였고, 친아버지에게서 조차도 축복을 얻지 못하였다고 성경에는 나와 있다. 그렇다면, 야곱과 비교할 때 에서에게 주어진 이 모든 처사는 과연 공평한 일들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에 서는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지 못했을 때 무척이나 서러워 하였다. 하지만, 그것이 영적인 의미에서였는지 현세적인 의미에서였는지는 해당 본문만으로는 판단하기가 다소 불분명하다. 다만 그가 하나님의 주 되심 앞에 인격적으로 나아가길 소원했다는 이야기가 성경의 다른 곳에 더 언급되고 있지 않은 점으로 미루어 짐작할 때, 그가 진정 원했던 것은 ‘하나님’이었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선물’ 이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랬다면, 그는 애초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하게 된 줄로 알고 슬퍼하였지만, 사실은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을 다 얻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창세기에 에서의 소유가 풍부하였다고 언급된 것이나, 훗날 야곱과 재회할 때 그가 사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이끌고 나타날 수 있었던 모습으로부터, 우리는 에서가 약 사천 년 전 부족국가 시대 당시에 권세있고 풍족한 왕과 같은 지위에 있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현세적인 부귀와 복을 원했던 에서의 경우에 하나님은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셨고, 그리하여 그는 이 땅에 머무는 동안 오히려 야곱을 능가하는 가진자와 지배자의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너는 에돔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그는 너의 형제니라... 그들의 삼대 후 자손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올 수 있느니라.” (신명기 23:7-8)

성 경을 보면,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실 것이라는 우리의 막연한 생각과는 다른 말씀들이 눈에 띈다. 위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에서의 후손은 형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계신다. 모압이나 암몬 족속과는 달리, 그들은 여호와의 총회에도 들어올 수 있었다. 즉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되는 일에 있어서 에서의 후손들은 이스라엘 후손들과 삼대의 차이만이 있었을 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지위를 누릴 수 있는 길은 온전히 열려있었던 것이다.

다 만, 영원한 것을 구하지 않았던 에서에게는, 야곱과는 달리 이 세상의 울타리 너머에까지 면면히 이어질만한 삶의 영적인 의미는 없었다.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을 살지 않았던 에서였기에 하나님은 삼대의 간격을 두셔야 하셨을 것이다. 오히려 여기에서 우리는, 에서가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근본적인 애정을 버리지 못하여 후손들에게나마 하나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계시는 ‘하나님의 기다리심’을 발견하게 된다. 에서의 삶을 통하여 우리는 인격적이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의 참다운 면모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에 비추어 곱씹어볼 때, 에서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이 그를 싫어하셨다는 말은, 실상은 그의 미래의 모습을 현재처럼 볼 수 있으셨던 하나님께서 그의 잘못된 중심을 미리 보아 아시고 그 중심을 기쁘게 여기지 않으셨던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 그가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는 말씀도, 결국은 팥죽 사건으로 표면화된 그의 내면의 중심이 그의 평생을 사는 동안 변화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었다는 의미와 다름아닌 것이다. 따라서, 어쩌면 에서야말로, 잘못된 인생의 선택과 죄된 삶의 모습들 가운데서 더욱 충만하게 드러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인생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하 나님의 은혜가 넘쳤기 때문에, 그의 삶에는 더욱 안타까운 그늘이 드리워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가 자신의 소원에 따라서 현세적인 부귀를 누렸지는 모르지만, 그러는 동안 그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눈길을 깨닫지 못했고 결국 그분께로 돌아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혹 마음의 문만이라도 열었더라면 언제고 그의 안에 들어와서 그와 더불어 잡수셨을 주님이, 그의 평생이 다가도록 문 밖에서 기다리기만 하시다가 결국 들어오지는 못하셨다면 주님의 마음은 또 어떠하셨을까?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을 구하고 그분을 소원하였을 때 닥쳐오는 고난이 실은 그분의 섭리 안에서 우리를 향한 큰 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야곱의 인생의 경우와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에서의 삶이 주는 가장 큰 교훈의 하나는, 내일 일 조차 알지 못하는 나의 소견에 옳은대로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삶 가운데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중요함을 아는 일이다. 우리는 때로, 잘못된 기도제목이었지만 강청하며 기도하였더니 그 소원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오히려 영적 위기를 뜻할 수 있음을 우리는 에서의 인생이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하여 배우고 있다. 그리고, 혹 세상에 한눈 팔다가 주님 아닌 다른 것을 붙잡은 경우라 하더라도, 우리를 향한 지극한 은혜와 사랑을 거두지 않으신 채 주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함을 에서의 삶은 우리에게 역설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주님, 어리석은 나의 소원대로 이루지 마시고, 오직 완전하신 주님의 뜻에 따라 나를 이끌어 주소서…”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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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린 사람들

-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쓴 책 두 권


영광의 문(복 있는 사람, 2003), 343, 1만원

엘리자베스 엘리엇 지음, 윤종석 옮김

원제 Through Gates of Splendor

전능자의 그늘(복 있는 사람, 2002), 412, 12천원

원제 Shadow of the Almighty


630일 미국 코스타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가는 비행기에서 읽은 포켓판 양장본 영광의 문(Through Gates of Splendor)은 느낌이 남달랐다.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이 책에 나오는 다섯 주인공 중 코스타가 열리는 휘튼 대학 출신들이 있다는 것과, 이 책이 나온 지, 아니 이 책에 나오는 다섯 선교사들이 남미 에콰도르에서 살인부족 아우카 인디언들에게 살해당한 지 어언 50년이 되어 가기 때문이었다.

현대 선교의 고전, 필독서

짐 엘리엇, 피트 플레밍, 에드 맥컬리, 로저 유데리안과 비행(飛行) 선교사 네이트 세인트가 에콰도르 정글 깊숙한 한 강변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접근하던 아우카 부족의 창에 찔려 순교한 것은 19561월의 일이었다. 짐 엘리엇 선교사의 부인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같은 해에 남편의 일기와 기록들을 정리하면서 이 책의 자매편 격으로 좀더 널리 알려진 전능자의 그늘(Shadow of the Almighty, 작년에 같은 출판사에서 역시 포켓판 양장본으로 역간)을 집필하던 중에 다른 네 미망인 선교사들의 부탁을 받고 이들 다섯 선교사와 주변의 기록을 엮은 이 책을 먼저 냄으로써 전세계에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알리고 그로써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들이 속출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 두 책은 지난 50년 가까이 현대 선교의 고전, 필독서로 널리 읽혀 왔다. 인터넷 영문서점 아마존(amazon.com)에 들어가 Through Gates of Splendor를 검색하면 18개의 짧은 독자 리뷰를 읽을 수 있는데, 그 중 몇몇 리뷰는 이 책을 20년 전, 30년 전에 읽고 최근 다시 읽었다는 고백으로 시작하고 있을 정도로 영어권 기독인들에겐 널리 알려진 책이다. 전도유망한 20대 후반의 헌신된 다섯 젊은이들이 살인부족의 창에 찔려 죽었다는 이 비보는 그 후 세계 각지의 각종 선교대회와 수련회 등에서 널리 알려지면서 후배들의 각오와 헌신을 불러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언론들도 하나같이 호평을 하고 있는데, Christianity Today 같은 잡지는 “엘리자베스 엘리엇의 기록은 감동적 작품 이상이다. 그것은 복음 증거의 심장박동 자체다.”라는 최상의 찬사를 아끼지 않을 정도이다. (실제로 전능자의 그늘 프롤로그 여덟 페이지만 읽어봐도 이 말이 별로 틀린 말이 아님을 눈치챌 수 있다.)

그들은 영웅도 순교자도 아닌 그리스도인이었다

무엇이 전도유망한 다섯 젊은이들을 남미 에콰도르의 이름 없는 한 살인 부족에게 나아가게 만들었을까? 이들은 굳이 그들에게 접근하지 않더라도 사랑하는 처자식을 둔 평범한 보통 선교사로서 할 일이 많지 않았을까? 그들은 명성이나 모험을 즐기며 무슨 큰 일을 찾고 있던 걸까? “사람들은 짐 (엘리엇)과 그와 함께 죽은 이들을 영웅으로, 순교자로 칭송했다. 나는 찬동하지 않는다. 본인들도 찬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것과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이 그토록 크게 다른 일이란 말인가?(전능자의 그늘 초판 서문에서). 저자의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과 선교가 무엇인가를 웅변적으로 그리고 역설적으로 증거한다.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바보가 아니다.” 짐 엘리엇이 1949년 휘튼 대학에 재학중일 때 남긴, 그 후로 지금까지 여러 사람들의 결단의 순간에 되뇌어지는 이 유명한 말은 그대로 그들의 삶이 되었다.

이 두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이들 5인의 개척선교와 선교사로서의 삶과 사역도 감동적이고 도전적이지만, 그걸 묵묵히 그리고 성실하게 기록으로 남기고, 그 기록들을 발로 찾아 다니면서 책으로 묶어내는 장인정신이다. 자신의 삶의 여정, 사역의 순간들, 생각의 편린들을 (누가 보든 안 보든) 그저 일상처럼 적어 내려가는 동안 이들은 또 얼마나 하나님과 살깊은 대화를 나누었을까. 그 묵상의 깊이는 아마존 정글의 깊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모자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 뿐인가. 부창부수(夫唱婦隨)라 했듯, 또 그 일기와 메모는 물론, 가족과 친구 등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하면서 옛 기억들을 복원해 내는 동시에 오늘의 독자들이 호기심과 흥미를 잃지 않고 끝가지 읽어 나가도록 붙잡는 성실한 글쓰기는 수작(秀作), 역작(力作)의 견고한 기초를 이룬다. 모르긴 해도 이들이 오늘을 살았다면 니콘이나 캐논 디지털 카메라로 영상 기록을 남기고,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수려한 포토 에세이로 기도편지를 대신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록을 남기고 책으로 묶어내는 장인정신

여기서 우리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본격적인 선교를 하기 시작한 지 어언 30년이 되고 있고, 지구촌 곳곳의 미전도종족에 이르기까지 만 명이 넘는 일꾼들이 나가 있고, 1세대 선교사들은 이제 은퇴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선교지 르뽀나 선교사 전기, 자서전, 회고록으로 내세울만한, 권할만한 책들은 극히 미미한 편이다. 시작은 다들 감동적이고 드라마틱한데, 그 후 어떻게 일했더라는 피부에 와 닿는 생생한 기록들은 아직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선교사들 자신과 단체들, 파송교회들의 일차 자료(기록물)에 대한 인식 부족, 문서 자료에 대한 푸대접이 주된 원인일 것이다. 기도 편지는 물론 사역 기록(spiritual journal)에 대한 훈련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듯하며, 사진 자료로 가면 그 희소성은 더해만 간다. 요르단의 김동문 선교사 표현을 빌자면, 아무 근거 없는 알량한 선교보안 의식만 버려도 크게 달라질텐데 말이다.

이것은 비단 선교 뿐 아니라 내로라하는 쟁쟁한 1세대 목회자들의 은퇴를 코앞에 두고 있는 목회 영역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별로 쓸데없고, 그 얄팍한 울타리만 벗어나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이너서클(inner-circle)의 용비어천가 식 찬하(撰賀)나 무성하지, 그들의 인간적, 사회적, 목회적 고충과 분투를 있는 그대로 리얼하고 균형있게 묘사하고 기록해 비단 그 추종자들 뿐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에 널리 읽히면서 인구에 회자되는 당대 유명 목회자, 운동가들의 전기, 자서전, 회고록은 언제쯤 나올 수 있을지 가히 요원하기만 하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남편의 끔찍한 죽음이란 시련을 딛고 쓴 이 두 책은 이런 의미에서 오늘을 사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중의 감동과 도전을 주기에 충분하다. 짐 엘리엇 선교사들처럼 치열하게 살고, 기록을 남기며, 엘리자베스 엘리엇과 같이 그 기록들을 고르고 정리해 책으로 묶어내는 장인정신에 대해 생각할 때이다.

사족 1. 요즘 나오는 책들은 내용 못지 않게 표지도 신경 써 만드는 게 많은데, 영광의 문은 아마존 정글을 드러내는 듯한 청색과 흑색만을 쓰면서 젊은 다섯 선교사들의 50년 된 활짝 웃는 흑백 사진을 앉혔는데, 마치 정글의 새벽을 여는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어 인상적이었다. 또 이 두 책은 등장인물도 같고 저자도 같지만, 판형과 번역자(윤종석)도 같아서 일관된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좋았다.

사족 2. 다섯 선교사가 죽임 당한 후 살인부족 아우카족은 어떻게 됐는지 그 결말이 궁금한가? 두 책 중 하나만 읽어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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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3년 11월

그 런 다음에 악마는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주겠다. 이것은 내게 넘어온 것이니,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줄 것이니, 내 앞에 엎드려서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갖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였다." (누가복음 4:6-8, 표준 새번역)

하 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사람이 대신 가져가는 것.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시작하는 최초의 반역이자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전략이다. C. S. Lewis는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에서 교만의 문제를 다루면서 그 장(章)의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 "가장 큰 죄."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릴 때 쓰기 좋아하는 최선의 무기는 바로 교만이라는 실탄이다. 그는 여간해서 이 실탄에 쓰러지지 않았던 이들을 본 적이 없을 정도이다. 다행히 예수님께서 최초의 유혹에서 승리의 모본(模本)을 보여주셨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행스러워 할 뿐이다.

찬 양을 인도하는 이들에게, 휘황찬란한 조명을 받는 입장에 서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최대의 무기 역시 바로 교만이라는 무기이다. 해가 지날수록, 찬양 인도자의 입장에서 사람들 앞에 서는 시간이 많아지고 길어질수록 나에게도 똑같은 유혹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것을 항상 경험한다.

지 난 2003년 시카고 코스타에서 나는 한 목사님으로부터 친필의 편지를 받았다. "찬양팀 박목사님에게, 저는 *** 교회를 섬기고 있는 *** 목사입니다. 많이 망설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편지를 씁니다. 저는 지난 9*년부터 Kosta-USA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올해까지 *번을 참석하고 있는 나름대로 Kosta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번 찬양팀이 제일 뛰어난 연주 실력을 가진 팀이라고 여겨집니다. 진심입니다... 이번 찬양팀을 보면서 찬양과 찬양팀이 예배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느끼고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중략) 전혀 개인적인 느낌과 의견이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한번만 깊이 생각해 봐 주십시오. 어제 저녁 마지막 찬양은 좀 오버했다는 것이 제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그것은 찬양이 너무 현란하고 요란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제 조금씩 나이가 먹어 가는 사람이지만 찬양할 때 소리치고 춤을 추며 빠른 템포로 드럼을 치지 않고는 토해내고 표현해 낼 수 없는 감동을 인정하며 인정할 뿐만 아니라 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어제 찬양과 연주의 중심에 누가 있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제 찬양이 과연 Praise the Lord 였느냐, 아니면 Praise the Music and the music play 였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버했다는 것은 취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오버는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누구에게 혹은 무엇에 취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혹시 어제 찬양과 연주는 자신과 자신들의 연주에 취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혹시 어제 찬양과 연주를 통하여 하나님이 드러나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여러분의 현란한 그리고 탁월한 연주를 드러낸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와 같은 오류는 저와 같은 설교자들도 일상적으로 범하는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지 못하고 은근히 설교자 자신을 드러내고 과시하는... (후략)"

목 사님의 편지는 세 번째 날이었던 수요일 밤에 있었던 '찬양의 밤' 시간에 마지막 피날레 곡으로 "Romans 16:19 Says"를 부르면서 젊은 사람들과 그야말로 헤드 뱅잉(Head banging)까지 해가면서 격정적으로 마쳤던 그 순서를 보시고 돌아오셔서 쓰신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 마지막 시간에 앙코르를 외쳐대는 사람들의 호응에 발맞추어 의자까지 들었다 놓았다 하는 쇼(?)를 연출했던 나의 모습을 확연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 편지가 나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쓴다는 목사님의 편지는 비록 코스타가 지난 몇 달 후에 누군가의 손을 통하여 전달되어 읽어보게 되었지만, 내 삶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 편지가 되었다. 답장을 통해서 나는 목사님께서 설교자 자신에게도 이러한 똑같은 유혹이 찾아옴을 진솔하게 표현해 주신 마음에 감사 드리며 늘 하나님 앞에서 오버하지 않으며 그저 질그릇처럼 소담하게 주님의 위대함만을 담아내는 사람이 되겠다고 감사의 편지를 드렸다. 요즘 그 결심을 잘 지키고 있는지 오늘 생각해 보니 여전히 오버하는 삶의 순간들이 참 많았다는 것을 느낀다.

요 즘 우리 교회에서는 지난 두 주 동안 계속해서 인터넷이 다운되는 사태가 발생해서 여러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사무실 집사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누군가의 컴퓨터 내에 들어온 웜 바이러스가 교회 내 모든 인트라넷에 일으킨 현상이라고 문단속 잘하고 정말 조심해야 한다는 당부를 들었다. 그런데 지난주일 아침 컴퓨터를 켜보니 또 인터넷이 안 되는 것이었다. 주일에만 켜는 도서관 컴퓨터나 다른 부서의 컴퓨터에 숨어있던 이 녀석들이 컴퓨터를 켜는 순간 다시 또 인트라넷에 퍼져서 일어난 일임이 분명했다. 해결책은 그 문제를 일으킨 본래의 컴퓨터를 찾아낸 후에 안티 바이러스 프로그램을 돌리고 돌려서 완전히 사멸시킬 때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씀이 내겐 내 안에 숨어 있는 가장 큰 죄, '교만'이라는 웜 바이러스를 말씀하시는 이야기로만 들린다.

음악인의 탁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찬양, 설교자의 탁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설교. 이 두 가지는 목사로서 또 예배 인도자로서 늘 조심하고 명심해야 할 웜 바이러스(Worm Virus) 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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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3년 11월


글을 시작하면서

아 내가 아이를 가진 지 8개월이 되면서 아내는 태어날 아이를 위해 필요한 물품을 준비해야한다고 마음이 많이 바빠지고 분주해졌다. 그렇다고 구체적으로 무얼 사는 것도 아니면서 여기 저기 아기 용품을 수소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얼마 전 출산한 친구에게서 천 기저귀, 요람, 젖병, 속옷 등을 받아 오더니, 얼마 전에는 예비 아빠를 통해 처형 네가 쓰던 아기 이불, 목욕통 등을 가져오게 했다. 오래 쓰지 않을 물건이니까 그런다고 하면서....

아 내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필자가 유학하던 필라델피아에서 받은 신선한 충격이 생각났다. 필자가 필라델피아에 있을 때 살던 집은 학교와 주변 지역의 경계에 있었는데 학생들을 제외하면 주민들의 대부분은 흑인들이었다. 유학 초기에 집 근처 분위기도 익힐 겸해서 걸어서 (미국의 대도시 지역에서는 지금도 그렇지만 흑인가에 걸어 다니는 것을 좀 위험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 주변 상점과 주택가를 돌아 본 적이 있다. 조금은 경계도 하면서 이곳 저곳 살펴보는 것이 꽤 재미가 있었다. 길가에 피어있던 무궁화 꽃을 보니 갑자기 한국이 생각나기도 하고 높지 않은 집들이 줄지어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런데 한 군데 Second -Mile Center라는 간판에 눈이 끌려 들어가서 이것저것 보면서 진열해 놓은 물건들이 대부분 집에서 쓰던 물건들이거나 입던 옷들이었다. 어떤 것들은 많이 낡은 것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아주 쓸만한 것들도 있었다. 가구를 비롯해서 집안 잡동사니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그리고 손님들도 상당히 많이 들어와서 물건을 보고 사곤 하는 것이었다. 그 때까지 필자의 경험 상 한국에서는 쓰던 물건을 내어다 파는 경우를 잘 못 본 터라 좀 생소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가게에 있는 손님들의 표정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보였다. 손님 중에는 백인도 있고 흑인도 있고 가끔 씩 동양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 사람을 볼 수는 없었다. 물론 한국 사람이 주변에 그렇게 많이 사는 것은 아니라서 기대하기는 어려웠겠지만....

우 리 한국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이 쓰던 물건을 가까운 사람에게 나눠주거나 빌려주는 경우는 간혹 있어도, 시장에 내다 파는 경우는 흔치 않은 탓에 필라델피아에서의 첫 중고가게 경험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차츰 그곳을 스스럼없이 애용 (?)하고 주위에 소개도 하면서 그 곳의 이름이 산상수훈의 5장 41절에서 유래하고 있는 것과 그 곳의 수익의 대부분을 선교헌금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물건값이 아주 싸고 물건들도 쓸만할 뿐만 아니라 가게의 운영목적이 마음에 들어 유학생활을 마무리할 때까지 적극적으로 이곳을 이용했던 기억이 새롭다.

흔 히 쓸 것은 쓰고 남은 것을 이용하여 재활용을 하면 환경을 보호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미 만들어진 물건을 다시 쓰면서 환경을 보호한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그리 많은 것 같지 같다. 특히 생활용품이나 옷 종류는 안 쓰거나 안 입는 한이 있어도 남이 쓰던 것을 다시 쓰지 않는 것 같다. 아주 잠깐 쓸 것들을 제외하면. 이러한 경우는 우리 한국 사람들에게 좀 더 강한 것 같다. 아마도 위생을 고려하면서 생긴 습관이기도 하지만 다분히 체면을 따지는 경향에서 생긴 것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 쓰기의 효과들

가 정에서 할 수 있는 여러 환경보호 대안 중에서 줄이기가 에너지 사용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것이라면 다시 쓰기는 원천적인 의미에서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기 위해 자원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보다 근본적인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시 쓰기를 생활화하게 될 경우 필요한 물건을 새롭게 생산하거나 다시 만들어 쓰지 않아도 되므로 에너지와 자원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처리 할 쓰레기의 양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된다.

구체적으로 다시 쓰기를 통해 얻게 되는 환경보호의 효과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째로 쓰레기의 양이 현저하게 감소하게 될 것이다. 즉 쓰고 나서 버리게 될 물건들이 쓰레기더미에 쌓이는 양이 줄어들어서 다양한 환경보호의 효과를 얻게 된다. 쓰레기를 태우거나 매립할 경우 나오게 되는 유독가스나 침출수 등으로부터 지하수를 보호할 수 있게 된다. 경제적으로는 매립비용이나 소각비용을 줄이게 되어 결국 납세자의 부담이 한결 가볍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둘 째로, 자원보호의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다시 쓰기는 그 자체로 새로운 물건을 생산하거나 재활용하는 것보다 에너지와 자원을 덜 쓴다. 미국의 예를 들면, 유리병을 다시 쓰면 새로운 병을 만들어 내는 데 드는 것보다 93 퍼센트의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또한 1991년 통계에 따르면 미국 비즈니스 업계에서만 매년 2천 1백만 톤의 종이를 사용하는 데 이는 나무의 양으로 약 3억 5천만 그루에 해당한다고 한다. 만일 복사하는 데 종이를 양면으로 사용하는 비율을 26퍼센트에서 60퍼센트로 높이면 약 1천 5백만 그루의 나무를 살릴 수 있다.

셋 째로, 에너지 효율이 높아진다. 하나의 물건에 들어 있는 에너지는 그것을 처음에 생산하는데 필요한 에너지의 양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쓰기는 이렇게 물건에 들어있는 에너지의 양을 보존한다. 예를 들어 자동차 타이어의 바닥을 갈아붙이는 것이나, 건축 폐 자재를 이용해서 건물을 짓는 것이나, 자동차 부품, 복사기, 프린터 카트리지 등을 비롯한 여러 제품을 재 가공하는 것을 통해 상당히 높은 효율의 에너지 보존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넷 째로, 오염을 줄일 수 있다. 다시 쓰기를 통하면 쓰레기를 태우거나 매립하면서 생겨나는 대기오염 및 수질 오염을 피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종이생산을 할 경우 매년 수백만 파운드의 유독성 화학물질을 강이나 바다로 흘려보내게 되는 데 이때 수질이 악화되면서 먹이사슬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또한 대기 중으로 이산화 황, 아세톤, 메탄올 등을 비롯한 각종 연기들을 내뿜게 되면서 공기오염은 물론 산성비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재활용 종이를 생산하는 경우에는 종이를 처음 생산하는 것보다 환경에 적은 부담을 주지만 그래도 잉크를 제거하면서 생겨나는 슬러지를 처리하기 위해 매립을 하거나 소각을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공기나 수질을 오염시키게 된다. 종이를 다시 쓰면 이러한 환경부담을 줄이게 된다. 종이를 이용해서 만든 기저귀나 쇼핑백, 공기필터, 커피필터 등을 사용하기보다는 천으로 만들어서 물로 빨아 쓸 수 있는 것들을 사용하면 다시 쓸 수 있어 종이 사용을 현저히 줄이게 되며 아울러 나무 사용이 줄게 될 것이다.

다 섯 째로, 다시 쓰기를 실천하게 되면 경제적인 면에서 많은 이점이 있다. 즉 다시 쓰기를 통해 많은 직업과 경제활동이 생겨날 잠재력이 있다. 만일 다시 쓰기가 대중적인 관심을 끌게 되면 버려질 물건을 다시 쓰는 데 비즈니스와 고용 기회가 생겨날 것이다. 가령 위에서 예로 든 중고 가게 전문점이 특정분야마다 생겨날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 전문 대여점이 생겨날 수도 있다. 또 소비자로서 개인은 필요한 물건을 싼값에 사용할 수 있어서 필자처럼 경제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얻게 된다. 나아가 국가 전체로 보면 상당한 경제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다시 쓰기를 위한 방법들

그렇다면 가정에서 다시 쓰기를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은 무엇이 있을까? 다음에 몇 가지의 원칙과 함께 좀 더 구체적인 것들을 살펴본다.

1. 제품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지 생각한다.
어떤 제품이든지 한 번 이상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잘 돌이켜 보면 흔히 일회 용품이라고 하는 것들도 사실은 몇 번 씩 쓸 수 있다는 것을 경험상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물며 일회용품으로 만들지 않은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제품을 살 때 다시 쓸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음식을 위한 용기를 다시 사용할 때는 적절한 위생을 확보해야만 한다.

 a. 사기나 유리로 만들어진 컵은 다시 씻어서 오래 쓸 수 있으므로 일할 때나 집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음료수를 마실 경우 자기 자신의 컵을 사용한다.
 b. 집에서나 일할 때, 파티를 하거나 소풍 또는 여행을 갈 때 씻어서 다시 쓸 수 있는 견고한 주방용품 즉, 포크나 수저, 접시, 그릇 등을 사용한다.
 d. 일할 때나 집에서 레이저 프린터와 복사기와 팩스 기계 등의 카트리지가 재충전 가능한 지 확인 후 구입한다.
 e. 종이가 아닌 천으로 된 냅킨, 스펀지, 행주 등을 사용한다.
 f. 음료수나 세제 등을 구입할 때 다시 담을 수 있는 용기에 들어 있는 제품을 고른다. 어떤 제품은 소비자가 직접 다시 담을 수 있게 되어 있다.
 g. 가능하다면 건전지를 살 때 재충전 가능한 것을 고른다. 그렇지 않다면 유해 물질이 적게 든 건전지를 고른다.
i. 만일 어쩔 수 없이 일회용을 쓰게 될 경우 필요한 것을 딱 한 번만 쓴다. 예를 들면 일회용 케첩 봉투나 냅킨의 경우 하나 이상이 필요하지 않을 경우 단 하나만 쓴다. 맥도널드에 갔을 경우 하나의 케첩을 달라고 한다.

2.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은 잘 보관하고 고쳐 쓴다.
오래 쓸 수 있는 옷과 타이어와 가구들은 잘 보관하고 고쳐 쓰면 잘 닳지 않고 부서지지 않아서 자주 바꾸지 않고 버리지 않아도 된다. 비록 제품 값이 처음에는 좀 나가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오래 쓸 수 있는 장점으로 인해 그 비용이 상쇄되거나 훨씬 경제적이다. 그렇다면 어떤 제품을 어떻게 구매하고 관리할 수 있을까?

j. 오랜 기간 동안 품질을 보증하는 오래 가는 가구와 가전제품을 구매한다. 소비자들의 제품 평가보고서를 확인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제품을 쉽게 고칠 수 있는 지도 알아보아야 한다.
k. 가전제품을 사용할 때 제품 설명서를 따라 적절히 사용하고 관리한다.
l. 차나 자전거 등의 타이어를 살 때 질 좋고 오래 가는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타이어를 자주 갈거나 버리는 경우를 줄인다. 타이어의 수명을 연장하려면 타이어의 압력을 한 달에 한 번 씩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타이어를 정기적으로 바꿔 끼운다. 가능하다면 재생 타이어나 재 가공한 타이어를 사용한다.
m. 옷이나 구두, 핸드백이나 서류 가방 등을 가능한 대로 고쳐서 쓴다.
n. 가구나 스포츠 용품, 장난감이나 연장 등을 살 경우 제품을 오래 사용할 경우를 고려하여 견고한 제품을 산다.
o. 전구를 살 경우 백열등보다는 에너지가 적게 드는 형광등을 산다. 형광등은 백열등보다 훨씬 오래 사용할 수 있어서 전구를 자주 갈아 끼지 않아도 된다.

3. 봉지와 저장 용기를 다시 쓴다.
매일 사용하는 제품들의 대부분은 한 번 이상 사용 가능한 것들이다. 가방이나 저장 용기들을 버리기 전에 위생적으로 실제적으로 다시 쓸 수 있는 지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품을 다시 사용하면 그 수명을 연장하게 되고 아울러 쓰레기를 줄이는 효과도 얻게 된다. 각 개인의 특수성에 맞게 학교에서나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공동체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p. 종이봉지나 플라스틱 봉지를 다시 쓴다. 잘 살펴보아서 그 봉지들이 쓸만하면 다음 번에 장을 보러 갈 때 다시 사용한다. 또는 끈으로 만들거나 천으로 만든 봉지를 가져간다. 만일 재사용 봉지가 없고 한 두 가지의 물품을 구입할 경우 정말로 봉지가 필요한 지 재고해 본다.
 r. 한 번 쓴 종이나 봉투를 다시 사용한다. 복사하거나 쓴 종이의 다른 쪽 면도 사용한 후 재활용할 수 있게 한다. 선물 상자, 리본, 포장지 등을 보관했다가 다시 사용한다. 집안에 모아둔 것들 중에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을 검사하고 목록을 작성해 두었다가 필요한 때 사용한다.
 s. 신문지나 상자, 포장용 땅콩 등을 모아 두었다가 물건을 싸서 부칠 때 다시 사용한다. 또한 신문지는 유리창을 닦을 때 쓰면 효과가 좋다.
t. 빈 병, 플라스틱 병, 우유 잔, 커피 캔 등의 저장 용기를 버리지 않고 씻어서 다시 사용한다. 이러한 용기들은 단추나 못, 압정 등을 보관하는 데 제격이다. 그리고 필자의 작은 경험이지만 커피 캔이나 큰 플라스틱 우윳병을 위 부분을 잘라내고 흙을 부어넣으면 꽃이나 작은 식물을 키울 수 있다.
 w. 자동차 기름이나 제초제 등이 들었던 병은 다시 쓰지 말고 분리해서 모아 두었다가 따로 처리한다. 이를 위해 지역자치단체에서 가정용 위험쓰레기 수집센타를 운영해야 한다. 그리고 위험한 저장물들은 표시를 해서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해야 한다.

4. 자주 쓰지 않는 물품은 빌리거나 나누어 쓴다.
자주 쓰지 않는 물품들은 집안에 있으면 공간을 차지하거나 먼지를 끌어 모으다가 결국 쓰레기로 버려진다. 이러한 제품들은 필요할 때 빌려 쓰는 것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비정기적으로 쓰이는 물품들은 이웃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 나누어 쓰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천연자원도 절약하고 돈도 절약할 수 있다.

x. 혹시 파티를 할 경우에는 파티용품을 사지 않고 전문회사에서 빌리도록 한다. 즉 장식이나 파티에 필요한 용품들을 빌려쓰고 돌려주도록 한다.
bb. 집관리 필요한 물품들은 필요할 때 빌려쓰거나 마을에서 공동으로 구입한 후 필요할 때 돌아가면서 사용한다.
cc. 오래 쓰던 도구들이나 카메라 장비 등의 물건들을 버릴 때 친구나 이웃 등에게 필요한지 물어본 연후에 정말 아무도 필요하지 않을 때 버린다.
dd. 신문이나 잡지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서 본다.

5. 중고제품을 사거나 물건을 버리기보다는 팔거나 기부한다.
한 사람의 쓰레기가 다른 사람에게는 보물이 될 수도 있다. 불필요한 가전제품, 연장, 옷을 버리기 전에 그것들을 팔거나 기부하도록 하면 좋겠다. 또한 필요한 물품이 있을 때 중고제품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이를 통해 자원을 절약할 수 있고 새 제품을 살 때 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필요한 물품을 구할 수 있게 됨으로써 아직 쓸 수 있는 물건들이 쓰레기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ee. 필요하지 않는 물품들을 필요한 기관에 기부하거나 중고제품 판매점에 다시 판다. 기부를 하게 되면 어떤 경우에는 면세혜택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팔 경우 현금을 받기도 한다. 기부를 받는 기관들은 주로 옷과 가구나 가전제품들을 받는다. 단 기부하는 물품들은 깨끗하고 품질이 양호해야만 한다.
ff. 쓰던 물품들을 바자회나 벼룩시장이나 집 마당에 놓고 팔 수 있다.
gg. 입을 수 있는 옷이나 쓸 수 있는 제품들을 가족들에게, 이웃에게, 또는 필요한 이들에게 나누어준다. 나누어주기 전에 제품의 질을 확인하여야 한다. 가령 옷의 경우 세탁을 하고 얼룩이나 구멍이 없어야 한다.
hh. 지역 공동체가 함께 격려하여서 옷이나 음식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는 행사를 갖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이웃끼리 옷과 음식을 모으거나 근처의 상인들에게 흠이 났지만 먹을 만한 음식이나 아직 쓸만한 제품들을 기부 받아서 직접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거나 그들을 돌보는 기관에 기부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ii. 필요한 책이나 전자제품, 가구, 그림 등을 중고 제품이 있을 경우 중고제품으로 구매한다.

글을 맺으면서

하 나님의 백성으로서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생활 속에서 주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 예배는 우리의 생활 전체를 주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우리에게 주신 자연과 이웃에 대한 청지기의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쓰기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일이다. 어쩌면 다음 호에서 살펴 볼 재활용 (Recycle)보다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으로서 그 경제적, 환경 적인 효과는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시 쓰기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해도 각 개인의 실행 의지가 굳건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먼저는 각 개인이 가정에서 일터에서 책임 있는 개인의 역할을 다 해내고, 공동체가 의지를 모아 구체적인 대안을 찾아갈 때 가능한 일이다. 특히 이 다시 쓰기는 개인만의 의지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해야만 가능한 영역이다. 그리스도인 개인과 공동체는 이면에서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가정의 일원으로서 개인은 각 가정에서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생활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각 개인과 가정은 이웃과 함께 그 중요성을 나누고 함께 대안을 찾아가도록 힘써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 가정이 앞장서서 아파트나 지역의 반상회 모임에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고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면 좋겠다.

요 한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이 선한 일을 위함이라고 하셨는데 (물론 여기의 선한 일에 대한 해석에 차이가 있겠지만) (엡 2:8-10) 분명히 환경을 보호하는 일을 위한 노력 또한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닐까? 다시 쓰기를 통해 주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적극적인 사명을 조용히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가는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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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KO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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