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탄 현장 이야기
늘 푸른 나무, 비탈에 서다.
용혜원 시인이 학교를 방문하여 <시와 음악이 흐르는 밤>이라는 문화행사를 치르게 되었다. 그 행사 준비를 하느라 아내와 더불어 내가 지도하는 <늘푸른 나무> 써클 아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시 낭송을 처음 해보는 아이들인지라 아름다운 선율에 감정을 넣어 서정적인 시를 읊조리는 모습이 어설프다. 그러나 그 서투름 속에 이곳 아이들의 소박한 심성들이 묻어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몇 년 전 기억을 떠올린다.
(1)
"선생님, 큰일 났어요......"
내가 지도하는 서클의 남녀학생 둘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다그쳐 물어도 그저 낙심한 표정으로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 그들 중 얼굴이 하얀 한 여학생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힘없이 내뱉는다.
"이제, 우리 서클은 끝장이야요."
평소에 서클 활동에 적극적이고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던 그 여학생은 아예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글줄이나 좀 쓴다는 아이들을 모아서 문학 서클을 만들었다. 생각이 깊다고 자부하며 자존심과 개성들이 강한 아이들이었다. 그만큼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면들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의 순수함이 그 모든 것들을 감싸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을 모아서 내면의 응어리진 것들을 글로 표현시키며 다듬어가려고 했다. 걸음마를 시작한 대학 문화를 정신적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포부들도 있었다.
학교에 심어놓은 어린 소나무들을 바라보며 <늘 푸른 나무>라고 이름을 짓고 문집을 내기 시작했다. 푸르름을 잃지 않는 모임이 되기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처음에는 아주 소박하게 시작했다. 한 학기에 한번씩 겨우 겨우 자신들이 틈틈이 모아놓은 소품들을 발표하는 형편이었다. 첫 문집을 내었을 때에는 모두들 좋아했다. 두 번째에는 외부에서 작품 공모를 받아서 좀 더 세련되게 다듬었다. 편집하는 기술도 늘었고, 약간의 자신감도 얻게 되었다. 학교 내 다른 동아리들에 비해 유달리 단결도 잘 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동아리에 대한 사랑이 날이 갈수록 불붙는 것을 느꼈다.
대학 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문학의 밤'을 개최했다. 도무지 문학의 밤이라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취지와 형식을 대충 설명해 주고 맡겨두었더니 아이들끼리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문도 구하고 밤을 새워 끙끙거리며 작품을 만들어냈다. 뚜껑을 열어보니 대 성공이었다. 국제대학의 면모를 살려서 한국시, 중국시, 영시, 불란서 시들을 섞어 가며 시를 낭송하고 계절의 감각을 드러내는 수필을 빔 프로젝터를 동원하여 대형 스크린에 영상을 비추며 함께 낭독하기도 했다. 한국 대학생들도 미처 생각지 못한 장르들도 등장했다. 문학 작품 중 한 토막에서 발췌한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멋진 해설과 함께 극화로 만들어 올리기도 하였다. 자신들의 캠퍼스 라이프를 코믹하게 엮어서 스크린 상에서 영상 드라마로 연출하기도 했다. 열렬한 박수 갈채를 받으며 문학의 밤이 막을 내렸다.
그런데 그 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늘푸른 나무> 동아리를 주도하던 두 학생이 있었다. 둘 다 문재(文才)가 있고 개성이 강한 아이들이었다. 그 중 U라는 학생은 사색적이면서도 언변이 뛰어나고, 행동이 약간 괴팍하며 야심이 있는 아이였다. M이란 학생은 이미 연변 일보의 신춘문예에도 당선될 정도로 시적 감수성이 탁월하며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예술적 끼를 지닌 아이였다. 미남형의 U에 비해 M은 체격도 왜소하며 말주변도 없었다. 반면에, 학업 성적이 뛰어난 M에 비해 성적이 밑바닥을 돌고 있던 U는 평소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문학의 밤을 통하여 언변이 뛰어난 U가 사회를 맡으며 대중 앞에서 멋진 연기를 보이자, 마침내 전교적인 히로로 등장하였다. 어쩌면 뒤에서 실질적인 총 연출을 하며 더 많은 수고를 한 것은 M이었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인기가 오른 U가 자신감을 얻으며 총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평소에 U를 얕보던 M은 크게 반발하며 반대편 후보의 참모로 뛰어들었다. M의 주장인즉, U는 결코 학생회를 이끌만한 지도력을 갖춘 인물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서클 내부도 곧 두 패로 나뉘었다. 그렇게 친하던 아이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안겨주기 시작했다. 선거전을 치르면서 양 진영의 마음은 갈갈이 찢어졌다. 상대방에 대한 심한 인신 공격이 오가는 속에서 자신들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내면의 치부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선거는 결국 U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누구도 진정한 승자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오욕과 수치의 상처들이 깊이 남았다. 두 학생 모두 비로소 자신들의 추한 내면을 들여다보고 아연할 만큼 충격들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며칠 후 학교 기숙사에서 살인 사건이 날 뻔한 큰 소동이 벌어진 것이었다. 선거전에서 분노를 품은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머리를 칼로 세 번 찌른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선거를 치르면서, 선거전을 민주주의의 훈련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완전히 맡겨 두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자유 경선에 의한 직접 투표를 진행하는 동안에 상대와 공대의 대표로 나온 두 후보자를 서로 지지하던 측근에서 심한 경쟁을 벌이게 되었고, 투표일을 앞두고 선거전이 더욱 혼미해지기 시작하자 양 진영에서 심한 감정적인 대립까지 이루게 되었다. 그러다가 근소한 차이로 한쪽이 패하게 되자 평소 술만 마시면 거친 성격이 튀어나오던 한 학생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상대방 진영의 한 학생에게 테러를 가한 것이었다. 다행히 칼날이 빗겨 나가는 바람에 표피만이 크게 찢어지고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사랑의 집이라 일컬어지는 기숙사에서 생겨난 이 사건을 앞에 두고 우리 교직원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을 바로 가르치고 다스리지 못한 자신들을 회개하며 크게 반성하는 계기를 삼게 되었다.
연변에 있는 조선족이나 한족들은 무서운 문화 혁명의 회오리바람을 통과하면서 심성이 거칠어진 탓인지 한번 싸움이 일어나면 으레 폭력을 행사하며, 일단 증오심을 품게 되면 끔찍한 연쇄 복수극을 벌이는 것을 예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길에서도 칼을 휘두르는 장면들을 더러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강력 사건들이 빈번히 일어나는 연길시의 다른 곳에 비하여 연변 과학 기술 대학만은 그 동안 한 번도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한 예가 없었기 때문에 연길시 공안국에서 조차 신기하게 생각하며 매년 감사를 표시하는 특별 구역이었던 것이다. 진리, 평화, 사랑의 교훈 아래 선생과 제자 사이가 다정한 부모 자식과도 같고 학우들 사이에 사랑과 우정이 깊기로 자부하던 우리 학교에서 발생한 일종의 살인 미수 사건이었기에 더욱 그 충격이 컸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사건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그들의 대립 양상이 단순한 단과 대학의 대결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연히도 두 대표 중 한 학생은 믿는 학생이었고 또 다른 학생은 믿지 않는 학생이 출마를 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그 학생들을 지지하는 학생들조차도 은연중 믿는 학생들과 믿지 않는 학생들로 갈라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믿는 학생의 승리로 끝나고 말자, 평소에도 믿는 학생들에 대한 편견을 지니고 있던 상대편 학생들이 결과를 승복하지 못하고 분노를 터뜨렸던 것이다.
우리 교직원들은 이 사건을 돌이켜 보면서 믿지 않는 학생들에 대하여 소홀했던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기 시작했으며 사태의 심각성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동안 우리 나름대로 학생들에 대하여 예수의 사랑을 베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지만 더러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소외된 학생들이 있어 왔으며 비록 고의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편애로 인한 아픔과 상처를 안겨준 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우리는 카인의 잘못을 두둔할 수는 없다. 동생 아벨을 돌로 쳐죽여 최초의 살인자로 성경에 기록된 불행한 사람 카인의 경우는, 흔히 오해되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편애에 의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 절대 아니다. 카인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을 받았으나 그 마음속에서 불순종의 영이 역사하여 스스로 하나님께 반발하고 동생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 살인에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성품을 지닌 우리 인간이 편애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가 아무리 공평한 사랑을 베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사랑을 주는 자나 그것을 받는 자가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편애로 인한 불씨를 일으킬 소지가 언제든지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비책은 한가지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그 방법대로 우리가 사랑하기 힘든 자부터 먼저 사랑하고 우리를 욕하고 핍박하는 자에게 선대하며 우리를 죽이려 하는 그들을 향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고 기도하는 길일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학생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살인 미수 사건이기에 마땅히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과, 비록 그 행위는 용서할 수 없지만 한번 우리 학교에서 받은 학생은 끝까지 우리가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그에게 기회를 주자는 의견이 대립되었다. 결국은 일단 학교에서는 제적시키되 계속 돌보아서 그가 참으로 회개하고 새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고난 주간에 일어났던 사건이었기에 우리 교직원들은 십자가 앞에 모두 모여 참회의 기도를 드렸다.
(2)
그 사건에 깊이 관여했던 <늘 푸른 나무> 써클의 후유증은 심각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도 선거라는 일종의 정치바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정치권에 몸담았던 경력이 있으신 어떤 교수님은 정치 마당에서 편이 한번 갈라지면 다시는 합치기 힘든 우리 민족의 근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평하면서 그들 사이의 우정은 이제 끝났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은 <늘 푸른 나무>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떻게 할까? 이들을 그냥 해체시켜야만 하나? 심히 고민이 되었다.
마침 그 날은 예수가 돌아가신 성금요일이었다. 그 날 저녁,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조차 바라보기 힘들만큼 어려운 자리였다. 한참 만에 말문이 열리면서 다시금 분노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학생 몇몇은 과거에 멋모르고 상대방을 잘못 판단하여 좋아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치를 떨며 분개하기도 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고개들을 내저었다.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차가운 무덤 속에 함께 모여 있는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기도하다가 갑자기 용기를 얻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말문을 열었다. 예수 십자가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었다. 그 이전에는 의식적으로 써클 아이들을 앞에서 한 번도 기독교에 대해 설명해 본 일이 없었다. 써클의 순수성을 지켜나가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공개적으로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중국 법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의 가로막힌 담장을 허물 다른 어떤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들에게 십자가의 화해와 용서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던 그 사람들과 그 여인을 용서한 예수의 이야기도 해 주었다. 그 가운데에는 기독교에 대하여 심히 반발하는 학생들도 섞여 있었지만, 그 시간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심을 느꼈다. 모두들 숙연히 듣고 있었다. 여학생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면서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대방을 용서해야만 하는 그 아픔에서 오는 설움의 눈물이었다. 한참 후에 아이들의 얼굴에서 평온함이 깃들기 시작했다.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자신들끼리 그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그날은 헤어졌다.
그 다음날 늘 푸른 나무의 어린 가지들이 다시 만나서 자신의 잘못들을 인정하고 서로를 용서하는 아픈 절차들을 밟았다. U와 M이 다시 악수를 하였다. 그리고 부활의 주일 아침, <늘 푸른 나무>가 밝은 햇살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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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되는 하나님 나라, 치유되는 자아'란 주제로 열 일곱번째 코스타가 이제 다음달이면 시카고 근방의 휘튼 컬리지에서 열리게 된다. 개인적으로 치유되는 자아에 대해서는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이 있지만, 사실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것에 대해서는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다. 첫째로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고 어떤 모습일지를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는 본인의 한계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지역이나 공동체, 혹은 족속, 민족, 국가에 회복된 경우를 역사에서나 현시대에 보아온 예가 매우 드물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 가트 린의 <윌리암 윌버포스의 생애>는 한 정치가와 그의 친구들을 통해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한 국가 전체에 걸쳐 회복된, 역사에서도 많지 않은 예임이 분명하다. 특별히 선교사나 목사 등의 전임 사역자가 아닌 평신도였던 정치가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한 국가, 아니 국가를 넘어 온 세상에 회복되었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윌버포스와 그의 동역자들의 삶은, 특별히 정치에 환멸을 느끼며 소망조차도 갖기 힘든 조국의 현실을 생각할 때에, 우리 코스탄들이 2002년 코스타를 준비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는 영역이 개인의 삶과 지역 교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전문 분야와 사회 구석구석에까지 미치게 되는 거룩한 꿈들을 꾸며 비전을 갖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JSA>는 '현재-과거-현재-과거-현재'로 짜여진 미스테리 형식의 영화입니다. 플래시백(flashback) 효과로 과거와 현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수사관 소피와 함께 미궁의 사건을 해결하는 재미를 즐기는 동안, 관객은 그들이 풀어야할 수수께끼는 사라진 총알 하나의 행방도 아니요, 이수혁과 오경필 둘 중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중립국감독위원회(이하 중감위)의 보타장군이 처음 소피에게 이야기한 것처럼 말이지요.








요란한 총성과 함께 초소의 창에 구멍이 뚫리고 성식의 총구에서는 연기가 오릅니다. 최상위가 쓰러지자 우진이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권총 손잡이를 잡지만, 순간 성식과 수혁이 발사한 총에 의해 이마가 뻥 뚫리면서 피가 튀고, 거의 동시에 손의 일부가 떨어져 나갑니다. 수혁은 우진에게서 총구를 돌려 경필에게 총을 겨눕니다. 한번. 두번. 그때마다 움찔 움찔하는 경필. 고장난 총은 격발되지 않고 경필의 얼굴은 충격으로 가득합니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 성식은 이미 숨진 우진에게 총을 쏘아대다가 이제 경필에게 총을 겨눕니다. 멍청히 선 성식에게서 경필은 총을 빼앗아 살려달라는 최상위를 가차없이 사살합니다. 복수하듯이.
경필은 손수건으로 (성식의) 총을 깨끗하게 닦은 다음 수혁에게 건네주고, 우진의 다리께에 떨어진 피묻은 수혁의 (고장난) 총을 주워 수동으로 슬라이드를 원위치시킨 다음 역시 수건으로 깨끗이 닦아 성식에게 건넵니다. 수혁은 납치됐다가 탈출한거라고. 성식은 여기 없었던 거라고 말하며. 총성을 듣고 출동한 한국군의 총소리에 겁을 먹은 성식은 쓰러지면서 우진이 발사한 총에 다리를 맞아 잘 걷지 못하는 수혁을 버려두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고, 군사분계선 위에 쓰러진 수혁 위로 탄환들이 난무합니다.
마찬가지로 남성식은 북에 대해 모순된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음악교과서에 실린 "우리의 소원"을 부르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을 기억하며, 통일을 부러워 하지만, 그 열망은 지극히 감상주의적입니다. 더 이상 넘어가지 말자는 수혁을 마지막이라며 북으로 데려간 사람은 바로 남성식입니다. 동생처럼 아끼며 구두를 닦아주고 생일까지 챙겨주던 정우진인데, 그는 마지막 순간 모든 신뢰를 잃어버립니다. 우리의 소원을 부르는 한편으로 주입된 반공교육 덕분으로, 북에 대한 공포와 의구심은 그의 동경보다 더 뿌리가 깊고 강했기 때문입니다. 왜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지, 통일은 어떻게 이루어야 하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하는 나약한 감상주의자가 극도의 긴장상황을 맞았을 때 바로 남성식과 같은 반응을 보일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극도의 공포상황에서 남성식은 무전기를 뽑으려는 최상위를 오해하여 무의식적으로 총을 뽑아 발사합니다. 


"상호이해," "상호신뢰," "반상호주의". 영화에서 오경필이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피가 튀는 장면들이 끔찍하고 무서워서 거의 눈을 감고 있다보니 수혁이 경필에게 두번이나 방아쇠를 당겼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비디오로 다시 보면서 그 장면을 처음 본 순간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수혁이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고장난 총이 철컥 철컥 빈 소리를 낼 때마다 움찔거리던 오경필의 두눈과 경련이 일던 그의 뺨. 충격이었을 겁니다. 배신감이 들고 괘씸한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수혁을 보호합니다. 죽여도 시원치 않았을 수혁을 보호하기 위해 대질심문에서도 그를 공격하며 "인민공화국 만세!" "김정일 만세!"를 목이 쉬도록 외친 것입니다 .
위는 소피가 군사분계선에서 빗속을 서성댈 때 보이던 표지판들입니다. 모두 소피의 고향인 스위스 제네바를 향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남과 북 모두를 부정하고 "중도의 길"을 선택할 것을 남북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통일의 이유도 방법도 모르는 남성식 같은 감상주의자들에게 그 답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념을 구실로 한 강대국들의 
교회는 치유 공동체(healing community)인 동시에 사명 공동체(mission community)입니다. 치유 공동체이기 때문에 누구나 수용되고 용납되어야 합니다. 동시에 사명 공동체이기 때문에 사역자는 훈련되고 선별되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 사이에 균형을 이루어야 건강한 교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사실 현대인들은 이 사랑의 다른 모습들을 굳이 구별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굳이 구별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자기 희생적이거나 책임감을 동반하는 사랑은 이미 현대인들의 삶과는 무관한 추상적인 사랑의 개념이 되어버렸다. 세상은 온통 말초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이야기나 노래 따위들로 범람하고 있다. 심지어 아이들이 읽는 동화책을 보면 동물의 원초적인 보호본능들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그 이야기들을 감동으로 채색해버린 이야기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다. 어린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친 개의 이야기라든지, 가난한 주인을 위해 금조각들을 날라주다가 지쳐서 죽어버린 제비라든지... 사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서로 미워하고 죽이는 이 험한 인간세상에서 사랑을 찾기보다는 차라리 동물들의 원초적인 본능에서 그 사랑을 보는 것이 희망적이라고 하는 인간 스스로의 절망적인 절규일 지도 모른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혼돈스러운 인식은 비단 세상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현대의 그리스도인가운데에서도 만연되어있다. 우리가 흔히 아가페의 사랑을 산다고 생각하고, 조금 선하게 그리고 자기만족의 감동을 느끼면서 하나님께서 부으시는 아가페의 사랑을 사노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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