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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OSTA 간증

'연변총각' K 형제

오늘 제가 어떻게 예수님을 어렵게 생각 하던 대로 부터 믿게 되었는지에 거기에 대해서 잠깐 얘기 드리도록 할께요.

저는 사실 대학 가기 전에도 저보고 뭐 하느님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없었고 저보고 교회에 가자는 사람도 없었어요. 주위에 극소수의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고 있었지만 전혀 나하고 관계없는 이상한 사람들이 다니는가 했어요. 그랬댔는데...

이해의 편리를 위해서 저희 학교에 대해서 잠깐 소개 하겠어요. 제가 다니는 연변 과학기술대학은요 미국에 원래 계시던 김 진경 총장님께서 중국에 있던 조선족 동포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세워진 그런 대학 이예요. 그래서 대부분은 한국이나 혹은 미국에 계시던 교수님들이고요, 학생들이 저와 같은 중국에 있는 조선족 학생들 한 80%와 한족들 20%로 그래서 한 1300명 정도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곳 이예요. 그래서 저는 사실 대학가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줄 모르고 갔는데 대학가서 그런걸 알게 되었고요. 그래서 대학을 거기 지원하게 된 것은 사실 그 학교에 가면 영어 잘 배울 수 있대서 그래서 지원했습니다.(웃음)

제일처음 대학가서 학부에서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옆에 교수님이 식사전에 기도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아 이 교수님 예수 믿나 보다 하고 저녁에 침실에 와서 침실에 선배에게 이런 얘기를 했댔어요. "이재용 교수님은 예수 믿나봐요."그랬더니 선배가 막 웃더니만 "예수 안믿는 사람이 어딨어" 그러더라구요.(웃음) 그래서 너무 당연한걸 물었나 싶어서 ' 아 한국사람은 다 예수 믿나부다' 그래 생각했댔어요 (웃음).

그런데 첨 지내면서 알고보니까 교수님들이 학생들한테 너무 따뜻하게 대해줘요. 다 큰 학생들이 학교와서 다니는데 어린애들처럼 돌보고 너무 극진하게, 전에 받지 못했던 그런 관심들을 주더라구요. 그리고 저희 학교는요 총장님을 비롯해서 모든 교수님들이 학생들하고 한식당에서 줄서서 함께 식사를 해요. 그게 참 너무 이상하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래서 참 너무 그분들이 전에 있었던 그런 학생과 교수관계를 뛰어 넘어서 너무 친한 사이로 그렇게 지내게 되었어요. 모든 교수님들이 다 따뜻하게 대해줬고요, 그래서 참 감사하게 생각하면서도 예수믿는 사람들은 원래 남을 위해서 봉사하기를 좋아하니까 그래서 그분들이 왔나부다 하고 그런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학교에서 학생들 중에서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그리고 주위에 안 믿던 사람들도 교수님한테 전도받아서 가게 되는데 참 너무 이상하게 생각했댔어요. 그분들이 미국이나 한국 혹은 더 좋은 환경 속에서 돈 잘벌고 잘 살 수 있는데, 여기와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좋은 것 다 버리고 일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웠어요. 너무 우러러 보이구요. 그렇지만 그분들처럼 그렇게 예수믿고 그러고 싶지는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예수 믿으면 돈도 많이 못 버는가 했어요 그분들이 너무 소박하게 살기때문에(웃음). 돈도 많이 못벌고 뭐 나쁜짓 조금만해도 자꾸 가슴이 찔리고(웃음), 좋은 것이라고는 모르겠더라고요. 뭐 옷도 좋은거 입으면 남들 자꾸 눈치 보이고 '예수믿는 사람이 뭐 옷도 저래 사치하게 하고 다니는가' 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친구들도 가끔 교회 나가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저하고 제일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나도 한번 교회 가봐야 겠어" 하더라고요. "뭐 교회가 니 가는데냐. 그런델 왜가"했는데, 그 친구는 아침에 못 일어나면 저녁에도 가고 뭐 하여튼 예배는 다니더라고요. 건달처럼 그렇게 다니면서 교회 다닌다고 하더라고요. 교수님들도 차츰 지나면서 한 1년쯤 지나면서 교수님들하고 만나서 얘기도 하는 중에 자꾸 하나님 얘기가 나와요. 얘기하다 보면 마지막으로 가면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해. 사람이 믿음이 없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데"하는 얘기를, 좀처럼 저한텐 이해되지 않는 그런 말씀을 자꾸 하시더라구요. 첨엔 왠지 그게 되게 싫었어요. 그래도 교수님 얘기하는데 딴 대꾸는 못하고 그저 듣고만 있었어요. 듣고 말끝나면 돌아오곤 했는데 그런 과정 중에 저와 친한 친구들도 교수님 그렇게 말하니까 "교회 한번 안 가볼래 한번 가보자" 하는데 딱히 가기가 싫었어요. 그런 데를 왜가나 싶었어요. 이상한 사람들이 가나 싶었어요. 뭐가 그분들이 잘못 착각하고 있지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그런 생각 하면서 있었는데 한 2학년 땐지 학교 다닌 지 한 1년쯤 되었어요. 침실 선배가 '대학부 모임이 있는 데 같이 한번 안 갈래?" 그러더라구요. 친한 선배가 하도 얘기 하길래 거절하기도 그렇고 해서 한번 가봤어요. 대학부 모임이었는데 뭐 찬송 부르고 그런 모임이었어요. 저는 뭐 그런것도 모르고 갔댔는데요. 근데 딱 시작했는데 막 난리가 났어요. 기도하는데 뭐 울고 불고, 학교에서 말도 조용하게 하는 그런 친구들이 정신 나간 것 처럼 막 그러더라구요. 저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한 절반 하다 나왔어요(웃음). 뭐 이상한 사람 다 버리는 곳이라고 해서. 그래서 선배도 따라 나오고, 원래 제 성격을 원래 아니까 뭐 딴 얘기는 안하고 그저 웃더라고요. 첨 이니까 혹시 그럴 수 있다고 하면서. 그러고 나서는, 그담부터는 누가 교회 가자고 해도 안 갔어요. 이상하더라구요. 저는 저는 교수님들이 너무 이상하게 생각 되었드랬어요. 성경에 대해서, 뭐 딴거는 모르지만 그래도 공부 적게 하신분은 아니잖아요. 다 박사까지 공부하시고 했는데 아니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만들어서 훅 부니까 생기가 들어가서 사람이 됐대요. 아니 그걸 어떻게 믿을 수가 있어요. 너무 이상하게 생각 되었어요. 뭐 모르는 사람은 모르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교회를 따라간다고 그러지만, 그분들이 모르고 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그렇다보니 너무 이상한 것 같다고 생각 했댔는데...

그런과정에 제가 금년 4월에 몸이 자꾸 아프던 차 병원에 가서 진단을 했는데요 대장암이라는 그런 진단을 받았어요. 지금은 제가 너무 담담하게 이야기 하지만, 사실은 되게 힘들었거든요 그때요. 제가 사는 집에 갔다가 집에서 수술 받고 북경으로 항암치료를 받으러 갔댔어요. 항암치료 받으러 북경 가서 제가 교수님한테 알렸어요. '결장암이라는 진단 나왔습니다. 잠시는 학교 못가게 될 것 같으니까 교수님 그렇게 알고 계십시요.' 하고 간단하게 메일 보냈어요. 그러고 한 멏시간 지나니까 제가 집에 있는데 교수님한테 전화가 왔더라구요. 교수님께서 메일을 받아봤더라고 그러시면서 교수님도 아주 괴로워 하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뭐 위안하는 말로 "뭐 거기 어디 교회 없냐"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구요. "교회 있으면 교회나가봐라 하시더라구요." 남은 막 아파서 속이 불편한데 막 그런 얘기를 하니까 왠 얘기냐고 아픈데 교회가서 뭐 병이 나아요 그런 얘기 하고 싶었지마는 그런 얘기는 못하고 전화 끊었어요. 그날이 수요일인지 그랬는데요 주말에 절 보러 오시겠다고 하셨어요. 연길에 학교하고 제가 있는 북경하고 비행기로 두시간 거리예요. 그런데 교수님이 오셨어요. 전 교수님이 오기전에 대략 교수님이 왜 오시는 지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교수님하고 저하고 이틀동안 호텔에 같이 묵었덨거든요. 오시자 마자 성경책을 꺼내 드시더니만 거의 밥먹고, 잠자는 시간 빼 놓고 밤늦게까지 계속 성경 얘기만 하시는 거예요. 요한복음에는 무슨말이 있고, 하나님이 너네 아버지고, 하나님이 너한테 뜻이 있길래 너한테 병을 주고 ... 그게 무슨 말인지 당체 이해가 안갔어요. "하나님이 너에 대한 귀한 뜻이 있기 때문에 너한테 병을 주는거다. 그러니까 하나님 영접하면 꼭 낫고.." 이런 얘길 하더라구요. 저는 그게 되게 싫었지만 참 너무 멀리서 오신 분한테 뭐라고 얘기는 못하고요 그래서 그냥 듣고만 있었어요. 이틀동안 꼬박 저한테 전도 했어요. 그런데 저는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었어요. 그런데 실컷 설명하시다가 하나님이 나를 만든 아버지래요, 저보고 영접기도 하라고 하는데 저는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저희 아버지 성함이 김**이거든요 한참 얘기 하시다가 "너는 김**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 아들이야 하면서 저보고 승인하래요. 그래서 한참 얘기하시다가 "그래도 너 김** 아들이야?" 하면 저는 "예" 라고밖에 대답 할 수 없었어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라는거 도저히 승인하기가 싫었어요. 무슨 얘긴지도 몰랐고요. 그래서 이틀만에 주일날 교수님이 돌아 가시게 되었어요 학교에 일도 있고 하시니까 해서 왔댔거든요. 그런데 그때까지 제가 뭐 돌아가는 교수님한테 미안하긴 했지만 하는 수 없었어요. 안믿어 지는 거 믿어진다고 거짓말 할 수도 없었고요. 그래서 가는 교수님한테 "교수님 제가 생각이 못 바뀌어서 그런지 받아 들일 수 없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러니까 교수님도. 그렇겠지요 기분 되게 서운해 하시고 성나신 것 같아서 "그건 의지로 하는게 아니야" 하시면서 되게 안타까워 하시면서 가시더라구요.

그런 후 한 며칠 지나서 우리 선밴데, 원래 저하고 한 침실에서 지냈고 3학년 위 선배지만 거의 친구처럼 친하게 지낸 선배가 있었어요. 그분도 학교 와서 예수믿었고 북경에서 일하고 계셨어요. 그래 제가 아프다는 소식을 어떻게 듣게 되었어요. 그래서 한번 만나자고 해서 만나게 되었어요. 그래서 뭐 그분도 제성격 아니까요 곧바로 대놓고 교회가자 그런 얘긴 안했지만 와서는 이런 얘길 하더라구요. 그때 막 제 얼굴 보니까 힘들어 하는 거 보이겠지요. 그래서 저보고 "니가 지금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좋다면 뭔들 못하겠느냐. 너는 세상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믿는데 왜 너는 믿어 보지도 않고 그렇게 일방적으로 반대를 하느냐. 한번 믿기나 해 보고 안 믿어지면 그만둬라." 그래서 생각한 결과 한번 나가보기로 했어요. 한번 나가보기는 나가보자. 근데 뭐 교회 가서도 뭐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목사님 앞에서 "하나님 은혜가 풍성하십니다" 하는데 그게 무슨말인지 뭐.. 그래서 형식적으로 그저.. 정말 가기가 싫었어요. 믿는사람들이 하나도 더 좋아 보이는 것이 없었어요. 뭐 친구들 절 전도 했지만 전 "넌 뭐 예수 믿어 봤자 나보다 좋은게 뭐가 있느냐"라고 얘기해 가면서 정말 쪼금 만치도 거기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요.

그랬댔는데 제가 북경에서 교회 두 번 가보고 셋째주에 여기 미국 오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감리교회 원 박사님(원종수 박사님)께서는 우리 학교에 한번 방문 하시고 교수님들하고 연락이 되어서, 교수님들의 도움받아서 여기서 치료 받게 되었는데요, 그래서 저는 여기 오기 전부터 아마 대략 교회 다니는 분들하고 만날 거라고 생각 했었어요. 그런데 여기 와보니까 웬걸.. 만나는 사람들이라고는 다 교회 다니는 분들이더라고요. 그러고 보 금방와서 저한테 너는 교회 다니나 뭐 그런 얘기 묻지도 않고 "주일날이니까 교회 나와, 마중갈께" 뭐 이러고 해서 교회를 가기 시작 했어요. 그렇지요 뭐, 저는 아는 사람도 한사람도 없고 그저 이런 사람 있다는 주소만 들고 왔거든요. 그래 거절하기가 딱해서 교회 나왔어요. 뭐 가고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할수없이 나왔어요. 그런데 두주째 지나도 뭐 교회가서도 들리는 말도 없었고 그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어요. 참말 가기 싫었지만 그저 겨우 따라 다녔어요.

그랬댔는데. 두주 지나서 제가 코스타를 가게 되었어요. 여러분의 도움으로 또 하나님이 인도하셨는지 등록비도 안내고 등록도 안했는데도 그저 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코스타 가서 여러 교수님들 세미나도 듣고 이러는 과정에 제가 이런말을 한마디 들었어요. 제가 예전에 교수님들이 왜 하나님을 믿게 되었는지 너무 궁금하다 했잖아요? 근데 어느목사님이 이름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 이런 얘길 하시더라구요. "게으른 사람은 자기가 안해서 그렇지 하면 아무거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진정으로 최선을 다 해 본 사람은 인간 능력의 한계를 안다"는 그런 말씀을 들었어요. 저는 그 얘기가 정말 제 머릿속에 와 닿는 것 같았어요. 사흘날 저녁에 김동호 목사님 저녁설교에 앞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여기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온 자가 있다면 일어서라고 했어요. 일어 서면 당신께서 영접기도 해 주시겠다고 하시는데 한마디 턱 하고 나니까 드문 드문 일어서는 사람이 있더라구요. 저는 다 믿는 사람만 코스타를 가는 줄 알았는데 저같은 사람도 있더라구요. 그래서 그 목사님이 ..세번 이야기 하셨어요. 세 번 이야기 하실 때 제가 마지막에 일어 났어요. 저는 전에도 그랬다 시피 안 믿어지는 걸, 뭐 어떤 사람들은 안 믿어 지는데 친구가 가자고 해서 일단 믿어 보자고 했다는데 저는 그런게 도무지 이해가 안갔어요. 생각이 없지 않으면, 왜 남이 일단 믿어 보란다고 믿자고 가는지 몰랐어요. 안믿어 져도 억지로 영접기도 해서 믿는다 하는데 그렇게 믿기는 싫었어요. 제가 일단 교회다니는 것도 아파서 다니잖아요. 그저 바라는게 있으니까 교회 가는거잖아요. 저는 시작은 일단 그렇게 했지만 아픈것을 고치는 그런 것을 목적으로 하는 그런 신앙은 가지기가 싫었어요, 그런 신앙으로 기도해봐야 하나님이 들어줄 것 같지도 않았어요. 그렇지만 코스타가서 제가 일어 났을때 이런 결단이 생겼어요. 이제부터 좀 주인다운 그런 태도로 한번 믿어 보자구요. 그래서 일어나서 하느님 앞에 이렇게 기도 했어요. "하느님 아버지 이제부터는 하느님 믿고 따르겠습니다. 정말로 그게 사실이라면 무엇보다도 먼저 저에게 믿음을 주십시요"라고 기도 했어요. 그런데 기도하고 나니까 한가지 발견되는게 있었어요. 제가 처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불러 봤어요. 저는 뭐 하나님 아버지, 형제 자매, 그런게 되게 싫었거든요. 그리고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어요. 그리고 학교에 가면 막 등쳐주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들 되게 싫어했거든요, 사람들 유혹할라고 그러는 거라고 생각 했거든요(웃음).

제가 막 전에 한번 대학부 모임을 갔었드랬는데 모 어느 선배가 와서 '네가 드디어 나왔구나, 내가 니를 위해 얼마나 기도 했는데' 하는데 '아 난 안믿어요, 안믿는데 그저 한번 나와 봤어요' 그러면 '니가 지금은 싫어 하지만 이담에는 꼭 믿게 될거라'고 모 '하나님이 너를 부르신다'니 뭐 이런 얘길 하시더라구요. 그게 되게 싫었댔어요 그런게요. 그런데 제가 처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라고 불러 봤어요 그때. 그리고 예배끝나고 나오니까 밖에서 막 뭐 'born again' 했느니 'happy birthday'니 하면서 막 축하한다고 사람들이 막 그러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영접기도 하고 나왔지만 별 다른게 없었어요. 우리 교수님은 뭐 예수님 영접하고 막 실컷 울고 나왔더니 풀이 파릇파릇 하고 하늘이 파랗고 막 그렇다는데 저는 그런것도 없었어요.(웃음) 그래서 이제 태도만 하나 고치고 한번 믿어보자는 그런마음으로 돌아와서 그리고 교회 다니는 과정에 성경공부도 참가하고 앤아버에 있는 한인교회의 모임이란 모임은 다 갔어요. 뭐 다 여러분들이 막 저한테 열심히 잘 알려주고 그랬어요. 그러는 과정중에 차츰 정말 뭐라고 말을 못하는 그런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뭐 성경도 가끔씩 한번 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요.

그런 과정에 9월달에 제가 여기와서 처음으로 CT scan했거든요. 그래서 첨에는 병 증세가 되게 안 좋았댔어요. 그런데 9월달에 scan해 보고 난 결과가 아주 좋아서 원래 퍼져 있던 암세포도 하나도 안보이고, 원 박사님도 아주 기적이라면 기적이라는 그런 현상이라면서 '하나님이 정말로 너를 사랑해서 그러신다'고 그러시더라구요. 저는 그러면서 참 딱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참 감사했어요 하나님한테요. 저는 교수님들이 전한테 하나님이 널 써주시려고 너에게 병을 주신다 하는 얘기가 너무 이해 안갔어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쓰면 고이 쓰지 병은 왜 줘요. 병도 주면 왜 암 같은거 줘요. 그랬댔는데 제가 여기 와서 얼마 안되서 한국에 있던 같은과 친구한테 이런 메일을 받았어요. '...전에도 교수님들이 너무 존경스럽고 우러러 보였지만 너(김 *)를 통해서 정말 그렇게 따뜻한 사랑으로 대해주는 그 교수님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어. 도대체 무슨힘이 그분들로 하여금 그렇게 열심히 살 수 있게 하는지, 성경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고 싶어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저는 그 메일을 보고 참 많은 걸 느꼈어요. '아 하나님이 정말 나를 통해서 많은 일을 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참 저는 전에도 그랬다시피 내 머리속에 기적이 안 일어나고 난 절대로 그걸 믿을 수 없다고 생각 했었어요. 그걸 어떻게 믿을수가 있어요? 그랬댔는데 차츰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그러던 데로부터 설마 그럴까, 아 정말 그럴수가 있을까, 설마 그럴수도 있겠다 하는 데로 부터. (웃음) 지금은 아.. 맞아 딱 맞았어. 내가 승인해 이렇게 되었어요. 저는 결코 그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정말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자에게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어요. 그래서 그 가운데 많은 치료 받는 가운데서 정말 진전도 너무 빨리 됐고요, 병치료도 너무 빨리 회복 되었어요. 그래서 치료해주신 의사님도 아주 기뻐 하셨고요, 하나님의 뜻이 여기 있도다 하시면서 참 기뻐 해 주셨어요. 그럴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참 감사했어요. 아직 뭐 채 믿어지지 않았지만 정말 확실히 하나님이 제게 뭐가 보여주신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리고 그래서 그때부터 한 몇 달 지나서 이제 원래 계획했던대로 치료 곧 끝나가게 되거든요.

참 그동안... 너무... 저는 원래 참 예수믿는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왜냐면 아 한번 사는 인생에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는지 도대체 몰랐어요. 있는걸 다 즐기고 살아야지 저는 항상 사람은 즐겁게 살아야지 하면서 학교 다닐때 술담배 적지 않게 하고 다녔어요. 공부도 별로 열심히 안했고요. 저는 예수믿는 것이 금욕주의라고 생각했어요. 예수 믿으면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그런게 너무 싫었거든요. 그랬댔는데, 저는 기도 하면서 저한테 있는 병치료 해줄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깨끗하게 씻음받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제가 지금 확실하게 말할 순 없지만 정말 마음속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어요. 정말 전에 그런 유혹을 가졌던...제가 그렇게 완고하게 고집하던 것으로부터, 정말 마치 기도하다가 눈물흘려 본적있고요, 찬송가 부르다가 기뻐서 웃어본 적도 있어요. 아까전에 우리 불렀지만 '형제의 모습속에' 라는 노래 제가 되게 좋아 하거든요. 왜냐면 제가 언제 8월달인지 언제 한번 성경공부 하는데 그 찬송가를 보게 되었어요. 찬송가 가사가 이렇잖아요.

'형제의 모습 속에 보이는 하나님 형상 아름다와라 존귀한 주의 자녀 됐으니 사랑하며 섬기리'

저는 그 찬송가 가사를 볼 때 우리 학교 교수님들의 얼굴이 떠올랐어요. 참 그분들 속에 보이는 하나님이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요. 그래서 몇 달 6개월째 지나는 가운데 이제는 그렇게 가기 싫던 교회가 습관이 된 것 같아요. 이젠 주일 되면 '아 주일날 원래 교회 가는 가보다' 그렇게 생각되고 가끔은 주중에 주일이 기다려 지기도 해요. 가서사람들도 만나보고 싶고, 예배도 보고 싶고, 찬송가도 같이 부르고 싶고 그런 마음도 생기곤 해요. 그래서 그동안 하나님 믿는 가운데서 치료받으면서 참 마음속에 많은 평안함도 얻었고요, 하나님이 꼭 고쳐 주실 거라는 그런 확신도 가졌어요. 참 요즘은요 '내가 왜 암에 걸렸지'하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요 이유가 딱 하나라고 생각되요. 암이 아니고서는 저하고 하나님하고 붙여놓을 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었다는 확신이 들어요. 이제는 여기서 단련도 받고, 제가 중국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하나님께서 미국에 이런 환경속에 하나님 믿는 사람만 만나게 해주시고 이런 환경속에서 억지로라도 끌어 주시는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원래는 가기 싫던 교회도 이제는 습관이 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 6개월이라는 시간이 하나님 절 단련시켜서 돌아가서 영적으로도 굶지 않게끔 하시는 거 같아요.

제가 원래 간증을 해 달라고 했을때 되게 주저 했댔거든요. 왜냐면 저는 간증을 안해본것도 있지만 예전에 누가 저한테 와서 하나님 얘기를 하면 되게 싫어 했댔어요. 그런데 내가 그런 얘길 한다니까 감이 안왔어요. 그래서 주저 했댔는데요, 집에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하느님 자랑해야 될 것 같아요, 돌아다니면서. 하나님 자랑해야 기도도 잘 들어 주실 것 같고, 기뻐 하실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어떻게 자랑 잘 했는지 모르지만 들어 주셔서 감사하고요, 여기 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K 형제
연변 과학 기술대학 3학년 K모군이 직장암 판정을 받은 후 미국에 치료차 체류하면서 그 기간중에 하나님을 만나게 된 이야기를 치료 후 중국으로 돌아 가기 전(12/16/01)에 나눈 간증문 입니다. 인터뷰의 생생함을 살리기 위해 거의 수정 없이 녹음 내용을 글로 옮겼습니다. 본인의 간곡한 요청에의해 본명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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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KO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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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교회생활

교회 밖에서 교회 안으로 들어온 이유

교회 생활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될 글들을 연재해달라는 요청이 eKOSTA에서 들어왔습니다.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응낙을 했습니다. 해줄 말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저를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30세에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길에서 미국 전도 대원이 나누어주는 손바닥만한 신약 성경책을 받아서 읽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오하이오 주립 대학에서 전자 공학 박사 학위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자마자 하나님께서 사역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수양회에서 간증을 했는데 그 후에 한미 가정 자매 두 분이 찾아왔습니다. "교회 안 다니는 친구들이 있는데 한인 교회는 거북하다고 안 나오고 미국 교회에는 알아듣기 힘들다고 안 나갑니다. 이분들을 위하여 성경 공부를 인도해줄 수 있습니까?" 나는 당시에 성경을 잘 몰랐기 때문에 평신도로서 엠마오 성경 통신 학교를 운영하던 홍 문공 형제라는 분을 모시고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5명으로 시작하였는데 20명까지도 모이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이 때에, 교회에 오는 것은 꺼리지만 집으로 초대하면 오는 불신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대학원생들을 위한 기도 모임도 시작하였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모여 식사를 같이 하고 간단히 성경 공부를 한 후에 서로의 기도 제목을 내어놓고 기도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자정이 넘어야 끝나곤 했지만 많은 분들이 참석하였습니다. 빤질빤질했던 많은 대학원생들이 이 모임에 와서 '깨어지고'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하여 서로의 삶을 나누는 작은 모임이 전도에 얼마나 효과적인가를 체험하였습니다.

1976년에 학위를 마치고 실리콘 밸리에 있는 Varian이라는 회사 중앙 연구실에 취직이 되어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 지역에 현재 교회 숫자가 약 300개라고 하는데 당시에는 딱 4 개뿐이었습니다. 교회마다 개척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고등 학생이나 젊은이들을 돌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청년과 더불어 아파트에서 고등학생, 대학생 6명을 데리고 성경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모임이 성장하여서 수년 후에는 약 50명이 모이는 모임이 되었습니다.

이 시점까지 제 사역은 다 교회 밖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교회 밖 사역에는 한계가 있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님이 교회를 세워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구나. 전인적인 제자를 키우기 위하여서는 역시 교회가 필요하구나." 모든 사역을 정리하고 교회 안에서만 사역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당시 섬기던 교회 담임 목사님이 마침 권면해 주셔서 장년 주일 학교를 시작하였습니다. 10년 가까이 교장직을 맡아서 섬겼는데 열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를 느꼈습니다. 교인들이 성경 지식은 느는데 생활은 그만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이 원하시는 성도를 키워서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를 만들어 볼까? 고민 가운데에 신약적인 '가정 교회'가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1992년 서울 침례 교회에서 담임 목사로 초청이 왔을 때에 가정 교회를 하겠다는 것을 조건으로 부임하였습니다.

30세에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했고, 41세에 신학교에 입학했고, 44세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평신도 때에는 집사, 장로로 섬겼습니다. 신학교 입학 후에는 전도사, 교육목사, 담임 목사로 섬겼습니다. 평신도와 목회자 양쪽 생활을 다 경험했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의 교회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하여 교회 생활과 관련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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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리


나의 생각은 너희와 달라…" (사 55: 8)

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저 하늘 끝까지 온 세상을 아주 후련하게 해 주는 하나님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말씀이다.

며칠 전 난 그런 멋진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파도가 밀려 들어오고 , 나가는 물소리와 바람소리에 수많은 돌들이 부딪치고 깨지고 갈아지는세상의 소리였다.


이 절기에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낮아지신 주님을 빛의 소리로 그려본다.

저 태평양 건너 우리가 사는 땅의 어른들은 소리를 음(音)과 성(聲)으로 나누셨다.
그래서 그 어른들의 소리는 폭포를 뚫고 거친 바람도 뚫을 수 있었나 보다.

그 맑고 거친 모든 소리로 하나님을 노래하는 우리들을 꿈꾼다.

파도와 수 많은 돌들이 바람으로 노래하듯.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의 흔적들을 이번 절기에는
우리에게 허락하신 많은 소리로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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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01 19:46 책이야기/eKOSTA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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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로이드-존스의 <십자가>

우리 민족의 명절인 설날이나 추석처럼 이스라엘의 절기도 월력(月歷)을 따르기 때문에 매년 약간의 변동이 있기는 하지만 3월은 우리 기독교 신자들에게 있어서 보통 사순절 기간이고,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던 마지막 주간을 기념하는 고난주간과, 사흘 뒤에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는 부활절이 있는 달이다. 부활절을 기준으로 해서 일요일을 제외한 40일, 즉 4 순(旬)을 역으로 계산하면 수요일인데, 이 수요일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 하며 올해는 양력으로 2월 13일이 바로 재의 수요일이었다. 재의 수요일에서 시작되는 사순절과 사순절의 마지막 주간인 고난주간과 부활절은 크리스마스나 추수감사절과는 달리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하심을 믿는 신자들만이 지키는 절기라는 점에서 어쩌면 우리 기독신자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절기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사순절과 고난주간, 부활절이 있는 이 3월의 양서로 마틴 로이드 존스의 <십자가>를 정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설교자로 알려져 있는 이 분이 갈라디아서 6:14절 말씀인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라는 한 구절을 가지고 9번에 걸쳐 강해 설교한 것을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으로, 강해 설교의 진미를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십자가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이해를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게 해 준다. 또 다른 십자가에 대해 잘 알려진 책인 존 스타트 목사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체계적이고 학술적이며 그래서 사색하게 되는 반면에, 마틴로이드 존스 목사의 <십자가>는 설교를 옮긴 글이기에 간결하면서도 아주 힘있고 감동적이며 깊이가 있는 책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책들을 읽다보면 늘 나 자신의 경박함과 천박함이 여실히 드러나는 동시에, 말씀의 깊이와 능력으로 마음이 뜨거워지고 하나님에 대한 열정들이 되살아나며, 완벽한 복음의 위대함에 감복하게 되는데, 이 <십자가>를 통해서도 역시 내 자신이 얼마나 피상적으로 예수님과 십자가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으며 십자가가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며 성부 성자 성령의 완벽한 지혜의 작품이었는지를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다. 십자가를 통해 기독교와 복음의 진수를 아주 깊이 있게 각 장마다 말씀하시는데, 세상과 자기 진단,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평강, 구속과 자유, 새로운 피조물, 그리고 심지어 사탄의 존재와 능력과 십자가와의 관계까지도 다룬다. 또 한가지 좋은 점은 거의 매 장마다 여러 적절한 찬송시를 싣는데 때로는 우리가 늘 부르던 찬송가의 가사를 다시 한번 깊이 묵상하는 계기도 갖게 될 되었다.

아무쪼록 이 번 한 달 사순절을 맞아서 십자가를 더 깊이 묵상하며, 묵상 중에 강권적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십자가를 지식적으로 뿐만 아니라 동시에 경험적으로도 깊이 알게 되어, 자랑할 것은 십자가밖에 없다는 귀한 고백들이 나와 이 글을 읽는 우리 이코스타 독자들에게 있기를 기도하며 이 책,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십자가>를 추천한다. 더불어 기회가 되면 존 스타트 목사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함께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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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탄 현장 이야기

시온의 대로(Pilgrimage)

얼마 전 우리는 학교 내에 새로 지어진 교직원 숙사로 이사를 했다. 중국에서 벌써 세 번째 집을 옮긴 셈이다. 아직 건물 주변이 정리가 되지 않아 흙길이고 어수선한 가운데 있지만 집안만은 아내의 억척스런 손 맵시로 단장되어 깔끔하고 아담하게 꾸며졌다. 우리 학교 건축과 교수님들의 설계와 시공으로 직접 지어진 아파트이기에 연길시에서는 보기 드문 세련된 구조가 마음에 든다. 큰 아이 다니엘은 이사 온 날 자기 방을 둘러보며, "아빠, 이 집은 한국 아파트랑 비슷하다. 그지?" 하며 좋아했다. 중국에서 아주 눌러앉게 될까봐 그것이 두려워 이사가는 것을 반대했던 아내도 막상 이사를 하고 보니 새집이 무척 좋은가 보다. 프로판 가스로 온수기를 연결하여 부엌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게 하였더니, 설거지하는 것이 마냥 신나고 즐거워 보인다. 그 동안 한기가 뼛속으로 스며드는 찬물에 손을 담그게 하여 거칠어진 손등을 때때로 펴 보이며 "오르간만 치던 손을 당신이 이렇게 만들었어..." 라며 눈을 흘기던 것이 생각난다. 새로 마련한 소파가 너무나 좋은지 하루에도 몇 번씩 일부러 앉아보며, "야, 참 좋다. 여보 나 소파 잘 바꾸었지?" 하며 눈치를 보며 내 동의를 구한다.

출장을 다녀오던 날, 연길 공항에 마중 나온 아내가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자기가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이 전전긍긍하더니, 내게 상의도 없이 소파를 바꾸었다고 마침내 실토를 하는 것이었다. 근 10년간 포항서 가지고온 세간사리를 그대로 지니고 살다보니, 여기저기 낡고 고장난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었다. 냉장고는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TV 화면도 찌그러지기 시작하고, 소파는 여기저기 다 떨어져서 보기 싫은 속살을 드러내었던 것이다. 소파를 바꾸자고 그녀가 몇 번 운을 띄웠지만, 아직 앉는데 지장없는 걸 왜 바꾸냐고 일축했었다. 깔끔하기로 유명했던 아내의 눈에 그 소파가 얼마나 보기 힘이 들었을까? 그 동안 참아준 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 집안 정리가 끝난 후, 아내가 아끼는 오디오 세트와 CD들을 마저 정리하고 새로 단장된 거실에서 아내가 틀어주는 헨델의 오라토리오를 스트레오로 듣고 있으니 정말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을 정도로 아늑한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10년 전 생각이 떠올랐다.

중국으로 떠나기로 결정한 후, 나는 힘들어하는 아내를 데리고 서둘러 여기저기 중국에 관련된 단기 훈련을 받으러 다녔었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강사로 등장한 중국 사역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중국은 언제 추방당할지 모르는 나라이니 짐을 많이 가지고 갈 생각을 말고 양손에 가방 두 개만 들고 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자기가 아끼던 살림들을 모두 버리고 가야한다는 생각에 억장이 무너지는 듯 한숨만 쉬고 있었다. 자기의 손때 묻은 가구며 주방기구 오디오 세트 피아노 오르간을 모두 두고 가야 한다니... 그녀로서는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 시절 저녁때만 되면 그녀는 가장 센티멘탈한 음악을 골라 틀어놓고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생활과 음악들을 즐길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잠기다가 마침내 엉엉 울음을 터뜨리곤 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중국서 사역을 한다는 어떤 분이 우리가 중국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소문으로 듣고 우리 집을 갑자기 찾아왔다. 아내의 고민을 듣더니, 무슨 말이냐? 가방 두 개만 가지고 가는 사람들은 언제든지 도망갈 준비가 된 사람들이니 중국을 사랑할 수 없다. 중국을 모르고 그저 허튼 소리들을 하는 사람들이니 신경 쓰지 말고 이 집에 있는 물건은 모두 싸들고 가라. 쓰레기통 하나도 중국에서는 다 쓸모가 있으니 버리지 말고 전부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로 아내는 힘을 얻어 열심히 이삿짐을 싸게 되었는데, 나중에 중국에 도착해 보니 바쁘게 짐을 싸다가 정말 쓰레기통 안의 쓰레기까지 몽땅 가져왔던 것이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아내의 약한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녀를 위로하시려고 친히 보내신 사람이었다고 생각된다. 오랜만에 그 시절을 회상해 본다.

1994년 7 월 11일, 이삿짐 컨테이너가 중국을 향해 떠나갔다. 그 안에는 지난 결혼 10년간 아끼며 가꾸고 쌓아 왔던 우리 가족의 애틋한 살림살이들이 전부 실리어 있었다. 밤 열시나 되어서 끝난 작업 후 차가 막 떠나려고 할 때, 빈집을 한바퀴 둘러보던 우리는 발코니 한구석에 큰 더미로 쌓여진 빈 상자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언젠가 이사갈 때 쓰려고 보관하여 오던 미국서 가져온 온갖 가전 제품들의 오리지널 박스들이었다. 시간에 쫓긴 일꾼들이 미처 그것들을 발견하지 못하고 모든 이삿짐을 새로 포장하여 실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그 상자들을 보는 순간 아내는 갑자기 그것들을 모두 싣고 가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기 시작했다. 나중에 중국서 돌아오려면 그 상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미 이삿짐을 가득 실은 차에는 더 이상 짐을 실을 공간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는 곧 울음이 터질 듯한 표정으로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직감했다. 이 빈 상자들이 그녀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 . 떠나려던 차의 문을 도로 열고 나는 이미 실린 물건들 중 몇 박스를 끄집어내리고 빈 상자들을 싣게 하였다. 일꾼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들은 빈 상자 안에 담긴 아내의 울음 섞인 소망을 알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 눈부신 아침 햇살 속에서 우리는 깨어났다. 넓고 환한 사각의 빈 공간 안에 갑자기 남겨진 우리 세 식구는 망연히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다니엘이 배가 고프다고 칭얼대더니 갑자기 서럽게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것이 배고픔의 울음이 아니라 아이에게 밀어닥친 어떤 불안감의 표출이라는 것을 느꼈다. 아이를 달랜 후, 주스 한잔을 먹여 학교에 보냈다. 사방을 둘러보던 아내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우린 이제 몸뚱이 셋과 가방 세 개만 남았군요."

그날은 다니엘의 마지막 등교일이라 우리는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서 들고 아이의 학교로 향했다. 포항제철 서 초등학교의 교정은 한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 꾸벅꾸벅 졸며 평화로운 자태로 우리들을 맞이했다. 아름다운 교정과 깨끗한 편의 시설들이 시야로 파고들며 내 가슴을 사정없이 찔러왔다. 천진 무구한 어린이들이 법석대는 책상 사이를 누비며 과자를 나누어 준 후 작별 인사를 하고 아이를 데리고 교정을 나섰다. 담임 선생이 귀띔하길 다니엘이 줄곧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자기가 4학년이 되면, 서 초등학교로 다시 전학 올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다녔다는 것이었다.

자동차로 아이와 아내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사무실로 향하려 하자, 참고 있던 눈물이 사정없이 쏟아지며 운전대의 핸들을 가리우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을 안겨다 준 내 자신이 하염없이 미워졌다.

하루종일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아 우두커니 책상에 앉아 있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의 목소리가 의외로 평화스러웠다. 아내는, 오후 내내 심한 상실감에 시달리던 그녀에게 성령께서 찾아오셔서 강하게 역사하시며 위로하셨다는 사실을 내게 알리고 싶어 전화를 한 것이었다. 마음의 고통 가운데도 입 속에서 "목마른 사슴"의 찬송이 이상하게 끊이지 않아 그 가사의 귀절이 담긴 성경을 찾아보던 중 시편 42편 5절의 말씀을 주시면서 말할 수 없는 평강으로 채우시더라는 것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나도 그 구절을 찾아보고 싶어서 옆에 놓여 있던 성경을 무심코 펼치는 순간, 할렐루야! 어쩌면 이럴 수가---, 바로 시편 42편이 단번에 펼쳐지면서 과거에 줄쳐 놓았던 5절이 내 눈에 튀어 오르듯 다가서는 것이 아닌가?

< 내 영혼아 어찌하여 네가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

나는 눈물이 쏟아지며 하나님의 강한 손길에 휩싸이고 말았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강하고 깊은 위로가 파도처럼 출렁이며 내 영혼 깊숙이 밀어닥쳤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다 아시기에 한 순간도 우리를 놓치시지 않으시고 돌보시며 이렇듯 등뒤에서 함께 동행하고 계시지 아니한가? 이런 생각과 함께 그분의 임재하심이 피부 가까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이 구절이 이제 중국을 향해 떠나가는 우리 가족에게 주님께서 친히 주신 위로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확연히 깨달았다. 앞으로 어떤 고통과 실망의 순간들이 닥쳐오더라도 오직 이 말씀 하나를 붙들고 다시 일어서라는 주님의 애정 어린 당부가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것만 같았다. 그 날... 포항에서의 마지막 밤... 우리 부부는 빈집에서 평화로 가득한 밤을 맞이할 수 있었다.

우리의 이삿짐 콘테이너가 학교에 도착하던 날,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세간에 그것을 지켜보던 다른 동역자들이 "아니 M으로 온 사람들이 무슨 짐을 이렇게 많이 가지고 왔느냐?" 며 나무라듯 말하던 일이 생각난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내는 자기는 필경 이런 곳에 올 사람이 못 되는데 잘못 왔다며 금새 자격지심에 사로잡혀 힘들어하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창세기 12장 5절의 말씀을 읽던 중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 땅으로 떠날 때,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를 이끌고 떠났다는 대목을 읽으며 크게 위로를 받게 되었다. 그 당시 아브라함과 사라가 처했던 어려운 상황과 고민들이 마치 우리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면서, 그들도 우리와 같은 마음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우리에게 이삿짐이 많다고 반문하던 사람들은 어느새 대부분 이곳을 떠나고 말았지만 아내와 나는 아직 중국에 남아있다. 아내는 자신이 아끼던 그 살림들이 볼모가 되어 이곳을 떠나지도 못하고, 지난 세월을 힘들게 그러나 기특하게(?) 살아내었던 것이다.

처음 정착 당시, 그 동안 살았던 쾌적한 환경을 버리고 조금이나마 열악한 환경 속으로 들어가 살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부부에게는 행운이었고 좋은 훈련기간이었다.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사로잡히기 쉬운 우리의 연약한 마음을 주님께서 강제로 다스리시며 참 영원한 것을 사모할 수 있는 마음으로 조금씩 변화시켜 주셨던 것이다. 그 시절의 뜨겁고 순수했던 마음이 오히려 그리울 때도 있다. 어떻게 그 시절의 아픔과 어려움을 통과했는지.... 모든 것이 그분의 은혜일 뿐이다. 중국에서 처음 살던 집과... 94년 겨울을 회상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걸어 내려오면 약 30분쯤 걸리는 '뻬이따'라는 곳에 아파트를 얻었다. 연길 시내에서도 가끔 택시 값을 더 달라고 하는 변두리지만, 아파트들이 비교적 새로 지은 곳이 많고 시장도 새로 생기고 집 앞에 버스 종점도 있어서 주거지역으로는 오히려 적당한 곳이다. 저희 학교는 인적이 드문 언덕바지에 우뚝 세워져 있기 때문에 학교 버스로 학생과 교직원들을 수송하는데, 교통편이 여의치 않을 경우는 걸어서 내려오곤 한다. 저녁 무렵 학교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면, 짙은 안개에 싸인 연길시 전체가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고 있다. 연길 시는 맑은 날은 먼지와 바람이 많아 호흡을 곤란케 하고, 비만 오면 온통 진창으로 변하여 보행을 어렵게 한다. 가장 힘든 것은 수도만 틀면 뻘건 흙탕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인데, 그나마도 자주 끊어져서 아내를 낙담케 한다. 아내는 지난여름 내내 물과의 전쟁을 치렀다.

이곳의 겨울은 한국에 비하여 한달 가량 빨리 찾아와서 한달 늦게 끝이 난다. 매운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운데 단층 벽돌집들마다 달린 굴뚝에서는 매캐한 연기가 꾸역꾸역 밀려나오고 있다. 겨울만 되면 몇 미터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이 연기가 가득 차서 연길시가 '연기시'로 바뀌고 만다. 집 근처에 다다르면 길가를 따라가며 시장 바닥의 온갖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다. 양고기 꿰어서 꼬치를 굽는 사람들과 모락모락 향긋한 연기를 뿜는 만두집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조선말을 모르는 한족에게 손짓으로 겨우 의사소통을 하여 만두를 한 봉지 산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퇴근길에 군것질거리를 사 가지고 들어오시던 생각이 난다. 한국서 차를 몰고 다니다 보니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옛 기억들이다. 습관적으로 혹시 따라오는 사람이 없는지 뒤를 살핀 후에 아파트 입구로 들어선다. 이곳은 한국서 온 사람들을 전문으로 터는 강도들이 많아서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에는 늘 조심해야만 한다. 현관 앞에 늘어선 자전거 숲을 헤치고 5층까지 칠흑같이 캄캄한 계단을 더듬어 올라간다.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면 반가운 두 얼굴이 나타난다. 아파트 문이 뒤에서 철컹 닫힐 때 비로소 바깥 세상과는 전혀 다른 빛의 세계로 들어선 것을 깨닫고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개화초기 한국에 왔던 선교사들이 자신들의 문화 공간을 그대로 유지하며 편한 생활을 하였던 기록을 읽으며 비판하였던 것이 생각난다. 그러나 이제야 비로소 그들을 이해할 것 같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먼저 오신 어떤 분이 이곳에서의 생활은 이론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며, 이곳에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은 자기 집뿐이니 최대한 편안하게 꾸미라고 충고하신 뜻도 이제 어렴풋이 이해가 간다. 맡겨진 직분 때문에 더러는 편안한 생활 공간조차도 가슴속의 찔림이 되어야하는 심령을 우리의 연약함을 내려다보시는 주님만이 아실 것이다.

새 집에서 첫 날 밤을 지내고자 침대에 누우니, 집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아내가 잠을 이루지 못한다. 마치 집안에 갇혀 지내다가 10년만에 외출을 한 여자의 기분인 듯 싶다. 새 집으로 이사만 와도 이렇게 좋은데 나중에 천국에 가서 우리가 느끼게 될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다. 뒤척이던 아내가 불안한 듯 입을 연다. "여보, 우리 너무 좋은 집에서 사는 것 아니에요?" 아내에게는 사도 바울의 말씀으로 안심을 시키며, 비천에 처하든 풍부에 처하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 속이든 일체의 비결을 배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해주었지만, 내심 어쩌면 아내의 말이 옳을 수 있다고 생각이 든다.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해 안락함 속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가 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본질적으로 믿는 자들의 인생을 나그네길이라고 말한다. 크리스천은 이생의 장막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영원히 거할 주의 장막을 사모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 9:58)." 하신 것이 생각난다. 오직 아버지의 마음에 초점을 맞추고 사셨던 분... 그분에게는 이 세상에는 마음둘 집이 없었다. 어디로 가든 그를 따르겠다고 나서는 제자들마저도 그분의 마음을 위로하여 빼앗지는 못했다. 그는 알고 있었다. 나그네길에는 항상 눈물 골짜기가 기다리고 있으며, 그곳을 통과할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떠나가고 오직 성령만이 함께 하실 것이라는 것을...... 그러나, 그 이후에는 반드시 천국의 영광이 따라온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이다.

주님, 이 밤에 오직 주의 궁정에 거하기를 사모하시던 예수님의 마음을 저에게도 주시옵소서.(2002.2.24)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pilgrimage)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시편 8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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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좁고 미국은 두렵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수5:15).

들어가는 말

"한국은 좁고 미국은 두렵다"라는 연재 칼럼 중, 지난 회까지는 미국에서 직장을 찾고자 하는 경우에 어떻게 준비해야 될 것인가에 관하여 생각하여 보았다. 이번 회에서는 이제 이미 job offer를 받고서, 미국에서 새로운 직장생활을 시작하고자 할 때에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될 것인가에 관하여 논의하여 보기로 하자.

본 칼럼을 몇회에 걸쳐 연재로 쓰는 중에, 미국에서 직장을 얻기 원하는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다. 몇몇은 본 칼럼에서 도전 받고서 미국에서 직장을 얻게 되었다고 감사를 표명하는 형제자매들도 있다. 감사한 일이나, 본 칼럼을 통하여 내가 분명히 해두고 싶은 점이 있다. 본 칼럼은 미국에 이민을 하거나, 또 직장을 얻은 것이 더 좋다 또는 싫다는 식의 혹자가 말하는 '극단적인 친미주의나 반미주의' 또는 '국수적인 민족주의'등에 관한 논쟁은 나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한 것임을 확실히 해두고 싶다.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거역할 수 없는 새로운 이민 생활과 외국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야 되는 고민스럽고 절박한 문제를 신앙의 눈을 통해 조명해 보고 싶을 뿐이다. 새로운 땅을 바라보며, 여호수아가 경험하였던 고뇌를 생각하며, 미국에 유학하는 한국 유학생 형제자매의 현실적인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은 것이다. 고국에서 직장을 찾거나, 외국에서 직장을 찾거나 학위취득 후에 직장을 찾는 고민은 마찬가지이며, 직장 찾는 방법은 다르더라도 원론적인 상황과 접근은 같다고 볼 수 있다.

여호수아는 거룩할 수 없는 땅에서 신발을 벗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 이방족속이 사는 우상과 죄악이 가득한 땅에서 기꺼이 신발을 벗었다. 하나님의 임재로 거룩해지는 어느 땅에서든지, 겸허하게 주님앞에서 종으로서 신발을 기꺼이 벗고, 주님을 참 주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자만이 새로운 환경에서 승리할 수 있을것이다.

길갈에 세운 열두돌 기념비

다시 여호수아서의 말씀으로 되돌아 가보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법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들어서자마자 요단강은 약속처럼 갈라졌다. 얼마나 기쁘고 안도의 숨을 쉬는 순간이었겠는가. 법궤를 맨 제사장들이 요단의 가운데에 굳게 섰고, 백성들은 감사에 벅찬 가슴으로 요단을 건넜을 것이다. 지난날 광야에서 수없이 겪었던 고생이 단번에 보상이 된 듯이, 지난 모든 고통들을 이 순간에 다 잊어버렸을 것이다. 아마도 미지의 새로운 땅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생업을 위한 새로운 직장을 얻게된 유학생 이민자와 그 가정의 기쁨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 오르기도 할것이다. 그 어렵게 생각되던 job 인터뷰를 잘마치고 job offer를 받아냈다는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할 것이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부족한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이 하셨구나' 하는 감사에 눈물을 흘리며 주님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감사도 할 것이다. 지난 수년동안 유학생활을 되돌아보면 감회가 깊어지기도 할 것이다. 힘든 학점이수, 연구, 연주 및 작품발표 준비로 마음 졸이며 밤을 세웠던 수많은 날들이 벌써 언제이었나 싶기도 할 것이다. 다시 유학생활의 광야로 되돌아가라면 자신이 없지만, 그 광야의 훈련을 지난 것을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할 것이다. 첫 열매는 하나님 것이라고 설교하시던 목사님의 말씀에 다소 부담을 느끼면서도, 벌써 전문인으로서 받게 될 첫 봉급을 나누어 쓸 계획에 마음이 분주해 진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감사함은 언제나 오래 지속적이지 못하다.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저들이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지키시며, 만나를 공급하시고 저들의 옷이 헤어지지 않게 하셨다는 하나님의 사랑을 곧 잊어버릴 것을 말이다. 감격스럽게 마른땅을 건넜던 요단강의 기적을 곧 잊어버릴 것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열두지파에게 부탁하여 요단강 가운데와 길갈에 요단의 물이 끊어진 표징을 기념하는 기념비를 세우고, 저들이 자자손손이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와 보호하심을 기억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그 감격의 순간에는, 무거운 기념비의 돌을 지고 나오는 일조차도 기쁜일이었을 것이다. 요단 가운데에 돌을 세워서 표징을 만들고, 또 길갈에 세울 돌을 들고 나오는 열두지파의 대표들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을 것이다. 길갈에 열두돌로 기념비도 세우고, 요단을 마르게 하신 하나님의 능하심을 되새기며 자손에게 이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를 가르치자고 몇번이고 다짐도 해두었을 것이다. 아무리 다짐을 했어도, 저들은 금방 길갈에서 다짐하였던 감사의 맹세를 잊어버리고 만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을 거역하고자하는 죄된 본성은 변하지 않은 탓에, 유학생활의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 평지에 이르게되면 너무도 쉽고 빠르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들의 습성이다. 새로운 진로의 두려움 때문에, 요단강만 건너게 해주시면 주님을 위하여 무엇이나 하고싶던 감격도 금방 시들해져 버리기 쉽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 속에 힘겨운 유학생활의 광야를 지나, 길갈까지 이르렀던 수많은 크리스천 유학생 선배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을 지금 보고 있는가?

저들은 요단강을 건널 때 가져가서 길갈에 세워야 할 기념비의 돌을 잃어버리고 간 연고요, 또는 가지고 갔으되 바른 기념비로 세우지 못한 탓일 것이다. 요단을 건너며 가지고 가야되는 돌은 "주께 감사"의 돌이다. 비록 길갈에 세운 돌에 문비로 쓰진 않았지만, 평생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주께 감사"를 그 돌에 새기고, 때만 되면 길갈의 기념비로 되돌아와서 그 "감사"를 되새기며, 주께 죽도록 충성하겠다는 "헌신"으로 돌을 닦아야 할 기념비가 아니겠는가?

학위와 직장때문에 얼마나 울고 웃었는가? 하지만 이제 그 학위와 좋은 직장을 얻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일인가. 광야를 지나서, 학위취득과 새로운 전문직업을 얻은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것을 누가 부당하다고 할것인가? 마음껏 감사함으로 기쁨을 누리자. 그러나, 나는 "누구 때문에" 오늘의 새 길을 얻게 되었으며, "무엇을 위해" 이 길을 가게 되는가? 조용히 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얻은 답을 길갈의 기념비에 꼭 새겨두고, 게으름과 교만이 싹틀 때마다 찾아와 읽어야 할 기념비가 바로 길갈에 있는 것이다. 자녀들에게도 그 기념비에 적힌 기적과 감사를 들려주어야 할 것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요, 세대를 넘어 변함없이 한결같으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길갈의 기념비로 돌아가보리라고 다짐해 두자.

마음의 할례를 행하라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을 건너는 기쁨도 잠시였다. 길갈에 기념비를 세우긴 하였지만, 가나안 이방족속과 싸우게 될 일이 벌써 걱정이다. 이미 요단강을 마른땅으로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본 가나안 이방족속들은 하나님의 능력 앞에 겁을 먹고 있긴 하지만, 언제 저들이 싸움을 걸어올지 불안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광야에서 출생하여, 거친 생활에 잘 훈련된 젊은 용사들이 몇 만명이나 있지 않은가? 지도력이 출중한 여호수아는 다가올 이방족속과의 전쟁에 승리할 전략을 충분히 세워 놓았을 터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광야생활 중 할례를 받을 수 없었던 모든 젊은 남자는 다 할례를 먼저 받으라고 명령하시는 것이 아닌가? 이 위급한 상황에서 이 얼마나 부당하신 명령인가? 옛날 야곱 할아버지와 그 자녀들이 막내딸 디나로 인하여 히위족속 에게 수치를 당했을 때, 히위족속의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하고서, 낫기를 기다리던 저들을 습격하여 진멸시켰던 할례에 얽힌 무서운 이야기도 수없이 들어온 터였다(창34:1-31). 지금 상황은 그보다 더 급박한 상황인데, 싸울 수 있는 젊은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는 가나안 이방족속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용사가 무장하고 밤낮으로 지켜도 부족한 터에, 거의 모든 남자들은 할례를 받고 며칠동안 낫기를 기다려야 한다니 참 걱정스러운 일이다. 히위족속의 이야기가 자꾸 마음을 괴롭히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오묘하신 방법이다. 그 분은 항상 우리의 인식의 범위를 넘어서 일하신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살기 위하여서는 먼저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침을 받아야하고, 하나님의 요구에 합당한 성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다짐이 먼저 필요했던 것이다. 세상의 온갖 풍요로움을 다 갖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이방족속이 섬기는 더러운 우상들과 타락된 세상욕망 속에 이스라엘 백성이 동화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아니 저들로부터 성결하게, 썩지 않는 소금처럼 구별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가나안 땅을 축복으로 누리기 전에 먼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만이 모든 것의 참 주인"이시라는 고백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요구하신 "할례"가 아니였을까?

광야의 유학생활 시절중에는 연구 및 강의조교로 받았던 적은 장학금이라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새로운 직장에서 받게되는 거액의 연봉에 비하면, 그것은 참 쥐꼬리만한 것이었다고 생각이 되기 시작한다. 이제 물론 부모님께 미안하게 마음 조리며 받았던 생활비 보조도 더 필요없게 될터이다. 아니 도리어 지금 이미 연로해지신 부모님을 도와드릴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뻐서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다. 몇 년간 속을 썩이던 고물차도 이제 새차로 바꾸고, 그 지겨운 아파트 생활도 청산하고 정원이 있는 새집도 사 볼 작정이다. 정원은 몇 에이커 좋을까가 궁금하고, 익히 들어왔던 것처럼 집 앞뒤의 잔디 깎을 일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미 보랏빛 장래가 열린 듯이 보인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새로운 직장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아직도 미숙하기만한 새로운 땅에서의 직장생활에서 다가오는 모든 어려운 일들을 잘 처리하며 살아남을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얻은 직장인데, 성공적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내가 무엇인가 준비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생활은 자꾸자꾸 숨쉴 틈도 없이 바빠져 가고 있다. 점점 기도하기가 재미없어지고, 예배생활이 다소 느슨해진다.

수많은 크리스천 유학생들이 직장을 얻자마자,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쉽게 빠져버리 거나, 힘든 세상의 일들에 파묻혀 버리는 것을 보는 것은 실로 가슴 아픈일이다. 이제 세상 속으로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파송을 받아 나간 저들이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쉽게 빠져 버린다면 어찌될 것인가? 세상에 살되, 세상의 가치와 기준에 동화되지 않고, 어떤 경우에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따라 구별되어, 인내하며 살고자하는 결단이 있어야, 그리스도의 대사로서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직장을 찾아 떠나는 우리가 가져야할 "마음의 할례가" 아니겠는가?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에 굳게서서, 이웃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진실한 크리스천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그러한 크리스천 몇 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처럼 이 세상의 도시와 사회가 병들어 가고 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서 살고자하는 결단의 마음으로 세상 속에서도 구별되게 살고자하는 전문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복음은 빛이나고, 그 사회는 아름다워 질 것이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이스라엘 백성은 새로운 땅에서 할례를 행하였고, 유월절을 지켰다. 이제 점령해야 될 여리고가 가까워져 가고있는데, 여호수아는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섰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만나게 된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수5:15), 여호수아는 그대로 순종하여 행하였다. 이 말씀과 상황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말씀하셨던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와 비슷한 말씀과 상황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셨던 말씀을 여호수아에게 다시 하시면서 그에게 용기를 주려 하셨을 것이다.

가나안 땅은 가나안 이방족속이 사는 우상과 죄악이 가득한 땅이었다. 그런데 그곳이 어떻게 거룩한 곳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임재하심 때문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심 때문이다. 새로운 이민 생활을 시작하게될 새땅은 어느곳이든 우상과 죄악이 가득한 거룩할수 없는 땅이다. 그러나 우리가 새롭게 정착하며 살 땅이 어느 곳이든, 하나님이 임재하심이 있으면 거룩한 땅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처럼 우리 모두도 그 거룩한 땅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 신을 벗을 수밖에 없는 것이며, 벗어야만 되는 것이다.

예수 전도단의 창시자인 로렌 커닝햄은 "네 신을 벗으라"는 말씀을 이렇게 풀고 있다.

"맨 발이 되라고 하는 것은 겸손의 표시로서, 나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였음을 말하는 것이다. 맨발로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다시 오실 만왕의 왕, 만유의 주되시는 우리 예수님과 함께 열방을 소유할 뿐아니라,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권세를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또 우리에게 이 모든 것보다 가장 큰 특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이 세상을 취해 이기는-을 약속하셨다."

이민 생활과 새로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이 세상을 취해 이기기를 진정으로 원하는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땅을 거룩하게 여기고, 겸손하게 그 땅에서 신발을 벗고 살아야 할것이다. 자신의 능력과 취득학위로 되는 것이 아니요, 진정한 이민생활의 승리는 주님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실 때 얻게 되는 것이다. 이민하여 사는 그 곳이 어느곳이든 거룩한 땅이 되게하고, 겸허하게 주님 앞에 자신의 신발을 벗고, 주님을 내 삶의 진정한 주님으로 섬길 때에 승리가 보장되는 것이다.

맺는 말

성경에서 보면, 실패하는 이민자와 승리하는 이민자가 있다. 미국 이민에서도 승리하는 이민 백성(족속)과 실패하는 이민 족속이 있다. 하나님이 주신 곳이 어느 곳이든 거룩한 땅이라고 생각하고, 그 곳이 어느 곳이든 주님의 종으로서 여호수아처럼 주님 앞에서 자신의 신발을 기꺼이 벗는 삶은 승리하는 이민자의 삶이다. 그것은 그 간에 수고하여 얻은 전문인의로써의 전문성을 포기하고 살라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새롭게 허락된 땅에서 더욱 철저히 전문성을 발휘하고, 또 그 전문성을 통하여 자신이 속한 사회에 아름답게 기여하며, 더불어 온몸으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라는 것이다. 끝내 두고 온 애굽의 기억들을 계속 그리워하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땅에서 기꺼이 신발을 벗을 수 없는 자는, 언제나 떠도는 이민자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어떠한 이민자의 삶을 살 것인가는 이민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자의든 타의든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있는 한국이민자는 지금 자신들이 사는 곳을 어떻게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미국이나 제3국에 새로운 직장을 찾으며 이민을 고려하는 크리스천 유학생들이여, 어느곳이든 거룩한 땅에서 신발을 벗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여호수아처럼 살자. 주님이 승리케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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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복음

우리와 다름에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들을 향하여 사랑을 보여 주기가 쉽지 않습니다. 종교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고 죄인들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고 우리와 생각이 같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팔 가룟 유다의 마음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다의 발까지 씻기셨습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조건없는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달라고 절규하셨습니다. 저들이 누굽니까. 예수님을 배반한자들이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인들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하여서도 조건없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라면 예수님의 그러한 사랑을 조금이라도 실천하여야 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은 사랑하기 쉬운데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종교가 다르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타 종교 중에도 가장 기독교를 핍박하는 회교도인을 향하여는 더욱 그렇습니다. 미국의 테러사건 이후에는 더욱 회교도를 향한 우리의 마음이 닫히게 됩니다. 최근에 경험하였던 작은 이야기를 하나 나누고 싶습니다. 언젠가 회교도인 한 여인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자기 남편이 강도상해죄로 교도소에 갇혀있는데 변론을 맡아달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모두 외국근로자들입니다. 처음에는 망설였습니다. 회교도인들을 위해 크리스챤이 변론을 하여준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곧 제 생각이 단견이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회교지역에서 핍박받고 있는 우리 선교사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 사람들이라도 잘 대해주면 귀국해서 최소한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변론을 해주겠노라고 승낙하고 교도소에 찾아가 그 남편을 만났습니다. 그 남편은 부인보다 더 열렬한 회교도인이었습니다. 교도소내에서도 하루 5번씩 기도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친절하게 법적인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그를 신뢰한다는 태도로 접근하였습니다. 그를 위해서 변론을 하여 주겠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그가 다니는 이슬람사원의 지도자가 저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하였습니다. 당신을 위하는 일이라면 만나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공통의 장 (commom ground)이 있으면 누구와도 만나서 함께 일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공통의 장은 섬김과 정의와 사랑입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그를 위하여 변론하였습니다. 그가 구속되어 있는 중에 그의 아내는 출산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를 돌보아 줄 크리스챤 자매를 붙여주었습니다. 통역도 하여 주고 병원도 데려가 주었습니다. 병원비가 없는 것 같아 회사에서 모금운동을 벌였습니다. 그 사랑의 헌금도 전달하였습니다. 지금은 잘생긴 아들을 순산하였습니다. 마지막 선고하는날 그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판사가 남편을 불쌍히 여겨서 석방을 하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주목사님, 감사합니다"라며 울먹이면서 말합니다. 그의 알라신이 도와 주셨는지 우리 하나님이 도와 주셨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사랑과 정의를 위해서는 기독인도 회교도인도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부부는 아들을 안고 자기 나라 특산물인 선물을 손에 들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도 기뻣습니다. 그 즈음에 한국에서 상연하고 있던 영화 한편을 감상하였습니다. 천국의 아이들이란 제목의 영화입니다. 역시 회교국가에서 만든 영화입니다. 가난한 어느 회교도인의 가정에 어린 남매가 있었는데 너무 가난해서 아이들의 신발도 사줄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오빠의 걸레같이 생긴 운동화 하나로 여동생과 함께 나누어 신게 됩니다. 오전에 여동생이 오빠의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갔다오면 오후에 오빠는 그 운동화를 신고 학교에 다닙니다. 이어 달리기에서 바톤체인지 하듯이 운동화를 나누어 신다 보니 오빠가 학교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는 여동생도 뛰어서 집에 와야하고 오빠도 뛰어서 학교에 가야합니다. 이 달리기가 반복이 되다보니 오빠는 달리기에는 자신이 있는 사람이 되었는데, 어느날 운동화가 부상으로 걸린 어린이 마라톤에 출전하여 일등을 한다는 내용의 영화였습니다. 가슴이 찡하게 저려오는 영화였습니다. 우리에게 공통의 장이 있으면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공통의 장, 사람과 인간애입니다. 우리는 우리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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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3/01 19:42 기독교적 세계관

세계관 인간이해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의 기초 (6)

1. 문화와 세계관
2. 세계관이란?
3. "문화화(enculturation)" 과정과 세계관의 형성
4. 세계관의 역학적 기능
5. 세계관의 충둘 : A case study - Islamic worldview

5.2. 기독교 세계관의 핵심과 이슬람 세계관의 핵심 비교 (계속)

지난 호에서 이슬람에서도 기독교에서처럼 유일신을 고백하며,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충성하는 것처럼, 무슬림 들도 그의 마지막 선지자 무함마드에 대한 사랑과 신앙을 고백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것은 마치 요한 사도가, 영생이란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아들 예수를 아는 것이라고 말한(요 17: 3) 구원 조건의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슬람은 기독교 후에 나타난 종교 가운데 가장 기독교를 닮은 종교이다. 특별히 신앙고백의 구조에 있어서 이슬람은 기독교와 같은 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 진위를 떠나서) 신앙고백이라고 하는 것은 집단적으로 표현되는 종교적 신념이다. 무슬림 지도자들은 이슬람의 신앙고백 내용인 tauhid(알라의 유일성)와 risalah(무함마드의 선지자됨)를 무슬림들로 하여금 종교의식들을 통하여 계속 반복하게 함으로써 이 공유된 지식과 신념이 모든 무슬림들의 의식 세계뿐만 아니라 잠재의식 속에도 자리잡도록 한다. 이 지식은 자연히 무슬림들의 세계관의 깊은 곳에 자리잡게 된다. 이 신념은 세월이 흘러가면서 더욱 굳어지게 되고 이러한 사고의 패턴은 웬만한 충격이 아니면 변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러므로 세계관을 바꾸어야 하는 전도의 사역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세계관의 충돌이며 곧 확신의 싸움인 것이다. 나는 무슬림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이해시키는 것이 다른 비기독교인들에게 전도하는 것과 비교해볼 때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절감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러나 나의 끊임없는 사명은 그들의 신앙고백 구조 안에서 그들이 믿는 무함마드의 역할이 예수에게 원래 있었음을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무함마드에 대한 그들의 충정과 사랑은 지극한 것이기에 무함마드를 손상시키는 언급은 금물이다. 그리고 그러한 접근은 바람직하지도, 건설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무슬림들 자신들이 결정해야 할 내용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새로운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고, 그들이 나름대로 알고 있던 예수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이 생기게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언젠가 예수에 관한 그들의 paradigm에 변화(shift)가 일어날 것을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이슬람의 세계관을 염두에 두고, 무슬림들을 접하게 될 때에 복음의 전달자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것이다. 무함마드가 선지자가 아니라는 것을 변론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일이다. 복음을 듣는 상대방의 세계관에 변화가 일어나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는 상대방의 세계관의 내용(즉, 믿음의 내용)의 진위를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자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증거하는 것이다. 이때에 우리가 예상하는 것은 세계관의 충돌이다. 즉, 상대방이 확신하고 있는 내용과 다르거나 정반대의 내용을 자신도 확신하며 이야기하게 될 때에, 이러한 내용은 상대방의 세계관을 건드리게 되어 있기 때문에 감정의 문제로 확산될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세계관의 충돌은 예상하면서도 이러한 충돌이 인간 관계에 끼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한도로 줄이기 위하여 소위 "코뮤니케이션"의 기술이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이 부분은 다루지 않겠다.)

5.3. 이슬람의 세계관과 무슬림들의 세계관

무슬림과 기독교인이 만나게 될 때에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은 단순히 종교적인 충돌이나 Samuel Huntington이 말하는 문명의 충돌이라고 하는 비인격적인 이념의 충돌만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내면의 확신 곧 세계관의 충돌을 포함한다. 이러한 이해를 갖게 될 때에, 복음전달자는 무슬림들이 갖고 있는 "이슬람의 이데올로기"보다는 그것을 신봉하고 있는 "무슬림들의 세계관"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이상적이고 이념적인 이슬람 자체보다도 무슬림들의 생각들을 더 다루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무슬림들의 생각과 그 구조에 더 초점을 맞추며, 그들의 사고방식, 인식방식, 또 인식한 내용들과 그 내용들에 대한 그들의 반응 등이 이제 더 큰 관심의 대상이 된다.

지금까지 이슬람 연구에 있어서 세속 학자들이나 기독교 학자들이나 심지어 무슬림 학자들조차도 이슬람의 종교적 내지 철학적 이데올로기에 더 관심을 쏟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이슬람에 대한 역사와 교리와 정치적 이념 등에 대하여 나름대로 공부하면서 무엇인가 한 가지가 빠진 것을 많이 느꼈다. 그것은 내가 문화인류학적 현장조사를 수행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인데, 무슬림들, 곧 "사람들에 대한 연구"이다.

즉, 무슬림들은 자신들이 믿는 이슬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하여 (즉, 앞에서 언급한 환경들) 어떠한 해석과 대처를 하고 있는가? 무슬림들은 자신들 주변의 환경들을 이슬람의 이념에 기초하여 해석하고 이해하고 있는가? 이슬람의 이념들이 무슬림들의 삶의 문제들을 어디까지 풀어주고 있는가? 만일 이슬람의 이데올로기가 자신들의 삶의 문제들을 다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무슬림들은 어디에 호소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후자의 경우 이슬람의 이데올로기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이슬람 지도자들은 그렇지 못한 무슬림 평민들에 대하여 어떠한 시각을 갖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무슬림들의 세계관을 다루는 이슈들이다. 이렇게 무슬림들을 이해함으로써 접근하는 이슬람 연구는 이슬람 세계의 구체적인 사회적 정신적 현상들을 규명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무슬림 사회와 무슬림들의 삶들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서 내가 자각하게 된 점은 이슬람의 내용만이 아니라 그것을 신봉하는 무슬림들의 삶을 이슬람학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서는 이슬람 연구라고 하는 것은 너무 추상적이며 관념적인 사변만으로 끝나기가 쉽다. 특별히 선교를 수행할 때에 무슬림들을 깊이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직 이슬람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만 잘 아는 것은 사랑을 기초로 한다고 하는 선교에 오히려 위배될 수도 있다.

무슬림들이 이슬람의 이념을 다 신봉하기는 하지만, 그 정도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무슬림 사회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이슬람의 이데올로기만이 무슬림들의 세계관을 다 형성해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세계관을 구성해주는 세계관의 전제(assumption)와 가치(value)와 충성(allegiance) 등의 내용이 무슬림 사회에서는 이슬람의 이데올로기만으로 되어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수많은 토속적인 전통적 세계관이 함께 어우러져 있으며, 어떤 삶의 영역에 있어서는 오히려 이슬람 이전의 전통적인 세계관이 더 지배적인 것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무슬림 사회 역시 여느 다른 비무슬림 사회처럼 그 세계관이 복잡하며 인간 사고의 심연과 그 창의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슬림들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하여서 우리는 잠시 여기서 이슬람에 대한 내용을 접어두고 다시 세계관의 주제로 돌아가서 "세계관의 주제(worldview themes)"와 "세계관의 보편요소들(worldview universals)"을 다루어야 하겠다. 이 부분을 다룬 뒤 무슬림들의 세계관의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 때에는 내가 사역하고 리서치한 동아프리카 해안의 스와힐리 무슬림들의 세계관을 실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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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KO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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