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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1년 12월호

백설 공주의 계모인 왕비는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음에 틀림 없습니다. 아내를 잃은 왕이 마음을 빼앗길 정도로 아름다워서 주변의 이목이나 만류를 물리치고 맞아들인 여인이었을 겁니다. 처음 그녀가 왕실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되기도 하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전(前) 왕비의 기품 있는 모습과 온화한 인품과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들이 수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공주를 돌보기보다는 자신에게 모든 관심과 시간을 쏟고 있는 왕비에 대해서, 그녀에게 온통 빠져있는 왕의 지나친 사랑에 대해서 사람들은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떠도는 계모에 대한 온갖 속설과 선입견들, 나쁜 계모들에 대한 무수한 사례들이 다 그녀의 몫이 되어 갔습니다. 왕의 잘못된 정치적 판단이나 인격적인 불찰도 그녀의 탓으로 돌려지기까지 했습니다. 악의적으로 조작된 그녀의 과거에 대한 그럴싸한 증거들과 부도덕한 루머들이 사람들의 호기심과 무료함을 충족시켜 주었습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소문과 위증의 폭력으로 그녀의 행복은 박살 나 버렸습니다. 왕은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도, 신뢰하지도 않았습니다. 왕에겐 지켜야할 체면과 자존심이 한 여인의 상처를 위로하는 것보다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녀의 불행을 통해서 은밀한 즐거움을 맛보았습니다. 평범한 신분의 여인이 왕의 총애를 받는다는 건 얼마나 배 아픈 일이었는지, 그녀의 눈부신 아름다움은 얼마나 큰 질투의 대상이었는지. 타인의 행복은 결코 나의 기쁨의 원천이 아닌 것을 사람들은 깨달았겠지만, 타인의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자신의 가엾음을 깨닫지는 못 했나봅니다.

왕비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밝고 쾌활하던 성격은 우울하고 의심 많은 성격으로, 긍정적이고 낙천적이던 성품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조소하는 시각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그녀의 가장 큰 절망은 사랑 받지 못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각은 그녀에게 죽음과도 같은 어둠이었습니다.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자신, 누구의 관심과 염려스런 눈빛도 받지 못 하는 자신, 그리고 아무도 믿지 못 하는 자신. 그런 자신의 모습이 싫어서 달팽이처럼 단단한 껍질 속에서 웅크리고 살아가는 여인의 마음에는 증오와 분노, 슬픔의 깊은 웅덩이가 패였습니다. 그녀의 유일한 대화 상대는 거울이었습니다. 거울은 또 하나의 자아, 그녀의 내면을 표출해 놓은 장치였을 겁니다. 거울조차도 이제는 그녀에게 아름답다고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이제 스스로에게도 배반 당했습니다. 스스로를 사랑할 능력조차 상실한 거지요.

어느새 아름다운 숙녀로 자란 공주의 아름다움은 그녀의 모든 증오와 질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전에 그토록 혐오하던 인간의 질투심과 사악한 마음이 바로 그녀 자신의 성품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카인이 아벨을 질투한 것처럼,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질투한 것처럼, 공주를 지켜야 할 자가 그를 치는 자로 변해 버렸습니다. 질투와 경쟁심에 눈이 멀어 버린 겁니다.

사울이 다윗을 향해 정녕 죽이리라고 다짐했듯이 그녀도 총명하고 아름다운 존재, 모든 존귀와 사랑의 대상인 공주를 향해 광적인 분노를 품었습니다. 질투는 모든 죄악의 씨앗이 됩니다. 질투는 스스로를 찢고 상대를 상처 입히는 커다란 가시와도 같은 것입니다. 왕비는 공주를 질투했습니다. 사랑 받는 존재를 질투했고 아름다움이 인정받는 것을 무엇보다 더 질투했습니다. 카인은 인정받지 못함에 분노했습니다.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는 인간의 기본 욕망의 하나일 만큼 커다란 비중을 차지합니다. 왕도 시민들도 거울조차도 그녀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질투는 절망의 음습한 그늘에서 자라나는 독버섯과 같은 것입니다. 완전히 깨지고 절망한 그녀가 세상을 질투하고 분노하고 증오하며 결국 흉악한 마녀의 모습이 되어 버리는 것처럼, 우리 안의 죄성은 스스로 파멸의 길로 치달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상처를 스스로 치유할 능력이 그다지 충분해 보이지 않습니다. 거울을 붙잡고 아무리 수 없이 되물어도 거울은 흔한 위로의 말 한 마디도 건네주지 않습니다. "거울아 거울아 정녕 나는 나를 사랑하느냐, 정녕 나는 아름다우냐." 이 물음은 얼마나 아프고 고통스러운 것일까요? 아무에게도 기댈 수도 없는 절대 절명의 외로움과 절망의 부르짖음에 누군가 대답해 준다면 당신의 아픔은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요? 모두가 나를 비웃고 멸시해도 누군가 나를 위해 목숨마저 바칠 정도로 사랑한다면 자괴감에 시달리던 자아는 빛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남들에게 인정 받을 만한 것이 많지 않아도, 무한히 쏟아지는 사랑을 받고 있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얼마나 아름답다고 말하십니까 - 내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아가2:15)라고 고백하며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합한 아름다움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우리의 육신이 완전하지 못해도 이목구비가 바르지 못해도 그분은 우리의 아름다움에 도취해 눈을 떼지 못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십니까 - 나로 인해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그의 사랑으로 나를 침묵하게 하시며 나로 인해 노래 부르며 즐거워하시는(스바냐3:17) 분입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절박한지, 해산하는 여인 같이 부르짖으며 나를 찾겠다고(이사야 42:14) 하시는 하나님의 뜨거움을 느껴 보십시오.

이 세상의 나는 것들과 땅에 기는 것들과 바다의 모든 것들과 산천초목을 다 주시겠다고 누리고 정복하라고까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그 일방적이고 맹목적인 짝사랑을 받아 들인다면, 무엇에 상처받고 무엇을 질투할까요. 내가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 사랑받는 존재라고 깨닫는 순간 부서진 자아는 더 단단한 형태로 회복될 것입니다. 나는 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소중한 존재, 유일한 존재이며, 당연히 사랑 받아야 할 대상이며 넘치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인정받고 있습니다.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부시게 아름답습니다. 전능자이신 하나님의 든든한 품 안에서 기쁨과 평강을 누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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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법

사형제도와 기독교인

여야의원 155명이 사형폐지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이를 계기로 사형제 존폐 논쟁이 다시 가열되기 시작하였다. 존폐론자들이 주장하는 논거가 모두 일리가 있어 법조계 만이 아니라 국민들 사이에도 그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사형폐지운동을 벌이는 사람들 중에는 특히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모두 사형폐지에 찬성하는 것처럼 보여질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기독교인들 사이에도 사형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법학자 중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형제도의 모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형제도 존폐론에 관한 논쟁은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학자들이 주장하는 사형존폐에 관한 이유들은 무엇인가. 이에 가세하여 기독교인들을 포함하여 다수의 종교인들도 저마다의 종교적 교리를 내세우며 사형제도의 존폐에 관하여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기독교인들은 사형제도에 관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의 논거를 살펴보고 사형제도 존폐에 관한 결론은 독자의 몫으로 돌리고자 한다.

사형제도는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형벌이다. 현재 각국은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사형제도를 두고 있는 나라가 더 많다. 각국의 현황을 살펴 보도록 하자. 유럽은 35개국 중 27개국 정도가 사형제도를 폐지하였다. 이에는 영국, 독일, 오스르리아등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는 사형제도를 폐지한 주는 약 14개 주에 이르고 있다. 아시아 태평양 국가들의 경우는 호주, 뉴질랜드 등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이 사형제도를 두고 있다. 이스라엘은 사형제도가 있기는 하나 실질적으로 사형이 집행되는 예는 거의 없다. 사형집행 방법으로는 총살, 참살, 전기살, 교살 등의 방법이 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인에 대해서는 교살의 방법을 택하고 있다.

18세기에 접어 들면서, 사형집행 방법의 잔혹성, 오판 가능성 등을 이유로 사형폐지론이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이를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이 바로 이탈리아의 베까리아인데 그는 '범죄와 형벌'이라는 저서를 통해서 사형제도는 법률적으로나 효과적으로도 불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후 이에 동조하는 학자들이 많이 나오게 되었는데, 사형폐지론자들의 중요한 논거는 다음과 같다. 사형은 야만적이고 잔혹하므로 인도주의의 견지에서 허용할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므로 사형제도로 사람을 살해하는 것은 악이다.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여 그 생명을 박탈할 권리가 없다. 인간에게 생명을 부여할 수 없는 국가가 이러한 생명을 박탈할 권리가 없다. 사형집행이 오판의 결과로 기인한다면 영구히 구제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형은 일반사회인이 기대하는 것처럼 위협적인 효과를 가지지 못한다. 사형은 형벌의 주된 기능인 교육 및 개선기능을 전혀 갖지 못한다. 이에 반하여 사형 존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논거를 보면, 대개 사형제도가 가지는 위하력, 즉 범죄예방 효과로서의 범죄억제력을 강조한다. 사람을 살해한 자는 그 자신의 생명도 박탈 당할 수 있다는 것은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법적 확신이다. "흉악범 등 중대범죄에 대해서 사형으로 위하하지 않으면 흉악범을 예방할 수 없다" 등이 사형존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논거들이다.

그러면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사형제도 존폐에 관한 논거들은 무엇인가. 물론 기독교인들 모두 성경을 인용하여 어떤 사람들은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한다. 사형존치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생명은 생명으로 이에는 이로 갚으라"는 것이 성경의 정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형벌권을 국가에 위임하였으므로 사형제도는 성경적이라고 주장한다. 또 실제도 성경 어느 곳을 보더라도 사형제도를 폐지하라는 말씀은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사형제도는 비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 의하면 구약성경에 생명에는 생명으로 갚으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 악을 제하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지 법을 어긴 자들을 반드시 죽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사형폐지가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존치론자들을 향해 구약성경에 따른다면 안식일을 어긴 자, 부모을 공경하지 않는 자, 간음한 자를 죽이라고 하였는데 지금 그런 사람들을 죽이지는 않지 않는 가라고 반문한다. 이에 반해 사형폐지론자들은 구약의 율법에서 그 논거를 찾는 대신 예수님의 정신에서 찾는다. 율법이 법을 어긴 자들을 엄격하게 처벌하는 이유는 악을 없이 하고자 함이었는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인류의 죄악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십자가 상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죄악을 제하는 길을 여셨다. 이제는 인간의 죄악이 그에 대한 응보형으로 제하여 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제하여 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형존치론자들이 주장하는 성경적 근거는 그 근거를 잃었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인들이건 비기독교인들이건 우리나라에서 사형제도를 폐지하여야 하는 가에 대하여 그들 간에 논쟁이 어느 때보다 뜨거워질 전망이다. 여러분은 사형 존치론자편에 서 있는가, 아니면 사형 폐지론자들 편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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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01 03:00 유학생 사역

유학생 사역

Big Ten 지역 한국 유학생 사역의 단점

* 지난 호에서는 중서부 지역 한국 유학생 사역의 장점들을 나누었다. 이번 호에서는 반대로 단점과 힘든 점들을 나누고자 한다. 문제점과 원인을 보는 시각에는 지역 교회의 사역자들과 거주자와 유학생들 사이에 공통된 의견과 동시에 이견들도 있다. 이 내용들은 현재의 유학생 사역과 사역자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여러 관점에서의 객관적 사실들을 언급함을 통해 유학생 사역의 문제점과 그 원인을 분석 진단하고 성경적이고 영향력 있는 유학생 사역을 위한 개선책과 대안을 찾는 데 기초자료로 사용되어지길 소망한다. 다음 호에서는 이를 기초로 바람직한 유학생 사역을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1. 사역자의 문제

유학생 사역에 문제점 중의 하나는 유학생을 위한 사역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캠퍼스에서 유학생 사역을 전문으로 하는 사역자는 거의 없다. 대부분이 학원촌에서 지역교회의 목회자로서 유학생 사역을 하거나, 이민자들이 많은 대도시의 교회에서 하나의 부서를 맡은 부교역자로서 유학생 사역을 하고 있다. Big Ten 지역의 30 교회 중 부교역자가 있는 교회는 5개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중 대학촌 지역에는 부 교역자가 2명 밖에 없다. 이는 교회의 규모와 재정적인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한 재정이 확보되더라고 시골 지역으로 유학생 사역을 위해서 기꺼이 가고자 하는 헌신된 사역자들을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다. 따라서 대학촌 지역의 사역자들은 혼자서 다양한 계층의 교인들(거주자, 대학생(under), 미혼자(single), 기혼자(married), 교환 교수, 언어 연수 학생, 주일학교)을 상대해야 하고 행정과 관리 설교 양육 돌봄 등을 책임지고 있기에 사역의 집중성, 전문성, 효율성이 떨어지거나 소모(burn out)되기 십상이다.

사역자의 수 뿐만 아니라 질적인 문제도 있다. 이는 일반적인 전임 사역자로서의 자질보다는 유학생 사역에 적절성에 관한 것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일반적인 한국 교회 사역이나 이민자 중심의 사역에 적절할 지는 모르나 유학생 사역자로서 적합하지 않은 사역자들이 더러 있다는 것이다. 청년 대학생 사역의 경험이나 소그룹과 양육과 제자훈련의 경험이 전혀 없는 사역자들은 유학생 사역에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교단의 지원을 받으면서 기본적인 관리만 하고 현재의 사역지를 더 큰 이민교회로 가기 위한 중간 역할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역자들의 자세에 대한 불만들도 토로하기도 한다. 한국 교회의 실정상 목회자 한 사람의 목회 철학은 교회의 방향과 사역의 구조와 내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전통적인 목회철학과 스타일을 가지고서는 출석 교인의 절대 다수인 유학생들의 영적 필요를 외면하고 소수의 이민자들의 기호에 맞추려는 사역으로 기울게 된다.

2. 교회의 문제

교회 안의 문제로는 무엇보다 재정의 문제를 지적한다. 재정적으로 자립을 하지 못하고 교단의 지원을 계속해서 받고 있거나 목회자의 사례비를 겨우 주고 다른 사역에는 여력이 없는 교회들이 다수이다. 재정의 부족으로 인해 필요한 사역에 사역자를 세우지 못하거나 지역 교회로서의 교육과 양육과 선교와 구제 등 균형잡힌 사역을 하기가 힘든 상황이다. 직업을 갖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교민들 중에도 헌금을 유학생 수준으로 적게 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거나, 나는 학생이니까 하면서 거의 헌금을 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할 때 재정적인 문제가 심각해진다. 헌금에 대한 강조를 하다 보면 불신자와 초신자들이 많은 유학생 교회에서 상처받거나 시험에 드는 상황도 발생하게 된다.

교회 안의 이민자와 유학생들 사이의 갈등도 있다. 이민자들은 유학생들이 헌금도 적게 하고 잠시 있다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목회자의 사역 중심이 자신들에 초점을 맞추어 주기를 요구한다. 유학생들은 자신들이 다수인데 교회 봉사자로만 전락되어지고 사역내용과 교회의 운영에서 주변으로 밀려나 있음에 불만을 토로한다. 이 문제는 자신들이 소속된 교회의 존재 목적과 사역의 방향과 중심 내용에 대한 하나된 마음이 없을 때 더 심화된다. 그리고 목회자의 목회 철학과 방법론의 부재, 교민들의 선교의식 부재, 유학생들의 주인의식과 헌신의 부족 등이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역 교회들이 캠퍼스를 선교지로 보지 않고 학생들을 자기 교회 안으로 끌어 들이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킨다. 좁은 지역 내에서 교회 간의 갈등과 경쟁을 심화시키고 개 교회 중심주의로 치우쳐 협력과 동반자 관계에서의 효과적인 학원 사역을 못하게 된다. 오히려 불신자들에게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게 되고 전도의 문을 막는 꼴이 되어진다. 자기 교회가 주체가 되어 자기 교회 안에서 하지 않는 한 다른 교회 청년들과의 연합이나 협력 사역은 지원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도시의 교회들도 캠퍼스 내에서의 학생 사역을 거의 지원하지 않는다. 개 교회에 이름을 내고 교회 내에 수적인 성장의 유익이 있을 때에만 지원하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의 삶의 현장인 캠퍼스를 외면함으로써 유학생들을 위한 온전한 사역이 이루어 질 수 없게 된다. 이원론적 현상이 일어나 학생들의 신앙을 교회 안으로만 가두어 전공과 신앙, 학문에서의 주되심, 직업과 소명, 영적 전투와 선교적 책임, 캠퍼스와 세상 속에서의 영향력 있는 삶, 하나님 나라를 향한 비전과 동역에 관한 도전과 훈련을 받지 못하게 한다. 이는 교회 출석과 봉사를 잘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기복 신앙과 이원론적인 신앙 생활을 부추기게 된다.

3. 사역의 구조와 내용의 문제

유학생 사역이 효과적으로 잘 되어지고 있는 교회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목회자가 유학생 사역에 대한 뚜렷한 목회 철학과 방법론을 가지고 있으며, 교회가 전통적인 한국 교회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역 구조와 내용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교회들이 전통적인 한국 교회의 구조와 내용을 유학생 사역에 그대로 접목하고 있다. 주일 대예배가 제일 우선 순위에 있고 수요저녁 예배, 주일 저녁 예배, 새벽 기도회, 금요 전교인 기도회, 주일 오후 예배, 구역 예배, 부활절 성탄절 등의 절기 행사로 바빠 평신도 리더 훈련과 체계적인 양육과 제자 훈련을 할 여력이 없다. 성가대가 주일 학교 교육보다 우선되고, 여 전도회와 구역모임은 주일날 전교인 식사 교제 준비가 제일 큰 사업이다. 싱글들은 청년회라는 부서로 묶어 놓고 기혼자들은 구역 모임으로 편성한다. 구역 모임은 깊은 나눔과 말씀을 통한 양육보다는 피상적 식사 교제와 형식적인 예배로 일관 되어지고 있다. 구역장들을 교육하고 돌아보지(care) 않고 책임만 주고 관리만 하게 하는 것이다. 소그룹을 통한 양육 구조가 아닌 관리 구조인 것이다. 청년회 모임도 훈련과 양육이 없고 지도 교사나 부장 집사가 전체로 모아서 가끔식 가르치는 수준이다. 그리고 청년회는 말씀을 통한 양육보다는 찬양 모임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청년회의 제일 큰 사명은 교회의 행사나 인력을 요구하는 일에 제 때 동원되는 것이다. 그러면 장로님과 제직들은 우리 청년회 잘 모이고 잘 된다고 평가한다.

제일 안타까운 사실은 출석인원 중 불신자와 초신자가 1/3이 넘는데 이들을 위한 전도 성경 공부나 초신자 교육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교회에 출석하면 신자로 간주(assume)하여 기혼자는 구역으로 편성하고 미혼자는 청년회로 편성한다. 교회 출석과 봉사를 통해 은혜를 체험하고 믿음이 자라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많은 학생들이 복음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그리스도를 전인격적으로 영접한 경험이 없고 아무런 양육도 못 받은 가운데서 유학 시절 동안 교회에 출석하고 임원으로 직분자로 활동하다가 졸업하고 떠나는 사례들도 허다하다. 실제적으로 내가 만난 많은 학생들이 교회 내에서 전도와 양육을 위해서 열심을 내다가 전통에 따라 굳어진 교회의 구조의 벽에 부딛혀 좌절하고 있었다.

학기 초에 정착을 위해 교회의 도움을 받고 출석했던 학생들의 반 이상이 학기 중간에는 보이지 않는다. 말씀의 능력과 사랑과 치유와 나눔과 소망으로 가득한 건강한 공동체성이 없고 삶과 인격으로 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흡입력이 있는 소그룹 구조가 없기 때문이다. 오래된 신자들 중심의 구조와 내용을 지속하고 있기에 불신자들과 초신자들이 적응하기가 힘든 것이다. 그 구조와 내용이 유학생 사역에 맞게끔 전도하고 양육하여 영적 지도자로 훈련하여 파송하는 것으로 바뀌지 않는 한 유학생을 위한 온전한 사역을 기대할 수가 없다.


4. 사람의 문제

유학생 교회의 목회자들이 지적하는 제일 큰 어려움으로 공통적으로 뽑는 것은 일군이나 평신도 사역자가 없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한국 교회 스타일의 교회들은 항상 그 해에 새로 오는 신입생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이런 교회에서는 평신도 사역자가의 개념이 아닌 교회를 운영하고 섬길 일군을 필요로 한다. 어떠한 사람이 오느냐에 따라 교회의 사역의 내용과 질이 바뀌어 지는 것이다. 따라서 불신자들이나 초신자들보다는 교회에 오랜 다린 베테랑 신자를 선호하고 꼭 붙잡으려고 노력한다. 이에 상처를 받고 다른 교회로 옮기거나 아예 교회 출석을 하지 않는 불신자들이나 초신자들도 종종 볼 수 있다. 양육 중심의 교회들도 리더들을 세워 일할 만하면 떠나 버리게 되어 안정적으로 리더십을 이어 가는 데에 어려움이 있다. 리더로 서는데 훈련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실제로 사역할 수 있는 기간은 많지가 않다.

전체 유학생들의 숫자에 비해 한국에서부터 잘 양육되고 준비된 리더들의 숫자는 절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준비된 일군과 사역자는 소수이고 대부분이 불신자, 초신자, 교회만 출석하는 맹목상의 신자들이다. 일설에 의하면 한국에서의 선교 단체나 교회 대학 청년부에서 헌신적으로 사역하던 학생 리더들은 유학 준비할 시간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적게 유학을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생으로서 가지는 시간적인 한계들이 있다. 학업과 학교 일에 쫓기다 보면 시간적 심적 여유가 없고 가정에서 책임이나 교회 출석도 간신히 있는 학생들이 대다수이다. 유학생 교회와 사역자들은 신앙의 성숙보다는 학위와 직장을 잡는데 최우선 순위가 있고, 단기간 있다가 떠날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공동체에 대한 헌신과 주인의식이 부족하고, 갈수록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신세대의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도전하여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로 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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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01 03:00 책이야기/eKOSTA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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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맥도날드의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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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달력의 마지막 한 장만이 남게 되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으며, 세월의 빠름을 인식할 뿐 아니라 훌쩍 지나가 버린 한 해를 회상하며 이제는 지난 일년을 결산하고 마감해야 될 때임을 절감하게 된다. 한 해 중 가장 바쁘고 정신없이 보내는 달이 바로 12월인 경우가 많고 많은 모임과 행사로 분주한 삶을 살다보면 한 해를 제대로 돌아보거나 정리하지도 못하기도 하고 다음 한 해를 계획해보지도 못한 채로 이 마지막 한 달을 보내기 쉽상이다. 자칫하면 다음 해에까지 그 여파가 계속되어 새로운 출발을 하는데 있어서 타격을 받기도 하고 덕분에 허덕거리며 한 해를 시작하기도 한다.

특별히 기말고사가 있고 한 학기를 마감하는 이 달은 우리 유학생들에게 가장 바쁘고 중요한 달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기말고사가 끝나고 지친 몸과 마음에 허탈함이 더해 또 새로운 한해를 어떻게 맞아야 될지 암담해 하기도 하여, 오랜만에 주어지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비교적 한가한 시간들을 제대로 활용도 못하여 재충전의 기회로 활용하지 못하고 그냥 의미 없이 보내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 달 추천 양서를 선정하는데 있어서,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일년을 맞는데 도움이 될 만한 책인 고든 맥도날드(Gordon MacDonald)의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Ordering Your Private World)을 선택해 보았다. 어떻게 보면 새 해에 읽기에 적합한 책일 것 같기도 한데, 그 보다는 이 달에 미리 읽어야 새 해가 되기 전에 자신의 내면 깊숙한 삶의 동기를 재점검하고 주님께 '부름 받은 사람으로서의 삶'의 기반과 질서를 정립하고, 새해에 새로운 기대와 소원과 결심으로 시작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더 이상의 추천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어서 추천도서나 양서 목록에 항상 빼 놓지 않고 올라오는 기독 스테디셀러 중 하나로 현 시대의 기독교 신자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책이다. 고든 맥도날드는 한때 미국 IVF 총재로 섬긴 바 있으며, 현재는 미국 보스턴 근교의 Grace Chapel 교회의 담임 목사이자 많은 신앙 양서를 써낸 저술가이기도 하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저서가 바로 이 책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이며 'IVP 장기 베스트 셀러'라는 표제를 달고 있다. Insights for Living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설교자인 척 스윈돌(Chuck Swindol)은 이 책의 머리말에서 저자를 '심오한 인격, 해박한 성경지식, 실제적인 통찰력이 풍부하게 조화된 보기 드문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이 책은 그 세 가지의 조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면서 고든 맥도날드 목사님과 이 책을 추천하고 있다.

저자는 '함몰 웅덩이 증상'이라는 표현으로 외부 지향적인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갑작스런 자아 붕괴를 언급하면서, 신자들에게 있어서 삶의 '조종실'인 내면 세계의 질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아주 적절한 예화를 들어가면서 글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쫓겨다니는 사람'과 주님께 '부름받은 사람'들의 차이점과 특성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소개하면서 심지어 자기 자신을 진단하는 법까지 알려준다. 계속해서 그는 '부름받은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위하여 구체적인 삶의 부분들을 시간 사용, 지혜와 지식, 영적인 힘, 그리고 회복과 안식으로 세분하고 그 항목들을 각 단원별로 자세히 다루는데, 각 장마다 성경말씀과 적합한 예화, 그리고 다른 책들을 인용해 가면서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에 대한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려줌과 동시에 아주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들까지 제시해 준다. 대부분의 방법들이 저자가 고민하면서 실제로 터득하고 실행해 왔던 경험적인 방법들이라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효과적인 방법 중에 '일기 쓰기'가 있다는 것을 여러 전기를 읽으면서 깨달은 저자 자신이 어떻게 일기 쓰기를 시작했는지, 어떤 유익이 있으며 그 의미와 중요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심지어 자신의 일기 쓰는 법을 아주 구체적으로 공개해 가면서까지, 즉 어떤 공책을 사용하고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 그 공책을 써 나가고 얼마나 자주 그 공책을 바꾸는지 등을 솔직하게 고백하며 우리를 강권하고 있기에 아주 실제적인 도움이 된다. 비록 습관으로 만들기까지 성공은 못했지만 이 책을 두 번째 읽었을 때 나도 강한 도전을 받고 조그만 스프링이 달려있는 공책을 사서 일기 쓰기를 시도한 경험이 있다.

그 외에 이 책의 몇 가지 좋은 점들을 더 소개하자면 저자가 많은 독서, 그 중에서도 특별히 많은 신앙 위인들의 전기를 읽으면서 인용해 놓은 많은 글들과 그 분들의 삶을 접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각 장 끝에 연구과제를 두어 개인적으로 또는 그룹으로 토의하면서 우리에게 머리로 알고 이해할 뿐 아니라 훈련을 통한 습관으로까지 정착하는데까지 도움을 주려고 한다. 거기에 세 아이의 엄마이며 아프리카 케냐의 선교사의 아내로서 글을 번역하고 쓴 역자의 후기까지도 짧지만 감명을 주기도 한다. 저자가 목회자로서의 경험들을 다루기에 이 책은 영적 지도자들에게 아주 적합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동시에 영적 성장을 바라고 그 영적 훈련의 방법들을 알기를 원하는 모든 신자들에게도 너무나 적절한 책인 것 같다. 특별히 우리 유학생들에게는 시간 사용의 원리나 원칙들, 지성의 계발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 제시, 방어적인 공부와 공격적인 공부, 그리고 '일 중독증'에 대한 위험과 더불어 휴식의 참 의미와 그 중요성 등은 우리의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현재의 학문을 하는 현실적인 문제와 더불어 미래의 직업 현장을 준비하는데 있어서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90년대 초반 그러니까 이 책이 번역되어 나온지 얼마 안 된 시기에 친구 한 명이 이 책을 나에게 선물해 주었는데, 제목을 보고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었다. 꼭 나를 보고 '내면세계의 질서가 잡히지 않았으니 이 책을 읽고 정돈된 삶을 살라'는 말을 이 책을 선물하면서 대신하는 듯 했다. 물론 선물을 해 주는 친구의 마음이 고마웠고 그 친구를 신뢰했기에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그 친구에게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나름대로 잘 살고 있다는 내 자신의 자부심이 산산이 깨어지면서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부분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던 부끄러운 기억이 난다. 책을 읽은지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 다시 생각해 보니 내 삶의 습관들이 이 책으로 인해 많이 바뀌지 않은 것과 여전히 바뀌어야 될 수많은 부분이 있기에 부끄럽기만 하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음으로써 최소한 나의 사고방식과 관점에 전환이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 다시 나의 삶의 습관들도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의 청지기로서 바뀌고 영적으로 꾸준히 자라 나갔으면 하는 바램이 있고, 기회가 되면 누군가와 함께 이 책의 각 장 뒤에 있는 연구과제들을 함께 토의해 가며 서로 도전 받고 격려하며 때로는 채찍질해 가면서 영적 성장에 필요한 훈련을 해 나갔으면 한다. 아무쪼록 우리 이코스타 독자들도 한 해를 마감하며 각자의 삶을 점검하고 새로운 계획과 결심을 하는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기를 기도한다. 고든 맥도날드의 또 다른 저서들은 <마음과 마음이 이어질 때>, <격려와 책망>, <영적인 열정을 회복하라>, 그리고 <탓>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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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OSTA 인터뷰

이승률 장로와의 대담

eKOSTA 이승률 회장님, 이사님으로도 알려지셨고, 장로님으로도 알려 지셨는데요, 어떤 호칭으로 불러드리는 것이 좋을지요 ?

이승률 이코스타 독자들이니까 아무래도 장로가 더 익숙하고 좋을 것 같네요.

eKOSTA 이코스타 독자들에게 장로님 소개를 해 주시고, 더불어 언제 어떻게 처음으로 참석하게 되셨으며 그 느낌은 어떠하셨는지 말씀해 주시죠 ?

이승률 감사합니다. 저는 현재 서울에 반도환경개발주식회사라는 종합 건설업체에 회장으로 있습니다. 1990년도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기독 실업인으로서의 역할을 해 오다가 공식적으로 1992년도에 한국기독실업인회 내 서울영동기독실업인회의 커미티(committee)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때 만난 분이 김동호 목사님이셨고, 우리 커미티의 지도목사님이기도 하셨지요. 거기서 김 목사님으로부터 (성경)말씀 뿐만 아니라 또 코스타에 대한 여러 가지 소개를 듣고 나서는 코스타에 대한 비전을 갖게 되었고, 해외 유학생들에게 실제로 협력할 부분이 있을 것 같아 김동호 목사님을 따라서 코스타에 출입하기 시작했어요. 거의 2년에 한 번 정도 왔기 때문에 서너 번 정도 밖에는 못 왔지만 코스타가 발전하는 모습을 잘 보아왔고, 코스타의 리더가 되는 이동원, 홍정길, 오정현 목사님, 또 배후에서 돕고 있는 옥한흠, 하용조 목사님 같은 분들과의 교류 뿐만 아니라, 젊은 목회자 분들이나 일터의 현장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을 이 코스타를 통해서 많이 만나면서 특별히 세계 선교라든지, 평신도 전문인 선교등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지요. 나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는것이, 1990년도부터 중국의 연변과학기술대학 재단이사로 참여를 하고 있고, 또한 겸임교수로서, 코스타를 통해서 우리 학교에 교수, 교직원으로 오실 분들을 리쿠르트하는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으로서, 코스타와 좋은 인연을 맺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eKOSTA 코스타랑 연관을 맺은 지가 꽤 오래 되셨는데, 코스타가 혹은 코스타 출신들이 한국 교회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를 하시는지요 ?

이승률 김동호 목사님께 들은 말씀인데요, 약 10년전, 그러니까 1980년대 후반에 이동원 목사님께서 대전의 대덕 연구단지에서 말씀하실 때, 코스타 출신들이 얼마나 되냐고 손을 들라고 했더니, 한 100여명 정도가 들었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유학생 출신들 중에 특히 교수, 연구직 같은 지식계층에서 코스타 출신들이 점하고 있는 위치가 굉장히 높고, 또 넓은 범위에 영향력을 끼친다고 알고 있어요. 우리 유학생 출신들이 이와 같이 지식 계층에서 많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데, 그들 뿐만 아니라 사실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정·관계라든가 여러 비즈니스 리더들 중에도 코스타 출신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고 나는 봐요. 그만큼 유학 기간동안에 열심히 공부하며 고생스러운 가운데서도 이 코스타를 통해 영적으로 다시 거듭나고 꿈을 새롭게 하고 자기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좋은 기회로 삼았다는 얘기죠. 뿐만 아니라 코스타를 통해 얻어진 더 큰 자부심이 하나의 비전이 되어 각자의 앞날을 새롭게 이끌어 주어서 각 계층에서 지도자 역할을 감당하는데 코스타가 영적인 큰 뒷받침을 해주고 있다고 평가하고 싶어요.

eKOSTA 예, 그렇군요. 한편으로는 코스타 출신들이 한국의 기득권 세력으로 들어가면서 코스타에서의 비전을 잊어버리고 그 기득권의 일부에 속하게 됨으로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특별히 기업을 하고 계신 입장에서, 우리 코스타 출신들이 이곳에서 받은 은혜와 비전을 가지고 기득권 세력으로 들어가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한국 교회와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좀 말씀해 주시지요.

이승률 이 문제는 코스타 뿐만 아니라 각 교회 목회 사역이라든가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이 선교 이후에 미칠 영향력이라든지 어떤 사역에 대한 평가를 할 때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라고 봐요. 하나의 현장에서 얻고 배우고 깨달은 열정이나 믿음의 진보가 생활 속에 즉 현실 속에 파고 들고 녹아지고 그것이 실제화되는 과정(process)이 참 중요한데, 우리 코스탄 출신들이 유학기간 동안에 가졌던 영적 체험을 자기의 현실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수 있는지가 앞으로의 관건이 되겠죠. 코스타 출신들이 학자나 연구진으로 많이 나가고,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정·관계나 행정, 비즈니스에도 나가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리더십 교육이라는 것은, 즉 리더는 늘 새로운 환경에서 창조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정신력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봅니다. 리더가 한 번 가졌던 생각을 기득권 형태로 누리려고 한다면 그때부터 리더에서 추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늘 새롭게 창조적으로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끌어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리더쉽에 대한 문제를 우리 코스탄들이 좀 더 명확하게 깨닫고 자기의 현실 생활을 헤쳐나가 주길 바랍니다.

또 한 가지는 제3세계나 후진국,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결국 유학생들이 그 사회 지도층으로 부상이 됩니다. 그러니까 유학생들이 지도층이 된다는 함수관계를 통해서 자신에게는 현실 세계에 있는 한국을 개혁하고 이끌어 나가야 될 지도자적 사명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늘 깨어있길 바래요.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갖추기 위해 항상 자기자신의 고지를 먼저 점령하는, 그런 극기와 이타주의의 리더십에 관계된 것을 명확히 해서, 사명감과 현실 속에서 자기가 갖고 있는 기능, 즉 전문성을 잘 접목하면 코스타를 통해서 얻고 배우고 깨달은 것들을 현실에 적용해 나가는데 많은 밑거름이 된다고 확신합니다.

eKOSTA 예, 아주 명쾌하게 잘 정리해 주신 것 같습니다. 우리 코스탄들이 앞으로 어떻게 리더십을 가지고 현실 속에서 영성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잘 조명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이승률 장로님께서 이번 코스타에 참석하신 구체적인 이유를 좀 말씀해 주십시오.

이승률 구체적인 목적을 얘기하기 전에 아까 하던 얘기를 덧붙여 하고 싶군요. 우리 코스탄들에게 특별히 부탁하고 싶은 것은, 우리 코스탄들은 유학생들이고 고학력, 지식층 인력이며 크리스천으로서 신앙을 갖고 있기에 특히 지식층 신앙인들이 지식과 신앙, 투지와 기술 이런 양면성을 어떻게 잘 융합(fusion)하여 조화를 이룰 것인가가 참 중요하다고 봐요. 여담으로 fusion이라는 말은 future vision이라고 할 수 있어요. fusion을 늘리면 future vision이고 future vision을 줄이면 fusion이 되죠. 하나의 선교적 삶의 현장에서 신앙적 열정과 그리고 자기의 전문 지식을 어떻게 잘 접목, 융합시켜서 제 3의 새로운 사역의 길로 신앙과 지식을 아름답게 표출해 나갈 것인가가 코스타와 코스탄들이 연구하고 개척해 나아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21세기의 진정한 리더십이 도출된다고 보거든요.

특히 코스탄들이 좀더 사명감을 갖고 지식과 신앙을 겸비한 일꾼으로 자라는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이 제 부탁이에요. 앨빈 토플러가 IT(Information Technology), BT(Bio Technology) 이런 분야를 잘 융합해서 제 3의 신기술 분야로 잘 발전시켜 나가는 하나의 조직적인 형태를 High Choice System이라고 표현한 바가 있습니다. 우리 코스탄들이 전문 전공 지식의 "High Tech"한 능력과 신앙을 통한 열정, 비전 등의 "High Touch"한 부분을 잘 융합(fusion)시켜서 마침내 코스타가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High Choice System"으로 발전했으면 하고, 이 믿음을 기초로 한 High Choice System이 곧 지속적인 발전개념의 신앙 공동체요, 또 새로운 개념의 21세기 교회운동(movement)으로 자라날 수 있다면, 이것이 코스타가 진정으로 추구해 볼 만한 목표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리더십의 비전과 목표를 위해서 코스타에 와서 제가 늘 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람을 찾는 일입니다. 우리 중국연변과학기술대학을 위해서 필요한 교수 교직원 인력을 리쿠르트하고 상담하고 준비시키고 또 비전을 주고 하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임무이고, 특히 여기서 만난 분들의 여러 가지 애로 사항과 학습 전공 분야를 잘 파악하면서 학교의 커리큘럼이라든가 신설 학과 개설, 또 새로운 교수 인력들을 우리가 어떻게 준비할 수 있을지 계획도 세우고 하는 것이 나의 임무입니다. 특별히 올해는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을 위한 비전과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왔는데, 처음부터 구체적인 커리큘럼을 제시해서 어떻게 준비한다기 보다는 하나의 뉴스를 전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이라는 큰길에 있어서 앞으로 북한사회를 위한 비전을 가지고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동기(motivation)를 전하려고 왔습니다.

특히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은 연변과학기술대학과는 달리 "남북관계"라는 문제가 있고 국제사회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며 특히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 또 중국, 일본 한국과의 국제 외교와 관련된 지정학적인 미묘한 관계같은 것들이 중첩되는 현실이 있어요. 평양과학기술대학 프로젝트는 여러 가지 지식 산업 복합체 형태로 운영할 터인데, 그 점에서 우리가 평양 프로젝트를 어떠한 인력으로 어떻게 기획·준비하고 건설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새로운 원동력으로 자리잡기 위해 여기에 참여하는 기업인이라든가 벤처 그리고 신기술 전문 집단들과 학문이 어떻게 잘 조화되어 나가야 할 것인지를 기획하고 모색하는 기초단계에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뉴스로만 전하고 내년 17회 코스타에 와서는 구체적으로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의 커리큘럼과 그에 따른 필요한 인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상담하고 리쿠르트할 작정입니다.

eKOSTA 아직 구체적인 전공이나 핵심분야 등은 계획이 안 나온 것인가요?

이승률 아니, 그렇지는 않아요. 물론 어떤 큰 하나의 계획으로서 전체 커리큘럼의 40% 정도로 IT 분야 학과개설을 계획하고 있어요. 그리고 BT 분야가 25 %, 그 다음에 MBA 분야가 25 %, 그리고 기타 부문을 10% 정도 계획하고 있구요. 기타라 함은 외국어 교육을 포함한 교양학과 개설입니다. 그래서 IT가 중심이 되면서 BT와 MBA를 겸하며 국제사회에 필요한 교양과 언어학습 능력을 길러 나갈 수 있는 시스템으로 교육 커리큘럼을 정할 거에요. 그리고 그에 따른 세부적인 전문학과나 학습 내용은 KAIST같은 연구 중심 대학을 하나의 모델로 해서 대학원 과정, 북한에서는 이것을 박사원 과정이라고 하는데, 이 박사원 과정을 먼저 신설해서 2003년 3월 학기에 1단계 개교를 할 예정이고, 이 박사원 과정과 함께 한국이나 미국, 혹은 유럽에 있는 신기술 기업과 벤처 기업들이 함께 합류(join)를 해서 지식 산업 복합체 형태로 운영을 함으로써 북한의 유수대학 출신의 청년 인력들을 동참시켜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산업활동을 경험하게 하고, 거기서 경영과 무역에 대한 부문, 국제 시장경제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출 수 있도록 돕고 가르치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에요. 초기에 우수 인력을 박사원 과정으로 유입을 해야 되는데, 여기에는 김일성종합대학이나, 김책공대 졸업생들과, 또는 KCC(조선컴퓨터센터), PIC(평양정보센터)에 있는 인력들을 먼저 리쿠르트 해서 초기 학생층을 이루고 후에 계속해서 박사원 과정을 진행하면서 학부를 신설하고 기초 인력을 배양하는 방법으로 연구 중심 대학으로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을 운영하려는 계획입니다.

eKOSTA 지금 현재의 계획에 의하면 연변 과학기술대학과는 상당히 다른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연변과학기술대학은 학부 중심이고 "교수"(敎授, teaching) 중심인데 반하여,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은 정보-산업기술-대학원과정의 복합체로서의 시너지(synergy)를 예상하는 "연구"산업 중심의 학교라는 점에서 말이죠.

이승률 예, 맞아요. 산학협력 복합체 형태로 육성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고, 사실 그것이 북한 사회에 가장 긴요하고 절실히 필요한 부분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생산 수단이 되고 창조적인 사회구조의 기본을 이루는 생산 활동이 되기 때문에 북한을 변화시키는 좋은 모델이 되죠.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과 같은 지식 산업 복합체가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으면 그 다음에는 중국과 접한 신의주, 그리고 한국과 가까운 개성공단, 일본에 근접한 원산 공업단지, 또 러시아와 UNDP지역에 인접한 라진 선봉같은 특정 지역에 이와 같은 지식기술 복합단지가 형성이 되고, 창의성 있는 신기술 산업활동이 전개되면 그것이 곧 북한 사회를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upgrade) 하면서 새로운 남북간 지식산업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길이 되지 않겠어요? 평양정보과기대가 이와 같은 한반도 지식산업 공동체를 이끌어 나가는 개척자로서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eKOSTA 몇 년 전까지 라진과학기술대학을 세우려고 추진하며 그곳에 유치원 같은 것도 이미 세웠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럼 라진과학기술대학 프로젝트(project)가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 프로젝트로 바뀐 건가요? 아니면 라진과학기술대학과 병행하는 독립적인 프로젝트인가요?

이승률 원래 96년도 말에 라진과학기술대학을 북한이 승인을 해 주었고, 한국정부도 97년도에 승인해 주어서 양국 정부가 공히 라진과학기술대학을 설립 허가를 했는데, 부득이한 상황의 변화로 2년 반 동안 유보되어 있다가, 지난 1월 달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상해 포동 지구를 다녀와서 신기술 첨단 산업의 발전상을 보고, 북한도 이대로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각오 아래, 과거 96년도에 라진과학기술대학 설립을 허가했던 것을 근거로 하여 위치를 평양으로 옮겨서 연구중심의 과학기술대학을 세워 달라는 것이 그들의 요청이었어요. 연변과학기술대학은 학부교육부터 해야 되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은 박사원 과정을 하면서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지식-기술-산업" 복합체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 효과적이겠다 하는 차원에서 성격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과거 라진과학기술대학 프로젝트가 평양으로 옮겨진 것이 기정 사실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진과학기술대학 프로젝트도 나중에 필요가 있게 되면 그대로 부활을 시켜서 그 지역에도 과학기술대학을 중심으로 산업을 일으킬 계획으로, 지금 현재는 유보되어 있는 상태지요.

eKOSTA 내년에 구체적인 홍보와 교수임용 계획이 있겠지만 관심있는 이코스타 독자들을 위해서 어떻게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관심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전 작업 준비를 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이승률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에 참여하고 싶은 우리 코스탄들은, 곧바로 평양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공산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여러 가지 생활을 하는 적응 훈련이 필요하다고 나는 보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연변과학기술대학을 먼저 지원해서 그것을 통해 조선족 사회나, 사회주의 체제하의 상황이라든가 중국과 북한과의 관계, 그리고 그 쪽 지역의 여러 가지 교육현황 등을 실질적으로 체험한 후에, 거기서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에서 필요한 커리큘럼과 임용 계획에 따라 학교와 협의를 하는 것이 기본적인 하나의 방법이 되겠고, 또 한 가지 방법은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연변과학기술대학을 통해서 들어간다는 것은 좀 어리석은 것 같으니, 지식산업 복합체에 합당한 생산성을 바로 유발해 낼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면, 개인의 교수(teaching)만을 하러 들어갈 것만이 아니라 기업체의 한 일원으로서 참여할 수도 있겠죠. 그보다 더 특별한 전문성과 학력, 자격증(licence)을 갖추고 있다면 그런 한국인 뿐만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교포나 외국인들도 이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박사원 과정에 합당한 일꾼들은 나중에 지식산업 복합형태의 인력으로 학교와 산업, 컨설턴트(consultant)라든가, 여러 가지 조력자(assistant)로 참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기가 연구하고 가르칠 분야의 현지 실정에 대한 검토도 있어야 되고, 또 장기적으로 혹은 단기적으로 갈 것인지의 스케줄(schedule) 문제도 있을 것이고, 가족과 함께인지, 아니면 개인만 들어갈 것인지 하는 가족생활계획의 문제도 매우 심각한 사안이 될 수 있으니까 이런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내년 코스타에서 구체적으로 사례를 제시할 것입니다.

참고로 금년말이나 내년초에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을 착공하고 나서 박사원 1단계 개교를 위한 교수임용계획을 구체화해 나가려고 하는데 그때 이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상담을 하고, 관심을 갖고, 뉴스를 계속적으로 듣고 싶어하시는 분들은 따로 연락을 주시면 됩니다. 연변과학기술대학과 평양정보과학기술대학을 뒷바라지하기 위한 사무실이 서울에 있어요. 서울사무실의 전화는 (02)561-2445이고 fax는 (02)566-1450입니다. 미국 LA에도 후원회 사무실이 있는데 연락처는 909-843-6327∼8, fax는909-843-6527입니다. 그리고 중국연변과학기술대학 학교당국의 연락처도 있습니다. 웹주소는 www.yust.edu이고, 전화번호는 86-433-291-2500, fax는 86-433-291-2510입니다. 저 개인의 이메일도 있으니까 이 코스타에서 만난 분들은 ban1117@chollian.net으로 저에게 자기 정보나 자료를 보내주시면 그것을 잘 정리하여 문서화해서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상담 업무가 진행될 수 있도록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단계적으로 자신이 언제부터 언제까지 무엇을 어떻게 준비를 해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상담을 하면서 공식적으로 학교에 합류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코스탄들이 큰 꿈과 비전을 가지고 한반도 지식기반사회의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History Maker"가 되고 또한 남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국제사회에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이 넘쳐나게 하는 "Peace Maker"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선한 일꾼들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KOSTA 예, 장로님, 바쁘신 중에도 우리 이코스타 독자들을 위해서 이렇게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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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좁고 미국은 두렵다

유학생활 중 스스로 성결케하라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수3:5).

이제 요단을 건너서 가나안을 점령하기 위한 준비와 정탐을 마친 여호수아는, 온 백성에게 스스로 성결케 하라고 부탁하고 있다. 즉 내일이면 여호와께서 요단을 가르시는 기사를 이스라엘 백성 중에 행하실 텐데, 성결하게 하여서 이 기적을 체험하기에 합당한 백성으로 준비하라는 명령이요 부탁인 것이다. "성결"이라는 말은 "거룩하고 깨끗함"이라는 의미인데, 즉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이 말씀과 기도로 더욱 거룩해지며, 말씀에 따라 사는 행실로 말미암아 깨끗한 성도의 삶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실제적인 유학생활 중의 영성훈련에 관련된 성결한 삶에 대하여는 지난 몇회에 걸쳐 쓴 "유학생의 경건의 연습과 약속"이라는 연재 칼럼에 이미 썼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유학생활 중의 성결한 삶은 유학생활 동안에 열심히 예배드리고, 주야로 말씀을 배우고 묵상하며, 부르짖어 기도하고, 세상 가운데에서 예배와 삶이 일치하는 자로 살며, 또 주님 이 주신 것으로 만족하는 부단없는 경건의 훈련을 통하여서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본 칼럼에서는 크리스천 유학생의 영성훈련에 관한 성결보다는, 미국이라는 이질 문화 속에서 어떻게 실제적인 크리스천 유학생의 삶을 성결하게 살 것인가에 관하여 생각하여 보기로 하겠다. 특별히 미국은 하나님을 더욱 잘 섬겨보겠다고 신앙의 박해를 피해온 청교도들에 의해서, "In God we trust"라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 세워진 세계 속에 유일한 국가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의 기초위에 세워진 미국이, 케네디 대통령 당시인 1962-63년에 공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일과 기도하는 것을 금지한 이래, 이 나라는 1962년 이전에 비하여 몇십 배로 증가된 청소년 범죄, 이혼율, 마약중독, 동성연애 및 낙태의 합법화 등으로 타락의 길로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비록 현재 미국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추방하며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하더라도, 거의 모든 미국 문화와 관습이 성경에서 말하는 원리에 깊은 뿌리를 두고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이미 한국문화에 깊은 뿌리를 둔 (나같은) 유학생 출신들은 이미 한국문화, 관습과 전통에 길들여진 눈으로 미국의 문화를 바라보려하기 때문에, 때론 당혹스런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게 되고, 또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하게도 된다. 최근 "The Korean Christian Journal"(2001년 11월 25일자)에서 일리노이주 인권국의 이윤모 박사가 조사 보고한 "한인교인들의 신앙관, 참여, 교회의 안정성"이라는 소수인종 신앙생활 조사-비교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인들은 교회와 의례중심의 신앙생활을 추구하며 개인 윤리관에는 더욱 투철하지만, 신앙의 생활화와 실천면에 타인종들(특히 흑인과 히스패닉 신도)에게 뒤떨어진다"고 보고하고 있다. 또 동보고서는 "교회출석이 신자생활에서 필수적이라는 데는 한인들이 단연 타민족 그룹보다 압도적이며, 또한 성경 읽기와 연구의 필수성에서도 한인들이 단연 앞선다. 신앙관을 가정, 학교, 일터에서 실천하거나, 사회정의 추구와 사회봉사의 필수성을 강조하는 면에서는 흑인, 히스패닉 신도들보다 한인들이 뒤떨어진다"고 결론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한국 이민자나 유학생들이 바른 신앙관을 가정, 학교나 일터에서 실천하거나 또 사회정의 추구와 사회봉사에 참여하며, 성결한 크리스천의 실제적인 삶을 사는 데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요단을 건너기 전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삶 속에서의 성결함을 유지하는 훈련을 유학생활 동안에 잘 해두어야 본격적인 이민생활을 시작할 즈음에, 요단강이 다시 갈라지는 하나님의 기사를 보는 인도함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 크리스천 유학생들이 장래 미국의 이민을 고려하며, 유학생활 속에서 이루어야 할 성결한 삶의 각 부분들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성결한 학업성적 관리

미국에서 들을 수 있는 제일 "모욕적인 말"은 아마도 "거짓말쟁이"라는 표현일 것이다. 미국문화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진실을 감추고 위장하며 거짓말하는 것이다. 사실 미국의 전임 닉슨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게 된 것은, 워터게이트에서 상대의 정보를 몰래 수집했다는 범죄보다는, 그 범죄를 감추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좀 우습기는 하지만, 지난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도, 성추문 자체보다는 성추문 사건을 감추려고 대통령이 거짓말을 했느냐 안했느냐에 모든 조사와 논리의 핵심을 집중했다고 보면 옳다. 미국에서는 언제든지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잘못을 시인하면 상응하는 가벼운 처벌을 받거나 또는 용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저지른 잘못을 은폐하고 위장하기 위하여 하는 거짓말은 용서가 안 된다고 보면 틀림없다. 정직을 생명처럼 여기며, 정직한 자만이 인정받을 수 있는 나라이다.

한국에서도 수많은 격언이 "정직하게 살라"고 말하고 있지만, 정직하게 살면 바보로 취급하는 사회도 있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 아닌가? 그러나,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언젠가 꼭 그 대가를 치루어야만 하는 나라가 미국임을 잘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크리스천의 성결의 덕목에 거짓 없는 정직함이 가장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임을 누가 부인할 것인가?

정상적인 미국 학생들에게 학과의 시험 중에 컨닝을 한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잘못된 행위이다. 자기 자신들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남이 하는 것도 결코 눈 감아 주지 않고, 컨닝하는 학생을 윤리위원회에 즉각 보고하는 정의감을 대부분이 가지고 있다. 최근 수많은 동양계 유학생들의 시험 중 컨닝 노력은 미국교수들의 마음을 심란케 하고 있는데, 크리스천 한국유학생들은 컨닝으로 주님의 영광을 가리고, 또 학교에서 퇴교 당하는 불명예를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많은 동양계 학생들은 서로의 숙제(homework)를 보여주고, 또 심지어 답을 그대로 베껴서 내는 학생들이 종종 있어서 곤혹을 치르기도 한다. 담당교수가 서로 토론하라고 허락하면 토론을 할 수 있으나, 토론조차 하지 말라 하면, 서로 토론하는 것도 불법이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친한 친구가 "take-home exam"(집에 가지고 가서 치르는 시험)의 답을 보여 달라고 하여 답을 보여주고 (사실 부끄럽게도 나도 그럴 뻔한 경험이 있다), 또 답을 본 친구는 take-home exam의 답을 그대로 베껴서 제출하여 퇴교를 당하기도 한다. 이는 미국학교의 성적관리 원칙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저지르는 실수이다. 따라서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숙제나, take-home exam의 답을 보여 달라는 불법적인 요구를 결코 해서는 안될 것이며, 또한 잠시 마음이 상할지라도 자기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 실수를 방지하기 위하여, 결코 답안을 보여 주어서는 안되는 것이 미국 학점관리의 기본 정의이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함이 바로 크리스천의 성결이 아니겠는가? 결코 불의한 방법으로 취득한 학점으로는 요단을 가르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기 어렵다.

정직한 연구결과 보고

학문을 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수행하는 연구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바라며, 관련된 학계를 깜짝 놀랄게 할 만한 결과를 발표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연구조사한 자료의 분석이나 또는 실험한 연구 결과를 조작하고 싶은 충동을 갖는다는 것은 일상적인 유혹이다. 또한 직장을 잡기 위하여, 빨리 학위를 취득하고 싶은 욕망에 실험결과를 확대해석하고 싶은 욕망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는 자신의 연구결과에 부끄러움 없이 솔직해야만이, 세대를 넘어서 그 업적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최근 동양의 모나라로부터 유학오는 유학생들이 입학허가를 얻기 위하여 부정직한 방법으로 GRE나 GMAT, 또는 TOFLE 점수를 취득하며, 또 빨리 학위를 취득하고 취업을 하기 위하여 연구결과를 조작하고 있다는 소문은, 미국 대학교수들을 염려케 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게 하고 있다.

일본의 유명한 모고고학자가 일본의 고고학사를 뒤집는 획기적인 연구결과를 수 십년 동안 발표하여 자신의 학파를 구성하고, 국제 고고학계를 주름 잡았지만, 연구결과를 조작하여 발표하였다는 덜미가 잡히면서, 또 한 번 그의 부도덕성과 사기성에 세상이 놀란 사건이 최근에 있었다. 부끄럽고 망신스러운 일이며, 처벌받아 마땅한 처사이다. 또한 최근 한국 모대학의 연구팀이 국제전문잡지에 외국연구자의 논문을 그대로 표절하여 게제된 사건이 발각되어서, 한국대학이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이에 더불어 최근에 한국에서는 목회자들의 타목회자 설교표절로 논란이 한창인데, 성구 하나 또 문자 하나 바꿈 없이 다른 목회자의 설교집을 베껴서 자기가 영감을 얻은 설교처럼(다른 목회자의 설교집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하지 않고) 설교하는 것도 부정직한 것이라고 나는 본다.

자신의 연구결과를 해석하고 얻은 결과를 바로 해석하고 또 적극 방어할 수 있는 논쟁훈련은 전문가로서 꼭 필요한 것이지만, 연구결과는 절대로 사실대로 보고하여야만 한다. 크리스천이든 아니든 또 동서고금을 넘어서, 학문을 하는 사람의 학자적인 양심과 정직성을 생명과 같이 귀히 여겨야 될 덕목이며, 이에 관한한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처절함이 바로 학문의 세계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가끔 남의 연구논문 결과를 표절하여서 말썽이 되는 학위취득자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표절한 논문결과로는 결코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축복을 누리기 어려우며, 언젠가 성결치 못한 행동 때문에 큰 댓가를 치를 날이 꼭 있게 된다. 연구결과의 보고에 부끄러움이 없이 정직하고 또 신실해야 할 것이다.

미국법 바로 지키기

미국 사람들의 준법정신은 참 놀랄 만큼 높다. 교통법규 준수, 줄서기의 습관화 및 기다림의 인내심은 우리 모두가 부러워하는 미국민성이다. 금년 9월 11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테러는 미국 역사상 미국 본토에서 벌어진 최대의 참상이다. 이미 미국은 9월 11일 이전의 미국이 아니며, 세계 각국에서 온 유학생들과 이민자들에게 관대했던 나라가 더 이상 아님을 알기 바란다. 내 앞마당에서, 외국의 테러분자들에 의하여 수천명의 가족과 동료가 죽는 테러의 참사가 벌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수백만명의 실업자가 생겨나고, 또 지금도 테러의 불안에 온 미국민이 떨고 있는 마당에, 법을 지키지 않는 유학생과 불법이민자들에게 자비를 보일 여력이 없다는 미국의 절박함을 모든 유학생이 피부로 이미 느끼고 있을 것이다.

이러한 미국내의 급변한 상황을 고려할 때, 추후 이민을 고려하는 유학생과 그 동반가족들은 미국의 이민법과 세법을 꼭 지켜야 될 줄로 안다. 실수로 이것들 중에 하나만 어겨도, 미국이민을 고려할 시에 바로 실격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특별히 취득한 유학 Visa의 종료일과 갱신여부를 바로 이해하고, 또 필요하면 종료전에 바로 갱신하여서 어떤 기간이라도 미국의 불법체류의 기록을 갖지 않아야 할 것이다. 최근 이민법이 재정비되고 있는 중이니, 모든 유학생들은 각 학교의 외국유학생 담당자로부터 바뀌는 이민법의 바른 정보를 얻기 바란다. 또한 이민을 고려하는 경우에는 이민전문 변호사와 꼭 상의하면서 적법한 절차를 밟아야지, 결코 본인의 상식과 경험에만 의존하므로 자주 바뀌고 있는 이민 절차를 잘못 이해하여,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기 바란다. 또 학위 취득 후에, 전문 분야에 따라 미국의 이민국에서는 외국 유학생들에게 약 1년 정도의 practical training을 허용하고 있는데, 학위취득 날짜에 맞추어서, 미리 practical training을 신청하여서, H-1 Visa를 얻고, 이어서 Green Card를 신청하는데 차질이 없도록 지혜롭게 계획하고 또 적법한 절차를 따라야 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에 살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 중에 하나는, 모든 미국인의 자발적이며 성실한 세금납부의무의 이행이다. 한국에서는 어떻게든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듯하며, 또 그 방법을 교묘히 하여 속일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이라고 자랑하기도 한다. 불행히도 납세청에 탈세로 걸리면 재수없이 망하게 되는 경우이고, 안 걸리면 수지 맞는 경우이다. 그러나 미국국민은 탈세를 죄악이요 수치로 여길 뿐더러, 또 탈세가 발각되면 형벌은 감당키 어려울 만큼 무겁다. 이곳에서 탈세는 사랑하는 국가의 재정을 도둑질하는 비열한 도둑질이요,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줄 부의 재분배를 빨아먹는 더러운 사기행위요, 양심을 팔아먹는 부도덕한 행위로 분류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에 이민하여 사는 한인 이민자들 중에서 상당수가 탈세함으로 돈을 벌었다고 회자되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이라면 걱정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특히 지방자치제가 철저히 시행되고 있는 이곳에서, 탈세를 하거나 또 세금을 실제보다 줄여서 보고하여 이득을 취하는 경우는, 소속한 사회에 기여없는 기생충같은 인생으로 간주되고 있다.

장학금을 수혜하는 유학생들은 합법적인 세금납부 혹은 면제신청을 꼭 해야 할 것이며, 또 연말 세금보고 시에도 합당한 세금보고서식을 사용하여 보고해야 할 것이다. 몇백불의 세금을 돌려 받겠다는 욕심과 유혹 때문에 미국 이민법과 세법을 어겨서, 결정적인 시기에 낭패를 당하지 않도록 주의하기 바란다. 지금은 미국 이민법이 바뀌고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미국에 세금을 내는 자만이 미국에 살 권리가 있으며, 또 불이익이 있을 시에 바르게 보호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바란다. 국가를 운영하는 세금을 바르게 또 자발적으로 낼 줄아는 일등 국민만이 그 나라를 일등국가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정직하게 세금을 내고, 또 미국의 법을 바로 지키자.

부당한 뇌물은 죄악

교통법규의 위반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때론 부득이 경찰에게 교통법규 위반 티켓(ticket)을 받는 경우가 있다. 나는 많은 한인 유학생들이 교통법규 위반 티켓을 받은 경우, 경찰을 속이거나 또 어긴 사정을 왜곡 주장하여 벌금을 면제 받았다는 무용담을 수없이 들었다. 거기에 또 하나님의 선한 도우심까지 덧붙여서 간증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만일 자신의 과속으로 교통법규 위반 티켓을 받게 되는 경우, 경찰의 교통위반 단속이 특별히 부당하다고 생각되지 않은 한, 과속은 자신의 잘못이다. 하나님께서 법을 어겨가며 과속하여 달려도, 경찰의 감시로부터 지켜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은 성경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유학생들의 부족한 주머니 사정이야 이해되긴 하지만, 과속해서 교통위반 티켓을 받았다면, 빨리 달리면 죽을 수도 있다는 하나님의 경고로 알고 감사하게 벌금 내면 그만이요, 끝내 억울하면 법정에 가서 싸우면 된다. 교통위반 티켓 발급시, 동양계 학생들의 이상한 억지변명에 이미 신물나며 이골이 났다는, 경찰관의 농담에도 귀를 기울일 때가 되었다고 본다. 이에 더하여, 한국에서 옛날에 있었던 관행처럼(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으리라고 믿지만) 교통법규를 위반한 후에, 교통경찰에게 거래하자고 뇌물을 건넸다가, 도리어 혹을 붙이고 감옥에 간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도 귀담아 들어야 될 것이다. 교통법규를 어기고서, 교통경찰관에게 거짓말로 어필하고, 우기거나 간청하는 크리스천이 되지 말자. 많은 유학생들이 한국에서 뇌물의 효용을 익히 배우고 자란 탓에 뇌물의 효용을 미국에 쓰려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미국에서 뇌물은 금물이요, 위법임을 알기 바란다. 물론 성경말씀에도 뇌물을 금하고 있다.

지난 수 년동안에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에 미 연방정부의 한 연구기관의 프로그램으로부터 수백만불의 연구비를 지원 받아 연구를 수행해오고 있는 한국계 미국교수를 알고 있는데, 그분의 말씀에 따르면 매년 한두번씩 연방공무원인 담당 프로그램 매니저가 그의 연구실을 방문하여 연구실적을 평가하곤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방문시에 함께 먹게 되는 단 몇 불의 점심값 조차도 연방공무원들이 꼭 지불하고 간다니 모두가 놀랄 일이다. 물론 그렇게 큰 연구비를 받거나 또 연구수행 중에도 뇌물로 단 1센트도 쓴 적이 없으며, 또 써서도 안 된다는 것은 여러 유학생들이 실로 믿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철저한 준법정신과 정직성은 미국 문화가 크리스천 문화에 근거를 둔 때문이며, 이것이 미국을 움직이는 참 원동력이라고 나는 믿는다.

어떤 뇌물이든 주고 받는 것이 크리스천의 성결함을 더럽히는 죄악임을 알고, 요단을 건너는 기적을 보기 전에 넘어 질 수 있는 거침돌이 된다는 것을 알자. 물론 서로에게 이권이 관련되지 않는 상황에서, 서로 사랑으로 주고 받는 선물은 너무도 아름다운 것이며, 또 적절한 값의 선물은 서로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니 권장할 만한 일이다. 미국 사람들은 감사절이나 성탄절에 작은 감사의 선물을 나누기를 진정으로 즐긴다.

성적으로 순결하기

십여년 전만해도 미국에서 싱글 유학생을 보기가 드물었는데, 이제는 유학생의 주류가 싱글들이 되어가고 있다. 유학생 중심의 도시마다 결혼 적령기의 남녀 싱글들이 넘쳐나고 있다. 따라서 이 젊은 싱글들을 신앙적으로 잘 양육하고, 또 신앙 안에서 짝을 맺어주는 일은 이제 아주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으며, 매 KOSTA 년차 대회 때마다, 크리스천 남녀 싱글들 짝 지어주기 프로그램(예를 들면 "박수웅과 함께")이 아주 인기 프로그램이 되었고, 퍽 고무적인 프로그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할 수만 있다면, eKOSTA의 Webzine에 크리스천 싱글들의 만남의 장을 마련하여서, 서로 예수 안에서 장래의 배후자들을 만날 수 있도록 시도해 보면 참 좋을 것이라고 생각되며, 이 칼럼을 통하여 과감히 제안하여 본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영광을 위하여 크리스천 새가정의 탄생은 가장 축복할 만한 일이며, 권장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부에 바빠서 교제의 시간조차 충분치 않는 크리스천 남녀 싱글들이, 지역과 학교와 교회의 제한된 공간과 시간을 넘어, 만남의 장을 eKOSTA Webzine에 마련할 수 있다면, 일년에 한 번 뿐인 KOSTA 년차 대회시의 "박수웅과 함께" 프로그램을 연중무휴로 진행하는 셈이 될 것이다. 물론 다소의 부작용도 예견될 것이나, 싱글들이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 및 담당유학생 지도자와 잘 협력하여 운영한다면, 도처에서 적절한 크리스천 배후자를 만나지 못하여 고민하는 수많은 결혼 적령기를 넘기며 안타까와하는 싱글 형제-자매들의 고민을 풀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점에 관하여 독자광장을 통하여 논의가 진행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근에, 싱글들 중에서 결혼도 하기 전에 서로 혼전 동거하는 사례가 늘어간다는 충격적인 보고는 극히 염려되는 일이다. 크리스천 유학생 중에서도 이런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하니 아연할 따름이다. 물론 부모의 통제를 벗어나 살면서, 결혼 적령기의 싱글 남녀가 서로 결혼하고픈 정도로 사랑하기에, 아예 돈도 절약할 겸 혼전 동거하고픈 유혹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최근 미국과 유럽의 특정지역에서 싱글 유학생들의 혼전 동거 생활은 이미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며, 지역 목회자들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는 것은 심히 걱정스러운 일이다. 시편 119편 9절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하리요,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말씀을 보면, 젊은이들을 어떻게 행실의 타락으로부터 지킬 수 있을까에 관한 시편기자의 고뇌를 엿볼 수 있다. 즉, 주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만이, 그 행실을 깨끗게 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성경공부하면서 이루어지는 싱글 남녀의 교제는, 이 시편 말씀에 따라 삼가며 진행하는 최고의 싱글 남녀의 교제의 장이 될 법도하다.

한마디로 어떠한 구실과 변명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싱글 유학생 남녀의 혼전동거는 결코 성결치 못한 행동이요, 더욱 크리스천 유학생들에게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누구든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사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들 자신이나 그들이 속한 단체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경고와 징벌은 언젠가 눈물 없인 받을 수 없는 쓴잔이 될 것이기에, 모든 싱글 크리스천 유학생들은 이점에 더욱 유의하여 성적으로 성결하게 살라고 권하고 싶다. 정히 자신의 믿음으로 통제할 수 없다면,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속히 결혼한 후에 계속 학업을 진행할 것을 권면하고 싶다. 또한 여러분의 주위에 그러한 동료와 친구들을 보거든, 사랑으로 권면하고 기도해 주어서,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에 따라 사는 성결한 생활로 되돌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바란다.

물질의 성결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 물질과 돈을 합법적으로 벌어서 마음껏 쓰는 것은 누구도 탓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인 줄 믿는 크리스천은 돈과 물질의 취득과 관리에 성결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본래 하나님의 것을 잠시 위임받아 누리며 쓰고 있기 때문에, 성경에서 말하는 원리에 따라 취득하고 또 사용해야 함이 합당하다고 본다.

하나님의 성결의 부탁을 저버리고 물질의 탐욕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산 여호수아서에 나오는 "아간"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요단을 건너기 전 이스라엘에게 성결을 부탁하고 또 요단을 건넌 후에도 할례를 행하여 성결을 부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간이라는 사람의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인한 성결치 못한 행동으로 인한 범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온 이스라엘 백성이 아이성에서 패배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뿐만 아니라, 본인과 온 가족이 멸망받는 심판을 받았음을 여호수아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수년전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미국의 소도시의 가난한 타운에서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한국이민자 한 분이 있었다. 어느날 이분은 재정적으로 무리를 하면서, 꿈에도 갖고 싶던 고급 벤츠 승용차 하나를 사게 되었다. 문화와 언어의 장벽과 인종차별의 편견의 벽을 뚫고 넘어온 고달픈 이민 생활을 뒤돌아 보며, 한국에서는 타기 어려운 고급 벤츠 승용차를 타는 맛이란 마치 신분상승이라도 된 듯이, 그간에 당한 모든 수고와 고생을 다 보상해 주는 듯 싶었다. 알아 주는 이 없는 이민생활의 열등감도 다소 극복이 되는 듯 싶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 그 고급 벤츠 승용차를 타고 가서 자신의 가게에서 일을 할 때에, 고객들 중에서 밖에 세워둔 벤츠 승용차가 당신의 차냐고 묻은 사람이 많았다. 좀 조심스럽기는 하였지만, 그들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그후부터, 알아듣기 힘든 악센트를 고맙게도 잘 들어주며 친절하게 물건을 사주던 저들이, 이모 저모로 불평하기 시작하더니, 종내는 가게 앞에 세워 놓은 생명처럼 애지중지 여기던 고급 벤츠 승용차를 북북 긁어서 못 쓰게 해 놓고 말았다. 좀 과장이 섞인 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무조건 돈이 있으면 미국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분수를 모르는 한인이민자의 안타까운 이야기이며, 무엇이 미국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요, "미국적인 분수"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한국 이민자의 현주소를 담은 아픈 허상의 이야기이다.

특별히 미국 대도시에 거주하며 유학하는 유학생 중에 미국의 부호들도 나이가 들어서야 탈 수 있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많은 돈을 향락과 소비에 쓰는 귀공자 유학생들이 많다고 하니, 이또한 분수를 모르는 한국 유학생의 희극적인 허상의 이야기이다. 사우디 아라비아 왕가의 왕자도 아닌 주제에, 분에 넘치는 고급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한국 유학생에게 미국사람이 경멸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저들은 모르고 있을 것이다. "미국의 분수"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탓이다. 한국의 부모가 부자이든 아니든 간에, 유학생 신분에 맞는 값싸고 실용적이며 튼튼한 승용차를 구입해서 타는 것이 바른 이치이다. 물론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들이 힘써 공부하여 장학금을 받으면서, 또 밤낮으로 일하여서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는 건실한 유학생들이 많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들에게 마음껏 격려와 갈채를 보내주고 싶다.

물질에서 성결한 생활이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돈을 벌고, 소비하는 것이며, 가난한 자와 함께 가진 것을 나누며, 자신의 물질의 근원적인 소유주가 누구인지를 알고 건실하게 생활하는 것이다. 오늘도 유학은 꿈에도 못 꾸고 열심히 일하며 수고하는 고국의 동갑내기 동료들을 생각할 때에, 옷은 검소하게, 아파트는 안전하고 가급적 싼 곳에, 자동차는 분수에 맞는 실용적인 것으로 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빚더미 위에 앉아 있는 한국의 경제상황의 근본이유를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미국의 고등학생들조차, 분수에 넘치는 고급승용차를 타는 한국유학생에게 고개를 갸우뚱거린다는 것을 장래의 지도자들이 될 유학생들이 몰라서야 될 것인가? 여러분이 미국에 전문 직장을 얻게되어도, 결코 유학생 때의 생활수준보다 별반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미리미리 미국의 재정관리 방법과 "미국적 분수"를 배워둠이 좋을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성결하게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궤를 맨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잠기자 요단이 마른 땅으로 열려지는 기적을 보게 된다. 이와같이 모든 크리스천 유학생들이 영적생활에 성결되고, 또 생활과 삶 속에서 성결을 이루어서, 학위취득 후에 고국에서나 또는 미국에서 전문직장에 종사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행로에서 열게 될 요단강이 갈라지는 축복을 누리게 될 줄로 믿는다.

본 컬럼에서는 미국이라는 이질 문화 속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한국 유학생들이 어떻게 실제적인 삶을 성결하게 살 것인가에 관하여 썼으나, 거의 대부분의 크리스천 유학생들은 본 컬럼에서 지적한 성결치 못한 행위와는 관련이 없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또한 나의 짧은 이민 생활과 경험으로부터 나온 견해가 다 온전하다고 할 수 없음을 인정하며, 또 특정한 그룹이나 개인을 향하여 편향된 공박이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

다음 회에서는 "요단에 들어서라"라는 제목으로 실제적인 미국 취업의 정보취득법, CV(이력서) 작성법, 강의 및 연구계획서 작성법 및 인터뷰 준비에 대하여 소개하고, 또 미국 취업의 문을 적극적으로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적극적이며 용기있는 크리스천 유학생의 취업 준비에 관하여 나누어 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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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Still!
내 앞에 잠잠할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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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느림과 11월 Give Thanks로 연결 시켜본 캄보디아의 영상을 이 사진으로 마감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두려움과 생소함 앞에 당황해 하는 우리들을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가장 좋은 것들을 시간이라는 놀라운 방법으로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을 느낄 때 나와 만물들은 그분의 영광 아래 잠잠할 지어다. … Be Still! …

*1998년 5월 World Vision의 official photographer로서 오재식 회장님과 김혜자 대사님 그리고 SBS 팀들과 캄보디아 취재를 마치고 기아 대책 기구 팀들의 깜뽕솜 어촌 하기훈련에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푸놈펜 중앙 시장 바닥에서 본드를 흡입하며 뒹구는 가여운 아이들, 아직도 킬링 필드 내전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바탕방의 지뢰밭 위에서 논과 밭을 갈며 살아야 하는 농민들, 4바퀴 차길이 없어 3시간 오토바이 꽁지에 메달려 엉덩이 얼얼하도록 들어가본 농촌 축. 그곳 농촌 교장 선생님의 16살 짜리 아들 아바트낙이 어느날 지뢰로 두 눈을 실명한 후 일년 반 동안의 본인과 가족들의 얼굴과 마음의 상처. 정글 숲에 감춰져 있던 앙코르 와트의 유적들과 통네 호수의 수상 가옥을 본 후에, 캄보디아의 아픔은 전이 되어 깊은 숨이 쉬어질 때의 깜뽕솜 남지나 海(해)의 해(일)는 숙연함을 넘어선 큰 위로였습니다. 내 앞에 잠잠할 지어다.

Be still, ye inhabitants of the isle; …(Isaiah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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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단상

때로는, 목사나 선교사가 되고 싶다

목사나 선교사가 "되고 싶다"는 말은 얼마나 불경(?)스러운 일인가.... 이런 말을 듣는 목사님이나 신학생들은 아마도 크게 분개할 것이다. 목사가 된다는 것이 과연 그렇게 단순한 일이냐며, 자기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며 나를 크게 꾸짖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때로 목사나 선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고, 목사나 선교사가 되는 일은 부르심(Calling)이 없이는 절대로 안되는 일이기 때문에 더더욱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다른 모든 일도 그렇지만.)

미국에 유학오기 전 약 1년 반 동안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기회가 있었다. 스스로 생각할 때, 대학교 3학년 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약 3년 여의 '훈련'기간을 통해 습득한 지식과 학교생활과(대학원에서의 실험실생활은 반쯤 직장생활이었다) 교회생활에서 체득한 경험이 내 자신에게 있어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분명히 훌륭한 직장인이 되어 직장 내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에 차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직업, 직장생활에 관한 세미나에도 참석하고 책도 읽고 기도도 하고 묵상도 하면서 멋진 직장인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부딪혀야했던 직장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열심히 일해서 직장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주위의 비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직장 내 신우회에(직장 내에서의 그리스도인 교제모임을 보통 한국에서는 신우회라고 부른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생각했던 내 계획과 생각들은 여지없이 무너져갔다.

1. 직장상사와의 갈등

내 직속상사는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는 그리스도인은 아니었다. 술, 담배를 몹시 즐기는 것은 복음의 핵심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므로 용납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가치관은 가장 세속적인 출세주의였다. 그리고 그의 삶에서 복음의 능력과 빛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같이 식사를 할 경우 내가 식사기도를 하면 자신도 그렇게 식사기도를 하지 '못 하는' 것에 대하여 약간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 완전한 비그리스도인들과의 유일한 차이인 것처럼 보였다. '출세'라는 목표의식을 가지고 엄청난 추진력으로 일을 하다보니 직장 내에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유능한 연구자로서 인정을 받는 터였다. 그는 내게 그러한 자신의 '개똥철학'을 매일같이 강요하는 것 같았다. 나는 도저히 그 상사를 용납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당시 유학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내가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내며 공부할 기회를 많이 갖고 싶었는데, 내게 엄청나게 던져지는 일을 감당하면서 마치 내가 그 사람의 성공을 위하여 이용 당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또 내가 속한 연구부의 부장은 매우 권위적인 '비그리스도인'이었다. 내게 주일에도 일할 것을 계속해서 요구하였고,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할 수 없음을 밝히자 나를 경멸의 눈초리로 바라보곤 하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계속해서 회식이 있을 때마다 내게 술을 권하였다. 내가 정중하게 거부하자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했는지 거의 강압적으로 술을 권하였다. 나는 직장상사의 권위에 앞선 하나님의 권위를 우선으로 두려고 노력하였다. (술 마시면 천국 못 간다는 식의 율법주의로 이 글을 이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결국 그 대가로 나는 매우 어렵고 힘든 직장생활을 감내해야만했다. 이러한 갈등의 관계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한 좌절이 나를 힘들게 했고, 온유한 마음을 유지하지 못하는 데에서 오는 영적침체로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2. 시간의 문제

나는 한달 평균 300시간 이상 일할 것을 요구받았다. 평일에는 평균 12시간 이상 직장에 있어야 했고, 조금 바쁜 일이라도 있으면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연구실과 연구실 사이를 다닐 때에는 걷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항상 뛰어야 할 만큼 바빴다. 아침 일찍 일어나 겨우 연구실에 가고, '죽어라' 뛰어 다니며 일을 하고, 저녁엔 녹초가 되어서 들어오는 생활의 반복이었다. 개인여가를 즐기는 것은 전혀 불가능했다. 성경공부 인도하는 일, 다른 지체들을 돌보고(care) 훈련하는 일 등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QT와 기도 등 개인 경건생활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개인적으로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GRE, TOEFL 등을 준비해야 했으므로 그러한 압박은 더욱 심했다. 하루에 4시간 여 밖에 잠 잘 시간을 확보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서의 일도 효율적이지 못 했고, 유학관련 시험준비도, 개인생활도 모두 다 엉망이 되었다.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성장"(Ordering your private world)에서 언급되는 것처럼, 그러한 상황에서 "강요 당하는 자"(driven person)가 아닌 "부르심 받은 자"(called person)로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고, 역시 이로부터도 나는 심한 영적침체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3. 동역자의 문제, 교제(fellowship)의 문제

학교에 있으면서 학원(campus)에서 성경공부를 조직해서 인도한 경험이 있던 터라 직장에 가서도 그러한 일을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으리라 자신했었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두세 사람만 모을 수 있다면 QT를 나누는(sharing) 모임 같은 작은 모임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으리라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나만 그렇게 바쁜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그렇게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터였고, 거기서 더 헌신하여 어떤 형태의 모임을 하자고 제안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당시 독신이었던 나도 그토록 버거웠는데 가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은 오죽했을까! 그나마 약간의 열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도 많은 경우 수 년간의 직장 생활을 통해 그러한 소망과 열정을 다 잃어버린 상태였다. 자연히 나도 내가 막 시작한 직장생활에서의 어려움을 그리스도인 선배들과 효과적으로 나눌 통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해야 했다. 교제는 여전히 학교에 남아있던 친구들하고나 가능했지만 그나마 적당한 시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한가지 나를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신우회 활동에 적극적인 사람들은 대부분 직장생활에서는 무능하거나 무기력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고민과 비전과 생각과 삶을 나누며 함께 성장하고 사역할 동역자를 만나지 못한 채 결국 미국으로 오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말았다.

4. 부정한 체제(system)의 문제

가장 신참이었던 내게 가끔 주어지는 일은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학교에 있을 때부터 자주 했던 '가짜 영수증 만들기'는 이제 이력이 나 있었다.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했다며 그 전문가의 체제비, 강의비, 식비 등을 신청해서는 같은 팀의 사람들끼리 회식을 하는 일이 두어 달에 한 번 꼴로 있었다. 같은 자료(data)로 여러 학술잡지에 짜임새(plot)만 약간 바꾸어서 논문을 내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팀의 업적을 과대포장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들과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라'고 하신 에베소서의 말씀을 함께 생각하며 나는 몹시 고통스러워했다. 과연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러한 상황에서 그런 일을 해서는 안되는 당위를 어떻게 설명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제일 신참이고 나이도 어린 내가... 내가 자주 선택한 길은 도망하여 숨는 것이었다. 화장실이고, 자료실이고 실험실이고... 이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숨어서 그저 내가 그 일을 맡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얼마나 소극적이고 비겁한 일인가! 게다가 그렇게 얻어진 회식비로 나도 함께 가서 12만원 짜리 광어회를 맛있게 먹고는 하였던 것을 생각해 보면 말이다. 한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 큰 체제(system)와 싸워서 공의와 정의를 지키는 일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아 보였다. '타협', '회피', '대립' 등 바람직하지 못한 반응 등을 보이던 나는 조금도 그들을 '변혁'시키지 못한 채 얼마 되지 않는 퇴직금을 챙겨들고 연구소를 나왔다.

나의 이러한 경험들은 매우 제한적인 것이지만, 내가 가졌던 교만한 '비전'들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정사정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역시 많은 부분 문제는 직장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던 나의 태만과 직장의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의 무지에 있다. 그러나 한가지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그리스도인이 한국의 반도체 관련 직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곳에도 누군가는 가서 함께 살며 복음을 전하고, 한국의 반도체 업계가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는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 나는 다시 한국에 가서 직장생활을 할 것이 두렵다. 몸서리가 쳐진다. 사자굴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이런 식의 갈등을 겪지 않아도 되는 목사님들이 부러워진다. 그 좋은 성경을 깊이 연구하며 묵상하는 일이 '주업'이 아닌가! (아마도 목사님이나 선교사님의 어려움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리라) 게다가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왠지 더 거룩한 싸움을 싸우는 용사가 되는 것과 같은 (이원론적인!) 생각에 나도 그런 소명(calling)을 받고 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평신도로 부르신 것에 감사한다. 목사님이나 선교사들이 가지는 '영광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인생의 전 영역에서 (직장생활을 포함한 불신세계에서)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선포하게 하는 거룩한 평신도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고 많은 '훌륭한 목사님'들이 있지만 '훌륭한 평신도' 하나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에서, 하나님에게 '더운 여름날의 시원한 냉수 한 사발'같은 사람이 될 기대 때문이다. 대부분의 평신도들이 '병신도'로 전락해버린 상황에서 평신도였던 집사 스데반, 빌립과 같은 기준을 되찾는 평신도 사역에의 부르심이 나를 몹시 흥분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때로는, 목사나 선교사가 되고 싶다. 그러나 그보다 더 나는 멋진 평신도가 되고 싶다. 그것이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기쁨과 감격이 몸서리치게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 글이 목사님, 선교사님, 혹은 그 지망/헌신자들의 기운을 빼는 글이 아니길 바랍니다.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고 저는 그 모든 분들을 참으로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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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슬란 2011/08/07 05:50  Addr Edit/Del Reply

    저는 대학졸업후 바로 선교지에 나와서 잘은 모르지만,
    글을 읽어보니 세상 속에서 거룩함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싸움인지 느껴지네요-
    힘내시고 정말 멋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사시길 응원합니다!!

캠퍼스 사역 Q&A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을 줍니까?

신명기8:3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을 낮추시고 굶주리게 한 후 만나를 먹게 하신 이유를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가르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고 기록합니다.

우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보기 위해서 중요한 필요 조건인 것 같습니다. 낮아지고 굶주릴 때 자신의 생존을 위한 기본조건이 결여되기 때문에 그때 비로소 전혀 의식하지 못하던 이 세상의 본질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당연시 여기던 일들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 세상이 보이는 것으로 말미암아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을 알게(믿게) 됩니다.

먼저 생명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명은 피조물에게 있어서는 창조의 틀(framework) 안에서만이 설명될 수 있는 개념 입니다. 우리가 현존하고 있는 창조의 틀 안에서 원래 창조될 때 define된 기능을 발휘할 때 "생명이 있다" 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은 원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원인/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바로 그 원인이 하나님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창1:30; 2:7).

모든 생명체는 미리 규정된 범위 안에서 활동을 합니다. 사자는 하늘을 날수 없고 참새는 얼룩말을 잡아 먹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바로 하나님께서 식물과 동물들을 각각 그 종류대로 창조(define) 하셨다고 설명하심으로 각각 창조 안에서의 주어진 활동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창1장).

생명이 창조의 틀 안에서 설명될 수 있듯이 생명의 유지도 창조의 틀에 의존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창조 안에서 음식을 섭취하고 신진대사를 함으로 생명을 유지합니다. 창조의 틀에서부터 자신에게 필요한 물질을 섭취하며 생존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창조과정을 설명하면서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의 질서를 만드시고, 기본 틀을 잡으시고 (이사야48:13) 마지막으로 그 틀 안에서 생명체들을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1장). 이는 생명체가 창조 안에서만 존재하는 피조물의 제한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욥 38장).

창조의 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생각의 표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또 같은 말씀이 모든 생명체의 생명을 공급하는 근원입니다 (요1:3-4). 그러므로 창조의 틀은 바로 하나님의 생각의 표현이자 곧 말씀의 작품입니다. 창조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즉 의지의 표현으로 지금도 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1:3). 그러므로 모든 생명체는 바로 하나님의 뜻의 계속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호흡하고 의식이 있다는 자체로 생명이 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사람의 창조의 틀에서의 그 창조의 목적에 합당한 역할을 이행할 때 비로소 그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세계 안에서 단순하게 호흡하고 의식이 있어도 생명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에 생명이 의미하는 것은 원래의 생명의 뜻이 아니라 육신의 세계 안에서 국한된 생명의 개념입니다.

인간은 단순히 육신의 세계 안에서 만의 생활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세계는 창조의 틀의 subset 입니다. 그러므로 원래 창조의 틀에 맞게 규정된 인간이 subset에 국한되어 생활할 경우 창조의 틀의 생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육신의 세계 안에 국한된 의식이 창조의 틀 안으로 팽창하고 그 창조의 틀에 의해 규정된 생활을 하게될 경우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 창조의 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히11:1).

창조의 틀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고 있을 때 참 생명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육신의 세계는 잠시 있다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육신의 세계에 육신이 제한을 받고 살고 있지만 참 생명을 얻은 사람은 육신의 세계가 없어질 때 같이 없어지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전달되고 우리의 뜻이 하나님께 전달되는 것입니다. 서로의 교통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이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까지 전달되는 것입니다.

참 생명은 말씀을 통하여 유지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을 말씀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을 거절했음으로 육신의 세계에 국한되어 버린 인간의 의식수준에 하나님의 뜻이 표현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이 세상에 없어지고 사단이 제시해 주는 세상의 형상이 인간의 의식을 점령해 버렸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이 되셔서 인간의 육신의 세계 안에 표현되셨습니다 (요1:14). 그리고 자신이 바로 하나님께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 이리고 말씀하셨습니다. 길을 가르쳐 주는 분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진리", 즉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붙어 있는 사람들은 말씀을 공급받게 됩니다. 그리고 말씀 안에서 자신을 다시 찾게 되는 것입니다 (빌3:9). 즉 육신의 세계 안에서 자신의 identity를 이해하고 있다가 그리스도 안에서는 창조의 틀 안에서 자신의 참된 identity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육신의 세계 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육신의 음식을 계속 섭취함으로 우리의 육신을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이제 원래의 창조의 틀 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whole being이 음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바로 창조의 틀의 음식은 창조의 틀을 유지하는 근원이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한 번 진리를 받아들임으로 창조의 틀에서의 생활이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진리의 놀라운 보화를 질그릇에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후4:7).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따라 주시는 은혜를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함으로 매일 나아가야 합니다 (히4:16).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의식 안에 들어와 우리의 삶의 영역이 눈에 보이는 것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의 틀에 의하여 지배될 때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까지도 온전히 지배하여 온전하게 표현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생명이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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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01 03:00 삶과 신앙/F2 이야기

F2 이야기

보이지 않았던 선물

2년 여 전, 결혼과 남편의 유학으로 인해 직장 생활을 포기하고 정든 사람들과 헤어져 타문화권으로 옮겨와 새롭게 삶을 시작하던 그 때. 모든 것이 낯설고 또한 타의에 의해 나의 것은 모두 버려진 듯한 생각으로 꽤나 눈물을 흘렸던 그 날들....

미국에 온 지 한 2개월 쯤 흘러 교회 청년부 모임을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청년부의 한 자매와 원투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자매는 박사과정 '학생'이었는데, 그럼에도 나와 공통점이 있다면 '주부'라는 점이었다. 우린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QT 나눔을 하고 서로의 기도 제목을 나눈 후 기도로 마치는 형태로 만남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를 보낸 후 자매는 자신의 삶에서 기도 시간과 QT 시간을 따로 떼어서 하기가 힘들다는 어려움을 표했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는 시간을 그날의 QT 시간으로 정하여 함께 성경을 보고 의문점이나 느낀 점을 나누게 되었다.

그렇게 두 달이 더 흘렀을 때 이웃에 살며 인사하고 지내던 K주부를 그 만남에 초청했다. K자매는 집에 있으면서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고 나면 그 당시엔 재미있는 것 같아도 헤어지면 허무함이 남는다면서 우리 모임을 자신도 함께 나누고 싶어했다. 이제 모임 인원이 3명이 되었다. 한 명이 더 늘어난 모임이 되니, 궁금한 것도 많아져서 다른 참고 자료도 찾게 되었고, 의미 파악이 어려운 개역성경 대신에 영어성경(NIV)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늘어난 세 명의 인원은 곧 다섯 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는데, K주부를 통해서 P주부가, 나를 통해서는 E주부가 모임에 오게 된 것이다. 우리 모임에 두 명이 더 늘어나면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사실 그동안은 처음 원투원했던 자매가 박사과정 학생이었기 때문에 그 자매의 스케줄과 동선을 최대한 줄여주는 배려로 학교 식당에서 모임을 했었다. 그런데, 새로 모임을 같이 하게된 E주부는 한 살이 좀 넘은 딸 아이 하나가 있었고 임신 중이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 함께 학교까지 가자고 할 수도 없었고, 더군다나 한 살 박이 아기가 식당에서 얌전히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집으로 모임 장소를 변경하게 되었고 5명이 모여 성경공부도 하고 함께 식사도 하면서 보다 깊은 교제를 나누게 되었다. 그 대신 학생이었던 자매에게는 라이드(ride)를 해 주었다. 새로 모임을 같이 하게 된 E주부는 한국에서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아기 키우면서 아무런 사역을 하고 있지 않은 자신을 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이 무너져 내림을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모임에 와서 신학적 견해나 성경배경 지식 등을 소개해 주는 역할을 맡음으로서 자신이 전공한 것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모임이 깊은 나눔과 성경공부로 채워져 가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았을 때의 기쁨을 맛보게 하셨다. 우리가 식당에서 모이고 있을 당시, 우리를 쳐다보며 몇 번 인사하고 지나가기만 하던 H자매에게서 우리 모임에 함께 하고 싶어하는 열망이 느껴졌다. 하지만 내가 가졌던 그녀에 대한 선입관, 주로 그녀의 독특한 성격과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섣불리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우리 모임에 함께 하기를 초청했을 때 놀랍게도 그녀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 모임에 꼭 오고 싶었노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난 무척 기뻤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그 H주부도 교회 청년부 모임에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주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이 대다수인 이 모임에서 쉽사리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어려웠고, 유학생의 아내로서만 사람들로부터 인식되는 것처럼 느꼈으며, 임원들은 모두 유학생인 그 모임에서 어쩐지 주부들은 소외 당하는 것처럼 보여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임에서는 나를 '나'로 여겨주는 것이 좋고, 무엇보다 같은 주부이기 때문에 관심사도 비슷하고 편하다고 했다. 결국 예수님을 믿지 않던 이 자매가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고, 선택의 순간 앞에서 기도하며, 사람들을 섬기는 모습이 생겨났다. 지난 청년부 수련회에서 중보기도 시간에 이 자매와 나 사이에 생긴 일이 하나 있다. "난 언니가 우리 모임에 온다고 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라는 나의 말에 딱딱하게만 보였던 그 자매가 눈물을 흘리며, "고마와요. 하나님께서 자매를 귀하게 쓰시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나같은 주부들을 위해 계속 섬겨 주세요"라고 했던 말을 난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성경공부 모임으로 굳혀진 우리 모임의 인원은 2년 정도의 주기로 새로 오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 때문에 변동이 있기는 하지만 보통 10명 내외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간의 나눔이 깊어지기 위해서는 모임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현재 인원을 2개조로 나누었다. 또한 2개조로 나누다 보니 리더십을 키워야 하는 문제도 함께 대두되었다. 그래서 그동안 모임을 같이해 온 우리들 중에서 추천을 받았다. 내가 개인적으로 임명할 수도 있었지만 모임을 같이 해 오면서 구성원들이 리더십을 인정해 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 조는 K주부가 맡기로 하고 다른 한 조는 내가 맡기로 했다.

우리 모임은 금요일 아침 11시부터 모여서 한 조는 거실에서, 다른 한 조는 방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한다 - 모임 인원이 적은 날은 함께 하기도 한다. 텍스트로는 영어성경을 사용하고, 관주와 표준새번역, 성경사전과 성경지도 등으로 정확한 뜻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과 느낌을 함께 나눈다. 그 다음엔 기도 제목을 나누고 기도한다. 요즘에는 성경 말씀 뿐만 아니라 부부 관계를 위해 책 나눔도 하고 있다. 한 장(chapter)씩 돌아가면서 발제를 하고 질문과 응답을 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의 가정을 돌아보고 문제를 내놓고 함께 기도하면서 가정을 조금씩 회복하고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있다. 앞으로는 '하나님 나라'와 '악을 허용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책 나눔을 통해서 공부할 예정이다.

2시간 정도의 모임 후에는 각자 싸 온 도시락을 한 식탁에 놓고 먹으며 그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다른 조에서는 어떤 나눔이 있었는지 자유롭게 얘기하는 교제 시간을 갖는다. 보통 3시 정도까지 두 시간 정도를 함께 나누다가 급한 일이 있거나 아이가 있는 자매들은 집으로 가고, 남는 사람들끼리 쇼핑을 하거나 커피숍에 가서 티타임(Tea-time)을 갖기도 한다. 아마 다른 사람들이 생각할 때 너무 오랫 동안 시간을 갖는 게 아닌가 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부 모임에 오는 사람들은 꼭 점심 시간을 포함해서 오랜 시간 동안 의미 있고 깊이 있는 나눔을 원한다. 이런 사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하고픈 말이 많으며 위로 받고, 또 위로하고픈 역동적인 시간의 필요성을 깊이 절감하고 있는 지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임의 특이한 점은 주부들이 모였다는 점이다. 내 주위에 친하게 지내고 있는 싱글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여드는 건 주부들 뿐이었다. 그들은 처음엔 많은 위로 받음과 편안함으로 왔다가 점점 모임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대부분 그들의 남편은 학생이거나 박사후 연구원이었기에 아침부터 밤까지 늘 학교 공부와 일에 바쁜 반면, 아내들은 한국에서는 그런대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자신 있게 살아왔다가 너무나 조용한 이곳에서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삶을 살면서 정체성을 잃었던 것이었다. K주부는 1년을 울면서 한국에 가고 싶어 우울증 걸리는 줄 알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아무리 남편들이 잘 해 주어도 이 자매들의 눈물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수는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모임을 통해서 그들을 회복시키셨다. 처음엔 자신들의 한풀이에서 시작되었던 것이 구체적으로 이곳에 서 있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만 2년이 되는 이 모임은 그들의 남편들과 다른 외부 사람들에게도 인식되어서, 우스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이 모임에 나오는 주부들의 남편들은 집에서 아내에게 잘 해야 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왜냐하면 남편이 아내에게 서운하게 하거나 잘 못하면 곧바로 이 모임에 기도제목으로 나오기 때문이라나? 어쨌든 남편들이 몸을 사리고(?) 있다.

우리 모임은 왜 이렇게 자라게 되었을까? 처음 나의 의도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대학 시절 선교단체 활동을 통해 영혼을 살리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기에 시작한 원투원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6개월 안에 모임의 크기가 커지고 내용도 성경공부로 변화하고 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임을 섬기려다 보니 성경도 여러 번 보게 되고, 기도도 더욱 하게 되고, 자료도 찾게 되고 모임의 필요에 더욱 민감해지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사역'을 하고 있는 거였다. 하지만 지금도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너무나 원하고 계셔서 우리를 모아 주신 것이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실 난 주부 모임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었으니까. 난 단지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한 모임은 어디에 없을까'란 생각만 잠시 했을 따름이었다.

며칠 전 창세기에서 요셉의 삶을 공부했다. 그때 우리들은 예상하지도 못했던 외국에서의 삶과 더욱이 감옥에서도 '성실함'과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을 잃지 않았던 요셉처럼 F2의 삶을 살아가자고 기도했다. 타의건 자의건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옛것에 대한 미련을 품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성실함'과 '하나님의 신실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요셉이 만 2년 이상을 감옥에 있었지만 그것도 요셉의 삶의 한 부분이듯이, 지금 집안 일로만 하루를 보내는 삶이건, 무언가 공부를 시작했건, 일을 하게 되었건 간에 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 들어 온 '삶'인 것이다. 지금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다고 느껴서 안달하거나 속상해 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자신을 다시 보라. 정말 자신도 꽤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느낄 것이다.

나는 우리 모임에 대한 나눔이 부디 미국에 살고 있는 유학생 부인들에게 힘이 되길 원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이 아픔을 함께 고민하고 기도할 수 있는 짝을 만날 수 있도록, 아니면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할 사람을 찾아 섬길 수 있게 되기를 말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이 모여 당신을 알고자 힘쓴다면 그 모임을 결코 찢으시거나 망치실 분이 아니시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난 결혼한 지 2년 반 정도 밖에 되질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 주부 모임을 어떻게 만들어 갈 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늘 주님이 함께 하셔서 만들어 가실 것을 믿는다. 처음에도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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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KO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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