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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1년 11월호

소설가 서영은씨의 초기 작품 중에 한 여인의 감정에 대한 묘사가 뛰어난 단편 소설이 있습니다. 제목은 잊었지만 내용이나 서술이 기억에 남는 그런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별로 자신감이 없는 수수한 여인, 다른 이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하며, 스스로를 가꾸지도 않는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여인이 어느날 사랑에 빠집니다. 축복 받을 수 없는 형태의 사랑이었지만, 사막을 건너는 낙타처럼 힘겹고 지고지순하게, 어쩌면 목숨을 건듯이 처절하게 그 사랑을 지켜 나갑니다. 자기를 이용만 하려 하는 남자에게 그토록 성실하게, 사회적 지탄도 외면하며 사랑에 매달립니다.

중요한 것은 그 여자의 변화입니다. 평소처럼 부스스한 차림으로 시장에 가려던 그녀는 아, 우연히 그를 마주치면, 하는 생각에 다시 들어와 단장을 하고 나가지요. 장에서 물건 값을 깍으려다 그가 보면, 하면서 너그럽게 행상 노인에게 값을 치릅니다. 그녀의 모든 행동과 차림새에 그를 떠올리며 점점 나은 여인의 모습이 되어 갑니다. 언제나 그녀의 내부에는 그가 의식되어지기 때문에 그녀는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고, 그녀가 치르는 헌신적인 사랑이 기쁨이 됩니다. 그녀에게 사랑은 강한 구속이며, 삶을 지탱하는 끈이 되어 갑니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욕의 원천이 되어 줍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속성, 이기심 때문에 그 사랑은 짓밟히게 되어 버리지요. 소설에서는 표현되지 않은 뒷부분이 그리 아름답지 않은 것이었으리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사랑의 구속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직접적이지 않고 강제적이지도 않은 이 구속감! 사랑의 기대감 같은 것. 혼자 있을 때에도 수 없이 자신에게 말을 걸며 자신을 되돌아 보게하는 이 구속감을 힘겹게 생각하거나 불행하게 받아 들이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생기찬 모습을 보면 말입니다. 얼마 전 먼 곳을 여행하면서 고속도로를 달리며 재미있는 경험을 했습니다. 막 달리던 차들이 갑자기 속도를 줄이고 얌전하게 달리다가, 조금 지나면 다시 마구 속도를 내며 이리 저리 주행선을 바꿔 댑니다. 바로 레이져 감시 탐지기를 전후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감시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시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무심한 것일까 하는....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존재를 얼마나 자주 망각하고 있는지, 나를 사랑의 기대감으로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구속에 대하여 얼마나 자유(?)로운지. 보이지도 않는 그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그분의 현존을 그렇게도 확신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 거리낌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모순.

아무도 보는 이 없이 홀로 그와 대면하고 있는 고요한 순간, 나는 마치 벌거벗은 아이와 같은 데도 감추려 하는 것이 많고 심지어 속이려 하고.... 지금 이곳에서 그가 나를 보고 있다면, 나는 분명 다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더 온유하고 단정하고 밝아지려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그가 귀 기울이고 있다면, 성내고 비판하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 견딜 수 없을 겁니다. 내 마음 속에 일어나는 온갖 사악한 생각과 행위의 그릇됨이 부끄러워 차마 계속 죄를 저지를 수 없겠지요. 내가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그를 찾듯이 순간 순간 그를 발견하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하는 열망을 품어야 하겠지요. 나의 한 없는 사랑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며 그 또한 무한한 사랑을 내게 주기를 약속하였기에 나는 기쁨의 구속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실적이고 인위적인 감시망 보다 내 안에 있는 빛을 두려워 하며, 그 빛에 이끌려 밝은 곳으로 가는 아름다운 영혼. 바로 이 순간 나를 변화시키며 아름다운 우정을 쌓기를 바라시는 그분, 끊임 없이 대화를 나누기를 원하시며, 아무도 없는 고요함 속에서 내 존재의 중심이 되시는 그분, 내가 만난 그분을 나는 사모합니다. 그 사랑의 간절함으로 그를 찾고 부르며, 내가 나 아닌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 나길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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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탄 현장 이야기

아바의 지팡이

한 가족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사역지로 떠날 때까지 겪어야 하는 어려움들은 첩첩이 싸인 고개를 넘는 산행이며, 한편으로는 가로 막힌 홍해를 건너는 것과 같은 기적의 체험이기도 하다. 부르신 이가 친히 인도하신다는 믿음 없이는 견디기 힘든 고비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하기에, 어려운 산행을 위해 반드시 든든한 지팡이가 필요하듯이, 그 지팡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해 주신 지팡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1)

영혼을 사랑하는 훈련을 통하여 새벽에 매달려 기도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것은 광활한 만주 벌판이었다. 날마다 중국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게 하셨고, 만주에 지어진다는 대학 생각만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기도가 달아 올랐다. 그러나, 중국... 그곳은 여전히 나에게는 오르기가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태산처럼 내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주위 환경, 전혀 믿지 않는 가족들, 어디를 둘러 보아도 내가 중국으로 갈수 있을 만한 조건들이 없는 것만 같았다.

새벽 제단을 통하여 중국을 향한 부르심의 음성을 확인해 가는 과정에서 내가 넘어야할 고개로 처음 떠오른 것은 아내였다. 그 무렵 아내는 교회의 오르간 반주자로, 대학의 강사로 활약하며 한창 전문인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추구해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포기 시키고 무작정 중국으로 떠나자고 말을 꺼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에 반 농담 삼아 중국에서 한번 살아 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며 속셈을 감추고 지나가는 말처럼 슬쩍 떠보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럴 때마다 오히려 무슨 낌새라도 맡았는지 펄쩍 뛰면서 아예 말도 꺼내지 못 하도록 가로 막는 그녀의 태도 앞에서 나는 더 이상 말문이 막혀 버리는 것이었다.

1993년 2월 아내는 서울의 세종 문화회관에서 기대 이상의 성황리에 파이프 오르간 독주회를 마쳤다. 어쩌면 조만간 자신의 전공인 오르간을 뒤에 두고 떠나야 할 그녀를 위로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작은 배려이셨는지도 모른다. 그 무렵 아내는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는 전공인 오르간을 최고조로 만끽하는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나 역시 그러한 아내의 심정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 최소한 오르간 독주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기로 마음을 굳힌 채 기도로서 기다리고만 있었다. 독주회가 끝나고 서울서 다시 포항으로 내려온 후 아내가 약간의 허탈감에 빠져 있을 때, 나는 기회를 타서 마침내 중국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꺼내었다. 비로소 내가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아내는 긴장하여 얼굴색이 하얗게 변하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내의 그 같은 반응을 바라 보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아무리 서로가 사랑하는 부부지간이라 할 지라도 이 일은 설득하거나 강요하여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 일은 하나님께서 그녀를 움직이시기 전에는 전혀 불가능한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다가왔던 것이다. 더불어 만일 우리 가족이 중국으로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다면 그분이 친히 이 문제를 해결하시지 않겠는가 하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2)

그 시절 곧바로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소설 '아바'를 쓰도록 밀어 붙이기 시작하셨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아내를 설득하는 일을 지속하지 않고 오로지 글 쓰는 일에만 몰두하였다. 4월의 어느 날 아침, 우연히 K일보의 문학상 공모가 출근길 내 발에 밟혔다. 그러자 지난 날 학창 시절의 기억 속으로 사라졌던 글쓰기에 대한 내면의 욕구가 갑자기 치솟아 오르면서 그날 저녁 컴퓨터를 마주하고 첫 문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 역시 글 쓰는 일이 중국행과 어떤 관계가 있는 지도 모른 채 시작한 작업이었다. 내가 더 이상 중국 이야기를 꺼내지 않자 아내는 내가 중국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고, 나의 글쓰기 작업에 대해 희망을 품고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였다.

그러나 글이 중반의 고비를 넘기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의 윤곽이 잡혀가자 나는 곧 이 일이 우리를 중국으로 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철저하신 계획 속에서 진행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고된 하루의 일과 후에 시작되었던 한밤의 깊은 대화 속에서 주님은 어김 없이 나를 만나러 찾아 오셨고, 나는 무엇엔가 홀린 듯이 컴퓨터의 단말기 속을 헤매면서 하염 없이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그 분의 자애로운 눈길 앞에서 낱낱이 드러나고야 마는 지난 날의 추한 단상들을 생각하며 매일 밤 나는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분이 내게 질문을 던지셨다. "아직도 네가 어떻게 살아야 할는지 모르겠느냐?" 글쓰기를 시작한 후 하루에 평균 4시간의 수면을 취하면서도 내가 새벽마다 일어나서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지켜본 아내도 곧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었다.

그 당시 나는 새벽 기도 시간에 모세 오경을 다시 보게 되었다. 출애굽기를 통하여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의 음성이 곧바로 나에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들고 있는 지팡이 곧 내가 쓰고 있는 소설 '아바'가 바로 모세가 출애굽을 위해 하나님께 받았던 그 지팡이임을 알게 되었다. "내가 누구관데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하고 반문하는 모세에게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하고 말씀하심으로 나에게 말씀의 징표를 주시기 시작하셨다. 장남으로서 퇴직하신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문제 등 현실을 돌이켜 보며 용기를 잃고 두려움에 싸인 채 "주여, 정말 이것이 당신의 뜻이 분명합니까?" 라고 재삼 질문을 던지는 나에게,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고 말씀하셨고, 모세가 지팡이로 바다를 가르는 장면 앞에서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라는 말씀을 통하여 내게 주신 지팡이가 무엇인지 우리 가족이 건너야 할 바다와 육지가 어디인지 분명히 살펴보게 하셨다.

그 시절, 나의 질문 섞인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이 얼마나 강렬하였던지 나는 새벽마다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인한 기쁨과 황홀감이 파도처럼 몰려와서 내 심령과 온 방안을 가득 채우는 체험을 하곤 하였다. 또한 그 당시보다 내가 깊고 넓은 중보기도를 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부모 형제 친척은 물론 직장 동료와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을 위해 새벽마다 지구를 한바퀴 돌면서 눈물로 매달리는 중보 기도를 하였다. (당시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기도 제목들이었지만 결국은 그 기도의 열매들을 거두시고야 마는 하나님을 후일 경험하게 되었다.) 더구나 이 일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나는 오히려 그 분에게 "당신의 뜻일진데..., 이러이러한 것을 해 주십시오" 라는 식으로 여러 가지 요구를 하게 되었다. 그때 미리 받았던 확실한 기도 응답 중 두 가지가 부모님들의 구원과 약속의 자녀로서 우리 부부가 오랫동안 기다리던 둘째 아이를 주시겠다는 약속이었다. 또한 아내의 마음을 돌리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쓰고 있는 소설 '아바'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책으로 출판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를 시작하였다. 아내에게 보여 줄 분명한 징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성령님의 반응은 너무나도 즉각적이고 확실하여서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한 기쁨과 확신으로서 그 요구를 들어 주시겠노라고 대답하시는 것이었다.

(3)

소설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나는 한 가지 갈등에 빠지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강형수라는 한 젊은이를 통하여 마치 나의 지난 날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갈등과 방황 속에서 아바 아버지를 발견하기 위한 긴 여로를 추적해 가는 과정을 그려 가는 동안, 나는 가능한 한 신앙적 메시지의 무절제한 표출로 인하여 믿지 않는 독자들의 반발 심리를 일으키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작품의 문학성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흔히 신앙적 메시지를 앞세우다 보면 작품성이 떨어지기가 쉽다는 것을 신앙 소설들을 읽어 오면서 평소에 느껴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형수가 천신만고의 고통 가운데 회심하는 마지막 부분에 이르자 과연 구원의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전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여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지닌 모세의 지팡이로서의 의미를 생각할 때, 복음을 과감하게 선포하고 지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강한 이끌림이 있었다. 한편으로는 K일보사의 기독교 신앙적 배경을 생각할 때 그와 같은 점이 크게 문제시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고민 끝에 마침내 문학성을 약간 양보하더라도 복음의 메시지를 직접 전하기로 마음을 굳혔던 것이다. 그 같은 생각 가운데에는 K일보사의 문학상 공모라면 복음 선포가 하등 문제시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는 심리도 작용하고 있었다. (사실은 K 일보의 문학상 공모는 종교부가 아니라 문화부에서 주관한 행사로서 기독 신앙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출애굽기가 끝나고 소설이 완성되자 나는 당선을 확신하며 그 원고를 프린터로 뽑아서 K일보사로 보내었다. 6개월간 신들린(?) 듯이 써 내려가던 원고지 2,600매 분량의 장편 소설을 탈고하는 순간이었다. 이미 성령님께 약속 받은 글이었기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그런데, 막상 원고가 내 손을 떠나고 더 이상의 숨 가쁜 집필 작업이 없어지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침 기도 시간에 이전과 같은 기쁨과 확신에 찬 성령님의 응답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히려 머릿 속에는 자꾸만 소설 당선의 상금이 오락 가락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잡념들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먼저 응당 십일조부터 해야 할 것이고, 분명 하나님께서 부모님들도 책임지신다 하셨으니 부모님 부양비로 얼마를 떼어 놓자. 그리고 아내가 이전부터 말해 오던 대로 좋은 전자 오르간을 한 대 사서 중국으로 가지고 가자. 그러면 그녀의 마음도 어느 정도 위로 받겠지. 그래 틀림 없이 약속을 하셨으니, 아마 당선금을 통하여 내가 당면한 여러 가지 현실적 난관들을 한꺼번에 해결해 주실 것이다 등등....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와 같은 생각들이 한 번 머릿 속을 스치기 시작하자 불붙었던 중보 기도의 문이 막히기 시작하였고, 기쁨도 점차 사라지며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이었다. 며칠간을 그와 같은 상태로 보내던 중 나는 출애굽기에 연이어 읽기 시작한 레위기 말씀을 통하여 내가 쓴 소설 '아바'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지팡이일 뿐 아니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이 되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레위기 2장에서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라는 대목에서 문득 내가 드린 제물 속에 어느새 누룩이 들어가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매일 아침 레위기를 읽을 때마다 등장하는 흠 없는 수컷, 흠 없는 수양, 흠 없는 수송아지...들을 태워서 바치는 제사를 보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의 길이 얼마나 순결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깊이 깨달아 알게 되었다.

레위기 10장에서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분향하려던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멸망을 당하는 장면을 통해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생각하나 하나님께서 인정치 않는 제사도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나서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으로 받아 들였다. 11장에 이르러서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니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내시는 참 이유는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무슨 특별한 사명을 감당시키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죄 가운데 건지시어 구원에 이르게 하심으로 우리에게 참 하나님이 되시고자 하시는 가장 본질적인 목적이 있으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라고 엄숙하게 명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묵직하게 내 심령에 다가오자 결국 우리가 떠나는 이 길이야말로 내가 거룩하게 되기 위한 길임을 알게 되었다.

레위기 20장을 통과하면서,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로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는 말씀으로 다시 한 번 우리를 구별하여 불러내신 아버지의 뜻을 깨닫게 되면서 동시에 내가 얼마나 더럽고 추한 죄인인가를 절감하게 되었다. 그날은 그와 같은 상념 가운데 휩싸이며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감당치 못 하는 심정을 토해 내야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십자가 위에서 나를 굽어 보시는 예수님의 자애로운 얼굴이 떠올랐다.

제사장의 세족(1993년 11월 25일 아침 QT)

주여 저의 발을 씻겨 주옵소서
저의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 내어 주옵소서
주의 성소를 밟아 더럽힐까 두렵사오니
주여 저를 깨끗이 씻어 주옵소서

내 마음은 주가 거하는 성소
먼지 묻은 발자국으로 얼룩이 질 때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으로 가득 찰 때
예수님 수건을 두르시고 다가 오시네

그가 물을 받아 내 발을 씻기시네
주여 내 발을 씻기지 못 하시리이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주여 그리 하오면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이미 목욕한 자는 온 몸이 깨끗하느니라

나는 다시 성소로 들어가네
휘장을 젖히고 지성소로 들어가네
기다리시던 주님과 마주치네
보고픈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네

그 순간, 내 눈가엔 기쁨의 이슬
주님의 입가엔 수정 같은 웃음
주가 내 눈물을 닦아 주시면
내 입가에도 환한 웃음

(4)

내가 다시금 회개의 기도를 통해 회복되고 정결한 마음을 품기 시작한 후, '아바'를 통한 증거를 보고서 중국행을 결정짓겠다고 하던 아내에게 갑작스런 변화가 일어났다. 그 무렵 나는 아내 역시 매일 아침 기도로 매달리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중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 차리고 있었다. 아내의 힘들어하는 모습 속에서 그저 중보로써 말 없이 도우며 지나던 어느 날, 퇴근 후에 돌아와 보니 아내의 모습이 환하게 빛나며 광채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저녁 식사 후에 느닷 없이 아내가 웃으며 다가 앉더니 내게 줄 좋은 선물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어리둥절하며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아내는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으로 확실한 증거를 받았다며 중국으로 떠날 것을 순순히 제의하는 것이 아닌가?

아내는 물론 그 이후에도 여자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 앞에서 감정의 기복을 겪으면서 계속 힘들어하였지만, 한 번도 중국으로 떠나는 것에 대하여 철회하는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만큼 하나님은 아내에게도 철저히 역사하셨던 것이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우리 부부의 기도 가운데 같은 날 동시에 <믿음의 글들>을 출판하는 홍성사를 떠올려 주셨고 그것이 바로 소설 '아바'를 위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뜻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아내의 결단으로 한 고비를 넘기자 우리 부부는 이제 중국으로 떠나는 것을 기정 사실처럼 여기게 되어 버렸고, 그 다음 넘어야 할 고개인 교회와 부모님들을 향해 기도의 포문을 열기 시작하였다. 교회의 승낙을 받아 내기 위해서 한 달 이상을 기도로 준비한 후 편지를 보냈다. 처음에는 반주자로서 고등부 반사로 제각기 한 몫을 담당하던 일꾼들을 놓치는 아쉬움으로 목사님과 당회에서는 절대 반대 의사를 표하였다. 꼭 기독교 교육이 받은 소명이라면 곧 포항 근교에 개교하는 기독교 대학인 한동대학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시며 당장 한동대학의 지원서를 써 가지고 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우리 부부의 결심과 그 동안 함께 하신 하나님의 역사..., 때마침 소설 '아바'의 출간 소식 등과 더불어 결국 우리 부부의 중국행이 철저하게 계획된 하나님의 뜻임을 알아 차리고, 교회에서도 결국 허락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앙의 경륜이 짧은 양가의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은 더욱 난감한 일이었다. 내가 미국서 신앙 생활을 다시 시작한 이후, 거의 강제로 이끌다시피 하여 얼떨결에 교회 생활을 시작하신 본가의 부모님도 그럴 것이었지만, 더욱이 처가의 부모님은 아직 교회도 나가지 않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의 그 같은 결정을 양가에서 절대 받아 들이지 않으리라는 걱정이 앞섰고, 아마도 이 고비를 넘기기 위해서는 설득과 투쟁을 동반한 장기전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94년 구정을 기하여 단단히 마음의 무장을 하고 찾아간 양가의 부모님은 너무나 뜻밖에도 단번에 우리의 중국행을 허락하셨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일이라는 것을 느끼면서도 차를 몰고 포항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오히려 어리둥절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함께 자리를 같이 했던 동생들을 통하여 나중에 들어 알게 된 사실은, 양가의 부모님이 모두 내가 마치 그 동안의 닦아 왔던 전공을 모두 포기하고 신학으로 다시 인생을 시작하겠다는 선전 포고를 하러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에 싸인 추측들을 하고 계셨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중국 대학으로 간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안도하는 착각(?)을 하셨다는 것이었다. 미국서 돌아온 이후 내가 너무 교회 일에 빠진다고 내심 거리껴하던 그분들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자세한 진상을 파악하고 섣불리 허락한 것을 후회하기는 하였지만, 아무튼 부모님들의 눈을 살짝 감겨주신 일 조차도 하나님이 친히 하신 일이요 그 동안 우리 부부의 끈질긴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다는 것을 지금도 깊이 깨닫고 있다.

(5)

중국행을 결정하고 난 후, 비로소 사역지의 상황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도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고려하신 하나님의 세심하신 배려였다. 한국의 60년대에 해당한다는 말을 듣고 최소한 공해 없고 물 맑은 시골이 아니겠는가 하고 막연히 추측하던 중, 현지에서 잠시 귀국한 분의 보고를 들어보니 웬 걸..., 여름철에는 수시로 수돗물이 끊어져 고생하고 그나마 나오는 물은 뻘건 흙탕물이라는 이야기와 더불어 겨울철에는 섭씨 영하 25도의 맹추위와 온 도시를 자욱이 덮는 유연탄의 매연으로 시야를 가린다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그곳에서 고생할 아내와 아이의 가련한 모습이 떠올라 가슴을 솜뭉치로 틀어막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함께 떠나기로 결단한 아내야 어차피 자신의 믿음으로 극복해 나간다 치더라도 아무 것도 모르고 따라 나서야 하는 아이에게는 어떻게 설명을 한단 말인가? 막 학교에 입학하여 아름답게 단장된 아파트 단지를 누비며 활기 찬 생활을 하고 있는 철 모르는 7살짜리 아이에게 과연 부모의 이 같은 결정이 받아 들여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 후로 아이에게 가능한 한 중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넣어주기 위하여 만리 장성이 그려진 그림 화보를 보여 주기도 하고, 중국이라는 큰 나라에 대하여 동경심을 가질 수 있도록 아이에게 최대한의 과장된(?) 설명을 하곤 하였다. 그러나 이상한 일은, 평소에 쾌활하고 말이 많던 아이가 중국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일체 입을 열지 않는 것이었다. 아이에게 충격을 줄까 보아 중국행에 관한 일은 일체 비밀로 붙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우리 부부 사이의 대화들을 조금씩 엿들어 분위기를 짐작하고 있었던지..., 미루어 짐작컨대 그 무렵 부모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통하여 어느 정도 눈치를 채어 가고 있던 아이는 혼자만의 두려움과 고민에 싸여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주일 예배가 끝난 후, 교회의 담당 장로님이 다가오면서 마침내 우리 가족의 중국행을 둘러싼 이야기를 했다. 바로 옆에서 듣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아빠, 정말 우리 중국으로 가는 거야? 난 안 갈래...." 하며 얼굴이 하얗게 되어 울음 섞인 목소리로 뒷걸음질을 치더니 돌아서서 찻길을 향해 막무가내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순간 나는 너무나 당황하여 아이를 붙잡으려고 내쳐 달려가 손목을 낚아챘다. 울먹이는 아이를 겨우 끌고 와서 차에 밀어 넣고 무작정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살아온 동안 그때처럼 당황했던 적이 없었다고 회고될 만큼 그 순간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아이 앞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은 특별히 우리 아이가 평소에 아빠인 나에 대하여 절대적인 신뢰감을 보여 왔으며 한 번도 그 아이가 내게서 도망치는 것을 상상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운전을 하는 동안 줄곧 입술이 바싹 말라 오고 온 몸에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뒤를 힐끗 돌아보니 아이는 물기 있는 눈을 껌뻑이며 달리는 차창 밖의 거리를 처량하게 내다보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 침대 머리에 앉혀 놓았다. 어떻게든 잘 설득해야겠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훌쩍이는 아이는 완강히 고개를 내저으며 좀체 마음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눈 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무작정 아이의 손을 붙들고 큰 소리로 외치며 기도를 시작했다. 내가 무엇이라 기도했는지 잘 떠오르지도 않지만 그저 성령께서 아이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만을 눈물로써 매달려 간구했던 것 같다. 아멘, 하고 기도를 마치자 아이가 따라서 작은 목소리로 아멘을 하였다. 한참 만에 눈을 떠보니 아이의 얼굴이 아까보다 훨씬 평안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기도하는 아빠의 얼굴을 바라보며 아이는 줄곧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침묵이 잠시 흐른 후에 아이가 말했다. "아빠, 그럼 우리 꼭 다시 돌아올 거지?" 나는 아이를 품 속에 깊이 껴 안았다. 그 순간 위로의 성령께서 우리 두 사람을 어디론가 사정 없이 휘몰아 가시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식을 허락하신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타락한 아담과 하와에게 여자의 후손을 통해 구원이 임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희망의 불씨로서 자식을 고대하게 한 이후로 자식은 모든 이에게 구원을 향한 통로가 되어왔다. 자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할 뿐 아니라 자식이 받는 고통을 바라보는 아픔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는 그분의 마음을 이해한다. 이 고통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그분이 치밀하게 계획하신 것이며 갈보리 십자가 상에서 그 절정이 되어 나타났던 것이다. 우리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를 중국으로 보내실 때 겪게 하신 이 모든 일들조차도 처음부터 하나님이 친히 계획하신 일이었다고 지금도 우리는 알고 있다. 바로 이 체험과 믿음이 우리를 중국 생활의 어려운 고비 고비에서 지켜 주었다. 직장 선후배들의 반대와 교회 어른들의 반대들(대부분 우리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들이었지만....), 더러는 믿는 분들 가운데도 "아니 당신 나이가 몇인데, 지금 직장을 그만 둔단 말이야? 노후 대책을 생각해야지?"하며 극구 말리던 분들의 얼굴이 생각난다. 생각하면 할 수록 우리 힘으로는 불가능했던 일들을 하나님께서 하게 하셨고, 마침내 홍해를 건너게 하셨다. 비록 우리는 연약했지만 우리 가족의 걸음 걸음을 함께 동행하신 하나님과 그분이 준비해 주신 아바의 지팡이가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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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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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Vision에서는 부모를 잃고 버려진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세계 곳곳에서 사랑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이들의 부모가 되어 주었고 또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비록 그 아이들이 쓰레기더미 속에서 쓸만한 것을 찾아내는 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지만 그 속에서도 웃음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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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른들의 보살핌을 못 받고 본드를 흡입하며 길바닥에 뒹구는 아이들과, 보살핌을 받고 있는 이 아이들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차이는 어른들의 아주 작은 사랑이었습니다
주신 것에 감사(Thanks giving)하는 오늘의 삶에 추수 감사절을 맞아 Give thanks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못다한 말.
제가 캄보디아를 취재하기 얼마 전 베트남 비행기가 푸놈펜 인근에 추락했습니다. 그 비행기에는 우리나라 등 여러 나라의 선교사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세계의 언론들은 충격적인 현장 사진을 내보냈습니다. 아직도 연기가 나고 있는 비행기 잔해 위에서 사람들이 비를 맞으며 무언가 줍고 있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시체 더미를 헤치고 지갑을 꺼내고 반지와 시계를 빼는 장면 이였습니다. 그 기억 위에 킬링 필드의 현장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만난 캄보디아 사람들의 선하고 맑은 눈동자를 사진에 담으며 겪었던 제 마음의 갈등과 혼란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내가 캄보디아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양면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문제를 볼 수 있었습니다. 비를 맞으며 추락한 비행기의 잔해를 헤치고 다닌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나를 위해 모든 선한 일을 계획하시고 다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두 장의 사진을 더 찍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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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느 곳보다 사랑이 더욱 필요한 곳을 두 손으로 포근히 보담아 주시는 보이지 않는 손의 형상을 캄보디아 바탕방 하늘 크게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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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나머지 다른 사진도 얘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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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OSTA 인터뷰

장평훈 교수와의 대담

eKOSTA 장평훈 교수님은 코스타가 생성될 때부터 기여를 하신 코스탄의 원조이면서 거의 매년 빠지지 않고 코스타를 참석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코스타가 생성된 계기와 과정, 그리고 코스타에서 받으신 일반적인 은혜들을 좀 말씀해 주십시오.

장평훈 제가 이해하기로는, 코스타가 처음에 시작되었던 계기는 이렇습니다. 그 당시, 미국 워싱턴 DC, 보스턴, 그리고 Triangle Area(North Carolina), 이렇게 세 지역의 성경공부 모임이 굉장히 좋고 효과적이었어요. 이 모임들을 직접, 간접적으로 가르치시던 홍정길 목사님과 이동원 목사님께서 지역적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한 번 모아서 해 보자 해서 코스타가 출발을 하게 되었어요. 그 당시 보스톤 지역에서 모였던 성경공부 모임이 Gate Bible Study이었고, 저도 그 모임에 속했던 지라 그 때부터 자연스럽게 관여하게 되었고, 그 다음에 87년도에 졸업을 한 다음에 88년부터 강사로 오게 되었어요. 그 뒤부터는 가기 싫을 때는 홍 목사님에게 끌려서 오고 (웃음) 어떤 때는 제가 좋아서 오고, 아마 제 기억에는 한 해 빠지고 계속 오게 되었던 것 같아요.

코스타가 늘 6월말이나 7월초에 하게 되니까, 1학기 마칠 때쯤 되는데, 그 시기는 늘 할 일들이 많이 밀려 있고 해서 올 때마다 갈등하곤 합니다. 그래도 이기고 코스타에 오면, 늘 영적으로 풍성해지고 또 공급을 많이 받으니까, 그게 제 자신의 삶에 있어서 한 학기를 마무리하고, 또 다가올 한 학기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참 중요한 도움이 되곤 했었지요. 그리고 학생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 우리에게 보람이 되고 그런 은혜 가운데서 이렇게 참석하게 되었어요.

eKOSTA 코스타를 첫 해부터 참석하셨는데요, 16년 동안 코스타가 많은 발전과 변화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코스타가 어떤 경향으로 발전되어 왔고, 그 변화 과정이 어떠했으며, 그 중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겪었던 해나 사건이 있었다면 회상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장평훈 벌써 16년이 되었군요(웃음). 출발할 때는 약 250명이 모였는데, 주로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모였던 것 같아요. 정말 여러 가지로 찌드러진 상태에서 마음도 많이 상해 있어서, 그야말로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모인 셈이었지요. 그래서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은혜가 참 컸던 것 같아요. 그리고 코스타에 참석하는 강사님들도, 이 모임에서 물질적으로 뭐 얻을 것은 없고 오히려 퍼 줘야 되는 입장이었는지라, 오히려 정말 마음(Heart)이 있는 분들만 오실 수 있었지요. 그래서 강사님들과 학생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모임을 했던 것은 지금도 잘 잊혀지지 않아요. 그때는 집회의 노우하우(know-how)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왔다 갔다 하며 엉성하기만 했지요. 그후에 세월이 지나고 횟수가 반복될 수록 계속해서 사람들이 늘고, 그 다음에 강사들도 많아지고, 더불어 세미나도 많아지는 등 내용이 풍성해졌는데, 그러다 보니까 어떤 모임이나 다 그렇듯이 초기의 '진함'이 희석이 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 좀 있어요.

코스타가 크게 변화되었던 계기가 글쎄요, 노태우 대통령이 1987년 6.29 선언을 할 때 코스타가 바로 직전에 모였었습니다. 그때 조국을 위해 무척 기도했어요. 온통 울음 바다가 될 정도로 열심히 기도했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했다고 저는 믿고 있지요. 민족과 국가의 장래에 대해서 진정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민족과 국가를 하나님께 들어 올린다는 코스타의 정체성(identity)를 찾았던 그것이 기억에 새로와요. 나머지는 꾸준히 매년 주제를 달리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것 같아요. 초기의 코스타 정신(Spirit)을 되찾는데 있어서 올해의 '낮아지신 그리스도, 섬기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가 참 적절한 것 같아요.

eKOSTA 코스타가 16년이나 되었는데, 코스타 출신들이 한국 사회와 교회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하십니까? 아직 가시적인 영향이 별로 없어서 인지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와 교회에 대한 코스타의 영향이 없었다"고 까지 평가하기도 하는 것 같은데, 교수님은 코스탄들의 한국 사회와 한국 교회에 대한 영향력들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지요?

장평훈 제 생각에는 코스탄들이 코스탄이란 이름을 가지고 한국 사회와 교회에 무엇을 했던 것은 별로 없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다만 코스타에 와서 많은 동기부여를 받고, 삶의 태도가 달라졌다면, 그 만큼 한국으로 돌아가서 기여(contribution)를 하지 않겠느냐는 다소 막연한 기대는 가져 왔던 것 같아요. 그러나 솔직히 이 점에 대해서는 마음에 부담을 많이 가지고 있고, 또한 코스타가 정말 개선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점이기도 합니다.

글쎄 어떻게 구현(implement)해야 될 지는 모르겠지만, 코스탄들이 이곳에서 동기부여를 받고 새롭게 도전(challenge) 받았던 일들을 지속적으로 이룰 수 있는 네트워킹(networking)이라든지, 교제(fellowship)라든지, 이런 것들이 어떤 형태로든지 좀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이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여기서 받은 충격(impact)이라는 것이 상당히 역동적(dynamic)이기 때문에, 한국에 갔을 때 그곳에서 좀 좋은 영적인 기반이 마련이 되어 있지 않으면, 여기서의 귀한 도전이 별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어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게 된다고 봅니다. 이런 면에서 코스타가 보완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eKOSTA 그러한 일환으로 작년부터 eKOSTA와 tmKOSTA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좋은 동기로 시작되어졌지만 아직은 시작 단계라서 자리 매김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데,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eKOSTA와 tmKOSTA의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과 자리 매김과, 그리고 한계나 주의할 점 등을 좀 말씀해 주십시오.

장평훈 아, eKOSTA참 좋아요, tmKOSTA도 그렇구요. 우리는 미주 코스타가 '7월초 시카고 휘튼'이라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 진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 들입니다. 그런데 생각을 조금 바꾸어서, 7월초 시카고 휘튼에서 이루어지는 코스타는 코스타 lifestyle의 initiation 정도로 생각하고, 그 후에 eKOSTA나 tmKOSTA를 통해서 매일의 삶 속에서 코스타 집회를 한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코스타 집회를 연중 내내 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것이 가능해지도록 eKOSTA나 tmKOSTA는 '반드시'(definitely) 계속해서 활성화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피드백(feedback)을 하고 나눔(sharing)이 이루어지고 좋은 사람들이 발굴이 되기도 하고, 가상공간(cyberspace)이긴 하지만 거기서 교제(fellowship)가 이루어짐으로써, 코스타가 일회성 집회가 아니라 이제는 만남의 장이 되고 네트워킹(networking)이 되는데 기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훌륭하잖아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으면 좋겠다 싶구요. 또 하나 바램은 한국에도 이코스타가 더 잘 알려졌으면 하는 것인데, 현재 한국의 코스타 출신들은 eKOSTA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러니 코스타 출신들에게 여기 있을 때부터 eKOSTA가 많이 알려지고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늘 이곳을 확인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네트워킹(networking) 등 많은 문제들이 상당 부분 해결된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이제는 화제를 좀 바꾸어서, 교수님께서는 신앙과 학문을 잘 조화시킨, 우리 유학생들로서는 귀한 본이 된다고 생각이 되는데요, 어떻게 기독 신자로서 또 동시에 연구와 학문을 하는 대학 교수로서 신앙과 학문을 통합하고 관련지어서 하고 계신가요?

장평훈 전공을 하면서 학문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하고 있는 전공이 좀 더 가시적으로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바램이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연구를 하면서도, '나의 연구 분야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하는 바램이 있어요. 마치 의사들이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듯이 말이지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인 학문을 통해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실천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죠. 그래서 최근에 하는 일은 수족을 못 쓰는 장애인들을 도와 주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고, 또 화재가 났을 때 사람을 구하고 화재 진압을 하는 로봇을 개발하는 등 인간 복지와 관련되는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또 '잘 찾아보면 학문과 관련된 일에 이런 것이 있을 수도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지요.

eKOSTA 올해 코스타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이 장평훈 교수님이세요, 아니면 목사님이세요? 하며 질문할 정도로 너무도 귀한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현재 사람들이 많이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교수 생활하기도 바쁜데,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목사님이나 사역자들도 하기 힘든 주제 성경공부를 어떻게 이렇게 삶의 깊은 곳에서 우러 나오는, 충실한 주제 강의를 하실 수 있었는지, 이코스타 독자들에게 그 비결을 좀 공개해 주시지요.

장평훈 우선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알게 된 것은 '모든 학문은 통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경공부를 하는 일이나, 연구를 하는 일이나 다 통하는 것 같아요. 그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면, 연구를 함으로써 성경공부를 하는데 필요한 'skill'을 정진시킬 수 있고, 또 성경공부를 하면서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방법을 개발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로 시너지(synergy)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어요. 이런 효과를 개인적으로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은혜를 새삼스럽게 느끼는 때가 많아요.

목사님들이 종종 신학을 했느냐고 물으시는데, 저는 그런 말 듣기가 미안할 정도로 신학은 한 적이 없어요. 생각해 보건대, 아마 유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성경공부를 해 왔던 것들이 쌓인 결과라고 봅니다. 그냥, 함께 말씀 나누고 또 삶에 적용하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많이 이해하게 되었고, 또 궁금한 것이 있을 때 신학 서적도 찾아본 것들이 나름 대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무엇보다 평소에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암송하던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어요. 결국 하나님께서 베푸신 많은 은혜를 통하여 오늘 저의 모습이 된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학생 때에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삶에 잘 적용하면, 어느 시점에 충분히 자기 몫을 훌륭히 할 수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자꾸 많이 나와 주어야 한다고 저는 바라고 있어요. 사실 그것이 코스타를 통한 저의 아주 간절한 바램입니다.

eKOSTA 이번 코스타 주제 성경말씀을 위해서 어느 정도 준비하셨는지 말씀해 주시죠.

장평훈 이렇게 주 강사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마음에 부담이 되었고, 특히 이번의 주제(theme) 자체가 너무 소중하고 중요한 주제였기 때문에 그것이 나에게 큰 부담이 되었어요. 그리고 동시에 도전도 되기도 했구요. 그러면서 많이 기도하고 준비를 했습니다. 본문 자체는 늘 하던 대로여서 특별히 준비한 것이 없었는데, 강해 설교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노력을 더 많이 기울였습니다.

eKOSTA 이번 코스타가 어떻게 보면 주제도 그렇고, 평신도나 학생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던 점에서 전환점의 한 계기나 새로운 시작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번 코스타를 계기로 앞으로 코스타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주의할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장평훈 작년 코스타까지는 참석 인원들이 눈에 띄게 증가해왔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코스타가 좋다니까 한 번 가보자'라고 마지막 순간에 충동적으로 결정해서 온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이 또 집회 분위기라든지 이런 것에 여러 가지 영향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코스타는 그런 사람들도 다 수용하고 포용해야겠지만, 그래도 준비된 마음이 있는 곳에 은혜가 크겠다 싶어, 좀 더 준비된 마음으로 왔으면 하는 것이 아쉬운 점이었어요.

어느 자매가 한 이야기처럼 이번 코스타가 여러 가지 면에서 거품이 빠졌다 하는 얘기가 정말로 맞는 것 같고, 그래서 준비된 사람들이 준비된 심령으로 왔던 것이 두드러진 것 같아요. 올해 주제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자"라는 주제인 것 같아서, 이번 코스타를 통하여 다시 한 번 거품이 빠지고 생각도 다시 한 번 해 보고,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 모임을 통해서 무엇을 이루시기 원하는가를 좀 민감(sensitive)하게 들을 수 있는 계기가 아닌가 생각되어집니다.

eKOSTA 교수님께서 살아 오시면서 많이 영향력을 받은 사람들, 현재 살아 계신 분도 괜찮고, 과거의 역사적 인물도 괜찮으니 저희 독자들에게 나눠 주시죠.

장평훈 세 사람을 들고 싶은데 첫째는 홍정길 목사님인데, 그분이 하나님 사랑하는 자세, 그리고 자기의 의지를 쳐서 복종시키는 그 태도, 그 다음에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 그것이 나한테는 좋은 귀감(role model)이 되었어요. 끊임 없이 좋은 교제를 가지면서 격려를 받았던 것이 오늘날 제가 서게 되는 데 큰 힘이 되었어요.

또 한 분은 김인수 장로님인데, 역시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시고, 표 안 나게 계속 신경 써 주시고, 또 평신도로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 가시는 모습이 많은 도전이 되었어요. 또 저와 같이 교직을 갖고 계시니까 계속 쳐다보게 되는데, 그 어른을 생각할 때마다 늘 그분에게 못 미친다고 생각하게 되어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한편, 사표로서 바라볼 분이 주위에 계신다는 점이 나에게는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또 한 분은 존 스토트 목사님인데요. 그분은 글을 통해서 나한테 스승이 되었어요. 그분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한테는 굉장히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그 분이 얘기했던 내용은 때때로 기억하지 못 할지라도, 그분이 주님을 사랑하고 성경을 사랑하는 태도는 많이 배운 것 같고, 그 다음에 객관성과 정확성을 가지고 성경에 접근하는 자세가 적지 않게 영향을 준 것 같아요.

eKOSTA 또한 교수님에게 영향력을 많이 끼친 책을 좀 소개해 주십시오.

장평훈 두 권의 책을 얘기하고 싶은데, 역시 존 스토트 목사님의 책, 뭐 그분 책은 뭐든지 다 좋은 것 같아요. 이를 테면 <기독교의 기본진리>(Basic Christianity), 그 다음에 이번 코스타에서도 소개된 <예수님의 십자가>(The Cross of Christ), 그 두 권, 아, 그리고 로마서 강해 이 세 권은 참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의 <산상수훈> 그 책은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리고 고든 맥도날드의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그리고 자꾸 생각이 나는데....

eKOSTA 많이 소개해 주시면 더 좋죠.

장평훈 J.I. Packer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Knowing God), 리차드 포스터(Richard Foster)의 <영적 훈련과 성장>(Celebration of Spiritual Discipline) 등이지요. 그리고 꼭 권하고 싶은 책은 M. Adler의 <How to Read a Book>인데, 이 책이 없었다면 이번 본문 강해는 불가능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성경본문을 이해하는 데 있어 이 책보다 더 도움이 되는 책을 아직 보지 못했어요.

eKOSTA 교수님은 원서로 읽으시나봐요.

장평훈 예 그렇습니다. 그때는 번역이 안 된 책도 있고 해서 영어로 읽기 시작했었는데, 그 때문에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어요. 신학서적의 영어가 만만치 않은데, 정말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읽다 보니까 영어가 늘더라구요.

eKOSTA 끝으로 이코스타 독자들을 위해서, 유학 생활 선배로서 유학 생활에서 신앙과 학문을 함께 해 나가야 되는 점에서 학문을 하시는 신앙 선배로서 조언과 충고를 부탁드립니다.

장평훈 역시 순수성과 그 다음에 균형성, 그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어요. 순수성에 대해서 말하자면, 삶의 문제에 있어서 불순물들, 즉 허영심, 자긍심, 탐심, 성적인 문제들을 발견하는 대로 빨리 빨리 제거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그 다음에는 균형성인데, (신앙 공동체와 관련된) 신앙 생활도 열심히 할 뿐 아니라, 가정 생활, 사회 생활, 그리고 학문도 열심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도 성서적인 방법이 있는 것 같아요. 정확성과 정직성, 그런 것이 학문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학문을 하는 데도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나름 대로의 좋은 모델을 개발해 나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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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사역 Q&A

십일조는 꼭 지역 교회에 바쳐야 합니까?

모세의 율법 이전에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왕에게 자신이 전쟁에서 탈취한 재물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으로 성경 안에서의 십일조의 역사는 시작됩니다(창14:18-24). 야곱도 역시 벧엘에서 돌단을 쌓으면서 십일조를 바치겠다고 언약하는 장면을 창세기에서 볼수 있습니다(창28:20).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고대 문명에서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었음을 이런 믿음의 조상들의 행동을 통해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에 관한 유래나 특히 제사와의 관계에 관한 측면에 대하여는 정경 외의 전문 지식이 없으므로 이곳에서는 성경에 나와 있는 십일조에 관한 내용 가운데 핵심적인 부문 몇 가지만 살펴 보겠습니다.

우리는 모세의 율법에서야 비로소 십일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매년 십일조를 바치고, 그 바친 십일조를 하나님께서 정하시는 장소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기쁨으로 먹으라고 하십니다 - 희생 제사 식사(신14:22-27). 동시에 함께 유하는 레위인들, 곧 기업을 따로 받지 못한 사람들을 잊지 말라고 하는데, 이런 행위는 하나님 경외함을 배우기 위함이라고 하십니다. 또한 매 3년마다 각 성에 십일조를 쌓아 두어 레위인이나 고아와 과부들과 같은, 자기 몫을 생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충만히 먹을 수 있도록 하라고 하십니다(신14:28-29). 그러면서 레위인들에게는 하나님이 그들의 기업이 되기 때문에 앞에서 언급한 대로 나머지 11개 지파가 하나님께 바치는 십일조를 가지고 살라고 하십니다(민18:20-29) . 그것은 그들의 노동, 곧 하나님의 제사를 수행하는 일에 대한 대가입니다. 특히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에는 매 3년마다 바쳐야 하는 십일조에 대하여만 언급하고 있습니다(신26:12-15). 그런 후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하여 하나님을 멀리함과 동시에 십일조에 대한 언급이 없다가 히스기아왕 때에 잠시나마 다시 부활됩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총 유동적 재산의 십일조를 드린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대하31:2-8).

그런데 (위에서 보았듯이) 십일조에 관하여는 두 가지 불확실한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 십일조를 매년 드리는 것인지, 매 3년마다 드리는 것인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특히 히스기아왕 이후 바벨론에서 돌아왔을 때 느혜미야는 십일조를 매년 바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봅니다(느10:35-39). 반면 아모스는 3년에 한 번 드리는 십일조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습니다(암4:4). 둘째는 십일조의 용도에 관한 문제입니다. 십일조는 확실하게 하나님께 바친 이후 레위인, 과부, 고아 및 체류인들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음을 성경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십일조를 바친 사람까지도 자신의 십일조를 하나님 앞에서 함께 즐기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여러 그룹들 간의 분배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특히 사무엘상에 보면 이스라엘 왕을 세울 경우 십일조가 왕에게 바쳐지게 될 것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삼상 8:15-2). 오늘날과 비교하면 이는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세금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레위인들에게 주게 되어 있던 십일조의 일부도 그들의 수고에 대한 대가, 즉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대한 대가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도 동일한 개념입니다(고전 9:3-5). 십일조는 또한 생활의 부족함이 있는 자들을 위함임도 분명합니다. 단, 이때의 부족함이란 자신의 게으름이나 잘못으로 인한 부족함이 아닌 경우에만 해당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신약으로 오면서 십일조의 참된 개념이 점진적으로 형성되어지는데, 이는 곧 청지기의 개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타락한 유대교의 십일조에 대한 관행을 모델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지도층은, 그것이 종교이든 정치이든 관계 없이, 모든 것을 자신들의 유익을 위하여 해석하고 집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일조의 중요성 그 자체를 강조하기 보다는 율법의 참된 의미에 대한 이해와 그 실천을 강조하시며 십일조를 그런 테두리 안에서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마23:23-24). 이는 말라기에서 말하는 온전한 십일조를 더욱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말3:8-12). 십일조는 단순한 물질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올바로 관리해야 하는 "책임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그 물질의 "주인"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에게 맡겨지는 물질을 잘 관리하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십분의 일을 구분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가장 기본적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는 십분의 일을 바치는 단계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참된 청지기는 자기에게 주어지는 것이 많든 적든 자신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만 쓰고 나머지는 주인의 것으로 계속 간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부를 율법적으로 십일조를 제외한 후 다 자신을 위하여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율법의 참된 의미를 상실한, 마치 타락한 유대교의 관례와 같은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제외한 나머지도 다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을 위하여 쓰여져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과 "하나님을 위하여 쓴다"는 의미는 동일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은 또한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과 "이웃을 위하여" 사용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십분의 일을 의미하기보다는 수익의 십분의 일 "이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십일조가 매년 혹은 매 3년마다 바쳐져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은 이제 더 이상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은 복음이 전파되어 제자들이 양육되는 일입니다. 이를 통하여 정의가 실현되고 진실이 인정 받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사회 안에서도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이웃을 위하여 십일조를 사용한다는 뜻은 구약에서 수 차례 언급된 것처럼 자신의 능력의 부족으로 생활이 되지 않는 사람들(예를 들어 고아와 과부들)과 또 세상적으로 금전적 보수가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만 전념하는 사람들(목회자, 선교사, 선교단체의 간사 등)을 위하여 사용하라는 뜻 입니다.

지역 교회가 참된 교회의 역할을 수행한다면 십일조를 교회에 내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결국 십일조를 사용할 가능성이 항상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역 교회가 참된 교회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지역 교회가 참된 교회의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십일조를 자신이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바쳐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개인적으로 아는 선교사를 지원한다든지, 캠퍼스 간사나 주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한다든지, 아니면 자신의 선교 사업에 사용하는 것도 다 합당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자신이 속해 있는 지역 교회의 유지를 위하여도 기본적인 물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만약 기본적 유지도 힘든 경우라면 우선적으로 지역 교회에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역 교회는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 생활을 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기본이 되는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지역 교회에 십일조를 드리고 그 지역 교회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든지 관계하지 않는다면 이는 무책임한 신앙관입니다. 교회는 바로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로 교회의 지체 입니다. 예수님께서 "머리"이시고 우리가 각 "마디 마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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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종 교수의 문화 탐구

'테러리즘' 다시 보기

오늘 텔레비전 뉴스는 뉴욕 세계무역센터(WTC) 빌딩 붕괴 현장에서 열린 '9.11 테러’희생자 추도식을 보여 주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슬픔을 가누지 못했고 그 장면을 보는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제는 빌딩 피폭시 현장에 출동했던 911 소방대원의 생전의 모습들이 하나씩 소개되고 있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 그것도 예고 없이 죽는다는 것은 가족은 물론 그를 알았던 주위 사람들을 참으로 황망하게 한다. 911 테러로 죽은 사람들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슴 아픈 사연을 가졌을까 생각하면 다시금 가슴이 아려온다. 그런데 오늘 텔레비전을 보다가 나는 아프가니스탄의 파괴 현장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가슴 아픈 사연들이 있겠다 싶어졌다. 그러다가 미국 사람의 슬픔은 크고 애절한 반면, 사막의 한가운데서 먼지더미에 파묻혀 버린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에는 무감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내게 미국인은 나와 같은 사람 같고 그래서 그들의 슬픔은 쉽게 동감이 되면서도, 왜 아프간이나 아랍 사람들의 슬픔은 가슴에 와 닿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가 세상을 미국의 눈으로 보고 미국의 입장에서 보아 온 것은 자그마치 50여 년에 이른다. 그 동안 미국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혈맹이어서 그들의 이야기는 어떤 의심조차 없이 당연히 받아들여 온 것 같다. 더구나 세계인의 눈과 귀가 되는 언론의 대부분을 미국인이 차지하고 있어 미국의 눈과 입이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911 사태만 하더라도 우리는 미국의 CNN을 통해 테러의 잔인함에 분노하고 슬퍼했으며 아랍인에 대한 맹목적 적개심을 키워왔던 것 같다. 왜 테러가 일어났는지, 아랍인들은 왜 그토록 미국에 분노하는지를 냉철하게 따져볼 겨를도 없이 그저 흥분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우리는 다른 세계, 다른 시각을 만날 수 있다. 주지하듯 테러리즘은 폭탄을 지고 적진으로 뛰어드는 무모한 살상행위 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글자 그대로 '이즘', 즉 '주의'이다. 가령 우리가 맑시즘이나, 휴머니즘, 시오니즘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테러리즘은 양심이나 신념에 기초하여 나름 대로의 정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무슬림들이 선택한 삶과 저항의 방식인 것이다.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테러리즘은 이슬람이란 종교와 자기 희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정신은 오히려 성결하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왜 아랍인들은 테러리즘을 선택할 수 밖에 없게 되었을까. 그것은 서구 세계에 의한 오랜 식민의 경험과 최근 한 세기 동안의 미국에 대한 적대감의 누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아랍계 내부의 경제적 빈곤과 좌절도 커다란 몫을 했다. 유럽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는 이슬람인을 동물 취급하며 적대적으로 대했으며 미국은 자신의 이익 때문에 아랍을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여기지만 이슬람 종교와 문화, 사람은 존중하지 않았다. 미국은 자유와 인권을 내걸었지만 중동의 부패한 독재 정권을 지지하고 민중을 외면했으며,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부패한 정권을 지지하고 군대까지 보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에서 미국은 항상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의 편을 들었으며 아랍의 이익에는 관심조차 없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미국이 테러리즘의 공격 대상이 된 것이다. 미국은 자꾸만 테러리즘을 문화적 충돌이나 종교적 전쟁이 아니라 빈 라덴 등 극소수 테러 조직의 무력 행위로 축소시키려 하지만 실제 전쟁은 이슬람과의 전쟁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그것은 테러리즘의 근본을 애써 주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성전(지하드)을 준비하고 전사를 모으는 일에는 수 백 수 천의 젊은이들이 줄을 선다고 한다. 어제는 1만 여 명의 파키스탄 의용군이 소총과 흉기를 들고 아프간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형제 자매가 죽어가는데 우리가 몰라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테러리즘의 실체가 있다.

신앙과 민족과 적개심에 뿌리를 둔 테러리즘을 군사적 보복 공격으로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사 빈 라덴이 사라진다 해도 그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이 끝도 없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이 행사하고 있는 또 다른 폭력은 테러를 더욱 부추길 뿐이다. 테러리즘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배양한 문제 상황을 어떻게든지 개선해야 한다. 911 사태는 수많은 무고한 희생자를 통해 미국에 보낸 경고의 메시지이다. 거대한 제국, 미국이 제3세계 민족들의 권리와 생명을 함부로 유린해온 폭력과 억압의 체제를 청산하라는 것이다. 911 사태를 통해서도 그 메시지가 아직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면 언제까지 테러가 계속될지 모른다. 테러리즘은 단순히 누구를 죽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지는 테러 행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테러리즘의 배후에는 이슬람 민중의 절박한 생존 현실이 놓여 있는 것이다. 자살 테러를 재미 삼아 하는 사람은 결코 없다. 하긴 누가 전쟁을 원하며 죽음를 바라겠는가. 살고 싶은 욕망, 가족과 평화롭게 지내고 싶은 욕망은 인간의 근본 의식이 아닌가.

지금 세계는 전쟁 중이지만 우리조차 전쟁을 바라 보거나 즐기고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아야 할 때다. 나의 일이 아니라고, 이 땅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고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텔레비전을 보고 있지는 않는지. 파괴의 현장에서 불안에 떨고 굶주리며 스러져 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가 귀한 생명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가. 기독교인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아랍인을 적대시하고 미국을 편들고 이스라엘을 지지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어떤 종교를 가졌다 하더라도 그를 받아 들이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미국과 우리가 배워야 할 것도 바로 이러한 '공존'의 방법이다. 전쟁이 신념을 포기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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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01 02:00 기독교적 세계관

세계관과 인간이해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의 기초 (3)

1. 문화와 세계관
2. 세계관이란?
3. "문화화(enculturation)" 과정과 세계관의 형성

4. 세계관의 역학적 기능

이번 호에서는 이제 "문화화" 과정을 통하여 형성된 세계관이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사고 속에서 어떻게 역학적으로 기능을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용어들과 개념들이 중요한 것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분석하는 데에 필요한 도구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기본적인 용어들을 독자들이 잘 익혀 두었으면 한다.

세계관은 문화의 심층 구조에 해당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다분히 무의식적인 정신 세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철학적이나 역사학적 세계관과 달리, 우리가 여기서 말하는 세계관은 어느 사회든지 나름대로 공유하고 있는 "집단 지식"이라 말할 수 있다. 이미 앞에서 말한 대로 이러한 지식들은 구태여 증명할 필요 없이 당연히 믿고 있는 지식들이며, 모든 종류의 사회적 삶은 이러한 지식이 전제된 상태에서 영위되는 것이다. 곧, 지난 호에서 언급한 바 있는 세 가지 주요 내용들, 즉 믿음/전제(前提)들(beliefs/assumptions), 가치들(values), 그리고 충성/헌신(allegiance /commitment) 등이 세계관의 내용이 된다. 이 구분은 Fuller 대학의 Kraft 교수의 것인데 이러한 세 가지의 구분은 인간 "지, 정, 의"의 인격 부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전제들이 주로 문화적인 지식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가치들의 부분은 사람의 감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충성 내지 헌신은 인간의 의지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 가지 세계관의 요소들은 따로 독립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인간의 한 인격 속에서 서로 섞여서 동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을 좀 더 설명해 보자.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배운 대로, 즉 "문화화"된 대로 믿는데, 이러한 믿음들을 우리는 "전제(assumption)"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전제들을 기초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전제들에는 이성적인 앎과 감성적인 느낌이 함께 포함된다. 문화화 과정을 통하여 사람들이 얻게 되는 지식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뿐만 아니라 어떻게 느낄 것인가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어떤 것이 바람직하고 어떤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를 배우게 되는데, 이때 바람직한 것들에 대하여서는 좋은 감정을 갖게 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서는 좋지 않은 감정들을 갖게 되는 것까지도 배움, 즉 문화화의 결과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물들 혹은 사건들에 대한 이해는 그 인식의 대상에 대한 감정을 동시에 수반하게 된다. 이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그들의 가치 기준에 근거하여 그 나름대로 선과 악을 분류하고 대부분 선이라고 믿는 바들을 추구한다. 이렇게 자신들이 믿는 중요한 가치들 혹은 선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동원하게 되어 있는데, 이러한 인간의 사고 역시 세계관 전제의 한 부분이다. 이것을 Kraft 교수는 "충성" 혹은 "헌신"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즉, 충성의 대상이 무엇인지 역시 문화화 과정을 통하여 배우게 되며, 그 대상들을 사람들은 은연 중에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식과 감정과 의지가 인간의 내면 속에서 함께 가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동안 우리는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분리하여 생각해 온 경향이 크다. 특별히 지성과 감성은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여겨졌는데, 이러한 경향은 지난 약 이 백년 동안 서구 사회에 편만하였던 서구의 세계관의 영향에 기인한다. 18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19세기에 한창 꽃을 피우고 20세기의 서구 정신의 기초가 되었던 실증주의 내지 과학 지상주의는 인간의 이성을 지나치게 우상화시켜 버렸다. 심지어 기독교인들조차도 인간의 이성을 절대화시키는 듯한 경향을 보였는데,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감성과 직관의 부분들을 소홀히 하고 인간의 이성을 현실 검증의 유일한 도구처럼 여기게 되었다. 그 결과 서구, 특별히 유럽의 여러 교회 전통들은 성경을 인간의 이성이라는 권위 아래로 전락시키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19-20세기 서구인들의 생각을 지배하였던 "이성주의"의 세계관은 사람들로 하여금 은근히 감정을 무시하거나 감성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감정의 영역은 무시하거나 외면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감정은 지식의 동반자라고 나는 주장한다. 이성으로 판단한 지식 곁에는 그 지식에 대한 느낌이, 자신이 알든지 모르든지 간에 함께 있는 것을 우리는 눈치채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갑돌이라는 사람이 어떤 개를 바라보면서 이 짐승이 개라는 사실만을 알거나 그 개에 대한 실존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갑돌이는 개를 바라보면서 어떤 애정을 갖게 되는데, 그 특정한 개를 기억함과 동시에 그 개에 대한 감정도 갖게 되고, 그 개에 대한 객체 인식과 함께 감정도 기억하게 된다. 반면, 무슬림들이나 아프리카의 유목인들에게 개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어 보라. 그들에게 개란 동물은 그리 애정을 줄 만한 존재가 아니다. 개는 매우 천한 존재이다. 그래서 이방인이나 다른 사람들을 욕할 때에 그들은 개를 들먹인다. 이것은 개에 대한 그들의 이해가 다른 것을 보여 준다. 똑같은 대상이지만 갑돌이라는 사람의 문화권과 무슬림들의 문화권의 해석이 전혀 다른 것이다. 이러한 사물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다름으로 해서 그 사물에 대한 감정도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사회의 세계관을 이야기할 때에 그 사회 구성원들이 주변 환경(자연 환경, 사회적 환경, 영적 환경)들에 대하여 어떤 감정을 갖는가하는 것을 조사하는 것 역시 그 사회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이러한 감정은 문화화 과정을 통하여 후세에게 전수된다. 즉, 어떻게 감정을 가져야 하는가 까지도 배우게 되며, 이것은 습관이 되어 자신의 감정의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면, 각 문화권의 유머를 말할 수 있다. 아무리 미국에서 오래 살고 영어를 잘 하는 한국인이라 하더라도, 미국의 백인들과 같이 어려서부터 성장하지 (즉 문화화되지) 않았다면, 미국 백인들이 박장대소하는 그들의 유머의 감정을 느낄 수 없다. 무슨 뜻인지 알기는 알지만, 느낌은 전달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관이라고 하는 것은 한 공동체가 - 이 공동체는 거의 항상 혈연 공동체가 기본인데 - 공유하는 지식들과 느낌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좋다고 믿어지는 것들, 가치가 높이 평가되는 것들에 대해서 사람들이 헌신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획득하였을 때에 사람들은 기뻐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있는 지식들과 가치들, 그리고 헌신의 대상들을 늘 전제하며 살아 가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전제들의 내용에 도전이 오게 되면, 사람들은 혼돈에 빠지거나 화를 내게 된다. 만일 외부인이 들어와서 그 동안 전통적으로 믿어온 전제들과 가치들과 충성의 대상들이 틀렸다고 한다면, 그 외부인은 그 지역에서 추방 당하거나 형벌을 받을 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의 세계관을 무시하거나 도전하는 것은 결국 그들의 "감정"을 건드리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타문화권에 들어갔을 때에 외부인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문화권의 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문화관 중심으로 행하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이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좀더 다른 차원이므로 "세계관의 변화"를 다룰 때에 자세히 언급하려 한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이슬람 급진주의자들과 서구 세계와의 충돌은 전혀 다른 세계관들의 충돌이며 이것은 굉장히 복잡한 인간 관계의 충돌로 나타나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상대방의 세계관을 이해하거나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 없이 상대방을 사랑하기는 쉽지 않다. 서로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선한 입장을 주입시키려는 행위는 평화를 가져오기가 매우 어렵다. 오늘날 일어나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 테러리스트들(사실은 이슬람 급진주의자들)과의 싸움은 그 동안 누적된 세계관의 충돌이다. 이에 대하여 다음 호에서 좀더 다루어 보고자 한다. 다음 호에서는 이슬람의 세계관과 서구의 세계관이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이들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입장을 갖는 것이 바람직한 지에 대하여, 이번 호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기초로 하여 살펴 보고자 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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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01 02:00 유학생 사역

유학생 사역

Big Ten 지역 한국 유학생 사역의 장점

* 지난 호에서는 Big Ten지역의 유학생 사역의 전반적 현황에 대해 평가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이 지역에서의 유학생 사역이 갖고 있는 장점들을 기술하고 다음 호에서는 단점과 어려움들을 나누고자 한다.

1. 복음 전도적 장점

Big Ten 지역의 유학생 사역에 있어서 제일 큰 장점은 복음 전도적인 측면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교회 공동체가 불신자들과 접촉할 기회들이 많고 불신자들이 한국에서보다 복음과 교회에 대하여 마음을 더 열고(open) 있다. 많은 수의 학생들과 배우자들이 영적으로 정서적으로 실제적인 면에서의 필요(need)가 있고 대학촌에서의 지역 교회가 한국 커뮤니티의 구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요인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신입생들은 정착할 때 대부분 지역 교회들을 통해 도움을 받게 된다. 불신자들이 대학촌에 왔을 때 자연스럽게 교회와 관련을 맺게 되고 출석하게 되는 것이다. LA, Chicago, New York 같은 대도시에서는 학생들이 학업 외에 놀 거리가 많고 문화적 활동을 할 기회가 많아 한국에서 교회에 나가던 학생들도 부모들의 간섭을 피해 교회를 멀리 하는 경향이 있다고들 하나 중서부 지역의 대학촌 도시들은 학교 외에 학생들이 갈 만한 곳이 없다. 교회가 유학생들의 영적 문화적 사회적 활동의 중심지인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신자들이 불신자 친구들을 쉽게 교회로 인도한다. 많은 불신자 학생들이 별 거부감 없이 미국 유학 초기에 교회의 문을 드나들고 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지만 일요일 아침에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일주일 시간표 들어 있는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다.

또한 교회는 출석하지 않지만 유학생 성경 공부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는 학생들도 다수 있다. 유학 시절에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새롭게 찾고 참된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자(seeker)들인 것이다. 기존의 제도화된 교회에 대해서는 약간의 반감은 있지만 성경을 공부하기를 원하고 삶의 향기를 풍기는 그리스도인들과 교제하고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다. 그리고 영어 공부를 위해서 미국인들이 인도하는 성경 공부에 꾸준히 참석하면서 복음을 듣고 변화되는 학생들도 있다. 한국에 있었다면 교회에 출석하고 복음을 들을 확률이 희박했을 사람들이 이곳에서 복음에 노다지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학촌 교회들에 출석하는 학생들의 25-30% 정도가 불신자들이다. 이들은 처음으로 교회에 출석을 하거나 한국에서 주일학교나 중고등부 때 혹은 군대에서 의무 종교 행사의 일환으로 교회에 잠깐 출석했던 경험이 있는 자들이다. 어쩌면 이들에게 유학 시절이 복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고 진리를 진지하게 탐구하는 마지막 기회가 될 지도 모른다. 유학 시절에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구주와 주인으로 영접하는 역사들이 지역교회와 유학생 성경 공부 모임과 코스타와 같은 유학생 수련회 등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 모임에서는 지난 1년의 사역을 통해 7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다. 지금도 seeker들이 소그룹과 전도, 성경공부와 주일예배를 통해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고 있다.

2. 사역의 집중성

Big Ten 지역의 교회들은 대부분 지역적으로 자그마한 대학촌에 위치에 있다. 미네아폴리스와 (U of Minnesota) 콜롬부스 (Ohio State University)를 제외하고는 소도시의 큰 주립대학을 중심으로 한국 교회들이 있으며 유학생들이 평균 출석 인원의 80% 이상이 된다. 학생들이 기숙사나 기혼자 아파트에 집중적으로 모여 살고 있고 이동 거리가 짧기에 소그룹 모임이나, 캠퍼스 모임, 구역 모임 등을 하기에 아주 용이하다. 우리 모임에 있는 6개의 소그룹 성경공부의 평균 이동시간은 10분 이내이다. 소그룹 모임에 기동성과 융통성이 있다. 학교에서 같은 건물에서 매일 보는 사람들과 일 주일에 한 번 점심 시간을 활용하여 단과대 모임(기도/QT 나눔/생활 나눔)을 하는데도 시간적 압박을 받지 않는다. 이동 거리가 짧고 활동 공간이 캠퍼스를 중심으로 좁기 때문에 점심 시간과 공강 시간을 이용한 일대일(one-on-one) 만남이나 기도 모임을 하기에 용이하다.

또한 문화적으로 대학촌 문화의 동질성을 갖고 있다. 구성원들을 싱글과 기혼자로 단순하며 직업은 학생과 학생 배우자 그리고 학교와 관련된 교수, 교환 교수, 박사후 과정(post doc)을 하는 사람들이다. 학생들의 연령의 차이도 크지 않고 생활 패턴도 학교의 학사 일정(academic calendar)에 따라 움직이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다양한 계층과 나이 문화적 배경을 가진 전통적인 한국교회 사역에 비해 동질한 문화적 집단에 집중화할 수 있다. 목사님의 설교 내용도 학생층에 집중할 수 있고 훈련 프로그램이나 다른 모임들도 학기의 흐름에 따라 일상(routine)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 가을학기 시작 때엔 새로운 학생들이 많이 들어오고 봄 학기가 끝날 때에는 졸업하고 떠나는 학생들이 생긴다. 겨울방학과 여름방학 때에는 학생들의 한국방문과, 학회, 인턴십, 여행 등으로 인해 주일 예배 참석 인원이 반으로 줄기도 한다. 이러한 패턴에 적응하고 유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이 대학촌 교회들이 갖고 있는 장점이다. 학기 중에는 소그룹 모임과 구역 모임 등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봄방학(Spring Break)과 추수감사절 휴가(Thanksgiving Break)에는 말씀 사경회나 2박 3일 정도의 수양회(retreat)를 가질 수 있고 긴 여름과 겨울방학에는 훈련 프로그램과 수련회 등을 담아 낼 수 있다. 교회 전체 사역을 볼 때도 크게 학생 사역(싱글/기혼자)과 주일학교 사역으로 단순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한국교회에 비해 비본질적인 요소, 즉 예배당 건축, 당회 내 목사와 장로들의 갈등, 총동원 주일 등과 같은 의미 없는 행사(event)성 모임, 계층화된 직분들, 남선교회와 같은 유명무실한 조직과 구조, 수 많은 회의와 복잡한 의사 결정 구조, 헌신 예배나 수요 예배 등과 같은 형식적이고 전통적인 예배들, 교인들을 교회 안으로 붙잡아 놓기 위한 프로그램 등으로 인한 시간과 에너지 자원들을 줄여 학생들을 전도하고 양육하고 교제하고 예배하며 파송하는데 사역을 집중할 수 있다.

3. 사역의 효율성과 영향력

유학생들은 장년 계층에 비해 빨리 변하고 성장한다. 평균 4년 정도의 유학 기간은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말씀으로 양육 받아 영향력 있는 리더로 세워지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공부하는 학생들이기에 말씀에 대한 이해와 학습 능력이 빠르고 양육과 훈련도 아주 용이하다. 이들 가운데는 가르침(teaching)의 은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에 한국 교회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말씀을 잘 가르치고 양육하는 소그룹 리더와 성경 교사들이 많이 배출되어질 수 있다. 실제로 유학생 교회에서 학생들이 강의나 설교를 할 기회들이 주어지기도 하는데 전임 사역자에 못지 않은 수준으로 가르치고 말씀을 증거한다. 우리 모임에서는 매 학기 2-3 차례 학생 리더들이 강의를 하거나 패널 토의를 인도할 기회가 주어진다. 말씀에 대한 이해와 관련된 주제에 관한 리서치 능력, 강의안의 구성과 전달 능력 그리고 삶과 인격을 통해 흘러 나오는 이들의 가르침은 학생들에게 신선하고도 큰 도전을 주고 있다.

이들이 한국에 있었다면 장년들 주도로 이끄는 교회에서 청년부나 남/여 전도회 '꼬맹이'로 수동적으로 교회 사역에 참여했을 것이다. 여기서는 자신들이 직접 교회의 주인으로서 또한 영혼들을 책임 맡은 영적 지도자로서 행정과 조직과 양육과 가르침과 섬김의 리더십을 십분 발휘할 기회들을 갖게 된다. 대학촌 교회들의 학생들은 한국 교회나 이민자 중심의 교회보다도 더 교회의 많은 부분에서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들을 갖게 되고 목회자와 동역자로서 긴밀하게 협력 사역을 하는 경험을 갖게 된다. 단지 봉사라는 미명에 교회를 유지하는데 소모품이 아닌 진정한 리더십의 훈련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유학생들은 학위 과정을 마친 후 한국이나 미국이나 제 3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위치에서 일하게 된다. 이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시키고 섬기는 지도자로 훈련시켜 파송할 때 이들이 교회와 세상에 미칠 영향력은 대단한 것이다.

대부분의 Big Ten 지역 유학생 교회들은 한국에 alumni 모임이 있다. 그 교회 출신의 지체들이 일 년에 한 번 모여서 친교도 하고 예배도 드리며 과거의 유학 시절에 만났던 하나님을 되새기고 소명과 비전을 새롭게 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교수로서 대기업 간부로서 정부 관료로서 연구원이나 전문인으로 한국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고 교회에서의 평신도 리더십의 역할들을 담당하고 있다. 요즈음의 또 다른 추세는 졸업 후 미국에 정착하는 유학생들의 비율이 점차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 사회에서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따라 살아가며 이민 1세대들이 사라진 다음 한인 교회를 이끌어 나갈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연변과기대를 비롯한 여러 선교지에서 전문인 선교사로 사역을 하고 있는 지체들도 있다. 이들이 유학생 사역의 열매인 것이다.


4. 소그룹 구조

모든 유학생 교회들이 소그룹 구조를 중심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소그룹의 내용과 소그룹 리더의 질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겠지만 일단은 소그룹 구조를 확실하게 갖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구조에 내용을 담아 내고 리더들을 훈련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소그룹의 구조는 다양하다. 구역모임 형식, 나눔과 교제 중심의 목장(cell) 모임) 모임, 소그룹 성경공부(싱글/ 부부) 등. 이러한 소그룹 구조는 유학생 사역에 아주 적합한 구조이다. 소그룹은 기동성과 융통성과 배가성과 흡입력이 있다. 소그룹을 통해 예배와 양육과 교제와 전도가 일어난다. 이 구조에 제자 훈련이나 리더 훈련 등을 병행하면 금상첨화이다.

대부분의 유학생들은 소그룹 모임을 선호한다. 싱글들은 동질 집단끼리 많이 모이고 또 소그룹으로도 모이는 것을 선호하고 기혼자들은 자신의 삶과 어려움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말씀으로 재충전 받는 소그룹 모임을 아주 소중하게 여긴다. 우리 모임은 주일예배 출석 인원들 보다 소그룹 참석 숫자가 더 많다. 불신자들이나 초신자들이 교회의 전체 예배보다 먼저 흡입력이 있고 인격적인 소그룹 모임에 먼저 참여하기 때문이다. 주일 예배에서 담아내지 못하는 부분들이 소그룹에서 이루어진다. 실제로 소그룹에서 불신자들이 복음에 대해 듣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소그룹에서 개인의 삶과 인격이 나누어진다. 개인의 어려움과 부부 사이의 갈등, 학업에서의 스트레스와 진로에 대한 고민들도 나누고 기도로 서로를 위해 중보한다. 말씀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서로 토의하며 깨달은 바를 나누면서 말씀의 풍성함을 맛보고 다른 사람들 속에 다양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된다. 서로를 보살피고(care) 섬기며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모습을 소그룹 모임에서 제일 먼저 맛보게 된다. 따라서 기존이 소그룹 구조를 잘 활용하여 건강한 소그룹을 만들어 나가고 영향력 있는 리더들을 세워 나간다면 유학생 사역의 장점들을 십 분 더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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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좁고 미국은 두렵다

양식을 예비하고, 용사는 무장하라

들어가는 말

본 칼럼은 유학을 마친 후에 장래의 진로로 고민하며, 이민을 고려하는 크리스천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쓰고 있다는 점을 먼저 다시 지적해 두고 싶다.

지난 호까지 두 차례에 걸쳐 썼던 칼럼에서 강조하였던 점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첫째 새로운 이민 생활의 결정은 자신의 욕망이나 뜻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뜻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둘째 이미 이민 생활을 하기로 결정하였으면, 하나님의 자녀요 또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당당하게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크리스천 이민자의 정체성이 확실히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막 유학 생활을 시작할 때 가지게 되는 문화와 언어에 대한 불안감과 긴장감도, 몇 년 후에 유학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가면 잊어지겠지라는 소망으로 견디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이민 생활이란 끊임 없는 긴장감 속에서 새로운 관습, 문화, 언어를 배우며 살아야 되는 고된 삶이요, 또 가까운 친지들을 떠나 살아야 되는 외로운 삶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 없는 이민 생활과 크리스천 이민자의 정체성이 결여된 (주로 추후에 갖게 되는 것이긴 하지만) 이민 생활은 승리를 장담하는 이민 생활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어렵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준비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으로서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생활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고 또 응답하셨던가를 가장 가까이에서 본 믿음의 사람이다. 모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는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하는 중압감에 사로잡혀 두려움을 갖게된 듯 싶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는 말씀을 통하여 여호수아와의 동행을 약속하시므로, 그에게 담대히 맡은 소임을 감당하도록 하신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말씀으로 미지의 길을 가는 유학생 이민자들을 위로하시며 또 동행하심을 약속하고 있다. 여호수아를 통하여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인도와 동행하심을 약속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하여 어떠한 태도와 준비를 해야 되는 가를 배울 수 있다.

특별히 전문성을 갖춘 지성인으로서, 감성과 지성의 균형있는 신앙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할 유학생들에게, 여호수아의 태도는 본 받아야 할 좋은 모델이 될 것이다.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데 매우 격렬한 전투가 다가 올 것을 예견하고, 백성들을 잘 준비시키는 그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다. 여호수아는 전쟁의 승리는 오직 여호와의 손에 있다는 것을 철저히 믿은 사람이었지만, 믿음만 의지하고 준비없이 맨손으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런 신앙인이 아니었다. 믿음과 행동의 조화를 이루며,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잘 완수하였다.

우리는 요단강을 건너 미지의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인도 하에 네 가지의 중요한 준비의 과정을 밟아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첫째는 백성들에게 양식을 예비하고 또 용사는 무장하라고 요구한다(수1:11,14). 둘째는 정탐꾼을 보내어 여리고를 정탐한다(수2:1). 셋째는 온 백성에게 성결할 것을 부탁한다(수3:5). 그리고 넷째는 과감히 요단에 들어설 것을 요구한다(수3:8). 이제 미국 이민을 고려하는 유학생도, 마치 미지의 땅을 점령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준비했던 네 가지 준비 과정들을 유학 생활 중에 실제로 적용함으로서, 다가올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도록 하자.

1. 양식을 예비하고, 용사는 무장하라(수1:11,14)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건너면 이방 족속과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질 줄을 예견하고 있었다. 이리 하여 모든 백성에게 먹을 양식을 준비하라고 먼저 명령한다. 그리고 전투의 선두에 서게 될 루우벤, 갓, 므낫세 반지파의 용사들에겐 무장을 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새로운 땅을 향해 나아가며 다가올 전쟁을 준비하는 군대는 필연코 군량미를 충분히 비축하고, 또 잘 훈련된 군사를 강한 마음과 좋은 무기로 무장시키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 아니겠는가? 미지의 땅에서 새로운 삶을 이룩하고자 준비하는 유학생의 마음가짐도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가짐과 비슷해야 될 줄로 생각한다.

2. 전문성은 양식

이제 조금 후면 배우고 훈련받는 유학 생활이라는 광야 생활이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처럼 새로운 이민의 땅을 향하여 나아가야 될 형편에 곧 이르게 될 것이다. 따라서 유학 생활 중에 양식을 충분히 준비해 두어야 한다. 유학생이 유학 생활 중에 준비해야 될 양식은 바로 전문성에서 참 실력을 길러두는 것이요,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극복해 두는 것이요, 담대하고 성결한 신앙을 길러두는 것이다.

많은 한국 유학생들이 아직도 미국 사회에서 진짜 실력을 갖춘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말하면 미국 사회가 실력이라는 것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 지에 관하여 혼동하고 있는 듯하다. 미국대학의 평가 기관에서 보고한 소위 미국의 일류 대학이란 곳에서 소정 기간 동안에 공부하고 학위를 취득하면 저절로 실력이 인정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물론 좋은 대학에서 좋은 연구로 실력을 쌓으면 인정 받기가 유리하긴 하지만, 결코 한국처럼 소위 '학교의 등위'라는 것으로 개인의 능력을 일률적으로 평가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여러분을 초청하게 될 대학이나 회사의 인사 위원회는 철저하게 여러분의 창의적인 연구력과 발표된 양질의 논문 또는 연구로만 평가한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오직 전문가는 철저히 전문성으로 말해야 하고, 또 전문성으로만 평가될 따름이다.

3. 본토에서 고생하는 영어

영어는 미국 이민 생활에서 필수적인 무기이다. 대체적으로 한국 유학생들은 전문성에서는 좋은 실력을 갖추어서 상당히 두각을 나타내는 편이다. 그러나 영어 구사력에서는 거의가 자신이 없어하고, 이 부족한 의사 소통력이 마음을 항상 짓누르고 이민 생활을 고려하는데 겁을 먹게 하고 있다. 미국에서 수 년 동안 공부하고, 박사학위 논문최종 발표시에 머리 속에서 한국말이 영어로 통역되는 번역기를 거치지 않고 영어로 논문을 방어(defense)할 수 있는 유학생은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솔직히 말해서, 인문사회 전공을 하는 극소수의 유학생을 제외하고서는, 거의 모든 유학생들이 학위논문 심사 발표시에 영어로 논문 발표를 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너무 과장된 판단일까?

비록 언어의 구조가 다르고 또 한국에서 말하기와 듣기 훈련이 부족하였다고 하더라도, 한국 유학생의 영어가 본토에서 심히 고생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주위를 조금만 돌아보면, 왜 한국 유학생들이 영어를 정복하지 못하고, 취득한 학위만 달랑 들고서 한국에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 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미국에서 영어로 공부하면서도, 한국 학생끼리만 모이고, 학교에서조차 서로 한국말만 쓰기로 철저히 단합이 된 탓이다. 어느 학교든 학생 식당에 가보라. 특히 점심 시간이면 유독 한국 유학생끼리만 모여서 떠드는 것을 보는 것은 다반사다. 점심 시간마다 자기 연구실의 미국 학생동료와 점심을 나누며 보낸다면 아마, 틀림없이 좀더 빠른 시간 안에 귀가 뚫리고 입이 열릴 것이다.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며 한국말로 담소하는 것을 나쁘다고야 할 수 없지만, 몇 년을 미국에서 공부하고서도 학생 식당 샌드위치 샵에서 샌드위치 하나도 제대로 시켜 먹을 수 없는 유학생이라면 좀 너무 하지 않은가?

어차피 미국에 살면서 미국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살아야 하는 삶이 이민 생활이다. 참석하는 한국 교회에서 맡은 직무에 소홀함이 없다면, 일주일에 한 번 쯤 인근 미국 교회의 수요 예배나 또 금요 성경공부에 참석해 볼 것을 적극 권장하고 싶다. 미국 형제자매와 주안에서 좋은 교제를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어를 극복할 수 있는 참 좋은 대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더욱이, 추후에 선교 사역, 국제유학생 사역, 또는 Tent-maker 사역을 마음에 두고 있는 유학생에게는 영어로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절대로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영성이 풍부한 미국 목사님들이 전하는 말씀으로 새롭게 도전받는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유학 생활 중의 특권이요, 균형 있는 영적 양식을 먹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전문성에서 참 실력의 양식으로 준비하고, 대화 소통에 자유로운 영어로 무장된다면, 이미 이민생활에서 승리할 수 있는 양식과 무기는 일단 잘 준비된 셈이다.

4. 정탐하라(수2:1)

가나안 땅의 정탐은 여호수아에게는 만감이 교차되는 민감한 사안이었을 것이다. 믿음의 눈을 갖지 못했던 열명의 정탐꾼의 부정적인 가나안 정탐 보고는, 결국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이나 광야에서 훈련받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였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살아서 지금 요단강을 건널 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호수아는 다시 정탐꾼을 먼저 여리고성에 보내어서,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가나안 땅의 동정을 파악하고자 함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여호수아의 정탐 결정을 믿음이 없는 행동이라고 그 누가 비난할 것인가?

5. 정보시대

결국 가나안 땅의 첫 번째 정탐꾼은 실패하여 40년 동안 광야 훈련을 더하여 주었지만, 두 번째 정탐꾼이 라합을 통하여 가져온 보고는 "온 가나안 거민의 간담이 녹더이다"(수2:24)라는, 승리에 자신감을 더해 주는 정보였다. 결국 정확한 여리고성의 정보는 이스라엘 백성의 사기를 높였을 뿐만 아니라, "그러면 그렇지"하는 믿음을 통한 승리의 확신으로 요단강을 건널 마음의 준비를 확신 시켜준 귀한 정보이다. 사실 "정보가 생명"이요, "정보의 시대"라는 말은 이미 여호수아 때부터 생긴 말인 셈이다.

이 시대는 정보의 시대이다. 더욱이 미국은 정보 활용의 첨단을 걷는 나라이다. 정보를 바로 얻지 못하고 또 활용할 줄 모르는 자는 결코 살아 남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미국 이민 생활을 시작하면서 미국은 어떤 나라인지, 무엇이 필요하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먼저 잘 정탐해 두면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흐름을 파악하는 지름길은 역시 매일 TV News를 보고, 미국 일간 신문과 시사 주간지를 읽으며, 또 라디오의 Talk Show를 듣는 것이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미국의 문화와 관습을 잘 이해한다면 또한 (앞서 말한) 영어를 잘 구사할 수 있게도 된다. 수 년 전에 미국에서 학위를 갓 마치고 직장을 찾기 시작하는 형제와 함께 미국의 고급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되었는데, 무슨 미국 음식을 어떻게 주문할 지를 몰라 당황해 할 뿐만 아니라, 웨이터의 질문에 계속 동문서답하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았다. 단순히 미국 식당의 문화와 관습을 모르는 탓이다. 대부분의 대학이나 회사에 Job 인터뷰를 가면, 대개 저녁식사를 하면서 인사 위원들과 담소하는 시간을 꼭 갖게 되는데, 이는 그 사람의 됨됨과 매너를 관찰하기 위함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기본적인 미국의 관습과 매너는 꼭 배워 두어야 할 것이다.

과연 몇 퍼센트의 한국 유학생들이 미국의 주요 일간 신문이나, 경제신문 또는 지방신문을 정기구독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들중의 몇 명이 미국 주요 TV News를 매일 정기적으로 시청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한국 식품점에 갈 때마다 한 팔 가득히 빌려오는 한국 비디오를 날 새워 보고서, 벌건 눈으로 "한국 풍속도" 이야기만 나오면 열을 올려도, 미국 정치, 경제 및 사회 이야기가 나오면 몇 몇 정치 및 경제학도를 제외하고는 꿀먹은 벙어리가 대부분이다. 학과 공부와 연구에 바쁜 탓에 그까짓 것에는 별로 관심도 없고, 또 실제로 들어도 별로 이해하지도 못하는 탓이라고 간주해 버린다면, 조만간에 앞에서 예를 든 유학생 형제처럼 당황스럽고 안타까운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미국의 정치, 경제와 사회의 구조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지 못하면, 결국 승리하는 이민 생활을 누릴 수가 없다. 미대통령의 국회연설이나, 상하원의 법안 통과 정보 등을 놓쳐 버리면, 대학교수나 연구소의 연구원들은 다가올 세대의 연구의 방향을 잃어 버리게 되고, 연방정부의 연구비 투자 방향과는 반대로 연구의 방향을 잡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벌이는 대부분의 교수와 연구원들은 워싱턴의 연방정부와 자기가 살고있는 주정부의 행정과 경제 동향에 정통한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미국에 이민하여 살고자 하는 유학생은 지금부터라도 매일 읽던 한국 일간지를 미국 일간지와 겸하여 읽도록 하자. 끝 없이 짝짓고 헤어지고 또 당짓기에 신물 난 서울의 정치 이야기도 알아야 하지만, 왜 미국 흑인의 90%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를 일방적으로 지지하였으며, 또 부시 대통령은 최근에 미국을 방문한 멕시코 대통령을 국빈으로 예우하고, 환대하였는지를 바로 알아야, 다민족이 어울려 사는 미국의 역학 구조를 알 수 있지 않겠는가? 남의 허물을 잡기 위하여 정탐하고, 회사의 정보를 빼내어 팔아 먹는 사기꾼 정탐꾼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되지만, 미국을 알고 또 이해하며 이민 생활을 잘 정착하기 위한 정탐은 부지런히 할 수록 좋다.

6. "라합"같은 친구

좋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물론 준비된 "라합"같은 믿음의 미국 친구들을 많이 만들어 두는 것도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전문학회 모임은 대개 관광을 겸하여 할 수 있는 관광 도시에서 갖게 된다. 학회와 학술 발표회(연주회)에 좋은 연구 논문(연주)을 가지고 가서 발표하는 것은 자기가 속한 전문학회의 유명한 석학이나 최고의 연구가(연주가)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나는 감히 전문학회의 발표장은 새로운 신인 배우들이 스타로 탄생되는 연회장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연회장에서는 연회를 베푸는 주인이 으뜸이다. 전문학회 발표장(연주회장)에서는 논문 발표자(연주자)가 주인이다. 전문학회 발표장에 모인 수 백명의 참석자는 논문을 발표하는 사람 즉 연회를 베푸는 주인에게 눈을 고정하게 되어 있다. 바로 이 때가 모든 참석자를 당신을 인정하고, 지원해 주는 친구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논문 발표(연주 발표)가 끝나면, 부지런히 그 분야의 전문가 참석자들을 찾아 다니며 논문(연주)에 대해 다시 토론하고 또 조언을 들음으로써, 참 기억하기 힘든 여러분의 한국 이름과 연구 업적을 기억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친구로 사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취업을 하려면, 지도 교수를 포함한 다른 교수(특히 재학하는 학교 이외의 대학)들의 추천서가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승진이나 직장의 이동 때마다 이 추천서의 역할은 계속 증대되어 간다는 것을 꼭 알아 두기 바란다. 논문발표가 끝나자 마자 학회는 뒤로해 두고, 관광에 열중하는 유학생은 결국 연회를 베풀어 놓고 연회장을 떠나 버리는 주인과 같은 꼴이다. 이러한 학생은 틀림 없이 이력서에 써야 되는 추천인으로 자기가 졸업한 학교의 논문 심사위원의 이름만 기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결코 대학이나 연구소에서는 이런 이력소유의 지원자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대학 교수는 한국에서처럼 판에 박은 미사어구의 추천서를 결코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학생을 직접 평가한 사실대로 꼭 쓴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비록 자기 밑에서 학위를 받은 학생일지라도 말이다. 학위과정에 있을 때에 많은 명망있는 교수와 전문가들을 "라합"같은 좋은 친구로 만들어 두기 바란다.

결국 정탐을 잘하여 미국의 문화와 관습을 잘 이해하게 되면, 미국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자신감 때문에 여러분의 "간담은 더욱 강해진다"고 할 수 있다. 본 칼럼에서 지적한 것을 이미 잘 갖추고 새로운 미국의 이민 생활에 잘 적응하고 있는 수 많은 유학생 출신 신이민 세대에게 갈채를 보낸다.

여호수아의 인도 하에 백성은 양식을 준비하고, 용사는 무장하고 또 여리고성의 정탐을 마쳤다. 이에 더하여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백성을 성결케 하고, 요단강을 밟으라고 명령하셨다. 다음 회에서는 계속하여 여호수아의 요단을 건너기 위한 네 가지 준비 과정 중 셋째, "온 백성에게 성결을 부탁한다" 와 넷째, "과감히 요단에 들어설 것을 요구한다"를 유학생활 중의 준비 과정에 적용해 보기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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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01 02:00 삶과 신앙/F2 이야기

F2 이야기

귀국을 앞두고

내일이면 한국에 들어간다. 학기 중이라 바쁜 남편은 물론 함께 못 들어가고, 오직 나만의 휴가를 갖게 된다. 겨울 내내 있다 오겠다고, 겨울옷 몇 벌 싸고 나니 어느새 거실에 놓여진 커다란 이민가방 두 개. 한국에 대한 기대감이 얼마나 큰지, 비행기 티켓은 6개월간 오픈으로 끊었다. 신혼여행을 못 갔던 것은 물론이고, 1년 10개월 간 시카고 바깥으로 나갈 기회가 거의 없던 나에게, 이번의 한국행은 큰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에 들어가는 공식적인 이유는, 한국에 계신 교수님께 직접 추천서를 받아서, 오랜 기간 질질 끌어 왔던 유학 준비를 좀 쉽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이다. 근 2년을 인사도 제대로 드리지 못한 교수님께 도무지 미국에서 추천서를 요청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보나 마나 너 누구냐?라는 반응을 보이실 것이 예상되었으므로, 차라리 한국에 들어가서 부탁드리기로 작정했다. 이런 이유로 결심하게 된 한국행이지만, 이번 한국행에 대한 기대는 이루 말 할 수 없이 크다.

먼저, 나는 이번 한국행이 나의 무력감을 깨어 버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유학생 와이프 생활이 2년이 다 되어가는 근래에는, 스스로에게 느끼는 무력함이 극도로 치닫고 있다. 바닥을 치고 있는 자존감. 유학생 배우자의 단조로운 생활이야 기혼자 유학생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이기에, 나의 생활 패턴을 열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생활이 쉽게 바뀔 수 없는 것이라면, 내 마음을 고쳐 먹어야 할 텐데,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전히 변함 없는 나태한 신앙 생활과 부정적인 생각들로 인해 감정의 무너짐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보니, 지극히 조용하고 단조로워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더 내버려 두면 영영 회복될 수 없을 것 같은 무기력함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보다는 나은 자아상을 가지고 있던 그 장소로 돌아가, 그 때를 기념하고,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새로운 은혜를 맛 보고 싶은 것이 나의 소망이다. 물론 새로운 멤버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기는 하겠지만, 예전의 그 공동체를 다시 경험하고, 그 때 함께 하던 동기들과 잠시라도 다시 교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의 새로운 자극제가 되지는 않을까, 그렇게 기대한다.

그리고 길지 않은 시간이겠지만, 내 자신의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또한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고 싶다. 그 동안, 유학에 필요한 시험 준비들이 내가 내 자신을 위해 한 일의 전부라고 해야 할 듯. 결혼 이후에, 또 미국에서 철저히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기회를, 그리고 결국은 내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할 나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해 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아니, 애써 고민을 회피했다고 이야기해야 함이 맞을 것이다. 아무런 일을 하고 있지 않아도, 뭔가 하고 있다는 대리 만족감은 유학생 와이프 생활에서 오는 폐해라고 말할 수 있다. 외국 생활에서 오는 생활 자체의 스트레스가 상당해서, 하루 하루를 의미 없게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 학위는 남편이 따는 것이지만, 물론 그러한 남편을 잘 지원함으로서 돕는 것이 와이프들이 해야 할 일이겠지만, 결국은 진보하고 있는 남편과 퇴보하는 자신을 비교하며 허탈해 하는 모습들을 빈번히 본다. 나 역시, 오직 남편의 진행 과정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환경 속에서 내 자신의 꿈에 대해서는 잘 생각해 보지 못했다. 지금 내 자신의 장래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고민하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미국 생활은 더 힘겨울 것이 될 것임에 틀림 없다. 모처럼 갖게 된, 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그러한 짧은 기간을 통해서, 나는 앞으로의 미국 생활을 내 자신의 미래를 위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싶고, 누군가에 의해 이끌리는 삶이 아니라 내가 주체적으로 이끄는 삶으로 만들고 싶다.

또, 나는 한국에서의 몇 달을 통해서, 나의 무너져 있던 생활 습관이 바로 잡히기를 기대한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던 미국에서의 생활을 통해, 또한 한국을 향한 그리움으로 밤새 붙들고 있던 인터넷으로 인해 얻게 된 불면증은, 한국에서 가족들과의 생활을 통해 바로 잡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늘 집안에만 갇혀 있느라고 떨어질 대로 떨어진 체력이 좀 좋아지지 않을까도 기대해 본다. 언제부턴가 학교의 체육관은 유학생 배우자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이용료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그나마 운동하던 기회를 박탈 당했던 것이고, 또 의지를 내어서 운동을 하지 않게 된 것인데, 결과는 체중은 늘었지만 체력은 떨어져 약간의 노동에도 쉽게 지쳐 떨어지는 상태. 의도하지 않아도 몸을 움직이게 될 한국 생활이 내 생활 습관들을 조금이나마 바로 잡지 않을까. 물처럼 들이켜고 있는 커피와 다이어트 콜라도 끊을 수 있을 지 모른다. 이러한 나쁜 생활 습성들은 몇 번이고 돌이키려 노력했던 것이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던 것들이다. 마치 마약 중독자가 자신에 대해 비참함을 느끼는 것처럼, 나 역시 내 자신의 습관에 대해서 때때로 그렇게 느낀다. 자신을 성결히 지키고 있지 못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들에 사로 잡히고는 한다. 내 자신의 의지를 내어서 고치기 힘들었던 악한 습성들이, 한국에서의 생활로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저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기대하며, 더불어 소망하는 것은 내가 다시 되돌아 와야 할 시카고에서 어떤 관계들을 맺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는 것이다. 남편은 인터넷 중독의 후유증이라고 장난 삼아 말하고는 하지만, 나의 대인 관계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주일마다 교회 공동체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기는 하지만,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인생들을 인정하지 못하고 경계하는 나의 마음이 그들을 나와 삶을 나눌 동역자로 인정하기를 꺼려지게 한다. 공동체 안에서 회개에 대한 권면과 책망은 없이, 환대와 위로만을 이야기하는 청년회의 리더와 멤버들을 끊임 없이 정죄하게 된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마도 이들을 사랑하기로 마음먹는 의지인 것 같다. 이제는 함께 해야 할 공동체에 대해서 고민할 때라고 생각한다. 어떤 공동체에 들어갈 것인지, 어떤 모습으로 공동체에 있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

모든 소망들의 중심에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주도하시기를 원하는 소망이 있다. 1년 10개월간, 경제적 어려움들과 생활에서 오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 감정의 기복들로 인해 내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우선 순위 밖으로 밀려 있던 것을 회개하며 고백한다. 어쩌면, 전체적인 내 생활은 크게 바뀌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환경이 행복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환경이 나의 나태함을 변명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든 묵상과 기도와 학습의 훈련을 통해, 나의 영적 성숙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내 안에서 하나님이 내 삶의 주 되심을 인정하고, 항상 의지를 내어 그 사실을 되새기지 않으면 나는 다시 환경 가운데 매몰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의지를 붙들어 주시기를 소망하고, 또 나의 믿음을 하나님께 보여 드리고 싶다. 아마도 졸업 이후 학사로서 고민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동기들의 모습이 내게 훌륭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쓴 글을 읽어 보니, 마치 수련회에 들어가기 전에 쓰는 선언문 같다. 어쩌면, 이번 한국행은 나만의 작은 수련회가 될 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강사도 없고, 함께 기도하는 무리들도 없지만, 그 어느 수련회 때보다 커다란 소망과 기도를 품고 간다. 하나님께서 나의 생각을 바꾸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바꾸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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