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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OSTA: 이렇게 좌담회에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략히 자신의 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김동록: 저는 김동록입니다. 코스타와 관계를 맺게 된 지는 약 6년째인데 코스타에서 서북미지역 멘토로 섬기고 있습니다. 지금 씨애틀 근교에 살면서 조그만한 영상처리 소프트웨어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윤여재: 안녕하세요. 저는 윤여재라고 합니다. 코스타는 2003년에서부터 참석하고 있습니다. 현재 데이튼, 오하이오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최인석: 안녕하세요, 저는 최인석 입니다. 코스타는 2006년부터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동부 DC부근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반갑습니다.

eKOSTA: 일단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우리의 인식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습니다. 본인이나 혹은 함께 교제하시는 분들이, '하나님 나라', '하늘 나라' 혹은 '천국'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 보통 어떤 모습으로 연결하시나요?

윤여재: 지난 성경공부의 도입부분에서 세가지 하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첫째 하늘은 우리가 땅의 딛고 있는 이 세상이며, 셋째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이야기하면서 마치 첫째 하늘과 셋째 하늘이 서로 분리되어 있는 곳처럼 묘사하면서, 물론 교재가 직접적으로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고 있지만,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은 그렇게 물리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세상과는 분리되어 있는 마치 먼 하늘나라 저 편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 것 같고, 저 또한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기 보다는 눈과 귀로 쉽게 접하게 되는 세상의 삶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동록: 사실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땅이 아니라 통치권이라는 말을 하게 된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삶의 현장에 함께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의도였지만, 오히려 통치권이라는 말 자체가 추상적이다 보니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영적인 영역으로만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을 봅니다. 예를 들면 내 하루 생활에서의 하나님과의 교제 (QT), 기도, 또 직장이나 가정에서의 내가  결정해야할 것들 등에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본다는 것들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라고 말씀하실때, 이런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영역을 넘어선 어떤 것을 이야기하시는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나라”라는 말 자체가 집단이라는 성격이 들어가 있는 단어이니까요. 어떻게 보자면 통치권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하기보다는 “통치하시는 집단적 영역”이라는 말이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심각하게 생각해 보자고 했을때 같은 그룹에서 당황해 하시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나의 아기자기한 기도는 드리지 말아야하는 것인가 하는 질문도 있었구요.

최인석: 저는 요즘에 마태복음을 가지고 성경공부를 하고 있는데,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저희 지역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권에 초점을 맞추는 세미나가 여러번 있어서 대부분 현재적 의미의 천국도 많이 고려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에는, 제가 변화되면서 느꼈던 사소한 일에서의 충만함, 그리고 왠지모를 자유감 등이 지상에서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는 천국의 속성 혹은 맛이라면, 그러한 경험을 통해 천국에 대한 모습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떠오르게 되고 또 그것을 사모하게 된다고 자주 나눕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현실에서 가능하다면, 확장되어 나갈 천국에 대한 모습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봤습니다.

eKOSTA: 미래에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는 숨겨져 있다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 즉 하나님 나라의 은닉성이 성경에 많이 등장하는데요, 생각나시는 비유라든지, 혹은 성경 내용이 있으시면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개인적으로 더 와 닿았던 내용이 있으신가요?

윤여재: 오늘 아침 저의 큐티 본문이 요한복음 18장 후반부분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을 통해서 빌라도의 관정까지 끌여오게 되고, 빌라도 앞에서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이 저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의 한 면을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 있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즉 하나님의 뜻, 계획하심 아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시 한번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빌라도는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라는 질문에 분명하게 "내가 왕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아침 말씀에서 저는 다시 한번 내가 섬기는 왕은 예수 그리스도요, 그분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김동록: 비유는 아니지만, 최근에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왜 광야에서 사단이 돌더러 떡이 되게하라고 유혹한 그 기적을 예수님이 행하셨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보니 예수님께서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인해 기대되는 정치적 인기를 완전히 묵사발로 만드시더군요. 이로 인해 오히려 많은 제자들이 떠나가 버렸다고 나오고요. 또 이 일 이후로 단호하게 십자가의 길로 향하시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 나라가 사회경제적 정치적 성공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단호하게 보이시면서 오히려 십자가의 길을 택하시는 것을 보면서 제 인생의 방향성이 다시한번 크게 틀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하나님 나라가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고 봅니다. 실패한 듯 보이는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의 궁극적인 중심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심으로 인해 그분이 그렇게 원하고 가르치셨던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열어주셨습니다. 또 하나 있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을 부르시면서 만드신 제자공동체입니다. 인간적인 욕심으로 인해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모임이었지만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나가실 씨를 뿌리신 것입니다.

최인석: 저는 마태복음에 나오는 보물이 숨겨진 밭에 대한 비유가 와 닿았습니다. 밭에 숨겨진 보물은 그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 귀함을 알 수 없기에,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eKOSTA: 하나님 나라가 부분적으로 이미 드러나 있지만, 또한 숨겨져 있다는 이러한 속성이 본인의 삶의 방식이나 사역에 어떤 영향을 주시나요? 예가 있으시면 함께 이야기 해 주시겠습니까?

윤여재: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성경에서는 권속이라고 이야기하지요, 이 땅에서 살아가는 것은 많은 도전을 감당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먼저 하나님 나라가 저와 제 주위에 있고 임하였다는 사실은 저에게 큰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됩니다. 기도와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믿는 이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서로 격려를 주고받으며, 함께 영원한 진리를 향해 나아간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 공동체가 중요한 것 같고 교회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의 공동체와 교회가 완전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속에서 때론 상처를 받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의 소망이 끊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현재적 삶 속에 영향을 주는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러한 것처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오심을 저도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김동록: 제가 언급한 현재적 소명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강의를 하고 나서도 너무 현재적인 면만 강조를 했나 싶은 의아심과 함께 신앙의 열린 미래성과 어떻게 연결이 될까 하는 궁금증이 제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히브리서를 공부하다가 우리가 안식에 들어간다는 표현이 있더군요. 우리가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와 있고, 또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나가고 있다는 관점은 저 자신의 궁금점을 많이 해소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삶이라는 의미도 깨닫고 나니 더욱 심각해지더군요. 제자들의 공동체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에 대한 의미도 깊이 알게 되었습니다.

최인석: 드러나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속성 때문에 전도를 할 때에 천국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때론 공격적인 입장을 취하곤 해서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해하도록 돕는 것도 쉽지가 않습니다.

eKOSTA: 예수님께서는 왜 하나님 나라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으시고 비밀스럽게, 다른 표현으로는 신비롭게 (mysteriously)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을까요? 그 의도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윤여재: 원죄 이후에 이 땅에서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는 것이 예수 이전에는 아주 제한되었고, 예수님이 오심을 통하여 이제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고 임하고 있으며 오실 하나님 나라의 연속성을 나타내지만, 그 경험하지 못하였던 하나님 나라를 표현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비유로 하나님 나라를 설명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겨자씨 비유가 그렇고 밭에 숨겨진 보물이 그러한 예인 것 같습니다.

김동록: 사람들이 쓰는 언어가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있기에, 또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어느 한 두 문장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직접 하나님나라에 대한 설명을 하실 경우 오히려 명문화된 하나님 나라의 설명은 하나님 나라를 설명해 주기보다는 제한해 버리고, 또한 사람들이 율법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최인석: 김동록 멘토님과 윤여재 형제님께서 잘 말씀해주신 것과 같이 우리의 인식의 한계와 언어의 한계도 이유가 될 것 같구요. 또한 비유를 통해서 오히려 그 속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청중에게 익숙한 삶의 특정 부분에서 얻을 수 있는 직관력과 연결시켜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고수의 방법 아닌가 합니다.

eKOSTA: 이제 하나님 나라가 현재에 이미 임하였다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를 조금 옮겨가보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셨던 말씀, 특히 산상수훈과 같은 가르침에서 하나님 나라를 살아가는 윤리가 발견되는데요. 그런 가르침 실제 삶에 적용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음을 또한 보게 됩니다. 이러한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는 것이 좋을까요?

윤여재: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산위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참으로 하나 하나 따라가기가 역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론 그것에 따라 가려고 하면 때론 억울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즉, 내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속옷까지 주라, 십리까지 가라, 육체가 죄를 지으면 그것을 절단해 버리는 것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더 유익하다는 말씀이 절망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그것이 진리임을 알고 계속 노력하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러한 길을 먼저 걸어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심령이 가난하게 될 것이고 박해를 받을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모습이 복있다고 말씀하시며 천국이 그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청량제와 같이 제 마음을 확 씻겨 내립니다.

김동록: 예수님의 가르침이 너무 고차원적인 것이라서 (왼뺨까지 내어준다든지, 겉옷까지 준다든지, 원수를 용서한다든지) 실천하기가 힘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기 보다는 실천하라고 말씀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것은 혼자서 하기는 힘이 드는데, 같이하면 좀 나을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철저한 이해와 믿음이 있을때 적용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을 많이 봅니다. 공동체에서 같이 성경을 통해 하나님나라에 대한 예수님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하면 성령님께서 아주 큰 능력으로 그 공동체에 역사하실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최인석: 이런 어려움이 있는 데에는 지금 죄가 들어오고 왜곡된 상황에서 우리의 죄성으로 인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천국에서의 모습이 목표라고 한다면, 우리가 삶 속에서 변화를 받아서 회복되어져 가는 경험을 하는 것도 천국에 가까워지는 것이고, 다시 말하면 천국의 확장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 자체가 천국에 대한 경험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걸림돌이 되는 부분들을 쳐서 훈련시키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고, 또 그와 함께 내 의가 높아지고 자아가 더 커지지 않도록 체화해나가는 과정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런 과정등을 통해서 또한 더 많이 변화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eKOSTA: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이 강조되면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킨다' 혹은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라는 표현을 주위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데, 이 표현을 사용하실 때 혹은 들으실 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떠올리시나요?

최인석: 복음이 더 많이 전해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또한 천국을 알게 되는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또한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들이 이 지상에서도 부분이나마 이루어지도록 만들어가는 것이 확장이 아닐까요?

윤여재: 저는 마태복음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는 부분과 사도행전에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저희들에게 명령하신 것이지요. "가라", "이르러", '제자를 삼고 증인이 되라'하신 말씀에 힘입어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며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의 가장 기본적인 단계가 아닐까 합니다. 여기에 눌리고 억눌린 자의 고난에 함께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겠구요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성령 안에서 온전하게 거듭남이 있어야 겠지요. 한 밤 중에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 말씀하신 것처럼 중생함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니깐요.

김동록: 질적 양적 팽창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제가 성경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질적인 변화를 통해 양적인 확장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우리 개인의 이해가 깊어지고 삶이 깊어질 때, 즉 우리가 변화될 때, 우리 주위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마치 누룩의 비유가 그렇다고 할까요. 질적 변화가 있을 때 전염성이 생기는 것을 봅니다.

eKOSTA: 이제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과 현재성의 관계로 이야기를 계속 진행해 보겠습니다. 결국 우리들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삶은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고 현재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의 삶을 살려고 하는 모습일텐데요. 지난해 주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와 연결시켜볼 때에, 이러한 모습은 세상의 삶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날까요?

최인석: 저는 공부하는 학생이다 보니, 다른 문화와 믿음 등을 가지고 살아가는 또래 학생들과 그 동기에서 다른 부분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자신의 성공과 다시 말해 부와 명예를 위해서 제가 보기에는 맹목적으로 보일 정도로 치닫는 학생들을 보게 되면 저와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저도 그런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갈수록 생각이 변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갈수록 제게 주어진 상황에서 부끄럽지 않게 성실히 해야 하고, 이 일들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윤여재: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품고 살아가는 기독인과 세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비기독인의 삶의 차이는 비기독인이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나야한다고 말씀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니깐요. 세상이 나를 기이히 여기지 않고 잘 섞여 살아간다면 그것을 이상히 여기라고 성경에서는 말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제 자신의 삶이 세상과 아무런 마찰없이 잘 지낼 때에 더욱 두렵습니다.

김동록: 우리가 전공이나 직장을 정할때나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 순수한 학문적인 또는 인문적인 관심만으로 정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심지어 그런 경우에도 “위대한 학자”, 성실하고 성공적인 사회인이 되기를 꿈꾸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궁극적인 뜻이었다면 자신의 삶과  미래를 꿈꿀때 생각하는 내용이 많이 달라질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 “내가 보기에 좋은 것”을 허용해 주실 수도 있겠지만, 우리 마음이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려는 태도라면 성공적인 사회인을 목표로 하지는 않겠지요. 또 실패하거나 어려움을 겪는분들도 많은데 설사 실패해 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현재의 삶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믿고 나갈 소망 안에서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소위 신앙생활을 잘해야 한다는 것으로만 이해해서는 낮은 자리로 가신 예수님을 이해하고 닮아가는 것이 힘이 듭니다.

eKOSTA: 현재적 하나님 나라와 미래적 하나님 나라의 균형이 깨어질 때에 어떤 결과들을 가져오게 되나요? 혹시 생각나시는 예가 있으시면 함께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김동록: 미래적으로 극단인 예인 것 같은데, 밀양이란 영화를 보면서 다들 느끼셨겠지만, 교인들이 너무 착실하다는 것입니다. 착실하다 못해 전혀 현실적이지 않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너무 미래적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는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또는 전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겠구요. 섬뜩한 것은 교인들과 제 모습에서 별 차이를 못느끼고 답답해 하던 저의 모습입니다.

또 현재적으로의 극단이라면 마치 고지론이라고 알려져 왔던 그런 신앙의 태도가 생각이 나는군요.

윤여재: 하나님 나라는 정말 특이한 것 같아요. 예수님도 처음에 말씀하실 때, 천국이 가까와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꼭 미래에 올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 같지만 실상은 예수님을 통해 이미 와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한 긴장감은 좋은, 유익한 긴장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긴장감이 깨어질 때는 좀 극단적인 성향이 드러나지 않는가 싶습니다. 예를 드러,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게 되면 예수님 시대의 열심당원들과 초기의 제자들의 모습에서 보는 봐와 같이 이 땅에서 물리적인 무엇을 하려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 같구요. 지금 우리에게도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강조함으로써 우리 안에 기복적인 성향을 강화시키지 않는가 싶습니다. 그리고 미래적 하나님 나라를 강조하여 그쪽으로 치달으면 우리가 많은 들어 왔던 극단적인 이단의 형태가 나타나지 않는 가 싶습니다. 즉 어느 한 쪽을 강조하는 것은 본질적인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벗어나기 쉬움을 보게 됩니다. 그러니 이 둘의 긴장이 중요하지 않는 가 생각합니다.

최인석: 균형이 깨어졌다는 것이 하나님나라에 대한 묘사나 속성에 대한 설명 혹은 상상등이 치우쳤다고 발전시키신 형제님들의 말씀에 덧붙이겠습니다.

제가 처음 입교식을 할 때였습니다. 전도사님께 솔직히 천국에 대해서 너무 막연하기 때문에 믿는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다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전도사님께서는 온화하게 웃으시면서 "천국은 너~~~무 좋은 곳이예요"라는 말씀만 반복했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오히려 현실적인 의미로서의 천국보다 다가올 천국에 대한 것만 너무 강조하게 되면, 이렇게 공감하기 힘든 천국의 이미지를 강요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eKOSTA: 2008년 코스타의 주제가 '이 시대에 바른 길로 – 주의 나라가 임하시오며'입니다. 이번 코스타의 주제를 통해 기대하시는 바를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윤여재: 저는 개인적으로 올해의 코스타 주제를 너무 좋아합니다. "이 시대에 바른 길로" - 이 시대, 이 세대의 가치관을 휘어잡고 있는 물질주의적, 자기 중심적, 이기적 세계관에서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 화평의 세계관으로 우리의 삶의 방향을 푯대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주의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소원하는 주기도문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셨던 예수님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그러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코스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며 찬양하는 모습이, 사도바울이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라고 이야기하였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러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합니다.

김동록: 2007년도 주제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였었는데, 어느정도 부정에 의한 진리찾기라면, 올해는 더 발전해서, 이 시대에 가야할 진리의 길이 저희들에게 보여지기를 기대합니다. 처음에는 주의 나라에 대한 개념이 너무 광범위해서 약간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핵심개념이 참석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어서 좋은 신앙갖기를 넘어선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최인석: 저도 개인적으로 이번 코스타의 주제문구가 참 마음에 듭니다. 작년에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 라는 주제로 이 세대의 가치과 세계관 등과 성경적인 가치와 세계관에 대한 구분과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과 생각등을 남겼다면, 올해는 그렇다면 "바른 길"은 무엇인지 조금더 나아간 적용을 하는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2008년 코스타가 이미 시작되었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입니다.

eKOSTA: 오랜 시간 좌담회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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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KO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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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7년 8월호

1.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문태균: 안녕하세요, 저는 문태균이고 지금 앤아버 미시간에 있습니다. 박사 과정 학생이고 코스타는 이번 코스타가 네번째였고 조장으로 참석한 것은 세번째입니다. 반갑습니다.
백정진: 안녕하세요, 저는 오하이오 신시내티에 있고 코스타는 첫번째 참석이었고 이번에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안태상: 저는 안태상이라고 하고 조원으로 참석했고 두번째 참석이었습니다.

2. 이번 코스타 전체를 평가해보죠. 전체적으로 평가해주시고 가장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안태상: 은혜 많이 받았고 가장 좋았던 점은 역시 오전에 있었던 주제 강의 말씀이었습니다. 아쉬웠던 것은 다시 말씀 드리겠지만 조별 모임이 좀더 Formal한 형태가 있었으면 좋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문태균: 손희영 목사님 말씀이 굉장히 좋았구요, 조별 모임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번에 조별 모임이 쉽지 않았습니다.
백정진: 저도 주제강의 너무 좋았고, 아침에 코스탄들의 간증 시간도 짧았지만 굉장히 좋았던 것 같아요. 보통 간증에 거부감이 생기기도 쉬운데, 짧은 시간에 간결하게 잘 해주셔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3. 그러면 개별 프로그램을 평가해볼까요. 전체 집회에서 설교하거나 강의한 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이번 코스타의 주제가 잘 전달되었는지요.

안태상: 저에게 필요한 말씀을 많이 해주신 것 같아요. 하나님 말씀을 리마이드 해 주고 이런 것들에서 많은 은혜를 받은 것 같습니다.
문태균: 손희영 목사님께서 개인의 경험과 연결시켜주셔서 말씀해주셔서 좋았고 개인적으로 충분히 묵상하신 말씀을 잘 전달해주셔서 감사했고, 주제와도 정확히 부합했던 것 같고요. 약간 아쉬웠던 점은 올해는 시작하는 시간은 약간 느슨했고 끝내는 시간을 맞추려고 노력을 많이 하신 것 같은데 끝맺음할 때 갑작스럽게 해야 해서 약간 무리가 있지 않았다 합니다.
백정진: 유학생들이 삶에서 매우 조급하게 사는 경우가 많은데 손희영 목사님께서 그런 문제에 대해서 잘 말씀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저녁집회에서 마지막에 약간 시간에 쫓긴 것이 약간 아쉬웠습니다.

4. 오후에는 주로 세미나로 채워졌는데요, 세미나 운영이나 내용에 대해서 평가해주세요.

안태상: 세미나도 운영 면에서는 아주 좋았습니다. 강의실까지 안내해주시고. 내용도 참 좋았습니다. 노숙자 사역하시는 이야기에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세미나는 내용이 약간 업데이트되어야 할 것도 있었습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차원에서는 예전에는 많이 도움이 될 수도 있었던 것이지만 요즘은 인터넷 같은 데서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정보전달은 좀 지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태균: 세미나는 약간 기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강의를 들어본 느낌에서 강의가 강사님의 삶 속에 완전히 내재되지 못한 것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세미나 내용을 전체를 통제하시긴 힘드시겠지만 약간 노력해주시면 감사 하겠고요, 세미나 CD을 가지고 가서 계속해서 듣는 것이 좋다고 조원들과 나누었습니다.
백정진: 티엠의 경우 조원이 들으셨는데, 토론이 시간이 부족해서 정리가 안 된 것이 아쉬웠고, 세미나의 경우 너무 광대한 내용을 다루면 시간이 부족한 경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매우 좋았고요. 세미나 취소된 것이 좀 아쉬웠고요. 세미나 소개와 내용이 다른 경우가 있었는데 좀더 자세한 소개가 필요한 것같고요.

5. 일주일 내내 조원들과 함께 보내셨는데, 조활동이 잘 이루어졌나요? 어떤 점이 좋으셨고 어떤 점이 아쉬우셨는지요?

안태상: 조활동을 통해서 본인이 고민했던 것들 나누고 성경에 대해서 토의하고 이런 시간들은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저한테도 도움이 많이 되었고요. 아쉬운 점은 아까 말씀 드린대로 얘기를 하다 보면 다른 주제로 빠지는 경우가 많으니까 좀더 형식을 가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장님들이 조모임을 좀더 이끌어가셨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문태균: 조장입장에서 조장이 균형을 잡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준비하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겠죠. 작년에 비해 올해 준비를 못해서 어렵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침 시간에 조장 모임이 많이 있었는데 조별 모임에 약간 방해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데요, 조장 모임을 다른 시간에 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백정진: 기혼부부들, 처음 참석하신 분들이었는데, 감사하게 잘 따라주셨습니다. 큰 문제는 없었는데요. 조별 모임 장소를 싸인 업을 했었는데, 그게 조금 안내가 안 되어서 싸인 업 하지 않고 자리를 차지한 경우가 있었는데, 제이제이 코스타 때 안내를 더 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멘토님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감사하고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조장들이 멘토님들을 초청 해야 하는데 처음 참석하다 보니까 잘 몰라서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다.

6. 찬양이나 금식 기도회, 엑스포, 그리고 상담 등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안태상: 개인상담을 하지 않았는데 저희 조에 목사님이 오셔서 말씀해주셨는데 참 좋았던 것같애요. 질문도 하고 대화도 하고 참 유익했던 것 같습니다. 찬양도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따라 부르기 어려웠던 것도 전혀 없었고요.
문태균: 찬양이 참 좋았습니다. 너무 길거나 짧지 않고 예배 전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으로 적당했고, 금식 기도회도 좋았습니다.
백정진: 찬양이 참 좋았고요. 평양 과기대에 대한 정보를 갖고 같이 기도했던 것도 좋았고. 조원 중에 상담하신 분 중에 다른 말씀을 하신 경우가 있었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7. 이외에 운영에 관해서 코스탄들이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안태상: 세미나의 경우 매년 같은 내용으로 하신 경우가 있었습니다. 중요하기 때문에 반복하시겠지만 제목이라든지 내용을 확실하게 소개해서 동일한 것을 또 듣지 않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운영 중에 가장 힘든 점이 식사 통제하는 것일텐데 올해 더 복잡한 것 같았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고민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웹사이트에 좀더 많은 정보가 올라왔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휘튼 칼리지 지도라든지 디렉션이라든지 코스타 내용에 대해서 좀더 자세한 내용들을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태균: 식당에 인원을 더 배치해서 줄을 잘 설 수 있도록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식사 시간이 모자라진 않았지만 상당히 빡빡했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을 좀더 신경 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백정진: 저의 조는 공대생들이 많았는데 그런 분들은 미디어에서 파워포인트라든지 이런 것에 신경을 많이 쓰시더라구요. 실수가 좀 많지 않았나 하고요. 그리고 코스타 보이스가 많이 도움이 되었고요. 처음으로 조장을 하는데 정보를 제공해주니까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미나가 어떤 강사님의 경우 너무 많은 내용을 한번에 하려고 하니까 무리가 있는 경우가 있었고요. 그런데 어떤 세미나 강사님들은 이메일을 제출하도록 해서 계속 연락을 취하도록 해주셔서 좋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연락이 없네요. (웃음)

오랜 시간 말씀해주셔서 감사 드리고, 코스타 사역에 계속 관심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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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7년 2월호

1. 간단하게 자신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이정희: 현재 Washington DC에서 행정학 박사 과정에 있습니다. 지역교회와 KBS라는 성경공부를 섬기고 있고요.
정대석: 미시간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콜로다도에서 포스트닥 과정에 있습니다. 지역교회를 열심히 섬기고 있고요.
장선희: 얼마 전에 컨사스에서 박사학위를 마쳤습니다. 저도 지역교회를 섬기고 있고요.
김진태: 저는 김진태라고 합니다. 미국에 온지는 4년 되었구요. 일리노이주에서 3년 남짓한 유학생활을 마치고 현재는 시애틀 근교의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2. 최근 한국과 미국의 교회를 보면, 복음 자체가 ‘자아’가 중심이 된 채로 왜곡되어 있는 듯 합니다. ‘자아 중심의 왜곡된 복음’을 어떻게 규명하시고 계신지, 그리고 그에 따른 실례가 있으면 들어 주시겠습니까?

이정희: 근래의 교계의 큰 뉴스거리 중 하나가 한국에서의 개신교인의 숫자가 줄어든 데 비해서 카톨릭 신자는 거의 많게는 두 배 정도까지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개인의 구원보다 더 강조되는 카톨릭의 공동체성이 현대인들에게 어필했다는 것입니다. 개신교의 분위기가 개인의 문제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자아의 문제에 초점을 집중하다보니까 오히려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다른 속성인 공동체성, 교회의 모습 등을 통해서 함께 성장해 나가고 서로 격려하고 힘이 되는 측면이 약화되어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장선희: 복음이 왜 자기중심적으로 나타나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생활이 풍요로워지고 의식주의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복음을 하나님의 은혜라는 측면에서 받아들이기보다는 교양이나 액세서리로서 혹은 내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방식으로서 복음을 받아들여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근본적으로 들어간다면 복음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수단이 되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정대석: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크리스찬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복음 안에서 찾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지만, 그것이 우리를 높인다든지 우리의 행복과 안위를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쁘시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거거든요. 그래서 결국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다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이 되어야 하는데, 그 반대로 내가 주인이 되어버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자기 중심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결국 그래서 기복주의로 많이 흘러가는 것 같아요. 내가 좀더 행복하고 좀더 잘되고 좀더 좋아지는 모습으로 자꾸 교회의 분위기나 경향이 흘러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복음, 즉 나를 죽이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모습을 내세우는 교회는 신자들이 줄어들게 되고, 그것이 아니라 복받고 형통하는 것을 강조하는 교회는 신자들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지 않나 합니다. 한국이나 미국 같이 장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그런 흐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진태: 자아중심주의(egoism)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자기의 유익/이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가장 상위의 목적이 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수단에 대해 별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아중심주의에 의해서 왜곡된 복음은 개인이 불편할 만한 요소가 제거되거나 혹은 다른 것으로 대체된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예로는 흔히들 이야기되는 반쪽짜리 복음을 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강조하지만 인간의 타락은 강조하지 않는다든지, 죄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하지만 죄의 추악함은 강조하지 않는다든지, 십자가의 승리를 강조하지만 십자가의 고난은 강조하지 않는다든지, 회복과 축복을 강조하지만 변화와 순종을 강조하지 않는 등의 모습이 그런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석형제님이 언급하신 기복신앙의 흐름에 대해서 동의하면서,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을 세련된 기복신앙이라고 부르고 싶은데요. 일례로 예수를 믿음으로써 자아가 회복되고 자신의 잠재력을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은 70년대의 예수믿으면 복받는다는 다소 투박했던 기복신앙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인 것 같습니다.

eKOSTA: 그러면 그런 흐름이 역사 속에서 계속 존재했나요, 아니면 20-21세기 들어서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이라고 보시나요?

정대석: 교회 역사나 흐름에 대해서 자세히 생각을 안해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전혀 없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런 현상이 점점 심해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진태: 세상에서 주목받는 사상과 가르침이 교회에 흘러든 예는 역사적으로 많이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하구요. 개인주의나 자아중심주의가 최근에 인기있는 사상이기 때문에 현대에 교회에 흘러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그렇다면 그 전에는 개인주의적인 현상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현대의 사조를 개인주의, 물질주의, 상대주의로 규명해서 개인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전에는 개인주의적인 모습이 덜했는지, 아니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궁금하군요.

이정희: 다른 모습으로 많이 나타났지요. 예를 들어 전체주의가 만연하던 시기에는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교회보다는 편승하는 교회도 많이 있었습니다.

eKOSTA: 편승을 하게 되면 복음이 어떤 식으로 왜곡되나요?

이정희: 극단적인 이야기이지만 나치 정권 하에서의 고백교회라든지 본회퍼의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습니까. 그 신앙을 본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이 하구요. 사실 그 고백교회가 당시의 대다수를 차지하지는 않았고, 나치병들을 축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세속권력과의 관계 속에서 세속권력이 교회를 지배하려고 강하게 들어왔을 때에 저항했던 교회도 있지만 그러지 못했던 경우도 많이 있었지요. 지금과는 반대의 경향이긴 했지만.

eKOSTA: 그런 경우에는 국가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라는 방식으로 왜곡이 가능한가요?

이정희: 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역사적인 예도 존재하구요.

3. 그런 ‘자아 중심의 복음’이 미치는 폐해는 얼마나 되며, 그런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정희: 폐해는 원론적으로 얘기한다면 복음에서 한발짝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의 본연의 모습 그리고 신앙인의 본연의 모습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인 것 같습니다.

장선희: 자아 중심의 복음이 들어온다면, 하나님께서 의도하시는 복음이 왜곡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폐해가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알게 하시려는 풍성하신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누릴 수 있기 때문이죠. 자신 외의 폐해라면 공동체를 파괴할 수도 있는 폐해도 일어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나 중심이니까 나랑 상관없으면 관여하지 않고, 내게 폐가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어도 순종하지 않게 되기 때문에 공동체를 파괴하는 결과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김진태: 복음을 풍성히 누리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폐해가 돌아온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저는 그런 폐해가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느냐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는데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전적인 타락의 교리가 상대적으로 충분히 강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복음에서 이것만큼 개인이 불편해할 만한 요소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두 가지의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첫번째는 개인적인 경건의 생활이 공허한 행동으로 전락할 수 있는 가능성입니다. 말씀묵상이나 기도는 경건생활의 참 중요한 일부이지만, 그것이 왜 필요한지는 강조되지 않은 채 행동 자체만이 강조되는 것은 그러한 행동이 율법이나 또는 엔터테인먼트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 피상적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를 고백하며 서로에게 그리스도의 용서를 선포할 수 있을 때에, 그 공동체는 삶의 밑바닥까지 나눌 수 있는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타락이 충분히 강조되지 않을 때에는 교회의 정체성이 상실된 채 피상적인 친목모임 이상의 모습을 기대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정대석: 자아 중심의 복음으로 가다보면, 예수님은 빠지게 되고 자기 편한 방식으로 복음을 해석하거나 적용하는 폐해가 있을 것 같습니다. 공동체의 끈끈한 모습이나 서로를 위하고 아껴주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되는 모습보다는 푸석푸석한 모래 같은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eKOSTA: 자아 중심의 왜곡된 복음의 특징으로는 죄성, 즉 하나님의 거룩함을 강조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하는 복음의 형태, 그것 때문에 나타나는 기복주의적 현상으로 현재까지 정리가 되었구요. 또한 폐해로서 은혜를 풍성히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 언급되었는데요. 기복주의 신앙이 만연한 상태에서, 극단적으로 예수그리스도가 이땅에 오신 것도 내가 너무나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복음이 선포되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 반쪽 복음만을 믿을 때에 정말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장선희: 우리가 아무리 완벽하게 믿는다고 노력해도, 모두 잘못 믿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복음을 100%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어요. 다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 혹은 왜곡의 가능성을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즉 잘못 믿는 부분이 있어도, 예수님의 구원에 대한 신앙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eKOSTA: 어떻게 하면 이런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장선희: 개인적인 현상들이 나타나는 이유가 복음을 잘못 알기 때문일수 도 있을 것같아요. 교회만 다니고 복음을 잘 못알고 있는, 하나님과 관계를 제대로 잘 못하고 있는 신자들이 많아서 그런것 같기때문에 복음이 제대로 선포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세워진다면 현상해결이 될것같습니다.

이정희: 말씀에 기초를 한 신앙, 문화나 생활에서 들어온 세속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신앙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바탕으로 하는 복음이 제대로 세워지도록 해야겠습니다.

김진태: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복음을 균형있게 강조하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속을 동일하게 강조함으로써, 우리 각자, 그리고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모습을 성경적으로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장선희: 현상들이 나타나는게 복음이 잘못된 건가요? 아니면 복음은 제대로 들어가는데 성령의 열매가 잘 안나타나는 간가요?

eKOSTA: '교회사에 나타난 성령의 열매'라는 책에서 하우드 스나이더는, 프랑케, 진센도르프, 웨슬리에 의한 부흥의 특징에 대해서 썼는데요, 결국 복음이 제대로 들어갔다면 올바른 성령의 열매가 맺혀야 한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장선희: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인 사람들은 개인적인 행동을 할수 있지 않나요?

이정희: 웨슬리는 개인적인 성령체험이 신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분의 삶을 보면 공동체를 많이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개인의 영성이 증진되는 과정속에서 공동체의 영성이 증진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둘중에 하나가 떨어지면 불완전해지는 것같습니다.

eKOSTA: 복음주의에서 개인회심의 강조. 세례를 받거나 교회를 다니면 구원을 받았으리라고 전제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죄에 대한 지적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하겠군요.

4. ‘내적 치유’가 기독교에 미친 좋은 영향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 ‘지나치다’는 비판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내적 치유’류의 ‘복음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이 가지는 장점과 단점 (특히 복음을 왜곡하게 될 위험성)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정희: 내적치유는 한국에서80말, 90년대초에 나와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를 제시하고 분석하는데는 성공했지만 해결책으로 복음의 삶, 공동체의 삶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해결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정대석: 예수님이 사역하신 것을 보면 복음을 전하시기 전에 내적뿐만아니라 외적치유의 사역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심적인 문제들을 고침으로 복음으로 다가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야 하는데 복음보다는 치유에 중점을 두고 복음까지 연결되지 못하고 멈추어 버리는 그런 상태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현대에 기복주의등과도 연결되는 것같습니다.

장선희: 사람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하나님의 만지심을 통해 사람들의 내적 상처가 치유되는 것이 장점이지만 단점은 많은 경우 치유가 근본적인 치유가 되지 못하고 내적치유가 반복되어지는 모습만 남아있어서 개인의 복음은 치유의 부수적인 것이 되어 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같습니다. 자기위안을 받는 선에서 그쳐 버리는 것 같습니다.

김진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가지고 있고 고민하고 아파하는데 예수님이 이해하고 치유해 주시는 것이 위로로 다가선다는 것이 장점이지만 결국은 자기에만 머무르게 되며 치유를 주시는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치유를 받는 자신에만 집중이 되어버립니다. 초점이 하나님에게 맞춰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일단 내적 치유가 가지는 장점은 여러 가지 이유로 상처입은 사람들, 더 나아가서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큰 소망이 될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상처입은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교회생활을 할수록 더 깊이 깨닫게 되는 점인데요. 이런 분들에게 예수님이 그 아픔을 전적으로 이해하시고 위로해주신다는 사실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망이 될 것입니다.

내적 치유의 단점이 있다면, 치유 자체, 더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에 초점이 머무를 수 있는 위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Love the giver, not the gift.'라는 말이 있는데요. 치유는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선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초점은 회복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회복을 허락하시는 주님께 있어야 하고, 주님 안에서 아픔이 치료되고 자아가 회복되었다면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경우, 특히 치유의 과정이 드라마틱한 경우, 여전히 초점이 지속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머무르고 있다든지, 혹은 치유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치유의 과정이나 방식을 더 의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KOSTA: 복음을 제대로 받아들인다면 상처 그 자체가 상대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될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나의 죄성과 하나님의 크심 앞에서, 어쩌면 상처가 그대로 회복되어야 하는 것 아닐찌요?

김진태: 죄라는 개념이 상처나 연약함의 개념으로 대체가 되어서 내적치유를 통한 연약함과 상처의 치유가 죄에 대한 회개에 대한 중요성을 놓쳐버리는 상태가 되는 것이죠.

5. 역사 속에 늘 있었던 문제이기는 하지만, 예수님이 피로 사신 교회 공동체의 공동체성 붕괴 현상은, 현대에 들어 더 두드러져 보입니다. 만일 교회 공동체가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한다면 어떠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것을 위해 우리가 걸어야 할 한걸음은 무엇일까요?

김진태: 교회공동체를 다른 공동체와 구분짓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피값을 치르고 공동체를 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신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가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구성원 각자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구원을 감사하며, 그것 자체가 개인과 공동체의 유일한 정체성이 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선희: 교회 공동체의 본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몸을 이루는 하나 하나의 지체로 부르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각자가 각 지체로서의 역할을 깨닫고, 그런 지체들의 충실한 역할을 다 해 나간다면, 진정한 공동체성이 회복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대석: 지난 주에 빌립보서 2장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사랑과 긍휼을 주셨고, 또한 한 성령으로 섬기게 해 주셨는데, 그 중에서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져야 하는 것은 예수님처럼 낮아지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고 나누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우리의 내면을 잘 살펴본다면, 공동체를 위한다고 하면서도, 내게 유익이 돌아오지 않으면, 헌신하게 되지 않는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본받고, 다른 사람을 위해 죽기까지 섬길 생각을 한다면, 진정한 공동체성이 회복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KOSTA: 예전에 이코스타에서 많이 이야기했던 것 중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몇가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 첫째는, 내가 속한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는 그런 공동체가 아니라, 그 공동체가 없으면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성 자체를 유지할 수 없는 그런 공동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공동체없는 신약시대의 신앙생활은 찾아볼 수 없으니까요. 또 하나는, 공동체가 그저 만나면 서로가 즐겁고 기쁜 관계를 넘어서, 서로의 죄를 고백하고 아파할 수 있는데 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 죄를 고백할 수 있다면, 그 가운데서 서로를 진정으로 섬기는 낮은 자리에 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대석: 또 한가지를 생각해 본다면, 일의 효율성을 생각하지 않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현대에는 어떻게 하면 인원을 늘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모임을 유지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기 쉽지만, 진정한 공동체를 위해서는 그런 효율성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을 바라보면서 섬기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정말 비효율적으로 보이겠지만요.

6. 지역 교회 공동체와 코스타와 같은 더 넓은 범위의 공동체 사이의 갈등과 긴장이 있기 마련인데요, 어떤 방식으로 공동체와 관련을 맺고 계신지요?

정대석: 만일 코스타를 섬기는 일이 지역교회를 섬기는 일과 충돌을 일으킨다면 갈등이 생기게 되겠지요. 특히 코스타를 어떤 형태의 지역교회로 생각하게 되는 경우에 더 갈등이 있을 수 있겠지요. 사실 서로를 견제하고 갈라 가지는 갈등관계가 아니라, 상호 협력관계에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정희: 한국에서는 파라처치와 로컬처치의 갈등이 적잖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편적 교회의 관점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협력한다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하는 생각합니다.

정대석: 동질 문화 가운데 있는 한국 교회는 좀 더 공동체 이기주의에 빠지기 쉬운 것 같습니다. 우리만 좋으면 된다는 집단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서, 다른 모습의 사람들에게 좀 더 마음을 열고 다가서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김진태: 저는 그동안 지역교회를 넘어선 더 넓은 범위의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소속되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갈등과 긴장을 느끼지는 못했구요. 현재는 직장 때문에 이사온지 오래 지나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에, 교회 예배와 소그룹에 성실하게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8. 가정교회, 셀모임, 속회 등 소그룹 속에서 공동체성을 깊이 느끼신 경험이 있으신지요. 또 부족했던 점이 있었다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진태: 시애틀로 이사오기 전에 일리노이에서 다녔던 교회에서 공동체성을 깊이 느꼈습니다. 속해있던 소그룹이나 심지어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룸메이트와의 관계에서도 살아있고 역동적인 교제를 느낄 수 있었구요. 삶을 나누고 서로를 위해서 중보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었습니다. 아쉬웠던 점이라면 역동적이고 강한 교회의 문화가 주님 안에서 훈련받고 동질성을 느끼기에는 더없이 좋았지만, 반대로 새로운 사람들에게는 약간 높은 장벽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점입니다. 교회 공동체의 역동성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의 개방성을 병존하는 문제는 제게 아직도 숙제처럼 남아있는 주제입니다.

장선희: 나와는 다른 사람들에게 오픈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공동체의 일원끼리는 진정한 한 가족같이 '닫혀' 있지만, 외부 사람들이 들어와서도 편하게 적응할 수 있는 '열린' 공동체가 되기 위해 정말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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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6년 8월호

1. 자기 소개
eKOSTA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각자 자신의 소개를 해 주시겠습니까? 미국에 언제 오셨고, 또 어떻게 KOSTA에 참석하게 되셨는지도 말씀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김석영 저는 University of Arizona에 작년 8월에 왔고요,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KOSTA는 동생이 적극 추천해서 올 초 아리조나 gpKOSTA에 참석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고요, 그 곳에서 한 형제님의 권유로 이번 KOSTA 컨퍼런스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청년부 소그룹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있고요.

서민경 저는 2001년에 미국에 와서 Music Therapy를 공부했고요, 이번에 Ilinois로 학교를 옮겨서 special education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오기 전에 한 자매님을 만났는데, 그 분의 추천으로 KOSTA에 2004년부터 3년째 참석하고 있고요. 교회에서 제자훈련 프로그램을 섬기고 있고, 동시에 유아부 교사와 중보기도팀을 섬기고 있습니다.

변정민 저는 1999년부터 Florida State University에서 Information Science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KOSTA참석은 이번이 처음이고요, 예전에 JAMA를 참석해 본 경험은 있습니다. 이번에 Florida gpKOSTA 준비위원을 맡게 되어서, KOSTA집회를 참석하게 되었고요. 교회에서는 아내와 함께 권사님 한 분이 진행하시는 성경공부를 하고 있고, 중보기도 지원팀과 성가대를 섬기고 있습니다.

2. 전체 주제
eKOSTA 우선 이번 Kosta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이번 Kosta의 주제인 “Entrusted Reconciler”가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청년 학생들에게 적절한 것이었는지 생각해 볼까요?

서민경 서울을 떠나서 미국에 온 후에, 깨닫게 된 것은 우리가 화해자의 역할을 해야 하는구나 하는 점 이었습니다. 이번 KOSTA를 통해 옛사람과의 제 자신과의 화해라는 점을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옛사람의 모습으로 인해 다른 사람과의 힘들었던 관계도 회복되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런 화해를 통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너무 귀한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다른 조원들도, 옛 자아와 화해하는 경험을 많이 했다라는 고백을 들었었습니다.

변정민 이번 KOSTA의 ‘화해자, 화평자’라는 주제가 예년에 비해 사실 다소 무거워진 내용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조모임을 통해서 주제와 관련한 깊은 이야기가 나누어질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교회 내에서의 갈등들이 나누어 질 수 있었고, 그런 가운데 서로의 경험을 나누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동일한 문제를, 어떤 가정은 극복한 경험이 있고, 또 다른 가정은 그 과정 중에 있는 경우가 있어서, 많은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화해자는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미국에서 와서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고 또 믿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우리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데, 세상과의 관계에서 왜곡된 모습이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돈이나 명예에 대한 관계를 잘 정립해야 하겠고, 또 회복되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집회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한 ‘기본적인 복음에 대한 확인’을 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김석영 저 역시 서민경 자매님과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요, 이번 KOSTA를 통해 ‘자신과의 화해’라는 측면을 깊이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 같은 경우는 미국에 처음 올 때부터 무슬렘 학생들에 대한 도전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요, 우리가 다른 민족 학생들과 미국 학생들 사이에서 복음을 통한 화해자의 역할을 할 수 있겠구나라는 도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 조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교회에서 상처를 받았다거나, 학교에서 지도교수와의 갈등으로 힘들어 하던 사람들이 그 관계를 회복하고 화해하려는 구체적인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주제가 다소 무겁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집회가 진행되면서, 이 주제가 우리의 실생활과 깊은 관련이 있다라는 점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eKOSTA 사실 KOSTA 집회 기간 동안에는 ‘화해자’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면서, ‘자신과의 화해’라는 부분은 많이 다루지 않았다고 생각되는데요, 두 자매님께서 동시에 언급을 해 주신 것은 좀 특이하네요.

김석영 목요일 아침에 QT 나눔을 하면서, 화해해야 할 대상을 구체적으로 나누어 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어떤 조원은 교수님과의 화해를 이야기하셨었지요. 반면 저의 경우는, ‘나 자신과의 화해’라는 부분이 떠올랐습니다. 나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하고, ‘척’하는 조금은 위선적인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이유가 무엇일 지를 고민했었습니다. 그런 중에, 그 이유가 나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었구나 하는 부분을 깨달았고, 마지막 QT에 그런 부분을 내려 놓고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서민경 다른 사람과 화해를 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는, 예전의 변화하기 전의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서 볼 때가 아닌가 싶어요. 그런 경우에 다른 사람을 잘 용서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요. 다시 말해서,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떤 특정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볼 때 그렇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예전의 자신의 모습을 용서한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의 화해자의 삶을 살아 낼 수 있겠지요.

eKOSTA 우리의 계획과 기대를 넘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몸소 체험하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군요. 이번에 다룰 질문으로 넘어가지요. 취지문에서 언급되었듯이 ‘한민족 디아스포라 청년들로서 화목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여러 막힌 담들을 허물고, 화평의 관계를 회복하여 가정과 교회와 사회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주제가 전체 집회를 통해 잘 전달되었다고 보시는지요? 그렇지 않다면 어떤 점이 부족했을까요?

변정민 두 자매님께서 ‘자신에 대한 화해’라는 부분을 말씀하셨는데요, KOSTA 집회동안 찬양시간을 통해 기뻐 뛰면서 찬양하고 있는 참석자들을 보면서, 혹시 참석자들이 눌려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구나, 이번 KOSTA 집회 동안의 특징이 상담 신청 횟수가 많이 늘었다고 들었는데요, 그것이 우리가 많은 문제를 안고 집회에 참석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고요, 그런 문제들이 화해자라는 주제를 통해 많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집회를 본다면, QT와 성경강해를 통해, 복음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화해자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도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김석영 첫째날 김형익 목사님의 특강을 통해 ‘복음을 살아내야 한다’는 도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 그 말을 들으면서, 살아내기에 참 어려운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QT와 성경강해를 들어가면서, 지금은 완벽하게 살아갈 수는 없을지라도 ‘복음을 살아내는 삶’에 조금씩 근접해 가면서, 화평케하는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서민경 집회를 통해, 내가 복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않았었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기존에 복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원근감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다시 말해, 복음의 어떤 부분은 참 가깝게 느껴지고, 또 어떤 부분은 멀게만 느껴지던 것들이 많이 해결된 것 같다는 것이지요. 복음을 총체적으로 마음 깊이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김석영 QT에 나온 질문들이 너무 어려웠지 않았나 싶어요. 평소 성경공부에 익숙하신 분들은 말씀을 잘 받을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은 좀 버거워한 것도 같고요. 그래서 익숙하신 분들만 나누는 상황이 생긴 것도 같고요.

변정민 작년과는 달리, 아침 강해를 한 분이 진행해 주셨고, 더구나 그 강의를 QT를 통해 묵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는 너무 좋았습니다. 저희 조가 아이들이 있는 상황이어서, 큐티나눔을 깊이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좀 특수할 수는 있었겠지만요.

eKOSTA 이번 주제를 KOSTA 이후에 Entrusted Reconciler의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를 고민해보았으면 하는데요. 새롭게 깨닫게 된 점들은 공동체적으로 또 개인적으로 어떻게 적용하고 계신가요?

김석영 사실 처음 이 주제를 접했을 때는 ‘복음을 살아내는 그리스인’이라는 어렵고, 무언가 큰 일을 해야할 것같은 부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회를 마칠 무렵에는 우선 내가 지금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부터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먼저 실천에 옮긴 내용은 조원들을 챙기는 일이었습니다. 싸이도 하지 않았었는데, 조원들과 만나기 위해 싸이도 시작했고요. 솔직히 제가 조장으로 섬기겠다고 하면서, 가장 자신이 없었던 부분이 바로 집회 이후에 조원들을 섬기는 부분이었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을 실천하는 것으로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던거죠.

서민경 솔직히 저도, 지속적으로 성실하게 하는 점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용서한 자, 화해한 자로서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이후의 삶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작년 조원들과 올해 조원들까지 열심히 연락하고 나누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사실, 조원들과 기도제목을 나누고 나서도, 열심히 끝까지 기도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는데, 이번에는 기도제목을 받고는 꾸준히 기도하려고 애쓰고 있고, 그래서 그런지 다른 조원들도 기도제목을 계속 나누고 있습니다.

변정민 저의 경우는 화해자의 삶을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적용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집회 기간을 통해 가능한 한 많은 모임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지, 집회 대신에 중보 기도실과 통곡의 방 등에서 섬기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조원들과 함께 철야기도회까지 하게 되었고요. 특별히, 통곡의 방을 섬기는 가운데 한가지 알게 된 것이 있는데, 많은 자매님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매여서 영적 공급을 많이 받지 못하고 계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통곡의 방에서 잠시 아이를 돌보는 일이지만, 이것이 다른 자매님들께서 영적회복의 기회를 드리는 화해자의 삶을 사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또 한가지는 제가 사는 지역에 있는 한 형제가 KOSTA 집회 3일 전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이 있었는데, 돌아 와서는 그 형제가 기도원에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5시간을 운전하여 기도원에 가게 되었고, 그 곳에서 그 형제의 아내 되는 자매가 또 영접을 하셨어요. 결국 그 부부가 이번 주에 침례를 받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저는 작은 일들을 하는 가운데, 기대하지도 않았던 화해자로서의 삶을 살아지는 경험을 하고 있답니다.

3. 조별활동
eKOSTA 이번 KOSTA는 아침 성경강해와 연계된 말씀 묵상을 중심으로 소그룹 활동에 강조점을 두고 개인적인 단위까지 말씀을 공유하려는 시도를 했는데요, 말씀 묵상이나 조별 모임 활동에 대해서 평가해주시지요.

서민경 첫째날을 제외하고는 중보기도팀에서 섬겼기 때문에, 강의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강의를 듣고 싶다는 욕심을 있었지만, 그 마음을 내려 놓고 기도에 집중할 수 있었고요. 조장이 조원들을 잘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부조장으로 섬겨주셨던 형제님께서 너무 잘 해 주셨고요, 저녁 조모임에서 조원들이 각 강의에서 배운점을 나누어 주셨고요. 사실 큐티가 어려웠던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로 인해서 몇 조원들이 ‘큐티가 너무 어려워요. 저는 평소에 성경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라는 고백을 먼저 하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성경공부에 경험이 많은 조원들이 도움을 주면서, ‘아 이렇게 하는 거라면, 나도 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소 어려웠던 큐티였지만, 그 덕분에 서로의 약점을 나누고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귀한 계기가 되었지요.

변정민 집회 이후에 이메일과 전화를 통해 삶을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중의 한 조원은 교회와의 갈등이 예전보다 더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며 잘 이겨나갈 희망이 있다는 말씀을 해 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집회 기간 동안, 저희 조는 조원들이 먼저 기도실에 가자고 제안하는 엑티브하게 활동해 주셨습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기혼 조임에도 불구하고, 숙소가 많이 떨어져 있어서 저녁 조별 모임을 하는데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애들을 재우고 빌딩을 옮겨서 조모임을 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김석영 저희 조에도 다른 건물에 숙소가 배정된 분이 2명이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친해 지는데 조금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조원 중에 자매님들이 좀 새침하셔서, 분위기가 조금 어색했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에는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오픈하셔서, 집회 이후에도 잘 교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제일 자신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채우시는지를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집회 기간에 조를 섬기는 일에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고, 반면에 집회 이후의 섬김에는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제 생각을 넘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서민경 이번에 방배정이 늦게 되었던 분들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진정한 섬기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4. 세미나와 tmKOSTA
eKOSTA 이번에 짜여진 세미나 커리큘럼에 대해서 평가해 주십시요. 그리고 작년에 이어 기본적인 신앙에 관한 Open세미나와 tmKOSTA가 동시에 열렸는데 이점에 대해서도 평가해주시겠습니까? tmKOSTA의 커리귤럼과 진행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변정민 저는 tmKOSTA에 참석하지 않고, 기초 세미나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tmKOSTA에 참석하셨던 한 형제님께서, 평소에는 같은 전공하시는 분들과 만나서 이야기해 보면 어딘가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tmKOSTA를 통해서, 자신의 전공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해결해 나가고 있는 동역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하시더라고요. tmKOSTA가 집회 기간으로 그치지 않고, 내년 KOSTA 집회까지 같이 고민하고 준비하기로 했다고 하셔서 많은 기대가 되고요.

김석영 저도 tmKOSTA에는 직접 참석은 안 해서 그 부분은 넘어가고요, 오픈 세미나는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도록 했던 것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조원 중에 한 분은 평양과기대 관련된 세미나 들어가셨는데 많이 도전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미국에 있는 무슬림 학생들을 보면서 선교에 대해서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세미나를 통해서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팽동국 교수님의 세미나, 윤행숙 선교사님의 무슬림 자매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기회를 갖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서민경 KOSTA를 여러 번 참석하신 분은 tmKOSTA에 가지 않으셨고, 다른 분은 전공과 신앙을 연결할 수 있구나 하는 도전을 받았고 고민하는 선배들을 보니까 자신도 노력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다고 했고요, 다른 분은 주제가 지엽적이고 자신의 논문과 연관된 것이 아니었나, 토론 시간이 너무 적었고 등 아쉬운 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세미나에 대해서는 너무 좋았고 들은 세미나를 씨디를 구입해서 다른 분들께 주겠다고 한 분들도 있었구요.

5. 이외의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
eKOSTA 집회 기간동안 찬양시간, 책소개, 기도의 밤, 중보기도실, EXPO, Kids KOSTA등 많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어떠셨는지요? 김석영 찬양 시간은 개인적으로 좋았고 조원들도 손을 들거나 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있는 분도 계셨는데, 그 점에 대해 결국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요. 반면, 기도의 밤은 좀 짧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간단하게 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