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코스타 상담실에서는 많은 코스탄들이 궁금해 하는 질문을 가상의 코스탄과 멘토와의 대화를 통해 풀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곳에 실린 의견은 멘토님 개인의 의견이며 코스타와 소식기관의 의견은 아닙니다.

진로 및 직장생활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너무 제 적성과 맞지 않아서 고민입니다. 그렇다고 갑작스레 그만둘 수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기 전에 제대로된 선택을 하는 것이 필요한 것같은데,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신앙적 조언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진로에 대해서 상담할 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 그런 선택이 가능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같습니다. 일을 시작한 이후 너무 적성에 안 맞아서 괴롭지만 그렇다고 다른 일을 찾는데는 한계가 있는 것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앙인으로 지혜롭게 행동하는게 뭘 의미할까요. 직장을 적성에 맞추어 찾는다는 말은 그 자체로는 심각한 문제이겠지만, 적성에 맞는 직장을 찾을 여유가 없는 냉혹한 현대사회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다소 낭만적인 관념으로 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일(노동)은 하나님이 창조세계가운데 저희에게 주신 축복이지만, 죄로 인해 왜곡된 세상속에서는 저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실제적으로 고민하고 갈등하게 만드는 것이 됩니다. 더구나 노동이 생존에 위협을 주는 현장이 되어버릴 때 저희는 당황하고 불안하게 되며 또 세상에 편승하는 연약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노동 그 자체가 신성하고 또 소명이라는 말을 들어왔는데 노동의 현장에는 정작 저희 영혼을 병들게 하고 가치관을 비트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거대한 힘이 또아리를 틀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적성에 맞는다 안 맞는다하는 조금은 개인적인 고민과 갈등을 조금 더 거시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우리의 직장은 왜곡된 이 세상에서 여전히 신음하는 인생들을 향한 예수님의 탄식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직장은 또한  예수님을 닮아 새로 태어난 저희 그리스도인이 예수님과 함께 탄식 (기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그루터기 씨가 그런 탄식 가운데서 자라나는 곳이 되기를 도모하는 신실함으로 살아가야 할 하나님의 거룩한 땅입니다. 여기에는 직장에서의 어려움을 이겨나갈 용기가 필요한데요, 이 용기,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는 세상권세를 세상권세와 전혀 다른 방법으로 거스리고 이기신 예수님의 방법과 능력, 즉 샬롬에서 온다고 봅니다. 이 예수님의 방법과 능력, 샬롬이 저희에게 이 세상을 이기는 용기를 줄 것을 기도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평화, 세상을 이기신 용기의 가시적인 결과는 십자가 처형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평화, 세상을 이기는 힘, 여기에 신앙인의 지혜가 담겨있습니다. 개인적인 적성때문에 하는 고민이 심각하실 때, 또는 직장에서 여러가지 옳지 않아 보이는 일들을 인해 어려우실때, 그 고민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한 일군으로 소망가운데 살아가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으시기를 빕니다.

직업/진로의 선택에 적성을 고려하는 것은 상식적이긴 하지만 (그래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난 왜 적성이 맞지 않는 직장을 택해서 이고생일까 라는 고민은 어떻게 보면 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성과 무관한 직장에서 견뎌내며 살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인간적인 능력부족의 문제는 정말 고민이 됩니다. 우리는 전 인생을 걸쳐 능력을 극대화 하고 탁월해야만 성공이라는 인생관을 주입받아 왔거든요. 성경에 ‘크게 되어라’ ‘큰 꿈을 꾸어라’라는 명령이 없는데도 청년들을 위한 많은 조언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청년들을 선동하기도 합니다. 성경에 쓰여진 ‘크게 될 것이다’라는 것은 약속이지 명령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무슨 약속인가 하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사는 삶에 대한 약속입니다.  직업/진로/배우자 선택이 저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들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A냐 B 냐 하는 것보다는 A 나 B 를 선택하는 나 자신의 가치관을 보시는 하나님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직업/진로 선택 (심지어 배우자 선택까지도 포함해서)의 가장 중요한 관건은 성경적 가치관이거든요. 마치 아이가 성숙한 성인이 되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게 되면 그 선택을 하도록 허락해 주시며 기뻐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연상시키는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읽은 책에 공감이 되는 이런 말이 있더군요 “믿음이 모든 문제를 분명하게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라. 믿음은 확실성이 아닌 신뢰의 문제이다.” 세상적인 능력의 탁월함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부산물로 보아야 능력과 그 결과만 원하는 무리함으로 인한 인생의 어려움과 갈등되는 마음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김동록 박사, 2지역 멘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

코스타 세미나는 전체 집회 참석자 천여 명 중 아주 제한된 수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세미나의 중요한 내용이 모든 분께 전달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KOSTA VOICE에서는 코스타 기간에 열리는 세미나 중 다섯 분의 세미나 강사님들을 인터뷰하여 전체의 참석자이 지면을 통해서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만날 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김수지 총장 - Christian Professional Woman

1. 김수지 교수님, 안녕하세요, 미주 코스타에 다시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코스타에 처음 참석하시는 분들을 위해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김수지 교수입니다. 연세대간호대학/이화여대간호대학 교수, 학장 여러 보직을 거쳐 원래 전공인 정신과환자의 재활간호를 위해 서울사이버대학에 편입하여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것이 인연이 되어 현재 서울사이버대 총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2. 기독교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기독교 세계관을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개인적인 신앙간증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는 믿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순전한 어렸을 아이들 노랫소리가 나는데 가보니 교회더라구요. 당시 놀이할 공간이 없었는데, 그럴때 교회 노래 배우고, 성경 배우고, 교회가 신앙 아니라 삶의 제공터였습니다. 교회에서 자라다가 2 거듭났습니다. 이전에는 착하게 살면 하늘 나라에 간다고 생각했는데, 요한 복음 3 니고데모에 관한 말씀을 듣고 굉장히 도전을 받았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가르쳐주신대로 매일 하나님과 대화. "good morning" 하고 말씀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기도하고 적고, 저녁에 뒤돌아 보며 대화하고 기도했는데. 좋았습니다. 남편도내가 만난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았는데, 당신은 그렇까?’  하는 궁금증으로 말씀을 보다가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 없이 없음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방황하는 사람은 기독교가 진리다라는 것을 한번 가정하고, 성경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세상의 학문이 초등학문임을, 인간은 부족하고 죄인이라는 ,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 자녀로 누리는 감사와 기쁨, 어떤 일을 하라고 알려주시고, 사람을 붙여주시고, 보내주시고.. 그렇게 삶의 현장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3. 이번 코스타에서 여성 리더십에 대해서 강의를 맡으셨습니다.강의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리더십이라는게 조직원들로 하여금 목적을 달성하도록 이끄는 지도력 또는 통솔력, 성과를 창출하는데 영향을 끼치는 능력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여성이 영향력을 행사할 있는 위치/직위에 있어야 하며, 현재 여성들이 확실한 소명감과 뚜렷한 사명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지식의 가치가 점점 증가하는 21세기 지식기반사회의 급속한 변화 (유비쿼터스, 전문가시대, 새로운 교육패러다임의 확산) 가운데서 크리스천으로, 여성으로서 그리고 전문직업인(전문가)으로 주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삶을 어떻게 있는가를 소개하고 토론합니다.

4. 여성들이 사회에서나 교회에서 기독교적인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특별히 계발해야 점들이 어떤 것이 있다고 보십니까?

섬김, 사랑, 멘토링, 제자화 등을 기독교 리더십이라고 여성 특유의 감성을 살려 자신의 은사를 발휘할 있는 전문성을 계발해야 한다고 봅니다인간사이의 친화력, 선천적인 돌봄 능력을 키우면 시대에 맞는 리더십을 발휘할 있을 것입니다.

5. 코스타를 포함해서 기독교 공동체 안에 여성이 지도적인 역할을 맡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어느 모임이든 의사결정 하는 역할에서 여성이 적은 것이 사실인 같습니다.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해결할 있을까요?

다른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문명 이전에는 모성사회에서 부성사회로, 그리고 부성사회에서 여성사회로 변하고 있는데, 교회에서는 권력 이양이 이뤄지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여성 목사나 장로와 같이 리더십을 발휘하는 직위가 여성에게 주어지기도 하지만 극히 일부이며, 실제적으로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교회에 리더십을 가진 분들이 사회의 변화에 대한 민감성이 부족한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여성리더십을 주셨습니다. 남성과 여성이 조화를 이뤄나갈 있도록 해주셨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지금 시간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역사하시는지를 살펴야 하는데 여전히 전통적인 것에 얾매이고 있습니다. 물론 여성에게 유치부 교사 같은 자리는 주어지고 있지만 여성의 리더십이 최대한 발휘될 있는 자리는 아닙니다. 우리 사회가 경직되고, 어려운 것도 남성중심적인 모습 때문입니다. 여성에게 주어진 은사를 계발하여 리더십을 발휘할 있는 위치에 있으면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평화롭게 해결할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역할은 다른데 크리스천 여성이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여성이라는 ,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직업인의 세가지 역할을 있도록 환경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아내가 그리스도인인 남편과 함께 살더라도 남편과 동등한 자유와 시간을 누리지 않습니다. 너무 일이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역할이 분담되고, 남편이 아내를 많이 도와 주고 사회 생활에서도 여성과 조화를 맞추어 있도록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노사 문제에도 너무나 남성의 강함이 문제입니다. 이는 감정의 문제인데, 이런것들은 여성이 리더십을 가지면 좋아질 있을 것입니다. 남성이나 여성,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조화되어야 합니다. 현재는 리더십이 너무나 남성 중심적인데, 권력을 이양하고 나누고, 서로 도와주고 역할을 분담하여야 합니다.

6. 코스타에 참석하는 많은 기혼부부들에게 건강한 가정을 세워나가는데 필요한 점에 대해서 조언 말씀 해주시죠.

가지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째, 결혼은 부족한 배우자를 돕도록, 하나님께서 최초로 만든 제도라는 . 결혼생활은 세상의 어떤 (부모형제, 직장, 교회, 국가…) 보다. 우선적인 관계적 삶의 근거지가 되어야 한다는 . 따라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은 누구도 대신할 없는 중요한 역할이고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역할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봅니다. 둘째, 우리 부부는 죽음 외에 어떠한 경우에서도 헤어질 없는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일심동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 셋째아내와 남편의 기둥이 서야 아이들이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편하다. 서야 한다. 특히 한국 남자는 .. 아내는 남편이 세워진 만큼 선다. 기둥이 같이 서야지 무너지지 않는다. 이것이 성경적이라는 점입니다.

7. 지금 서울 사이버대학교 총장으로 일하고 계신데요, 어떤 비젼을 갖고 일하고 계신지, 그리고 진로를 위해 고민하는 코스탄들이 어떤 비젼을 갖고 결정하는 것이 신앙적으로 바람직할 조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1세기를 유비쿼터스, 전문가 시대입니다흩어져 있는 선교사나 선교사가 아니라도 시공간을 초월한 재교육이 필요합니다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지식을 업데이트 하지 않으면 변화하는 지식 사회를 따라갈 없습니다인터넷으로 수업할 있기에 지식을 언제나, 어디서나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있습니다. 사이버 교육은 글로벌 시대의 로운 교육방법입니다. 우리의 집회도 오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들을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다. 수요자의 필요를 채우고, 선교자들, 크리스천 사업가, 전문인에게 지식을 공급하는 것을 우리의 사명으로 생각합니다.

진로로 고민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우선 전공 분야에서 하나님의 부름심이 있어야 합니다. 주변의 조건에 따라 맞지 않는 전공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분야를 본인이 좋아해야 하고, competent해야 하고, 하나님이 특정 직장에서 나를 부르시는가, 직장이 나의 기독교 세계관과 맞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물론 맞지 않아도 선교사적인 사명으로 있지만, 그런데 만큼 강하지 못하면 중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리고 곳에서 구체적인 미션이 무었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요즘은 월급으로 정하는데, 월급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이다.

한편, 하나님은 전문직을 통해서 전도하기를 원하시는데, 전문직도 해야 합니다. 엉망으로하고 전도 없다. 학교에 그런 분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는 저렇게 살아야 하는데 한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전도를 하지 않지만, 모든 사람들의 눈에 띕니다. 학교가 offilne이라 국내에 방문하는 외국에 있는 분이 오시는데, 이분을 찾고 싶다고 합니다. 너무 성실하게 도움을 주시고, 분은 틀림없이 기독교인인구나 생각하는 거지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얼마나 기쁘시겠습니다. 코스탄 여러분들도 그렇게 사시길 바랍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

코스타 세미나는 전체 집회 참석자 천여 명 중 아주 제한된 수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세미나의 중요한 내용이 모든 분께 전달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KOSTA VOICE에서는 코스타 기간에 열리는 세미나 중 다섯 분의 세미나 강사님들을 인터뷰하여 전체의 참석자이 지면을 통해서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만날 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정진호 교수 - 샬롬의 언약궤를 찾아서
제 1강 : 존재의 이유 (the Reason of Existence)
제 2강 : 메시아적 선교의 본질, 칼-활-물 (The Substance of Messianic Mission, Sword-Bow-Water)
제 3강 : 하나님의 경륜 (Dispensation of God)


1. 정진호 교수님, 안녕하세요, 미주 코스타에 다시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코스타에 처음 참석하시는 분들을 위해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연변과기대의 정진호 교수입니다. 저는 90년 미국 코스타에서 헌신하여 선교 필드로 나가게 된, 여러분들의 코스탄 선배입니다. 그래서 더 미국 코스타 후배들을 향한 애틋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고요. <복음, 통일, 부흥>의 화두를 가지고 지난 15년간 중국과 북한을 섬기는 일로 달려왔습니다. 제 비전은 전 세계에 흩어진 코리안 디아스포라 청년들을 선교적 재원으로 훈련시켜서 임박한 통일시대와 동아시아 시대에 복음의 물류를 따라 흘러가며 쓰임받는 부흥세대를 키워내는 것입니다.

2. 평양과기대학교에 대한 책임을 맡으시고 여러가지로 일을 해오셨는데요, 그간 활동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지 소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재 평양과기대는 이미 건축이 완공되어 장대한 캠퍼스가 나타나 있습니다. 개교준비를 하고 학생을 받아야할 시점에 밀어닥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정치적 긴장 속에서 지금 실마리가 풀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주셨던 마음이 스룹바벨 프로젝트의 성전회복의 꿈이었는데, 이 일은 스가랴 4장 6절의 <오직 여호와의 신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무너진 성전 회복의 역사는 하나님이 친히 움직이셔야 하는 일이기에 사람들의 힘(노력)과 능(재능과 학문적 지식 등)으로 준비는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때에 성령께서 그 땅에 돌아오셔서 임하시는 그날 새 역사가 시작될 것이라 믿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역사속에서 <스룹바벨> 성전 회복을 위해서도 20년의 역사가 걸린 것처럼, 이 일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풀어가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3. 기독교인이 되면서 삶의 변화, 생각의 변화, 선교가 함께 시작되어야 한다고 할 때, 선교에 대한 인식과 행동이 더 강조되어야 할 것같습니다. 선교사적 삶을 산다는 것의 의미를 코스탄들에게 설명해주시겠습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잃어버린 영혼을 살리시기 위함이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부터 선교적 사명은 시작됩니다. 선교적인 삶이란 생명을 살리는 일이요, 그것은 하나님이 처음 우리 사람을 만드시고 주셨던 문화명령과도 일치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 지음 받은 존재이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일들이 생명을 살리는 비즈니스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직업과 삶의 터전에서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하는 일을 Kingdom business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선교적 사명은 Kingdom Business가 우리들 주변 뿐만 아니라, 주의 재림의 때와 땅끝을 향해 확산되도록 나아가게 만드는 종말론적인 전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4. 세미나 연속 강의가 전문인선교 트랙에서 '메시아적 선교', 전방위 선교(all scope mission)라는 주제로 펼쳐지는데요, 좀 생소한 단어인 것같습니다. 강의를 듣지 않는 코스탄들에게 간단히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메시아적 선교>란 이땅에 찾아오셨던 완전한 선교사로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그분이 행하신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사명을 함께 이루어가는 총체적 선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활-칼-물>이라는 세 화두를 가지고, 비전과 전략 방향성에 대하여(활) 알아보고, 영성과 전문성의 양날이 선 (칼)에 대하여 살펴보며, 비록 활과 칼이 준비되어 있을지라도 샘물 근원에서 솟아나는 성령의 능력을 받는 (물)이 없으면 안되기에, 세 가지를 함께 구비한 사람들이 이루어가는 총체적 선교를 배우고자 합니다. 그에 비하여 <전방위 선교>는 상황화와 컨택스트의 문제를 다루며, 21세기 시대적 변화와 종말론적 컨택스트에서, 과거의 지역화되고 특성화된 선교전략에서 벗어나, 개방사회와 유비쿼터스 사회 그리고 빛의 속도로 달려가는 종말적 징후들 속에서 (시간, 공간, 물질, 대상, 토양, 인력, 팀웤 등) 모든 선교적 변수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함께 고려되어야만 하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음을 직시하고, 선교전략적 차원의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업그레이드가 아닌 시스템 체인지로서의 사고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5. 선교가 한국 기독교인들과 코스탄들에게 어떤 시대적 사명이라고 할 때 어떤 근거를 말할 수 있을까요?

선교는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완성해 가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나타나 성령님께서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그들의 배교와 패역을 통해 열방 가운데 흩으신 디아스포라 유대인을 사용하셔서 초대 교회의 신속한 확산을 이루셨던 성령님께서, 이제 한국 근대사의 부흥과 핍박과 배교의 역사를 통해 뼈아픈 고난과 분단을 허용하심으로 전세계에 흩으신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사용하셔서 마지막 때에 총체적인 전방위 선교를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 시대적 사명과 하나님의 경륜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6. 한편 근래 기독교인들의 배타적 태도, 근거없는 우월의식 등에 근거한 '공격적인 선교'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단계 성숙한 선교활동이란 어떤 모습을 띄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선교는 본질적으로 성육신의 낮아짐에서 시작됩니다. 서방 중심적인 선교가 한반도에 뿌리내리는 과정에서 베푸는 선교, 선교사들의 우월적인 자세가 잘못된 선교관을 낳은 면이 없지 않았고, 이제 세계 제 2위의 선교 대국이라고 자랑하는 한국 기독교가 그같은 태도를 답습함으로써 믿지않는 사람들에게 배타적인 공격적인 우월적인 모습으로 비추어지고, 또한 피 선교지에서 동일한 관행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리될 때, 올바른 복음이 전해지지 못할 뿐 아니라, 복음이 확산되는 범위를 축소시킴으로 복음 유통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성숙한 선교란 높은 위치에서 나누어주는 시혜적인 선교가 아니라, 복음이 전파되는 순간부터 선교지의 제자를 즉시 동역자로 인정하고 그들을 선교의 주체로 세워 그들이 예배하고 일하는 방식에 따라 선교사가 따라가며 맞추어가는 선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예수님이 그리하셨듯이 선교사들의 끝없는 낮아짐의 자세가 요구됩니다.  

7. 좀 개인적인 질문을 드려볼까요? 많은 코스탄들의 관심사는 역시 진로, 그리고 결혼, 가정생활인 것같습니다. 선배 신앙인으로서 진로를 결정할 때, 그리고 가정생활에서 성숙한 결정을 내릴 때 필요한 지혜를 조언해주시겠습니까? 사역과 가정생활을 어떻게 균형잡고 계신지, 자녀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하고 계신지, 아버지의 역할은 어떤 것인지 등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가정이 근본임을 더욱 실감합니다. 30-40대에는 사역에 대한 열심으로 가정을 희생하고 놓치는 일이 많습니다. 즉 아내와 자녀들에게 마땅히 드려야할 시간과 희생과 노력이 결여되었다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수많은 청년들에게 심어준 헌신과 희생에 비하여 내 자녀가 그 부분이 취약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직업을 정하는 문제는 물론 돈을 벌기위한 job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명하신 문화적 사명으로서의 occupation과 나를 지으신 분의 부르심의 목적에 합당한 calling으로서의 직업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결혼관 역시 가정이 가장 기초적인 교회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 머리와 몸의 만남으로서의 한몸을 이룰 수 있는 배우자를 찾아 같은 목적과 사명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숙한 가장과 아빠인 저에게 젊었을 때 미처 다 깨닫지 못하고 이루지 못한 가정의 훈련을 다시 시키시기 위하여, 거의 10년터울로 하나씩 세 아이를 주셔서 지금 재수를 너머 삼수째 아빠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세 살짜리 늦둥이 막내 딸을 키우며 이번에는 정말 좋은 아빠가 되어서 합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특별히 요즈음은 선교적 사명이 땅끝까지 나아가는 공간적 사명 뿐만 아니라 세대를 통해 시간적으로도 바로 흘러 내려갈 수 있도록 하는 수직적 선교의 장이 바로 가정인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김은영 2009/07/19 2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교수님.
    방금 막 교수님의 '떡의 전쟁'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이 곳에서 교수님의 글을 읽게되어 너무 반갑습니다 :)
    기도로 함께 할께요.. 언젠가 만나뵙길 소망하며..

1. 한철호 선교사님, 안녕하세요. 코스타에 참석하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집안이 기독교 집안이지만 처음에는 성탄절에만 선물 받으려고 교회 나갔는데, 고등학교 때 선배의 등쌀에 밀려서 교회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쁜 여학생들도 많고 해서 계속 나가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회심을 경험했습니다. 아직도 그 회심의 경험이 생생합니다. 어느날 기도회를 하는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엄청난 감격으로 다가왔고 나도 모르게 회개와 내 삶을 그 분에게 드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에는 교회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저희 집과 교회가 담 하나 사이로 연결되어있었거든요! 대학에 들어와서는 IVF를 통해서 말씀에 대한 깊이와 헌신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이번에는 후배들의 등쌀에 밀려서 IVF 간사가 되었고, 그 후 18년간 한국IVF 캠퍼스 간사와 졸업생담당대표간사로 섬겼습니다. 캠퍼스 간사로 섬기면서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었고, 졸업생사역을 하면서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삶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만드는 일에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는IVF의 국제본부 사역인  IFES의 아시아권 사역자로 섬기면서 세계선교에 직접 관여하게 되었고,  2000년 부터는 선교한국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선교한국 상임위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선교한국은 2년 마다 열리는 청년선교대회를 주도하는 운동입니다. 매번 5천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모이고 선교한국을 통해서 많은 선교 헌신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는 아내와 두 딸이 있습니다.

2. 오늘 설교의 주제와 내용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요즘 제가 만나는 사람 마다 피곤하다고 합니다.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래서 쉼이 필요합니다. 이번 수련회도 참가자들에 신체적으로, 영적으로 쉼의 공간을 마련해 주었을 것입니다. 오늘 제가 전할 말씀은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분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피곤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쉼을 허락 하십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쉬고 돌아온 제자들에게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세상의 무리들, 즉 세상의 온갖 필요와 문제를 가지고 있는 무리들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당시 제자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천명을 먹이시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이런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이 잘 이해되지 않았고, 그래서 대들기 까지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오천명을 다 먹일 수 있는 200 데나리온이나 되는 엄청난 돈을 다갖고 그들에게 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것, 즉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 밖에 되지 않는 것이지만 그것을 드릴 때, 기적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엄청난 과제들이 우리들 앞에 놓여 있습니다. 선교지와 우리의 일터와 학문현장과 가정과 세상에 엄청난 필요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 모든 필요를 채울 모든 자원을 우리가 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우리의 작은 것들을 그리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그 일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번 코스타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고 도전 받았을 것입니다. 동시에 여러분들이 마음 한편에는 그 일을 감당하기에 너무나 힘들고 벅차고 그래서 감히 도전하기 두려워하거나 주저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그 많은 도전들 앞에서 화가 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역사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십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에게 있는 작은 것들을 가지고, 나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이 믿음의 역사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소망하고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3. 이번 코스타 주제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생각하시거나 느끼신 점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가 감당하기 벅찬 주제 일 수 있습니다. 세상을 향해 거슬러가는 삶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용기를 가진다고 해결되는 일도 아닙니다. 세상은 때로는 우리가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은 그렇게 엄청난 힘으로 다가오는 세상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세상을 만드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이 세상의 풍조와 힘이 제 아무리 강력해 보여도 여전히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광대하심 앞에서는 세상은 바다의 물 한방울이며, 태산의 먼지에 불과합니다. 결국 믿음의 문제 입니다. 우리 인생에 중요한 것이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방향으로 간다면 때로는 속도가 느리고 불편하게 간다고 할지라도 그 목적지에 도착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4. '선교한국'의 책임을 맡고 계신데요, 어떤 비젼을 갖고 계신지.

코스탄들이 그 비젼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부터 130년 전 한국에 복음을 전하러 온 아펜셀러와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나이가 25세였습니다. 하나님은 세계가 복음화 되어지는 일을 위해 항상 그 나라의 젊은이들을 사용하셨습니다.저는 이와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 지난 20년 동안 한국에서 수 많은 선교사들이 나갔는데, 그들의 대부분은 젊은 청년시절에 선교에 대한 도전을 받고 헌신하고 준비하여 나간 분들입니다. 이러한 일에  젊은이들을 선교에 동원하는 선교한국이 그 역할을 감당했다고 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선교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잘 준비된 헌신된 젊은 선교 헌신자들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가치보다 하나님의 가치를 더 우선시 하고, 세상에서의 명성보다 하나님의 이름이 열방에 알려지길 소망하는 준비된 젊은이들이 필요합니다. 지난 150여 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서구의 청년 지성인들로 하여금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보도록 했습니다. 저는 이제 남반구 선교시대의 선두에 서있는 한국의 젊은 지성인들에게 동일한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고 믿습니다.

5. 근래 한국 기독교에 대해서 반성하는 견해들이 많습니다. 타문화와 타자를 존중하는, 무례하지 않은 기독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점이 있다면 어떤 것들일까요?

상식은 기독교 진리의 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강조하는 것은 기독교가 배타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사상을 포괄할 수 있는 참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창조적으로 기독교의 유일성을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문화 안에 전달할 수 있는가 입니다. 성경에서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 것이라고 했는데, 자꾸 기독교가 무례하게 전달되는 것은 복음이 선포로만 전달되고 삶으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삶으로 전달하는 일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인내와 배려와 상호 존중의 과정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고전 13장에 나온 사랑의 정의는 상대의 부족한 것을 채워 주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지 않고 오히려 상대에 대한 태도의 문제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부분에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역사가 증명하는 것은 기독교가 그 나라의 문화와 삶 속에 뿌리를 내리고 문화를 변혁해 가지 않으면 그 기독교는 곧 소멸되고 맙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한국 문화 안에 뿌리를 내리고 그 문화를 변혁해 갈 것인가, 아니면 한국 사회와 계속 물과 기름과 같은 상태로 가다가 한국 사회로부터 배척 당할 것인가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비록 한국교회가 대통령을 배출하기도 했지만, 한국 사회는 한국 교회의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본래적으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김수한 추기경의 선종 후에 나타난 한국인들의 반응에서 보여진 것처럼, 단지 최근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 배척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에만 해도 없었던 일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1980년대 보다 덜 적극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많이 무례하다고 지탄을 받는 것은 단순히 복음 전파의 열심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난 얼마간 보여준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비상식적인 태도와 발언 때문입니다. 몇몇의 잘못된 지도자들 때문에 한국교회 전체가 배척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지도자들이 나와야 합니다. 겸손하고 섬기는 지도자가 나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스타와 같은 사역의 존재는 더욱 중요합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

코스타 세미나는 전체 집회 참석자 천여 명 중 아주 제한된 수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세미나의 중요한 내용이 모든 분께 전달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KOSTA VOICE에서는 코스타 기간에 열리는 세미나 중 다섯 분의 세미나 강사님들을 인터뷰하여 전체의 참석자이 지면을 통해서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만날 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신원하 교수 - 심화 세미나 (샬롬의 방해물: 죽음에 이르는 일곱가지 죄악)

1. 신원하 교수님, 안녕하세요, 미주 코스타에 다시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코스타에 처음 참석하시는 분들을 위해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어린시절 거의 늘 할머니의 기도소리를 새벽마다 들으며 자랐습니다. 남들보다 신앙의 혜택을 많이 받고 자란 셈이지요. 이런 영향 때문인지 어릴 때부터 목사가 되고 싶었고 결국 신학교를 갔습니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고 이후 줄곧 신학교로 부름을 받아 지금까지 16년 동안 기독교 윤리학과 관련과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7-8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으로 교회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 등에 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이 분야에 나름대로 글도 써 왔고 비중있게 가르쳐 오고 있습니다. 코스타 초청을 받고 이번에 참석하게 되어 기쁘고, 기대가 큽니다. 

2. 이번 세미나 강의의 주제가 '샬롬의 방해물: 죽음에 이르는 일곱가지 죄악 (Vandalism of Shalom: The Seven Deadly Sins)'입니다. 일곱가지 대죄는 복음주의권에서는 좀 생경한 개념인 것같습니다. 설명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일곱가지 죽음에 이르는 죄의 목록-교만(pride), 시기(envy), 분노(anger), 나태(sloth), 탐욕(avarice), 식탐(gluttony), 정욕(lust)-은 4세기 말 사막 수도사들로부터 중세 교회를 거쳐 주로 로마 카톨릭 교회를 통해 전해 내려온 목록이었습니다. 수도사들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 위해 끊어버려야 할 큰 악으로 규정한 죄들의 목록이지요. ‘오직 성경’의 구호를 내세운 개신교회는 이것들의 성경적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대죄론을 소홀하게 여겨 왔습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이후 개신교회들이 부쩍 이 주제에 관심을 고조해 오고 있습니다. 복음주의권의 목사들의 강단에도 환영 받는 설교주제가 되었습니다. 이 주제는 싸우고 버려야 할 죄의 목록이지만 다르게 말하면 갖추고 입어야 할 덕(virtue)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환언하면 이번 강의의 주제는 기독교인이 갖춰야 할 덕, 성품인 것 같습니다. 사실 이제까지 덜 강조되고 경시되어온 측면이 많은 이유가 기독교인의 성화보다 일차적인 구원에 지나친 관심을 가진데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요. 이신칭의를 강조한 개신교회가 덕(virtue)사상을 강조하면서 믿음보다 행위 그리고 성품을 중시하는 이 교리를 그다지 강조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 카톨릭 교회의 핵심교리라는 것에 대한 반감도 또한 작용했으리라 생각합니다.  

4. 한편, 어떻게 은혜를 강조하는 관점과 기독교인의 덕을 강조하는 관점이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조화될 수 있을까요?

사실 신구약 성경이 가르치는 핵심 기독교 윤리는 직설법과 명령법의 역동적인 관계입니다. 그것은 구원을 받기 위해 율법을 지키고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값없이 구원받았다는 직설법 때문에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즉 그 명령을 지키고, 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지요. 이 성경적 프레임이 분명해진다면 덕을 갖추는 삶은 은혜를 강조하는 것과 결코 모순되거나 갈등을 일으키지 않지요. 오히려 은혜로 죄에서 자유로워진 사람들은 자원하여 덕스러운 삶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지요(시 119:32). 

5. 한국이나 미국이나 기독교인들이 신앙과 삶의 불일치, 신앙과 사회적 책임의 불일치로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같 습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에 관련하고 계신데요, 한국기독교 공동체가 사회적 역할을 잘 하기 위해서 어떤 점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기윤실의 접근보다 좀더 급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한국 기독교인의 신행불일치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찍이 한미준(한국기독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임)의 통계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교인의 윤리의식과 불신자의 그것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믿는 사람이 너무 다른 것이 문제가 아니라 너무 같은 것이 문제인 것이지요. 일반 사람들은 신자들에게 자기들과는 다른 뭔가 고상한 삶을 바랐지만, 지금은 아예 기대도 하지 않는 상태인듯합니다. 천주교회는 국민으로부터 점점 신뢰를 받고 교인도 늘어가는데 개신 교회는 그와 정 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교회가 신뢰를 얻으려면 교회다운 모습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권력, 돈, 성공에의 욕망이 교회의 짠 맛을 잃게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힘없음, 약함은 교회가 추구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신약 초대교회의 예수 운동, 제자운동은 철저히 십자가, 낮아짐, 힘없음을 추구한 운동이었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예수를 머리로 따르고 ‘지적인 제자훈련’ 만 위주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진지하게 성찰해 봐야 할 때입니다. 현재의 모습에서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사회적 역할은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윤실도 어쩌면 느리게 가는 길인 것이지는 모르지만 다시 교회의 본질회복 운동, 신뢰회복 운동, 정직 운동 등에 다시금 강조를 해 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볼 때 이것이 다소 개인적 미시적 접근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이 급진적(Radical)인 방법일 수 있다고 봅니다. 물론 사회적인 이슈문제에 대해 여전히 관심을 갖고 여론을 만들어가고 윤리 운동을 전개하는 것도 계속해 가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6. '전쟁과 정치'를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신앙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집단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되고 있습니다. 신학자로서 이런 모습에 대해서 어떤 평가와 대안을 제시하시는지 궁금합니다.

한국 복음주의 교회의 대표적 지성이며 양심이라 할 수 있는 이만열 교수는 현재 한국 복음주의 기독교는 정교분리 모습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정교 일치 때문에 비난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저도 동감합니다. 지난 참여정권 때 복음주의 대형교회 목사들이 부쩍 시청 광장과 장충체육관 등지에서 십자가와 성조기를 펄럭이며 정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많이 해왔습니다. 그리고 현 정권에 들어와서는 정반대로 친정부적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전 군사 독재정권 시절에 너무나 조용했고 정교분리를 주장하면서 데모하는 대학생들을 말리곤 했습니다. 어떤 신학적 근거로 시민 광장에 나와서 교회가 교회이름을 걸고 소리를 발하는 입장으로 전환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특정 정권을 편향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설명이 없는 것이지요. 이런 신학적 성찰 없는 정치적 행동에 많은 의식 있는 목사들과 학자들은 불편해 하고 있습니다. 이면에서 복음주의 교회의 신학자들과 40-50대의 중견 목사님들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지요. 한국교회개혁연대와 같은 의식 있는 목사님들의 활동들이 좋은 대안적 모델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7.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고민하고 기독교 세계관에 대해서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개인적인 한 말씀 부탁드려도 될까요.

사람들은 자기가 자라온 지역, 문화, 환경의 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경상도 남자가 서울여자를 만나 깊이 사귀다 보면 한번 자신을 돌아보게 되기 마련입니다. 서울여자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자신을 살피고 진단해보게 되는 것이지요. 연애의 성공여부를 떠나서 타자의 관점에서 자기를 보게 되면 그만큼 유익이 크지요. 교과서만 줄줄 외우고 문제집만 푸는 공부만 하다가, 대학에 들어간 뒤 시대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치며 그것들을 다룬 뛰어난 소설/또는 사회과학 서적을 읽으면서 경험하게 되는 벅찬 희열, 기억하시는 지요? 마치 눈이 열리는 듯하고, 새로운 의식의 세계가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지요.  이때까지 여러분들이 익숙해져 있는 현실, 가치의 세계, 그리고 추구하는 목표가 진정 가치 있고, 젊음을 바칠만하고, 그리고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인지, 여러분은 알 수 없습니다. 그것과 다른 가치, 세계 그리고 그것의 빛을 통해 비춰볼 때 비로소 그것들을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쟁이를 핍박하는 일에 열심이었던 철저한 유대주의자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 난 뒤 그의 삶과 삶의 방향이 완전히 뒤집혀져 예수를 증거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이제 기독교 신앙, 가치, 세계관에 자신을 열고 한번 활짝 자신을 노출해 보기를 권합니다. 이번 코스타 모임에 친구의 권유로 왔든지 아니면 자발적으로 왔든지 이번에 기독교 복음의 세계에 한번 흠뻑 자신을 적셔보는 그런 구도자가 되어 보시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정민영 선교사님, 안녕하세요. 코스타에 참석하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정민영 선교사입니다. 위클리프 성경번역선교회(www.wycliffe.net) 한국지부(GBT: www.gbt.or.kr) 소속으로 인도네시아의 한 부족말로 신약성경을 번역하는 일에 참여했고, 현재는 국제위클리프 부대표로 비서구 선교운동을 촉진하고 돕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2. 오늘 설교의 주제와 내용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요일 저녁설교 제목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평안" (빌 4:4-7)입니다. 평안(Shalom)은 구원의 본질입니다.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그 결과 이웃(세상)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평안(구원)의 유일한 조건은 그리스도이지 환경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상황적이 아니라 역설적입니다. 마치 아가페의 사랑이 "OO 때문에"(because of)가 아닌 "OO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인 것과 같습니다. 감옥에 갖힌 바울이 밖에 있는 빌립보 교회에게 기뻐하라고 격려하는 역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권합니다. 진정한 '가진 자'의 여유인데, "주께서 가까우시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3. 이번 코스타 주제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생각하시거나 느끼신 점이 있으시면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복음의 본질과 직결되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평안은 역설적입니다.상황을 초월한 전천후 평안이야말로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세상이 주는 것과 구별되는" 참된 평안입니다. 바울은 "염려"와 "기도"를 대조하면서 상황(역경)에 집착하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권합니다. 처방은 우리 소원의 성취가 아니라,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상황이나 환경을 바꾸기보다 우리의 마음과 태도를 바꾸시는 것이지요: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Hudson Taylor는 말합니다: "진정한 평안은 고통의 부재가 아닌 하나님의 임재이다." 세상을 이기는 힘은 역설적 기쁨, 전천후 평안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설명하는 좋은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4. 근래 한국 기독교에 대해 반성하면서 기존의 선교방식에 대해서 되돌아보는 일들이 많이 있었는데요, 선교사님은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가요.
Christianity Today라는 기독교 잡지는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2007년 발생한 세계교계 및 선교계의 제1대 사건으로 꼽았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비서구 선교운동의 당면현안과 과제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한민족 선교운동이 단순히 열정만 앞세우기보다 비둘기처럼 순결하면서 뱀처럼 지혜로워야 할 필요를 깨우치셨다고 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민족 선교운동의 청지기 시대가 도래하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5. 타문화/타자를 존중하면서 기독교 신앙이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하는 태도, 성품 등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분은 단연 예수님입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 부르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호전적 접근, 즉 십자군의 방법을 경계하시고 친히 십자가를 지시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전도와 선교가 "영적 전쟁"인 건 사실이지만,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역설을 이해하지 못하면 호전적이고 무례한 기독교로 전락하고 맙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 전쟁은 십자군이 아닌, 십자가의 도입니다. 빌립보서 2장에서 감옥에 갖힌 바울이 권하는, 겸손하고 온유한 십자가의 도를 묵상하도록 권합니다. 금년 코스타의 주제인 세상을 거스르는 용기 역시 호전성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차별화(거룩)을 의미합니다. 전도와 선교의 동기는 사랑인데,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


코스타 세미나는 전체 집회 참석자 천여 명 중 아주 제한된 수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세미나의 중요한 내용이 모든 분께 전달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KOSTA VOICE에서는 코스타 기간에 열리는 세미나 중 다섯 분의 세미나 강사님들을 인터뷰하여 전체의 참석자이 지면을 통해서 평소에 만나기 어려운 만날 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김범석 목사 - 와우! 북한 탈북자 현장 바로 보기

1. 김범석 목사님, 안녕하세요, 올해 다시 코스타를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코스타에 처음 참석하시는 분들을 위해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코스탄 여러분 안녕하세요.여러분들을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너무 반갑습니다. 저는 열매나눔재단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무총장 김범석 목사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청년 목회에 은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저만 주장하지 하나님과 다른 분들은 아니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저의 자리가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웃인 탈북자와 빈곤 여성들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이번 코스타를 통해 우리 청년들도 하나님이 원하는 자리를 찾아가고 그 귀한 달란트를 발견하길 바랍니다.

2. 기독교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기독교 세계관을 받아들일지 고민하는 젊은이들에게 개인적인 신앙간증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모든 사람은 그냥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태어나서 그냥 살다 갔다면 너무 허무 하지 않습니까?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보면 결론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無(무) 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인생을 살아 가라고 하면 참 가치 없는 인생 같습니다. 그러면 정말 가치 없게 살고 말 것 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無(무)’가 아닙니다. ‘有(유)’ 입니다. 분명 어떤 목적이 각자에게 주어 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정해집니다.그 정해진 목적 즉 각자의 그릇,달란트를 빨리 발견하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예전에 이것을 몰랐습니다. 1997년 IMF 당시 집이 하나님의 은혜로(?) 완전히 부도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신학교 다니는 중간 이였는데 학비와 차비가 없을 정도로 망했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과일 장사를 4년간 했습니다. 하나님이 참 원망스러웠습니다. 저는 신학 대학원을 가야 하는데 저는 유학을 가서 신학 교수가 되어야 하는데, 장사를 하게 되니 제 꿈이 완전히 틀어진 줄 알고 하나님에 대해 원망을 참 많이 했습니다. 돈으로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한 저는 그 뒤 저의 삶의 목표는 돈이 되었습니다. 즉 저의 삶의 목적은 잘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잘 사는 것이 누구나 쉽게 생각하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후 열심히 죽도록 일했습니다. 시장에서 과일 도매업을 했는데 그때 참 많은 돈을 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생기면 잘사는 줄 알았는데 잘 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 마음에 돈만 있지 평안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장사를 끝나고 아내에게 적금 이야기를 하는 중에 아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 요즘 돈만 이야기해’‘ 난 당신이 돈만 이야기 하는게 싫어’ 그 한마디는 저의 마음에 비수처럼 꽂히게 되었습니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그 뒤 일주일 만에 저는 모든 사업을 접고 쪽방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돈이 있었던 시절 보다 쪽방에서 가난한 분들과 함께 어울려 살았던 지난 10년이 더 잘살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창조주 하나님이 저를 창조한 목적을 발견하였고 그 목적대로 살고 있기 때문에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저는 돈은 없지만 지금 참 행복합니다. 돈이 있어 평안이 없던 때 보다 돈은 없지만 평안한 지금이 너무 좋습니다.저는 지금 너무 너무 잘 살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세계관을 받는 것은 바로 세상에서 당신을 가장 가치 있는 삶으로 인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삶은 참 행복하고 즐거운 삶입니다.평안한 삶입니다. 고난과 고통도 우리의 이 행복은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입니다. 코스탄 여러분 모두가 이번 집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평안과 비젼을 발견하길 기원합니다.

3. 요즘 열매나눔재단이라는 곳에서 일하시고 계신데요, 하시는 일과 재단의 비젼이라든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는지를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열매나눔재단의 영문 명칭은 Merry Year Foundation 입니다. Merry Year 라는 뜻은 기쁜 해,즉 희년이란 뜻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희년이란 기독교의 50년제를 기념하여 수고하고
축 적된 부의 재분배를 통한 빈부의 재편,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주는 구제의 관습이었습니다. 열매나눔재단은 이러한 희년의 정신을 계승하여 우리 사회에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여 이 시대 속에 잃어버린 기독교 신뢰를 회복하고자 만들어 졌습니다. 빈부의 재편을 통한 희년 정신의 실천하기 위해 설립된 재단은 그 출발부터 우리 사회에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즉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선 설립 주최가 된 교회부터 가진 자의 권리를 포기하길 하나님은 원하셨던 것입니다. 한국 사회의 많은 기독교가 선 성장 후 복지 선교를 외치며 가난한 이웃들에게 전도와 선교를 포기 하고 모두가‘보이는 성전 건축’에 수많은 자금을 투입하고 매달렸을 때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 하나님은 높은뜻 교회에 진정한 성전의 개념을 알려 주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마음이 가있는 곳 그곳은 먼 예루살렘이 아닌 가까운 우리 이웃들이며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 있었던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린 이를‘보이지 않는 성전’이라 칭하여‘보이는 성전 건축’을 포기하고 가난한 이웃을 자활 자립 시키기 위해 재단을 건축하였습니다. 이에 우리 재단의 비전은 잃어버린 한국 교회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회복하며 이를 통해 더 가진 자와 덜 가진 자 모두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며 목표입니다.

4. 노숙자라든지, 새터민(탈북자)들을 돌보는 일을 계속 해오시고 계시는데요, 이런 활동 속에 기독교 신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요.
성경을 보면 두 가지 종이 있습니다. 충성된 종과 게으른 종입니다. 이중 충성된 종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있습니다. 바로 순종입니다.하나님이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고
그 주신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어디서 받을까요.기도를 통해서도 받고,자연 계시를 통해서도 받을 수 있습니다.하지만 가장 큰 말씀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명령이 있습니다. 성경 66권을 다 짜 보니 그게 바로 마 22장 34-40의 ‘사랑’입니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겁니다.
여기서 내 이웃은 우리 가족도 포함되지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소외된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입니다. 우리 사회에 고아와 과부 나그네가 누구일까요? 그분들이 바로 저에게 있어서는 노숙자와
독거노인과 탈북자 들이였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그 명령을 잘 따르는 것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땅히 기독교인 이라고 하면 그 분의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에 그것이 충성된 종의 역할이라 생각하기에 이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5. 이런 활동 중에 인본주의적인 접근보다 기독교적인 통전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같습니다. 이런 다양한 활동 가운데 기독교 신앙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경험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하게 보고 측은한 마음을 담아 구제하는 사역은 어느 종교도 다 하고 있습니다.아니 사실 우리 기독교 보다 더 잘하는 종교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종교와 우리의 사역을 비교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출발이 다르기때문입니다. for(위하여) 과 with(함께) 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 동안 가난한 지역에서 노숙자와 쪽방 주민을 섬기다 보니 참 어려운 일을 많이 당했습니다. 수년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프로포절을 넣어 설날에 쪽방 주님들에게 모두
5만원권 상품권을 나누어 준 적이 있습니다. 사전에 쪽방 주민을 조사하여 총 2천 700장을 받아 2,700명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설날이 끝나고 상품권 사업을 종결할 시점에 상품권을 받지 못한 몇 사람들이 찾아와서 상품권 달라고 횡포를 부리며 저희 센터의 유리 창을 깨고 석유를 붓고 불을 지른 적이 있습니다.그 때 참 죽을 뻔 하다 살아 났습니다. 또 한 번은 상품권을 주지 않는다고 제가 퇴근할 때 골목에서 각목으로 저의 머리를 쳐서 머리가 깨진 적이 있습니다.그 때도 이제 죽는 구나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너무 화가 났고 가난한 분들이 너무 증오스러웠습니다. 나는 자기들을 돕기 위하여(for) 왔는데 .. 나는 지들을 살리기 위하여(for) 왔는데... 라며 원망하고 쪽방 사역을 그만두고 싶어 몇 번을 고민한적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왜냐하면 그 때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인 저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는데.. 예수님은 죄인된 저를 위하여 이 땅에 인간의 몸으로 함께(with) 하기 위해 오셨는데.... 십자가를 생각하며 무섭고 떨리지만 사역을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주신 우리의 사역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버티니 그 무섭고 힘들게 했던 그분들이 지금은 나의 친구 나의 형제가 되었습니다. 저를 통해 쪽방에 들어온 숭의교회 청년들은 쪽방 사역을 누구 누구를 위하여 봉사하지 않습니다. 우린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 분들과 함께 사랑을 나누고자 이 일을 합니다. 이와 같이 불쌍해서 봉사하는 다른 종교와 그 근본이 틀린 출발점(With)을 우리 기독교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하나님의 마음.우리와 함께 하셨던 그분의 마음. 그것이 다른 출발점입니다.

6. 한국이나 미국이나 기독교인들이 신앙과 삶의 불일치, 신앙과 사회적 책임의 불일치로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같습니다. 기독교 공동체가 사회적 책임을 좀더 하기 위해서 어떤 점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회개 입니다. 구원의 완성을 위해 끊임없는 개인적 회개가 필요 하듯이 우리 기독교도 사회에 침묵하고 무관심한 일에 대하여 회개해야 합니다. 여기서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이란 틀에서 사회 정치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달려들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적 책임은 사회 전반에 책임적 존재로서 기독교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즉 소외된 이웃들을 돌아보고 함께 하는 것은 기독교의 책임적 사명이였습니다. 우린 선 성장 후 선교 논리에 매달려 그 들을 외면했습니다. 경제적 논리 속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묵인 되었습니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이웃들에게 희생을 강요한 것에 대하여 기독교는 침묵하였습니다.
이제 이런 것들을 기독교 공동체는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으로 이웃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러한 개인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회개 없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없다고 봅니다. 각 공동체의 깊이 있는 회개만이 우리를 온전한 기독교인으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7. 진로를 계획하고 고민하는 코스탄들이 많습니다. 사회적 선교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젊은이들에게 강한 도전 한번 해주시죠.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언제나 세상을 변화 시킬 한 사람을 찾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전체 속에 모든 사람들이 다 그 한사람이 될 순 없습니다만 부분으로는 각자 역할에서 충분히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자동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엔진입니다. 그러나 엔진만 있다고 자동차가 가진 않습니다. 엔진을 받쳐 주는 수천 가지 . 부속의 결합이 있어야 그 엔진의 역할이 엔진다워 집니다. 성경을 보니 금그릇, 은그릇, 질그릇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금 그릇의 달란트 어떤 사람은 은 그릇의 달란트 어떤 사람은 질 그릇의 달란트를 가집니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금 그릇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금 그릇이 최고다 라는 잘못된 선입관을 가지고 모두가 다 금 그릇이 되려고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선 그 각자의 역할이 틀린 것이지 모두 한 그릇으로 소중한 그릇입니다. 우리 코스탄들이 내가 있는 그곳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그릇의 역할을 다 한다면 그게 바로 그 세계 속에 하나님이 찾는 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사회선교를 너무 크게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잘하는 공부 접어 두고 투쟁가나 선교사가가 되면 세상은 참 힘든 세상이 될 것입니다. 저는 개인 적으로 코스탄 여러분들이 현재 있는 각자의 위치에서 소외된 우리 이웃들을 돌보고.세상의 거짓에 대해 아닌 것은 당당하게 아니라고 이야기 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그것이 바로 사회선교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모두가 다 금 그릇은 될 수 없지만 모두 사회 선교사는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진로를 결정할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진로의 결정에 있어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 앞에서는 금 그릇과 질 그릇 모두다 소중한 그릇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그 역할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 앞에선 그게 바로 금 그릇이며 또 그게 바로 사회선교사 입니다. 세상 속에 모두가 다 하나님 나라를 이룩하는 사회선교사가 되길 기원합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유진소 목사님, 안녕하세요. 코스타에 참석하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어떻게 신앙을 갖게 되셨는지요.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교회 마당에서 놀다가 예배에 참석하게 되면서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그 후에 일단 교회를 떠나지 않고 교회에서 성장했고,개인적으로 주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한 것은 고등학교3학년 때였습니다. 친구의 하숙방에서 인생과 진로, 그리고 신앙에 대하여 이야기 하다가 새벽에 성령의 임재와 함께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신학교를 가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럴 수 없어서 재수를 했고, 그 후 먼저 세상 학문을 알 필요가 있다는 멘토 목사님의 조언에 따라 연세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해서 공부했습니다. 이후 신학대학원에 갔고, 온누리 교회 부목사를 거쳐 13년전에 LA에 현재 ANC 온누리 교회를 개척해서 담임하고 있습니다.

2. 오늘 설교의 주제와 내용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세상 가운데 믿음의 삶이 자신을 지키고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세상과 대결을 해야하고, 그 대결에서 반드시 이겨야하는 것을 다니엘의 세 친구를 통하여 배우고 묵상하기 원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다니엘의 세 친구가 대결에서 승리한 비결, 즉 영적인 통찰과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신앙고백을 통해, 우리 역시도 세상과의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울 수 있으면 하는 소망으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3. 이번 코스타의 주제와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느끼시거나 생각하신 점에 대하여 한 말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주 중요한 주제를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적으로 너무나 중요하고, 그러면서 그 주제 속에 문제 제기만이 아니라 대답까지 제시해 주는 좋은 주제입니다. 세상속에서 세상을 향하여 살아가는 신앙인이 꼭 생각해야 할 주제입니다. 평화가 용기가 되고 도전이 되고 싸움이 되고 승리가 되는 그런 비밀들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시고, 성숙한 신앙을 갖고자 고민하는 코스탄들에게도 조언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신앙의 선명함이 우리의 신앙의 고민과 갈등을 이길 수 있는 대답입니다. 고민이 있다는 것은 많은 경우 세상적인 부분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을 아직 포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세상의 가치관과 신앙의 가치관이 갈등을 일으키는 경우에는 삶의 무게중심을 확실하게 주님께 옮기는 계기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인정하고 선포하며, 삶 속에서 하나님께 최우선순위를 두고, 그 헌신을 매순간 확실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코스타는 말씀을 통해, 그리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형제자매들과 이미 그 고민을 경험한 선배 및 멘토를 통해 고민의 해답을 얻어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시기를 권면하고 싶습니다.

5. 교회라는 것이 어떤 공동체인가 라고 질문한다면 어떻게 대답하실지, 섬기고 계신 지역교회의 비젼과 함께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교회는 부름받은 성도들의 모임이면서 동시에 주님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그 신앙생활의 목적이 됩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된다는 측면에서 교회는 주님을 향한 예배를 통하여 이 일을 감당하는 예배 공동체여야하고, 또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회복과 선교 사역을 통하여 이 일을 해 나가는 그런 공동체여야 합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


1.손희영 목사님, 안녕하세요. 오전 주제 강의를 다시 맡아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처음 코스타에 참석하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손희영 목사이고 1949년 생입니다. 연세대 의대와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모교와 세브란스 병원에서 내과학 교수를 지냈습니다. 1987-1989년 사이 택사스 휴스턴 소재 M.D. Anderson Cancer Center에서   폐암 연구분야의 선임연구원을 지냈습니다. 그후 대학을 사직하고 1990-1995년에 켈리포니아 파사디나에 있는 풀러 신학교에서 선교학과 목회학 석사를 마쳤습니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플로리다 게인스빌 소재 게인스빌 한인교회를 담임하고 있습니다. 교회 밖 활동으로는 한국 인터서브 선교회 해외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아내(고은희)와 두 아들(수민 수빈)이 있습니다.

2. 이번 코스타의 주제인 “예수의 평화, 세상을 향한 용기”에 대한 주제 강의를 맡아주셨는데요, 현재 상황에서 이 주제의 의의 또는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시대는 국제적으로든, 조국 사회의 현실로 보든 앞이 안보이는 혼란과 갈등의 짙은 안개속과 같습니다. 그 원인은 사회학적으로나 경제학적으로 혹은 국제정치적으로 여러가지 해석을 할수있겠지만 성경적으로 볼때는 하나님의 '샬롬'이 깨어지고 실종된 때문이라고 봅니다. 샬롬의 실종은 타락이후 인류역사에 늘 있어왔지만 오늘날과 같이 물질문명이 발달하고 인간성의 황폐화와 이념의 대립이 첨예(살벌)하게 드러나 있는 상황은 드물다 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진정한 샬롬 없이는 결코 인간답게 살수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샬롬은 하나님 만이 주실수있는 선물입니다. 생명의 선물입니다. 코스탄들이 나아가고 있는 미래의 날들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습니다. 나라 안팎으로 넘어야할 장벽과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산재해있으며 취업, 자녀교육, 사회참여, 교회 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정말이지 새롭고 확실한 복음에 대한 이해, 복음안에 약속된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하지 않을수없습니다. 진정하고 충만한 샬롬은 미래에 약속된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의 삶입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그 샬롬이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 세대 안에서도 첫열매로 나마 맛보며 살수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들에게 상당한 댓가 지불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은 그리스도께 대한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 그리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샬롬이 파괴된 이 세상이 겪는 고통과 고난에 동참하고자 하는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여러가지의 용기가 있겠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용기란 샬롬을 파괴하는 세상의 악과 죽음의 권세의 정체를 꿰뚫어 보고, 그 어머어마한 세력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해체되었음을 알고 믿으며 다가올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의 샬롬을 이 땅에서 '미리' '앞당겨' 실현하며 동참하기 위해 악과 싸울수있는 용기인 것입니다.

3. 주제 강의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미리 맛보기를 해주시면 코스탄들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말씀의 요점은 이러합니다.
1. 하나님은 영생과 샬롬으로 충만한 세상을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의의 관계를 지속하고 있음으로 유지된다.
2. 하나님을 등지고 타락해 버린 인간은(불의하게 됨) 생명을 잃어버리고 당연히 샬롬도 상실하였다.
3. 이것은 성경안에서 하나님의 저주로 표현되며 그 결과는 '악' 이다. 악이란 단순히 인간의 도덕적 붕괴로 인한 부정적인 결과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적인 사단의 사주, 인간의 통제를 떠난 자연계의 파괴, 그리고 거미줄 처럼 시간과 공간을 종횡하며 얽혀진 개인과 집단의 악들이 합쳐지고 중복되고 확대재생산된 어마어마한 세력이다. 이것은 반창조의 현상이며 반생명의 현상이며..그래서 그것을 궁극적으로 죽음의 증상이라고 해도 된다.
4. 이 세상에서 인간이 겪고 있는 모든 종류의 개인과 집단의 고통들과 천재지변들은 바로 '악'(evil)이며 죽음의 그림자들이다. 세상을 지배하고 인간을 죄와 죽음으로 몰아놓는 이 악의 결과로 인간이 겪어 왔고 겪고 있으며 겪게 될 비극들을 조금만이라도 돌아보라.
5.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속하셨다는 말, 죽음을 정복하셨다는 말은 그분의 십자가 상에서 인간과 세상의 모든 악들을 그 존재위에 수렴하여 짊어지셨고 그것을 감당하면서 마침내 그 악의 세력을 '소진'시키셨다는 것이다. 그것이 죽음을 이기신 부활의 진정한 의미이다.
6. 부활로 말미암아 여신 새하늘과 새땅과 새 육체의 시대-완성된 햐나님의 나라는 언젠가 우리가 소유하게 될 것인데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의 삶-샬롬이 지금 여기 우리의 삶속에서도 부분적이나마 누리게 된다. 단,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만 그 혜택이 주어진다.
7. 예수안에서 샬롬을 누리는 자들은, 혹은 그것을 누리려면, 우리는 자신의 샬롬안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죄와 그 결과인 악으로 고통하는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고 우리의 존재를 열어 그 고통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나누면서 악의 실재를 최소화하며 샬롬의 힘을 확장하고 나누는일에 우리를 드려야 한다. 그것은 성경 진리에 대한 이해와 역사의식과 더불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용기는 우리가 행하는 삶의 어떤 미덕보다 더 완전하고 확실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런 말씀을 준비하는 과정이 저 자신의 성경적 세계관 정립을 위해서, 저 자신의 샬롬을 위해서 주제강의가 필요한 일이었지 않았나 합니다. 

5. 코스탄들에게 평소 바라시던 점이 있으시면 신앙의 선배로서 한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1990년 서부 코스타에 세미나 강사로 한번 갔고 2007년에 다시 참석하게 되기까지 너무 오랜 gap이 있었고 세대차(?)도 있고 해서 적실한 말씀을 드릴수있을까 의문이 생깁니다.
다만 한가지 느꼈던 점을 굳이 말하자면, 코스탄들이 교회생활의 연조들이 차이가 많아서 많은 분들이 아직은 불신자인 상태로 참석하고(매우 좋은 일입니다) 어떤 분들은 상당히 훈련된, 그래서 신앙의 삶의 적용 문제를 깊이 연구하고 싶은 분까지 너무 다양해서 주제강의나 저녁 설교 등을 준비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좀 쓴 소리를 하자면 참석자들 중에 매우 많은 분들이 신앙적 언어, 성경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등이 아직은 부족하지 않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해 봅니다. 가급적이면 코스타는 적어도 3년 정도 씩은 연속적으로 참석하도록 독려하고, 2-3년 정도는 복음의 기초를 확실하게 배울수있는 주제강의를 갖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종종 느꼈지만 코스타라는 집회의 명성 때문에 참석자들의 실력(이렇게 표현할수있을지)과는 동떨어지게 너무 멋지고 수사적이고 주제를 내거는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아무튼, 코스타 라는 좀처럼 갖기 힘든 기회를 통해 한국의 젊은 지성인들이 성경계시와 역사의식과 현실참여적 열정이 골고루 균형을 갖춘 멋있는 그리스도인들로 훈련되기를 바랍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


김기현 목사 - 월요일 전체집회 강사
http://blog.daum.net/ezrakim

1. 김기현 목사님, 안녕하세요. 코스타에 참석하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저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교회를 섬기는 목사, 이웃과의 관계에서는 부산 기윤실을 섬기는 활동가, 저 자신과의 관계에서 저의 은사인 글쓰기를 하는 작가입니다.

2. ‘가롯유다의 딜레마’,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라는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간단히 소개해주시고, 어떤 의도로 이 책들을 쓰게 되셨는지 설명해주십시오.

'가룟유다 딜레마'는 유다복음과 가룟 유다가 던지는 만만찮은 질문에 대답하는 책입니다. 과연 가룟 유다의 배신은 예정인가, 자유의지인가? 유다는 자살했으니 지옥 가는가? 등의 골치 아픈 문제를 하나 살피면서도 궁극적으로는 가룟 유다와 싸우기보다는 예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데 초점을 맞추었어요.

'하박국, 고통을 노래하다'는 누구나 겪는 고통의 문제를 신학적으로 성찰해 본 책입니다. 하박국서를 중심으로 하고, 하박국서를 내재적으로 읽고, 그것을 신학과 인문학과 연결시키시고, 그런 다음 제 경험을 섞었어요. 예를 들면, 왜 착하고 의로운 하나님이 모진 고통을 허락하시는가, 원수처럼 미운 사람을 향해 복수하는 마음을 품고, 그렇게 기도해도 되는지, 왜 하나님은 기적적인 응답을 주시 않으시는지 등을 다루었어요.

3. 오늘 특강의 주제와 내용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전반부는 샬롬의 3중구조를 설명하구요, 후반부에서는 야곱이 그의 형 에서를 만나는 대목에서 어떻게 평화를 이루어냈는가를 다룰 것입니다. 특별히 강조할 부분은 평화란 다름 아닌 용서라는 것입니다.

4. 근래에 한국 교회에 대한 비난이 커지고 있는데요, 젊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서부터 새롭게 시작해야할까요?

성서와 독서입니다. 우리 자신을 회개케 하고, 시대를 변혁하는 힘이 다름 아닌 성서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성서를 대충 읽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유교의 선비들은 한 책을 백번이고, 천번이고 읽었습니다. 한국 개신교내에 예컨대, 로마서나 복음서, 등 성서 한 권을 그렇게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성서 이야기가 우리의 살과 피, 혈관 하나 하나에까지 침투해 들도록, 그래서 내가 말하는 것인지, 성서가 내 안에 들어와서 말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가 되도록 반복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성서와 함께 책을 곁에 두어야 합니다. 칼 바르트는 “한 손에는 성서를 다른 한 손에는 신문을”이라고 했어요. 신문도 신문이지만, 무엇보다도 독서가 우선이고, 최고입니다. 성서를 살아낸 사람들과 선배들의 책을 읽으면서 시대를 읽고, 살고, 바꾸는 지혜와 영성을 자연스레 몸에 체득하게 되지요. 그러니 웨슬레의 유명한 기도처럼, “한 권의 사람, 만 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서와 독서로 시작하기 바랍니다.

5.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회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는 기독교 신앙에 처음 접한 사람들에게 신앙의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위의 얘기와 중복됩니다만, 성서를 부지런히 읽어 보기를 권합니다. 성서는 정말 재미있어요. 여기에 세 가지를 덧붙이고 싶네요. 첫째는 한분의 멘토입니다. 둘째는 열 명의 친구입니다. 셋째는 백 권의 책입니다. 청년의 시기, 유학의 시기에 한분의 멘토를 만나고, 같은 꿈을 꾸고, 격려해 주고, 도전해 줄 수 있는 친구를 10명을 만나고, 영혼과 지성과 감성을 튼실하게 할 좋은 책을 백 권 읽을 수 있다면 신앙과 인생에 있어서 정말 행복하고, 의미있을 겁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