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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1 11:26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8년 8월호

eKOSTA: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서혜진: 샌프란시스코 베이지역에서 남편, 아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번 코스타에서는 기혼조 조장으로, 북부 캘리포니아  지역의 코디로 섬겼고, 조장은 이번이 번째였습니다.

한동호: 네브래스카에서 정치학 박사 과정에 있고, 미국에 지는 3, 그리고  코스타에 참가했습니다. 조장 참가했고 이번에는 조원으로 참가했습니다.

최자영: 시애틀에 살고 있고, 코스타 참가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조원이었구요.

서정석: 뉴욕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이번이 처음 참석입니다. 기혼자 신학생 그룹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eKOSTA: 이번 코스타 전체를 평가해보겠습니다. 전체적으로 평가해주시고 가장 좋았던 점과 아쉬웠던 점을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특히 아쉬웠던 점에 대해서 건설적인 비판을 해보겠습니다.

KOSTA/USA 2008 주제가 'The way to live: Thy kingdom come'이었습니다. 주제가 시대에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 청년 학생들에게 필요하고 적절한 내용이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니라면 어떤 점이 아쉬웠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한동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주제가 굉장히 중요하다 생각이 들었고, 코스타 참석하면서 아주 일관성 있게 적용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체적인 분위기 맘에 들었습니다.

eKOSTA:작년 코스타의 주제와 연결이 되었습니까?

한동호: 작년에는 주제가 시대를 본받지 말고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차별화된 삶이었는데 올해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이란 느낌입니다. 비슷한 주제가 흐른다고 생각합니다.

최자영: 한인 청년 학생들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하고, 시대에 적절하며, universal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야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서정석: 보통 하나님 나라에 대해 얘기하면 추상적이라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웠던것 같은데 이번에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들으면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할 있었습니다. 청년 학생들로서, 다른 나라에 흩어져 있는 학생들에게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중요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서혜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중요할 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굉장히 관심이 많은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주제 때문에 가기로 하신 분들도 있었고, 작년 주제와도 아주 연결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작년 주제 찬양도 계속 불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반면 주제에 대한 열망이나 관심과 비교하면 주제가 아주 전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코스탄들 마다 주제를 묵상하고 이해한 정도가 다른 같았는데, 그런 부분을 고려해서 주제전달이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 나라의 이중 구조에 대해서도 들어보지 못한 코스탄들도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설명이 되지 않고 집회에 참석하게 되니 좀힘들지 않았을까 합니다. 말씀과 세미나도 주제가 들어맞았지만, 강사님들께서모두들 그런 기초가 있을 것이라 가정하고 들어가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김도현 교수님의 특강이 주제를 잡아 주었던 것처럼 많은 코스탄들이 맥을 잡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주제 세미나가 - 이재천 목사님의 - 그런 역할을 하긴 했는데 보다 많은 코스탄들이 그런 과정을 통해서 주제를 접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주제 세미나가 주제 세미나인지 몰랐던 사람들도 많았고, 그것을 통해서 제공된다는 것도 모르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주제 자체는 아주 적절하고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신학적인 바탕뿐만아니라 개인적인 삶에서 하나님 나라까지도 다뤄져서 좋았습니다.

eKOSTA: 그러면 개별 프로그램을 평가해보겠습니다. 전체 집회에서 설교하거나 강의한 내용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셨습니까? 이번 코스타의 주제가 전달되었습니까?

최자영: 저도 서혜진 자매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정말 중요하고 살아야 주제를 갖고 나왔는데, 그게 전달되지 못했던 것이 굉장히 아쉬웠습니다.

eKOSTA: 코스타에서 주제의 역활이 아주 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최자영: ‘주제’라는 자체가 모든 것을 꿰뚫어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 사람이든지 계속해서 생각해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야기하기 위해 기도가운데 그런 주제를 들고 나오신 아닙니까? 주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서, 주제를 놓고, 반복해서 얘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eKOSTA: 주제를 전달하려면 어떤 부분들이 필요할까요?

최자영: 개인적으로 코스타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하는가 하는 질문을 가지고 집회에 참여했었는데 결과적으로 충분히 답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주제의 전달에 대한 방법적인 문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코스타가 과연 무엇이고 어떤 것을 전달하려고 하는지 이번 코스타를 통해서는 알기 어려웠습니다. 방법상의 문제인지, 코스타의 정체성 문제인지, 어쩌면 일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메시지 전달에 앞서서 코스타 운동의 정체성이 확실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쩌면 지금이 새로운 phase 로의 발돋움 하기 위한 과도기 수도 있겠습니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메시지를 전달 받고 싶었던 사람으로 서는 많이 아쉬웠습니다.

조를 위주로 참자가 운영체계가 편의상 유용하긴 하지만 조장들에게 중간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낼 있도록 주어진 자원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조장들조차 코스타의 핵심 가치에 대해 온전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조장도, 조원도 힘든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코스타의 기본 주제와 사이가 너무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아닌지 합니다. 그러므로 조장의 인도로 코스타의 핵심정신이나 이번 주제가 무엇인지 이야기 된다면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는 일도 있어 사실, 수련회 기간에 코스타가 이야기 하려는 주제에 거의 접근이 힘들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빡빡한 일정 가운데 강의를 소화하거나 주제에 대해 생각해 시간은 모두 조와 함께 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그러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인 차이는 있을 것입니다. 

조활동이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좋은 사람들과 모여 서로 알아가면서 함께 나누게 은혜와 기쁨 또한 컸습니다. 하지만, 코스타가 정말로 부르짖고자 하는 메시지가 우선순위를 가져야 하는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자꾸 빠진다면 여느 청년 수련회와 다를 것이 없겠습니다. 조금 강하게 말씀드린다면, 조를 없애던지, 아니면 조장 훈련을 강화하고, 자원을 제공해서, 코스타의 주제를 이해할 있는 환경을 마련하기 문제를 파격적으로 개혁하든지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정석: 어떤 집회의 영향이 개인의 삶에 영원히 남을 수는 없을 같습니다. 항상 집회가 가져다준 영향을 되짚어보고 새기는 것이 각자의 과제입니다. 이번 주제에 대해서는 하나님 나라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제가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있어서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소그룹에서도 하나님 나라에서, 내가 있는 곳에서 정체성을 확인하는 방향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런 면에서 신학적인 얘기를 이끌어 가면서 이해를 하기보다는 실질적인 삶의 방향을 정하는데 좋았습니다. 내년 코스타의 주제와도 연결이 거라 생각합니다. 비판을 하자면 있지만, 주제 면에서는 개인적으로 좋은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좋은 메시지를 많이 받았습니다.

한동호:   전체집회에서 전달할 있는 부분과, 소그룹에서 대화하면서 받는 메시지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전체 집회에서는 주제를 선포하면서 메세지를 전달한다면 조에서는 주제를 나와 연결하도록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코스타가 조별로 움직이기 때문에 조장의 역량이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조장의 관심사가 이성교제라면 많은 부분에서 이성 교제로 가는 것을 봅니다. 아쉬웠던 부분은 최자영 자매님 말씀대로 전체적인 주제가 선포되는 가운데 주제에 대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구체적인 대화가 없었던 같습니다. 결국은 나의 문제가 하나님 나라가 어떤 관계가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eKOSTA: 오후에는 주로 세미나로 채워졌는데요, 세미나 운영이나 내용에 대해서 평가해주십시오.

서혜진: 제가 택한 세미나는 개인적으로 아주 좋았고 알차고 도전되는 내용이었습니다. 가지 아쉬운 점은 올해는 선택의 폭이 좁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있었던 세미나가 없어진 것도 보았고, 한정된 인원을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선택의 폭이 좁았습니다. 다른 한가지는 TM 세션이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년에는 TM 참석을 못했지만, 올해는 과학적 방법으로 성경 연구에 관한 TM 세션에 들어갔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았고 이런 것이 TM 정신에 맞는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쉬웠던 점은 참가자 수가 , 정도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부분은 쉽게 해결할 있는, 활성화 시킬 방법이 있는 같습니다. TM 내용이 홍보되었으면 쉽게 많이 왔을 같고, 조금만 노력하면 많은  분들이 오시고 유익을 얻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사전에 TM 선택하신 분들과  코디, 그리고 강사들이 서로 먼저 연락을 있어서 토론의 이슈도 먼저 모으면 좋을 같고,  세미나 TM 경우에는 내용이 먼저 알려졌으면 좋았을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았습니다.

한동호: 번째 참석했는데 동안은 이성교제와 같이 사람들이 추천하는 세미나를 많이 들었었는데, 올해는 선교라는 주제를 나름대로 정하고 선교에 대한 세미나를 들어봤습니다. 대부분은 세미나 강사로 오신 선교사님들의 경험과 가져 오신 주제에 따라 세미나의 성격이 많이 다른 같습니다. 굳이 코스타 세미나라고 하지 않아도 정도로 개성들이 강했습니다. 세미나에서 이론적인 내용보다도 실제적인 내용을 전달할 도움이 되었습니다. TM 세미나는 정치학 세미나에 들어갔는데, 강사님이 놀랄 정도로 많은 참석자가 있었습니다. 다양한 전공자들이 오셨는데, 이유가 정치학 세미나 제목에 ‘세계화’라는 시사적인 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토론이라기보다는 각자가 가진 의견들을 한두 마디 있는 분위기였습니다.

서정석: 세미나가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 생각을 해봤습니다. 주제와의 연결이 우선순위인지 아니면 다른 면으로 필요를 채워주기 위한 것이었는지 생각해 보았는데 세미나가 주제와는 거리가 있었던 같습니다. 세미나를 인터넷으로 사전 등록을 했지만, 의미가 없었습니다. 특히 특정 세미나에는 인원이 너무 많았고, 시리즈 강의에 대한 혼동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전체 시리즈를 신청하지도 않았는데 시리즈인 것을 나중에 알고 신청하지 않은 세션에 들어가서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강사님들과의 소통이 되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강의 선택했을 받았던 쿠폰이 거의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목회자 그룹을 담당하다 보니 저녁 11시에 유명 목사님과의 만남이 있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모임이 급조된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주제가 없었고, 인도자가 정해지지 않아서 방향 없이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주제를 먼저 주던지, 아니면 참석 가능자에게 미리 의견을 들어봐서 어떤 부분에서 듣고 싶은지, 주제나 방향을 정했으면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있었을 같습니다.

최자영: 세미나는 전체 주제 아래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할지를 얘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주제로 하나로 묶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많은 참가자에게 중요하게 다가오는 결혼 문제에 그런 주제를 하나님의 나라로 풀이하기보다는 굉장히 방법적인 면으로 치우쳐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적어도 그런 것을 바라고 오는 참석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다급한 필요들을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으로 보게 하려는 노력이 있었는가입니다. 또한 미혼이고 결혼이라는 것이 삶에 얼마나 중요하고 실제로 필요한지 알고 있습니다. 적어도 코스타에서는 예수님의 제자 삶이 무엇이고 십자가의 도가 무엇인가 얘기하는 가운데 이런 결혼 얘기가 있어야 하지 않나 아쉽습니다.  참가자들의 필요와 원함에 따라 여러 가지 토픽을 두루두루 갖추며 제공하기보다는, 무슨 토픽이든 하나님의 나라로 또는 그해의 주제로 연결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TM 아주 좋은 시도인 같았습니다. 저도 정치학 세미나에 들어갔었는데, 많은 인원이 광범위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려니까 시간적, 현실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토론 주제를 좁게 잡아서 이야기하면 결국 주제로 연결되고 원래 의도였던 토론도 이루어 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활성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KOSTA: 일주일 내내 조원들과 함께 보내셨는데, 조활동이 이루어졌나요? 어떤 점이 좋으셨고 어떤 점이 아쉬우셨는지요?

서혜진: 제가 기혼 조장으로 섬기는 동안, 사람을 보기만 해도 은혜가 되었던 가장 좋았던 같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부가 함께 있는 모습이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같은 길을 가는 자체가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혼 조가 염려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굉장히 가능성이 많은 사역의 대상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기혼 조의 비율이 앞으로도 점점 높아질 같은데, 이제는 기혼 조를 전체적인 운영에서 특수한 그룹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자체로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처음으로 시도했던 기혼 조와 강사들의 만남도 아주 좋았습니다. 저희는 장평훈, 이민자 선생님께서 하시는 Q&A 들어갔는데, 굉장히 좋았습니다. 부부가 함께할 있는 세미나가 많이 개발될 있으면 좋겠습니다. 부부가 함께하기 때문에 더욱 시너지를 있는데, 그것을 살리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코스타가 부분을 앞으로도 개발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한동호: 저는 미혼 조에 3 참석했고 앞의 2년간 조장으로 섬겼습니다. 이번에는 조원으로 참석하면서, 조원으로 많이 있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우선 운영에서 조장의 역량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JJ에서 해의 주제와 코스타의 정체성에 대한 확실한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아침 큐티 시간이 조원들과 함께 말씀을 나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데, 조장들에게 큐티 본문에 대한 훈련뿐만 아니라 소그룹 인도에 관한 훈련 또한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코스타의 활동이 의미와 적실성을 가지리라 믿습니다.

 

최자영:  조장으로 섬기시는 분의 헌신된 마음을 생각할 조원으로서 감사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말씀드렸지만 섬김을 위해 조장에게 제공되는 자원이 부족할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장 훈련이 어떠한지 들어보면, 같아도 마음이 아무리 많다 해도 정도로의 훈련으로는 시행착오가 많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장들이 미리미리, 또는 내내 교육이 되고 훈련 받으면 조장에게도 유익이 있고, 그들이 코스타에 밀착되어 운동할 있게 같습니다. 물론 그것이 조원들에게 유익이 됨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구요.  조장들 훈련이 단기간, 훈련과 섬김의 일회성에서 벗어나서 정말 삶의 현장에서 코스타수련회까지 이어지도록, 코스타 운동의 일원이 되도록 훈련받을 있으면 좋을 같습니다.

서정석: 우선 조장들이 미리 큐티를 준비하는데, 문제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큐티 본문에 대한 의도를 얘기해주는 메시지가 있었으면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무언가 억지로 맞추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는 얘기들도 많이 하셨습니다. 저희 조는 큐티 나눔에서 마음을 여는데 시간이 필요했던 같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나눔 이전에 큐티 질문 자체에 대해 평가를 하게 되었고, 그런 면에서, 코스타가 생각하는 주제가 조장에게 주어지고 조장이 큐티를 만들어 가는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가지는, 기혼자 그룹은 활동이 많이 제한되어 있어서 가족이 같이 모이는 시간이나 배우자들과 모이는 시간을 확실히 프로그램화해서 각각에서 모두 유익을 얻을 있으면 좋을 같습니다.

eKOSTA: 찬양이나 금식 기도회, 엑스포, 그리고 상담 등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외에 운영에 관해서 코스탄들이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면 해주십시오.

한동호: 금식 기도회 끝나고 조금 기도하는 분위기가 이어졌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기도하고 싶어도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코스타에 참석자의 70% 처음 참석하시는 분들인데, 그들에게 '코스타란 무엇인가' 하는 점을 집회 처음 부분에 소개해 준다면, 참석자들이 빨리 적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KOSTA: . 전체에게 짧게나마 코스타가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주제에 대해 안내할 있다면 처음 참석자들에게는 도움이 되겠네요.

 한동호: 해가 지나가면서 코스타의 분위기도 다소 달라지는 같습니다. 예전에는 민족을 비롯한 공동체를 생각하는 면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개인주의적인 경향이 강해지는 같습니다. 제가 아는 코스타는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모임이거든요. 예를 들어, 작년은 정진호 교수님의 세미나와 같이 조국과 민족을 생각할 기회들이 있었는데 비하여 올해는 특히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점들이 다소 약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만일 코스타에서 나라와 민족에 대한 강조가 약해진다면, 개인의 만족만을 생각하는 소비자 기독교적 행태를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정석: 엑스포를 홍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경우 자리를 지키시지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제가 거주하고 있는 뉴욕에서는 선교단체를 비롯한 기독교 단체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엑스포에 가서도 많은 정보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코스탄들이 엑스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같습니다. 그래서 미리 코스탄들에게 엑스포가 무엇인지, 어떤 단체가 참석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면, 서로에게 도움이 같습니다.

 eKOSTA: 엑스포에 관한 정보가 교재에 실리기는 하는데,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할 같네요.

 서혜진: 저는 이번 코스타에서 찬양이 좋았습니다. 이번 찬양시간이 말씀과 예배에 들어가는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했던 같습니다. 상담은 저는 받지 못했지만, 조원들과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들어보면, 상담이 도움이 되었던 같습니다. 운영에서 작은 부분이지만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저는 아이가 있다가 보니, 저녁 집회를 2층에서 시작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저같은 경우 이번이 코스타 번째 참석임에도, 언제 다시 1층으로 내려갈 있는지가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보통은 일터의 현장 마치고 내려갔던 같아, 내려가 보면, 어느 날은 통제되고 있었고, 안내하시는 분들도 곤혹스러워 하셨고요. 차라리, 간사님 분이 2층에 계시면서  언제 내려오실 있다고 정확하게 안내를 해주시면 좋을 같습니다.

 최자영: 저도 찬양 시간은 매우 좋았습니다. 가지 아쉬웠던 점이라면, 기도회 많은 인원이 빠져나갔다는 점이었습니다. 2/3 빠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도 조모임 때문에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나중에 들어보니 아이들 때문에 부모님들이 미리 나가셔야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른 조원들을 기다리며 잠깐 기도회의 처음을 있었는데 기도회를 인도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이 준비하고 기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나가기가 아쉬웠습니다. 

eKOSTA: KOSTA 감격을 안고 열방으로 흩어진 코스탄들이 각지에서 화목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려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특히 gpKOSTA, ekOSTA, jjKOSTA같은 KOSTA 후속 프로그램에 기대하신 바가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최자영: 지역에서의 성경공부를 통해 지속적인 말씀 묵상과 공부로 제자화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현재 가장 필요가 크고, 핵심적이며, 활성화되어야 코스타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매년 반복된다고 해도 코스타의 일회성적인 면이 부정될 없을 같습니다. 그런 한계는 '지역 성경공부 운동' gpKOSTA 통해 충분히 극복될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련회를 시작/마무리로 해서 일년내내 지역에서의 성경공부 모임으로 코스탄들이 계속 복음화되고 그것이 지역공동체로 연결될 비로소 코스타의 열매가 맺힌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코스타의 이름으로가 아니어도, 지역에서 적게는 두셋이 모여 성경공부를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자원을 제공하여 지역교회에 소속된 사람들만이 모이는 모임이 아니라 누구나 참가할 있는 자율적이면서도 지속적인 성경공부 모임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모임을 통해 조장 , 코스타를 섬기려 하는 분들이 훈련을 받는다면, 앞에 이야기했던 조운영체계의 문제점이 많이 보완되는 것은 물론 굳이 수련회를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일년내내 자신들의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따라 섬기는 삶을 사는 훈련으로서도 의미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성경공부를 해가면서 변해가는 가운데 지역교회를 섬기는 코스탄들이 교회와 동역 하면서 끼치게 선한 영향력은 어떻겠습니까? 말씀으로 변화된 삶들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 능력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 봅니다. 하나님께 직접 부르심을 받은 각양각색의 모습을 하나님의 딸과 아들들이 일어나 신음하는 세상으로 향할 것을 생각해보면 가슴이 벅찹니다.

한동호: 일상에서 화목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모든 코스탄들의 고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눔의 과정에서 성공의 경험뿐만 아니라 실패의 경험도 함께 나누어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말씀과 기도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gpKOSTA, eKOSTA, jjKOSTA 모든 프로그램들이 크리스천으로서 함께 나가는 좋은 동역의 네트워크라고 생각합니다. 혼자서만 고민하기보다는 주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형제, 자매들과 같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혜진: 코스타에서 부어주신 은혜가 온전히 삶으로 살아지려면, 하나님 앞에서 매일 매일 진실하게 겸손하게 있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같고, 같은 길을 가는 지체들과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나아가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KOSTA 후속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아주 기대하는 바가 큽니다. 특히 제가 있는 지역 (San Francisco/Bay area) 이번 코스타 전에 gpKOSTA 열려서 같은 지역에 몸담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발견하고 힘을 얻는 귀한 기회가 되었을 아니라  jjKOSTA 그리고 코스타까지 이어지는 선한 기운/동력의 출발점이 같아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gpKOSTA 내용도 지역 리더들에게 필요한 알찬 훈련이었다고 생각하기에, 앞으로도 gpKOSTA 사역이 더욱 활발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jjKOSTA 해가 갈수록 더욱 좋아지는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코스타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 중의 하나가 jjKOSTA 였습니다. 강사님의 말씀이 서로 상호보완되면서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을 아니라 코스타 말씀과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사실 조장훈련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조장님들이 말씀으로 먼저 orient 되고 은혜 받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실제적인 운영 tip 다른 부분은 온라인 여러 다른 방법으로도 훈련되니까요.)

eKOSTA: 내년 코스타의 주제가 'Shalom in Jesus, Courage against the world' 발표되었는데요, 내년 주제를 보시면서 떠오르시는 것들이 있으시면 나누어 주시겠습니까? 그냥 이미지도 좋고, 신학주제도 좋습니다.

한동호: 내년 주제를 보면서 예수님 안에서 평강을 누릴 세상에 대해서도 용기 있게 맞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코스타에 참석하는 이유는 광대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안에서 함께 걸어가는 동역자들을 만나기 위함입니다. 내년에도 그런 은혜를 누리기 원합니다.

서혜진: 내년 코스타의 주제는 전도사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번 코스타의 주제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는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미 임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이중구조 안에서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을 phrase 표현하면 내년 코스타 주제가 되는 같습니다. 갈등과 고통이 있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세상이 흔들 없는 평안을 가진 . 그러나 세상을 향해서는 세상을 거스르는 참된 용기를 가진 . 모습이 연결될 밖에 없는 같습니다. 기대됩니다.

eKOSTA: 개인적 여건이 허락된다면, 내년 코스타에 참석하시려고 하십니까? 그렇다면, 오시려는지, 혹시 아니라면 꺼려지시는지를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서정석: 저는 주제 때문에 다음에도 가고 싶습니다. 다음 주제가 이번 주제를 구체화 면이 있는 같습니다.

최자영: 코스타 참석 전에도 코스타를 귀하게 여긴 사람으로서 코스타가 세상에 소금과 빛이 되는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코스타가 이미 알고 있는 복음의 핵심에 집중하고 겉도는 느낌을 없앤다면 더할 나위 없을 같습니다. 계속 지켜보고 지지하겠습니다.

한동호: 코스타가 저를 항상 긴장하게 하고 년에 번씩 코스타에 가면 항상 많은 도전을 받기 때문에 내년에도 가고 싶습니다.

서혜진: 저도 개인적인 여건이 허락된다면 내년에도 참석하고 싶습니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코스타에 기대하는 바가 있고, 아무리 작은 부분이라도 돕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다른 이유는, 무엇보다도 코스타 참석 때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은혜를 많이 받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고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계신 분들 보는 도움이 되고, 그게 코스타에서 받는 은혜의 많은 부분인 같습니다. 도전이 많이 되기 때문에, 여건만 된다면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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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2/01 03:00 이달의 초점

유학생활 첫 한해 동안 거듭되는 실수를 통해 배운 교훈들이 이후의 삶에서 귀한 지침이 되어주고 있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는 ‘아너 시스템(honor system)’이 지금은 편하지만 처음엔 생소했다. 대학원생을 동료 학자로 인정해주는 분위기도 내게는 어색했고, 자발적인 참여가 아니고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막막한 자유도 낯설었다. 그러나,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려 애쓰면서, 좌충우돌 허점투성이의 말도 잘 못하는 이방인이 되어보고 나니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당신의 방법으로 사는 법을 조금씩 가르쳐주셨다. 생각할수록 참 감사한 일이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계획하고 진행하고 책임져야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일상사에서도 학업에서도 그런 일들의 연속이다. 그 안에서 오는 유혹도 만만치 않다. 이메일로 시험 문제를 받거나 문제지를 받으면 각자의 연구실에서 답안을 작성하고, 약속 시간 안에 담당교수의 이메일 계정으로 화일을 보낸다. 우편함이나 교수연구실 문 밑으로 답안을 넣어도 된다. 내 발로 먼저 찾아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기말이 될 때까지 어느 누구도 무얼하고 있는지 간섭하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안될 것 같은 좌절감도 맛보고, 그때마다 쉽게 가는 길이 자꾸만 눈에 보여 갈등도 한다. 시간관리에 소홀하다가 황급히 헤치우듯 써낸 페이퍼에는 본의 아닌 실수도 한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너무 한심해보여 낙망도 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갈급한 마음에 눈물 뚝뚝 흘려가며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으로 덮으시네” 찬송을 부른다. 그렇게 긴 시간 배워온 영어인데 말하는 것도 글쓰는 것도 왜 이리 더디고 어색한가. 한국어가 세계공용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분하기까지 하다. 시간이 흘러 자기 연구분야에서 실력이 쌓이다보면 언어의 불편함에서 오는 의기소침한 마음이 극복 된다고 하지만, 당장은 큰 위로가 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꿈만 같다. 다른 나라 언어로 승부해야 하는 사회과학도들의 비애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낙망스런 현실에서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러지는 경험을 거듭거듭하며 나의 유학 첫해도 그렇게 훌쩍 지났다. 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그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보화를 발견했던 것이다. 갑자기 이듬해에 우수한 학생이 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이 나와 함께하고 계시다는 사실때문에 마음이 평안해진 것이다. 먼 나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유의 한계 상황이야말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이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12:1)”셨을까? 주님 말고는 부빌 언덕이 없는 외로운 광야의 삶을 살아 보아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분량에 가까와 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 때에 하나님은 당신만을 전심으로 신뢰하는 법을 알게 하신다. 어디에서나 형통하는 완전하신 하나님의 기준으로 사는 법도 배우게 하신다.

시험 답안이나 페이퍼를 쓸 때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성실성(authenticity)을 지키는 것이다. 학문적 정직성(academic honesty)에 대해 철저히 교육하지 않는 학문적 풍토에 길들여져 온 유학생들은 서구사회의 아카데미아에서 요구하는 기준을 종종 어기게 된다. 처음 주로 하는 실수는 자신의 문장으로 완전히 소화시키지도 못하고 다른 학자들의 아이디어를 여기저기 서툰 영어로 짜집기 하다가 끝나는 것이다. 그 다음엔, 읽을 때마다 인용할만한 아이디어들을 미리 꼼꼼하게 챙겨 놓지 않아서, 혹은 이 정도쯤이야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에서 대충 마무리한 글들을 제출하게 된다. 이런 기억들은 상당히 오래 동안 부끄러움으로 남는다. 실제로, 글의 전거를 의심 받고 나서 마음의 상처가 남아 이후의 학업에 자신감을 잃는 이들도 보았다. 심한 경우, 적절한 인용 없이 표절한 답안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거나 학교를 옮기게 된 사례들도 있었다.

새로운 사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 본능적으로 인간은 그 곳에서 통용되는 규칙을 습득한다. 내가 가진 생각과 주류의 생각이 달라보일 때 내가 바꿔야 한다는 것도 배운다. 그런데 그 규칙이란 것이 나라마다 사회마다 많이 다르다. 다른 나라 학생들과 이야기해보면 부정행위의 기준조차도 퍽 상이하다. 가는 곳마다 시대마다 달라지는 상대적인 가치관과 기준들을 묵상해보면 마치 움직이는 표적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의 삶은 혼란스럽게 moving target 을 따라다니며 살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시는가 성경 안에서 찾아보면 되기 때문이다.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롬13:1).” 사회의 법이 지적재산권을 존중하자고 한다면 철저히 따르는 것이 옳다. 또 이렇게 말씀하신다.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빌2:14-15).” 당신의 자녀가 세상의 빛이 되길 원하시는 하나님은 그 어떤 원칙보다 뛰어난 기준을 우리에게 주셨다. 혼란 속에 있다면,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흔들림 없는 기준점(fixed point)을 말씀 안에서 찾아보자.

말씀은 우리 마음을 일분 일초도 쉼 없이 감찰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눈을 생각하라 하신다. 우리가 의식해야 할 것은 교수님들의 눈도, 교수님이 돌리는 소프트 웨어의 감시도, 경쟁하는 동료 학생들의 눈도 아니다. 내가 열심을 다하여 수고하고 있는 그 일이 하나님 앞에 모두 무익한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내면의 자아가 온갖 사회적 상과 벌들에 마음을 빼앗긴 채 노예처럼 길들여져 오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자. 불타는 시기 질투로 동생을 죽여 놓고 딴전을 피우고 있던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을 그분의 눈이 보고 계셨던 것 처럼, 여주인 사라의 학대로부터 도망하여 광야에 이르러 낙망하고 서있던 하갈을 그 눈이 보고 계셨던 것 처럼, 오늘 나의 모습을 그 눈이 보고 계신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 찌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 찌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찌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시139:7-10).” 다윗도 이렇게 하나님의 눈이 언제 어디서나 우릴 향하고 계시다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가. 그분의 눈은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 때문에 우리를 떠나지도 않으신다. 이토록 끈질기게 우리를 찾으시는 것은 하나뿐인 아들을 대신 내어 줄 만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보디발의 아내로부터의 유혹을 물리친 요셉의 이야기에서 보다 실천적 지혜를 얻어보자. “나의 주인이 가중 제반 소유를 간섭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임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 하리이까 (8-9절).” ‘꿈꾸는 사람’ 요셉이었지만, 현재의 삶 속에서 보여주는 그의 현명함과 순결함은 더욱 돋보인다. 사실 이런 결단은 굳이 하나님을 모른다 해도 도덕성이 투철하거나 자존심 강한 젊은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할 이도 있을 것이다. 자기의 의(self-righteousness)에 금이 가는 것이 정말 싫은 그 어떤 사람이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드러난 결과는 같아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근본 동기가 어디에 있었는지 놓치지 말고 따져보자. 누구보다 강한 책임감으로 자신의 본분을 다했던 성실한 젊은이 요셉. 그가 궁극적으로 지키고 싶었던 것은 자기 의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평가를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요셉의 시선은 그 어떤 공평한 저울보다 더 정확하신 하나님을 향하고 있었다. “요셉이 시무하러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은 하나도 거기 없었더라 (11절)” 보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그는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고 사는 자였기에 거듭되는 시험에도 넘어지지 않았다. 은밀히 다가온 유혹 앞에서 요셉은 옷을 버려두고 헐레벌떡 달음질쳐 나갔다. 겉옷을 버려둔 채 가식없는 양심을 가지고 환난 날의 피할 바위이신 하나님께로 도망했기에 그는 더욱 안전하였다.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내 공간 안에서 글을 쓸 때 시험을 치를 때, 이 요셉의 모습을 기억하자. 우리가 속한 아카데미아에서 기존의 축적된 연구 결과들을 우리는 재량껏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 받았다. 그러나, 우리에게 양심을 눈감는 표절이나 부정직한 행위들은 분명 금지되어 있다. 학문을 하고 있다면, 학문적 정직성(academic honesty)을 순결한 혼인의 언약과 같이 여기자. 그리고 세상의 평가가 두려워 이 약속을 지키자는 것보다는 그 약속을 깨뜨리는 악한 행위로 “하나님께 득죄” 할 수 없다고 말했던 요셉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순결하자.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거룩하기 원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정결하기 원해
  오직 주님 앞에서 순결하기 원해
  오직 주님 앞에서 아름답기 원해

  “내가 어떻게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범죄하리까?
  아무도 보는 없어도 결코 죄와 타협하지 않고
  자기를 지킨 젊은 요셉처럼 정결하게 살기 원해
  아무도 보는 없어도 거룩하게 살기 원해

  하나님의 이것이니 우리의 거룩함이라
  음란함 버리고 존귀함으로 주의 얼굴 보기 원해
  하나님의 바로 이것이니 뜻대로 살기 원해
  부정함 버리고 거룩함으로 주의 얼굴 보기 원해

 -강명식,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예수 믿는 학생으로서 지금 나의 삶은 어떠한가? 떨리는 마음으로 찬찬히 돌이켜 본다. 내 노력보다 큰 것을 탐하고 있었는지.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인 양 말하고 있었는지. 누구도 보아주지 않을 때 그 과정을 허수이 흘려 보내진 않았는지. 사회의 통제적 기준에 따라 급급한 노예의 삶을 살고 있진 않은지. 세상 윤리보다도 더욱 저급한 기준으로 살면서 작은 이익 앞에서 비굴해지지 말자. 눈에 보이는 여러 가지 상과 벌에 골몰할수록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희미해져 버릴 것이다. 빛의 자녀된 삶에도 이런 유혹의 그림자는 끊임없이 다가올 것이며, 이 땅을 떠나지 않는 한 그 사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 때마다 세상의 모든 윤리보다 탁월하신 주의 말씀에 매여 살아보자.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다 (시119:9).”

하루 분량의 삶만 고스란히 내놓고 말씀 앞에 비추어 보아도 입술의 고백과 실제 삶과의 간격은 너무나 크다. 다시 고쳐 살아볼 수도 없는 지나가버린 시간들이다. 그래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오늘의 어려움을 내일의 영광으로 바꾸실 수 있는 능력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님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이유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에 있음을 기억하자. 우리 대신 아들 예수를 죽이기까지 하신 분인데, 그가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그 일을 하며 우리 삶을 살아보자. 말씀의 준거가 우리의 삶 가운데로 통합되어 빛으로 드러나길 소망한다. 그 정직한 순간 순간이 모여 사회적 윤리와 도덕의 기준을 뛰어 넘고 하나님의 거룩으로 향해 나아가는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잠2:7)”는 하나님께서 결과는 책임지신다. 우리가 할 일은 매 분 초마다 우리의 흔들리는 마음과 생각을 요동치 않는 십자가 위에 못 박고 우리 삶을 예배로 드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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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1/01 02:00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3년 11월

<font size="2">Professional 이란 말은 전문성이 있는 직종을 가리켜서 쓰는 말인데 학생을 가리켜 professional 이라고 하면 두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 학생이 정말 연구와 공부를 잘해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전문 직장인과 비교해서도 뒤지지 않는 완벽할 정도의 실력과 솜씨를 보이는 경우입니다. 둘째는 하도 그 학생의 학업이 늦게 진행되다 보니 그저 학생이라는 신분 자체가 전문 직업인인 것처럼 굳어져 버리는 경우입니다.

제가  이 두 번째 경우에 속하였습니다. 학위 과정이 길어지면서 학생이란 신분은 왠일인지 제 나이 또래의 다른 친구들과 달리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상태를 아주 당당하게 변명하도록 해 주었습니다. 비단 저 자신 뿐 아니라 저의 생활비를 보조해 주는 양가 부모나 가족들도 저희의 그러한 경제적 의존성을 당연히 여기며 공부가 얼른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설마 밑빠진 독은 아니겠지라는 심정으로 보조를 해 주셨습니다.

제가 특별히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으로 저의 삶을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던 제 실패담을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저축을 하지 않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축할 수 있는 상황이었슴에도 불구하고 늘 모자란 듯 살았습니다. 그리고 졸업만 하면 남들이 사는 것 처럼 모든 경제적인 문제가 풍성하게 되고 떵떵거리고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둘째, 학생의 신분으로 있는 동안은 아직 돈을 생각할 때가 아니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유학생이었기에 당연히 학위가 저의 최우선의 목표였습니다. 아니, 사실은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래서 제 마음 속으로 “35세까지는 저 자신의 사회적 경제적 위치를 향상시키는 데 주력하고 그 이후로는 하나님의 일에 나서리라”는 야무진(?) 생각을 가지고 유학을 결심한 이후 오로지 저 자신의 학위와 또 그 학위 이후의 career를 향해 달려나갔습니다.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후 우연히 씨애틀에서 제가 다니던 (정말이지 저는 “다니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청년부를 섬기게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제가 은혜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 섬김을 통해 저 자신의 딱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딱한 모습은 “나는 이런 일 하기 위해 여기 온 것 아니야”라며 헌신하기를 주저하는 청년부의 학생들에게서 비추어 졌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 왔었는데, 그 지난 10년이 알고 보니 미래를 핑계로 삼아 현재를 사는 삶을 미루고 있었던 기간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열심히 살긴 살았지만 왜곡된 열심, 균형을 읽어버린 열심으로 살았기에 현재를 제대로 살지 못하고 현재 내게 닥치는 많은 것들을 뒤로 미루며 살았던 것입니다. 미국땅에 살면서 항상 언젠가는 떠날 것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일을 바라보니까, 작게는 학과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 지역사회에서, 또는 자녀들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주인의식이 전혀 없이 붕 뜬 기분으로 살았습니다. 과연 성인이 된 (심지어 가족을 거느린) 학생의 본분이 공부라고 하지만 공부하는 것 외에는 다 면책이 되는가 하고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유학생이라면 이민 사회에서는 열외로 취급하니까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사회적인 인정(?)을 받아서 당연하게 여겨집니다. 저 자신도 예외가 아니어서 신앙생활은 지극히 소극적으로, 헌신하지 않아도 되는 범위내에서 이루어졌었고 당연하게도 10년동안 전혀 성장되지 않고 위축된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많이 쓰이는 용어를 빌자면 고지론을 빙자한 이기적이고 소극적인 삶을 산 것입니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저축도 하지 않고 또 돈을 굴리는 일에 문외한이 되어 있다가 놓쳐버린 아까운 기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코스코, 등 소위 뜨는 회사들의 주식, 치솟아 오른 서북미 지역의 부동산 가격, 일찍 졸업하여 실리콘 밸리의 회사에 들어갔더라면 생겼을 막대한 수익, 그나마 졸업 후에 취직하여 드디어 왕창 부어넣었던 401k 의 반액에 가까운 마이너스 손실, 저축했던 돈이 없어서 아깝게 놓치고 때를 잘 못 맞춘 모기지 loan, 등등 돈이 희한하고 섭섭하게도 저와 제 가족들만 피해서 비껴지나 간다고 느껴집니다. 그렇지만 이제 무엇보다도 가슴아프게 아쉬운 것은 미래를 미리 앞당겨서 그것으로 현재를 대치해 버렸기에 놓쳐버린 그 10년의 세월입니다.

신기하게도, 성경에서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잘 세우라는 구절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미래에 대한 약속을 하지만 현재에 대해서는 잔인하리라만큼 현실적입니다 (특히 우리 인간의 음흉하게 숨은 깊은 속마음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미래를 지레 앞당겨서 현재를 대치해 버린 삶은 뿌리가 없는 삶입니다. 저축을 하든지 돈을 굴리는 방법을 일찍부터 궁리하든지, 다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궁리속에서 미래를 생각하다가 또 현재를 놓칠 까 두렵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 - 눅12:21 ). 그러나 현재를 충실하고 건강하게 (예를 들자면 직장, 지역사회와 교회에 대한 봉사와 베품, 그리고 개인의 영적성장) 열심히 살다가 보면 자연스럽게 이모저모로 재정에 대한 회계장부까지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관리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런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 눅12:31).

유학은 특히 미래를 바라보고 사는 환경에 처한 기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현재의 삶에 대한 면책권이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에 유학생의 삶의 최대 약점이 있습니다. 저 자신이 이민자가 되는 과정에 있기도 하지만, 제가 절실하게 깨달은 것은, 유학생이나 이민자나 다 한가지로 내가 여기에서 사는 동안은 마치 평생 살 것 같이 충성하는 성실한 삶을 이루어 나가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미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temp (임시직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곧 떠날 것 같이 책임지기 싫어하는 삶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쳐 주는 바는, 전인격적으로 현재에 헌신하는 삶, 즉 full time의 삶 이라는 것을 제 인생의 고개에서야 깨달았습니다. Professional student를 새롭게 정의한다면 “전인격적으로 현재의 삶에 헌신하는 학생”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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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1 03:00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3년 10월호

이코스타: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터뷰에 참여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달, 이코스타에서는 엄마로써 일 혹은 공부를 함께 하시는 자매님들이 겪게 되 는 여러 가지 애환들을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에 대해 이 야기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자기 소개를 해 주세요. (살고 계시는 지역, 직장, 학업, 가족 관계, 그리고 교회나 캠퍼스에서 하시고 있는 사 역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K 자매: Boston에 살고 있으며, 결혼한 지 6 년이 다 되어가고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 가 있습니다. Boston University 에서 Biomedical Engineering(의공학과) 박사과 정에 있습니다. 특별히 관심 있는 분야는 Biomaterials (생체재료)와 Tissue engineering (생체조직공학)입니다. 지금 교회나 캠퍼스에서 특별히 공식적으로 맡아서 하고 있는 사역은 없습니다.

R 자매: 저는 Cambridge, MA 에 살고 있습니다. 현재 Harvard 대학 전 산과 에서 포 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가족으로는 광통신 관련 회사에 다니고 있 는 남편과 16 개월이 좀 지난 딸이 있습니다. 매주 토요일 저녁에 성경공부를 하 고 있습니다. 모두 같은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알고자하 는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입니다. 학생과 직장인, 미혼과 아이가 있는 가정, 하나 님을 믿는 사 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저희 모임 가운데서 하나 님을 배우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분들이 생길 때가 제일 행복 하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저희 부부가 이런 성경공부 모임에서 많이 배우고 자라고 섬김을 받았기 때문에, 저희도 그렇게 섬길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코스타:
가정을 갖고 특히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 (혹은 학교)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힘든 일들이 참 많을 것 같은데, 가정, 일(또는 학업), (교회 또는 캠퍼스)사역 들 가운 데에서 우선순위를 정하시는 기준은 어떤 것인 지요? 그리고 그 기준을 지켜 나 가는 데에 어떤 어려움이 있으신 지요?

K 자매:
가정과 일(학업)을 우선으로 하고 있습니다. 결혼 전에 했던 것처럼 사역에 적극 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이가 어느 정도 큰 후로 미뤄두고 있습니다. 그저 삶 속 에서 자연스럽게 섬길 기회를 만들려고 합니다. 아이와 제가 준비되고 (공식적 인) 사역을 적극적으로 할 시기가 되면 하나님께서 신호를 주실 것 같습니다. 결 혼 전에는 가정이나 학업보다도 사역을 더 중요시하는, 조금은 이원론적인 경향 이 있었고, 가정에 매여서 교회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어른들께 반 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가정을 가져보니 가정을 잘 보살피고 아이 하나를 하나님 안에서 잘 키우는 것이 얼마나 큰 사역인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실제 생활 속에서 가정과 일이 충돌될 때에는 그 때 그 때 필요에 따라 가정이나 일 어떤 것을 우선으로 할지 정합니다. 몇 가지 꼭 지키고자 하는 것들이 있다 면, 학교 일이 아무리 바쁠 지라도 저녁식사는 가족과 함께 하고 아이가 잠 들 때까진 함께 있어주려고 노력합니다. 또 주말은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합 니다. 매일 매일 학교에 있어야 하는 시간은 compromise하지 않고 철저히 지키 려고 합니다. 어려운 것이 있다면. (공식적) 사역이라는 걸 못 하고 있기에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래도 되나 하는, 아주 큰 죄책감과 위기감을 때론 느끼기도 합 니다. 하지만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불러주실 거라고 믿고 기도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다른 어려움 들은 시간관리와 체력관리입니다. 항상 시간에 쫓기 고 일이 많아 피곤한 가운데 마음의 여유가 별로 없기도 합니다. 개인 시간을 못 가지기에 스스로를 충분히 점검하고 정돈할 시간도 별로 없고, 남편과 깊은 대화 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기도 합니다. 항상 피곤한 몸 상태로, 계속 쏟아지는 일을 계속 해 나가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시간, 체력, 또 다른 resources의 한 계 속에서 마음의 여유가 없다 보니, 가족에게도 따뜻하고 친절한 태도를 가지고 대하기가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 가운데 가족끼리 intimate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특별히 신경을 써서 해야 할 경우가 많습니다.

R 자매:
가정, 일, 사역 가운데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이라면, ‘하나님께서 제가 어떻게 하기를 바라시는지’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일반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말일수도 있겠지만, 하나님 뜻을 구하는 것이 모든 일에서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최선의 길이 뭔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어린 딸에게는 엄마가 곁에 있는 것이 제일 좋을 테고 남편에게 좀 더 맛있는 식사를 준비해주고 싶으면서도, 지금까지 공부하게 하시고 일하게 하 신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 생애의 각 순간마다 어쩌면 우 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겠다고도 생각하는데,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게는 이 문제가 오래된 기도제목입니다. 내년 7월이면 Harvard에서의 계약이 끝 나고 새로운 일을 구해야 하는데, 어떤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 뜻에 맞을지, 아이가 더 클 때까지는 일을 쉬는 것이 나을지 계속 구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가정, 일, 사역 가운데 우선순위를 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 기준을 지켜나가는데 어려움 이라고 할 게 없겠네요. ^^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 뜻을 구하고 우선순위 를 정하는 게 제게는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이코스타:
엄마로서 직업을 가지고 계신 것에 대해,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믿고 계신가요? 그 렇다면, 그 소명을 함께 나누어주실 수 있으신 지요? 언제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되셨는지요?

K 자매:
가정과 일을 동시에 꾸리는 것이 하나님의 소명이라고 믿습니다. 그 이유들은 다 음과 같습니다. 우선 Os Guinness의 The Call에서처럼, 하나님의 소명이란 직업 등에 대한 calling보다는, 하나님 그 분을 향한 부름이 우선된다는 데 동의합니다. 하나님이라는 분께 가까이 다가가는 과정으로 지금 나에게 허락하신 장이 현재 제 상황 (가정과 학업) 이라고 믿습니다. 때로는 입안이 바싹바싹 마를 정도로 바쁘 고 힘든 가운데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웁니다. 어떤 때는 전혀 의미가 없 어 보이는 일들을 하면서 하나님께 무조건적 순종을 배우기도 합니다. 자기 고집 을 피우는 아이와 씨름하면서, 하나님의 나에 대한 사랑에 대해서 배웁니다. 두 번째로는 학문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제가 공부하는 학문의 주 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걸 매순간 인정하면서 살고 싶다고 기도합니다. 또 저희 분 야가 하나님께서 주인 되시는 학문으로 온전히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또 하나님께 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쓰시는 학문이 되길 기도합니다. 아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그런 계획 속에서 제가 담당할 일이 있다면 그 것을 위해서 준비시켜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 번 째로는 직장에서 하나님 과 사람을 섬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실험실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섬긴다는 것, 사실 잘 못 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실험실 내에서 각자 자기 project를 하는 가운데, 섬길 기회가 별로 주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매일 한 사람 한 사람을 놓고 기도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졸업을 하고 진로를 결정할 때, 하나님과 사람을 좀 더 적 극적으로 섬길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그렇다고 전임사역자가 되겠다 는 건 아니고, 지금껏 공부해 온 것들을 계속 연결해서 하면서 사람을 섬기는데 적 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진로 결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으로 딸아이에게 좋은 role model이 되었으면 합니다. 딸아이가 일을 하게 될 지 전업 주부가 될지는 철저히 딸아이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서 결정될 일이지만, 지금 사회의 흐름으로 볼 때 딸아이 세대에는 대부분의 여성 이 직업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클 거 같습니다. 그렇게 될 때 제 딸아이도 저와 같 은 고민을 가지고 살게 되겠지요. 그런 딸아이에게 제가 지금 삶으로서 모범을 보 여 줄 수 있으면 좋겠고, 나중에도 대화와 의논의 좋은 상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합니다. 위와 같은 소명을 매일매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확인하고 있고,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원하신다는 것을 경험하는 사건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아이를 막 낳고 대학원에 apply 했을 때 있었던 일인데, 하나님께서 내가 상상도 못 했던 방법으로 가정과 학업을 다 지킬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아이를 임신하고 한 1 년 반 동안 일을 하지 않고 전업주부로 있었던 기간이 있었 습니다. 아이를 낳기 한 달 전 GRE를 보고 원서 essay를 썼습니다. 아이를 낳고 application을 여러 학교에 냈습니다. 그 당시, 제가 공부하고자 하는 분야 (tissue engineering) 가 있는 학교가 보스턴에는 하나만 있다고 알고 있었기에, 보스턴에 서는 한 학교만 apply하고 다른 지역에 있는 학교들에 apply 했었습니다. 몇 달 후, Admission 결과가 나왔는데, 보스턴에 있는 그 학교에선 reject가 되고 다른 지역에 있는 학교에서만 admission이 왔었습니다. 남편과 떨어져 아이를 데리고 먼 곳에 있는 대학원에 가야 할 지, 아니면 대학원 가는 걸 포기하고 남편과 아이 와 다 함께 있어야 할 지, 많이 고민이 되었습니다. 오랜 고민과 기도 그리고 남편 과의 의논 후에 선 결심은 가족이 흩어져서 살아선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 다고 일하길 아주 포기한 것은 아니고 보스턴에 있는 직장을 알아보기 시작했었습 니다. 이곳 저곳 알아보는 가운데 tissue engineering을 연구하는 교수가 지금 제 가 다니는 학교에 1 년 전 부임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전에 apply할 학교 들에 대해서 알아봤을 때는 몰랐던 사실이었지요. Application deadline이 몇 달이 나 지났음은 물론이고 admission 발표까지 다 난 후였지만 application을 보냈습니 다. 얼마 후, 학교로부터 admission은 물론이고 Deans Fellowship이라는 장학금까 지 주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다 함께 있으며 저도 제가 원하는 공 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철저한 간섭과 섬세하신 인도하심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진로 결정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선 제게 가정도, 일도, 또 제가 공부하는 학문도 포기하지 않길 원하신다는 걸 알았습니다.

R 자매:
엄마로서 직업을 갖는 것이 하나님의 소명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또 반면에 일을 하면서 부딪히는 많은 문제들에서 제가 하나님을 더 알아가고 예수님을 따라 자라가고 또 이웃들을 더 잘 이해하고 사랑하게 해주시는 것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렇게 고민하면서 하나님 뜻을 구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일 중에 하나 가 아닐까 합니다.

이코스타:
특별히 일하는 여성으로서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들이 있으 신 지요?

K 자매:
이기적으로 자기일 만을 챙기고, 자기를 내세우고, aggressive하고 competitive하 게 일을 추진해야 하는 work environment에서, Christian으로서의 섬기는 자세와 상대방을 인정해 주는 자세를 유지한다는 게 어렵습니다. 주변에 보면 가정을 소중히 생각해야 하는 Christian 여성으로서 일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장에서 고민하며 사는 경우가 있는 듯 합니다. 하지만 전 family-friendly working environment 에서 일하고 있기에 그런 고민은 크게 겪지 않고 있습니다. 저희 지도교수도 가정을 꾸리고 있고, 같은 실험실에, 지금 임신 중인 post doc도 있고, 같은 과에 얼마 전 아이를 낳은 다른 여자교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남자 researcher 는 아이를 데리고 실험실에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 정이 있고 아이가 있기에 직장에서 가지게 되는 괜한 자격지심으로부터는 자유로운 편입니다. 지역교회나 공동체에서 여자이기에 기대되는 일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기도 했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 어떤 행사가 있을 때 음식 준비를 해야 한다거나, 아니면 구역예배 때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거나 할 때, 아무래도 부담스 럽게 느껴졌었습니다. 아이가 어리고 시간에 쫓기는 가운데 한 가지 일이 더 주어 지는 듯 해서, 섬길 수 있다는 기쁨보단 일의 부담감이 더 크기도 했습니다. 다른 가정은 거창한 음식을 준비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을 때 느끼는 죄송함 등도 컸습 니다.

R 자매:
하나님께서 정말 내가 일하기를 바라시는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 제일 어렵습 니다. 여성으로서, 아이와 남편에게 더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일 터에서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고민이 됩니다. 주님 안에서의 형 제/자매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데, 일하는 사람으로서 직장 일 에 쓸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항상 돌아보게 됩니다.

이코스타:
일하는 크리스천 여성으로서 남편에게 기대하시는 바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K 자매:
저희 남편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큰 시험이 있을 경우, 공부에 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 줬고, 집안 일도 잘 나눠서 해 주고 있습니다. 또 집에서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시간이 적기에 이메일로 QT share도 하고 생각도 나누자고 initiate하기도 했구요. 일하는 크리스천 여성을 아내로 둔 남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가정의 일을 나눠서 할 경우, 그것을 ‘아내의 일을 돕 는다’는 맘으로 하지 않고, ‘내 일을 하는 것이다’라는 자세로 임해 주셨으면 좋겠 다는 겁니다.

R 자매:
남편이 영적으로 가정의 머리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이를 더 봐주고 집안 일을 좀 도와주는 것보다, 하나님 안에서 흔들림 없이 가정을 지켜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코스타:
엄마로서 일을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시는 지요? 장점과 단점으로 나누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K 자매:
장점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출퇴근했기에 규칙적인 생활 습관이 몸에 베이는 것 같습니다 아주 어릴 때는 다른 분이 봐 주시고, 더 어릴 적부터 학교 생활을 시작 했기에,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많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경험을 하 는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어릴 때부터 낯을 별로 가리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도 금방 친해지는 편입니다.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독립적이고 부모에게 많이 의존하는 편이 아닙니다.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제한되다 보니 가족의 소중함을 잘 아는 듯 합니다. 가끔은 엄마를 어린 자기가 care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지 자기가 절 위로해 주기도 합니다. 엄마가 피곤해 하고 스트레스 받는 기색을 보일 때, 옆에서 계속 웃으면서 재잘재잘 거리면서, 엄마를 결국 웃기고 맙니다. 또 아빠 가 학회에 가서 없을 땐 자기가 아빠 흉내를 내서 엄마에게 힘을 주기도 합니다. 정말 딸아이를 키우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구나 라는 걸 매일매일 확인하게 됩 니다. 제가 딸아이와 함께 항상 있었다면, 딸아이를 양육하는데 제 생각과 제 고집 이 더 강하게 작용했을 텐데, 어린 시절부터 떼어놓으면서 저도 딸아이를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평생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습니 다. 제 딸이 세 살이 채 안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큰 시험이 있어서 새벽 일찍 학 교를 가야 했는데, 잘 자던 아이가 갑자기 깨서, ‘엄마, 학교 가지 마’라고 매달리 더군요. 아빠가 일어나서 안아줘도 다른 때완 달리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엄 마 학교 가야돼, 엄마가 큰 시험이 있어서 학교 가야돼’ 라고 꼭 안아주면서 이렇 게 저렇게 잘 설명해 줬더니,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군요. 그러고 잠시 후,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단호한 어조로, ‘엄마 학교 가세요. 학교 가 서 공부하세요,’ 라고 어른처럼 얘기해서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집을 떠나 학교를 향하면서 딸아이가 너무 기특하기도 하고 딸아이에게 너무 고맙더군요. 그와 동시 에 그 순간 제 아이와 함께 하신 하나님을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반면에 단점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가족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데는 장점이겠지만 또 한편으론 단점이기도 합니다. 함께 있을 때도, 아 이가 원하는 관심을 못 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아이가 혹시 불만을 가지게 되 지는 않을까, 내가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못 보여주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 가 듭니다.

R 자매:
남편이 영적으로 가정의 머리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이를 더 봐주고 집안 일을 좀 도와주는 것보다, 하나님 안에서 흔들림 없이 가정을 지켜주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코스타:
여성학이 여성들이 직업을 가지고 활발히 활동하게 하는 계기를 제시했습니다. 하 지만, 최근에는, 그 여성학이 "일하는 여성은 우월하고, 살림하는 여자는 열등하다" 는 바람직하지 못한 이원론을 제공했다는 역풍 또한 맞고 있는데, 그로 인해 고민 을 하신 적이 있으신 지요?

K 자매:
있습니다. 일을 쉬는 동안 그런 사고방식에 많이 젖어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일을 하지 않기에 가지는 열등감도 있었고 이러다가 영영 일을 다시는 못 하게 되지는 못 할까 하는 불안감도 크더군요. 하지만 전업 주부로 있었던 약 2 년 동안, 교회 어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전업 주 부들의 고충과 생활 속의 도전들에 대해서 많이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회가 일하는 여성을 더 인정해 주는 분위기 속에서 전업 주부로서의 설움과, 일을 하기 원하심 에도 불구하고 기회가 닿지 않고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아 일을 하지 못하는 고민 등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시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사시는 분들을 보면서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또 반대로 가정을 가지고, 일하는 Christian 여성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Christian 분들도 뵙습니다. 언젠가 자녀교육에 대한 기독교 서적을 보다가 아이가 있음에도 직장을 가지는 엄마들은 이기적이고 잘못되었다 라고 매도해서 말하는 부분을 보고 는 분노한 적이 있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한 여성이 전업주부를 하건, 직장을 가지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원하시는 것에 따라서 결정할 일이라고 봅니다. 어떤 생활방식으로 살게 되건 간에 그것이 하나님의 소명이라는 걸 알고 순종하고, 또 그 안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하나님과 이웃을 섬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R 자매:
여성학이라는 것은 기본적인 생각이 인본주의이기 때문에 크리스천 여성에게는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우월하고 열등한 지 결 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는 차별이 없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뜻을 구하고 주만 바라보며 산다면, 여성학에서 누굴 우월하게 생각하고 열등하게 생각하건 아무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코스타:
k and R 자매님, 이렇게 자신들의 경험담을 나누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앞으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두 자매님의 가정에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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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1 03:00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3년 10월호

분주히 실험 데이터를 분석하는 중... 예상치 못했던 딜레이가 생기고 어느덧 시계는 4시 30분을 막 지나가고 있다. 한번 분석프로그램을 돌려놓으면 밤새 분석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퇴근하기 전에 일을 마쳐 놓아야 내일 아침에 결과를 얻을 수 있는데... 마음이 급해지니 자꾸 에러가 나고, 눈으로는 프로그램을 읽고 있는데 머리로는 어디서 에러가 나는지 읽혀지지 않는다. 4시 40분,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하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허겁지겁 가방을 챙겨 퇴근을 한다. 어서 집에 가서 아기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못 본 아기가 궁금하고 보고싶은 마음이 퇴근하는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오늘도 일을 깔끔히 마무리 못해 이렇게 하루가 더 딜레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무겁다. 다행히 마감 일이 임박한 일이 아니라 크게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에 필요에 따라 늦게까지 시간조정을 하면서 할 일을 하던 productive한 연구생활은 이젠 더 이상 나의 얘기가 아니다.

아기를 낳고 일을 하면서 내게 가장 큰 변화는 내 자신이 아닌 존재를 위해 내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다는 것이다. 퇴근 후 아기가 잠자리에 들 때까지의 시간은 아기와 놀아주고, 아기를 먹이고, 씻기고 돌보는 일로 꽉 차 있고, 아기가 잠이 들고나면 남은 집안일, 출근준비, 뒷정리로 시간을 보내고 나면 직장에서 한아름 싸 가지고 오는 일감을 뒤로한 채 잠에 취해 버린다. 새벽에 깨어서 젖을 먹이기 때문에 이젠 제법 나눠 자는 것에 익숙해 졌지만 그래도 늘 피곤하다. 그러나 한 영혼을 키워 가는 이 값지고 보람 있는 일을 다른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더욱이 성장해 가는 아기를 바라보면서 대견해 하고 즐거워하는 내 모습에서 내가 조금씩 영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당히 제한된 나의 시간을 관리하는 일은 여전히 큰 숙제로 남는다. 직장에서 주어진 일들을 시간 내에 마무리하지 못하고 오는 것 이외에도 곳곳에 나를 시험 들게 하는 요소들이 언제고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4-5개월 안에 마치고 다른 직장을 알아보려고 하고 있다. 입사 지원서와 이력서를 작성하는 중에 연구 실적란을 채우면서 문득 지난 1년 남짓 연구실적이 너무 미비한 것이 거슬린다. 풍부한 연구실적이 좋은 직장을 guarantee한다는 사실에 나는 문득 불안해 진다. 내가 가고 싶은 직장에 지원서를 받아 놨지만 지원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얼마 전 아무개가 좋은 직장을 얻어 귀국했다는 얘기가 생각이 난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postdoc을 시작한 사람들의 금의환향하던 모습과 지원서를 들고 망설이는 내 모습이 오버랩 되면서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었는지 이유를 생각 해 본다. 지난 1년 남짓, 동기들이 학위 취득 후 한참 연구에 몰두하고 실적을 쌓는데 투자해야 할 시간에 나는 임신을 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좀더 자자 좀더 쉬자 라며 휴식 해 왔고, 출산에, 출산휴가에, 복직 후에는 아기 돌보는 것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부족했으며, 복직 초기에는 집중력도 많이 떨어 졌었다. 그래.. 원인을 찾았다. 바로 아기 때문이야. 내가 working하면서 mom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내가 일에만 집중했더라면 훨씬 더 많은 실적을 낼 수 있었을 텐데... 내가 아기 갖는 시기를 조금만 늦췄어도 좋은 직장에 갈 준비가 되었을 텐데... 앞으로 직장에 가서 더 많은 실적을 쌓고 인정을 받으려면 지금처럼 정시에 퇴근해서 아기를 돌보면서 가능한 일일까?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자 마음이 복잡해진다. 대상을 알 수 없는 원망이 생기고 여자라서 억울하다는 생각, 괜히 손해 본다는 느낌이 든다. 괜히 남편에게 짜증을 내면서 이게 아닌데 싶다. 그러나 곰곰이 무엇이 본질인가를 잘 생각해 보면 이 상황은 일하는 것과 아기를 돌보는 것을 병행해 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누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임신했을 때부터 육신의 약함을 핑계로 기도의 자리에, 말씀을 읽는 자리에 나가는 횟수가 현저히 적어졌고 출산이후에는 더더욱 영적으로 회복해야 할 부분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종일 일과 육아로 지친 몸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힘들게 느껴졌다. 매일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내지 못하는 데다가 주일 예배시간마저 유아 방에서 아기와 씨름하다 보니 하나님과의 교제가 많이 소원해 졌고 내 안에서는 선악을 분별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직업을 찾으면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곳에서 충성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세상이 세워놓은 성공의 잣대를 가지고 좋은 직장의 기준을 세우고 그것들을 추구하고 있는 나의 내면이 보였던 것이다.

자, 기본으로 돌아가자. 무엇이 문제인가? 절대적인 시간은 한정되어 있지만 얼마나 집중하여 일 하는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일할 수 있다. 정말 내가 일 하는 동안 최선을 다 하는가? 불필요한 web searching으로 버려지는 시간을 활용할 수 없었는가? 집중하지 못해 필요이상의 시간을 들여 일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 내 안에서 무엇엔가 화가 나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힘들어서 인가 아니면 나와 같이 출발한, 그러나 벌써 저 만치 앞서 가고 있어 보이는 동료들의 발자취를 보면서 오는 상대적인 불안감인가? 나는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다.

한 생명을 낳고 지금은 전적으로 모든 것을 나에게 의지하는 이 아기가 스스로 생활 해 나갈 수 있도록 육체적으로 양육하고, 내가 만난 하나님을 소개해 주고 그래서 그 영혼이 또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영적으로 양육하는 수고로움을 해산의 수고로움에 비유해도 될까?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4:19)'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보면서 내게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인 자녀를 양육하는데는 해산의 수고 이상의 수고가 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수고로움에 필요한 힘과 능력을 나의 아버지께서 공급해 주심을 믿고 의지하게 되었다.

일을 하면서 육아를 담당하며 제한된 시간을 잘 분배하는 어려운 숙제를 푸는데 있어서, 또 언제든지 세상이 주는 가치관에 흔들려 일 핑계로, 육아핑계로 불평하거나 나를 합리화시키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주인 되심이 나에겐 가장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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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1 03:00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3년 9월호

                         새로운 길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윤동주, 새로운 길 중에서

유학을 위하여 타국에 발을 딛은 지 일 주년 되는 날이 며칠 지났는데, 나에게 유학 생활을 시작하는 감회를 적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유학 생활 1년차 라는 것은 아직 시작조차하지 못한 단계인가 보다. 하긴 뒤돌아보면 365일이라는 날들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기억도 안 나고, 그 동안 내가 한국에서 기대했던 어떤 성장이 구체적으로 있었는지 가늠이 안 되는 것을 보면 유학생활의 본류는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또 다른 시간을 앞둔 지금, 지난 1년의 시간이 미국에 오기 1년 전과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불연속적인 시간은 아니었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가야 하는 새로운 길은 항상 새로우므로 매 순간이 다르지만 동시에 이어진 한 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내딛은 발걸음은 항상 위기와 변화의 파고를 지닌 항해였지만, 궁극적인 구원을 향한 여정이듯이, 나의 짧은 삶의 여정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주어진 천로를 향한 여정임을 믿는다. 그들이 가끔 뒤돌아보며 지나온 길에서 배운 하늘의 교훈을 상기하듯이, 나에게도 지나온 과거는 창신(創新)을 위한 하늘의 보고이기도 하다. 숙제처럼 주어진 글 쓰기의 고역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변한다.

유학 준비 과정

나는 솔직히 내가 왜 공부를 하는가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공부의 길에 들어서지는 않았다. 이 길이 바로 나의 길이라는 확신을 갖기보다는 배우는 기쁨을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크게 느끼고 한편 다른 일을 잘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시야를 한 두 가지로 좁혀 갔다고 할까.

오히려 소명에 대한 확신은 유학 준비 단계를 거치면서 얻은 것 같다. 비행기표만 끊고, 가면 되는 유학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것이고, 대학 입시에 버금가는 긴장의 연속인 유학준비과정에서 비록 실패의 불안감으로 바짝 긴장한 상태였지만, 천자문 외우듯이 단어 하나하나 외우고, 독해지문 읽어보면서 갖고 있던 지식의 양을 검토해볼 수 있었고, 추천장, 학업 계획서를 준비하면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학문적 비전을 확인하는 기회를 삼을 수 있었다.

‘이 상태로 어드미션 프로젝트(admission project)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 ‘내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수시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이 길이 정말 소명의 길이라면 할 수 있고,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믿음으로 하나하나 추진해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미 내 손을 떠난 것이라 결과가 나올 때까지 차분히 기다리면 될 텐데, 답장을 기다리며 메일 보내고, 편지 보낸 피 말린 긴장의 시간도 인내와 믿음을 단련한 시간이었다.

이 때 나에게 주어진 두 가지 이슈가 있었는데, 첫째가 Gre 집단 치팅(Cheating)이었고, 둘째가 학교 선정 문제였다. Gre 문제가 유출되어서 인터넷에 떠돌 때 나는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만약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나는 무지 어려운 윤리적 결단을 해야 했을 것 같다.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로 걱정하고 속상해 했었고 사실 불이익을 받았을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그것이 다행이라고 느낀다. 이 일 이후 한국, 중국, 대만, 홍콩에서는 컴퓨터 시험이 더 시행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두 번째는 서너 학교의 어드미션을 받은 후 입학할 학교를 정하는 일이었다. 더 낮은 재정지원의 더 나아 보이는 학교를 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더 나아 보인다는 것이 기껏해야 불명확 기준에 의한 소위 랭킹에서 더 높다는 것인데...-에서 숨어 있던 가치관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이 결정에서 내가 잘 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현재 상태에 여러 가지 이유로 만족하고 있긴 하다.

새내기 유학생의 경험

공부라는 것이 결국은 무엇을 모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몇 가지 써 있는 종이쪽지를 모으고, 서지를 모으고, 자료를 모으고, 논문을 모으고...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처음 미국인들과의 수업에 참석하면서 무조건 모은다고 생각했다. 잔뜩 긴장해서 한 마디 한 마디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수업이 끝나고 나면 물리적으로 머리가 아플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그 작업이 무의미하고 별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고, 서서히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교수님들이 한국 대학원을 경시하는 것이 부당한 태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어를 제외한다면 공부 자체는 한국에서 해도 개인적 역량만 된다면 지식이라는 측면에서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적잖은 실망이 되기도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할 수 있는 한 양질의 지식을 최대한 흡수하는 것이었다. 관점을 바꾸어 내가 이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은 지식이라는 측면보다 창조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방법,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는 대학 교육 시스템, 연구자와 실무자와의 분업 체제 등을 배워야 함을 알게 되었다. 적절한 검증과 지원을 통해서 활동적인 연구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시스템이 여기는 있고 한국에는 아직 미흡하다는 것이다.

영어는 처음에 맥도널드에서 햄버거 주문할 때부터 엄청난 스트레스였는데, 아직도 말실수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여자 교수님께 써(sir)라고 한다든지 조동사 뒤에 과거형을 쓰는 것 등은 귀여운 편에 속한다.

아직도 감이 안 잡히긴 하지만 잠정적인 결론은 영어를 새로운 세계를 해석하는 언어로, 이 사회를 유지하는 문화의 총체로서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사회를 이해하는 도구로만이 아닌 우리를 되돌아볼 수 있는 거울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글을 충분히 읽고 다양한 생각을 하고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생각에 약간 위안이 된다.

첫 학기에 있었던 비교정치 세미나 시간에 말은 거의 못했지만 세 번에 걸친 리서치 페이퍼 발표에 열심히 노력해 의미 있는 가설을 제시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 일은 실망과 좌절감으로 처져있던 나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 교수님들이 견지하는 창조적인 가설과 논증을 중요시하는 태도가 언어는 세계를 창조적으로 이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미국 학생들과의 교제도 새로운 즐거움의 하나였다. 영어도 잘 못하는 외국학생을 동료로 잘 받아주고 친절하게 대해줘서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있다. 통계 문제 몇 가지 가르쳐주니까 매우 좋아한다. 머리 싸매고 공부했던 덕을 좀 봤다.

배우고 확신한 일

유학을 준비하고 워밍업을 한 1년 반의 과정에서 배운 삶의 교훈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학생활이 특수한 상황인 것도 확실하지만 하나님과 가는 길이라는 점에서는 인생의 다른 시점과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생을 살아갈 때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가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학생활에서 직접 적용할 수 있는 기독교인의 삶의 방식으로 ‘정직’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Gre같은 시험에서도 그렇지만 한국, 중국 학생들의 부정직한 태도는 미국 교수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것 같다. 다른 사람의 글을 자신이 생각해낸 듯이 복사해서 붙이다가 표절로 정학 내지 휴학 당한 학생들이 주변 학교에 매 학기마다 있는 것 같다. 생각을 정리하는데 드는 시간이 만만치 않고, 누가 볼까 하는 마음이 자주 들지만 바른 일을 바르게 해야겠다는 자신에 대한 기대를 잃지 않아야겠다.

유학생활의 친한 친구인 외로움은 나에게 그 동안 부족했던 침묵의 기도(prayerful silence)와 피정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묵상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삼고 싶다.

겸손과 온유가 외로운 기도의 시간에 자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의 시간이 될 것이라 기대한다.

새로운 길, 당신과 가는 길에 대한 기대

                              이 땅의 일로 가슴을 아파할 때
                             별빛으로 또렷이 내 위에 떠서 눈을 깜빡이는
                             당신과 가는 길은 얼마나 좋습니까
                                                                                                    -도종환, 당신과 가는 길 중에서

인생은 답사기와 같다고 누군가 말한다. 한 곳에서 하나를 배우고 또 다른 곳에서 또 하나를 배운다. 유학이라는 삶의 답사를 위해 이곳까지 온 나의 이 길이 당신과 가는 길이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리고 학문이 공부를 담은 삶이라면 그 삶도 길일 것이다. 나는 그 길 위에서 미지의 앞을 향하여 하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유학 생활의 본류에 들어선 지금 앞으로 또 많은 굴곡과 좌절이 있을 것 같다. 코스웍을 마치면 봐야 할 논문자격시험, 프로포잘에 논문 완성까지 고된 일상과 불안한 내면이 불 보듯 뻔하지만 그래도 가야할 길이라면 즐거이 가고 싶다.

유학이라는 나의 길이 하나님과의 사귐의 여정이라면 좋을 것 같다. 외로움과 침묵의 시간이 성숙의 방편이라면 더욱 좋겠다. 무지에 대한 좌절감이 겸손을 만들면 좋겠다. 수고하여 얻은 지식으로 정직이라는 윤리가 몸에 깊이 배이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 커지길 바란다. ‘그분과 나’에서 ‘당신과 나’ 관계로 바뀌는 친밀한 사귐이 있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길에서 답사기에 무엇을 적을 것인가는 전적으로 나의 노력에 달린 것 같다. 감상적이지도 냉소적이지도 않게 묵묵히 가련다. 당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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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01 03:00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3년 9월호

한참 젊은 시절, 학업에 대한 열정이 강한 사람은 한번쯤 생각 해 볼 수 있는 유학의 길, 나름대로 현재 하고 있는 공부를 바탕으로 좀 더 밝은 자신의 인생과 미래를 설계하기 위하여 꿈꾸게 되는 유학 생활, 그러나 남다르게 부푼 꿈을 가지고 금휘환향을 기대하며 오른 유학의 길은 그렇게 평탄하지만은 아닌 모습들을 실제적으로 많이 볼 수가 있다.

유학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큰 기대와 달리 현지에 오면 제일 큰 언어 문제와 문화의 차이로 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고 특히 언어의 장애는 자신이 기대했던 학업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많은 실망감과 괴로움을 가져오고 있다. 또한 언어의 장애가 있다 보니 현지의 문화의 이해가 부족하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그리워지며 결국은 기대했던 성공적인 유학 생활과는 달리 외로움과 고독함으로 가득한, 그리고 좌절감과 절망감에 빠진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회의감을 느끼게 되고 꿈과 목표가 사라져 계획성 없이 시간을 낭비하는 학생들을 더러 볼 수가 잇다.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약 1년 전, 미국 조지아 주에 있는 K대학에 경영학 석사 공부를 하러 온 M군은 보조 장학금 (graduate Student assistant ship) 을 받을 정도로 자신이 학업과 TOFEL 실력이 괜찮았다고 생각하여 남다르게 야무진 꿈을 가지고 유학 길에 올랐다고 한다.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가능하면 박사 학위까지 얻어서 미국 회사에 취직하거나 아니면 한국에 가더라도 정말로 큰 기업에 취직해서 사회적으로 성공해야겠다는 비전을 갖고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미국에 와서 한 두 달 지나다 보니 현실은 그가 생각한 것과는 반대라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유학 생활, 아니 자신의 삶 자체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첫째, 한국에서 대학 시절 그렇게 성적이 나빴던 것도 아니고 TOFEL 또한 우수한 성적을 얻어 미국의 대학에서 강의를 듣는데, 교수님의 강의를 모두 알아듣기가 힘들었고 공부하는 방법 역시 다르며 언어의 부족으로 미국 학생들과 친해지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둘째, 지나친 성공 의욕과 출세의 욕심 때문에 매일 열심히 학업에 전념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만족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인생의 허탈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정서 안정에 지장이 많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외로움과 고독함 때문에 그는 신앙 생활을 시작해 보았으나 한국의 젊은이들의 문화에 익숙했던 지라 교회 생활 역시 정신적으로 그를 힘들게 만들었고 오히려 자신감을 잃어 지금은 그냥 학위만 받을 수만 있다면 감사할 뿐이라고 말을 한다.

역시 미국에 온지 2년 정도가 지난 P양은 한국에서 학부를 하다가 직장 생활을 몇 년 한 후 미국의 대학으로 편입을 하면서부터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같은 과 학생들 보다 나이가 많은 P양은 H군과는 달리 한국에서부터 신앙 생활을 하다가 미국에 왔기 때문에 교회에는 매 주 출석하며 교회 활동도 돕고 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해 보면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느 덧 한계가 있다는 사실과 좀 더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자 1-2년 정도 유학 준비를 하면서 미국에 대한 큰 기대를 갖고 왔다고 이야기한다. 영어도 유창하게 잘 할 수 있고 공부도 많이 해서 한국에 금휘환향 할 것을 꿈꾸며 온 미국, 그러나 그녀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 유학 생활은 어쩔 수 없이 하는 유학 생활로 탈바꿈하고 말았다. 미국에 와서 어느 정도 살면 언어 문제가 해결된다는 착각, 어려운 공부에서 오는 스트레스, 전공도 제대로 정하지 못해서 갈팡질팡 하는 모습,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녀는 그만 두기 아까워서 하는, 할 수 없이 하는 유학 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다. 결국, 자신이 어느 길로 어떤 목표를 갖고 전진하는지 불확실하고 그저 어떻게 하면 쉽게 끝낼 수 있을 까 하는 생각들만 하면서 지내고 있다.

그렇다면 부푼 꿈을 갖고 시작하는 유학 생활은 현실과는 늘 반대의 결과가 나오게 되는가? 왜 학업에 열정이 넘치는 젊은이들은 유학을 꿈꾸게 되는 것일까? 미래에 대한 성공 지향적인 생각들과 출세에 대한 욕심? 아니면 옛날과는 달리 유학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한 번쯤은 가야 하니까’ 하는 생각에서인가?

유학은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거치는 하나의 절차로 볼 수가 있다. 우리들이 학문을 연구하여 그 분야에서 전문성을 띄고 최고가 되려는 이유는 우리들 자신의 출세와 명예를 위해 서만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군이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공부를 하는 동안, qualifying exam, 논문, 지도 교수와의 갈등, 가정 문제, 고국에 대한 그리움 등등을 비롯해서 수없이 많은 어려움 들이 있는데,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으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시려고 하신다. 그래서 학업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공부를 하는 과정 역시 우리의 인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1997년에 미국에 와서 현재 MIT Nuclear Engineering 에서 박사 과정 6년째를 보내고 있는 정태균 형제님은 유학 온 해에 청년부 수련회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 그의 유학 생활에서 남 다른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유학 초기에는 별 어려움 없이 지냈으나 시간이 지나 면서 그에게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고득점 취득에 치우쳐 있는 한국 학생들처럼 그 역시 유학 3번째 학기에 세 과목을 수강한 성적 중에 모두 A 학점을 받지 못해서 절망과 좌절했던 시간, 생각하지 못 했던 누나의 죽음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 ,그리고 지도 교수의 교체로 인한 불안과 초조한 갈등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기독 학생의 삶을 살고 있었던 정 형제는 힘든 순간에는 분주한 교회 일에서 무조건 벗어나려 했고, 혼자서만 하나님 앞에 앉으려 했으며 그러는 동안 하나님의 임재함 가운데로 들어가는 연습을 하게 되어 당신의 무릎 위에 앉아 하나님의 뜻을 기다렸다고 한다.

99년에 처음 미국에 와서 Yale 대학원에서 환경학 석사과정을 마치고 지금 MIT 의 도시계획학과 환경 정책 박사과정 4년 차 인 김동영 형제는 유학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 졌다고 한다. 모든 유학생들이 함께 어려워하는 언어의 장애를 비롯해서 동반자로 F2 신분을 가진 아내의 미국 생활 적응에 어려움이 있었다. 결혼을 해서 왔기 때문에 고국에 대한 외로움과 고독함은 없었지만 미국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아내를 보는 모습이 더 자신을 힘들게 했고 그럴 때마다 기도를 통해 영적인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얻을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김 군은 “유학생활이야 말로 오히려 하나님과 예수님과 더욱 가까이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고 만약 제가 한국에서 공부를 하거나 직장 생활을 했으면 이만큼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을 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성공적인 유학생활이 무엇인지 그 정의부터 확실히 할 필요가 있을 것 같고 오히려 성공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루기 위해서 유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가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유학의 여러 요소들이 하나님을 찾게 하지만, 유학이라는 다른 부분들이 자기 자신을 더욱 부각시키고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도록 만들기도 하지요. 즉 자기 자아가 너무 강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공부에서 매순간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 뜻을 찾아나가는 길이 가장 힘들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물론 내 자신이 항상 성령에 충만하다면 그 뜻을 모를 수 가 없겠지요”

정 형제와 김 형제 모두 유학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음으로써 긍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두 형제 모두 하나님을 신뢰했고 유학 생활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외로움과 고독함을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지금쯤이면 대부분의 학교들이 개강을 했고 많은 학생들이 다시 학업에 전념하고 있을 것이다. 늘 힘들고 고독한 유학 생활을 하기보다는 하나님 나라 확장을 준비하는 유학 생활을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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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8/01 03:00 이달의 초점
이코스타 2003년 8월호

 

eKOSTA 이렇게 eKOSTA 좌담회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께 먼저 감사 드립니다. 우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각자 자신의 소개를 짧게 좀 부탁 드릴까요?

조한상 저는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전자공학을 공부하고 있고요, 시애틀 온누리교회를 섬기고 있는데 주로 유학생 부부들로 구성된 순을 섬기고 있습니다. Vancouver KOSTA는 참석해 보았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KOSTA/USA에 참석했습니다.

윤여재 99년에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재료공학으로 유학을 와서 이제 만 4년차 끝 나가고 있습니다. 콜럼버스 한인침례교회를 섬기고 있고, 기혼자 성경공부 모임을 섬기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IVF, GSF 활동을 했습니다. 이번에 처음 KOSTA 참석했습니다.

이성욱 저는 미시간의 트로이(Troy) 라고 디트로이트 근교에 살고 있고 Wayne State University에서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디트로이트 한인연합감리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99년에 처음 유학을 왔습니다. KOSTA는 이번이 세 번째 참석이었습니다.

eKOSTA 감사합니다. 그럼 우선 이번 KOSTA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 보면 좋겠습니다. 이번 KOSTA의 주제가 유학생들에게 적절한 것이었는지, 그 주제가 KOSTA의 프로그램에 정말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하는 문제를 좀 짚어 볼까요?

이성욱 이번의 주제는 아주 시기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믿음이 좋다'고 이야기 하는 것과 일상 생활에서 '그 믿음이 어떻게 반영되느냐' 하는 것이 때로 별로 관계가 없는 것 같아 보이는 경우를 주변에서 보게 되는데요, 이번 주제와 그것을 담은 KOSTA 프로그램에서 그 문제를 잘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 삶의 기본적인 '정직' 등을 강조한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조한상 이성욱 형제님 말씀에 대부분 많이 동의를 합니다. 주제가 실제 프로그램에 잘 반영되었느냐 하는 것에는 조금 생각을 달리합니다.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순결함'이라는 이슈가 도덕적 특히 성적 순결에 지나치게 집중되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흔히 우리가 '순결'이라고 이야기 할 때 상식적으로 다가오는 의미를 넘어선 더 깊은 부분을 터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면 jjKOSTA에서 이일형 박사님께서 언급하신 것 같이 그리스도인의 순결함이란 오염되지 않음(uncontaminated)라는 것이라는 개념, 즉 혼합되지 않은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는 것이라는 개념이 전체집회에서는 별로 다루어 지지 않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물론 도덕적인 삶이 매우 중요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것이 어쩌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순결함의 영역일 수 있는데 그 내용이 잘 전달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그램 구성에 있어 약간의 불균형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윤여재 저는 개인적으로 KOSTA에 참석하기 전에 금년의 주제가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한편 조금 부담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스스로 순결하지 못한 제 삶을 스스로 돌아보면서요. 그런데 이 주제는 매우 일반적인(general) 주제이기 때문에 또한 모든 강의에서 다루어 질 수 있는 주제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한 삶의 모든 영역에 다 걸치는 주제이고요. 그래서인지 저는 이번 KOSTA가 끝난 이후에도 QT를 하면서, 또 기도하고 생각하면서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 그런 고민과 생각의 시발점이 이번 KOSTA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조한상 저도 역시 동의합니다. 저도 역시 KOSTA 이후 그 단어가 삶에서 떠나지 않고 있고, 제 삶에 깊이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게 있어서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전체집회보다는 jjKOSTA에서 다루어진 강의들 덕분인 것 같습니다. 전체집회에서 '그리스도인의 순결함'에 대해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강의가 적어도 한번 정도는 있었어야 하는 것이 계속 아쉽게 느껴집니다.

eKOSTA 그렇다면 그런 내용이 어디에서 다루어 졌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지요?

조한상 저는 월요 특강 같이 처음 시작할 때 나누어진 강의에서 이 문제가 더 자세히 다루어 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가령 Tony Campolo의 강의가 조금 보강이 되었더라면 좋았겠다 싶습니다. 깊이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할 경험이 없었던 분들은 아마도 '그리스도인의 순결'이란 성적, 도덕적 순결이다 라는 개념을 가지고 가셨을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해 봤습니다. 그리고 아침 성경 강해 등에서 이 이슈를 더 다루어 주셨더라면 좋았겠다 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윤여재 저는 제가 선택했던 세미나들이나 기타 다른 프로그램들을 놓고 보면, 많은 분들의 삶의 구체적인 차원에서 나누어주셨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세상 속의 순결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가 각 강의 들에 나름대로 잘 녹아 들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것은 순결이라는 주제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여겨집니다.

eKOSTA 그러면요, KOSTA 전체 집회 이외에도 혹시 더 다루어 졌어야 하는데 제대로 다루어 지지 못했다고 여겨지는 것이 어떤 것들이 있으셨는지 좀 더 말씀을 해 주시 겠는지요? KOSTA 홈페이지 게시판에서도 생각을 나누어 주신 이성욱 형제님께서 먼저 좀 말씀을 열어주시겠습니까?

이성욱 세미나에 대해 제가 게시판에 썼습니다. 아마도 유학생 참석자들은 다양한 영역과 관심분야에서 성경적 시각을 알아보고 싶어하는 필요가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번 KOSTA에서는 지나치게 기본 영성 쪽의 강의에 집중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가령 작년에 있었던 창조론 강의도 없었고, 실제로 많은 분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던 이라크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한 언급도 없었고요. KOSTA에서 이런 문제들을 다루어주지 않으면 유학생들이 균형 잡힌 시각을 공급 받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런 면이 좀 아쉬웠습니다.

조한상 저는 이성욱 형제님의 말씀을 충분히 공감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소 영성에 치우친 것 같은 현재의 세미나 커리큘럼이 더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가령 이라크 전쟁에 대한 균형 잡힌 성경적 관점을 이야기해 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이런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어설프게 편향되고 주관적인 시각을 소개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 좋은 강의라면 아주 좋겠지만, 이런 문제는 너무 위험부담이 큰 것 같습니다. 오히려 영성 등에 대한 기초 강의가 탄탄하게 제공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런 문제들을 유학생들이 스스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윤여재 저도 조한상 형제님과 참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분야의 구체적인 해석은 그 분야의 전문가가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모든 것들을 다 해석을 해내기엔 좀 무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KOSTA가 직접적으로 모든 정보를 제공하기 보다는 그러한 일꾼을 키워내기 위한 밑거름을 대어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조한상 그런 면에서 KOSTA에서,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필수과목'을 제공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KOSTA가 추구하는 기본 가치들이 기독교적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야만 이성욱 형제님께서 지적하신 이슈들에 대한 올바른 접근이 비로소 가능해 질 것 같습니다.

eKOSTA 그럼 지금 현재 짜여진 세미나 커리큘럼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비롯한 기초적인 훈련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했다고 보시는 지요?

조한상 공급이 부족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령) 기독교 세계관의 경우, 기독교 세계관을 아는 사람들만 기독교 세계관 강의를 선택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그 강의를 들어야 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강의를 선택하지 않는 거지요.

eKOSTA 그렇다면 공급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대한 소개와 안내가 부족했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군요.

조한상 그렇지요.

윤여재 세미나에 관해서 한가지 아쉬운 것은 들어보면 녹음 상태나 복사 상태가 나쁜 것들이 많더군요.

eKOSTA 감사합니다. 아주 세미나에 대해 좋은 말씀들을 많이 나누어 주셨군요. 그럼 세미나 이외에도 다른 KOSTA 진행에 대해 지적하시고 싶으신 부분들이 더 있으신가요?

조한상 이건 꼭 한번 지적하고 넘어가고 싶은데요, tmKOSTA 입니다. 현지에서 각 그룹 코디를 구한다는 사실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고 봅니다. 사전 준비가 없었다는 이야기지요. 그래서 어떤 그룹의 경우에는 전혀 바람직한 방향과는 거리가 먼 토론이 오가고 말았다는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조장들을 위해 조장 KOSTA를 열고, 조장 코디들의 경우에는 3개월 전부터 온라인에서 서로 만나는 일을 시작했던 것과 비교해 보면 이것은 아주 열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tmKOSTA 코디를 맡기려면 적어도 그 분야에서 여태껏 어떤 내용들이 나누어졌는가 하는 것에 대해 기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tmKOSTA가 추구하는 기본적인 방향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이 tmKOSTA를 한다면 과연 이런 tmKOSTA가 있을 필요가 있느냐 하는 의구심 마저 들었습니다.

윤여재 저 자신이 공학 일반 분야의 코디를 맡았던 사람으로서 조금은 두려운 마음도 생깁니다. KOSTA 2주 전에 tmKOSTA 담당 간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이 분야 코디로 섬기겠노라고 이야기를 하긴 했지만 사실 막막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이 문제가 한번 모여서 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하지만 지금 저희 수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어도 같은 전공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네트워킹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적어도 지금 현재로서는요. 그래서 이렇게 만들어진 네트워크를 통해서 관심사들을 점차 키워나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그래서 눈높이를 너무 높게 두기 보다는 서로 만남의 시작을 같은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일단은 간단한 고민을 나누어 보고, 서로 위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지요.

eKOSTA tmKOSTA에 대하여 아주 열띤 이야기들을 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tmKOSTA이외에도 다른 KOSTA 진행에 관해 하시고 싶은 말씀들을 좀 더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성욱 작년 KOSTA 후에 KOSTA 홈페이지 게시판에서도 제가 나눈 적이 있었는데요, 때로 강사님들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 같은데, 과도하게 유머를 쓰시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에 쫓기게 되기도 하고요. 물론 좋은 분위기에서 강의나 설교가 이루어 지는 것은 좋을 일이겠지만, 참석자들이 유머나 사적인 이야기들을 들으러 KOSTA에 참석한 것이 아닌 이상, 이런 부분을 강사님들께서 좀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여재 제가 듣기에는 작년 KOSTA와 금년 KOSTA가 가장 달랐던 것은 아침 새벽기도가 없어지고 아침 조별 모임이 강조된 것이라고 하던데요, 아침에 QT를 나누고 조별 모임 시간을 갖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다만 기혼 조의 경우 아이들이 있고 하면 시간에 쫓기고 제대로 모임이 안 되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좀더 아침 조별 모임 시간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조한상 조별 모임과 관련해서 한 말씀 더 드리자면요, 아마도 이미 많은 말씀들이 나누어 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QT 본문이 너무 길고 문제가 많아서 시간 내에 소화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특히 기혼 조의 경우에는 어려움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윤여재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책 소개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짧은 시간 내에 아주 좋은 책들을 효과적으로 소개해 주셔서 KOSTA가 끝난 지금 까지도 계속해서 큰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자꾸 잘못한 점들만 지적하는 것 같아 좋은 점도 좀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웃음)

조한상 저는 개인적으로 소개해 주신 책을 포함해서 스물 두 권을 샀습니다. 재정적인 타격이 좀 있었습니다. (웃음) 벌써 한달 만에 여섯 권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번에 가장 큰 유익을 얻었던 것은 이일형 박사님을 만난 것이었습니다. 하시는 말씀이 하도 깊이가 있어서 그 비결이 무언가 하고 알아봤더니 20년 이상 하루 두시간 이상 성경 묵상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성욱 한가지 또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찬양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아마도 제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요, 저는 찬양을 따라 하는데 좀 힘이 들었습니다. 30대 초반의 분들이 아마도 참석자의 주류일 것 같은데요 아마도 이 참석자들이 따라 하기엔 좀 어렵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리고 영어 찬양의 경우도 전혀 처음 접하는 찬양을 어디에서 끊어 읽을지도 몰라 가사를 음미할 여유도 없었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찬양의 진행이 다소 분위기를 강요하는 요소가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조한상 저는 뒷자리 쪽에 주로 앉았었는데요, 뒤에서 보면 앞쪽에 앉은 분들과 뒤쪽에 계신 분들이 찬양을 하면서 보이는 반응이 아주 달랐습니다. 앞쪽에선 매우 열광적으로 뛰기도 하고 손뼉도 치고 하는데 반해 뒤에 계신 분들(기혼자들 인 것 같은데요)은 인도자의 의도에 별로 부응을 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찬양 시간이 참 좋았지만요, 이성욱 형제님 말씀대로 찬양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 고려가 조금은 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윤여재 저는 그런 찬양을 별로 접하지 못 했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첫 느낌이 '아, 나와 다르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렇지 못하지만 우리가 여러 모습으로 찬양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점점 그 찬양의 분위기에 젖어 들어가는 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 문화도 문화 자체는 시간에 따라 변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좋겠습니다.

eKOSTA 그럼 KOSTA 이후 후속 조치 (follow up)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보면 좋겠습니다. 좀 광범위한 이슈이긴 하지만 생각들을 나누어 주시죠.

윤여재 제 개인적으로 조장으로 섬겼기 때문에 이 후속 조치들에 대한 부담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수련회 이후의 모습이 어떻게 되는지 하는 것에 대한 경험도 있었고요. 그래서 조원 들과 연락을 해보기 위해서 이 메일을 나누었는데 단 한 분만 답장을 하시더라 구요. 그리고 나서 KOSTA 조장 매뉴얼을 보니, 특히 기혼자의 경우에는 이 메일을 보내도 답을 못 받는 경우가 많으니 낙담하지 말라는 내용의 조언이 있더라 구요. 이런 부분들이 현실로 드러나더군요. KOSTA 기간 중에는 각자 집에 가서도 서로 연락하자고 했지만 실제로는 어려움이 있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지속적인 만남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gpKOSTA가 될 수도 있고, KOSTA의 이름을 걸지 않은 그냥 지역 모임이 될 수도 있고요. 물론 그 자체의 모임을 위한 모임이 아니고, 그 모임에서 격려와 힘을 얻고 각자의 지역교회와 캠퍼스에서 섬기도록 흩어지는 그런 모임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KOSTA 본부에서 그런 모임에 강사를 연결시켜주시는 등의 지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조한상 저는 약간 찬물을 끼얹는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한국에서 제가 섬기던 좀 큰 교회의 청년부에서도 수련회가 끝날 때마다 이 후속조치 이야기들이 나왔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잘되지 않았지요. 저는 기본적으로 물리적으로 계속해서 만나는 모임이 아닌 이상 제약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지역에 있는 것도 아니고 다시 얼굴을 못 볼지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그렇다면 KOSTA가 할 수 있는 일은요, 윤여재 형제님께서 말씀하신 것 같이, 각 지역에서 열심 있는 사람들을 발굴하고 그 사람들을 돕고 그 지역에서 좋은 모임들이 서도록 지원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봅니다.

eKOSTA 조금 다른 분위기로, 다소 무거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이번 KOSTA에서 요셉이 가정에 일어난 일을 들으시면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습니까?

윤여재 제가 처음 그 뉴스를 접했을 때 놀라우면서도 두려웠었습니다. 결국 요셉이가 먼저 하늘나라에 갔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 참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조원 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랬는데, 그 좋은 목적을 가지고 오시는 그 가정에 하나님께선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는 생각이었지요. 그 중에 요셉이 아버지의 모습이 참 제 마음 깊이 도전을 주었습니다. 그 어려운 중에서도 중보 할 수 있는 믿음이 참 놀라워 보였습니다. 이해는 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안에 있다는 믿음이 참 귀했습니다.

조한상 지금 윤여재 형제님 하신 말씀에 100% 동의합니다. 저도 참 깊이 감동을 받기도 하고 힘들어 하기도 했었습니다. 모두 동의 하는 것 위에 한가지만 아쉬웠던 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윤여재 형제님 말씀대로 과연 이런 일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우리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때도 다 몰랐고, 지금도 그렇고, 어쩌면 앞으로도요. 그런데 이 일이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 KOSTA 쪽에서는 처음엔 '사탄의 방해이다' 라도 했다가,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신다' 라고 했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이라고 했다가 하면서 어떤 자의적 해석들이 계속 가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점들은 조금 조심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성욱 요셉이 가정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마음이 아픕니다. 코스타 기간 동안에도 울면서 기도했는데, (참고로 제가 눈물을 흘려 본 게 정말이지 오랜만입니다.) 요셉이가 세상을 떠나게 되어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코스타에 연결해서 요셉이 가정의 슬픔을 생각한다는 게 제겐 좀 벅찬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어서요. 어쨌거나 꼭 이 일과 연결짓지 않더라도 코스타를 방해하려는 악한 영의 세력이 있다는 걸 느낍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코스타를 위해서 그리고 코스타를 준비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겠다는 생각입니다. 아울러 조직 및 준비 위원회도 보다 좀 더 조직화되고 치밀해 져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KOSTA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외에도 KOSTA에 참석하시면서 더 기억에 남는 일들은 어떤 것들이 있으신지요?

윤여재 솔직히 말씀 드려서 저는 한국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에 대한 어떤 선입견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와서까지 과연 한국 사람들만의 모임을 해야 하느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막상 KOSTA에 참석하면서 미국 사람들과의 교제 속에서 채워지지 못하는 목마른 부분들이 많이 채워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참 깊은 도전을 받았구요. 아마도 미국 사람들과의 교제 속에서는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문화적인 장벽이 있을 것 같다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는데 미국에 와서 4년 만에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을 본 것은 처음 이었거든요. 그저 이렇게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무척 행복했었습니다. 특별히 조장으로 섬기기 때문에 부담감이 있었는데 첫날 저녁부터 조원 들과의 나눔에서 크게 은혜를 받았었습니다.

조한상 저도 참 비슷한 경험을 했었습니다. 이민 교회를 섬기면서 참 어려운 부분도 많고, 특별히 한국에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다들 함께 섬기던 사람들은 왜 하나도 유학도 안 왔나 하는 생각도 들고, 외롭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KOSTA에 가서, 아 이렇게 다들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제게 너무나도 인상적이 였던 것은 저녁집회 3일 설교가 모두 복음의 핵심만이 전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론적으로 복잡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피묻은 그리스도가 선포되는 것을 들으면서 정말 KOSTA의 파워가 여기에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jjKOSTA와 기타 다른 프로그램들을 통해 하나님 안에서 따라 배우고 싶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는 것도 참 좋았구요.

이성욱 이번 코스타를 통해서 참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웬 지 코스타가 시간이 지날 수록 뭐랄까 다소 쓸쓸해 진다 랄까?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코스타를 아끼고 지원해 주시는 교회 및 선교단체 그리고 목회자분 들의 열의가 예전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예전보다도 미국 지역에 유학생 숫자는 더 늘었는데, 이들의 영성 개발을 도와주는 코스타에 대한 열의가 오히려 식어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eKOSTA 여러 가지 좋은 나눔에 참 깊이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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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KO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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