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대한 글을 시작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몇달동안 업데이트를 못했습니다. 내용은 머리속에 있는데 자료가 많고 글이 무한정 길어지다 보니 마무리를 못하고 있네요. 조만간에 글을 올리겠 습니다. 대신 최근에 쓴 두개의 글을 올립니다. 이 게시판은 국제정치에 대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성경적인 사회관에 대한 고민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나름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서 올려봅니다만, 다소 개인적인 정치적 견해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최근에 페이스북에 올린 김동호 목사님의 ‘나는꼼수다’비판 글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못 보신분들도 있겠지만 이 글은 기독인들 안에 상당한 논란을 가져왔는데, 저도 김동호 목사님의 글을 읽고 나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이인엽] 나꼼수 열풍과 기독교
먼저 이 글은 나는 꼼수다(나꼼수)에 대한 분석을 목적으로 하는 글은 아닙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나꼼수 비판글을 본것이 이 글을 쓰게된 계기였지만, 나꼼수를 반드시 옹호해야 겠다거나 김동호 목사님을 비판하고 싶은 의도도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것을 계기로 기독교인들의 태도나 신학에 대해, 몇가지 생각을 던져보자고 한다는 게 적절할 것 같습니다.
김동호 목사님과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대학시절 기연사역(대학 기독인 연합)에 참여했을때, 김 목사님이 상당한 지원과 관심을 보이셨던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었고, 최근 기독인들안에서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청어람이 현재와 같이 자리를 잡는데도 김목사님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교회 개혁에 애를 쓰시기도 했고, 높은 뜻 숭의 교회를 분립하신 것만 봐도 김 목사님은 이 시대에 보기 드문 목사님중 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분의 ‘청부론’이나 나꼼수에 대한 이번 글에서 보듯이 ‘현재의’ 김 목사님이 보이시는 사회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글을 한번 소개해 봅니다.
김동호
1. 요즘 '나는 꼼수다'가 대세인 것 같다.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
2. 우리 아들 놈도 팬인지 내 아이패드에 '나는 꼼수다'를 심어(?) 놓았다. 나도 보고 세상과 소통하라는 뜻인가보다.
3. 그러나 나는 '나는 꼼수다'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 말, 내 페이스 북 친구 절반 이상 잃어버릴 각오하고 하는 말이다.
...
4. 나는 왜 사람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나는 꼼수다'에 열광하는지 안다.
5. '나는 꼼수다'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옳다고는 생각하지만 감히 용기가 없어서 혹은 게을러서 뒤에서만 숨어 울분을 토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용감하게 대놓고 그것도 아주 속시원하게 해대고 있기 때문이다.
6. 오늘 새벽 일찍 잠이 깨어 페이스 북을 보다가 어느 페이스 북 친구들의 글을 통하여 최근 '나는 꼼수다' 방송을 들었다. 오늘 아침에 구속되는 정 아무개 전의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짧은 방송이었다.
7.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그 방송에 있었다. 그것은 빈정거림이었다.
8. '나는 꼼수다'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진실과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파헤치려고 하는 거칫에 대하여 개인적인 입장이지만 대부분 동의한다.
9. '나는 꼼수다'가 이야기하는 것과 주장이 다 옳다고하여도그것을 그런식으로 표현하면 안 된다. 내가 오늘 처음 들은 '나는 꼼수다' 방송은 '이 나쁜 새끼들아'로 끝을 맺었다.
10. 나는 개인적으로 정 아무개씨가 용기있게 진실을 파헤치려고 하다가 감옥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래도 그렇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
11. 아무리 화가나고 분통이 터져도 그렇다고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저들이 가두고 싶어하는 거짓만큼이나 옳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나쁜 것이라는 사실을 저들은 모르는 것 같다.
12. '나는 꼼수다'는 악을 악으로 이기려고 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였는데 말이다.
13.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37절에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여 주신다.
14.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15. 빈정거림과 욕은 이에서 지난 것이다. 옳지 않은 것이다. 좋지 않은 것이다. 나쁜 것이다. 악한 것이다.
16. 옳지 않은 것으로 옳지 않음을 지적하고, 나쁜 것으로 나쁜 것을 판단하고, 악한 것으로 악한 것을 고발하는 것으로는 절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17. 나는 '나는 꼼수다'가 세상을 또 다른 모습으로 병들게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8. 오늘 한 번 죽어보자.
간단히 요약하면 김목사님의 글은 ‘나꼼수가 왜 그러는지는 대략 알겠지만, 나꼼수의 말에서 나오는 빈정거림과 욕은 세상을 병들게 하는 또 하나의 악이다’라는 주장인것 같습니다. 사실 나꼼수를 많이 들으셨거나 깊은 고민끝에 나온 글은 아닌것 같고, ‘페북 친구 반을 잃을수도 있다’거나 ‘한번 죽어보자’ 하실 정도의 사안은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김 목사님의 이 글은 짧지만 기독교인들안에 있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말해 그것은 ‘태도의 문제’와 ‘신학의 문제’라 하겠고, 이 두가지는 밀접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먼저 태도의 문제.
우리 한국의 기독인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저항, 비판, 문제제기’는 곧 비기독교적이라는 태도를 자주 만나게 됩니다. 특히 기성세대로 올라갈 수록, 데모, 촛불시위, 노조, 전교조, 그리고 최근의 나꼼수처럼, 무언가 비판하고 저항하는 것은 곧 나쁜 것이라는 강한 선입견이 있지요. 반대로, 바람직한 기독교인 상은 권위와 질서에 순종하고 인내하며 불손하지 않은 자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온누리교회에 오래 다녔던 친구에 따르면, 고 하용조 목사님이 무척 자주 하신 말씀이 ‘비판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습니다, 순종하십시오’ 였다고 합니다.
결국, 무엇에 저항하는가 그리고 왜 저항하는가를 묻지도 않은채, 저항적인 태도만 보면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것이 기독인들인 것 같고, 이는 신학적 이념적 차원을 넘어 일종의 ‘기질’로 굳어진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이 어떤 신학적 입장 보다도 무서운 것은, TV보고 밥먹으면서 던지는 부모님(주로 장로님 혹은 권사님이신)의 한마디, 그리고 매주 설교를 통해 나오는 목사님의 직간접적 사회적 발언들을 통해, 수십년간 우리에게 무의식적으로 체화되어 왔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교회안에서 벌어지는 모순이나 비리를 볼 때, 그리고 명백한 사회적인 악을 보고 한마디 하고 싶을 때에도, 우리안에 잠재된 이러한 태도는, 순간적으로 우리의 목을 조르며 자문하게 만듭니다. 이런 비판이 혹 비신앙적 비기독교적인 태도는 아닐까 뭐 이런식의. 저는 김동호 목사님의 글에서도, 그러한 비판적 태도(욕이나 빈정거림으로 표현된)에 대한 알레르기를 느꼈습니다.
두번째로 신학의 문제.
얼마전 MB의 내곡동 의혹이 불거진 후, 나꼼수의 김용민 교수가 찬송가를 패러디해 ‘내곡동 가까이’로 개사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는데, 그 때 ‘한국교회언론회’라는데서 이를 ‘종교모독’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에서 간절한 신앙고백을 담아 부르는 찬송가를 잡담거리로 삼아 기독교인 전체를 모독했다는 것이죠. 이 역시 상당히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보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무엇에 분노하는가’가 우리의 가치와 신학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판단은 나꼼수가 분노하는 시대악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나꼼수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인데, 저는 여기서 나꼼수의 태도에 대한 김목사님의 민감함 보다, 나꼼수가 지적하는 사회 악에 대한 무감각, 혹은 무관심을 봅니다. 즉, 나꼼수가 지적해 온, 디도스 공격, 내곡동 사건, BBK 사건, 장자연 사건, 삼성의 문제, FTA 문제, 저축은행 사건, 맥쿼리 의혹과 론스타 먹튀 문제, 인천공항 매각 문제 등등 수없는 비리 의혹과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충분히 관심을 가졌고, 그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이해했다면, 이런 말을 꺼내기는 상당히 어렵지 않았나 싶은 것이지요.
예를 들어 나꼼수의 김어준 총수가 처음 제기한 선관위 홈피와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후보 홈피에 대한 디도스 공격 의혹은 이미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비서관과 박희태 국회의장 비서관이 직접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개입의혹이더 윗선으로 올라가는 상황입니다. 집권 여당이 선거 조작을 위해 선관위홈피를 공격한 초유의 사건이 되는 것이지요. 내곡동 땅 문제도 역시 나꼼수의 주진우 기자가 처음 터뜨렸는데, 부동산 실명제 혹은 편법증여 혐의가 짙고 대통령의 직접 개입에 대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정봉주 전 의원은 BBK 저격수로 불릴 정도로, 당시 이명박 후보의 BBK 관련 의혹을 폭로해 왔고, 그로 인해 최근 구속까지 되었지요. 중요한 것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도 경선시에 거의 유사한 폭로를 했었고 그에 대한 동영상이 요즘 인터넷에 자주 올라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사안만으로도 메가톤급인 비리들이 연달아 확인되면서, 집권여당이 스스로 재창당 수준의 변화가 없으면 다음 대선에 희망이 없다고 할 정도의 상황이 된 것이죠.
현재 한국의 언론의 자유가 상당히 제약된 상황에서 (국경없는 기자회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를 노무현 정부시기의 31위에서 69위로 강등했고, 미국의 보수인권단체인 프리덤 하우스 마저도 2011년 한국을 언론자유국에서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강등했는데, 그 이유를 검열 및 언론매체의 뉴스와 정보콘텐츠에 대한 정부 영향력의 개입 확대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나꼼수가 우리 사회의 비리나 의혹을 폭로해 왔고, 그 상당부분이 사실로 드러났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나꼼수의 태도나 스타일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서 이렇게 나꼼수의 말투만을 가지고 나꼼수를 사회악으로 까지 평하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판단은 언제나 완벽할 수 없겠고, 상황의 경중을 가려 상대적인 최선을 찾아가야할 경우가 많습니다. 김용민 교수를 빼고는 이 사람들이 기독교인들도 아닌데, 거의 자기 목숨을 걸고 누구도 하지 못한 비리를 폭로하는 사람들에게, 말투가 불손하다고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아무래도 시대적 맥락을 제대로 읽지 못한것은 아닌가 싶다는 것입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반응처럼 우리가 말하는 기독교적 가치는 개인윤리 수준, 개인전도와 선교의 차원을 넘지 못한 것은 아닌가 생각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상정하는 하나님 나라는, 기독교인들이 모여있는 조직 교회와 동일 시 되는 것은 아닌가 싶구요. 만약 기독교인들과 교회가 억울하게 욕을 먹는다던가, 어느 나라에서 전도와 선교가 금지되거나 교회와 선교사가 핍박을 받았다면 기독교인들은 당연히 분개했을 것입니다. 보수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이나 북한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김목사님이 사회악이라고 칭한 ‘나꼼수의 욕이나 빈정거림’을 훨씬 넘어서지 않습니까?
젊은 기독교인들 중에는 장로 대통령이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보다, 한반도를 대결 정책으로 몰아가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물인 우리 강산을 잘 관리하기는 보다, 소수의 측근 수혜자들을 위해 4대강이라는 사업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기 보다, 고소영, 강부자라 불리는 기득권측의 이익에 복무하고 있지는 않는가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보수 교회나 대형 교회 목사님들이 이에 대해 비판하거나 적어도 고민한다는 말은 들어본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내곡동 사건만해도 편법증여, 혹은 부동산실명제 위반이 거의 확실시 되는데 여기에는 반응이 없다가, 그것을 풍자하기 위해 찬송가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분개하며 분연히 일어서는 사실은, 이 시대의 보수 기독교가 과연 무엇에 분노하는가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는 것이지요. 즉, 기독교의 명성이나 권익이 침해될 때 보이는 분노에 비해, 사회적 악이나 부정의, 그리고 약자의 고통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보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23:23-24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너희 위선자들에게 불행이 닥칠 것이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면서 율법 가운데 더 중요한 정의와 자비와 믿음은 저버렸다. 그러나 십일조도 바치고 이것도 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통째로 삼키는구나.
엄밀히 말하면 오늘의 기독교는 아합왕과 이세벨에게 포도원을 빼앗기고 목숨까지 빼앗긴 나봇의 가족에게, 너의 태도가 왜 불온하냐고, 왕은 하나님이 세우신 것인데 왜 공손하지 못하냐고 묻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에서 사회정의의 측면이 제거되고, 기득권을 가진자에게 복무하는 기독교가 된 것은 아니냐는 질문이지요. 아마 오늘 세리 삭개오가 교회에 온다면,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회개하고 손실을 끼친 자에게 배상할 필요 없이, 그냥 혼자 영접기도 한번 하고, 하나님이 나를 용서했다 선포한 후, 목사한테 잘 모이고 십일조 잘 내서, 교회 장로가 되지는 않을까 싶다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군사독재의 하수인으로 김근태를 고문했던 이근안이 제대로 된 회개는 커녕, 자신을 합리화 하며 목사가 되게 해주는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많은 분들이 지적하듯, 여기에는 역사의 무게가 있습니다. 일제의 제국주의에 복무하고 신사참배한 교회의 죄, 그에 이어 군사독재정부를 직간접적으로 지지한 죄, 그리고 6.25와 분단의 경험과 월남한 신도들이 주도해서 이끌어 온, '친미반공 자본주의'를 금과옥조로 믿는 한국교회. 진보와 보수의 갈등과 분열, 교권투쟁, 교단 분열.
결국 사회적으로는 친일과 군부독재 지지의 역사를 합리화 하거나 감추기 위해 국가 권력에 대한 무조건적 순응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쳐 왔고, 교회 안에서의 교권과 목회자들의 편리를 위해 순종만을 가르쳐 온것이 오늘의 기독교인들의 ‘기질’을 만들어 닌 것은 아닌가, 그리고 반공친미 자본주의 이념이 기독교의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보수기독교와 진보기독교가 분열하면서, 아예 사회정의라는 부분은 잘라내어 버리고, 개인경건과 복음전도만을 가르치고, 그러한 프레임으로 성경을 보고 해석하고 설교한 결과가 오늘의 기독교가 아닌가 질문하게 됩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멘토는 한경직 목사님으로 알고 있는데, 훌륭한 일도 정말 많이 하셨지만, 우리가 잘 알다시피, 일제시기와 군부독재시기 그분이 보이신 행보는, 현재 기독교의 모습에 대해 분명한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영적 권위와 사회적 권위는 필요하고 존중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권위와 정의에 위배 될 때는 분연히 일어나 목숨을 걸고 저항해야 하는 것도 기독인이어야 하겠죠. 침묵은 마치 중립처럼 느껴지지만 악이 횡횡하는데 침묵하는 것은 사실 간접적인 지지와 묵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보수 기독인들은 저항 하면 바로 폭력혁명 같은 것을 떠올리는데, 마틴루터 킹 목사가 발전시킨 비폭력 저항이라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실천방식이자 기독교의 전통입니다.
예수님은 약자에게는 자비로우셨지만, 불의한 강자에게는 이해할 수 없을만큼 혹독하셨습니다. 풍자와 욕이 나쁘다면 우리는 “독사의 자식들아(우리말로 가장 가까운 표현은 아시다시피, “이 개자식들아”겠지요)”라고 하신 예수님 부터 비판해야 할 것입니다. 영적 권위, 사회적 권위에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면, 예수님은처음에 자신에게 호의적으로 접근했던 바리새인들을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고는 못견딜 정도로 몰아세울 필요도 없었고, 호기심을 가지고 접근한 헤롯이나 빌라도를 그렇게 냉정하게 무시하시지도 않으셨을 것입니다. 세리와 창녀의 친구였던 예수님이, 바리새인과 헤롯, 빌라도와 친구가 되시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곧 그들의 죄를 못본척 하는 것이 되는데요. 물론 하나님의 사랑은 빈부귀천을 떠나 모든 죄인을 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회개하는 세리와 창녀를 안아주셨죠. 그러나 회개하지도 않는데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죄를 못본척하고 무마해주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오늘 교회는 과연 누구의 친구입니까?
하나님이 분노하시는 일에 우리도 분노해야 합니다. 그리고 개인의 죄 뿐 아니라 사회의 죄에 대해서도 잘못 된것은 잘못됬다고 이야기 해야죠. 그렇다면 하나님의 분노가 무엇을 향하는가를 알아야 하겠지요. 대학시절 사회참여나 하나님나라에 대한 궁금증으로, 그리고 당시 이슈가 되었던 ‘부흥’에 대한 고민으로, 도서관에서 이사야 서를 읽던중에 만난 하나님은, 개인의 도덕적 타락과 종교적 타락 뿐 아니라, 사회적 악과 약자에 대한 억압에 처절하게 분노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교회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세계 열방의 하나님이셨고,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정의의 하나님이셨지요. 정말 하나님이 이런분이셨을까 싶을 정도로, 폭포수와 같은 그 말씀속에 보여진 정의의 하나님은, 그동안 교회에서 그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분이셨습니다. 다음의 몇 구절만 살펴보아도, 하나님의 분노를 오늘 우리시대의 정의의 문제와 연결시키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사야 1:23-24
너의 지도자들은 주님께 반역하는 자들이요, 도둑의 짝이다. 모두들 뇌물이나 좋아하고, 보수나 계산하면서 쫓아다니고, 고아의 송사를 변호하여 주지 않고, 과부의 하소연쯤은 귓전으로 흘리는구나. 그러므로 주 곧 만군의 주, 이스라엘의 전능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나의 대적들에게 나의 분노를 쏟겠다. 내가 나의 원수들에게 보복하여 한을 풀겠다.
이사야 3:14-15
주님께서 백성의 장로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을 세워 놓고, 재판을 시작하신다. "나의 포도원을 망쳐 놓은 자들이 바로 너희다. 가난한 사람들을 약탈해서, 너희 집을 가득 채웠다. 어찌하여 너희는 나의 백성을 짓밟으며, 어찌하여 너희는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을 마치 맷돌질하듯 짓뭉갰느냐?" 만군의 하나님이신 주님의 말씀이다.
아모스 2장 6-8절
"나 주가 선고한다. 이스라엘이 지은 서너 가지 죄를,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그들이 돈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팔고, 신 한 켤레 값에 빈민을 팔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힘없는 사람들의 머리를 흙먼지 속에 처넣어서 짓밟고, 힘 약한 사람들의 길을 굽게 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여자에게 드나들며,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다. 그들은 전당으로 잡은 옷을 모든 제단 옆에 펴 놓고는, 그 위에 눕고, 저희가 섬기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벌금으로 거두어들인 포도주를 마시곤 하였다.
한가지 중요한 것은 이 말씀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인 선지자를 통해 대언되었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자신의 분노를 공유하는 자를 통해 말씀을 주신 것이고 오늘도 그런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또한 선지자들이 구약시대에 이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는 것이 때로는 왕과 권세자들을 비판하는 것이었고, 잘 아시는 대로 모든 거짓선지자들이 나라의 평안과 번영을 말할때 기득권층의 악과 하나님의 심판을 외친 예레미야는 목숨의 위협을 받고 웅덩이로 집어 던져집니다(렘38). 그리고 역시 유다와 이스라엘의 죄를 외쳤던 선지자 이사야는 악한 왕 므낫세에 의해 톱에 켜 죽음을 당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의 정의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거라고 믿는, 그리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 마저 비난하는 이상한 기독교를 봅니다.
우리는 같은 성경을 읽으면서 (잘 안읽기도 하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분노를 듣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역사의 무게가 실려있는, 개인구원의 차원에만 집중하고 복음의 사회적 차원이 거세된 ‘구시대적 프레임’으로 성경을 듣고 보고 가르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정의에 민감하신 분이신가도 모르고, 정의가 어긋나도 이것이 우리가 마음아파 해야 할 문제인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다행인 것은, 점점 더 이러한 프레임에 문제를 제기하는 기독인들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머리가 있고 가슴이 있는 자들은, 이 시대의 악독한 현실을 보고, 또한 그것을 개혁하기보다 기득권세력에 영합하는 것처럼 보이는 보수 기독교를 보면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저에게 있어서의 변화는, 성경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게 된 것, 그리고 좋은 선배들의 영향이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존의 프레임을 깨고 나가서 새롭게 성경을 보고 교회와 사회에 대한 개혁의 목소리를 냈던 선배들. 만일 그분들이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모르거나 비판만 하는 사람들이었다면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당시만해도 교회안에서는 사회참여나 사회 정의에 관심갖는 사람은 복음주의자가 아니라는 이분법적 사고가 팽배했었으니까요. 그러나 영성과 사회성, 신앙과 삶 모두에서 신뢰를 주었던 선배들이 용기있게 구시대적 프레임을 깨고 나간 것이, 저에게도 용기를 주었고 또 저 스스로도 새롭게 성경을 읽고 고민하고 글을쓰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 같은 SNS가 좋은 것은 물리적 거리를 넘어 소통과 상호작용을 원활하게 해준다는 점이지요.이런저런 말이 길어졌지만, 많은 이들이 김동호 목사님의 글에 반응을 했고, 김목사님도 그것을 잘 이해했다고 표현하셔서 보기가 좋았습니다. 이러한 토론이 김동호 목사님께도 더욱 개혁적인 모습을 보여주시는 계기가 되리라 기대해봅니다.
나침판은 그 침이 움직일 때에만 정확히 북쪽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우리는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지만, 세상은 계속해서 변하고 우리의 당면 과제와 시대악도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구시대적인 태도와 신학을 깨고 나가지 못하는 기독교는 개혁의 원천이 아닌 개혁의 장애물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목사님은 나꼼수 현상을, 고통받는 약자를 위해 권력자에게 정의를 외쳐야 할 교회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자 "돌들이 소리지르는" 현상으로 설명하셨는데 참 공감이 갑니다.
나꼼수는 MB 정부와 관련된 의혹과 비리에 집중해왔고 2012년에 정권이 바뀔때까지만 방송을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는 나꼼수가 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고, 정권이 바뀐다고 천국이 오지 않을거라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적어도 김동호 목사님은 나꼼수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고 있고 (즉 사람들이 무서워서 말하지 못하는 권력자의 비리를 용감하게 폭로하고 있고), 정봉주 전 의원이 용기있게 진실을 파헤치다가 구속된 거라는 점은 인정하셨죠.
그런데 많은 기독인들은 지금 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잘 모르는건 아닌가, 권력자가 힘을 남용하고 약자들이 고통받는데,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지고 그분의 마음을 근심케하는 거라는 것에 대해 인식은 있는건가 궁금할때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꼼수의 김어준이 한 “쫄지마!”라는 말은 요즘 젊은이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페이스 북 상에서 어떤 분은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 “내니 두려워 말라”를 떠올리게 한다고 해서 깊이 공감한 적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은, 모두가 두려워 하던 악독한 권력자들에게 목숨 내놓고 “이 개자식들아”라고 정면 대결을 하셨고,
하나님 나라는 ‘정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이들의 것’이라고, 오늘도 우리를 독려하십니다.
그분의 뒤에서 떨고 있는 우리에게
“내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 쫄지 말아라”라고 용기를 주신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이 시대의 악과 목숨까지 바쳐 싸워야 할, 그리고 싸울 수 있는 자들은,
죽어도 산다는 예수의 ‘부활 신앙’을 가진 자들,
어둠이 짙어오는 순간에도,
하나님 나라의 ‘최종 승리’를 믿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독교적 세계관 > 이인엽의 예수의 국제정치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이인엽] 목사가 된 이근안, 그리고 개독교,기득교,괴독교 (2) | 2011/12/31 |
|---|---|
| [이인엽] 나꼼수 열풍과 기독교 (19) | 2011/12/31 |
| [이인엽] 일방적 이스라엘 지지가 하나님의 뜻? 1.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역사 (8) | 2011/09/18 |
| [이인엽] 빈 라덴의 죽음과 숨겨진 역사 2 (1) | 2011/05/14 |
| [이인엽] 빈 라덴의 죽음과 숨겨진 역사 1 (1) | 2011/05/13 |
| [이인엽] (3) 율법의 정신을 대표하는 희년 제도 (1) | 2010/07/18 |
| [이인엽] (2) 혈연 공동체 vs. 언약 공동체 (7) | 2010/06/01 |
| [이인엽] (1) 가나안 정복과 이집트 심판에 대한 오해 (2) | 2010/05/15 |






댓글을 달아 주세요
먼저 묻고 싶습니다. 기독교인에게 정의의 기준이 성경입니까 상식입니까? 나꼼수가 비판입니까 비난입니까? 님의 글에서 김동호 목사님이라는 분의 논리에 대해 성경적인 반박은 찾기 힘듭니다. 그리고 성경은, 옳고 그름을 판단함을 넘어 남을 비난하고 인격을 모독하는 것에 대을 분명히 금하고 있습니다.
태도의 문제를 논하셨죠. 그럼 묻겠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이라는 분이 하신 말씀이 성경적입니까 비성경적입니까? 로마서 13장을 근거로 정확하게 성경적인 말을, 그것도 목사가 강대상에서 한 것이 왜 문제입니까? 기독교인을, 혹은 목사를 비판하시려면, 그들이 어떻게 성경을 거스르는 것을 믿거나 가르치는지를 비판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님이 인용하신 이사야서는, 저도 동일한 시각으로 읽습니다. 그러나 이사야서 어디에서도 그러한 불의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저항해야 될 것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가이드라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저질러진 모든 악에 대해 당신께서 직접 갚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무엇보다 묻고 싶습니다. 나꼼수를 들으며 맞장구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대한민국의 정부를 위해, 예레미야가 그랬듯이, 예수님이 그러셨듯이, 목숨을 걸고 기도할까요?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리더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입니다.
The way I see it is that, not only the Korean politics, but the organizations who call themselves `churches' are unable to reflect on themselves to correct the corruptions. They have become pigs of greeds. If you ask me `on what basis do you say such things?', then I would say 'it doesn't require to justify my basis', because the corruptions are more or less consequential facts. BUT, THE CHURCHES AND PASTORS ARE REFUSING TO ACCEPT THE FACT BECAUSE THE CHURCH GOERS ARE THEIR PIGGY BAGS.
위에 Caleb이란 형제님 참 어이가 없군요. 현재 한국교회의 암적인 존재가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은 '목숨을 걸고' 기도하고 있나요? 리더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니요? 권력은 국민에게 있는 것인데, 부패하디 부패한 지도자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요?
김동호 목사가 잘못한 것은, 여전히 자신은 '선'이라는 테두리에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선으로 악을 이긴다.'는 그런 때에 쓰는 것이 아닙니다. 올 한 해 선으로 악을 이긴 사람은 300여일만에 고공크레인에서 내려온 김진숙 씨라고 생각합니다. 값싼 은혜, 값싼 도덕으로 같은 기독교인까지 욕먹게 하지 마세요.
위에 분이 더 어이가 없네요 영업방해하면서 고공크레인에 올라간게 선으로 악을 이긴거라고요? 나꼼수가 한 말은 다 맞나요? 그러면 희망버스가 한 짓은 잘한거나요? 동네 사람들 피해 줘가면서 한게 선으로 악을 이긴거나요? 한국 보수도 문제지만 진보도 거기서 거기네요 누가 누굴 판단하고 누가 더 의롭고 선하고 할 수 있나요?
Caleb님,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하신 질문에 제가 질문을 하고 싶네요.
저는 성경과 상식이 둘다 정의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기독교인들은 상식적이면 안됍니까? 이건 질문의 의도가 뭔지 모르겠군요.
상식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성경적이지 않으니 잘못됐다고 하고 싶으신 건가요?
또 비판과 비난의 뜻을 확실히 아십니까?
네이버 사전에 의하면
비판:사물의 옳고 그름을 가리어 판단하거나 밝힘.
비난:남의 잘못이나 결점을 책잡아서 나쁘게 말함.
인데, 나꼼수는 비판이라고 느껴지네요.
여기서 나꼼수가 비난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나꼼수의 존재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일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또 "김동호 목사님이라는 분" 이나 "하용조 목사님이라는 분" 이런 말을 사용하셨다면,
높은뜻 숭의 교회의 김동호 목사님과 온누리 교회의 고 하용조 목사님을 전혀 모르신다는 뜻인가요?
그럼, 하용조 목사님의 말씀이 로마서 13장을 근거로 했다는건 어떻게 아셨나요?
제가 성경에 무지해서 그러는데, 혹시 성경을 모두 외우고 있다면 당연히 알 수 있는 건가요?
또, 원글에는 깅동호 목사님의 논리에 대한 성격적이 반박이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잘 모르시겠다면, 난독증이 있으시거나 대충 읽으신게 아닐까 싶네요.
다시, 제가 성경을 다 외우지 못해서 그러는데,
성경의 어느 부분이 "옳고 그름을 판단함을 넘어 남을 비난하고 인격을 모독하는 것에 대을(?) 분명히 금하고 있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 이부분은 나꼼수랑 그닥 연관이 없다고 "저에게는" 느껴지는 부분이군요.
혹, 나꼼수와 연관이 있다고 느껴지시고, 성경에서 확실히 인격을 모독하는 것에 대해 "분명히 금하고 있다고" 알고 계시면, 제가 정말 유치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성경에 "살인하지 말라" 라는 부분이 있다는건 아시겠죠.
그러면 전쟁터에서 적군을 (또는 아군을-요즘은 아군의 의한 사망도 상당합니다) 죽인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가는 것인가요?
또, 구약시대에 인물들은 모두 지옥에 갔을까요?
게다가, 성경을 모든 사람들이 정확하게 해석하고 있나요?
어째서 "기독교인을, 혹은 목사를 비판하려면, 그들이 어떻게 성경을 거스르는 것을 믿거나 가르쳐야 하는지" 잘 모르겠군요.
그냥 내밷는다고 다 논리 있는 말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성경 구절을 가지고도 수많은 설교말씀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그 중 어떤 경우에는 완전히 상반된 내용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무조건 성경에 "反" 해야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나꼼수를 듣는 기독교인들이, 목숨을 걸고 기도한다" 는 아이디어를 받으셨는지 통 알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다른 글을 읽고 오셔서 여기에 실수로 답글을 다신게 아닐까 하는군요.
여기까지는, Caleb님의 전혀 앞뒤 말이 안되는 답글에 대한 "비판" 이였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이인엽 형제님과 나누고 싶은 말이니,
맘에 안 드시면 읽지를 마시던지, 읽고나서 맘에 안든다고 태클 걸지 않으시면 좋겠네요.
사실 eKosta의 글들이 모두 같은 성향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
즉, Kosta에 오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성향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이런곳에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어진 지 한참 되었기 때문에,
이 글의 서두를 읽고나서, 본문을 읽기전에 먼저 포스팅을 보고 왔습니다.
거기에 달린 수백개의 답글들을 거의 대부분 읽었고,
그 뒤로 올리신 관련된 포스팅도 읽었습니다.
든 생각은 간단합니다. "아직도 여전하시구나."
그 분은 변함이 없으신거 같군요.
작년 시카고 코스타에 홍정길 목사님이 오신다는 말씀에
오시기로 한 일정을 취소하신 그 분이 맞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사역이 쉬웠다고, 그 분이 쉽게만 사신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분이 한국의 다른 목사님들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행보가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역시 김동호 목사님은 거기까지인듯합니다.
달을 가리키니, 손가락만 본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꼼수를 비판하는,
또, 방금 위에 글을 올리신 이름조차 밝히시지 못하는 저분과 같이
목숨을 걸고 저항하신 분들을, 영업방해니, 동네 피해니 라고 하는
그런 분들 때문에 참 어렵고 걱정이 됩니다.
나꼼수가 왜 있을까요. 왜 목숨을 걸고 크레인에 올라가서 300일을 버티셨을까요.
그 이유를 알아아죠. 그 원인을 해결해야죠.
F4를 비롯해, 나꼼수를 지지한다면, 모두 알고 있죠.
지금 상황이 이렇게 만든 것인 것을.
오늘도 목숨을 걸고 저항하는 이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들어보려하지도 않고서,
한밤중에 "도둑이야!" 외치며, 주변 사람들 잠을 깨운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기독교인이란거, 아니 개신교인이란거.
참 씁쓸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뒤에 쓰신 글과도 연관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저도 얼마전에 깜짝 놀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끼는 교회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저한테 물어보더군요.
박원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왜 그러냐 했더니,
한국에 아는 형한테서,
"박원순이 시장이 되면, 대통령 출마하고 한국이 망한다고, 빨갱이라고 했다"며,
선거전에 기도를 부탁받았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박원순 시장님은 대통령 출마하실 생각은 없고, 아주 훌륭하신 분이야.
그런데 아까 내가 말했듯이, 너가 주변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너의 부모님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내가 알 수 없기 떄문에 너한테 함부로 이야기를 하지는 못하겠어.
다만, 너가 정말 한국 정치에, 지금 상황에 알고 싶다면, 다시 나한테 물어보렴.
그러면 내가 시간을 내서, 최대한 알려줄 수 있으니."
이게 저에게는 가장 어려운 부분입니다.
교회의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른들.
교회의 아끼고 사랑하는 형,누나,동생들.
이들이 그동안 받아온 영향(혹은 쇠뇌)가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기에,
함부로 말을 하기 힘듭니다.
혹여나, 저랑 같은 의견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남들이 관심이 없더라도, 일부러 더 이야기를 합니다.
혹시나 저희의 이야기 속에서 진실을 배울 수 있을까 하고...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유학생,이민학생들은, 한국정치에 무관합니다.
아니 진실에는 무관하지만, 거짓은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도저히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진실을 알려줄 수가 없습니다.
제가 부끄럽거나, 제가 창피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들어서가 아닙니다.
저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볼 지 모르는 이 곳에,
저의 페북 주소를 적고, 본명으로 글을 올릴 정도로 자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관심없는 지체들에게, 아무리 진실을 이야기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또 그들의 주변사람들이 반대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을 확율이 더 높다는 사실이,
저를 주저하게 만듭니다.
그래도, 아무도 보지 않을지는 몰라도,
페북에 꾸준히 포스팅을 하고 있습니다.
꼼수에서 그랬죠. 콘서트가 대성공이였던 이유는,
우리가 서로를 인지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내가 갖는 이러한 느낌과 생각을, 수많은 다른 누군가가 같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점점 자신감이 생기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추가 포스팅에 이런 말씀이 있더군요.
"말과 일이 모두 중요하다. 둘 다 하기는 힘들다. 나는 일을 한다. 그들은 말을 한다.
그래서 앞으로는 그들에게 일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 않겠다고.
그러니 앞으로 나에게 말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지 말아달라고."
그냥 김동호 목사님 이신거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거기서 만족합니다.
김동호 목사님이 영향력이 있으시니, "말"을 해주시면 더더욱 좋겠지만,
"일" 이라도 열씸히 해주시니, 그냥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만, 앞으로 "말"은 안하셔도, "실언"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요.
밤이다 보니, 감정이 복받쳐서, 두서 없이 떠들어 댔습니다.
늦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저는 김동호 목사님의 말에 찬성합니다. 기독교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고상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고상함은 불의를 참는 다든지 도움을 더디한다는 고상함을 의미하는 것이아니고 '화를 내기 더디하며' 삼가 말하는 것에서 조심해야한다는 의미에서의 고상함입니다.
나꼼수는 분명히 악을 악으로 푸는 방법이고 그것이 사회를 분열로 이끄는 것은 사실입니다. 가장큰 이유는 100%신뢰할 수 없는 내용, 출처를 알수없는 정보들입니다. 이것을 듣고 흥분하는 것은 옆집 아주머니가 옆옆집 아주머니를 욕하는 '카더라뉴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어느정도 사실이고 어느정도 맞는 말이지만 혼자서 남의 사정을 모르고 떠드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말이죠. 만일 나꼼수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정말 사실이라면 그것은 온라인에서 열심히 말하는 것보다 검찰에 신고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이건 꼭 이인엽씨를 비롯 그분을 찬성하는 모든 분이 읽었으면 하는데, 왜, 어떻게, 무엇을 근거로 자신을 예수님, 하나님과 비교해 비판과 분노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이 지금 현정부에 불만이 있으면 실컷 욕하시기바랍니다. 하지만 절대로, 단 1초도 하나님도 분노하셨으니 나도 해도 된다, 예수님이 비판하셨으니 우리도 해야된다는 논리는 하지 마시기바랍니다. 그건 인간으로 할수있는 최고의 자만이고 아주 심각한 오류에 빠집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정의지만 우리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옳지만 우리는 그럴수없습니다. 욕하는 것은 젋은 당신의 자유지만 그것을 절대로 정당화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심판은 언제나 하나님께 있습니다.
존쌤님.
기독교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고상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 하시는 만큼,
"~하지 마시기바랍니다." 라고 말씀은 안하셔야 하지 않나요?
다시 말씀드리자면, 제가 성경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성경 어느 부분에서 존쌤님의 "생각"과 같은 내용을 주장하나요?
그냥, 더 긴말 필요 없이 그 부분만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네요.
또, 나꼼수의 어느 부분이 악인지도 좀 같이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동호 목사님처럼 "욕" 하는게 "악" 이라고 생각하시는건지,
아니면 뭔가 다른 "악"을 알고 계시는지 말이죠.
마지막으로, 검찰에 신고해서 먹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신고 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이곳이 미국 코스타의 공식입장을 전하는 곳이 아니라 코스탄의 다양한 삶과 생각을 나누는 곳이기에 다른 입장을 가지신 분들의 의견을 환영합니다. 답글도 가능하고, 의견을 기고하시면 (ekosta@kostausa.org) 검토 후에 실어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신공격적인 발언은 삼가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더 많은 분들의 의견이 좋다고 생각하고,
대화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미국 코스타의 공식입장을 전하는 곳이 아니란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데,
혹시 저의 댓글 중에, 코스타을 연상 시키는,
또는 어느 부분이 인신 공격적인지 알려주신다면,
수정하고, 삭제하고, 앞으로 조심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공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나꼼수가 주장하는 내용이 거의 진리급으로 상승되어 말씀하시는 것은 옳지 않아 보입니다. 그들이 하는 말 중에는 유언비어도 꽤 섞여 있고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감정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꼼수가 정말로 한국 사회의 병폐를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질 때 오히려 더 혼란만 가중시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과는 두고봐야겠죠...
나꼼수와 관련된,
또는 보수에 대한 비판이 너무 강한 어느 기사나 사설을 볼 때,
항상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혹시 정말 이것이,
우리를 현혹시키려는 알 수 없는 세력에 의한 거짓이 아닐까.
정말 나는 이 말들을 신뢰할 수 있을까?
하지만, 한가지를 생각해보면, 항상 같은 결론에 도달하더군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이라면 가난한 자들에 대한 복지를 늘리자고 하셨을까,
아니면 포퓰리즘이라고 무시하셨을까.
미혼모에 대한 도움과 지원을,
미성년자들의 성적타락을 가져올 것이라고 거부하셨을까,
아니면 하나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시며 보호하셨을까.
억압받고 있는 북한의 동포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을,
빨갱이, 독재주의자라며 남한의 경제를 혼란시킨다고 욕하셨을까,
아니면 그들과 함께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셨을까.
짧은 저의 생각으로는,
어느 쪽이 '사랑'을 실천하는지 너무나 '편파적'으로 보입니다.
혹시 모르겠습니다. 더 깊은 믿음이 있다면, 다르게 보일지.
난 예전에 기독교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무교다.
왜인줄 아는가?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의 말은 곧 목사의 좋은 핑계거리로 사용된다.
믿음, 소망, 사랑중 사랑이 제일이다라는 말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즉 관용과 자애를 포함하는 말이건만..
이들의 독선은 그러한 예수가 그토록 강조했던 중요가치인 기독교 제1가치인 사랑을 무색하게 만든다.
자신들의 적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편하게 사탄으로 규정하고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편협한 모습과 천당과 지옥이라는 말을 꺼내 겁박을 하는 모습, 언론에서 보도되는 목사들의 행태를 보면서 실망만 쌓여갔다.
난 예수를 좋아하지만 교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예수와 하나님은 어디에서나 거하시며 꼭 교회에만 거하시는것이 아님을 알고있으니 말이다.
적어도 내가 확신하는 것은 현재 대형교회 먹사들이 그토록 부르짖고 있는 천국에는 너희들의 자리는 결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말하자면 김동호목사는 본질은 무시한채 수단만을 딴지거는 모습을 보며 교언영색하면서 남을 거꾸로 떨어뜨리는 것보단 수단은 비록 거칠지라도 본질을 꿰뚫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이다.
오늘의 기독교는 모든 것을 빼앗긴 나봇에게 태도가 불손하다고 말하는 모양이다라는 말이 참으로 와닿습니다.
나꼼수의 "태도"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 평범한 일인으로서, 방송 매체들이 외면하는 진실들을 철저하게 조사하고 매우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나꼼수가 욕설과 말태도를 고치길 간절히 염원하기보다 그 진실이 묻히지 않고 지금의 용기를 잃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그런 마음이 드네요.
공의 없는 복음과 값싼 용서: 이근안과 두란노 아버지학교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6707
Caleb님/ 기독교인의 기준은 성경이죠. 그런데 성경은 상식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어요. 많은 경우 상식이 무너지면 성경적 기준은 볼것도 없죠. 지금 나꼼수가 비판한 의혹들에 따르면, 성경의 엄격한 기준은 고사하고, 정직하고 비리를 저지르면 안된다는 일반적 ‘상식’도 무너지는데 왜 Caleb 님 같은 분은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으신지 궁금하네요.
하용조 목사님 말씀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권세에 복종해야겠지만, 그 권세가 하나님의 정의를 거역하면, 불복종하는게 성경의 정신입니다. 정치권위에 무조건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면 로마시대 초대교회는 황제에 복종해 절해야 했었는데 그래도 복종을 말하시렵니까? 이렇게 문맥을 무시하고 로마서13장’만’을 강조하는 입장은, 보수기독교가 국가권력에 복종해 신사참배하고 군부독재에 굴복한 사실을 합리화 하기위해 성경의 한쪽만을 강조하는 겁니다. 위에 '괴독교'님이 올려주신 글 보세요. 이근안 같은 사람이 두란노아버지학교에서 간증할 수 있다는걸 보고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불의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는 성경 말씀이 없다뇨? 위의 글에서도 지적이 되었는데 안읽으셨나보네요. 이사야 선지자가 그런 예언을 하고 왕의 죄를 지적하는 자체가 목숨을 건 저항입니다. 같은 성경을 읽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목숨 걸고 기도하지 않으면 리더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는 얘기는 더 황당하군요. 쓰신 글의 논조는 비판 자체가 나쁘다는건데, 목숨 걸고 기도하면 나쁜걸 할 자격이 생기는건가요? 당연히 기도는 해야겠지만, 남이 기도하는지 안하는지 추궁하듯 따져묻는 그 태도도 이해가 안가고, 명백한 악을 지적하는 당연한 의무에 대해, 무슨 목숨걸고 기도하느냐를 조건으로 내세우는것도 황당하군요.
존쌤님/ 기독교인들은 고상함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거 동의하는데, 나꼼수는 멤버 한명 빼고는 기독교인들이 아니에요. 근데 김동호 목사님은 그 사람들이 목숨걸로 비리를 폭로하는데, 고상한 태도가 없다고 비난한 거구요. 정황상 많은 사람이 여기에 황당해 한겁니다.
그리고 나꼼수의 주장이 신빙성이 없다고 했고 사실이라면 이렇게 말하지 말고 검찰에 신고하라고 했는데, 정말로 한국 뉴스를 안보시나봅니다. 내곡동 사건, 디도스 공격 등 상당주장이 사실로 밝혀지고 있고 수사도 진행되고 있어요.
우리가 이렇게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고 사회악에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위에 글 쓰신 '한때 기독교도였다' 같은 분이 교회를 떠나는 겁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정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솔직히 개인 블로그가 아니고 코스타 이름이 붙은 웹사이트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는 것 자체가 놀랍습니다.
위에 댓글들 보면서도 확실히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교회도
이분화가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어 착찹합니다.
위에 임수빈님이 쓰신 글 보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라고 하면 진보진영측을 지지하는 글을 쓰셨는데,
저의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지금 현정부도 나꼼수측도 모두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세상을 풍조를 따라가지 않는 크리스쳔으로써는 현정부에 대해서도
나꼼수에 대해서도 둘다 견제하는 입장을 가져야한다고 봅니다.
글쓴이가 김어준씨와 예수님을 평행에 놓고 말씀하신 것은 죄송하지만
정말 잘못된 것 같고요. 그에 대한 걸로 제가 분노하지는 않겠습니다.
너무 사회 정의 이론에 빠져서 하나님의 독생자가 오신 가장 큰 이유가 사회악에서
사람들을 구하려고 왔다는 식의 논리에 빠지신 것 같아요.
특히 다음 부분에서 그런 느낌이 강하게 납니다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은,
모두가 두려워 하던 악독한 권력자들에게 목숨 내놓고 “이 개자식들아”라고 정면 대결을 하셨고.."(에서 글 마지막까지)
정말로요?
그것보다도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자신 앞에 하나님이 있으면서도 모르는 소위 "영적지도자"들에게 분노하셨던 것처럼 보이는데요. 이것의 가장 큰 목적이 사회 정의를 위해서 였을까요? 저는 오히려 하나님 자신의 영적권위를 위한 것이었다고 보는데요.
저도 제가 맞다고 확신할 수 는 없지만 이런 장문의 글을 쓰시기전에 자신의 관점에서 한발 물러서서 냉철하게 생각하시면 좋겠네요.
음. 어떻게 이해하셨는지를 떠나서,
제가 하고자 했던 말을 좀 더 설명을 드리자면...
"나꼼수" 만이 진보는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순수한 "진보" 도 아닙니다.
단지 지금 한국에서 "보수"라 불리는 "기득권"에 반하는 "진보" 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한국보수"는 사회의 약자와 병자를 위하는 일에 무관심하다고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ㅁㅁ님 말씀대로, 김어준씨와 예수님을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수 있지만,
김동호 목사님께서 먼저 "고상해야 할 우리 크리스찬" 이라는 얼토당토하지 않은 기준을 대셨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발언에 가장 많이 나온 반박이 "예수님도 욕하셨다" 였기 때문이죠.
이러한 글을 접하고, 이런한 글을 쓸때마다 고민합니다.
과연 지금의 "진보"가 권력을 가졌을때, 기득세력이 되었을때,
지금보다 나아질 것인가? 아니면 그저 인기를 얻기 위해서 감언이설인가?
하지만 여기서 위에 말씀하신 "예수님이라면" 이 나오더군요.
예수님이라면, 강자의 곁에 서실지, 약자의 곁에 서실지...
박근혜씨가 "힐링캠프"에 나와서 아버지 "박정희씨"의 정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이경규씨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역사가 판단할 것이라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다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 수는 있는 것 아닐까요.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는...
88만원 세대와 900만 비정규직이 없는 나라를 꿈꾸며...
그런 생각을 했을때, 나와 같은 편이라는 이유로 "나꼼수" 및 진보를 좋아합니다.
ㅁㅁ님.
위 글에 개인적인 의견도 있지만, 여기 올리는게 문제가 될 정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곳이 코스타 블로그지만, 다양한 분들이 신앙과 삶에 대한 고민을 나누면서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인데,
혹시 코스타 주최측(?)이신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코스타의 공식입장이 있거나 그것에서 벗어나면 안되는것인지요?
물론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정말 신앙의 원칙에 심각하게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다양한 분들이 답글을 통해 자기 의견도 밝히고 자유롭게 판단하면 되지 않을까요?
ㅁ ㅁ님 주장대로 보자면, 본인의 답글에서도
"지금 현정부도 나꼼수측도 모수 잘못되었다"고 개인 의견을 내고 계시면서,
그렇게 보는 것이 크리스챤의 입장이라고 규정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을 크리스챤들도 상당히 많을 거라는 점이죠.
사회 정의에 좀더 민감함을 가진 크리스챤들은,
기독교인들이 나꼼수의 욕설에 반응하는 것 만큼,
권력자들의 비리에 대한 분노나 관심도 없냐고 물을것 같구요.
좀 극단적인 예지만,
'군사독재의 고문이나 학살도 나쁘지만, 데모하는 사람이 과격하게 욕하는 것도 똑같이 나쁘다'라고 한다면,
이게 정말 객관적이고 둘다 견제하는 걸까요?
물론, 말씀하신 것 중에 크리스챤들이 다른 정치적 입장을 견제하고 세상 풍조를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는 대 원칙은 당연히 맞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현정부도 나꼼수측도 모두 잘못되었다"라고 하는것도 상당히 정치적인 입장라는 겁니다.
본인이 의도했든 아니든.
더불어,
예수님이 사회개혁을 위해서 오셨냐는 것은 논란의 여지도 있고 쉽게 답하긴 어렵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새사람 만들어 주셨고 교회와 신자들이 많아지는데,
사회에 개혁이 없고 정의가 이뤄지지 않는 것도 정말 이상한 일 아닌가요?
그것이 꼭 나눠져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아는 크리스챤들은 그런 이분법적 사고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습니다만.
"글을 쓰시기전에 자신의 관점에서 한발 물러서서 냉철하게 생각하라고 하셨는데"
자기 안에 있는 전제나 정치적 입장에 대해서는 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