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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데  코스타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신학적 내용을 말씀해달라고 부탁받게 되어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개념적인 정의를 내릴 있고,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어떤 것을 정의하는 문제를 얘기해보겠습니다. 어떤 것을 정의할  “A A이다.”라고 수도 있지만 “A B 아니다.”라고 설명할 수도 있을 같습니다. 

제가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를 고민하면서 LA에서 이곳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여러분 나이쯤 되는 여학생이 바로 옆에 앉아 있었고 그다음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에도 자리가 비어 있어서 속으로 여학생이 그리로 가길 바랐습니다. 그러면 편하게 가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가 뜨기 직전에 어떤 아주머니가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이 자리를 지나쳐 가서 다행이다 싶었는데 다시 빈자리로 돌아왔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한 후에 각자 책을 보면서 가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아가씨에게 뭐라고 하는데 아가씨가 아줌마에게 쏘아붙였습니다.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렇게 할까하는 생각을 했는데, 아주머니 또한 정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는 불을 켜고 책을 보고 있는데 아주머니는 제가 아래서 책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분은 모녀지간이었고 어떤 상황인지 모르지만, 갈등이 있었습니다. 딸은 어머니에게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고 어머니는 딸에게 어떻게든 얘기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들의 갈등과 마디 마디를 보면서 어떤 마음을 느꼈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도와주고 싶은데 도와줄 수가 없었고, 상담할 수도 없었고, 아픔만을 내가 느끼면서 너무 아프겠다, 힘들겠다하는 생각을 하며 왔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모습들이 우리의 삶에도 우리의 관계에도 있고, 제가 이것을 보면서 하나님 나라의 반대에는 사단의 나라가 있고 사단의 나라는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이 사단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도 피해자입니다. 인간관계와 모든 속에서 사단은 어떻게든지 사람들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고, 죄의식을 일으킵니다. 그것 때문에 바른 사랑을 못하게 하고 사랑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사랑이 죄로 물들어 있기에 남에게 아픔을 주고, 아픔을 받으면 내가 밀쳐내고 더한 아픔을 줌으로써 자기가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런 아픔과 힘듦과 갈등이 사단의 나라가 아닌가 합니다. 원래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획하신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정말로 사랑과 화평과 기쁨과 평안함이 있는 나라였는데 어느새 사단이 인간의 태초인 아담으로부터 인간의 삶에 들어오고, 인간의 삶에서 자신이 노릇하고, 인간의 삶을 다스리면서 사단의 인도함을 받게 하고, 사단의 원칙을 따르게 하였습니다. 결과로 많은 고통을 가지고 살게 것이 사단의 나라의 모습이고 그런 것이 인간  삶의 현재 조건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구약에서 다니엘서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얘기하는데 오늘은 얘기는 하지 않고 넘어가겠습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데 사단이 인간의 삶을 조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이스라엘로 하여금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훈련하고 가르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통해서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회복하도록 계획 하시고, 추진하신 것이 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일들입니다. 다니엘서를 간단히 설명 드리면 다니엘서는 하나님이 왕이시다, 주권자이시다는 주제를 가지고 쓰인 책입니다. 책을 보면 다니엘과 다니엘의 삶에서 하나님이 왕이심을 보여주고, 다니엘의 친구, 신앙의 공동체에서 하나님이 왕이심을 보여주고 있으며, 하나님이 세상의 왕이신 것이 세상으로 대변되는 느부갓네살왕을 통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당시 무엇이든지 있는 왕에게 정신병이 들게 하고, 왕은 동안 들판에 나가서 잠을 자고 풀을 뜯어 먹으며 지내다가 하나님이 정신을 회복해 주셨습니다. 경험을 통해서 느부갓네살왕은 내가 왕이 아니고 하나님은 왕이시다는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은 기독교 공동체만을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이십니다.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었는데 꿈을 다니엘이 해석해 주었습니다. , , , , 흙으로 동상이 뜨인 돌에 의해서 부서지고 가루가 되는 꿈이었습니다. 이들은 바빌론과  페르시아 그리고 로마, 인간의 왕국을 상징합니다. 예언을 푸는 사람들은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인지 풀려고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라기 보다는 중요한 것은 인간의 왕국이 계속 바뀌며 지속하는 가운데 언젠가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임해서 모든 인간의 왕국을 폐하고, 하나님이 직접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예언이 가르치는 것은 인간의 역사가 왕들이 자신의 권력을 확장하여 다른 왕국을 멸하고 새로운 왕국을 세우고, 자신이 왕이 되는 그런 역사가 계속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를 방향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땅에 서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삶의 왕이시고, 신앙 공동체와 세상의 왕이십니다. 사람들이 알지 못해서 고백하지 못하지만, 속에서 하나님은 주관하십니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도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다니엘서에서 그런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왕국이 계속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예언대로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임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땅에 가져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성육신을 통해서 인간이 되시고, 십자가와 고난을 통해서 죄의 값을 지불해 주시고, 부활을 통해서 생명을 처음으로 가지시고 오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래 계획하셨던 평화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죄의 해결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했다고 선포하시고, 우리가 이러한 선물들을 구원자 예수님 안에서 받고 누리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온 것입니다. 원래 계획하셨던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삶의 모습들이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속에 평안함이 생기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뿐만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로서 예수님의 고난과 낮아짐과 섬김의 삶을 살도록 명하셨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배우면서 부분을 많이 강조하였습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가야 합니다. 얼마 전에 학생과 식사를 함께 했는데 학생이 자신은 고난을 선택해서 있는 용기가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마음에 부담이 있었나 봅니다. 구주로 예수님을 받아 드렸지만, 예수님을 주로 받아들이기 힘든 부담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것을 받아 누리기를 꺼리는 마음이 있습니다. 부분을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에 임하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여 평안을 주시고, 예수님을 우리가 구세주로 영접함을 통해서 자녀의 관계가 회복되었는데, 그다음으로 우리에게 낮아지는 , 섬김의 , 희생의 삶을 살라고 예수님께서 삶과 말씀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우리가 살려고 하면, 그리고 이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라면 굉장히 부담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들이 벽을 넘지 못하고 갈등 속에 있습니다.

전에 제가 LA에서 목회하시는 미국 목사님 스웬들이라는 유명한 목사님이계시는데, 그분의 설교집을 읽으면서 맞는 얘기구나 생각했던 예화가 있습니다.  어떤 분이 LA에서 뉴욕을 가려고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