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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기게 된 학생선교단체는 소위 끈질긴 성경공부로 유명한 곳이다. 성경공부와 독서모임, 토론등을 통한 기독지성인의 배출에 초점을 두고 사역하던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성경공부 교재도 많이 출간되어 있었고 그 덕을 톡톡히 보곤 했다.

많은 경우 교재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교재가 기초하고 있는 성경공부 방법론을 가지고 성경의 본문에 집중하는 성경공부를 하곤 했다. 당시 신대원을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았고 막 배우기 시작한 성경해석학과 그것이 실제로 쓰여지는 현장에서의 성경공부의 열매들을 보면서 감격해 하곤 했다.

리더들과의 성경공부를 위해 어떤 학기는 주말 지역교회의 파트타임 사역을 마치고 저녁에 양복을 입은 그대로 학교 도서관을 찾아 공부방에서 마치 외판원이 물건 팔듯이 ^^ 그렇게 어색한 복장으로 성경공부 그룹을 인도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이리저리 강의실을 건너뛰며 그 날 마쳐야 하는 성경공부에 소위 목숨을 걸었다. 미국대학은 한국대학과 달리 동아리방이란 것이 없기 때문에.. 라고 스스로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지금도 그때 함께 수많은 시간을 함께 지냈던 학생리더들의 수고에 참 감사한다. 그런데 2-3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한가지 발견하게 된 것이 있다. 매 학기마다 그 학기에 집중하는 주제(예: 순종, 헌신, 기쁨)가 있어 설교라든가 성경공부, 심지어 2nd activity까지도 학기 주제에 맞추어 일관성을 가지고 사역하려고 한 것은 좋았는데 특히나 성경공부와 관련하여서는 그것들이 하나로 꿰어지는 연결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절감한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한 주제에 대하여는 나름 올바른 이해와 해석, 적용점을 찾는데 그것이 성경전체나 혹은 복음과의 관련성을 찾지 못하는 리더들, 학생들의 어려움을 목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일종의 하이브리드(그때는 그런 용어자체가 일반화되지는 않았지만) 방식을 사용하여 교재와 본문 중심의 성경공부를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교재 중심의 소그룹은 최소화하고 본문 중심의 그룹을 주축으로 삼되, 그 본문은 성경의 어떤 책 하나를 집중적으로 파고 드는 방식을 취했다.

그래서 당시 집중적으로 선택한 책이 마가복음(혹은 요한복음), 에베소서, 갈라디아서였다. 우리 그룹의 특성상 2-3년이면 대부분의 멤버가 바뀌는 현실을 감안하여 캠퍼스에 머무는 동안 가장 중요한 것이(나름대로 내린) 결국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믿게 된 것이다. 주님은 요한복음 17:2-3에서 "영생(하나님 나라)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되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 실제로 어떤 특정한 주제에 대하여는 모르더라도 복음서 하나를 제대로 공부하고 나면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나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반에 대하여 대략적인 이해를 갖는 경험들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

어떤 경우에 요한복음은 자그마치 1년 반을 걸려서 마친 적도 있고 멤버에 따라서는 한 책만 공부하다가 졸업하고 나간 경우도 있지만 그것이 올바른 방법이라 믿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리더쉽에서는 '선택'과 '집중'의 원리(intention and attention principle)에 대해 말하곤 하는데 캠퍼스 사역에서의 성경공부만큼 이 원리가 적절하게 요구된다고 믿는다. 학생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것을 선택하여 그것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갈수록 복음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또 복음을 모른다고 젊은 세대를 향하여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복음을 접한 세대가 물려 주어야 할 영적 유산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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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계획은 빨리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석사과정도 M.Div가 아닌 MA를 먼저 시작했다.

기독교 교육학으로 석사를 하기에 아무래도 사역 경험들이 필요할 것 같아 지역의 이민교회에서
파트타임 사역자로 사역을 시작했는데 정말이지 좌충우돌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따라와준 교사들이나 아이들, 그리고 배려해 준 교회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러던 중 한 지역교회에서 중고등부 전도사로 섬기기 시작하면서 한 영혼을 바라보는 나의 영적 시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어린 한 영혼, 한 영혼을 말씀으로, 인내로 섬긴다고 하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나는 M.Div를 고려하고 현장에서의 사역을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 내 마음은 자연히 대학생들을 품기 시작했다. 내가 가장 힘든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 당시만 해도 "캠퍼스"에 있는 대학생들에게는 당시 이민 교회들의 관심이 그리 많지 않던 때였다. 모든 사역이 그렇겠지만 캠퍼스 사역 역시 자신의 은사나 적성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일단은 자신의 은사나 적성을 바탕으로 그에 적절한 교회/단체등에서 사역하면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배웠다.

개인적으로는 열정적이기 보다는 좀 차분하고 사색적이기를 바라는 성향이 많기에 그런 색깔(?)을 가지고 사역하는 단체에 마음이 끌렸고 그래서 직접적으로 접하게 된 학생선교단체가 바로 IVF였다. 당시에 남가주에는 한국기독학생회의 남가주 지방회라는 이름으로 UCI, El Camino collge, Cal State in Long Beach, 그리고 UCLA에서 KIVF가 활동하고 있었다.

S 목사님으로 부터 접하게 된 존 스토트의 많은 책들이 내 신학적인 밭을 일구는데 일조했다면, 그 존 스토트가 활동했던 IVF와의 만남은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요, 만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참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생각하는데 당시 같은 대학원을 다니던 1.5세 가운데 T 형제와의 만남은 본격적으로 캠퍼스 사역에 연결된 계기였다. 그러나 캠퍼스 사역에 관심이 있다는 나의 말에 보인 T 형제의 첫 반응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데(단 한 마디였다. "쉽지 않아요!") 지금 돌아보면 어떤 의미를 담은 것이었는지 충분히 수긍이 간다.

캠퍼스 사역은 쉽사리 덤빌 수(?)있는 현장은 아니다. 너무 겁을 내고 두려워 뒤로 물러설 필요도 없지만 그러나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덥석 발을 담글 수 있는 곳도 아니라는 뜻이다. 특히나 '지속성'의 주제와 관련하여는 더욱 그렇다.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승부를 볼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오랜 인내와 겸손이 필요한 사역이라고 말하고 싶다.

처음 T 형제의 소개로 만난 지역대표간사님이었던 H 간사님과의 만남은 그 후로도 내가 캠퍼스 사역이 무엇인지를 배워 나가는데 있어서 좋은 토대를 놓기에 충분했다. 베테랑 간사님이었던 그 분의 경험과 간사 회의때마나 나누어 주던, 그리고 지금도 잊지 못하는 아주 오래된, 직접 수리하시면서 타시던 빨간 니산 센트라 안에서 나눠 주시던 귀한 말씀들이 생생하다.

지금 돌아보면 바로 그 세사람, S 목사님, T 형제, 그리고 H 간사님과의 만남은 큰 축복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캠퍼스를 마음에 품으며 기도하는 수많은 미래의 동역자들, 혹은 캠퍼스를 붙잡고 씨름하고 있는 동역자들, 특히나 한국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속에서 캠퍼스를 마음에 두고 있는 동역자들에게는 먼저 자신의 부족함과 훈련받아야 할 부분을 정확히 직시하고 그것을 채워주고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눈을 부릅뜨고 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기를 간청하고 도움을 요청해 보기를 바란다. 

그것이 맨땅에 헤딩하지 않고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부탁한 것처럼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등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첫걸음이 됨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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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OSTA로 부터 정기적으로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도 한참이 지났다. 이제는 마감의 기한도 한참 넘어버린, 그래서 eKOSTA도 포기한 지금에야 글을 올리면 좀 긍휼히 여김을 받으려나 하는 심정으로 부탁받은 캠퍼스 사역을 글로 옮겨보려 한다. 워낙 글재주도 없고, 사역도 특별한 것이 없는지라 그냥 내가 사역을 시작한 때부터 있었던 일들을 기억나는대로 적어보려 한다. 그래서 혹여나 캠퍼스 사역의 현장에 있는, 아니면 캠퍼스 사역을 생각하며 기도하고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조금이나마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가족은 내가 국민학교(그때는 그렇게 불렀다. ^^) 6학년때 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6학년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던 겨울 방학에 다니기 시작한 교회는 내게 특별한 경험이었고 그 특별한 경험을 더욱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 것은 처음 간 교회 수련회였다. 그 당시 가장 컸던, 그리고 유명했던 금식 기도원에서의 수련회는 내게 충격이었고 늘 선하게만 보이던 교회 여자 선생님의 울부짖던 통곡과 회개의 기도는 내게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으며 나로 하여금 두려움 반, 기대반의 교회 생활을 시작하게 했다.

그렇게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며 3개의 다른 교회를 다녔다. 처음 다녔던 교회에서 두번째 교회로는 어떤 이유였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고 두번째 교회에서 세번째 교회로는 아시는 친척이 목사 안수를 받고 개척을 하시는 바람에 가까이 사는 친척된 도리를 하느라 옮겼었다.

세 교회 모두 소위 동네 교회들이었기에 나는 그리 어렵지 않게 적응의 과정들을 거칠 수 있었고 또 친척이 담임 목사로 계시던 교회에서는 개척교회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중고등부 회장도 하면서 마치 신앙이 탄탄한 아이처럼 그렇게 착각하며 교회 생활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목사님의 큰 딸이던 누나는 당시 대학 4학년으로 CCC 멤버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누나 덕분에 CCC의 행사에도 참석하며(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나름 신앙을 '키워' 갔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러나 아주 이원론적인 삶을 살았는데(물론 그때는 그런 용어조차도 몰랐지만) 신앙생활이란 주일에만 해당되는 것이고 그 당시 많은 고등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담배를 피워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사소한 일탈행위를 일삼으며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전기에서 믿었던 대학에 떨어지고 후기를 가야하나, 재수를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부모님이 제안하신 신학대학은 정말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때는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에(물론 지금은 아내를 만나게 하시고 내 인생을 변화시킨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지만..^^) 입학을 하고야 말았다.

내키지 않은 공부를 하려니 결코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당시에는 당구장과 술집이 학교보다도 더 친숙한 곳이었고 신앙이 자라기는 커녕 요즘 용어로 Silent Exodus(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에 빗대어 고등학교를 졸업한 자녀들이 졸업과 동시에 교회/신앙도 조용히 떠난다는 것을 표현한 용어)의 무리에 끼고 말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학대학생이라는 내 겉모습은 교회의 주일학교 선생, 주일학교 총무, 성가대원이라는 자리에서 놓아주지 않았고 나 역시 부모님의 입장, 뭐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교회를 다녔다.

왜 이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참을 쓰느냐 하면 당시에 내가 다녔던 교회들, 혹은 나와 같은 신앙의 여정을 겪은 사람들을 찾아 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신앙적으로 많이 아프고 고민되고 혼란스러운 것들이 많았는데, 아니 신앙을 넘어서서 인생이란 것에 대하여 근본적인 질문이 많았는데 그 질문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가이드해 줄 사람을 찾질 못했다. 내가 그렇게 아파하는데도, 그래서 방황하면서 대학부 모임에 거의 나가질 않았는데도 중학교때부터 알아오던 교회 선배들, 대학부 전도사님들/목사님들은 왜 내게 대학부 모임에 나오지 않는지, 혹은 따로 만나 어떤 고민이 있는지를 물어오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내가 캠퍼스 사역을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나와 같은 젊은이들이 분명 캠퍼스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때문이었다. 원래 길을 잃은 사람은 스스로 찾기가 힘든 법이다. 길을 잃고 헤매일 때 누군가 '내가 그 쪽으로 이미 가봤는데 아니더라. 이 쪽으로 한번 가봐'라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경험한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다. 신앙적으로 그리 뛰어나지도 않고, 몇 마디 어줍잖게 알고 있었던 신앙지식이 그들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보다는 그저 대학생때의 나처럼 답답해서 미치겠는데, 그래서 누군가에게 내 속이라도 털어놓으면 그걸로 시원하겠는데 그 얘기할 사람이 없어서 조용히 울고 있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 작은 바램을 가지고 캠퍼스 사역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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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제가 퍼가도 될까요?

2003/08/11 00:12 유학생 사역

친구들을 불러서 파티를 열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집에서 처음 여는 파티라서 긴장도 되지만 철저하게 준비해서 모두가 즐거운 시간을 갖게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들뜬 마음으로 상상을 합니다.

'파티를 열자!
그래 그럴싸하게 하는 거야.
음식도 모든 종류를 빠짐없이 준비하고 온 집안을 멋있게 장식하는 거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야지.
오후 7시 반이라고 얘기했으니까 늦어도 8시쯤이면 한두 명씩 나타날 거야.
그러면 활짝 웃는 미소로 손님들을 맞이해야지.
아마도 내가 아는 어떤 사람도 우리 집에서처럼 멋있게 파티를 열지는 못할 거야. 이렇게 완벽하게 계획을 세우고 세심하게 준비를 하는데 안 온다는 것은 말이 안되지.
생각만 해도 정말 신나는 일이야.'

7시 30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자꾸 시계와 바깥을 번갈아서 바라보게 됩니다. 8시가 되었습니다. 1명이 나타났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친구에게 이야기 합니다. "와 주어서 고맙다"
친구가 대답합니다. "내가 안 나타나면 네 얼굴을 다시 어떻게 보냐?"
반갑게 맞으면서도 마음은 실망과 걱정으로 눌려 있습니다.
8시 30분이 되었습니다. 또 다른 한명이 나타납니다.
또 다시 생각합니다.

'음…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벌써 8시 30분인데 왜 두 명밖에 오지 않은 거지.
나머지 11명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준비도 완벽하게 했고 모두 온다고 약속했는데 왜 오지 않는 걸까?'

캠퍼스에서 성경 공부를 한 번이라도 인도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험해 보았음 직한 일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집에서 파티를 여는 것하고 캠퍼스에서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것하고 비교할 수 있느냐고 누군가가 반문하겠지만 그 준비하는 마음과 기다리는 상황은 아주 흡사한 것 같습니다.

지난 5년 반 동안 캠퍼스에서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간사로 섬겨 오면서 매주 금요일을 같은 마음으로 보내 왔습니다. 금요일 저녁 7:30에 성경 공부를 한다고 모두에게 알리고 일주일 내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름대로는 준비도 열심히 하고 찬양도 연습해 보고 기도하면서 그 날을 간절히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보냅니다. 말씀을 준비하는 중에 그룹의 멤버들 얼굴을 떠 올리며 내 안에 부어 주신 귀한 말씀을 빨리 전하고 싶어서 못 견뎌 할 때도 있습니다.

드디어 금요일 오후가 되면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할 마음에 흥분된 마음을 가라 앉히며 캠퍼스로 향합니다. 운전을 하고 가면서 '오늘은 몇 명이나 나올까' '아 참 아무개에게 다시 한번 연락을 할걸… 저번 주에도 온다고 해놓고 마지막 순간에 안 타나 났지' '그래도 이번 주에는 많이 나오지 않을까' 등의 생각을 하면서 그 날 전할 말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주차를 하고 등에는 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기타를 들고 예약해 놓은 방으로 뚜벅 뚜벅 걸어갑니다. 금요일 저녁인지라 대개는 캠퍼스 전체가 한산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면 텅 빈 방안에 혼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가방을 내려 놓고 그날의 성경 공부를 주관해 주시기를 간구하며 잠시 기도하고 책상들을 소그룹 성경 공부하기에 좋게 배열을 해 놓고 기타 줄도 다시 한번 맞추어 봅니다. 첫번째 학생이 나타날 때까지의 시간이 무척이나 길고 때로는 외롭기도 합니다. 물론 그 방에 함께 와 계시는 예수님이 계셔서 위로가 되지만 눈은 계속 문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복도쪽에서 낯익은 급한 발소리가 들려 옵니다. 한 자매가 들어옵니다. 시계를 보니까 7시 45입니다. 그래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는 시간을 잘 지키는 자매입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잠시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8시가 다 되어서야 또 다른 형제 한 분이 나타납니다.

5 분 정도 더 기다리다가 찬양을 시작합니다. 비록 세 사람 밖에 없지만 큰 소리로 찬양을 합니다. 찬양을 하는 중에 문쪽에서 또 다른 자매 한 명이 나타납니다. 갑자기 찬양에 더 큰 힘이 갑니다. 저도 모르게 기타를 힘껏 치다가 줄이 끊어집니다. 순간 당황이 되지만 나머지 5개의 줄을 가지고 계속 찬양을 합니다.

찬양을 마친 후에 그 시간을 성령님께서 주관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비록 다 모이지 않았지만 함께 앉아 있는 귀한 영혼들 한 명 한 명 모두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영혼들을 위해서 말씀을 전할 때 힘을 주시는 것이 느껴집니다. 성경 공부가 거의 다 끝 나갈 때 즈음에 또 한 명의 형제가 조용히 들어옵니다. 비록 늦게 와서 성경 공부의 내용을 거의 다 놓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너무나 반갑습니다. 말씀을 다 전하고 나서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기도 제목들을 나누면서 친교 시간을 갖습니다.

결국 멤버 중 다른 6명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 중의 한 명은 이번 학기 들어서 한 번도 빠지지 않은 형제입니다. 내일 꼭 전화해 보아야지 하고 결심합니다.

집으로 가는 차에서 생각해 봅니다. '왜 그 형제가 안 나타났을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통화했는데.. 어쩌면 내가 조금 더 열심히 기도하지 못했기 때문일거야.'

이렇게 지난 5년 반 동안 매주 금요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파티를 연 자가 손님을 초대하여 놓고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러나 파티와 캠퍼스에서 제자 삼는 일 사이에는 다른 점들이 있습니다. 파티는 사람들이 안 나타나면 실망해서 다시는 안 열겠지만 캠퍼스에서 젊은 영혼들을 예수님께 복종시켜서 제자 삼는 일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꼭 올 건만 같았던 학생들이 몇 번이나 약속을 하고도 안 나타날 때마다 매번 실망하면서도 다음 주에는 그들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간절히 기다리며 또 다시 한 주를 보내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수십 번 아니 수천, 수만 번을 실망시켜드린 예수님께서도 나를 변함 없이 기다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점은 하루 저녁만 즐겁고 말아 버릴 파티가 주지 못하는 기쁨이 제자 삼는 일에는 있다는 것입니다. 매 번 실망을 시키면서 안 나타나던 어떤 형제 혹은 자매가 결국은 예수님의 사랑에 사로 잡힌 자가 될 때 느끼는 바로 그 기쁨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알게 된 예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 자신 스스로 도 매 주를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기다리는 사람이 결국은 또 다른 사람들을 기다려 주게 만드는 그 일 - 바로 제자 삼는 일이 계속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기쁨이 있기에 나는 이번 주에도 캠퍼스로 변함 없이 발걸음을 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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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01 22:08 유학생 사역

유학생 사역 리포트

시카고의 F2 기도모임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18:20)'

내가 대학부에 다니고 청년부에 다닐 땐 '모임'이란 것은 너무도 당연히 교회 안에 존재하는 것이었고 모임의 종류도 다양하고 모여야 할 팀도 많았다. 교회 안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이 모임 저 모임을 가질 수 있었고 그 모임들 모두 서로에게 가르침과 도전과 격려를 주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내가 그런 모임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교회라는 배경(Background) 혹은 울타리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모임과 함께 한 사람들을 떠나서 온 이 곳은 상황이 달랐다. 물론 이 곳도 이민교회가 있고 나이에 따른 선교회도 있으며, 나 자신이 꿈꾸던 머릿속의 큐티모임도 항상 존재해 왔었다. 하지만 이민교회의 선교회는 친교도 공부도 충분히 할 수 없는 실정이었고, 내 머릿속 큐티모임은 현실로 승화되기 참 힘들었다. 그랬지만 마침내 동네 유학생 아내들과 함께 한 기도모임을 시작하여 1년 간 지낸 이야기와 그 모임의 결과로 얻어진 많은 것들을 써보려고 한다.

한 유학생과의 결혼으로 시카고에 오기로 결정한 후 난 결혼에 대한 기대와는 또 다른 어떤 감격으로 벅찼었다. 마치 선교사라도 된 양 시카고를 위해 기도하는 한 자매와 함께 시카고를 향한 중보기도를 하며 시카고를 마음에 품었다. 또한, 남편될 형제가 중보를 부탁한 한 비기독교인 부부를 위해서도 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기도하였다.

시카고에 와 보니 내 주변의 이웃은 유학생 배우자(아내)들이었다. 처음 하는 살림을 익히느라 남편이 학교에 간 후 에는 느릿느릿 집안 일을 하고 도시락 싸서 남편이랑 함께 식사하고 돌아온 오후 시간이면 나 자신도 누군가 만나서 티타임(tea time)을 갖고 싶었고, 이웃에서도 전화가 오곤 했다. "내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대상이다!" 무턱대고 생각하며 좀 친해진 사람들에겐 성경공부를 같이 하겠느냐, 예수님은 이러이러한 분이시다...하며 무조건 말해 보았다. 결과는 나는 조금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오기전 기도한 대상이든 친하게 된 자매이든 별로 관심 없었다. 섬김에 앞서 말로 전도를 해보고자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나 자신이 영향력 있는 훌륭한 전도자가 되기 위해선 노력해야 할 부분이 무척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나는 한참 멀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도, 일대일이든 성경공부 모임이든 모임을 만들고 싶었던 소망은 가시지 않았다.

이 곳은 예수님 이름으로 모이는 어떤 모임이든 필요한 곳이었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유학생들이 교회로 몰려들어 교회가 친교의 중심이 되는 여느 캠퍼스도시(Campus town)과는 달리 이곳, 특히 우리 아파트의 한인 유학생들은 정말 교회와 상관이 없었다. 또한 모두가 알듯이 유학생의 아내들은 낮에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다. 특별한 직업이나 일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육아를 하는 때이기 때문에 서로 도움을 주는 티타임은 좋은 것이다. 다만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데 사람의 얘기가 주제가 없을 땐 한도 끝도 없이 바람직하지 못한 곳으로 흘러간다.

시카고에 온 지 반년쯤 지났을까, 이 곳으로 이사온 한 유학생 배우자가 기독교인임을 알고 정말 반가웠다. 통할 것 같았고, 신앙 안에서의 얘기 상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잔뜩 기대가 되었다. 잘 알게 되고 친하게 되면서 왠지 일대일 제자 양육으로 만나면 좋을 것 같아 기도도 하고 프로포즈도 해 보았다. 역시 별로 내켜 하지 않아서 할 수 없었지만 그 친구를 만난 지 6개월만에 그 친구에 대한 내 기도를 응답하신 하나님께서 그 친구와 일대일을 할 수 있게 해 주셨다. 그 친구를 위해 정말 잘하고 싶었는데, 할 때마다 나 자신의 부족함과 나 먼저 해결하지 못한 유학생 배우자로서의 이 곳 생활의 어려움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게으름으로 힘들었다. 일대일을 하면서 양의 인생이 말씀으로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 가늠하기도 힘들었다. 양은 자신의 생각과 삶을 바꾸어 보려다 넘어지는 일을 반복했고, 많은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는 나 자신의 무력함을 보며 좌절과 기도를 함께 했다.

그러던 중 뜻하지 않게 반가운 일이 생겼다. 2001년 코스타의 어느 저녁 집회 때 집회 장소에서 같은 동에 사는 한 부부를 만나 우리 이웃에 코스타 집회에 나오는 가정이 있었구나 하며 반가웠는데 며칠 후 그 아내되는 언니가 나를 만나서 아파트 내 기도모임을 함께 만들지 않겠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그 언니도 어떤 모임이든 모임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었는데 나를 코스타에서 만난 후 동역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음을 생각한 것이다. 나는 너무나 반가워 내 양과 시카고 오기 전부터 기도했던 자매에 관해 얘기했고, 그 두 사람에게 프로포즈했을 때 둘 다 모임에 나오기로 해서 고대했던 한 모임, 기도모임이 시작되었다.

모임은 무겁지 않게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우선 구도자(seeker)들인 자매들은 사람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의 생각이나 고민을 나눌 수도 있고 이것을 말씀에 조명하여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맛보게 된 것 같다. 자매들은 먼저 이야기의 주제를 교회에 두었다. 교회를 믿음의 출발이라 생각하는 일반적인 생각이 있었기에 교회에 가는 것, 남편을 교회에 데려가고 적응시키는 것 등에 관심을 가지고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였다.

대화를 나누는 것 외에 우리는 매주 3장씩 말씀을 읽어 와서 모임 때 토론을 하기로 하였다. 구도자들은 말씀 읽기를 거의 처음 해보거나 읽었어도 전혀 뜻을 생각하지 않아 왔던 터라, 말씀을 읽은 후 나오는 질문도 많았고, 차츰 이해해 가면서 말씀이 우리 삶과 결코 멀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면서 함께 감동 받는 시간들은 우리 모두를 하나님 앞에 겸손하여지며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만들어주었다. 또한 서로의 기도제목을 나누고, 서로에 대해 깊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게 되었다. 서로가 해 주는 기도 가운데 힘을 얻었고, 응답해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맛보며 함께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도모임을 마친 후 가진 식사교제는 우리 관계를 더 묶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섬김의 실천이었고 재미있는 시간들이었다. 겨울에는 우리를 위해 자원하여 영어를 가르쳐 주시고자 하신 어떤 한인 1.5세 자매분을 통해 영어 성경공부도 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의 결과로 나의 시카고 오기 전부터의 기도 대상은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그의 남편 또한 함께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또한 늦게 우리 모임에 참여한, 서울에선 남편은 다니지 않았지만 혼자서 시댁의 종교인 기독교를 따르고자 교회에 다녔던 한 자매님은 남편이 교회에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남편이 교회에 잘 적응하고 교회성경공부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되었다. 이외에, 말씀에 재미를 붙인 일과 말씀을 깊이 이해하려 한 노력은 말씀이 결코 경전이 아니라는 것과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연관이 있고 가까운 분이라는 것을 의식하게 해주었다.

예수님을 믿기 위해, 교회에 나가기 위해 한 발짝 씩 내딛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격려해주고 힘이 되어주는 모임이 있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었다. 모임을 가지고 싶어했고, 어떻게든 예수 믿는 삶의 기쁨을 나누고 싶었던, 하지만 너무나 부족했던 나에겐 정말 소중한 경험이다. 사람을 섬기기 위해선 아주 많이 겸손해져야하며 많은 나의 시간과 힘을 희생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짐하게 된 것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 것들로 어디든 내가 다른 곳으로 갔을 땐 더 성숙하게 이웃사역을 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긴다. 우리 모임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 당신의 사랑을 깨닫게 하셔서 우리를 위로하신 하나님, 한 명 한 명 관심 가지시고 보살피시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면서 당신의 손길을 따뜻이 보여주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한다.

강정현
단국대 작곡과 졸. University of Illinois at Chicago에서 화학(Chemistry)으로 박사과정 중인 남편과의 결혼으로 도미. 현재 McCormick Teological Seminary에서 MATS 과정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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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01 20:31 유학생 사역

유학생 사역 리포트

인디애나 블루밍턴 지역 인디애나 대학 한인 기독학생회
Indiana University Korean Christian Fellowship (IUKCF)

지난 3월 중서부 지역 리더 수련회에 이어, 다시 eKOSTA를 통해 인디애나 대학 한인 기독학생회(IUKCF)를 소개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 소개의 글을 통해서. 캠퍼스에서의 삶 가운데 함께 모여 예배하고 찬양하기를 원하는 많은 형제,자매들에게 작지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U한인 기독학생회는 1998년 3월, 5명의 음대 형제 자매들이 함께 예배하고, 찬양하기 원함으로 음대연습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1주일에 한번씩 모여 예배를 드렸고, 기도하는 가운데 더 많은 지체들이 모일 수 있기를 소망하였습니다. 마침내 그 해 9월부터 이 모임이 IU 음대 한인 기독학생회(Indiana University Korean Christian Musicians' Fellowship)로 공식화되어 International Center에서 첫 모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1999년 11월 guest speaker로 오셨던 이영길 교수님(이미영 사모님)을 12월에 모임의 초대 지도교수로 모시게 되었고, 인디애나 대학 Student Organization에 IUKCMF (IU 음대 한인 기독학생회)로 공식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음대생이 아닌 타단과대 학생들이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하게 되면서, 모임을 섬기는 지체들을 중심으로 음대생들 뿐만이 아닌, 캠퍼스 전체로 이 모임이 확장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2001년 4월 총회에서 IU음대 한인 기독학생회(IUKCMF)를 IU 한인 기독학생회(IUKCF)로 그 공식 명칭을 변경하고, 그 해 가을학기부터 캠퍼스 전체모임으로 오픈하였습니다.

IU 한인 기독학생회는 처음 시작부터 그랬듯이 예배를 드리는 모임입니다. 즉, 한 주간 캠퍼스에서 바삐 공부하다가 잠시 함께 모여 예배하고, 찬양하고, 영적으로 회복되어 서로를 세워주는 것이 이 모임의 목적입니다. 이 모임은 예배와 삶을 이원화 시켜 보지 아니하고, 공부, 쉼, 및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다 예배라고 간주하며, 목요일 저녁의 예배는 맥락만 바뀐 것이지, 예배의 연장으로써 삶 자체가 예배가 되어지도록 훈련합니다. 따라서 모임 이후에 우리는 다시 캠퍼스의 일터로 돌아감으로 그 예배가 계속 이어지도록 기도합니다. 우리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선 캠퍼스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블루밍턴으로 우리를 보내신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발견하도록 노력합니다. 따라서 단지 학위를 우리의 목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하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8시 30분이면, 20여명의 형제 자매들이 인디애나 대학 내의 International Center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함께 모여 먼저 찬양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 후에 이영길 교수님께서 매 학기 특별한 주제를 선정하여 말씀을 준비해 오십니다. 2001년 가을 학기의 경우 '하나님과 영원한 친구되자', 2002년 봄학기는 ' 은혜 안에 강건히 서 있는 자' 라는 주제로 말씀을 나누어 주셨고, 여름 학기 동안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실 계획입니다. 주로 교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지만 가끔씩은 Guest Speakers를 모임에 모시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지역 한인 교회 목사님들께서 오셔서 설교를 해주셨는데, 최근에는 평신도 사역자들께서 오셔서 그 분들의 삶과 그분들이 만났던 하나님을 간증하시고 도전을 주십니다. 지난 학기에는 필리핀 선교사로 계신 Michael Boado선교사님, 블루밍턴 Evangelical Community Church의 지휘자로 계신 David Bowden형제님, 10여년 동안 한국 선교사로 계셨던 Sam Toney 집사님, 그리고 인디애나 폴리스 한인 장로교회의 Elder Herbert Spann 교육 전도사님께서 Guest Speakers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예배 중 서너 사람씩 소그룹으로 나뉘어 기도제목을 나누고, 모두가 함께 각 한 사람씩을 놓고 중보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 밖에도 매주 IU캠퍼스와 지역교회, 그리고 이웃 학교인 UC(신시내티 대학) 경배와 찬양 모임을 위해 기도합니다. UC 경배와 찬양 모임은 IUKCF와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신시내티 대학에서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이 모임은 IUKCF의 초기 멤버였던 형제가 이곳에서 공부를 마치고 학교를 옮기면서 기도로 세운 모임입니다. 이렇게 예배와 기도가 모두 끝나면 함께 교제의 시간을 갖습니다.

모임 시간 이외에 임원들이 IU내에 있는 천 여명의 한인 유학생들에게 모임에 초청하는 이메일을 말씀과 함께 매주 보내고 있으며, 웹 페이지 (http://php.Indiana.edu/~iukcmf) 를 통해서 온라인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게시판에서는 주로 서로의 삶을 나누며, 그 가운데 자연스럽게 지체들의 기도 제목을 알아가게 됩니다. 또한 매주 한 주분의 큐티가 게시되는데, 큐티 말씀은 코스타 강사이기도 하신 이일형 권사님께서 섬기시는 KBS(Korean Bible Studies)에서 제공해 주시고 계십니다. 웹 페이지에 '겟세마네'라는 중보 기도 게시판에서는 매주 모임에서 나누었던 각자의 기도 제목들과 긴급 기도 제목들, 그리고 선교사님들의 기도 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2000년도부터 방학마다 수양회를 갖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임 안에 소망과 기도 제목들을 나눔으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먼저, 현재 20여명의 지체들이 매주 꾸준히 모이고 있지만, 이외에도1000여명의 한인 유학생들 중에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모임의 임원들이 밀알이 되어 하나의 마음으로 모임을 위해 중보하고, 온전히 섬길 수 있기를 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작은 모임을 통해, 먼저 개인의 삶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되고, 우리들의 우상들을 태우실 하나님의 왕 되심이 캠퍼스 가운데 영원토록 선포되길 소망합니다. 이 글을 읽어주신 형제, 자매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도 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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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탄 현장 이야기

늘 푸른 나무, 비탈에 서다.

용혜원 시인이 학교를 방문하여 <시와 음악이 흐르는 밤>이라는 문화행사를 치르게 되었다. 그 행사 준비를 하느라 아내와 더불어 내가 지도하는 <늘푸른 나무> 써클 아이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시 낭송을 처음 해보는 아이들인지라 아름다운 선율에 감정을 넣어 서정적인 시를 읊조리는 모습이 어설프다. 그러나 그 서투름 속에 이곳 아이들의 소박한 심성들이 묻어있다.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몇 년 전 기억을 떠올린다.

(1)

"선생님, 큰일 났어요......"
내가 지도하는 서클의 남녀학생 둘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다그쳐 물어도 그저 낙심한 표정으로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 그들 중 얼굴이 하얀 한 여학생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힘없이 내뱉는다.
"이제, 우리 서클은 끝장이야요."
평소에 서클 활동에 적극적이고 특별한 애착을 갖고 있던 그 여학생은 아예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글줄이나 좀 쓴다는 아이들을 모아서 문학 서클을 만들었다. 생각이 깊다고 자부하며 자존심과 개성들이 강한 아이들이었다. 그만큼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면들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의 순수함이 그 모든 것들을 감싸는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을 모아서 내면의 응어리진 것들을 글로 표현시키며 다듬어가려고 했다. 걸음마를 시작한 대학 문화를 정신적으로 이끌어 가겠다는 포부들도 있었다.

학교에 심어놓은 어린 소나무들을 바라보며 <늘 푸른 나무>라고 이름을 짓고 문집을 내기 시작했다. 푸르름을 잃지 않는 모임이 되기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처음에는 아주 소박하게 시작했다. 한 학기에 한번씩 겨우 겨우 자신들이 틈틈이 모아놓은 소품들을 발표하는 형편이었다. 첫 문집을 내었을 때에는 모두들 좋아했다. 두 번째에는 외부에서 작품 공모를 받아서 좀 더 세련되게 다듬었다. 편집하는 기술도 늘었고, 약간의 자신감도 얻게 되었다. 학교 내 다른 동아리들에 비해 유달리 단결도 잘 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의 동아리에 대한 사랑이 날이 갈수록 불붙는 것을 느꼈다.

대학 문화의 활성화를 위해 '문학의 밤'을 개최했다. 도무지 문학의 밤이라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취지와 형식을 대충 설명해 주고 맡겨두었더니 아이들끼리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문도 구하고 밤을 새워 끙끙거리며 작품을 만들어냈다. 뚜껑을 열어보니 대 성공이었다. 국제대학의 면모를 살려서 한국시, 중국시, 영시, 불란서 시들을 섞어 가며 시를 낭송하고 계절의 감각을 드러내는 수필을 빔 프로젝터를 동원하여 대형 스크린에 영상을 비추며 함께 낭독하기도 했다. 한국 대학생들도 미처 생각지 못한 장르들도 등장했다. 문학 작품 중 한 토막에서 발췌한 레마르크의 <개선문>을 멋진 해설과 함께 극화로 만들어 올리기도 하였다. 자신들의 캠퍼스 라이프를 코믹하게 엮어서 스크린 상에서 영상 드라마로 연출하기도 했다. 열렬한 박수 갈채를 받으며 문학의 밤이 막을 내렸다.

그런데 그 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늘푸른 나무> 동아리를 주도하던 두 학생이 있었다. 둘 다 문재(文才)가 있고 개성이 강한 아이들이었다. 그 중 U라는 학생은 사색적이면서도 언변이 뛰어나고, 행동이 약간 괴팍하며 야심이 있는 아이였다. M이란 학생은 이미 연변 일보의 신춘문예에도 당선될 정도로 시적 감수성이 탁월하며 미술에도 조예가 깊은 예술적 끼를 지닌 아이였다. 미남형의 U에 비해 M은 체격도 왜소하며 말주변도 없었다. 반면에, 학업 성적이 뛰어난 M에 비해 성적이 밑바닥을 돌고 있던 U는 평소에 자신감을 갖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문학의 밤을 통하여 언변이 뛰어난 U가 사회를 맡으며 대중 앞에서 멋진 연기를 보이자, 마침내 전교적인 히로로 등장하였다. 어쩌면 뒤에서 실질적인 총 연출을 하며 더 많은 수고를 한 것은 M이었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인기가 오른 U가 자신감을 얻으며 총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평소에 U를 얕보던 M은 크게 반발하며 반대편 후보의 참모로 뛰어들었다. M의 주장인즉, U는 결코 학생회를 이끌만한 지도력을 갖춘 인물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서클 내부도 곧 두 패로 나뉘었다. 그렇게 친하던 아이들이 서로에게 상처를 안겨주기 시작했다. 선거전을 치르면서 양 진영의 마음은 갈갈이 찢어졌다. 상대방에 대한 심한 인신 공격이 오가는 속에서 자신들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내면의 치부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선거는 결국 U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누구도 진정한 승자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씻을 수 없는 오욕과 수치의 상처들이 깊이 남았다. 두 학생 모두 비로소 자신들의 추한 내면을 들여다보고 아연할 만큼 충격들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며칠 후 학교 기숙사에서 살인 사건이 날 뻔한 큰 소동이 벌어진 것이었다. 선거전에서 분노를 품은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머리를 칼로 세 번 찌른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선거를 치르면서, 선거전을 민주주의의 훈련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아직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완전히 맡겨 두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자유 경선에 의한 직접 투표를 진행하는 동안에 상대와 공대의 대표로 나온 두 후보자를 서로 지지하던 측근에서 심한 경쟁을 벌이게 되었고, 투표일을 앞두고 선거전이 더욱 혼미해지기 시작하자 양 진영에서 심한 감정적인 대립까지 이루게 되었다. 그러다가 근소한 차이로 한쪽이 패하게 되자 평소 술만 마시면 거친 성격이 튀어나오던 한 학생이 분을 이기지 못하고 상대방 진영의 한 학생에게 테러를 가한 것이었다. 다행히 칼날이 빗겨 나가는 바람에 표피만이 크게 찢어지고 목숨에는 지장이 없었다. 사랑의 집이라 일컬어지는 기숙사에서 생겨난 이 사건을 앞에 두고 우리 교직원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을 바로 가르치고 다스리지 못한 자신들을 회개하며 크게 반성하는 계기를 삼게 되었다.

연변에 있는 조선족이나 한족들은 무서운 문화 혁명의 회오리바람을 통과하면서 심성이 거칠어진 탓인지 한번 싸움이 일어나면 으레 폭력을 행사하며, 일단 증오심을 품게 되면 끔찍한 연쇄 복수극을 벌이는 것을 예사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길에서도 칼을 휘두르는 장면들을 더러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강력 사건들이 빈번히 일어나는 연길시의 다른 곳에 비하여 연변 과학 기술 대학만은 그 동안 한 번도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한 예가 없었기 때문에 연길시 공안국에서 조차 신기하게 생각하며 매년 감사를 표시하는 특별 구역이었던 것이다. 진리, 평화, 사랑의 교훈 아래 선생과 제자 사이가 다정한 부모 자식과도 같고 학우들 사이에 사랑과 우정이 깊기로 자부하던 우리 학교에서 발생한 일종의 살인 미수 사건이었기에 더욱 그 충격이 컸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사건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그들의 대립 양상이 단순한 단과 대학의 대결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연히도 두 대표 중 한 학생은 믿는 학생이었고 또 다른 학생은 믿지 않는 학생이 출마를 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그 학생들을 지지하는 학생들조차도 은연중 믿는 학생들과 믿지 않는 학생들로 갈라지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믿는 학생의 승리로 끝나고 말자, 평소에도 믿는 학생들에 대한 편견을 지니고 있던 상대편 학생들이 결과를 승복하지 못하고 분노를 터뜨렸던 것이다.

우리 교직원들은 이 사건을 돌이켜 보면서 믿지 않는 학생들에 대하여 소홀했던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기 시작했으며 사태의 심각성을 비로소 깨닫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동안 우리 나름대로 학생들에 대하여 예수의 사랑을 베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지만 더러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소외된 학생들이 있어 왔으며 비록 고의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편애로 인한 아픔과 상처를 안겨준 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물론 우리는 카인의 잘못을 두둔할 수는 없다. 동생 아벨을 돌로 쳐죽여 최초의 살인자로 성경에 기록된 불행한 사람 카인의 경우는, 흔히 오해되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편애에 의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 절대 아니다. 카인은 하나님의 온전하신 사랑을 받았으나 그 마음속에서 불순종의 영이 역사하여 스스로 하나님께 반발하고 동생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불같이 일어나 살인에까지 이르고 만 것이다. 그러나, 타락한 성품을 지닌 우리 인간이 편애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가 아무리 공평한 사랑을 베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사랑을 주는 자나 그것을 받는 자가 모두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편애로 인한 불씨를 일으킬 소지가 언제든지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비책은 한가지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그 방법대로 우리가 사랑하기 힘든 자부터 먼저 사랑하고 우리를 욕하고 핍박하는 자에게 선대하며 우리를 죽이려 하는 그들을 향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고 기도하는 길일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학생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살인 미수 사건이기에 마땅히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과, 비록 그 행위는 용서할 수 없지만 한번 우리 학교에서 받은 학생은 끝까지 우리가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그에게 기회를 주자는 의견이 대립되었다. 결국은 일단 학교에서는 제적시키되 계속 돌보아서 그가 참으로 회개하고 새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자는 것으로 일단락이 되었다.

고난 주간에 일어났던 사건이었기에 우리 교직원들은 십자가 앞에 모두 모여 참회의 기도를 드렸다.


(2)

그 사건에 깊이 관여했던 <늘 푸른 나무> 써클의 후유증은 심각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도 선거라는 일종의 정치바람(?)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시 한번 실감했다. 정치권에 몸담았던 경력이 있으신 어떤 교수님은 정치 마당에서 편이 한번 갈라지면 다시는 합치기 힘든 우리 민족의 근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평하면서 그들 사이의 우정은 이제 끝났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은 <늘 푸른 나무>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어떻게 할까? 이들을 그냥 해체시켜야만 하나? 심히 고민이 되었다.

마침 그 날은 예수가 돌아가신 성금요일이었다. 그 날 저녁,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서로가 서로의 얼굴조차 바라보기 힘들만큼 어려운 자리였다. 한참 만에 말문이 열리면서 다시금 분노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학생 몇몇은 과거에 멋모르고 상대방을 잘못 판단하여 좋아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에 대해 치를 떨며 분개하기도 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고개들을 내저었다.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차가운 무덤 속에 함께 모여 있는 것만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기도하다가 갑자기 용기를 얻어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느냐?"고 말문을 열었다. 예수 십자가에 대하여 설명을 해 주었다. 그 이전에는 의식적으로 써클 아이들을 앞에서 한 번도 기독교에 대해 설명해 본 일이 없었다. 써클의 순수성을 지켜나가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공개적으로 기독교에 관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중국 법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의 가로막힌 담장을 허물 다른 어떤 방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들에게 십자가의 화해와 용서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던 그 사람들과 그 여인을 용서한 예수의 이야기도 해 주었다. 그 가운데에는 기독교에 대하여 심히 반발하는 학생들도 섞여 있었지만, 그 시간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심을 느꼈다. 모두들 숙연히 듣고 있었다. 여학생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면서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대방을 용서해야만 하는 그 아픔에서 오는 설움의 눈물이었다. 한참 후에 아이들의 얼굴에서 평온함이 깃들기 시작했다.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자신들끼리 그 다음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그날은 헤어졌다.

그 다음날 늘 푸른 나무의 어린 가지들이 다시 만나서 자신의 잘못들을 인정하고 서로를 용서하는 아픈 절차들을 밟았다. U와 M이 다시 악수를 하였다. 그리고 부활의 주일 아침, <늘 푸른 나무>가 밝은 햇살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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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좁고 미국은 두렵다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니 말라"(수 23:5-6).

들어가는 말

"한국은 좁고 미국은 두렵다"는 칼럼을 본회로 끝맺고자 한다. 특별히 미국이나 타국에 이민을 고려하며 고민하고 있는 유학생들을 주 대상으로 썼던 칼럼이었기에, 고국에 돌아가서 직장을 얻길 원하거나 그래야만 되는 유학생들에게는 다소 공격적이요 이해하기 힘든 글이 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유학생들은 고국을 떠나 타국의 문화속에 살면서, 타국에서 자신과 고국과 세계를 바라볼수 있는 눈이 열린 사람들이다. 자신의 밖에서 자신을 보길 원하며 또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더불어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볼수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유학생이 보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을 향한 시각과 사고의 폭은 필연적으로 넓고 깊어야 할 것이다. 미국에 이민을 고려하는 유학생들이 크리스천으로서, 미국 땅에서 어떻게 삶과 예배의 균형을 유지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 것인가에 관해 썼던 수많은 논제들은, 고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들에게 더 절실히 필요한 논제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크리스천으로서 어떤 환경과 처지에서도 정직하고, 성결하게,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Integrity를 갖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기로 결단하라"는 촉구는 이민을 고려하는 유학생보다는, 도리어 고국에 돌아가는 유학생들에게 더욱 간절히 부탁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하나님의 강력으로 무너뜨려야할 여리고성들은 미국보다는 우리의 고국땅에 더 많은 것같이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태평양을 건너서 고국에 돌아가는 것이 더 단단한 각오를 가지고 건너야 될 요단강 건너기가 될 수도 있겠다.

다시 여호수아서의 말씀으로 되돌아가자. 이민자의 땅이 저들과 저들의 자손이 진정으로 차지하는 땅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나누어 보자.

아이성은 정복되었다. 거의 모든 가나안 지방을 결국 정복되게 된다. 정복이 완료된 후에, 요단의 서편과 동편에 걸쳐서 가나안 지경을 12지파에게 분배하며 그들의 기업이 되도록한다 (수13-19장).

저들이 기업으로 분배된 땅을 차지하며, 실제로 저들의 땅이 되게하기까지는 감내해야 될 책임과 지켜야될 약속의 말씀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이제 미국에서 새로운 직장을 잡고 생업의 터전을 마련한 유학생 크리스천들은, 이제 막 12지파에게 분배되었던 것과 같은 기업을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약속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 그 기업의 약속이 진정으로 유학생 이민자의 것이 되어서, 그 땅을 차지하고 그 자손들이 번성하기까지는 꼭 지키고 따라야 할 약속의 말씀이 있다. 즉 "나와 내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수24:15)는 가나안 땅의 이민자였던 여호수아의 마지막 고백이 유학생 이민자들의 고백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브온 거민에게 속지말라

기브온 거민이 속임수를 써서 이스라엘 백성과 화친의 언약을 맺은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거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여호와께 묻지 않고, 그들과 화친의 언약을 맺는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그것으로 인하여, 가나안 족속의 완전정복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흠집을 내게된다. 뿐만아니라, 이 실수에 기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먼 훗날에 큰화를 입게된다. 다윗왕 시대에 까닭없이 삼년간의 기근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고통을 당하게 되는데, 이는 사울이 기브온과의 언약을 어기고 기브온 사람을 죽인 것을 인함이라고 성경을 기록하고 있다(삼하 21:1-14).

새로운 직장을 미국에서 얻게되고, 열심히 일하여 직장에서 인정을 받고, 이민생활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이민생활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이민생활을 시작한지 몇 년이 지나서, 이민 생활에 적응할 때쯤이면, 자칫 자만심에 빠지기 쉽다. 여호수아가 기브온 거민에게 속은 것같은 실수를 저지르기가 쉽다. 항상 화친하자고 유혹하는 물질, 명예, 학문과 교만이라는 기브온 거민의 속임수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이 속임수를 바로 분별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분별하고, 항상 하나님께 묻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여호와께 묻고 새로운 진로를 결정하며 나아가게 되면, 때론 더딘 것 같으나 가장 믿을만한 이민길이 된다. 쉬지말고 기도하며, 항상 하나님께 묻고 나아가는 길이 가장 쉽고 탄탄한 이민길이다.

영주권 취득 - 첫 번째 기업(Inheritance)

아직도 정복하지 못한 지역이 남아있긴하지만, 정복한 땅들을 이스라엘 지파에게 나누어주어 이제 저들의 기업이 되게하라고 한다 (수13-19장). 유학생 이민자들이 하나님께 받아야할 첫 번째 기업은 취업에 이어서 미국의 영주권 취득이 될 것이다.

대학이나 연구소, 또는 기업에서 tenure position을 얻었든지 또 임시직을 얻었든지간에, 유학생 이민자가 가장 먼저 신경을 써야 할 일은 미국내에서 자신의 거주신분을 확정시키는 일이다. 결국 미국 영주권은 이민자로 살기 위해서 얻어야 할 첫 번째 기업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미국이민을 고려하며, 몇 년간의 임시직이나 방문고용직에 취업하고 있는 사람들은 미국의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을 가장 우선적으로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유학생 출신의 박사후 연구생이나 임시직 취업자들은 취업이 시작되면 본인의 거주신분 조정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연구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연구 못지않게 자신들의 영주권 취득에 즉각 골몰하는 중국 및 인도계 유학생들의 지혜를 한국 유학생 이민자는 꼭 배워야 될 것이다. 자의이든 타의이든 간에, 중국 및 인도계 유학생의 이민 개척정신이 대학생 수준이라면, 한국유학생은 이제 초등학생 수준이라고 말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대체로 영주권 신청이나, 시민권 신청은 이민전문 변호사를 통하여 하는 것이 통례인데(자신이 직접 할 수도 있음), 능력있고 신뢰성있는 이민변호사의 선택은 무척 중요하다. 제한된 시간과 싸우며, 거주 신분조정을 확정하고자 할 때, 책임감있고 신뢰성있는 이민변호사의 조언과 도움과 서류작성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학생활중에 전공한 전공분야의 취업을 통하여 영주권을 신청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하긴 하지만, 다른 수많은 합법적인 방법이 있음을 숙지하고, 이민 변호사와 상담하면 좋을 것이다. 만일 학위취득 후에 미국 이민과 해외취업에 뜻이 있다면, 유학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좀더 적극적으로 영주권 취득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다.

새로운 직업관

우리의 고국에서는 아직도 전통적인 유교사상에 뿌리를 둔 관념적인 선비주의와 권위적인 관료주의가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본다. 미국에 수년간 공부하고 학위를 취득한 한국유학생들도 예외는 아니다. 전공분야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한국유학생들은 고국이나 미국에서 대학교수의 직업을 얻기를 원하는 듯싶다. 물론 가르치고, 연구하고, 창의적으로 학생을 지도하길 좋아하는 사람에게 대학교수는 어디서건 권장할 만한 직업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히, 미국에서는 대학교수라는 직업이 모든 전문직 종사자에게 인기있는 직업이거나 선망이 되는 수입 좋은 직업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대학교수직을 얻기가 쉽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대학교수나 전문연구직은 도리어 개인의 적성과 개성에 따라 선택되어야 할 직업이라 생각된다.

미국에 이민하여 살기 원하는 한국유학생들의 직업관에 관한 새로운 의식구조와 인식의 변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대학교수직이나 전문연구직보다 더 좋은 직업과 기회가 즐비한 미국에서, 수입도 낮고, 일도 힘든 대학교수가 선망이 될 이유는 별로 없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능한 직업의 다양성을 적극 고려해야 될 것이다. 교수나 연구직 말고도, 수입도 좋고, 평생 자기계발도 할 수 있는 전문직이 얼마든지 있음을 이해하기 바란다.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면, 고국에서 굳어진 전통적인 직업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다. 물론 고국에서 직업을 찾는 사람도, 관념적인 선비정신과 권위적인 관료주의적 직업관으로는 이제 세계속에서 경쟁하는 한국인으로 살기가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미국에서는 평생에 보장된 안정된 직장이라는 개념이 없어진지 이미 오래이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서라면, 한달에도 몇번이고 기업을 통합하고 쪼개는 것이 다국적 미국기업들의 실상이다. 기업을 위한 고용인의 기여도와 분야에 관계없이, 미국의 전문직 종사자의 60%가 기업의 통폐합 때문에 해고를 당하거나 타의적인 이직을 경험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아마도 미국에서 전문직에 종사하고자하는 거의 대부분의 유학생 이민자들도 몇번의 해고나 타의적 이직을 꼭 경험하게 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새로운 직업윤리가 이민자들을 압박해 온다면, 이를 대처하며, 뛰어넘고, 새롭게 적응하고자하는 정신력을 갖는 자만이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해고사태도 많고, 상응하는 재취업의 기회도 많다. 따라서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별로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미국에서 박사보다 더 좋은 석사학위

내가 이미 박사학위 소지자요 또 대학의 현직교수인 까닭에, 논란의 여지가 있긴하지만, 미국에 유학하는 거의 모든 한국유학생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특별히 미국에 취업이나 이민을 하고자하는 유학생들은 석사학위 취득 후에, 미국에서의 더 많은 취업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해 볼일이다. 박사학위 수학능력과 자질은 논외로 하더라도, 박사학위를 취득하려면 시간도 오래걸릴 뿐더러, 이에 상응하여 학위취득 후에 기득권자가 되던 시대는 한국이나 미국에서 더 이상 존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이든, 학문이든, 예술이든간에 공급과 수요의 균형적인 원리를 깨뜨리기는 쉽지 않다. 가정과 사회에 책임있는 크리스천 전문인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얻게될 전문직업의 안정적인 수요와 공급의 균형은 너무 중요한 것이다. 수년간 부모와 고국에서 학비와 생활비 지원을 받고, 힘든 유학생활을 감내하며 박사학위를 취득한 많은 유학생들이 고국에 돌아가서 전문성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은 가슴 아픈 일이다. 최근 보고된 바에 의하면, 많은 해외 학위취득자들이 고국에서 전문직업을 얻지 못하고 택시운전자들의 직업을 빼앗고 있다고 하니, 이는 결코 생산적인 해외유학 투자라고 볼 수 없다.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곧 미국직장에 취업을 하는 것은 전공분야따라 차이는 있겠으나 여러면에서 장점이 있다. 특별히, 수년이 더 걸리기는 박사학위 과정을 고려한다면, 석사학위 취득후 취업은 궁극적으로 박사학위 취득자와 동등하거나 아니면 더 나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미국에 이민하여 살고자 한다면, 박사학위보다 석사학위로 더 취업하기 좋은 분야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직장을 얻고자하는 경우, 석사학위 취득 후의 취업은 다음과 같은 여러장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권장할 만한 것이다.

첫째, 미국에서는 석사학위 취득자가 박사학위 취득자보다 취업이 쉽고 기회가 많다는 점이다. 박사학위 취득자는 대학교수나 회사나 연방정부의 제한된 연구직에만 고용이 필요하지만, 석사학위 취득자는 비전문적이든 연구직이든 더 많은 고용의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2년이라는 짧은 수학기간 때문에 부모님의 경제부담도 줄이고, 경제자립을 속히 이룰 수 있다. 취업후 몇 년간 일하며 경제자립과 실제적인 경험을 한후에, 본인이 원하면 부모의 도움없이 박사학위 수학을 계속 할 수도 있다.

셋째, 기업의 창업(start-up company)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가질수 있다. 몇 년의 미국 직장생활 후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곧 창업을 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마도 박사학위를 취득할 만큼의 시간을 투자한다면, 창업한 회사의 사장이나 회장이될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특별히 미국에 정착한 한국유학생 출신 이민자는 자신이 창업하고, 기업가로 성공한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중국계 및 인도계 유학생 출신 이민자와 비교해 볼 때, 한국 유학생 출신 이민자의 창업은 너무도 미미한 편이다. 미국에 정착하고자하는 수많은 한국계 유학생 출신 이민자들이 이제 눈을 돌려, 창업에 새롭게 도전하였으면 한다. 좋은 아이디어와 열정만 있으면, 수많은 정부지원 무료 창업자금이 널려 있다는 것에 눈을 뜨기 바란다. 유학생 이민자들이 이제 창업을 좀더 적극적으로 고려해 보라고 권면하고 싶다. 어느 이민 사회이든 경제를 장악함이 없이는 결코 바른 주인행세를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계 미국이민자 협회(ACO)에서 주최하는 Chinese American 젊은이들을 지원하는 수많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젊은 세대에게 새로운 Korean American의 꿈을 심어 줄 수 있는 더 많은 프로그램들을 지원하는 길은 없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부터는 많은 유학생 출신 이민자와 기업가들이 한국유학생과 Korean American 젊은 세대에 적극 투자하여, 하나님 나라와 이민세대를 위한 큰 꿈을 키워주는 많은 지원 프로그램들을 개발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네가 개척하라

각 지파에 분배한 땅을 소유하는 것은, 그저 가나안 지방의 지도에 선을 그어서 지파의 기업이 되게하는 것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던 듯싶다. 이스라엘 지파들은 계속적으로 그 곳 땅에 사는 거민들을 쫒아내며, 자기분파의 땅이 되도록 개척하고 일구어야 했던 것이다. 예를들면, 에브라임 산지를 기업으로 받은 요셉의 족속은 자신들이 큰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좁은 땅을 분배받았다고 여호수아에게 항의를 한 듯하다. 이에 여호수아는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 스스로 개척하라"(수17:15)고 책망하면서, "그 산지가 네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한자라도 네가 능히 그를 좇아내리라"(수17:18)고 권면하고 있다. 그저 기업으로 받았다고 저들의 땅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싸우고, 지키고, 개척하여 그 지경을 넓혀야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약속 가운데에, 미국 이민자로서 생업의 터전을 얻은 유학생 이민자들은 이제 막 미국 땅에서 기업을 얻은 셈이다. 기업의 약속이 저절로 요셉지파의 분깃이 될 수 없었던 것처럼, 유학생 이민자는 삼림이라도 올라가 스스로 개척하여, 하나님께 받은 기업이 자신과 후손들을 위한 분깃이 되도록 힘써 개척해야 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가나안 땅의 대적을 다 멸하시고 안식을 이스라엘에 주신지 오랜 후에, 이제 여호수아는 나이 많아 늙은지라, 온 이스라엘 장로들과 두령들과 재판장과 유사들을 불러놓고 그들에게 마지막 부탁의 유언을 남기게 된다.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한 그 땅들을 차지하게 될 것이니, 꼭 힘써서 말씀을 지키며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니 말라고 부탁한다 (수23:1-6). 오직 스스로 조심하여 여호와 하나님만 사랑하라고 권면하며, 여호수아는 자신과 자신의 집은 오직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다짐하고 있다(수24:15). 여호수아는 자신이 죽은 후에 미래의 세대를 생각하며 유언과 같은 다짐과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막 가나안 땅에 이민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어느곳이든 이민 1세는 고난의 세대이다. 이민 1세는 수많은 고난을 감내하고서도, 새땅에 태어나는 새로운 세대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하는 세대이다. 소수점이하로 나누어진다는 이민 1세, 1.5세 및 2세간의 세대차이와 의사소통의 간격은 여느 동질문화 속에 늘상 존재하는 그런 세대차이와는 다르다. 나이와 문화와 언어의 3중적인 격변을 단번에 격게되는 이민 세대간의 갈등을, 나는 격변적인 갈등이라고 분류하고 싶다. 이런 격변적인 갈등을 넘어서,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자손들에게 여호수아처럼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고 보여주고 또 가르칠 것인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염려하였던 것처럼, 미국에서 어떻게 우리의 자손들이 믿음을 지켜서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되게 할 것인가? 이는 한인 이민자들의 가장 중요한 기도의 제목이다. 모이면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며 여호와 중심으로 살고자 했던 한인이민 1세들의 굳건한 믿음의 유산을 미래의 세대에 걸쳐 어떻게 전수해 줄 것인가? 지금 우리는 고민하고 기도해야 할 때이다. 한인 이민교회와 크리스천들은 당면하는 수많은 이민자로서의 힘든 삶과 싸우면서도, 어떻게 하면 다가오는 세대의 Korean American 크리스천들이 "오직 여호와만 섬기게" 할 것인지 여호수아만큼이나 심각하게 생각해야 될 것이다.

결론

마지막으로 여호수아의 유언과 같은 권면과 부탁을 들은 온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에게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우리가 섬기고, 그 목소리를 우리가 청종하리이다"(수24:24)라고 다짐한다. 이에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고, 큰돌을 취하여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세워서 "증거의 돌"로 삼는다. 즉 우리 자손들은 만대에 걸쳐 "오직 여호와만 섬기자"는 언약을 하고 이의 증거하기 위해 세운 돌이다.

나는 최근에 청교도들이 미국 이민의 첫발을 내디뎠던 Massachusettes주의 Plymouth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Plymouth에는 미국 이민의 첫발을 기념하는 역사적인 기념물이 많이 있지만, 특히 "Plymouth Rock"이라는 돌은 대서양을 건넌 첫 이민선인 Mayflower에서 내린 청교도들이 미국대륙에 첫발을 디딘 돌이라고 하여, "1620"년이라고 새겨놓고 저들 선조의 이민사를 기억하고 있다. 별로 크지 않은 돌이지만, 미국 첫 이민을 기념하며, 미국 이민정신의 원류를 기억토록 하는 "증거의 돌"인 셈이다. 물론, 이 Plymouth Rock 자체보다는, 그 돌을 볼 때마다 그 돌에 담겨진 청교도들의 이민 개척정신을 기억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미 미국에 이민하여 살고있는 Korean American은 거의 3백만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다. 이제 미국의 도시이든 시골이든, 어느곳에서나 Korean American을 쉽게 만나게 된다. 몇 사람만 모이면, 교회를 개척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유일한 민족, 위기 앞에서 쉽게 단결하는 민족, 그러면서도 열심히 서로 싸우는 민족- Korean American!. 짧은 미국 이민사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을 능가하는 억척스러움으로 미국에서 번영하는 자랑스런 민족이요, 또 후세대의 교육에 모든 것을 투자하는 지혜로운 민족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축복받은 민족이다. 그러나, Korean American의 이민사는 그러한 현세적인 성공과 억척스러움만 가지고는 올바르게 쓰여질 수도, 결코 세대를 넘어 지속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Korean American은 다가올 세대와 무엇으로 언약을 삼고, "증거의 돌"을 세울 것이며, 미국이라는 약속의 땅을 진정으로 차지하는 이민사를 쓸것인가? 가나안 땅에 이민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이 쓴 이민사는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할 때"에만 바르게 쓰여졌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여호수아서를 통하여 배웠다. 이제 우리는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따라 아주 멀리 수백년 후를 바라보며 온세계를 품에 안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Korean American의 다가올 세대와 하나님 말씀으로 언약을 세우되, "Korean American과 그집들은 여호와만 충심으로 섬기자"라고 증거의 돌 위에 써야 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한민족을 세계 각곳에 복음을 들고가는 이민자로 흩으셨다면, 주님께서는 분명히 흩어진 한국 이민자를 통하여 아름다운 복음의 열매를 풍성히 거두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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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사역 Q&A

어떻게 하면 세상속에서 참된 제자의 삶을 살수 있습니까

참된 제자란 아주 쉬운 개념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는 것은 그분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산상수훈의 8복에서 잘 묘사되어 있는 것 같이 복을 받기 위한 조건이 형성됩니다. 복의 개념은 "하나님을 추구하는 삶을 살수 있도록 여건이 주어지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 여건들이 주어질때 다음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고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나열하고 계십니다.

"... the poor in spirit, ...those who mourn, ...the meek, ...those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the merciful, ...the pure in heart, ...the peacemakers, ...those who are persecuted because of righteousness" (NIV)

위에서 언급하고 있는 상태는 일시적으로 선한 일을 하는 것이나, 어떤 어려운 일을 당해 잠시 마음이 겸손해지는 상태를 묘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과 연결이 될 때, 진리에 깊이 뿌리를 내려 연결될 때, 즉 원래의 인간 모습이 회복될 때에만 체험되어질 수 있는 상태입니다. 가난할 수 밖에 없고, 또 애통할 수밖에 없는 것은 현재의 참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고 비뚤어진 마음과 왜곡된 세상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때입니다. 또 무서운 욕심과 야심 속에서 살고있는 잘못된 사람들의 핍박과 탈취에 선과 정의로 대항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현실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천국의 소유자들이고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들이고 바로 복 받은 자들 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와같이 제자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쉬우나 진정한 제자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원인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이 처해 있는 현 시점에서 제자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회피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지는 알지만 실천하지를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생각을 회피하여 첫 번째 문제로 다시 되돌아가 버립니다. "이해하지 못했다"라는 생각 뒤에 숨어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실천의 단계"에 까지 갈 때에만 비로소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 형성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즉 실천 없이는 위에서 언급한 8복의 마음상태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서 생명으로 변화하려면 말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하고, 그다음 순종이 이루어 져야 하는데 순종은 곧 실천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쉬운 방법을 택합니다. 즉 제자의 삶을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것으로 해석해 버립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간혹 눈에 띄어도 참된 제자로서 세상에서 굳건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만나 볼 수가 없습니다.

실천하는 삶은 각 개인이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삶 입니다. 구체적 실천은 여러 가지로 표현될수 있으나 다음과 같은 2가지 공통점을 항상 내포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즉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일제자 삼는 일 입니다.

1.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서 예수님을 닮은 자신의 모습을 세상에 능동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마5:13-16). 수동적으로 겁에 질려 악에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사랑과 정의로 악을 맞서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혹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했다 하더라도 이를 능동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데는, 즉 소금과 빛의 역할을 못하는 데는 3가지의 이유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ㄱ. 세상의 핍박에 대한 두려움 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정의와 정직, 순결과 자비를 따라 생활할 때 세상에서 손해를 보고, 혹시 이런 우리들의 행위가 다른 사람들의 이권에 부딪치게 될 때는 가책 없는 핍박이 가해져 옵니다. 사도 바울의 복음증거가 저항을 받은 것도 바로 종교적 문제보다는 이런 세상적 이권의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ㄴ.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염려입니다. 마6:25 에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고 하시지만 결국 우리들을 제자의 삶에서 멀게 하는 중요한 요인은 바로 세상에서의 "상대적" 생존 문제입니다.

ㄷ. 세상에 대한 욕심입니다.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고 하셨지만 (마6:19-24)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올라가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열심히 제자의 길을 가다가도 친구중 누구 하나가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뒷걸음질하는 자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므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제자의 삶을 살려면 위의 세가지를 극복해야 합니다. 곧 두려움, 염려, 그리고 욕심 입니다.

2. 제자 삼는 일은 한 사람을 이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고 또 제자를 양육하도록 돕는 일 입니다. 단순히 교회에 나오게 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듯이 우리는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제자 삼는 일 보다는 종교적 행위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의 임무/의무를 회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을 다음과 같이 경고하십니다.

ㄱ. 참된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고 순종하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적 복을 받기 위하여 계명은 지키려고 노력하나 참된 순종은 하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5:20)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 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계십니다. 말씀의 순종은 자신이 종교행위로 말미암아 은혜를 받는 행위가 아니고 자기가 예수님처럼 되고 다른 사람도 예수님처럼 되도록 도와주는 삶, 즉 제자 삼는 일 입니다.

ㄴ. 인간 앞에서 인정받기 위하여 종교적 행위를 합니다. (마6:1-7)에서 언급하고 계신 것처럼 구제, 기도, 금식까지도 사람들을 의식하고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기 위하여 행합니다.

ㄷ.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을 무시하고 (마5:22) 이웃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생각합니다. 즉 사람을 "정욕"의 대상으로 봅니다. 악한 자까지도 대적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시지만 (마5:44) 실질적으로 자신의 이권이 개입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열심히 봉사하며 안주하려 합니다.

그러므로 제자양육의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참된 말씀의 의미를 이해해야 하고, 종교생활로부터 자유해야 하고, 사람의 평가에서 자유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웃에 대한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제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로 합니다. 제자의 삶은 쉽지 않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마7:14) 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부르시기 때문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참된 제자, 즉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면서 생기게 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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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탄 현장 이야기

산 위에 있는 동네 - 선구자의 땅

(1)

연변과학기술대학은 연길시 가장 북쪽의 북산가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다. 앞에는 시가지가 한눈에 나지막이 내려다보이고 뒤에는 시원한 들판이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져 있어서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 학교 부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연길 시에서는 시내 중심의 좋은 땅을 주려고 하였으나 김진경 총장이 당시 공동 묘지였던 이 언덕바지 땅을 극구 고집하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모두 피하는 묘지 터를 요구하는 김 총장의 생각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여 고개를 내 저었지만, 이제 학교가 완성되고 나서 이 학교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과연 이곳이 명당(?) 중의 명당이라며 김총장의 앞을 내다보는 식견에 감탄을 하곤 한다. 더구나 오목한 분지를 형성하고 있는 연길 시는 여름에는 먼지와 바람이 거리를 휩쓸고 겨울에는 굴뚝에서 내뿜는 매캐한 석탄 연기 때문에 온 도시가 안개 속에 잠겨버리기 때문에 학교에 올라와야만 비로소 숨통이 열리는 듯한 기분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학교를 단장하는 분들이 학교 안팎에 온통 꽃길을 만들어 놓아서 계절마다 화사한 새 옷을 갈아입고 나온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정서를 한껏 느낄 수 있는 소나무로 일체 조경을 이루어 학교를 처음 찾는 분들도 교문을 들어서는 순간, 한눈에 이곳은 중국 속의 섬처럼 다른 세계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교정 바로 앞에는 푸른 잔디로 카페트를 깔아 놓았고 그 위에 멀리 두만강에서 옮겨다 놓은 큰 바위가 카메라를 의식하며 점잖게 놓여 있다. 연길시 어디에서도 아직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아름다운 녹색 공간이기에 휴일에는 산책을 위해 학교를 일부러 찾는 사람들도 자주 눈에 띈다.

이 학교를 이렇듯 모든 사람들이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언덕에 자리잡게 한 의미를 생각해 본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사회주의 나라 중국에 기적과 같이 세워진 학교---,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의 물결을 타고 최초의 중외 합작 대학으로서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세운 이 학교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는지, 이 곳을 통해 배출된 인재들이 앞으로 중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낼는지 중국 사람들은 예의 주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학교에 봉사하러 온 외국인들이 모두 크리스천이라는 사실 때문에 한편으로는 경계를 하고 있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며 나름대로의 판단들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이 학교를 중국 사람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학교로 키워나가야만 한다. 이곳에서 진정한 의미의 진리, 평화, 사랑의 교육이 실천되고 그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중국 다른 어떤 대학의 졸업생들과는 다르다는 좋은 평가를 받는 길만이 이 학교가 세워진 참 목적을 달성하는 길이 될 것이다.

만주 벌판의 강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학교 내의 모든 건물을 연결통로로 길게 이어놓았다. 이름하여 연변과기대의 만리장성이다. 그 복도마다 온통 조선의 정취와 풍습을 느끼게 하는 골동품과 장식류가 진열되어 있다. 장소도 절약할 겸 방문자 누구나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열린 박물관인 셈이다. 미술을 전공하신 총장 사모님의 정성이 담긴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분의 본업(?)은 식당 앞 슈퍼마켓 점원 아줌마이다. 총장 사모가 슈퍼에서 일하는 것을 미처 몰랐던 방문자들이 종종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일손이 부족한 대학의 구석구석마다 자원봉사자로 돕는 사모님들의 손길들이 이 대학을 만지고 있다.

아직은 도서관다운 시설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여서 임시 도서관의 열람실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로 밤에는 식당을 자습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저녁 식사만 끝나면 학생들이 식당의 빈 테이블을 가득 메우고 밤 열두 시까지 조용히 공부하는 모습은 정말 대견스럽기만 하다. 중국의 사회주의 교육 체제 내에서는 일단 대학에 합격하기만 하면 졸업 후에 국가에서 책임지고 학생에게 직장을 분배시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책이었기 때문에 밤늦게까지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 모습은 중국 대학에서는 여간해서 찾아보기 힘든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북산가 언덕에 높다랗게 세워진 학교---,
깜깜한 밤중에 환하게 불을 밝힌 도서관---,

갑자기 말씀 한 구절이 생각난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2)

언젠가 활빈 교회의 김진홍 목사님이 조선족 사기 사건의 대책 마련을 위하여 우리학교를 방문하신 차에 교직원들과 자리를 함께 한 일이 있었다. 당신이 찾아오신 곳이 바로 선구자의 땅임을 의식한 그 분이 자기가 바로 선구자라고 하시며, 선구자의 뜻은 "선천성 구제불능성 자아도취증" 환자를 뜻한다고 하여 한바탕 폭소를 자아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학교에 와보니 김진경 총장님을 비롯하여 모두 자기보다 중증(重症)인 선구자들만 모여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다시 한번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연변 과학 기술 대학을 방문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북산가 언덕의 광활한 벌판을 바라보며 바로 이곳이 과거 우리 민족의 한과 쓰라림의 역사를 담고 있는 만주 벌판임을 실감하곤 한다. 과거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였던 역사적인 배경은 차치하고서라도 나라를 빼앗겼던 근대사의 뼈를 에는 아픔들이 스며있는 땅이 바로 이곳이다. 그 시절 일본의 학정을 피해 개나리 봇짐을 지고 압록강 두만강을 넘었던 우리의 선조들이 피와 땀을 흘려가며 개간했던 땅들이 지금의 만주 곡창을 이루었던 것이다. 일본에 항거하여 잃어버린 나라의 주권을 되찾고자 고향산천의 부모 형제를 내버려둔 채 일신의 고초를 무릅쓰고 찾아 나선 독립투사들은 또 어떠하였던가?

그 시절을 향한 역사적 향수감에 젖어 한번씩 시간을 내어 찾게 되는 곳이 또한 인접해 있는 용정시(龍井市)이다. 연길에서 시골길을 삼십 분 남짓 차를 타고 가다보면 거대한 사과배 농장을 지나게 되고 올망졸망한 용정시 한 복판에 옛 대성 중학(지금은 용정 중학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의 터를 찾을 수 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가 아로새겨진 시비 앞에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에 대한 의미를 한참 묵상하다가 발길을 돌려 오르는 곳이 일송정(一松亭)이다. 우리 민족의 정기를 뽑아버리기 위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이미 제거되고 말았다는 역사 속의 소나무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산꼭대기에 솟아있는 초라한 정자 옆에는 어느덧 새로 심은 작은 소나무가 한 그루 미래의 소망을 키워가며 자라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일송정에서 사방으로 광활하게 내려다보이는 만주 평야와 그 속을 가로질러 흐르는 해란강을 굽어다보고 있노라면, 조선인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심장을 요동쳐 흐르는 한줄기 감개를 억제치 못하여 선구자라는 노래, "일송정 푸른 솔은---" 을 한바탕 외쳐 불러야 속이 후련해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그와 같은 조선의 역사적 배경을 잘 알고 있기에 한국 사람들이 찾아와 만주 벌판에 대한 옛 향수를 자꾸 느끼는 것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는다. 정작 중국인들은 만주(滿洲)라는 말 자체를 과거 자신들이 일본에 의해 겪었던 치욕의 역사를 돌이키는 말로서 생각하여 듣기 싫어하며 쓰지 않는다. 더욱이 한국인들이 이곳이 바로 우리 조상 고구려 사람들의 영토였다는 것을 내세워 "만주도 우리 땅"이라는 등의 눈치 없는 소리를 하게 되면 비록 우리는 그것을 반 농담 삼아 하는 말일지라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며 노골적인 반감을 나타내는 것을 볼 수 있다. 55개의 소수민족을 포함하고 있는 다민족 국가로서 소수 민족의 분리 독립이 국가의 존립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신강 위구르족과 티벳족을 위시한 정치적 독립을 꾀하는 소수민족과 더불어 역사적 배경 속에서 향수를 느끼는 한국인들에 의해 조선족들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를 갖는 것이다. 비록 소수 민족의 인구 비율은 한족에 비해 10% 미만이지만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토는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소수민족의 동향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중국 정부의 입장이다.

그와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우리 학교로서는 민족이라는 개념을 조선족 학생들 앞에서 내세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우리가 학교를 세운 목적 자체가 민족 운동을 하여 잃어버린 옛 땅을 되찾자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선조들의 숨결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 곳에서 그와 같은 역사적 의미를 신앙의 눈으로 승화시켜 재해석하게 된다.

중국 지도를 보면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모양이다. 언젠가 우리 졸업생 중 하나가 중국과 한반도 지도를 보여주며 닭이 젖통을 물고 있는 형상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다시 말해 한반도는 중국이라는 닭에게 복음의 젖을 먹이기 위해 하나님이 물려주신 젖통이라는 것이었다. 때때로 닭 주둥이에 매달린 먹이처럼 느껴지는 한반도가 조금은 처량하게 보이던 나는 기발한 설명에 귀가 번쩍 뜨이며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실로 이곳은 선구자와 독립투사의 땅이다. 어찌하여 지난날 강가에서 말 달리던 사람들만이 선구자이겠는가? 역사의 물줄기를 바로 보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땅, 미래의 대륙에 먼저 들어와 새 시대의 일꾼들을 양성하고 있는 이 학교의 교직원들이야말로 선구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찌하여 지난날 일제 치하에서 잃어버린 나라의 주권을 되찾기 위해 투쟁하던 사람들만이 독립투사이겠는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상실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일신의 안일함을 버리고 고향과 부모 형제를 떠나 묵묵히 일하고 있는 우리 교직원들이 바로 독립투사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예수를 위시한 지난날의 선구자와 독립투사가 모두 그리하였던 것처럼 이들의 가슴속에도 고향 땅을 떠나올 때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아야했던 손가락질과 조롱의 남모르는 아픔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독립투사들의 희생과 땀과 피에 의해 나라가 회복되었듯이 그리고 그 후에야 그들을 회고하는 시비가 세워진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회복되어지는 그날 천국에서 이들을 위한 기념비가 찬란하게 세워질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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