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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풍만한 가슴 골격을 보고 색욕을 느껴보세요! 내 날씬한 허리라인을 만지고 싶지요? 내 탱탱한 엉덩이에 눈이 가서 후끈 달아오르시지요? 내 매끈하게 쭉뻗은 다리가 당신을 유혹하나요? 내 눈짓과 몸놀림을 보고 욕정이 불타오르시겠지요! 나는 상품가치가 높은 물건입니다. 나는 상품입니다. 나는 당신의 섹스욕구를 건드려서 미친 망둥이처럼 뛰놀게 하는 상품입니다. 나를 마음껏 즐기세요! 나를 애용하세요!
 <--어지간한 걸그룹 뮤직비디오는 노래 가사에 상관없이 죄다 이 메세지를 정말 신실하고 열심히, 힘차게 외치고 있다. 미치겠다. 난 정말 마음이 불편해 미치겠다!
빛의 자녀들아, 함께 일어나자! 우리 빛을 발하자!” 





위의 글은 어느 한 선교사가 엘에이 사역방문중 한국 팝 문화를 보면서 통분하며 쓴 페이스 북의 status 글이다. 당신은 이 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이 드는가? ‘좀 비약이 심하다’ 혹은 ‘스스로 좋아서 하는 건데, 표현의 자유가 있는데 뭐가 문제라고’ 혹은 ‘맞아, 내가 다 부끄러워! 저것들 쯔쯔’ 혹은 ‘내부 깊숙한 곳에서의 분노’ 혹은 ‘아픔’ 혹은 ‘연민’?

필자는 엘에이의 한인 타운의 유흥가에서 일하는 몇몇 여성들을 알고 있다.

한 선교단체의 선교사 후보생으로 있으면서 섬기고 있던 교회 청년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새신자가 있었는데 그녀는 노래방으로 포장된 룸쌀롱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아가씨들이 그녀에게 전도(?)되어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이들이 마피아나 갱 혹은 포주들에게 붙잡혀 있는 성매매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이냐고? 성매매 인신매매의 피해자인것은 맞는데 당신이 아는대로 물론 강제로 붙잡혀 있는 포로들은 아니다.[1]

성매매 관련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많은 분들이 노예라고 할 수가 있냐는 질문을 한다. 그들이 강제로 붙잡혀 있는 것이 아닌데, 섹스가 좋거나, 돈 좀 쉽게 벌려고 혹은 명품 중독에 편하고 화려한 삶을 추구하며 그렇게 사는 여자들이 대부분이 아니냐는 말이다. 그들이 선.택.한. 삶.이라는 거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게 그렇게 쉽게 선택이라고만 할 수 없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깨어진 가정에서 어릴적에 미국에 맨몸으로 혼자 버려진 아이. 어릴적 친 아버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면서 자란 아이. 불법으로 체류하며 유흥가에서 돈을 벌어서 한국으로 여전히 생활비를 보내고 있는 아이. 공부는 애초부터 타고난게 아니었고 특별한 재능도 없고, 무언가 실력을 개발할 기회는 커녕, 당장 빚쟁이에 쫒겨다니며 돈을 벌어야만 하는 상황. 가진건 나름 남들이 말하는 이쁘장하다는 몸뚱이 하나뿐. 세상은 섹시한게 착한거라는데.

다른 방법은 없었느냐고 묻는 분이 있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아니, 분명 있었을 겁니다. 당신이 조금만 다른 선택을 해서 더 열심히 살았으면 지금쯤 혁신적인 한 회사의 젊은 CEO가 되었거나 억만장자가 될 수도 있었던 것처럼. 혹은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이런 류의 책을 출판하는 유명한 법조인이 되었을 수도 있었던 것처럼. 아니,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 않더라도 당신의 부모님들이 늘상 언급하시는 그 엄친아 엄친딸 만큼쯤 될 수도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그들에게 그 길 뿐이었다고 말하는것은 아니다. 그저 우리 누구도 쉽게 ‘이렇게 저렇게 했었어야 했다’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거다.

전에 언급한 네파리어스 다큐에 나오는 한 전문가의 인터뷰에 의하면 보통 미국 여성 세명중 한명이 성폭행의 경험이 있는데, 성매춘 현장에 있는 여성들의 경우는 그들의 90%이상이 어릴적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쯤되면, 그냥 선택이라고 하기에는 거기에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미국의 남성들의90%는 8세에서 16세 사이에 포르노그래피를 처음 보게 되는데 그 평균나이가 11세라고 한다. 한국의 경우 포르노를 보는 소비율이 전세계 포르노 소비율 랭킹 1위인데 2위를 차지한 국가에 비해 그 소비율이 다섯배 이상이란다. IT 산업의 최강국이니 그럴만도 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가정마다 인터넷 광케이블이 깔렸던 때가 X양 비디오가 처음 터졌을때라는 것은 IT 산업계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비들이 음란물을 보기위해 인터넷을 깔았고 자녀들이 그렇게 인터넷을 통해서 어릴적부터 포르노를 보면서 자라온 것이다.

그들이 듣는 음악과 가수들의 몸짓들은 계속적으로 성적인 유혹을 불러 일으킨다. 어릴적부터 쉽게 접하는 예능프로그램에서는 야동이야기가 아주 자연스럽다. 이게 정상처럼 여겨지는 문화가 되었다. 여자 연예인들의 옷차림과 춤사위와 그들의 표정은 여느 스트립바에서 볼만한 여성들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것들은 여과없이 공영방송에 흘러넘치고, 소녀들은 그 여자 연예인들을 말 그대로 그들의 아이돌(Idol)로 삼는다. 자신도 그렇게 되기를 꿈꾸며.

서두에 인용한 글처럼, 소녀들로 구성된 걸그룹의 유혹적인 메세지에 그 비슷한 또래의 자녀들을 둔 아비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한다. 그리고 옆에서 그의 딸들은 그 춤을 따라한다. 아비가 딸을 성폭행 했다는 뉴스가 종종 미디어에 올라오는 것은 이런 문화가운데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는 어쩜 당연한 결과물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한 단면이다.

어릴적부터 음란문화에 그대로 노출되어온 남성들에겐 이미 여성은 하나의 인격이 아니라 자신의 욕구충족을 위한 도구가 되어 버린다. 이러한 남성들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자랐으며, 세상의 과대성애화된 문화가 섹시한것이 좋은 것이라고 가르치는 가운데 이미 그 정체성이 망가져 있는 어떤 여성들에게는 유린당하고 강간당하는 것이 일상이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누군가 돈으로 지불까지 한다는데에야 오히려 감격스러울 수 밖에. 마치 ‘이제야 내가 사랑받거나 인정을 받고 있구나’ 자부심까지 느끼는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삶에 매춘이 들어오는데, 통계에 의하면 여성들이 매춘을 시작하게 되는 평균 나이가 열세살 이란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들 이마에 주홍글씨를 새긴다. ‘나가요 언니들’이라고 비아냥을 섞어서!

누가 열한살의 남자아이에게 여성들을 돈으로 사서(포르노) 마스터베이션을 하라고 가르쳤는가?  고사리같은 손으로 컴퓨터를 만지작 거리다 포르노를 발견한 열한살 소년이 바로 당신은 아니었는가? 깨어진 가정에서 혹은 직장이나 유흥으로 바쁜 부모대신 자리를 지켜줬던 TV 앞에서 연예인들 춤을 따라했던 열두살 소녀가 당신은 아니었는가? 혹은 아무도 보지 않을때, 은밀한 곳에서 슬며시 야동을 틀어 본적은 없었는가? 당신은 걸그룹의 춤사위를 보며 박수치지 않았는가? 당신은 연예인들의 야동운운하는 저질대화를 시청하며 함께 웃어본일이 없는가?

돈을 위해서라면,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을 희생해도 상관없었던 우리 부모세대 혹은 우리 세대가 계속해서 성상품화와 성산업을 키워왔고 그 음란의 문화는 지금 자녀 세대가운데 60배 100배 1000배의 열매를 맺고 있다. 이제 자녀세대는 자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상관없는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어릴적부터 음란의 문화에 잠겨 자랐던 열한살짜리 남자 아이가 40대에 50대에 무엇을 하고 있을것 같은가? 5살 6살 7살된 아동 성매춘과 아동포르노 싸이트가 넘쳐나는 것으로 부터 우리 중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교회에서 조차도 자매들끼리 수다의 자리에서 종종 ‘이야~ 너 오늘 섹시해 보이는데!’ 이런 대화들을 쉽게 듣는다. 다르게 표현하면 ‘너 오늘 남자들이 너를 보면서 음란한 생각을 품을 만하게 유혹적으로 보여!’와 같은 이야기다. 그리고 이것은 듣는이에게 모욕이 아니고 칭찬인 것이다.

여성들은 거울로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면서 섹시한지 아닌지 다시말해 남성들이 보기에 유혹받을만 한지 아닌지를 생각한다. 아버지 하나님의 따스한 사랑의 눈이 아닌 남성들의 음란의 렌즈로 자신을 바라본다. 남성들이 마음으로 간음을 하듯, 하루에도 열두번씩 자신의 육신을 남성의 눈으로 바라보며 음란의 생각들과 교제하게 되는 것이다.

요즘 한참, 동남아고 유럽이고 K-POP 이 뜬단다.

한국 유명한 연예인들 덕분에 선교하기가 쉽다는데 그게 영 마음에 걸린다.

음란의 견고한 진들이 먼저 자리잡게 하고 나서 그곳에 복음을 전하겠다는게 우리 전략이 될 수는 없는것이 아닌가?

조윤이
Eunice Cho
eunicecho@exoduscry.com

현대판 노예제 폐지를 위한 기도운동 본부
엑소더스 크라이
Exodus Cry
A Prayer Movement to End Modern Slavery
www.exoduscry.com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일회용 사람들: 글로벌 경제 시대의 새로운 노예제]의 저자인 케빈 베일스에 의하면 세상에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가 실제로 이천칠백만에 이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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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은비 2012/01/01 05:24  Addr Edit/Del Reply

    INTENSE!!!!

  2. 좋은 글, 감사합니다.
    지금의 한국은 정말 자녀를 키우기 힘든 상황이라고 보입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하는 왕따,폭행을 비롯해,
    전혀 자정기능 없이 여성의 성적인 면만을 강조하는 언론들.
    또 범죄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어제 발표된 보건복지부의 18세 미만 산모 지원금에서,
    "미혼모자 산모시설 입소자" 라는 제한이 없어진것에 대해,
    너무나도 한심한 반응들에 놀랐습니다.

    정말 한국에서 사랑과 정의는 찾기 힘들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3. 조윤이 2012/01/07 02:35  Addr Edit/Del Reply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약 이십년 전의 한국과는 또 완전히 다른 한국의 모습을 보면서... 내 자녀들을 생각해볼때, 쉽게 쯧쯧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지요. 내남편, 내 아내, 내 누이들, 내 아들, 딸들의 문제로 볼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라는 것은, 정말 이러한 고민들이, 개인의 삶에, 실제적인 기도의 삶에 적용되어지고, 또 다양한 사역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동참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제게는 북녘에서 온 친구가 있습니다. 그녀는 저와 동갑내기 친구이며 중국 주재 한국영사관내 보호시설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벌써 6년이라는 세월 동안 서로를 친구로, 선생님으로 부르며 지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다르게 생각하면서 부릅니다. 그녀는 제 이름을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꼭 부릅니다. 제가 그녀에게 이름을 불러도 된다고 했지만, 어떻게 그러냐며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1주일에 한번씩은 꼭 만나 편안하게 밥을 먹으면서 학교생활에 대한 어려움, 한국에서 살면서 겪는 스트레스를 수다로 풀어냅니다. 

그녀와의 만남은 정말 특이했습니다. 제가 탈북민 상담을 10년 동안 하면서 이런 만남은 손에 꼽을 만 합니다. 그녀는 활동성 결핵으로 중국 주재 탈북민 보호기관에서 거의 1여 년 동안 독방에서 생활했습니다. 배달되는 음식을 혼자 먹으면서 혼자 생각하고 책보고 기도하고 성경을 보면서 다른 탈북민 또는 사람들의 왕래 없이 외롭게 지냈습니다. 제가 그곳 기관에 상담심리사로 파견 되었을 때 직원들은 그녀를 내담자 명단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저 또한 그녀의 병명을 듣고 상담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1주일 동안 기관에 체류하면서 계획된 상담을 모두 마친 후 자투리 시간을 잠시 내어 몇 권의 책을 들고 그녀를 방문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책만 전해주고 빨리 나오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제가 상상했던 환자의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이 그 당사자라고 한번 상상해보십시오. 1년 동안 활동성 결핵으로 1평 남짓 되는 공간에서 말상대도 없이 오락거리도 없이 누워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그녀는 병자 특유의 절망감도 없었고, 외로운 기색도 없었으며 오히려 영사관의 다른 탈북민들과 비교할 수 없는 자유자의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그녀에게 책을 건네 주며 ‘힘내세요, 쾌차하세요.’라고 말하는 제가 어색할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멀리 서울에서 저희를 위해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결핵이라서 안됐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와 함께 잠시 기도만 하고 방을 나와 담당직원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활동성 결핵이 맞느냐? 굉장히 밝더라.’고 말입니다. 제 경험으로 보호기관에서 오랫동안 격리생활을 하는 탈북민들은 대부분 신경이 예민하고 우울하며 불안하며 타인에게 쉽게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특히, 몸이 아픈 탈북민의 경우,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줄 것과 조속한 한국 송환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녀가 아무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이런 상황에 어떻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지, 평안할 수 있는지 저는 의아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저는 일상생활로 인해 그녀는 차츰 흐릿해졌습니다. 1년이 채 되지 않는 어느 늦은 가을 날, 저는 충남 공주의 기독학생회 수련회에 우연히 가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가게 된 길이기 때문에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낯익은 얼굴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혹시 저를 아세요? 낯이 익네요.’라고 하자 ‘처음 뵙는데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또 다시 ‘혹시 탈북민 아니세요? 어디서 뵌 적이 있는 것 같은데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중국 보호시설에서 잠시 만난 그녀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늘 그랬듯이 낯이 익은 탈북민과 인사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자, 놀란 그녀는 중국 보호시설에서 저를 만났으며 제가 도착하기 전날 저에 대한 간증을 했다고 하며 반겨주었습니다. 저 또한 그 사실에 놀라며 그녀와의 재회를 기뻐했습니다. 보호시설에서 그녀는 병든 몸으로 낯선 남한 땅에서 적응할 수 있을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하나님께 기도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너무나 선명한 꿈을 꾸었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꿈을 도대체 해몽할 수 없어 또 다시 꿈을 해석해 달라고 기도하던 참에 저에게 책을 받았고 그 책 표지의 그림이 꿈에서 본 장면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 책을 단번에 읽었으며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계획하신 한국 땅에서의 삶과 길을 열어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후 몇 개월이 흘러 학교에서 그녀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저는 제가 다니고 있는 학교여서 더욱 놀랐습니다. 실례되는 말이지만, 나이 많은 그녀가 우리 대학에 입학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인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받으며 기뻐하는 모습은 저를 두 번 아니 세 번 놀라게 만든 사건이었습니다. 학생회관에서 많은 젋은 신입생들 틈에서 그녀를 발견했다는 놀라움과 또 동문으로 만났다는 것… 사실 우리는 중국 보호시설이나 공주의 수련회 장소에서 서로의 연락처를 나누지 않았고 그저 만나고 헤어졌을 뿐이며 다시 만나자는 인사는 했지만 이렇게 절묘하게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우리는 하나님께서 맺어준 인연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약속을 하던 우연찮게 만나던 일주일에 한번 이상은 꼭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역사와 세계사를 아는 목회자가 되기 위해 36세의 나이에 Y대학 역사학부에 입학했습니다. 그녀와 저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북한을 떠날 당시의 이야기, 한국 생활의 어려움, 학교 생활의 어려움, 경제적인 어려움, 언어의 어려움 등...

그녀는 북한 두만강을 넘어오면서 함께 강을 넘던 어머니를 그 강에서 잃었으며 중국에서 10여 년 동안 숨어 살아야 했습니다. 중국에 거주하는 이모님 댁을 찾아 왔으나 어머니께서 자기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에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녀가 중국에서 의지하고 마음을 기댈 곳은 아무 곳도 없었으며 오로지 새로 알게 된 하나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누구도 반겨주는 이 없을 때, 안전한 다른 곳으로 숨어야 할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오직 하나님만이 그녀의 피난처요 등불이요 안식처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낯선 한국 땅에서 독신으로 살면서 공부하고 일하며 봉사하며 하루에 서너 시간의 쪽 잠을 자면서도 그 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감당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린 학생들과 학교생활을 하다 보면 교우라기 보다는 이모뻘이 되는 자신이 때로는 어이없고 낙심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또한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다른 사람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돈도 없고 나이 든 자신의 현실을 바라볼 때 지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1년에 한 번씩 고향의 가족들에게 생활비를 보내주고, 주위 어려운 친구들에게 학비의 일부를 남 몰래 후원하고, 아르바이트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며 다시 웃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그 꿈을 기억하고 약속하셨다는 그 믿음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 그녀는 Y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함께 입학했던 남한 친구들과 졸업가운을 입고 졸업식을 대하는 그녀의 감회는 어떨까요? 졸업식을 축하해줄 부모님, 형제들은 없지만 그녀와 늘 함께 하신 하나님의 기쁨은 얼마나 크실까요? 상상만 해도 뿌듯하고 대견하고 그런 친구가 제 친구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그 친구는 저를 선생님으로 만났기 때문에 저를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 친구야 말로 제 선생님입니다. 힘든 상처가 있어 아프다고 힘들다고 넋두리를 할만한 그녀지만 ‘그래도 감사하다.’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 친구야 말로 제 선생님입니다. 
“친구야 난 네가 내 친구라서 정말 고맙고 좋다. 우리 진짜 친구하자, 딱친구!.”

주) 딱친구는 북한 말로 서로 속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를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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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어느 신학교의 제자훈련관련 세미나에서 일어난 일이다.
학생들은 제자훈련을 하면서 겪는 다양한 고민들을 교수에게 질문하고 있었는데 한 학생의 질문이 다음과 같았다.

“제가 제자훈련을 해주고 있는 학생이 있는데, 이 친구가 마약중독이 있고 열네살 소녀에게 마약을 팔고 있다는 것을 고백했어요. 저는 이 청년을 정말로 사랑하는데 제가 한번 더 기다려 주어야 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이 학생이 열네살짜리 소녀를 성폭행 했다는 고백을 했다면 또 어떻게 하겠는가?

 
정의라는 단어는 너무나 버겁고,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하면 안된다는 묘한 합리화 뒤에 혹은 자비와 사랑이라는 아주 그럴싸한 명분뒤에 숨거나, 종종 나나 잘하고 살자라는 자조섞인 비관에 머물고 마는 우리의 모습을 본다. 결국 하나님의 정의도 사라지고 사랑도 희미해진다.
 
신학교 교수의 답은 의외로 간결했다. “경찰에 전화하세요. 그게 열네살 소녀를 사랑하고 그 청년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공원에서 당신이 가족들과 피크닉을 하고 있다고 가정을 해보라. 일단의 깡패들이 와서 당신의 아내와 자녀들을 괴롭히고 있다. 당신은 자비롭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관점에서 정의는 어쩌면 이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이들이 상처받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싸우는것처럼 말이다.
세상에는 “정의(Justice)”에 대한 많은 정의(definition)가 존재한다. 굳이 마이클 샌델의 강의를 찾아 듣지 않더라도 단어만 떠올려도 이미 머리가 복잡해 지는게 사실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정의는 의외로 참 간단해 보인다. 많은 이들의 죄를 한사람이 대신 짊어지는 것,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그들을 신원하여 주는 것, 힘이 없는 자들의 목소리가 되어주는 것,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이고 사랑인 것 같다. 혹은 하나님에게 있어 정의는 사랑의 또다른 이름은 아닐지.
 
유다의 번영과 평안 가운데 그 죄악이 하늘을 찌르고 이로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눈앞에 다가왔을때, 하나님은 그분의 선지자 이사야를 보내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사1:16-17]
 
스스로 씻으며 깨끗이 하라고 하시면서 실천해야 하는 항목들을 주시는데 그것이 바로 고아와 과부를 신원하여 주라는 것이다. 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라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정의에 대해서 너무나 어렵게만 생각하며 살아가는건 아닐까? 사랑에 대해 너무 감상적으로만 생각하는건 아닐까?
 
필자는 현대판 노예제라 불리는 인신매매 성매매 폐지를 위해 헌신되어져 있는 한 선교단체에서 사소한 일들을 돕고 있다. 5년전 단체의 대표가 노예제의 피해자 여성들을 위해 중보하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큰 부담을 주셨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단체를 만들게 되었다. 그저 한 젊은 중보자였던 이분은 간단한 관련 비디오를 만들어서 세상에 알려야 되겠다는 마음의 부담으로 이 사역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프로젝트가 4년여를 걸쳐 전세계를 다니며 실태조사로 이어졌고 이제 그것이 “네파리어스: 영혼의 상인(Nefarious: Merchant of souls) ” 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세상에 그 빛을 보게 되었다.
 
영화의 말미에 어떤 매춘현장에서 여성들을 관리(?)하는 포주였던 한 남성의 인터뷰가 나온다.
 
“제가 했던일들을 후회합니다. 제 스스로를 정말 인간이라고 부를 수도 없지요. 그 여성들은 포로가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저 또한 어떤것에 포로가 되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또 한가지 깨달았던 것은 하나님은 내 죄악보다 훨씬 크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무엇에 포로가 되어있었던 걸까? 이 남성은 정말 가해자이기만 했을까?
현재 이 남성은 결혼을 했고, 청소년들이 성매매에 팔려가지 않도록 보호하고 돕는 사역을 하고 있다. 
 
필자는  이 공간을 통하여 의외로 우리 주변에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인신매매 성매매라는 불의를 코스탄과 함께  들여다 보고자 한다. 정의라는 커다란 주제를 다룰 철학적 통찰도 없고, 쌈박한 신학적 지식도 없지만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만은 없는 이러한 숨겨진 불의를 들여다 보고 피해자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느끼며 우리가 함께 기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면서 말이다.
 
하나님의 정의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온전히 풀어지기를 갈망하며-
 

조윤이
Eunice Cho
eunicecho@exoduscry.com
 
엑소더스 크라이
현대판 노예제 폐지를 위한 기도운동
Exodus Cry
A Prayer Movement to End Modern Slavery
www.exodusc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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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원고에서 저는 여러분들에게 북한이탈주민들의 고향 땅에 대한 소개와 남한 입국 현황을 말씀 드렸습니다. 오늘은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에 입국하기까지의 여정과 외상 경험에 대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입국 경로는 시기 및 정치 사회적인 이슈에 따라 변화하였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제3국 체류 실태는 조사 기관에 따라 다양합니다. 아직까지 제3국 북한이탈주민 규모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었으나 유관 기관에서는 대략 2~3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2003)은 10만 여명이라고 발표하였습니다. 그들이 은둔, 도피 생활을 하기 때문에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따라서 이러한 편차가 나타납니다. 
본문에서는 제3국 체류 규모를 논하기 보다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입국 여정과 그 과정에서의 외상 경험을 이해하고자 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안정된 국가로 입국하기 까지의 여정은 <그림 1>과 같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남북한의 군사분계선의 육해로을 넘어 오는 경우는 극히 소수이며 제3국을 통해 입국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들은 북한과 중국의 국경지역인 함경북도를 경유하여 연변에 도착하게 됩니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 인접 지역은 자강도, 양강도, 평안북도가 있으나 조선족 사회의 유입요인으로 인하여 함경북도 출신이 북한이탈주민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07년 이전에는 중국 공민증을 위조하거나 재중 한국 영사관 및 국제학교 등에 진입하여 신변보호를 받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의 한국 출국이 늦어지면서 베트남 및 캄보디아 등을 경유하여 태국을 통하여 한국으로 입국하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이들이 한국으로 오기까지 목숨을 걸고 3-4개 이상의 국경을 넘습니다. 이 과정에서 혼자 올 수 없기 때문에 브로커의 도움을 받게 되며, 대체로 브로커 비용은 한국 입국 이후 지불하게 되며 300만원에서 1,000만원 선까지 다양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북한 사회, 탈북하는 과정, 중국 및 제3국 체류과정에서 많은 외상을 경험합니다. 이때 외상 경험이라 함은 개인의 생활 및 신체적 보전에 심각한 위협을 주는 사건을 의미합니다. 외상 사건은 개인뿐만 아니라 자녀, 배우자, 친척, 친구들에 대한 위협을 포함합니다. 즉, 심각한 상처, 죽음을 목격하거나 죽을 뻔한 경험을 하였는지가 이에 해당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외상 사건은 크게 북한 및 제3국 체류 기간 동안 겪은 것으로 구분합니다. 실제로 북한이탈주민들은 북한에서 생활하면서 이미 정신적 충격을 경험한 경우가 많고, 탈북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중요한 사안입니다. 또한 한국 입국 이후에도 여러 가지 이유로 그들이 받았던 외상 충격이 계속적으로 재경험되기 때문에 초기 예방 및 치료가 중요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경험한 외상은 수년이 지난 과거 사건이지만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쳐 일상생활, 직장생활, 가정생활까지 지장을 주게 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북한 내에서 가장 많이 경험한 외상은 가족, 친지, 가까운 이웃 중에 굶어 죽는 것을 목격하거나 소식을 듣는 것으로, 817명(68.1%)에 해당됩니다. 다음으로 추위나 식량 부족으로 인한 생명의 위협(58.2%), 가족과의 생이별(56.2%), 아는 사람의 공개 처형을 직접 목격함(42.8%) 순입니다. 탈북 여성의 경우 북한에서 원치 않는 결혼을 했거나 인신매매를 당함, 심한 성적 모욕이나 강간을 당했다는 경우가 남성에 비하여 유의하게 많았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탈북 과정에서 가장 많이 경험한 외상 사건은 가족과의 생이별(46.8%)이었고 체포나 강제 북송의 경험이 있거나, 거의 그럴 뻔한 위험에 처한 경우(45.5%), 총격이나 추격을 받은 경험(27.5%), 예상치 못한 배신 경험(25.1%), 강제 결혼이나 인신매매 경험(22.8%), 수용소, 교화소나 감옥에 간 경험(21.8%) 순입니다. 특히 여성의 경우 10여명 중 3명 가량이 원하지 않는 강제 결혼을 했거나 인신매매를 당하였습니다. 

외상 경험으로 인해 심리적인 증상이 생기는 것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합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의 정의는 강간, 심한 폭행, 자연재해(홍수, 지진, 폭풍), 뜻밖의 재해(자동차 사고, 비행기 추락, 대형 화재, 해상 사고), 인공 재해(폭격, 고문, 수용소, 인질) 등 생명의 위협 및 정신적 충격으로 심리적·신체적인 증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외상후 스트레스 유병율은 연구에 따라 다릅니다. 강성록(2000)은 27.37%, 홍창형 등(2004)은 29.5%, 윤여상 등(2007)은 26.15%, 서주연(2006)은 45.1%, 국경없는 의사회(2005)는 18.2%, 김병창 등(2010)은 8.7%로 보고하였습니다. 이러한 유병율 차이는 연구대상자의 크기와 집단 특징, 진단 도구, 거주기간 등이 원인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북한이탈주민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해외 난민과 달리 남한거주 기간이 장기화될수록 자연 치유된다는 사실입니다(조영아, 김연희, 유시은, 2009; 홍창형, 2005)<그림 2>. 

이러한 결과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외상 후 성장 및 회복력(탄력성)이 강하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정착 초기가 그들의 삶의 방향을 정하는 시기이니 만큼 초기 예방 및 치료가 중요합니다. 
이렇게 북한이탈주민들의 탈북 여정과 외상 경험을 정리하니,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학자로서 그들의 경험을 짧은 도표와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지만, 그들의 삶은 결코 짧지도 간단하지도 않습니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고 말하고 싶지 않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고통의 순간 순간이기에 경험하지 못한 저로서 언급한다는 것이 죄스럽기만 합니다. 
상담 후 내담자인 북한이탈주민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결코 저를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라고요. 그렇습니다. 그때는 그 말씀이 다소 서운했지만, 이제는 “그렇습니다. 저는 모르지만 그 때 그 자리에서 주님은 당신과 그 고통을 모두 당하시고 함께 하셨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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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의미 있는 사람과의 첫만남은 오랫 동안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그가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 지금 형편이 어떤지 알게 되면 더욱 관계가 깊어지고 마음에 담게 되며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만난 북한이탈주민과의 첫만남은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온성 아이입니다. 온성 아이를 만난 건 경기도 안성시 하나원이었습니다. 저는 하나원 상담심리사 면접 후 양지바른 곳에서 혼자 앉아 있는 꼬마 아이를 만났습니다. 그 아이는 신문지 안에 끼어 온 광고지를 아주 귀중한 듯 이리 저리 만져보고 곱게 접어 가슴에 품고 있었습니다. 남한의 여느 아이라면 휴지통에 버렸을만한 광고지를 그 아이는 조심스럽게 만져보고 햇빛에 비춰보며 누가 가져갈세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살피기까지 했습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너 어디에서 왔니?”라고 물었습니다. 그 아이는 공손하면서도 경계하듯 “온성에서 왔는데요?”라고 했습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아이의 모습과 억양이 낯설기만 했고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처음 들어보는 지명이기에 다시 물었습니다. “뭐 언성이라고?” 그 아이는 “아니오. 온성이요.” 라고 대답하고 저 대신 광고지에 눈을 돌렸습니다. 

이렇듯, 저는 북한이탈주민과 북녘 땅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저를 선택하셔서 전적으로 의지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심으신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마음을 북녘 땅을 보면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제가 말씀 드린 온성 땅에서 온 그 아이, 지금은 얼마나 자라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언젠가 가야 할 그 온성 땅이 어디인지, 북녘의 시도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북한이탈주민들은 어디에서 살았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온성군은 함경북도의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최북단에 있는 동네입니다.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마주하고 있으며 중국과의 국경선 길이는 105km입니다. 함경북도는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식량 배급이 가장 먼저 중지된 곳이기도 합니다.  90% 이상이 산간으로 이루어져있어서, 식량난 이후 대부분의 산간을 개간하여 김일성 유적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산이 황토 빛 민둥산입니다. 

북녘의 정식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며 수도는 평양특별시이며 9개 도로 나뉩니다. 평양은 서울에서 육로로 1시간 30분 정도 차를 타고 달리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운 거리입니다. 중국 국경과 인접해있는 곳은 함경북도, 양강도, 자강도, 평안북도입니다. 대한민국과 인접한 곳은 강원도, 황해남도, 황해북도 입니다. 강원도에 있는 개성직할시는 2005년부터 개성공단이 가동되고 있으며 현재 46,284명의 북녘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습니다. 즉, 남녘의 산업 기술과 북녘의 인력이 협력하는 장이 되고 있습니다. 황해도는 북녘 땅에서 평야가 가장 많은 곳입니다. 경지율이 북녘에서 가장 높은 약 14%를 차지하고 있어 황해도민을 ‘띵해도’라고 부를 정도로 성품이 느긋하고 인심이 후합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군사분계선을 넘지 않는 한 대한민국으로 올 수 없고 중국 국경으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탈북하는 사례는 5% 정도 수준입니다.  


아래 표는 북한이탈주민들의 출신 지역과 탈북 동기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당부하고자 하는 것은 이 표를 보면서 그들의 고향과 생활 환경을 위해 중보해주셨으면 합니다. 많은 북녘주민들이 생활고와 가족 해체로 인해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기아로 가족이 죽거나 헤어져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오랜 기간 헤어진 가족이 다시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간의 삶을 공유할 수 없으며 마음과 몸이 떨어져 있었던 상처로 인해 또 다른 불행을 경험하게 됩니다.  

북녘 출신지역별 유형(2009.10 기준)


탈북 동기별 유형(2009. 10 기준) 

 
저와 함께 생활한 탈북 소녀의 이야기로 오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 소녀는 8살 때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곡식을 구하기 위해 며칠 있다가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녀는 나이 어린 동생과 이모님댁에 맡겨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살아남기 힘든 ‘고난의 행군’시기이기 때문에 더부살이 하는 입은 천덕꾸러기 자체였습니다. 추운 겨울 그 소녀와 동생은 감자창고에서 잠을 자고 식사 때가 되어야 방어 들어가 풀 죽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늦은 밤 배가 너무 고픈 동생이 누나에게 썩은 감자를 가리키며 ‘누나 나 이거 하나 먹으면 안되나? 배가 너무 고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썩은 감자로 배를 채우려는 동생이 불쌍하지만 자존심이 상해 매몰차게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이모가 아침을 먹으라고 소리쳤지만 평소와 달리 동생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의 소녀는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동생에게 썩은 감자라도 실컷 먹일걸, 나 때문에 동생이 죽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비오는 날 그 소녀는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다시 만난 엄마에게도 그날 밤 일을 말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마구 울었습니다. 만약 엄마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속상해하시고 이모와 싸웠을 것이라고 걱정하면서 울었습니다. 지금 그 소녀의 나이는 16살, 한창 엄마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조잘거릴 철모를 소녀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엄마를 먼저 걱정하는 애 어른 소녀입니다.

기도해주십시오. 나이에 어울리는 건강한 사춘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헤어진 그 시간 동안의 상처가 주님 안에서 치유되고 회복될 수 있도록, 이들의 눈물이 우리의 눈물이 되어 하나님 앞에 통회하는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유시은 자매는 연세대에서 통일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Johns Hopkins Bloomberg School of Public Health에서 Post-doctor Fellow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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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ys 2011/11/14 17:50  Addr Edit/Del Reply

    귀한 글 감사합니다. 북한기도 가족들과 나누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두 번째 만남이네요. 오늘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어느 곳에 얼마나 살고 계신지 서로 나누고자 합니다. 그 전에 9월 말에 저는 미국에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이 함께 모이는 수련회에 다녀왔습니다. 그 수련회는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Home coming day와도 같은 날입니다. 첫날 저녁 예배,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설교를 시작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한 자로 말하면 무엇인지 아십니까?”예배에 참여한 우리들은 대답하지 못한 채 두리번거렸습니다. 답은 “바로 ‘나’입니다. 그러면 두 자로 말하면 무엇인지 아십니까? ‘또 나’입니다. 세 자로 말하면 ‘역시 나’입니다.”북한이탈주민들의 한 영혼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목사님의 이 말 한마디에 그곳에 모인 북한이탈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마음이 일순간에 무장해제 되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북한이탈주민들은 한인 디아스포라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살고 계십니다. 
 
우선, 대한민국에 살고 계신 북한이탈주민들은 2011년 4월 까지 21,191명입니다(한국, 통일부, 2011년 10월 17일 검색, http://www.unikorea.go.kr). 분단 이후, 북한 주민은 매년 10명 내외로 남한에 입국하였습니다. 남한 입국에 성공한 북한이탈주민들은 1989년까지만 해도 600여명이었으나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되고 김일성 사망과 북한의 경제난 등 체제위기가 고조된 1990년대 이후 높은 증가세를 보여 현재 이만 명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별에 따른 현황을 살펴보면, 2001년까지 남성이 여성에 비하여 월등히 많았으나 2002년부터 여성이 급증하였습니다. 현재, 북한이탈여성들은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림 1> 북한이탈주민 입국인원 현황 

북한이탈여성이 남성에 비하여 월등히 많은 이유는 남성은 직장에 소속되어있어야 하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에 비하여 이동할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또한 인근 국가인 중국 동북 3성 지역의 농촌총각 문제도 북한 여성을 유입하는 원인이었습니다. 2003년 유엔난민기구(UNHCR)의 자료에 의하면 중국내 북한이탈여성이 10만 여명이라고 발표된 것도 그 근거를 제시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입국 연령을 살펴보면, 30대가 32%, 20대는 27%로 가장 많습니다. 19세 이하 청소년층은 16%로 2001년 북한이탈여성이 증가하면서 가족 구성원이 점차 늘었습니다. 이에 남한 정부는 남성 위주의 정착지원에서 가족 중심 및 청소년•여성 정착 지원으로 확대하고 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남한 입국 증가와 더불어 2004년 미국의 북한인권법이 통과하면서, 북한이탈주민의 다국적, 다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제는 한인 디아스포라가 거주하는 많은 나라에 북한이탈주민들이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유엔난민기구(2010)는 북한 출신의 난민이나 망명 신청자가 전 세계적으로 1천명여명이 넘는다고 발표하였습니다. 

국가

영국

네덜

란드

호주

미국

캐나다

노르

웨이

러시아

덴마크

스웨덴

아일

랜드

스위스

키르기스스탄

이스

라엘

소계

인원

581

146

32

25

25

23

14

14

9

8

6

4

3

2

917

) 유엔난민기구. 2010. 자료

) 독일, 미국, 캐나다의 경우 영주권을 취득한 탈북자는 통계에서 제외됨. 한겨레신문 인용. www.hani.co.kr, 2010 9 12 검색

 
또한 제 3국에서 난민 지위자 및 망명 신청을 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 또한 매년 그 숫자가 늘어나 2010년에는 1,194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표 2>. 

년도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인원

67

72

330

349

412

403

502

842

1,097

1,010

1,194

) 유엔난민최고대표사무소(UNHCR, 2010). 한겨레신문 인용. www.hani.co.kr, 2010 9 12 검색


주변의 많은 분들은 제게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하시며 어디에 얼마나 살고 계시는지 궁금해 하십니다. 돕고 싶지만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날 수 없어서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북한이탈주민들을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여러분 가까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족과 늘 함께 하지 못하더라도 항상 마음에 두고 기도하면 눈앞에 선하듯이 말입니다.  
 
얼마 전, 시카고 수련회에서 만나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된 자매가 제게 전화 한 통화를 했습니다. 이틀 동안 같은 방에서 생활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중보하지 못한 것 같아 헤어지면서, 그 자매에게 기도제목이 있으면 전화하라고 했는데 그 말을 마음에 두었나 봅니다. 그 자매는 남편의 형님이 북한을 탈북하기 위해 준비 중이며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했습니다. 생사를 위한 일에 기도로 동참할 수 있어서 감사했으며 이런 귀한 기도제목을 허물없이 나누어준 그 자매가 고마웠습니다.
 
새로운 터전에 정착하게 된 탈북 형제자매들은 참 자유와 정착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탈북 했으나 북한에서의 교육과 사상•문화에 매어 참 자유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새로운 땅에 정착하고 싶지만 사회문화적인 차이와 언어적 어려움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디에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그 이름도 알 수 없으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들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기도하는 심령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더 깊이 교제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는 통로입니다. 

유시은 자매는 연세대에서 통일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Johns Hopkins Bloomberg School of Public Health에서 Post-doctor Fellow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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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동역자로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 거룩하고 축복된 영적 전쟁에 여러분을 초대하며 함께 동역하게 되어 반갑슴니다. 저는 북한이탈주민 덕분에 통일학 박사 학위를 받은 유시은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북한이탈주민과의 만남’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탈주민들이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살고 계신지 모릅니다. 저 또한 10년 전에는 북한이탈주민이 제 주변에 살고 계신지 몰랐습니다. 저는 상담사에 대한 비젼을 품고 낮에는 대학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밤에는 대학원에서 상담교육 석사과정을 공부했습니다. 졸업 후 상담 연수를 마쳤을 때 한 지인의 소개로 통일부 하나원에 상담심리사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북한이탈주민과 북한에 대한 지식도 없었고 하나원이 고아원인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무 능력도 없으며 준비도 없으며 마음도 없었던 저를 하나원이라는 나무에 접붙이셔서 북한이탈주민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하나원 입사 직후 제 몸무게는 10kg 정도나 빠졌습니다. 하루 하루 어떻게 이들을 만나 상담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세상 경험이 없고 미혼이며 젊은 여성인 제가 그들의 눈에 어떻게 보였을지 지금도 생각하면 아득하기만 합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사선을 넘어 중국 땅에서 언제 잡혀 죽을지 모르는 그 불모의 땅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입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경험한 북한이탈주민들의 눈에 저는 그저 아무 것도 모르고 어려움도 겪지 않은 젊은 남한 여성에 불과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저와 개인 상담을 마칠 즈음 “제 얘기가 소설같겠지요.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릅니다.”라고 말하곤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남한에 입국하기 전까지의 모진 여정을 제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갖은 역경 속에서 오뚝이처럼 일어선 사람들이며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고난의 순간을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저는 하나님께 ‘아무 것도 모르는 제게 이런 분들을 왜 주셨나요?저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저를 제발 다른 곳으로 옮겨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도무지 저를 하나원에 보내셔서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몰랐고 제게 환난을 주시는 것 같아 원망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그 기도에 하나님은 “네가 97년도에 북한을 위해 기도한 것을 내가 기억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며칠 후 하나님은 제게 꿈을 보여주셨습니다. 끝없는 해안가를 누군가 저를 엎고 걷고 있었으며 날카로운 화살이 계속 저희를 향해 날라 왔습니다. 그 화살은 제 살갗을 스치갈 때 아팠지만 제게 큰 상처를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때 저를 엎고 계신 그분이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너는 내 등에 업혀 있으니 다만 네게 스쳐지나갈 뿐이다. 모든 화살은 내가 다 맞을 것이다.’ 이 꿈이 있기 전까지 저 혼자 모든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고 원망했습니다. 기도를 하여도 하나님은 아무 대답도 없고 저를 도와주시지 않으며 다만 저 혼자 모든 화살을 맞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저를 혼자 두지 않으셨습니다. 제게 북한이탈주민들이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임을 깨닫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대학에서 편안하게 일하던 제게 상담이라는 비전을 주시고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나게 하시면서 저는 민족을 품게 되었고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긍휼함을 아주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아니었더라면 하나님의 눈물과 심장 떨리는 아픔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들에게 각각의 부르심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 부르심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교제하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사람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제 부르심은 북한과 북한이탈주민을 향한 것이며 그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이 오늘도 저를 일깨우며 그 부르심에 응답하고자 달려갑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북한에 대한 사랑을 여러분에게 품게 하시고 부르십니까. 그 부르심에 아멘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 죽게 하셔서 새생명을 주신 것처럼 우리 또한 북한 땅을 위해 여러분을 내어 드리십시오. 아멘으로 화답하셨습니까.북한과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기도는 북한 땅을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북한 땅을 살리며 그들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 생명의 길입니다. 기도하고 계십니까. 마음과 물질로 헌신해주십시오. 북한과 북한이탈주민들은 여러분 가까이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채워주시는 것처럼 여러분 또한 북한주민과 북한이탈주민들의 필요를 채울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는 여러분들이 함께 중보하며 사랑을 나눌 북한이탈주민들이 어디에 얼마나 살고 계신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유시은 자매는 연세대에서 통일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Johns Hopkins Bloomberg School of Public Health에서 Post-doctor Fellow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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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eunyoo 2011/10/21 06:21  Addr Edit/Del Reply

    와 제이름과 같네요
    동명이인이군요

2010/11/09 11:07 선교 전략
뉴스앤조이(http://www.newsnjoy.co.kr/)에 게재된 기사를 허락하에 올립니다.

김세윤 박사 기고, "'영적 전쟁'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

한국에서 '영적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땅밟기 선교'를 행하는데,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영적 전쟁'이 아니다. '영적 전쟁'은 사단의 나라에 맞서는 것이다. 우리가 가치 판단과 윤리적 선택을 하는 순간마다, 맘몬이라는 우상을 미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단의 통치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 통치를 받는 것이 바로 '영적 전쟁'이다. 그것이 예수께서 가르치고, 사도들이 가르친 ' 영적 전쟁'이다. 

신약 어디에 이교도의 신전을 뱅뱅 도는 방법으로 '영적 전쟁' 하라는 가르침이 있는가. 흔히 여호수아가 여리고 성을 돌며 '땅밟기' 했다고 하는데, 그런 해석을 따르는 것은 원시적인 신학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계시 신약을 두고 왜 구약의 예비 계시로 돌아가서, 특히 여호수아 이야기를 '영적 전쟁'의 준거로 삼는가? 왜 그렇게 구약의 이야기 하나에 몰두하는가? 그것도 신학적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문자주의에 얽매여서 말이다. 여호수아 식으로 '영적 전쟁' 하고 선교한다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교도들 다 죽였듯이 우리도 불신자들을 칼로 다 죽여야 할까? 그것은 과격파 이슬람이 이어받은 "성전', '지하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 계시가 가르치는 '영적 전쟁'은 전혀 그런 게 아니다. 

에베소서가 말하는 '영적 전쟁'

'영적 전쟁' 따위의 미신이 한국교회에 퍼져 도리어 교회의 건강과 선교를 해치고, 전도의 길을 막고 있다. '축사'(요사스러운 기운이나 귀신을 물리쳐 내쫓음)나 '땅밟기' 같은 방식으로 '영적 전쟁' 한다는 사람들에게 왜 그런 식으로 선교하느냐 물으면, 그들은 에베소서 6장 12절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를 언급하며 '영적 전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에베소서에서 '영적 전쟁'을 어떤 방식으로 하라고 가르치느냐 물으면 그들은 대개 묵묵부답이다. 6장 13절 이하를 읽지 않았거나, 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영적 전쟁'은 해야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심각한 '영적 전쟁'의 전장에 서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 사단의 죄와 죽음의 통치에 매일 대항해야 한다. 그렇다면 '땅밟기' 같은 방식이 에베소서가 말하는 '영적 전쟁'일까. 에베소서에는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4~17)고 말한다. 여기서 바울은 로마 병정의 무장 상태를 묘사하여 설명함으로써 '영적 전쟁'의 심각성을 일깨우고 있다. 하지만 허리띠·호심경·군화·방패·검·투구 등 로마 병정의 무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ㅇㅇ의'가 중요한 것이다. 여기 '성령의 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풀어 주지 않았는가. 즉 우리가 진리를 굳게 지키고, 의를 행하며, 열심히 돌아다니며 화평의 복음을 전하여 죄인들을 하나님께 화해시키고, 이웃과 이웃을 화해시키며, 핍박을 믿음으로 이겨 내는 것이 에베소서에서 가르치는 '영적 전쟁'이다. 

에베소서는 에베소의 교회에 보내진 서신으로 이해된다. 에베소서 수신인란에 일부 유력한 사본들이 에베소라는 지명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에베소에는 고대 '세계의 일곱 불가사의들' 중 하나라는 아르테미스(디아나) 여신의 신전이 있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 그 신전을 돌며 '땅밟기' 또는 '축사' 하여 '영적 전쟁' 하라는 가르침이 있는가? 

한국에 엄청난(선한?) 영향을 끼친 미국의 한 유명 선교학 교수가 10여 년 전 한국의 한 대형 교회 목사의 도움으로 양국의 그리스도인 다수를 동원하여 에베소의 아르테미스(디아나) 여신 신전 폐허를 밟는 '영적 전쟁'을 하였다 한다. 이런 뉴에이지 소설 같은 '영적 전쟁'의 결과는 무엇인가? 그래서 터키와 이웃 무슬림 나라들에 복음의 역사가 활발하게 되었는가? 세상에 자유·정의·평화가 증진되었는가? 그러기는커녕 그 직후 저 과격파 무슬림들이 그들식 '영적 전쟁'(지하드) 을 벌여 온 세계(특히 서방 기독교 세계)가 전쟁과 테러 공포에 휘말리고, 종교 전쟁, 문명 충돌의 커다란 위기를 맞게 하지 않았는가? 이런 결과를 거액을 들여 그런 '영적 전쟁'을 감행한 사람들의 논리에 맞추어 해석하면 우리 하나님이 아르테미스(디아나) 여신에게 패배했다는 것인가?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이런 이교도적이고 미신적인 '영적 전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가르친 진정한 '영적 전쟁'을 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곧 믿음 안에 굳건히 서서, 진리를 고수하고, 사랑과 의를 행하고, 성령의 도움으로 화평의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사단의 죄와 죽음의 통치에 맞서 싸우라는 것이다. 

희생당한 어린양의 방법

신약의 모든 책들이 다 이러한 '영적 전쟁'을 가르친다고 할 수 있지만, 그중에서도 전쟁 언어를 가장 절실하게 사용하며 '영적 전쟁'을 말하는 책은 요한계시록이다. 그 책은 교회를 유다의 사자 다윗적 메시아 예수가 소집한 12사단 14만 4,000의 군대라 한다. 그리하여 용·짐승·거짓 선지자라는 사단의 삼위일체에 맞서 거룩한 전쟁을 처참히 치르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그 책은 사단의 나라에 대항해서 하나님나라가 어떻게 승리하는가, 교회가 그리스도의 군대로 그 전쟁에 어떻게 참여해서 하나님나라의 승리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는가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아시아 일곱 교회들에 보내진 하나의 순회 서신이다. 아르테미스 여신의 신전이 있는 에베소 교회에도 보냈고, 사단의 왕좌가 있는 버가모 교회에도 보냈다. 하지만 그 책 어디에도 그 신전들 주위를 '땅밟기' 하고 '축사'하는 식으로 '영적 전쟁' 하여 승리하라는 말은 없다. 도리어 요한계시록은 "희생당한 어린양"의 방법으로, 즉 순교를 무릅쓴 자기희생의 정신으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여 사단의 죄와 죽음의 통치를 이기라고 가르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는 로마 황제 체제로 현신화하여 팍스 로마나(Pax Romana)의 거짓 복음으로 열방을 미혹하는 사단의 나라에 맞서 여러 도시에 세워진 황제 숭배의 신전을 '땅밟기' 하여 '영적 전쟁' 하라는 가르침은 일언반구도 없다. 그 책은 도리어 강요되는 황제 숭배를 거부하고, 팍스 로마나의 유혹에 도취되지 말고, 창조주 하나님만 진정한 왕이시니 그의 통치 아래서만 진정한 의와 평화와 구원이 있다는 진리를 선포하여 사단의 거짓 왕국을 극복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사단은 '짐승'으로 무력과 압제와 수탈 등의 방법으로 세계를 지배하지만 교회는 창조주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고 그의 사랑의 이중 계명을 실천하는 삶으로써, 즉 사랑과 자기희생과 진리 증거로 '영적 전쟁'을 하여 사단의 죄와 죽음의 통치를 극복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희생당한 어린양'의 방법이고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다. 예수와 사도 바울 그리고 계시록은 교회로 하여금 사랑으로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되, 말로만이 아니라 삶으로써 신실하게 선포하여, 사단의 죄와 죽음을 극복하라고 일관되게 가르친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영적 전쟁'이다. 

'영적 전쟁'의 전쟁터는 우리 실존의 삶이다. 날마다 가치 판단과 윤리적 선택이라는 갈림길에서 사단의 통치를 물리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 '영적 전쟁'이다. 그런 선택의 순간마다 하나님의 통치는 구체적으로 사랑의 이중 계명을 실천하라는 요구로 온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께서는 모든 계명을 '이중 사랑 계명'으로 요약하셨는데 (막 12:28~34), 사도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의 법' 또는 '그리스도의 법'이라 했다 (고전 9:21, 갈 6:2). 하나님 사랑의 반대말은 우상 숭배이다. 예수께서 가장 경계한 우상은 불상도, 아르테미스 신상도, 버가모의 사단상도, 신격화된 황제상도 아니라 바로 맘몬이다 (마 6:24, 눅 16:13). 모든 우상 숭배는 파괴력이 있다. 그러나 가장 큰 파괴력을 가진 우상 숭배의 형태는 바로 돈 또는 재물에 대한 우상 숭배이기 때문이다. 맘몬·재물이 우리의 안녕과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우상 숭배가 부자간 형제간도 갈라 원수가 되게 하고, 사회 계층 간의 불의·불평등·갈등을 낳고, 나라 간 전쟁도 일으키며, 전반적으로 인간성을 황폐화한다. 그러기에 예수께서 그 우상 숭배를 가장 심각히 경고하신 것이다. 오늘날 사단은 우리 육신을 자극하여 맘몬이라는 우상을 숭배하게 한다. 돈이 우리에게 안녕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니 돈을 많이 벌기 위해 거짓말도 하고, 사기도 치고, 바가지도 씌우고, 유해 식품 등 가짜 물건도 팔고, 부실 공사도 하고, 뇌물을 주고받기도 하고, 힘으로 남을 억압하라고도 한다. 이런 사단의 통치에 맞서 있는 우리에게 날마다 성령이 상기시키는 것은 사단의 그러한 통치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라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하나님나라를 그리스도의 재림 시 오는 것으로만 가르쳐 먼 미래로 연기해 버리든가, 죽음 뒤 우리의 영혼이 가는 저 위 하늘 어딘가로 밀어 올려 버려, 많은 성도로 하여금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과는 무관한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을 통하여 이미 출범한 하나님나라의 현재성을 강조하셨다. 사도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하나님의 통치를 지금 대행하심을, 즉 그의 성령을 그의 교회에 퍼부어 주시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의 통치의 일꾼 또는 군사가 되어 사단의 죄와 죽음의 통치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통치를 실현해 가도록 하신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기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하나님의 통치는 오늘 우리의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맘몬 우상 숭배 대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착취 대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나라)의 법' 또는 '그리스도의 법'을 지키라는 요구로 오는 것이다. 물신주의적 탐욕을 배제하고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자세로,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시고 들에 피는 백합화도 입히시는 하나님의 '아빠' 노릇 해 주심을 믿고, 그의 뜻에 순종하며 살라는 요구로 오는 것이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이웃을 억압하고 착취할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라는 요구로 오는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가치 판단과 윤리적 선택의 순간에 성령은 맘몬 우상 숭배와 이웃 착취를 조장하는 사단의 통치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통치의 갈림길을 밝히 보여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사단의 통치의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수 있는 믿음을 주시는 것이다. 이렇게 성령의 일깨워 주심, 인도하심, 그리고 믿음 주심에 힘입어 우리가 사랑의 이중 계명을 실천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단의 통치를 극복하고 '성령의 열매들' (갈 5:22~23 - 사랑, 화평, 관용, 친절, 선함, 신실, 온유, 절제 등 도덕적 가치들!), 곧 '의의 열매들'을 맺는 것이다. (빌 1:11; 마 7:15~23) 이것이 진정한 '영적 전쟁' - 성령에 힘입어 악령과 싸움 - 이다. 그러므로 날마다 가정 안에서도 서로 사랑함으로써, 직장이나 사업장에서도 정당한 이익만 얻으며 나의 상품이나 서비스로 이웃의 삶을 안전하고 풍요롭게 하며, 우리 사회 또는 환경 전반에서도 자유·정의·화평·건강이 증진되도록 노력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고, 사단의 죄와 죽음의 통치에 맞서는 '영적 전쟁'을 치루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진정한 '영적 전쟁'을 한다면, 우리나라에는 하나님나라의 샬롬이 얼마나 크게 실현될 것인가? 그것은 또 전 세계에 얼마나 큰 선교의 효과가 있을 것인가? (마 5:13~16, 벧전 2:9) 


'땅밟기'는 샤머니즘을 기독교로 포장한 것에 불과 

봉은사나 카자흐스탄, 또는 예루살렘에 가서 '땅밟기' 하는 것은 '영적 전쟁'이 아니다. 미신, 즉 샤머니즘의 발로다. 그리스도인들이 무리지어 세를 과시하면서 무슨 도시를 하나님께 바친다고 외쳐 대거나, 무슨 우범 지대 또는 퇴폐 지역을 '땅밟기' 한다고 해서 그 도시, 그 지역이 '성시화'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그릇된 '영적 전쟁'의 폐해는 중세 십자군 전쟁이 우리에게 충분한 교훈을 남겼다. 십자군 전쟁이 지금까지도 교회의 이슬람 세계에 대한 선교를 가로막고 있다는 현실을 똑바로 보라. 11세기 초 부터 200~300년간 서양의 기독교 국가들이 십자가 기를 높이 들고 몇 십만의 군대를 동원해 성지를 중심으로 근동 지역을 '땅밟기' 했다. 그 땅 이곳저곳에 십자가의 기를 꽂고 주께 바친다고 난리를 피운 결과가 무엇인가. 그렇게 해서 성지와 중동 세계의 귀신들을 몰아내고, 이슬람을 박멸하고, 주 예수의 이름만을 부르는 교회로 가득 찼는가. 괜히 기독교 국가였던 비잔틴 제국만 멸망시켰고, 이슬람 터키 제국이 들어서게 했으며, 고대 기독교가 왕성했던 아시아와 북부 아프리카 지역이 다 이슬람 땅이 되게 하지 않았는가? 지금까지도 무슬림은 기독교에 대해 극렬히 적대하고, 교회의 선교를 막고, 기독교 세력이 무엇만 하려 하면 즉각 '십자군' 이름을 대며 저항하지 않는가. 십자군 '땅밟기'가 중동 전체를 이슬람화하는데 공헌했다는 역설적 결과를 낳은 것이다. 

많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샤머니즘을 극복하지 못하고, 복음이 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지도 못하고, 신학적으로 사고하는 능력도 갖추지 못한 채, 이른바 선교 열정만으로 무슨 무슨 '스탄'이라는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땅밟기'하는 선교의 결과를 보라. 중세의 십자군이 일으킨 역효과가 그대로 나타고 있지 않은가. 봉은사 '땅밟기'도 그런 결과를 낳지 않았는가. 그리하여 "너희들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욕을 당한다"라고 사도 바울이 자기 백성 유대인들에게 한 절규(롬 2:24, 사 52:5)가 오늘 한국교회에도 하는 절규가 아닌가? 그런데도 한국의 선교 지도자들은 선교 전략으로 '땅밟기'를 주장한다. 몇 년 전 미국 시카고 휘튼대학에서 열린 한인 세계 선교 대회에서도 '땅밟기'를 중심으로 한 선교 전략을 짰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런 중요한 대회에 모인 신학자·선교학자·교회 지도자·선교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그런 선교 '전략'을 짰다면, 그것은 놀랍고 슬픈 일이다. 

한국 교회는 급격히 쇠락하고 있다. 일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군 운동의 정신과 승리주의(Triumphalism)에 빠져 있는 듯하다. 몇몇 소수의 힘없는 그리스도인이나 단체들을 제외하고는 진정한 회개와 갱신의 기미를 보여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많은 교회의 구원론은 사실상 구원파 또는 고대의 영지주의의 구원론에다가 중세 가톨릭교회의 공로-상급 신학을 합성하여 놓은 것이고, 그들의 윤리는 세 가지(주일 성수, 헌금, 전도) 하기와 세 가지(술, 담배, 제사) 안 하기로 축약된 바리새적 경건주의요, 그들의 성경 해석은 성경의 '정확 무오' 교리만 앞세우며 문자주의와 율법주의를 주입하는 것이어서, 성도들을 성경의 이곳저곳 본문들을 들이대며 접근하는 갖가지 이단 사설들(예: 여호수아 6장을 들이대는 '땅밟기'식 '영적 전쟁', 출 20:4을 들이대는 '가계 저주론')의 쉬운 제물이 되게 하는 것이며, 그들의 영성은 다분히 샤머니즘적인 성격을 띠는 것이다. 

'땅밟기' 선교는 우리 조상들이 정월 대보름에 지신밟기 하던 샤머니즘을 기독교로 포장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 교회일수록 진정한 '영적 전쟁'은 등한시하면서 예수께서 가장 엄중히 경고한 맘몬 우상 숭배를 조장하는 기복 신앙을 열심히 북돋아 많은 성도들을 사실상 사단의 나라 속으로 계속 밀어 넣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이 기복 신앙의 '가짜 복음'을 선포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많이 벌기를 염원하게 하는 분위기를 만들 때마다, 사실상 그들로 하여금 사단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의 통치에 대적하게 하는 것이다. 즉 사단의 나라 군사로서 하나님나라에 대항해 '영적 전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 역설이 벌어지는 곳이 지금 '영적 전쟁' 한다는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 안에 "믿음 좋다"는 그리스도인 사기꾼들이 그렇게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해야 할 진정한 '영적 전쟁'의 제일 전선은 우리 자신의 삶의 현장이요, 제이 전선은 우리 자신의 교회 안인 것이다. (아니, 제일 전선은 우리의 교회 안이고, 제이 전선이 우리의 삶의 현장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겠다) 그리고 제삼 전선은 사단의 나라의 거짓·불의·억압·갈등에 맞서 하나님나라의 진리·공의·자유·화평을 확대해야 하는 한국 사회인 것이다. 한국 교회의 신학적 성숙 없이 어떻게 이런 진정한 '영적 전쟁'을 치룰 수 있을까? 한국 교회가 얼마나 더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 얼마나 더 쇠락해야, 회개와 영적 갱신 그리고 신학적 성숙의 운동이 일어날까? 

김세윤 / 풀러신학교 신약학 교수

(이 글은 <뉴스앤조이>의 유연석 기자가 10월 28일 김세윤 교수와 전화 인터뷰하고 녹취한 것을 김 교수가 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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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1 03:00 선교 전략

전략적 선교자원 한인 디아스포라를 동원하라[각주:1]

디아스포라[각주:2] – 선교의 전략적 자원

구약성경 이후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까지 4세기동안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가 없었다. 그 동안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는가? 로고스이신 그분은 말씀으로(in word) 계시하실 뿐 아니라, 역사의 주인으로서 세속사와 교회사를 친히 주관하고 운행하심으로써(in deed) 그 뜻을 드러내신다. 바울은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한다(갈 4:4). 그리스도가 우연한 때에 아무데나 오신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된 시간표를 따라 한 치 오차도 없는 정확한 장소와 시점에 모든 것이 준비된 상태에서 오셨다는 말이다. 흔히 '중간기'라 부르는 이 시기에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초림을 어떻게 준비하셨는가?

성서신학자들과 교회사가들은 여러 가지 역사적 사건들을 나열한다. 특히 그리스‐로마제국의 융성과 헬라(Greece) 문화/언어의 확산, 그리고 흩어진 유대인들(Diaspora)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보여주는 빼어난 예들이다. 헬라어의 보급은 신약성경이 기록되어 널리 배포될 환경을 조성했고,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던 로마제국의 교통망과 치안의 확립은 광활한 지역에 복음을 들고 나가는 이들의 자유롭고 안전한 여행을 보장했으며, 흩어진 유대인들은 가는 곳마다 회당을 짓고 구약성경을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God fearers)을 준비시켜 복음과 선교의 교두보를 만들었다[각주:3]. 예수님 공생애 당시 구원 받은 백부장이라든지, 베드로를 통해 복음을 영접한 고넬료, 바울이 선교여행 중 찾아간 회당들을 중심으로 복음을 비교적 쉽게 받아들였던 이방인들이 대부분 그 부류에 속한 이들이었다.

결국 디아스포라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계 곳곳에 전하려는 하나님의 선교적 계획 성취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도구였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갖는 인종, 언어, 문화적 단일성의 한계를 뛰어넘은 제3문화 집단이었다. 팔레스타인에 머물렀다면 결코 극복할 수 없었을 문화적 배타성과 폐쇄성, 그리고 율법적 경직성과 '장로들의 유전'을 그들은 새로운 환경 덕분에 무난히 극복할 수 있었다. 이방인들 속에 섞여 살면서 그들도 짐승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창조된 존귀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예루살렘을 멀리 떠나 곳곳에 회당을 지으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반드시 성전이라는 특정장소에 매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으며, 제사장이 없이도 평신도들이 예배와 의식을 집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선교적으로 의식이 열리고 생각이 트인 집단으로 변해 사도행전의 역동적 드라마를 가능케 한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초대교회 선교를 위해 디아스포라를 택하신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사도 바울의 독특한 언어 문화적 유산을 생각해보라. 그는 로마 시민이자 유대인인 디아스포라 부친에게서 태어났다.[각주:4] 그는 소아시아의 헬라 도시인 다소에서 나고 자랐고, 유대인의 언어인 히브리어 및 아람어와 더불어 이방인의 언어인 헬라어에 모두 능통했다. 그는 비록 자신의 혈족인 유대인을 복음화하는 일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었지만 (롬 10:1), 자신이 특별히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 받은 사실을 깨달았다 (롬 11:13). 그는 자신이 부름 받은 다양한 사역적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소양을 갖추고 있어서 “상황의 필요에 따라 팔레스타인‐유대 개념, 헬라‐유대 개념, 그리고 헬라‐이방 개념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었다,”[각주:5] 그는 진실로 타문화권 사역에 이상적으로 준비된 사역자였다. 바울뿐 아니라 바나바, 실라, 누가, 마가요한, 디모데, 브리스길라, 아굴라, 루디아, 아볼로 등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 선교사들도 그와 같은 디아스포라 출신들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예수님 자신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떠나 이 세상에 오신 디아스포라 선교사였다. 복음의 원형인 언약(창 12:1‐3)의 본질 역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을 디아스포라로 부르신 소명이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 그리스도의 지상명령(마 28:18‐20)이 본질적으로 “가라”는 명령인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우리에게 친숙하고 편안한 영역을 떠남이 없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할 방도는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자기 백성을 흩으시는 것이다. 마치 농부가 분명한 목표와 의도를 가지고 씨를 뿌리듯[각주:6] 디아스포라는 하나님의 의도적 섭리이지 우연한 사건이 아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8에 예언된 세계선교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행 8:1‐4), 그리고 헬라인(이방인)에게 (행 11:19‐26) 디아스포라로 흩어짐으로써 구현되었다.[각주:7]

한인 (아시아인) 디아스포라[각주:8]의 가능성

우리는 지금 역사상 전례 없는 기동성과 이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유학이나 이민 등 능동적 이주뿐 아니라, 전쟁과 내란, 천재지변으로 인한 난민이나 정치적 망명자 등 수동적 이주도 전례 없는 규모로 불어나고 있다.[각주:9] 지난 세기만 해도 대부분의 아시아인들은 그들의 인종 언어적(ethnolinguistic) 경계 내에 거주했었다. 한민족도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 갇혀 지냈다. 인종, 문화, 언어적 동질성 면에서나 문화적 배타성 및 폐쇄성 면에서 지구상에 유대인을 가장 닮은 민족이 있다면 아마 한인이 아닐까 싶다. 선교하기에 가장 장애요인이 많은 두 민족인 유대인과 한인을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우리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 신비한 경륜을 주권적으로 행사하시는 절대자이심이 틀림없다.

한인의 한반도 편중이 깨지기 시작한 것은 멀리는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가깝게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냉전체제가 종식되던 90년대부터라 할 것이다. 일제 36년의 침탈을 통해 오랜 세월 한반도라는 우물에 갇혀 지내던 한민족은 당시 약 2천만을 헤아리던 한반도 인구의 사분지 일 이상이 해외로 흩어지는 민족 대이동 드라마를 연출했다.[각주:10] 그 이후에도 1937년 스탈린에 의한 연해주 교포들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라든지, 해방 이후 한국동란과 월남파병을 통한 분산, 1965년 미국 이민법 개정 이후 가속화된 북미주 이민물결, 중남미 농업이민, 간호사와 광부 중심의 유럽 이주, 외환법 개정 및 해외여행 자유화 및 다양한 형태의 해외투자, 세계화 물결에 편승한 대량 유학바람, 73년간 지속된 냉전체제의 압박, 20세기말 급속한 냉전의 종식과 그에 따른 범세계적 민족이동 등 한반도 안팎의 크고 작은 다양한 사건들이 한민족 분산을 가속시켰다.

동방 '은자(隱者)의 백성'(the hermit nation)[각주:11] 한민족을 긴 동면에서 깨어나게 하시고 세계 방방곡곡으로 흩으신 하나님의 섭리 이면에는 무슨 뜻이 있었을까? 물론 하나님의 선교적 목적 때문이었다. 로마제국의 침략을 통해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고 흩어져서라도 세계를 품고 선교의 과업을 감당하게 하신 ‘선교의 하나님’[각주:12]께서 불과 백여 년 역사를 통해 교회사상 전례 없는 괄목할만한 부흥과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를 선교의 도구로 쓰시기 위해 한인들을 강권적으로 흩으신 것이다.[각주:13] 현재 약 600백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한인 디아스포라의 엄청난 선교적 잠재력을 생각해보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다양한 문화와 언어와 인종에 노출되어 함께 섞여 사는 가운데 자문화 중심적 편견과 아집을 벗어버리고 타문화권 선교를 위해 이상적으로 준비된 것이다. 이것은 비단 한민족뿐 아니라 다른 아시아 인종들에게도 해당되는 하나님의 섭리이다. 현재 전 세계에는 7천만을 헤아리는 화교들이 흩어져 살고 있고, 인도계 디아스포라가 3천만, 필리핀계 디아스포라가 9백만, 일본계 디아스포라가 3백만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각주:14] 그들은 대부분 본국의 동족들보다 복음에 대해 더 열려있어서 전도와 선교의 측면에서 매우 전략적인 자원인 셈이다.[각주:15]

역사의 수레바퀴에 휩쓸려 우여곡절 끝에 수동적으로 이국땅에 옮겨진 한인동포를 포함하여 자발적으로 이주한 이민과 유학생에 이르기까지 요즈음은 세계 어느 곳에 가든 한인이 없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1985년 미국에서 시작된 연례 유학생수련회(KOSTA)만 하더라도 이제는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하여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 러시아, 중국, 대만, 일본,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여러 나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잘 준비된 선교사들을 심심찮게 배출하고 있다. [각주:16] 한국교회가 파송한 타문화권 선교사 수가 1만을 헤아린다지만, 600만 코리안 디아스포라 중 10%만 그리스도인이라 가정해도 그 수는 무려 60만이나 된다. 그들은 언어, 문화적으로 잘 준비된 인력이고 해외 선교현장에 정착해 살고 있는 전략적 일꾼들이다. 그들에게는 비자 문제도 없고, 재정적 지원이 없어도 자비량하며 사역할 수 있다. 그들은 선교지 사회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섞일 수 있는 용모를 가지고 있다.[각주:17] 그들은 이주한 나라의 비주류 소수계층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선교지 소수민족의 입장을 깊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서구인들에 비해 더 장기적인 헌신을 하는 편이며, 불리한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수많은 애환을 경험했기 때문에 선교지에서의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비교적 쉽게 극복할 수 있다. 대부분의 아시안 디아스포라 사회는 학문적 열심과 전문성에 대한 성취욕이 높은 편이어서[각주:18] 선교지 비자 습득을 위해서나 토착교회의 역량을 구축하고 현지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측면에서 매우 유리하다. 그들의 시각이 열려 많은 디아스포라 일꾼들이 선교에 참여하게 된다면 남은 과업이 얼마나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완수될 수 있겠는가![각주:19]

급성장하는 2/3세계 교회

오늘날의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의 분포는 세계선교를 위해 우리 시선을 서구교회가 아닌 2/3세계 교회를 주목하게 한다. Barrett & Johnson(2001)의 통계에 근거해 작성된 아래 도표를 보라. 검정막대로 표시된 서구교회는 지난 30년간 18% 성장한 반면, 새롭게 부상하는 비서구교회는 같은 기간에 131%나 성장했다. 수치상으로 볼 때 이 시대는 파랑막대로 표시된 아시아와 아프리카와 남미 교회가 주도하고 있는데, 그들은 숫자만 많을 뿐 아니라 생동력이 넘치고 핍박과 가난 속에서도 성장한 교회들이다.[각주:20] “지구촌에 12명의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산다고 가정했을 때, 북미주에 2명, 중남미에 2명, 아프리카에 3명, 아시아에 3명, 그리고 유럽과 태평양에 각각 1명이 살고 있는 셈이다.”[각주:21] “1800년에는 아마도 1% 정도의 개신교도만이 유럽과 북미주 밖에 살았을 것이다. 1900년에 이르러 그 규모는 10%로 늘었고, 오늘날은 약 2/3의 개신교도 및 구교도들이 그곳에 살고 있다.”[각주:22]

선교사 파송 추이도 그와 유사하다. “10년 전에는 대략 91%의 해외 선교사들이 서구에서 파송되었으나 2000년에는 그 비율이 79%로 줄어들었다. 대단히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비서구 세계가 파송한 선교사의 수는 3배로 증가했다. (중략) 선교사 파송의 가장 극적인 성장은 한국에서 일어났는데, 그 수는 1990년 2,032명에서 2000년 10,646명으로 늘어났다. (중략) 비서구권 선교사 파송의 두 번째 성장을 기록한 나라는 브라질로 1,080명의 선교사를 파송했고, 그 다음은 필리핀으로 678명의 타문화권 선교사를 파송했다. 46,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미국은 여전히 현저한 선두를 지키고 있고 지난 10년간 6,000명의 새로운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반면에 노르웨이와 스웨덴, 호주, 뉴질랜드 등 다른 전통적 파송국가들은 해외 선교사의 심각한 수적 감소를 경험했다.”[각주:23]

비전 2025와 아시안 디아스포라 동원사역

Wycliffe Bible Translators와 자매기관 SIL International은 매 3년마다 열리는 국제총회 1999년 모임에서 ‘비전 2025’라는 야심찬 목표를 설정했다. 비전 2025는 늦어도 2025년까지는 아직도 자기네 말로 기록된 성경이 없는 3천 미전도 종족 집단의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번역해주는 일이 최소한 시작되게 하자는 결의이다.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으로 더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준엄한 사실을 인정하면서, 두 단체는 오랜 기간 지속해 온 사역적 관행을 과감히 초월해 창의적인 방식들을 도입하고 남은 과업의 완수를 위해 필요한 새로운 자원들을 동원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새로운 패러다임은 중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와 디아스포라 등 새롭고 전략적인 자원들에 시선을 돌리게 했고, 마침내 라틴아메리카 동원사역(Latin America Initiative)과 아시안 디아스포라 동원사역(Asian Diaspora Initiative) 같은 새로운 전략사업이 출범되었다.

이미 언급한 디아스포라의 전략적 가치를 생각할 때, 비전 2025의 성취를 위해 아시안 디아스포라 교회들을 동원하는 이 새로운 사업은 매우 타당하고 시기적절하다고 본다. 국제 위클리프(Wycliffe International)는 2010년까지 1,000명의 아시안 디아스포라를 포함한 2,000명의 아시아 출신 사역자들을 동원하는 목표를 세웠다.[각주:24] 이것은 물론 아시안 디아스포라 동원사역만의 목표가 아니라 모든 아시아 위클리프 단체들(한국, 일본, 홍콩,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네팔, 인도), 그리고 아시안 디아스포라가 밀집한 세계의 여러 지역들(북미주, 중남미, 유럽, 호주 등)이 함께 짊어져야 할 과업이다. 지난 반세기동안 북미주 선교사들을 배출하는 주요 통로 역할을 감당한 어바나 선교대회(Urbana Convention)의 아시아계 참석자 비율이 1980년대부터 급성장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각주:25] 2000년 대회의 경우, 18,818명의 참석자 중 아시아계가 4,895명으로 전체 참석자의 26.1%를 차지했고 [각주:26] 2003년 대회는 19,086명의 참석자 가운데 아시아계 비율이 27.3%로 늘어났는데[각주:27] 그들 중 상당수가 타문화권 선교에 헌신한 것으로 알려졌다.[각주:28]

한인 디아스포라 선교네트워크(KODIMNET)의 필요성과 시급성

지난 수년간 필자는 아시안 디아스포라 동원사역의 책임자(International Coordinator)로서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을 방문하고 교제하는 특권을 누려왔다. 그 과정에서 전 세계에 흩어진 한인 디아스포라 사회의 엄청난 선교적 잠재력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고, 이 잠자는 거인을 깨워 세계선교의 남은 과업에 투입해야 할 필요성과 시급성을 절감했다.[각주:29] 얼마 전 유럽의 한인교회에서 선교세미나를 인도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필자의 강의를 그곳의 한인교포 2세들이 4개의 다른 언어(영어, 불어, 독어, 화란어)로 동시통역을 하는 게 아닌가! 그들의 언어 문화적 역량에 감동한 필자는 큰 기대감을 가지고 유럽 거주 한인 디아스포라의 선교 전략적 가치에 대해 역설하였다. 그러나 젊은이들이나 지도자들 공히 별로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필자는 그들이 경제적 영세성 때문에 세계선교의 과업을 짊어지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유럽에 있는 대부분의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가 경제적으로 취약하기 때문에 선교를 우선순위로 생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받은 달란트의 분량대로 이윤을 남길 것을 기대하시지, 주시지 않은 것을 바라시는 분이 아니다. 유럽의 한인교회가 비록 경제적으로 영세하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있는 탁월한 인적자원을 세계선교를 위해 내놓으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한 달란트를 주시고 다섯 달란트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은 아니지 않은가? 유럽과 중남미와 아시아 여러 나라에 흩어진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은 그들의 손에 있는 인적자원을 바치고, 북미주와 호주와 한반도에 있는 교회들이 인적자원과 더불어 물적 자원을 바쳐서 십시일반으로 함께 돕는다면 현 상태로도 얼마든지 의미 있는 선교동역이 가능할 것이다.

필자는 지난 2003년 1월 북미주 한인 선교동원 심포지엄(Symposium on Korean American Missions Mobilization)에서 이 문제의 대안으로 세계선교를 위한 한인 디아스포라 선교네트워크(KODIMNET: Korean Diaspora Missions Network)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그 구성을 위한 몇 가지 실천방안을 제안하였다.[각주:30] 그 어간에 북미주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의 선교적 협력과 동역을 도모하고 촉진하기 위한 모임으로 세계선교동역네크워크(KIMNET: Korea Inter‐Missions Network)와 Project BGAN(Bringing the Gospel for All Nations)[각주:31] 등의 네트워크가 출범했는데, 이런 모임을 북미주 KODIMNET으로 보고, 중남미와 유럽, 아시아, 대양주 등 다른 대륙에서도 유사한 네트워크들이 짜여진다면 그 운동들을 잇는 범세계 한인 디아스포라 선교네트워크가 태동될 수 있고 그러한 시도를 통해 전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 교회들이 자원과 기회를 공유하며 세계선교의 남은 과업 완수를 위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한편, 세계선교에 한국 젊은이들을 본격적으로 동원하기 위해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출범한 선교한국 운동은 그간 대회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해외 교민들의 참여가 늘어나자 점차 ‘한반도’로부터 ‘한민족’ 선교운동으로 방향을 수정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선교한국 2004 대회 직후인 8월9일, 서울 사랑의 교회 교육관에서 선교한국 주최로 한인 디아스포라 선교네트워크(KODIMNET) 발기모임이 열리게 되었고, 여기에 북미주와 중남미, 유럽, 호주, 중국 등지에서 활동하는 동원사역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한인 디아스포라 선교현황을 나누고 바람직한 협력방안을 논의한 후 지속적인 협력을 다짐하였다. 이 여파를 타고 지난 9월21‐23일 아르헨티나에서는 중남미 한인교회들의 선교네트워크(LAKOMNET: Latin America Korean Missions Network)가 태동되었고, 다른 대륙들과 나라들에서도 물밑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에 발맞춰 향후 GBT의 동원사역도 한반도를 넘어 온 세상에 흩어진 600만 한인 디아스포라를 겨냥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네트워크가 가능하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장해물은 집단이기주의적 근시안이다. 개인과 특정단체와 지역교회의 높은 담장을 허물고 세계선교라는 공동목표를 향해 우리의 역량과 자원을 한 주머니에 모을 수만 있다면 남은 과업의 완수는 그리 멀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힘이 더 세지거나 자원이 더 풍부해져야 지상명령을 완수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남은 과업 완수의 공적(公敵) 1호는 부족한 자원이나 인력이 아니라 협력과 동역의 부재이기 때문이다.

Robb은 David Barrett과 James Reapsome이 공저한 700 Plans to Evangelize the World 의 자료를 인용, 협력 체제의 부재가 세계 선교의 가장 큰 장해요인이라고 밝히면서, 범세계적이고 초교파적인 협력 체제의 구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남은 과업은 영원히 완수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각주:32]10년 전에 출판된 그 책에 따르면 당시 세계 복음화를 겨냥하여 진행 중이던 프로그램들의 삼분지 이가 각각 스스로를 가장 중심적인 운동으로 생각하면서 다른 단체나 프로그램과의 유대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해 나가고 있었고, 다양한 단체들과의 실질적인 협력체제 구축을 진지하게 추구하는 선교단체나 교단은 겨우 4% 밖에 안 되는 형편이었다.

KODIMNET은 지금까지 모래알처럼 흩어져 좀처럼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던 한국 및 한인 디아스포라 선교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는 개념이라 믿는다. 이것은 새로운 대형단체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흩어진 개인들과 교회들이 하나님이 주신 자원과 역량을 결집하여 범세계적 선교운동을 일으키는 일이다. 구체적인 예로, 앞에서 언급한 유럽의 한인 2세가 선교사로 헌신하고 한반도와 북미주에 있는 교회들이 십시일반으로 그의 재정적 필요를 채워준다면 잘 준비된 전략적 인력이 낭비되지 않고 세계선교를 위해 의미 있게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북미주에서는 세계한인선교대회(KWMC)와 세계선교동역네크웍 (KIMNET), Project BGAN 등이 북미주 KODIMNET의 중심축 역할을 감당해주면 될 것이고, 한반도에서는 선교한국 사무국과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가 섬겨주고, 중남미는 LAKOMNET이 그 기능을 감당하며, 유럽, 아시아, 대양주는 향후 조직되는 네트워크들이 대륙별 혹은 국가별 KODIMNET을 구축해주면 향후 범세계 한인 디아스포라 선교네트워크(Worldwide KODIMNET)가 구축되어 운영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선교에 헌신한 개인들과 교회들은 이러한 국가별, 대륙별 네트워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지원함으로써 이러한 연합 선교운동에 기여할 뿐 아니라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네트워크란 모든 이에게 문이 열려있는 운동으로 누구든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하며 유익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장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느슨하고 실속 없는 운동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실제로 네트워크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헌신된 인력과 자원이 필요한데,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위에 거론한 다양한 도우미 단체들의 역할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단체들과 운동들을 지원하고 협력하는 것은 대단히 효과적인 선교참여의 방편이다.

토의를 위한 질문

  1. 전 세계에 흩어진 한인 디아스포라의 잠재력을 선교적 동력으로 엮어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2. KWMC, KWMA, KIMNET, Project BGAN, LAKOMNET, 선교한국을 비롯한 기존 네트워크들 및 운동들을 한 데 엮어 범세계 한인 디아스포라 선교네트워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3. 이미 앞서가고 있는 북미주와 한반도의 선교 네트워크들이 향후 수평적(다른 대륙들)으로, 그리고 수직적(다른 디아스포라 집단들)으로 확산/확장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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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필자는 2002년 1월부로 Wycliffe Bible Translators 국제본부의 Asian Diaspora 동원사역을 맡게 되어 디아스포라 신학 및 선교전략을 정리하기 시작하여 2003년 1월 Denver, Colorado에서 열린Symposium on Korean American Missions Mobilization 200에서 영문초안을 발표했다. 그 글이 계간지한국선교 KM(2003년 봄)에 소개되었고, 한글로 보완한 글이 2004년 Baltimore Forum에 발표되었는데, 본고는 GBT 2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손질한 것임을 밝힌다. [본문으로]
  2. Diaspor는 헬라어 동diaspeirei분산하다 8:1, 4; 11:19의 명사형으로 원래 팔레스타인을 떠나 타지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7:35; 1:1,벧 1:1) [본문으로]
  3. Franklin(2001)과De Ridde1975:77)를 참조 [본문으로]
  4. Latourette1975:6) [본문으로]
  5. Verkuyl1978:11 [본문으로]
  6.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사용된 동사가speirei( 13:)인 사실을 주목하라 [본문으로]
  7. 두 구절 공히diasparente(8:4, 11:19)가 사용되었다 [본문으로]
  8. 자기네 언어인종적(ethnolinguistic) 근원지를 떠나 타지에 흩어져 사는 한인(아시아인). [본문으로]
  9. 참조: 국제연합 산하 UNHCR http://www.unhcr.ch) 자료. [본문으로]
  10. 박기호(1999) [본문으로]
  11. Griffis(1882) [본문으로]
  12. Stott (1999) [본문으로]
  13. 한반도에 복음이 소개된 후 한민족이 나라를 잃었다는 사실도 이스라엘과 유사한 상황이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된 부흥운동이 한반도 전역을 강타한지 불과 3년 후 한일합방의 치욕을 경험하면서 민족 대이동이 본격화되었다. [본문으로]
  14. 이것은 그간의 다양한 모임들(Asian Diaspora 전략회의, Ethnic Workers Summit 등)을 통해 입수한 비공식 통계이며 더 정확한 상황과 숫자를 파악하기 위한 전문이 본격적인 연구조사가 필요하다. 한인 디아스포라의 현황에 대해서는 윤인진(2004)을 참고하라. [본문으로]
  15. 심지어 한인 디아스포라도 한반도의 한국인들보다 복음적에 대해 더 수용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 홍은선 (2001). [본문으로]
  16. KOSTA website: www.kosta.org [본문으로]
  17. 서구선교의 입지가 극도로 약화된 21세기에는 여권passport = 국적)보다 여권사진(passport photo = 인종)이 더 중요하다는 흥미로운 언급이 선교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본문으로]
  18. 최근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는American Council on Educatio의 조사를 근거로. 미국에서 고등교육을 받는 소수민족, 특히 아시아계 학생들의 수가 1990년대 들어 급증했다고 보도했다:www.nytimes.com/2002/09/23/education/23COLL.html?todaysheadline [본문으로]
  19. 북미주선교신학회American Society of Missiolog) 2002년 연례총회의 주제가“Migration: Challenge and Avenue for Christian Mission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문으로]
  20. Watters (2002) [본문으로]
  21. Taylor (2001:31) [본문으로]
  22. Jenkins (2002:37). 비서구 세계를2/3세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인구나 면적이 전체의 2/3를 차지하기 때문인데, 이 통계에 근거한2/3세계 교라는 표현도 적절한 셈이다. [본문으로]
  23. 같은 책:31‐32. [본문으로]
  24. 우리는201년까지 중남미에서 500명 아시아와 아시안 디아스포라 사회에서00명 아프리카에서80명 그리고 기존의 위클리프 단체들로부터20명의 추가적인 사역자들이 타 언어나 모어母語 성경번역 운동의 지도자로서 위클리프와 함께, 또는 장외에서, 동역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Watters 2002) [본문으로]
  25. 어바나 선교대회에 참석한 아시아계의 대부분은 영어를 사용하는 Asian Diaspora이었다. [본문으로]
  26. www.urbana.org/u2000.factsheet.cfm [본문으로]
  27. http://www.urbana.org/u2003.facts.cfm [본문으로]
  28. 2000년에는 10,563명(72.71%)이, 2003년에는 10,936명()이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World Christian)으로서 선교적인 삶을 살기로 헌신했다 [본문으로]
  29. Asian Diaspora를 동원하기 위해 현재 제작중인 비디오 프로젝트의 제목이 잠자는 거인 깨우(Waking the Sleeping Giant).이다. [본문으로]
  30. 이 모임은 Project BGAN (Bringing the Gospel to All Nations) 주최로 2003년 1월13‐15일 Denver, Colorado에서 열렸다. 약 30명의 선교동원가 및 지도자들이 모인 이 심포지엄의 자료는 해당 websitewww.projectbgan.or)를 통해 접할 수 있다. [본문으로]
  31. Project BGAN은 일단 한인 디아스포라 선교운동으로 시작하여 궁극적으로 아시안 디아스포라 선교운동으로 발전한다는 장기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website를 참조하라: www.projectbgan.org [본문으로]
  32. Robb(1993:5)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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