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Recent Trackback

Archive

예수를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 있었던 대학시절, 주일날 설교 직전에 예배당에 들어가서 축도 끝나기 전에 살짝 도망쳐 나오던 기억이 납니다. 이러면서도 별로 가책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예배의 다른 순서들은 설교를 위한 장식 정도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가는 목적은 설교 들으러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설교만 놓치지 않으면 예배를 드렸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을 보면 옛날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쓴웃음이 나옵니다.

설교가 예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은 종교개혁의 결과입니다. 로마 카톨릭 예배에서는 예식과 성례가 예배의 전부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성도들이 말씀에 무지하게 되었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이 말씀에 관한 성도들의 무지를 깨려다보니 말씀 선포가 예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설교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설교와 더불어 기도, 찬송, 찬양, 헌금 등이 다 중요합니다. 설교만이 아니라 모든 순서가 다 예배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설교 외의 다른 순서들은 설교에서 은혜를 받기 위한 준비나 액세서리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예배드릴 때에는 예배 순서 하나 하나에 정성을 담아야합니다. 찬송할 때에는 진심으로 해야하고, 기도할 때에는 믿음으로 해야하며, 헌금할 때에는 감사와 기쁨으로 해야합니다.

저는 주일 새벽이면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광고를 포함한 예배 순서 하나 하나를 꼽아가며 기도합니다. 예배 순서마다 성령님의 도우심과 임재하심이 같이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예배를 위하여 기도하는 약 50명의 기도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예배 10-20분전에 본당에 나와서 예배 순서를 하나하나 꼽아가면서 기도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교회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예배가 은혜롭다고 평가해 주십니다.

예배에서 은혜를 받기 원하면 교회당에 일찍 나와서 마음 준비를 하고 임해야합니다. 이때에 예배 순서를 꼽아가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기도가 예배를 은혜롭게 만들뿐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자신이 예배에 은혜를 받게 만들어줍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안 믿는 분들에게 성경책을 사서 선물하는 것이 좋은 전도 방법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선물할 때에는 어떤 책을 먼저 읽는 것이 좋을지 설명해 주어야합니다. 설명이 없으면 성경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천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선물 받고 질려서 서가에 처박아둘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선물 준 분의 성의를 생각하여 읽기 시작하는 분이 있다 할지라도 끝내지를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통 책을 읽듯이 성경 맨 앞에 실려있는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하면 신앙적인 해답이 얻어지기보다는 의문이 더 생기기 때문입니다. 가까스로 창세기를 끝낸다 할지라도 출애굽기나 레위기에 달하면 낯선 용어, 낯선 풍습과 규례들에 질려서 더 이상 읽는 것을 포기할 것입니다.

저는 성경을 선물할 때에 구약부터 말고 신약부터 읽으라고 권합니다. 신약도 마태복음부터 말고 요한복음부터 읽으시라고 권합니다. 마태복음부터 시작하면 책을 펼치자마자 예수님의 족보가 등장하기 때문에 질려서 읽기를 포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을 먼저 읽으라고 하는 이유는 주제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이해하는 데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요한복음을 끝내면 그 다음에 나오는 사도행전을 읽으라고 권합니다. 사도행전에는 120명으로 시작된 기독교가 어떻게 로마에까지 전해지게 되었는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리가 아니라 사건이 기록되어있기 때문에 안 믿는 분들에게도 흥미로울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끝내면 다음에 나오는 로마서를 읽을 것을 권합니다. 로마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체계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여기까지 끝내고 나서 성경을 더 읽기를 원하면 예수님에 관하여 좀 더 알 수 있도록 누가복음을 읽으라고 합니다. 그것이 끝나면 로마서 다음에 나오는 편지서들을 요한 계시록 전까지 읽을 것을 권합니다. 그러나 요한 계시록은 신약의 나머지 부분을 두 세 번 읽은 후에 읽으라고 권합니다. 이처럼 신약을 두세 번 읽으신 후에 비로소 구약에 도전할 것을 권합니다.

성경은 현대말로 번역된 표준 새번역 판을 선물합니다. 개역 성경은 연속 사극에서조차도 등장하지 않는 옛날 말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이 성경책을 열어보고는 질려서 읽을 엄두조차 못 낼테니 말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TAG 교회, 성경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현진 2008/02/07 06:42  Addr Edit/Del Reply

    조만간에 안믿는 여자친구에게 성경책을 선물하려던 참에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2. 헤세드 2009/02/17 06:06  Addr Edit/Del Reply

    좋은 말씀들이 현실감이 있어 넘 좋습니다.

부자들이 들으면 어떻게 느낄지 모르지만 저는 부자들을 보면 측은함을 느낍니다. 신앙적인 핸디캡을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신앙 생활에서 부는 핸디캡이 될 수 있습니다. 부자들에게는 믿음이 생기기가 힘이 듭니다. 자신만만하기 때문에 비록 대상이 하나님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아닌 다른 이를 의지한다는 것이 힘이 듭니다. 또 돈이 있으니까 하고 싶은 것은 하고 갖고 싶은 것은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 (마태복음 19장 24절)"

부자 가운데에서도 부모님이나 아내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들이 진정한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부를 축적하거나 유지하기 위하여서는 엄청난 정신력을 쏟아야합니다. 영적인 일에 신경을 쓸만한 마음의 여유를 갖기가 힘이 듭니다. 주일 설교를 듣는 목적도 대부분 일상 생활에서 벗어나 잠시 머리를 쉬고 마음의 평안을 찾자는 것이지 설교를 듣고 삶을 바꾸자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이면서도 신앙생활을 잘 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기적입니다. 부자가 천국 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기보다 더 어렵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을 때에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마태 19:26). 구원받은 부자는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의 산물입니다.

신체적인 핸디캡을 가진 장애자들 가운데에는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분들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서는 보통 사람들보다 몇 배되는 노력을 쏟아야합니다. 마찬가지로 구원받은 부자는 “부"라는 핸디캡을 안고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신앙 성장을 위하여 보통 사람보다 몇 배 되는 노력을 기울여야합니다. 새벽 예배를 빠지지 않는다든지 정직한 십일조를 해서 자신을 채찍질 해야합니다.

신앙 생활의 핸디캡은 물질에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지식도 핸디캡이 될 수 있습니다. 아는 것이 많아서 예수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 지식이 많아서 누구의 설교를 들어도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eKOSTA 독자들 가운데에는 아마 물질적인 핸디캡보다는 지적인 핸디캡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지적인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노력하여야 합니다.

지적인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 중의 하나가 순종과 섬김입니다. 신앙 선배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성경에 분명히 어긋나지 않는 한 반론을 제기하는 대신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앙 후배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말로 가르치려는 대신에 몸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지식이 아니라 순종과 섬김이 예수님을 닮게 만드는 통로입니다. 순종과 섬김이 예수님 삶의 가장 큰 특징이기 때문입니다(빌 2:5-8; 마 20:28).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저희 교회 주보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이미 영접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고 계신 방문자들은 약한 교회에 가서 돕고 섬기실 것을 권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미 믿고있는 사람들의 수평 이동에 의하여 교인 숫자가 증가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10년 전 제가 휴스턴 서울 침례 교회에 담임 목사로 부임할 때부터 타 교인이 우리 교회를 방문하면 자기 교회로 돌아가거나 다른 교회로 갈 것을 권했습니다. 소속 교회 목사님에게 전화하여 그 교회 교인이 우리 교회를 방문했음을 알렸습니다. (전화 받은 목사님들이 고마워하기보다는 불쾌해 하셔서 요즈음은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타 교회 교인들은 아예 안 받습니다. 타지에서 이주오신 분이라도 믿음이 있는 분 같으면 구두로 한번, 서면으로 한번, 다른 교회를 찾아볼 것을 권합니다.

이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작은 교회에 대한 배려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주최하는 가정 교회 세미나에 참석하는 목회자들의 대부분이 작은 교회를 섬기는 분들입니다. 이런 분들 중에서 대형 교회로 인한 설움을 토로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껏 전도해 놓으니까 대형 교회에서 버스로 데려갔다든지, 교회 문패를 붙여놓았는데도 전도사가 굳이 찾아와서 자기 교회에 등록시켰다는 등 개척하는 목회자들 가슴에 못을 박는 에피소드를 흔히 듣습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 교회는 작은 교회에 도움이 되어야지 피해를 주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교회 배경이 있는 분들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기독교 배경이 전혀 없는 분들을 예수 믿도록 하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1-2년 정성을 들여야합니다. 그래서 급속한 교회 성장을 꿈꾸는 목회자들이 불신자 전도보다는 믿는 분들을 모아들이는 것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래서 안 됩니다. 큰 교회는 좋은 프로그램도 있고 인적 자원도 있습니다. 이러한 자원을 사용하여서 불신자를 교회에 오도록 하여서 예수를 믿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교인들을 작은 교회에 파송 해 주어야지 작은 교회 교인들을 빼앗아 와서는 안 됩니다. 작은 교회 성도들은 교회에 불만족스럽거나 분규가 생기면 시설이 좋고 프로그램이 많아서 편하게 신앙 생활할 수 있는 대형 교회로 몰려듭니다. 대형 교회는 ‘오겠다는 사람들을 어떻게 말리느냐’ 식의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믿는 이들의 유입을 막아야합니다.

우리 교회는 타 교회 교인을 받지 않는 것으로 이제는 소문이 났습니다. 물론 이러한 시책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싸매고 등록하는 타 교인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우리의 시책을 알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 올 엄두를 못 냅니다.

타 교회 교인들의 유입을 막고 불신자 전도에 집중할 때에 하나님께서 두 가지 복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영혼 구원의 열매가 있게 해주셨습니다. 작년에 저희 교회를 통하여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침례를 받은 분의 숫자가 한어 장년부만 163명입니다. 매주일 3명 꼴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침례를 받은 것입니다. 영어부와 중고등부 숫자까지 합치면 220명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침례를 받았습니다. 2000년도 인구 조사에서 휴스턴의 한인 인구가 1만 3백 41명으로 집계된 것을 생각할 때에 이 숫자는 적은 숫자는 아닙니다. (현재 어린이까지 합친 전 교인 주일 출석수는 1,400-1,500인데 대부분이 새로 믿은 분들입니다.)

둘째는 교회 생활이 행복하다는 고백이 나오게 해주셨습니다. 교회를 시끄럽게 하는 사람들은 보통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들입니다. 나름대로의 교회 관이 있기 때문에 의견도 많고 불만도 많습니다. 그러나 새로 믿는 분들은 우리 교회밖에 모르기 때문에 잘 순종하고 따라 줍니다. 그러니까 본인도 행복하고 교회도 밝습니다.

꼭 작은 교회를 배려해서만이 아니라 밝은 교회, 행복한 교회를 만들기 원한다면 중대형 교회들은 믿는 이들의 유입을 막고 불신자 전도에 집중해야한다고 믿습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TAG 교회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민 교회가 이민 2세들에게 관심을 쏟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보다 이민 역사가 긴 중국과 일본의 예를 볼 때에 지금 관심을 쏟지 않으면 어떤 결과가 생길지 뻔합니다. 후대들을 신앙적으로 다 잃습니다. 중국과 일본 교회를 보면 2세들이 1세들의 신앙을 전승하지 못해서 1세 교회가 노인들만 남는 쇠락한 교회로 전락하는 것을 흔히 봅니다.

부모님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2세들이 1세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해를 한다 해도 기초적인 용어나 알기 때문에 재미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미국 교회를 나가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2세들은 미국에서 태어났으니까 미국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백인들이 주류를 이루는 미국교회에서는 이들이 적응을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민 2세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문화를 존중해주고 이들이 더 잘 이해하는 언어가 통용되는 교회를, "내 교회다"라는 소유의식을 가질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많은 한국교회들이 2세 목회에 실패하는 이유는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주지 아니하고 부모들의 순 한국적인 문화를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지나친 간섭과 통제로 인하여 "나의 교회"라는 의식을 심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약 6년 전에 2세들을 위하여 성인 영어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재정적으로는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금전적으로는 100 퍼센트 지원을 하되 완전 자치권을 인정해주기로 했습니다. 교회 헌법도 바꾸어서 영어부가 한어부에 종속되어있지 않고 대등한 위치로 만들었습니다. 서울침례교회라는 우산 하에 한어부와 영어부가 존재하여 둘 중에서 주일 출석 인원과 예산이 더 많은 쪽 목사가 담임 목사가 되도록 했습니다. 현재로서는 한어부가 크니까 제가 서울침례교회 담임목사입니다. 그러나 한인 이민 숫자가 줄어들어 한어부가 성장을 멈추고 2세 교회가 1세 교회보다 더 커진다면 영어부 목사님이 담임목사가 될 것입니다.

영어부는 처음부터 다민족 교회로 시작하였습니다. 2000년도 인구 조사에서 한인이 1만 341명으로 집계된 휴스턴에서 전도 대상자를 한인 2세로 제한한다면 전도를 하지 말자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현재 영어부원의 30퍼센트가 백인을 포함한 타민족이고 교회 리더십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도 영어부가 한어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영어부 주일 출석 인원이 현재 약 250명입니다. 한어부와 대등한 입장에서 상호 협력하는 체제도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어린이 주일 학교에서는 한어부가 영어부 자녀들을 돌보아주고 있고, 중고등부 주일학교에서는 영어부가 한어부 자녀들을 지도해주고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인 교회들이 고려해 볼만한 모델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

행복한 교회생활

공개하여 마귀를 물리치자

한인 교회에 분열이 잦습니다. 분열로 인한 상처로 교회를 외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 분열의 원인을 사람에게 두고 있습니다. 목회자와 지도자간의 갈등을 원인으로 생각합니다.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는 악한 영의 역사 때문에 교회가 분열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악한 영들에 대함이라고 말했습니다(엡 6:12).

마귀의 주무기는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8:44). 악령은 거짓말을 통하여 교인들의 마음에 목회자에 대한 오해가 생기게 만들고 목회자와 교인들과의 관계에 쐐기를 박습니다.

악한 영이 역사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에 이를 물리치는 방법은 공개하는 것입니다. 거짓말은 음성적으로, 속삭임으로, 어두움 가운데에서 불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악령의 궤계를 깨기 위하여서는 노출시켜야 합니다. 빛이 비추면 어두움이 사라지듯이 진리와 사실이 밝혀질 때에 거짓말은 힘을 잃습니다.

개인의 삶에서 악령의 역사를 물리치려면 공개해야 합니다. 중독증의 예를 들어도 그렇습니다. 중독증이 깊어지면 악령이 개입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서는 중독의 사실을 노출시켜야 합니다. 남부끄럽다고 감추어서는 안 됩니다. 감추면 감출수록 악령이 점점 더 역사하여서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숨기기 말고 공개하여 악령이 역사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앤 후에 주위 분들의 기도와 도움을 청하여야 합니다.

이웃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그렇습니다. 악령이 거짓말로 인하여 오해가 생겨서 관계가 깨지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피하거나, 뒤에서 불평하지 말고 얼굴을 맞대고 오해가 있으면 풀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악령이 역사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저는 담임 목사로서 가능하면 투명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회자 코너라는 칼럼을 매주일 주보에 실어서 제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지를 성도님들에게 노출시킵니다. 설교 시에도 제 자신의 얘기를 많이 합니다. 교회예산도 누구나 원하면 열람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담임 목사의 목회 방침에 의문이 있을 때에는 직접 물을 수 있는 통로도 열어놓고 있습니다. 공개된 곳에 악령이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

행복한 교회생활

교회에 나와서 기도합시다

한국 교회 자랑거리 중의 하나가 새벽 기도입니다. 성도들이 아침 일찍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하루를 시작하는 예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새벽 기도에 문제가 노출되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기도회라고 하지만 참석하신 분들이 기도에는 별로 시간을 드리지 않는 것을 봅니다. 기도 아닌 다른 순서가 시간을 많이 잡아먹기 때문입니다.

또한 참석 자체가 어려워졌습니다. 교통 수단의 발달로 근처에 있는 교회가 아닌 먼 곳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분들이 새벽마다 교회를 찾아 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문제를 감안하여서 저희 교회에서는 새벽 기도 시간을 갖되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시간도 제가 본당에 나와서 기도 드리는 시간인5시부터 8시 사이 아무때나 교회당에 나와서 기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새벽에 교회당에 나와 기도하도록 하는 이유는 교회에 나와야 기도가 더 잘 되기 때문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집에서 기도하면 교회 오가는 시간을 절약하기 때문에 더 많은 시간을 기도에 바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실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집에서 새벽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기도한다는 것이 여느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정해서 교회당에 나와 기도할 때에 규칙적으로 기도를 할 수가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기도할 때에는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웬만큼 기도훈련이 되어 있는 분이 아니면 소리내지 않고 속으로 장시간 기도한다는 것이 무척 어렵기 때문입니다. 졸든지 잡념과 싸우다 시간을 보내는 것이 보통입니다.

수요 저녁과 토요 새벽 기도회 시간에는 예배를 드립니다. 그 후에 중보 기도 시간과 개인 기도 시간을 갖는데 이때에는 큰 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하도록 합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기도에 집중도 되고, 응답에 대한 확신도 생기고 영적으로 눌렸던 것이 풀어지기 때문입니다. 기도 내용을 옆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배경 음악을 크게 틀어줍니다.

큰 소리로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기도를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더 큰 소리로 기도해서 옆 사람 기도가 귀에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기도는 한 가지 형태만을 고집해서는 안 됩니다. 묵상 기도, 대화식의 기도, 부르짖는 기도 등, 골고루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

행복한 교회생활

"부부는 같이 잡시다"

이 컬럼의 주제는 교회 생활이지만 이번에 결혼한 젊은 학생 부부들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습니다.

젊은 부부들 가운데에 각 방을 쓰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말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부부 사이가 나빠서가 아니라 서로 편하기 때문이랍니다. 아빠가 공부에 몰두하느라고 각 방을 쓰기도 하지만 보통은 엄마가 아기를 떼어 놓지 못하기 때문에 아빠가 다른 방에 가서 잔다고 합니다.

이것은 안될 일입니다. 비성서적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쓴 편지에서도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 남편은 아내에게 남편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와 같이 남편에게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십시오. 아내는 자기 몸을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남편이 주장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편도 자기 몸을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하고, 아내가 주장합니다. 서로 물리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기도에 전념하려고 하여, 얼마동안 떨어져 있기로 합의한 경우에는 예외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는 다시 합하십시오. 여러분이 절제하지 못하는 틈을 타서, 사탄이 여러분을 유혹할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7:3∼5)."

요점은 부부는 성 관계를 요구해 올 때에 서로가 거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부는 각 방을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일정한 기간동안 기도하기 위하여 잠시 각 방을 쓸 수는 있지만 그 기간이 끝나면 다시 잠자리를 합치라는 것입니다.

젊은 부부 가운데에 아기를 같이 데리고 자는 부부도 꽤 있는 모양입니다. 이것도 건강한 부부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안 됩니다. 환경이 절대적으로 허락하지 않으면 할 수 없지만 부부가 한 몸이 되기 위하여서는 둘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엄마가 남편보다 자녀에게 더 관심을 쏟는 것은 건강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안 됩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아기들을 데리고 자지 않느냐고 의문을 제기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아기는 많고 주거 환경을 좁기 때문에 부득이 했습니다. 그러나 한편 한국 남성들이 외도를 쉽게 했던 것은 아내가 자녀들과 같이 자면서 남편의 성적인 욕구를 외면했기 때문이 아닌가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이 분방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분방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부부들은 같은 침대를 써야 하겠습니다. 자녀들은 가능하면 딴 방에서 재우고 부부끼리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같은 침대를 쓴다는 사실이 부부간의 친밀감을 보장해 주고 다투었을 때에 화해를 쉽게 만들어 줍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

행복한 교회생활

소수 민족 교회를 후원합시다

우리 교회에서 히스패닉 미션을 시작한지 3년이 됩니다. 교회 건물을 무료로 사용케 하고 사역자에게 매달 1,000불씩 지불하고 있습니다.

미주 한인 교회가 미국 교회의 도움을 받아 성장했습니다. 이제는 한인 교회가 다른 소수 민족에게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 는 캘리포니아 한 교회에서 평신도, 교육 전도사, 교육 목사로 12년을 섬겼습니다. 섬기던 교회는 미국 교회를 빌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장년 주일 학교로 성장했다고 소문이 났었습니다. 많은 교실을 필요로 하였고 사용 빈도수도 높았습니다. 고맙게도 미국 교회는 쓰고싶은 만치 교실을 쓰도록 허락했습니다.

교 인 숫자가 증가하면서 더 큰 예배 처소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빌어 쓰는 별관 대신에 교회 본당을 쓰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가 보기 좋게 거절 당하고 말았습니다. 특별 집회를 위하여 본당을 몇 번 빌어 쓴 적이 있었는데 한국 사람들이 사용하고 난 후에는 김치 냄새가 난다고 불평하는 미국 교인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다 행히 다른 교회가 본당을 쓰도록 허락해 주어서 이사를 했습니다. 그 곳에서도 교회는 계속 성장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 교회 교인 숫자와 우리 교인 숫자가 비슷했는데 수 년 되자 우리 교인 수가 미국 교회 교인 숫자의 두 배가 되었습니다. 건물 사용 빈도수는 4배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곳에서도 불평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불 평의 주 원인은 어린이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얼마나 뛰고, 얼마나 심합니까? 불평 불만도 할만 했습니다. 그래서 파손된 기물이 발견되면 우리 애들, 그 교회 애들을 따지지 않고 즉시 수선해 주었습니다. 월세도 달라는 대로 지불했습니다. 냄새 풍길까 봐 친교실에서 김치는 절대 먹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상 더 빌려 주겠다는 교회가 없어서 건물 구입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교회 건물을 사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전화 위복이 된 셈입니다.

미 국교회 건물을 빌려 쓰는 한인교회 교인들은 다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미국교회 성도들이 참 무던했다고 생각합니다. 입장이 바뀌어서 우리가 주인이고 그들이 손님이었다면 우리는 어땠을까? 그만치 나마 참아 주었을까?

우 리가 소수 민족 교회로서 쓰라린 경험을 했으니까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다른 소수 민족 교회를 후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때에는 그들의 고유 음식 냄새가 역겹다고 흉보거나 하지말고 미국 교회가 한인 교회에 해준 것보다 더 잘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

행복한 교회 생활

금식은 이렇게

한국 크리스천들에게는 금식이 상당히 생활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서구 크리스천들은 금식이 무엇인지조차 몰랐습니다. '영적 성장과 훈련'을 저술한 리차드 포스터에 의하면 1861 년부터 1954년까지 거의 백 년 동안 금식에 관한 책은 단 한 권도 발간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미국 크리스천들에게도 이제는 금식이 생활화가 되었습니다. 금식에 관하여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보통, 금식이라고 하면 일정 기간 동안 음식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는 것을 말합니다. 음식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시는 것은 단식이라고 하며, 이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 잠시 동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두 사람, 모세와 엘리야가 음식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시고, 40일 단식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혜로 되는 것이지 정상적인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특정 음식만 삼가고 금식하는 수도 있습니다(다니엘 10:3). 이것을 부분 금식이라고 합니다. 유동식, 즉 우유나 주스만 마시며 금식을 하는 수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부분 금식의 예 입니다. 대학교 선교 협회 총재인 빌 브라이트와 같은 미국 분들이 장기 금식을 할 때에는 보통 부분 금식을 합니다. 과일 즙, 주스들을 마시면서 합니다. 한국 크리스천처럼 물만 마시며 40일 씩 금식하는 것은 미국 사람들은 상상조차 못합니다.

금식을 시작할 때에는 마지막 식사를 가볍게, 채소 종류로 드는 것이 좋습니다. 에너지를 비축한다고 음식을 많이 들고 시작하면, 금식이 더 힘듭니다. 금식이 끝난 후에는 채소 등 가벼운 음식으로 식사를 시작합니다. 배고프다고 음식을 갑자기 많이 들면 위장을 상합니다. 식사를 조금씩 자주 하고, 주스를 많이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크랜베리 주스가 산이 적어, 위장에 자극을 덜 줍니다. 금식을 오래 한 경우에는, 정상적인 식사량으로 돌아가는 기간을 금식했던 기간과 같이 잡으라고 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금식은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살 빼기 위해서, 혹은 정치 투쟁방법으로 안 먹는 것은 굶는 것이지 금식은 아닙니다. 금식의 목적은 하나님에게 집중하기 위한 것입니다. 금식 중에는 기도와 묵상에 몰두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을 성찰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저는 장기 금식을 못합니다. 몇 번 시도했지만 5일이 최장기간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주일에 하루, 수요일은 정기적으로 금식을 합니다. 새해가 시작될 때, 집회 인도를 나가기 전, 교회 성경 공부 개강을 앞두고, 등등에도 하루씩 금식을 합니다. 부흥 집회를 인도할 때에도 저녁에는 금식을 하면서 인도합니다. 금식을 할 때에 신기한 영력과 통찰력이 나타나는 것을 느낍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eKOSTA

댓글을 달아 주세요

prev 1 2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