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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6년 전에 캘리포니아로 유학을 나왔고, 졸업 후에도 같은 동네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캠퍼스 성경 공부 모임에서 계속해서 양육 받으며, 섬기며 지냅니다. KCF (Korean Christian Fellowship) 라 불리는 저희 모임은 유학 나온 지 1년째 되던 여름, 제가 다니는 교회 NCBC (New Community Baptist Church) 목사님의 인도와, 말씀에 갈급했던 여러 유학생 지체들의 뜻이 모여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초신자도 많았고, 호기심에 찾아오는 형제 자매들도 많았던 우리 모임 안에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많은 사랑을 보여주셨고,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이들은 주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기도의 삶, 말씀의 삶, 예배의 삶을 통해 신선한 경험들을 즐기며 지금까지 오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하는 형제 자매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중보해 시간은 너무나 값진 보물과도 같습니다.

eKosta를 통해 나누고 싶은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저희 공동체가 처음으로 귀납적 성경 연구 방식을 접하고 함께 공부해나가며 경험한 주님의 인도 하심과 말씀의 열매를 나누고자 합니다. 

2007년 겨울이 끝나갈 무렵, KOSTA 순회 간사님으로 섬기시는 이재천 목사님께서 저희 모임에 오셔서 귀납적 성경 연구에 관한 세미나를 이틀간 해주십니다. 세미나 중에 우리는 각자의 학습 유형을 알고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고, 여러 유형의 지체들이 모여서 함께 귀납적 성경 연구를 나눌 더욱 풍성해지는, 그룹 성경 공부에서의 역동을 경험할 있었습니다. 늘 연역적으로 정리되어있는 교재를 중심으로 공부하던 것과 달리 스스로 구문을 관찰, 분석하며, 의문점들을 갖고 이를 해결하며, 그리고 삶에 적용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은 무척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과정 속에서 스스로 말씀의 단맛을 찾아내고, 나와 다른 형제 자매들과 그것을 공유하며 깊이가 또한 배가 되는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너무 귀했습니다.

세미나 이후로 KCF의 많은 형제 자매들이 귀납적 개인 성경 공부, 그리고 이어지는 그룹 토의를 통해, 각자가 지속적으로 깊게 말씀을 있도록 돕고, 또한 그것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기 원했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진 십여 명의 형제 자매들이 주일 저녁마다 모여서 성경 공부 나눔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고, 우리의 걸음은 ‘요나서’였습니다. 우리 모두 귀납적 성경 공부에는 신입생이었지만 모두 열정이 넘쳤고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풍성한 나눔, 그리고 깨달음으로 응답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요나가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이야기할 때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서로 생각을 나눴고, 물고기 뱃속에서의 기도를 각자의 속에서의 기도로 읊으며 우리 속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결국 니느웨로 가야 했던 요나, 그리고 그렇게 인도하신 하나님을 함께 묵상했고, 니느웨를 멸망치 않게 하신 하나님과 이에 크게 노했던 요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속에서 정말로 중요시 생각하시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서로 이미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우리는 서로의 학습 유형이란 것을 통해서, 그리고 각자 조금씩 다르게 말씀에 접근하고 색다른 보석을 발견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를 새롭게 이해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명을 너무나 귀하고 특별하게 만드셨음을 있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참으로 주님의 말씀 안의 진리를 발견함을 통해서 하나가 되어가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개인적인 말씀 연구를 통해서 성경을 더욱 깊이 있는 계기가 되었고, 말씀을 예전보다 사모하는 마음마저 이를 통해 허락하셨습니다. 그 이후로도 귀납적 성경 공부와 토론 모임은 누가복음과 룻기로 이어졌고 많은 형제 자매님들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유학 생활,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것은 공부나 자체를 위함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더 가까운 친구가 되어가길 원하시는 과정이라고 깨닫게 됩니다. 그 시간 속에서 이렇게 귀한 영적 동지들을 만나게 해주셨다는 거, 그들과 어떤 다른 나눔보다 값진 주님 말씀의 빛을 공유할 있다는 거, 어떤 다른 학문의 연구보다 깊고 영원한 말씀을 소중하게 여길 있게 하셨다는 거… 그리고 시간이 나에게 기쁨이 됨이, 그러한 주님의 뜻의 증거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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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7년 11월호

샬롬!

저는 텍사스 러벅에 있는 홍성혁이라고 합니다. 코스타 수련회는 2005년부터 참석하기 시작했구요. 이번 2007년이 3년째입니다. 제가 이 글을 통해서 미국 유학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를 인도 하셨는지를 나누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이 말씀처럼,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기간을 돌아보면 제가 계획해서 모든 것을 한것 같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특별하면서도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99년 1월에 미국에 유학을 오기전에 저는 대학 졸업후95년부터 99년까지 4년간 효성중공업 정보지원팀에 입사를 해서 전산기획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장인어른이 효성그룹 계열사에서 일을 하셨기 때문에 회사내에서 좋은 인맥을 만들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95년부터 회사대표로 전국핀수영선수권 대회에 참가해서 메달을 따면서 자연스럽게 효성그룹 월간 소식지와 사내 사보에 제가 메달딴 소식과 함께 사진이 실렸고, 회사내 많은 사람들에게 저의 존재를 잘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회사생활은 즐겁고 재미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 직장에서 안정되게 회사생활을 할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저의 직장 환경을 갑자기 변화시키셨습니다. 98년 이후 회사가 IMF위기를 격으면서 각 사업부가 독립된 단위 회사로 나누어 지면서 제가 있던 정보지원팀도 나눠지게 되었습니다. 각 사업부 관리팀에 전산담당자로 발령이 나면서 전산업무보다는 영업관리업무를 더 많이 하게 되었고 이것이 저로 하여금 다른 직장을 찾게 하였습니다. 그런던중에 98년 말 전세계적으로 Y2K 문제가 발생해서 Y2K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프로그래머가 필요하게 되었고, 때마침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는 저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여기 저기 해외채용업체에 지원을 하였습니다. 채용절차는 1차 서류심사와 2차 영어 인터뷰와 면접이었습니다. 어떻게1차 서류 심사는 통과했는데, 2차 영어 인터뷰때 말도 않되는 말을 하고있는제 자신이 참 한심하게 느끼면서 인터뷰를 대충 마쳤습니다. 그때 이후로 영어공부와 전공공부에 대한 부족을 실감했고, 결국 유학을 결정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해외채용업체를 알어보던98년그때만 해도신혼 살림을 강남에 잘 마련했기 때문에 만약 유학을 결정하게 되면 잘 꾸민 아파트도 처분하고, 차도 팔고, 온갖 가구를 다 팔아야 하는 번거러운 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졸업후 6년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유학했던 아내의 동의로 쉽게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고등학교 졸업후 6년동안 유학생활을 했고, 한국에 나와서 저와 결혼후8개월간 살다가 다시 미국으로 유학가게 된것을 너무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금의 아내를 만난것도 다 유학가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중에 하나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별다른 계획없이 무작정 떠났지만, 현지에 계셨던 아내의 이모부 가족의 도움으로 학교를 정하고 정착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유학가기전 98년 여름에 아내의 이모부께서 지금 제가 졸업했던 Texas Tech University에 Visiting professor로 1년간 가게 되었는데, 저희부부가 그때 공항까지 마중을 가서 선물도 드리고 잘 배웅을 했었습니다. 그때는 왜 내가 이런일을 해야 되는가 궁금했지만 지나고 나니까 그때 그렇게 했던 것이 나중에 유학생활때 도움을 잘 받을 수 있돌고 하나님께서 계획 하신것으로 지금은 믿고 있습니다.

미국에 오긴했지만 아무런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오자마자 Texas Tech어학원에 다니면서 99년부터 1년간 토플과 GRE를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2000년 5월 Computer Science에 입학 할때도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들어가기가 힘들었지만 하나님의 놀라운신 역사로 쉽게 입학하게 되었고, 2007년 8월에 박사학위 받게 되었습니다. 유학생활동안 늘 기도했던 것은 학위를 잘마칠 수 있도록 기도했고, 성령충만함을 위해서 기도한적은 별로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늘 목마른 기도를 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을 구하지 못한 것을 요즘들어 후회를 많이 합니다.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런 기도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주가 되어서는 않된다는 것을 요즘 많이 깨닫고 있습니다.

학위문제가 해결되자 진로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또그것을 놓고 오랫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제 뜻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job search를 시작했고 미국에 있는 거의 모든 학교에 지원했던것 같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코스타에서 알게된 Computer Science 교수님이신 김현주 자매님과 이화정 자매님과에도 지원했는데, 결과는 서류심사에서 탈락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미국내 teaching job에 더집중하기 위해서 졸업하면 가기로 했던 보험과도 같았던 삼성전자에 가지 않겠다고 통보를 하고 비장한 각오로 Job search를 했지만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200군데 넘게 지원을 했는데 단 3곳에서만 인터뷰 요청이 있었고 나머지는 서류심사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지원자가 450명이 넘어서 자격이 되는 지원자를 뽑는 것이 참 힘들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망연자실하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인터뷰한 대학에서도 아무런 연락을 못 받아서 미국에서 teaching job을 잡는 다는 것은 제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았습니다. 삼성에 않가기로 결정한 제 자신을 한탄하였고, 아내의 끊임없는 구박이 그때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게 아닌가 보다 하면서 제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후회했습니다.

그러던중 7년간 기다렸던 석박사 통합과정 defense를 지난 6월에 마치면서 점점더 진로에 대한 불안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도 저처럼 defense후 1년씩 job이 없어서 놀다가 한국에 돌아가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되는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전혀 예상 하지도 않았던 job을 저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지난 8월OPT card를 받으러 Office of International Affairs에 갔다가 우연히 international counselor 중 한명이 제 전공을 물어봤고, 제 전공이 Computer Science 라는 것을 알게 되자 바로 저를director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director는 우리와 같이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director는저를 처음보는 자리에서 저를 보고 우리들의 오랜 기도 응답이라고 말하면서 International Affairs의 총책임자인 Vice provost 에게 저를 소개했습니다. 그분은 여기는 아주 일하기 좋은 곳이라고 자랑하며너 마치 new employee대하듯 저를 대했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job 인터뷰같은 것을 하게 되었고 계속해서 그분과 이메일로 연락을 하면서 진행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일 후 정식으로 job공고가 Texas Tech job site에 실렸고 저는 온라인 지원서를 작성해서 지원했습니다. 얼마후 director로부터 이메일이 왔고, 최소10일동안 Job공고를 해야 하는 것이 학교 규정이라는 내용과 함께 인터뷰 일정을 알려 줬습니다. 인터뷰날에 저는 집에서 5분도 않걸리는International Affairs에 금방 도착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인터뷰에 임했습니다. 인터뷰를 위해서 저희 학교 IT department의 director 와 manager가 와서 컴퓨터에 관한 전문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하기에 앞에 Computer Science Ph.D. 앞에서 컴퓨터에 관해서 질문하는 자신들이 참 어처구니 없다는 말을 먼저 꺼내며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아주 편하게 인터뷰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후 불과 1시간도 않되서 만장일치로 저를 뽑기로 했다는 이메일을 받고 바로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저 말고도 다른 지원자들이 많았을 것을 예상이 되는데 더 이상 인터뷰를 하지 않고 끝을 내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습니다. 그 동안 Job을 위해서 기도도 많이했고 미국내 Teaching Job을 잡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거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와 다른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그 계획이 저에게 가장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얻을 수 없었던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주 쉽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박사과정하는 동안 쭉 연락을 해왔던 한국의 한 교수님으로 부터 메일이 왔는데, 이번에 신규 교수채용을 하게 되는데 자네가 지원하는게 어떻겠냐고 하시면서 이제 우리학교도 우리학교 출신 교수를 뽑을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자네 전공으로 공고를 낼 수 있도록 자네가 미리 교수들에게 이력서를 보내서 분위기를 만들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그렇게 했고, 교수회의때 교수님들이 다 제 전공으로 신규채용을 하는 걸로 합의를 하고 지금현재 공고가 나있습니다. 아직 제가 임용된것은 아니지만 그 교수님이 왜 그렇게 저를 교수로 임용하기 위해서 헌신적으로 노력하시는지 이유를 지금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번 일들을 통해서하나님께서는 제가 바라는 것을 다 알고 계시며 그것을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계획하고 그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기도했지만 이제는 제 계획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기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어디서 무엇을 할까에 대한 고민은 내려놓고 오직 성령충만함으로 하나님의 뜻만 분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할때 다른 구하지 않는 저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확신이 생겼고, 이번 코스타 주제강의때도 손희영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 처럼 진로를 위해서 기도도 많이 하고 어떤 길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지만 그런것에서 자유함을 가지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살면 그것이 결국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되고, 비록 우리가 순간 잘 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바로 잡으시고 선한길로 인도하신 다는 말씀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길로 인도하시든지 저에게 가장 최선의 것을 준비하시고, 지금도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지금 제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때 우리가 바라는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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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스타 2007년 9월호

목적이 이끄는 삶...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몇백만부가 팔린 릭 워렌 목사님의 책 제목...이 아니라, 이곳에서 잠시 나누고 싶은 제 삶의 이야기 마당의 제목입니다. eKOSTA 원고 청탁을 받고서 무엇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나 생각하던 중, 뭔가를 일부러 생각해내기보다 그저 저의 삶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로 벌써 미국에 온지 7년이 되었습니다. 2000년 7월 31일과 8월 1일의 경계 즈음에 낯선 아이오와라는 땅에 도착하던 날, 태어나 처음으로 정해진 주소지가 없이 막연히 보낸 그날의 밤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제가 미국에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과 반복된 깜짝 파티의 연속이었습니다. 유학을 결심하고 어드미션을 기다리기 전까지, 제 인생에서 소위 '실패'라는 걸 경험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공부에 관한 고민을 별로 하지않아도 될 만큼 성적이 좋았고,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없어서 고민한 적이 없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학비를 걱정해본 적도 없었고,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안정된 직업을 보장하는 치과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대학을 졸업하기 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정말 제가 과연 평생을 바쳐 하고 싶은 일인가...대답은 아니었습니다. 인턴시험을 포기하고, 관심 있어 했던 공부를 더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즈음에도 제게 모든 일은 잘 풀리는 듯 보였습니다. 제 삶에 하나님께서 들어오실 필요가 없어보였습니다. 다니던 학교 대학원에 얘기도 다 끝나고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 잡혀있었습니다. 1997년 9월, 대학원 시험을 1달여 앞둔 어느 하루, 교수님께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저를 받아주시지 못하겠노라고...막막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은 저기 멀리 계신 분인 양 그렇게 살았으면서도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며칠 후, 학교 선배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다른 학교 대학원에서 마침 대학원생을 모집하는 중이라고. 저는 또 언제 그랬냐 싶게 좋아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습니다. 이런 양은 냄비 같은 저를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다음 3년을 또 계획하시고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풍성하게 책임져주셨습니다.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쳐가는 중에 유학을 가보지 않겠냐고 하는 얘기들이 하나 둘씩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기분, 그것을 얻었을 때 맛보는 짜릿함, 거기에 '나 정도면 충분하지'하는 끝이 보이지않는 자만심이 합쳐져 유학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의대 대학원을 나오고, 외국 저널에 논문도 내고, 게다가 DDS학위까지 있으니 문제 없겠지 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만심 하나로 미국 내 Neuroscience로 유명하다는 대학원들에 지원서를 하나씩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다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1월초부터 4월초까지, 지원한 학교 중 거의 대부분의 학교에서 rejection letter가 왔습니다. 처음 한 두번은 '그럴 수도 있지'하는 심정으로 넘겼지만, 그 횟수가 반복될 수록 저의 삶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한꺼번에 절망들이 다 몰려올 수 있는지,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분의 뜻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묻지도 않았으면서 '원하는 마음을 주셨으면 끝까지 책임져 주셔야지 이렇게 중간에 포기 시키시는 게 어딨냐'고 매일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2000년 4월 19일 아침,절망적인 심정으로 이메일을 열었습니다. 이제는 포기하겠노라, 하나님께서 저를 이끄신다는 말을 못 믿겠노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오는 심정으로 연 이메일들 중에 발신자가 'University of Iowa'인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이메일로도rejection letter를 보내나 하는 실패한 사람의 심정으로 열었던 그 글은, 사실 3달 여동안 저를 그 고통의 시간 가운데서 단련시키셨던 하나님의 깜짝 선물이었습니다.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메일의 글귀들을...Neuroscience program에 extra fund가 생겨서 계획에 없었던 외국 학생을 선발할 수 있게 되었노라고, 아직도 관심이 있느냐고...그리고 지금 이곳, Iowa City로 하나님께서 저를 이끌어오셨습니다.

여기까지가 2004년 이전의 제 시각으로 보았던 저의 삶의 고백입니다. 2004년 코스타, 고난받는 공동체,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제가 이 곳에 있어야할 이유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셨던 것은, 바로 저 자신이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 저를 이곳 저곳, 이모양 저모양으로 다듬어 이 곳, 아이오와로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그저 편안하고 세상적인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면 제 육신은 좀 더 편안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었겠지만, 제 영혼은 매순간 죽어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2004년 7월에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2007년 7월, 제 나침반의 바늘이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태어나서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6년을 빼고는 늘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공부, 그 공부를 왜 하고 있는지를 하나님께서는 5박6일의 시간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저를 치과대학에 보내셔서 생명의 소중함, 모방할 수 없는 창조의 섭리를 더 구체적으로 알게 해주시고, 한국에서의 대학원 과정을 통해 제게 연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고 크리스쳔 지도 교수님을 통해 멘토의 모델을 보여주시고, 3달여의 기간동안 수많은rejection letters를 받으면서 제가 믿고 있었던 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깨닫게 하시고, 그로 인해 이 곳 아이오와로 유학의 길을 열어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달아 알게 하신,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제 손을 다시 잡아 일으켜주신 하나님.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지난 30여년 동안 제 인생이라는 퍼즐에 쓰신 한 조각 조각임을 이번 코스타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다시 돌아가봅니다. 제 삶에는 하나님께서 가지신 분명한 목적이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 목적을 모른 채 눈먼 사람으로 살아온 저의 삶도 결국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그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었다는 것을 하루하루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씩 저의 눈을 열어가고 계심도 느낍니다. 삶의 목적을 조금씩 알아가며, 저의 생각의 나침반은 이전과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나의 성취, 나의 욕망, 내 편안함과 풍요를 위해 달려가지 못하게, 나침반의 바늘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제 삶에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 그 곳을 향해 흐트러짐 없이 나아가도록 매 순간 저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음을 느낍니다. 물론 아직도 저의 삶의 많은 부분이 예전에 가리키던 방향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래도 그 싸움이 예전과 다른 것은, 그 싸움에서 이긴다 할지라도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몰랐던 시간이 예전의 삶이라면, 이제는 그 싸움 이후에 제가 바라볼 곳이 생긴 것입니다. 제게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삶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할 때마다 제가 다시금 바라보고 돌이킬 이정표가 생겼습니다.

목표가 있고,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결코 길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 길에서 넘어질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고 지칠 수는 있어도, 그래도 그 길 외에 다른 길로 잘못 들어서지는 않습니다. 이 깨달음이 지난 7년의 시간동안,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진 아이오와에 저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제 인생의 날들 가운데 넘어질 수도 있고 상처받을 수도 있고 지쳐 주저앉을 수도 있지만, 제게 주신 이정표만 따라가면 언젠가 제 삶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서 Diaspora로 살아가는 모든 믿음의 씨앗들 위에 동일한 나침반이 되어주신다는 것을 또 믿습니다.

모든 삶의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을 제게 주신 모든 것으로 찬양 드리며, 늘 제게 힘주시는 말씀으로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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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7년 6월

A는 한국에서 고등학교 때 성당에 다니면서 막연히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힘든 유학생활 중에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성경을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요즘들어 가요대신 찬양 CD를 귀에 꽂고 다니며 찬양하기도 하고, 길을 걸으면서는 하나님과 대화하며, 말씀이 자꾸 읽고 싶어져 성경책을 책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닌다고 하면서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되니 너무 좋다고 인도자인 내가 좋아하는(?) 말만 골라하는 것이었다. 성경공부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서도 큐티지의 말씀을 읽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내게 불쑥 전화를 해서 이 말씀은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며 설명을 해달라고 하곤 했다. 그러면서 다음 주에 할 큐티지는 언제 나오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러던 A가 박사학위를 위해 지원했던 학교가 되지 않아 속상해하더니 진로가 막히는 것 같다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왜 자신를 안 도와주시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슬슬 성경공부에 나오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더니 얼마 안되서 들려오는 소문은 어느 형제와 사귀기 시작했다며 요즘 연애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는 A가 미국에서의 醍?것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갈 때까지 A를 다시 볼 일이 많지 않았다. 어쩌다 만나도 A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긴 얘기는 하지 않았다. A의 신앙이 한참 성장하는 순간에 만나서 함께 나누고 기뻐하였던 때가 아스라이 느껴지면서 마음 한 구석이 참 많이 아파왔다.

B는 이미 교회에서 지도자로 섬기는 자매였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매우 신실하고 늘 말씀과 기도로 사는 것 같았다. 단지 조금 유별나게 보였던 것은 자신이 결혼을 하지 않아 불완전하다는 생각을 좀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나이 또래 사람들이 결혼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구를 가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B는 종종 결혼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면서 키크고 잘생긴 형제가 이상형이라고 말하곤 했다.

B를 알고 지낸지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밤에 B가 불쑥 나에게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맥주 한 팩이 들려있었다. 나는 그동안 전혀 B가 술을 마시는 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놀랐다. 아무말 없이 혼자 맥주를 마신 B는 갑자기 나에게 고백할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더니 지난 몇년간 아무도 모르게 사귄 남자친구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 모든 스토리를 적으면 소설 한편이 나올 정도로 기가 막힌 이야기를 다 털어놓더니 B는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왜 내가 이렇게 될 줄 아셨으면서 그 X와 만나게 하셨냐’고…… 그리고, 얼마 전부터 피우기 시작했다며 담배를 꺼내더니 거실에 내가 틀어놓은 찬양을 듣기가 괴롭다며 “저거 끄면 안되니?” 라고 물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고해성사를 받는 신부의 괴로움을 상상할 수 있었다.

A와 B를 만나고 헤어지면서 가장 먼저 내 자신에게 했던 질문은 ‘내가 무얼 잘못했을까?’였다. A를 보면서는 ‘내가 말씀을 전한다, 그 영혼을 사랑한다, 기도한다고 하면서, 정작 그의 신앙이 저렇게 식어버리도록 방관하고 있었단 말인가’ 라는 자책과 함께, 매주 말씀을 보고 그 말씀에 능력이 있다고 선포했는데, 그 말씀을 들은 A는 정작 변화되지 않은 것 같아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라는 회의가 내 안에서 맴돌았다. 또, B를 보면서는 ‘B가 수년동안 교회에서 말했던 신앙고백과 전했던 말씀들(B는 성경공부를 인도했었다)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무언가 크게 속고 살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론 가까이 살고 있었음에도 그 지경이 되도록 나에게 아무말도 못할 정도로 내가 부담스런 존재였나 싶어 B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제 2, 제 3의 A, B들을 캠퍼스와 교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하나같이 신앙이 한창 성장하는 과정 중에 있었고 열심도 있었으나, 앞서말한 A와 B처럼 진로나 이성교제, 결혼의 문제에 걸려 결국에는 실망하거나 상처를 받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거나 원망하곤 했다. 나는 그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단순히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권면을 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단순히 ‘하나님의 연단이니 견디라’며 달래거나, ‘당신의 죄때문이니 회개하라’고 말하는 것은 별로 소용도 없고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언가 좀더 “근본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결혼을 한 뒤 얼마 안되어 성경공부 수련회에서 이성교제에 관한 세미나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이 왔다. 이제 갓 결혼한 내가 나와 나이 터울도 별로 안지는 이들에게 무엇을 전할 수 있을까 싶어 주제넘게 느껴졌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말씀을 전하고 싶은 열망(?)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결혼하기까지 조금 긴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름대로 말씀을 붙잡고 고민했던 것들, 남편과 교제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에 체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룻기, 에베소서 말씀 등등 결혼과 이성교제에 관한 말씀들을 묵상하면서 말씀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성령님께서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을 떠오르게 해 주셨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바로 이 말씀이야 말로 내가 전하려는 메세지를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내가 고민하던 그 “근본적”인 해결의 열쇠도 이 말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아무리 말씀을 전한다 하고 또 듣는다 해도, 그 마음이 말씀의 능력으로 깨어져 새롭게 되지 않는다면 결국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면서 입으로만 “주님”을 찾는 연약한 종교인이 되고야 마는 것임을 많은 A와 B들을 만나면서, 또한 나 자신의 연약함을 접하면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서말한 A와 B의 경우를 이 말씀에 비춰 다시 살펴보면 A의 경우는 하나님께 가까이 하고 싶은 열심은 있었지만, A는 세상의 가치, 즉, 유학을 나와서 이름있는 학교에서 번듯한 학위를 따고 한국에 들어가 좋은 곳에 취직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성공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나름대로 가지고 있던 성공관에 손실이 왔을 때 그만 견디지 못하고 좌절하게 되었고 결국은 하나님에 대한 섭섭함의 벽이 쌓이게 되어 첫사랑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B의 경우 역시 말씀을 많이 아는 것 같았지만 세상의 것과 섞여 있던 그의 결혼관, 이성교제관은 꿈쩍하지 않고 있었다. 남자친구와 사귀면서 그의 영혼을 보고, 그의 신앙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외모와 능력에 매료되어 결혼도 하기 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준 댓가는 B의 인생에 지울 수 없이 큰 상처만 남기게 되었다.

말씀을 읽고, 듣고,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한다해도 말씀 앞에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 내어드리지 않은 바로 그 부분이 도리어 나에게 큰 걸림돌이 되어 삶에 적잖은 고통을 더하게 된다. 겉으로 보이는 문제들이 나를 괴롭히고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걸 막는 것 같지만, 사실 가만 생각해 보면 가장 큰 장애물은 그 말씀으로 수술을 받지 않은 나의 가치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씀이 나의 전인격을 다스리고,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뒤흔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접하는 나에게 그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과연 내가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 분의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지 돌아봐야할 일이 아니겠는가?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내가 해야하는 일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요즘이다. 솔직히 조금 많이 지쳐있는 게 사실이다. 내가 지난 수년간 선포했던 말씀들이 과연 말씀을 전하는 나와 내가 마음에 품고 사랑했던 그 영혼들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괴롭기도 하다. 한 사람의 영혼이 말씀으로 변화되고 그 삶이 온전히 주님께 드려지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괜시리 하나님 앞에 서럽기도 하다. 그리고 갈증이 나기도 한다. 하나님의 말씀, 그 살아있는 말씀의 능력이 나의 삶을 온전히 변화시키고, 내가 선포하는 말씀가운데 임하기를, 말씀을 보는 나의 사랑하는 지체들에게 진정으로 임하기를 갈망하며 보기원하는 그 갈증이다.

하지만, 이러한 회의나 아픔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전하는 것을 계속해야하는 이유를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그것은 캠퍼스나 교회에서 만나는 젊은 영혼들—아무리 그들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것 같고, 기가막힌 행동을 한다해도—에게는 아직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말씀을 선포할 때 그 말씀으로 깨어지고 가치관과 세계관이 변화될 여지가 분명 70대 노인보다는 크다는 것이다.

이번 코스타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라는 주제로 열린다. 얼마나 시기적절하고 중요한 주제인가 공감을 하면서, 코스타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이 참석하는 모든 이들의 심령과 골수를 쪼개고 그 깊은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가치관과 세계관까지 뒤흔들어서 온전히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예비하신 풍성한 생명을 누리고 회복되는 역사가 임하기를 사모하게 된다. 그래서 나를 비롯하여 A와 B같은 지체들의 성공관, 결혼관, 이성교제관, 물질관등의 가치관들이 세상의 것과 분리되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되는 역사가 가득하게 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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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7년 5월호

머리말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에는 학교에서 선생님들께서 예습과 복습을 참 많이 강조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기 전까지 예습이라는 것은 여전히 생소한 단어로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대학원 수업은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참고로 저는 ‘문과생’입니다) 주로 reading과 발제, 그리고 거기에 기반한 토론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반강제 혹은 강제적으로 예습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저는 학교 밖에서 먼저 예습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교회 대학부에서 참여했던 성경공부 모임은 숙제 시스템을 갖고 있었습니다. 즉 일주일에 한 번 성경공부를 하면서, 다음 주 본문을 미리 읽고, 요약하고,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을 정리하기 위한 숙제 용지를 미리 나누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 때만 해도 ‘선배’는 어느 정도(?) 무서운 존재였던 분위기였고, 또한 숙제를 안 해 오면 기도제목 나눔 금지 등의 벌칙이 가해졌기 때문에 다들 나름대로 열심히 숙제를 해왔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인도자로 또 때로는 참여자로 성경공부를 하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또 어떠한 깊이로든 성경 본문을 미리 예습하고 온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모임의 성격, 참여하는 지체들의 영적 상황 등에 따라 조절할 수도 있겠지만, 그룹 성경공부(GBS)라는 것이 함께 모임을 갖는 그 몇 시간에 제한되지 않고 예습을 통해 더욱 확장된다면 지체들이 말씀을 좀 더 깊게 묵상을 하고 삶에 적용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여자가 성경 본문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없이 성경공부에 온다면 인도자의 본문 이해를 따라가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이 많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궁금함과 질문이 없다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인도자에 의해 설정되는 인식의 틀 안에서만 성경 본문을 바라볼 가능성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생각과 나눔과 적용을 위해 제기되는 질문들 중에는 단 수 십 초 만의 생각으로 대답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간적인 의미에서) 짧은 생각으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교과서적인 대답에 그칠 가능성도 많은 것 같습니다. (‘교과서적인’ 대답이라는 것이 ‘정답’이라는 측면에서는 굳이 부정적일 이유는 없지만, 자신 스스로의 생각에서 나온 대답이 아니라 외부로부터의 주입을 통해 주어진 대답이라는 측면에서는 부정적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성경공부를 예습하는 것은 참여자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의지를 좀 더 자극하고, 그 의지가 현실로 드러나는 것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를 위해 지혜를 모으는 일이 필요하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제가 직,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이러한 예습을 유도할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1. QT를 통한 예습

성경공부 모임을 갖기 이전에 성경공부 본문을 갖고 QT를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기초적인 내용 이해와 묵상을 미리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제가 속해 있는 캠퍼스 성경공부 모임에서는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QT 일정이 있는데, 성경공부 본문을 성경공부 당일과 그 전날에 배정하고 있습니다. 만약 성경공부 모임이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QT 일정이 없어도,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성경공부 본문을 주중에 QT 하시도록 권면할 수 있겠습니다.

이 방법의 장점은 가장 기초적인 수준에서 자연스럽게 예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QT와 성경공부 예습을 굳이 분리하지 않음으로써 예습에 대한 부담감을 줄일 수 있습니다. 또한 거꾸로 QT를 독려하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같이 성경공부를 했던 어떤 지체도 QT를 안 하다가 성경공부 본문 QT부터 조금씩 시작한 적이 있습니다. (본인의 말로는 ‘어차피’ 공부하게 될 본문이니 QT를 했다고 하더군요.)

2. 질문을 통한 예습

제가 개인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방법입니다. 성경공부가 귀납적 성경공부 방식을 따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또한 어떠한 ‘전달’의 방법을 취하든, 대부분 몇 가지 ‘질문들’ 을 중심으로 성경공부는 진행됩니다. 때로는 성경 본문의 이해하기 힘든 부분을 이해하기 위한 질문들도 있고, 때로는 묵상을 통해 적용점을 이끌어내는 질문들도 있습니다.

사실 어떠한 질문들은 대답하는 데에 있어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는 묵상이나 고민을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들을 모임에서 처음 접하고 또 그 자리에서 나누어야 하는 경우에는 아주 피상적인 묵상과 나눔 밖에는 이루어지지 못하거나, 혹은 결국에는 진행자의 이야기에 너무 많은 비중이 실려버리게 됩니다. 만약 참여자들이 이 질문들을 미리 알고 성경공부 모임에 올 수 있다면 나눔과 적용이 더욱 구체적이고 깊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금요일 저녁에 모임을 갖는데, 저는 늦어도 목요일 밤까지는 이 질문들을 참여자들에게 이메일로 미리 전달합니다. 그리 대단한 예습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성경공부 모임을 위해 캠퍼스를 걸어오면서 단 몇 분 만이라도 질문의 내용에 비추어 본문의 내용을 다시 생각해 보기를 권면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질문들을 미리 읽고 생각해 오시지는 않지만, 가끔씩 성경공부 시간에 “간사님께서 보내주신 질문을 생각해 보았는데..” 라며 나눔을 시작하시는 지체들을 볼 때 마다 또 다른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이 방법을 사용하는 데에는 어려움과 위험도 있습니다. 첫째는 이 방법 역시, 그 질문들을 접하고 생각하기 이전에 성경 본문을 읽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QT를 통한 예습 등과 같이, 주중에 본문을 미리 읽게 하는 것과 병행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특히 귀납적 성경공부의 경우에는, 그 질문들이 참여자들에게 있어서는 성경 본문을 바라보는 데에 ‘색안경’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앞서 이야기한 대로, 그 질문들을 접하기 이전에 먼저 본문을 읽고 기초적인 개인 묵상을 하는 과정이 없다면 이러한 위험은 더 커질 것입니다.

3. 숙제를 통한 예습

앞서 언급한 방법의 연속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숙제’라는 말을 통해 조금은 더 책임감을 지워준다는 측면에서, 또한 준비하는 시간이나 분량에 있어 더 확장 되었다는 측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숙제’라는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참여자 모두에게 똑같은 과제를 줄 수 있습니다. 내용을 정리할 수도 있고, 문단을 나누어 올 수도 있고, 핵심 단어들을 뽑아 올 수도 있고, 아니면 몇 가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 오거나 생각해 올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각자에게 다른 과제를 줄 수도 있습니다. 누구는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과 지역에 대해 조사를 해오고, 누구는 관찰 질문들을 뽑아보게 할 수도 있겠습니다.

‘숙제’라는 방법을 사용하면 참여자들의 예습의 깊이를 깊게 할 수 있고, 또한 성경공부 모임에서의 참여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 역시 위험성이 없지 않습니다. 특히 인도자나 참여자가 어느 정도 높은 수준의 책임감을 갖고 있지 않은 모임이라면 성경공부를 필요 이상으로 부담스럽게 여길 위험이 있습니다. 또한 숙제는 계속 나가는데 숙제를 해 오는 사람은 계속 없다면 오히려 서로에 대한 민망함만 커져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모임이, 또한 자신 스스로와 참여자들이 이 정도의 책임 의식을 갖고 있다는 판단이 서지 않은 상태라면 이에 대한 욕심을 너무 내세우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꼬리말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는 목적은 우리의 ‘being’과 ‘doing’이 하나님의 ‘옳으심’에 합치되도록 하는 것입니다(딤후3:16). 마치 구약 율법의 정신이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것같이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이며 (레19:2), 예수님께서도 율법의 참 정신을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우리도 완전해야 한다고 (마5:48)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단순히 말씀을 지식적으로 배우는 것과는 다르고, 따라서 내가 말씀을 붙들고 어떻게 한다기보다는 말씀이 나를 붙들고 어떻게 하시도록 나를 말씀 앞에 스스로 노출시키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룹 성경공부가 이를 위한 중요한 기회와 동기부여를 제공하게 되지만, 예습을 통해 좀 더 개인적으로 같은 말씀 앞에 다가서는 과정이 병행된다면 그룹 성경공부가, 그리고 그를 통한 참여자들의 삶이 좀 더 하나님 앞에 풍성하여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또한 저의 작은 경험들을 통해 확신을 갖게 됩니다.

저의 부족한 경험과 생각으로 ‘예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또 다른 경험, 조금은 다른 생각이 있다면 그것들이 함께 나누어져서, 말씀을 통해 제자를 삼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우리의 삶의 여정에 밑거름으로 쓰이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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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k 2008/06/06 06:11  Addr Edit/Del Reply

    한간사님 글을 여기서 만나다니, 정말 반가운데요~~
    이런 예습의 비법을 가지고 계셨다니, 저도 다음학기부터는 참고해야겠습니다.

이코스타 2007년 4월호

2003년 처음 코스타를 참가하면서 4번 코스타에 참석했습니다. 두번째 참여하였을 때였는데 한 간사님께서 저에게 해마다 코스타에서 다른 부분을 섬겨 보라고 말씀하셨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엔 무엇을 해 볼까 정탐을 하다가 덜컹 코스타 중보기도팀에서 섬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담당 간사님께 메일을 드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학생 중보기도팀으로 섬기고 싶은 소망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제가 코스타 중보 기도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문의 드립니다. 코스타 기간 중에 , 중보 기도로 섬기고 싶은데요. 제가 할 수 있나요?

권유에 의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하겠다고 하면 당연히 좋아하며 반겨 주실 거라 생각했는데 위와 같은 메일을 보내고 두달을 기다렸는데 코스타에선 아무 대답이 없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었는데 대답이 없자, 난 자격이 안되나 보다 하는(?) 마음에 조바심이 들어서 두 달뒤에 다시 짧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저에게는 소위 말하는 중보기도로의 부르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뭔가를 기여해야 하고 싶다는 생각, 아니 뭔가를 해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학생 중보 기도팀에 참여?결정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참여한 코스타 학생 중보기도팀에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나누고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무슨 일 때문인지 저의 메일은 배달이 되지 않았던 것이고 코스타가 코 앞에 다가 왔을때 담당 간사님으로 부터 응답의 메일이 왔습니다.

중보기도로 섬기시는 지체께서는 중보기도 헌신자 조에 구성이 되십니다. 중보사역팀장님과 다른 중보자들과 조가 되어 생활하시게 되고, 골방 기도에 많은 시간을 헌신하시게 됩니다.

응답 메일을 받고 참 이상하게도 전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  중보 기도 헌신자 조 = 죽으러 가는 특수 부대
-  중보 기도 사역 팀장 = 특수 부대를 아주 강하게 훈련시키는 교관
-  골방 기도 = 전쟁

메일의 문구 하나 하나가 이렇게 다가 왔습니다.
애드만 채플 뒤 중보 기도실로 갔더니 수십명의 집사님, 권사님, 목사님들께서 찬양을 부르고 계셨습니다. 그 찬양 소리는 전쟁에 나가는 군사가 부르는 군가로 들렸고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고 완전 공포에 싸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눈을 잃고야 말았지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이상합니다. 평상시 저에겐 기도가 두려운 적은 없었고, 어찌보면 기도에 자신이 있었는데 왜 그렇게 저를 완전히 마비를 시켰는지요.

이젠 어쩐다지 이미 시작되엇으니 빠져나갈 수도 없고 …

그리고 첫날 저녁 학생 중보 기도팀을 담당하신 집사님께서 저희들에게 과제를 주셨습니다. 수요일까지 기도와 묵상을 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 코스타 참석자들을 위한 기도 제목, 한반도와 조국을 위한 기도 제목을 가져오라는 과제였습니다. 이건 또 무엇인가 … 꼭 무슨 환상이라도 봐야 하는 것 같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눈 감으면 보이는 그런 신비한 능력이 요구되는 것도 같으니 난 그런 것 못하는데 어쩐다지…

아주 무거운 짐을 어깨에 지우고 그렇게 첫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둘째날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받아야 하는데 도대체 아무것도 안보이고 안들리고 중보 기도는 커녕 걱정과 부담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남들을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자원한 일인데, 남들을 위해 기도할 여력은 하나도 없었고 당장 나에게 떨어진 과제에 눌려버린 저 자신을 보는 것도 한심하고 창피하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골방 기도실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 기도를 할 수가 없고, 너무 두렵습니다. 하나님 마음을 보아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됩니다. 저 못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교만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기도해 주는 것이라 생각했고, 제가 너무 우쭐했습니다. 전 제가 남들을 위해 기도 할 만한 쬐끔 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 하나도 못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나님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 사태를 수습시켜 주세요.

이렇게 나의 적나라한 모습을 인정하고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나자 저에게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겐 여전히 숙제는 남아있었습니다.
수요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숙제는 제출해야 하겠기에 몇가지를 정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거룩과 자유 그리고 구원에 대한 말씀이 자꾸 머리를 채웠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누가 복음 4: 18,19)

중보 기도팀 오전 모임에서 위의 몇가지 말씀들을 숙제 제출하는 심정으로 내 놓으면서, 하나님 알아서 해결해 주십시요. 하나님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싶습니다 계속 기도를 했고, 중보 기도팀께는 솔직하게 저의 상황을 이야기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중보 기도팀 담당 간사님께서 그렇잖아도 월요일 저녁 저의 얼굴을 보고 중보 기도하러 온 사람의 얼굴이 아니어서,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저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학생 중보 기도 자원자는 모두 5명이었습니다. 그렇게 5명이 각자에게 주신 말씀과 기도 제목을 모두 적어서 내었고, 그날 하루 학생 중보기도팀 담당 집사님께선 그 기도 제목을 두고 기도를 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오후가 되었습니다. 집사님께선 어떤 것은 구체적인 기도의 제목으로 어떤 것은 주제를 가지고 저희들에게 주셨고 저희들은 저녁에 모여서 다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다시한번 하나님께 확인을 하는 과정이었지요.

너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5명이서 골방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1번 부터 5번까지의 기도 제목 하나 하나가 각자 각자에게 주신 것이라는 확인을 하기 시작하였고 강한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오호 이건 뭐지.. 어 신기하다..

하나님의 마음이 보이자 흥분하기 시작했고 두려움은 이제 어디로 갔는지 없고 기쁨이 저를 채웠습니다. 너무 재미있고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목요일 북한을 위한 금식 기도 시간에 저희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선포할 수가 있었습니다.

코스타의 중보 기도는 약한 자를 위해,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대신 간구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코스타의 중보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아주 커다란 영적인 강을 통해 흐르고 있을때 그 마음을 읽고, 하나님 당신의 뜻이 이루워지는 것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저는 기도는 비장한 각오로 웃을 겨를 없이, 엄숙하고 눈물을 흘릴 정도의 정성은 꼭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순간부터 기도는 어떤 코메디 쇼 보다 저를 더 유쾌하게 만들고 웃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고 계시는 것은 쇼가 아니고 실제였기 때문에 정말 기도는 재미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디모데 전서 2:5)

성경에서는 중보에 대해 남을 위해 대신 그들이 잘 되기를 간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 중보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게 계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 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디모데 전서 2:4 )

바로 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중보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

내가 뭔가를 코스타에서 기여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시작했던 중보 기도팀 참여를 통해 전 참된 중보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무릎을 꿇고 골방으로 들어가서 엎드려 하는 기도자 뿐 아니라 , 하나님의 뜻이 그토록 사랑하시는 이 세상에 이루워 지게 하는 삶 가운데의 중보자가 되고 싶습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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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7년 3월호

저는 미국에 온 후 계속 필라델피아 근교에 살면서 음악을 공부 했습니다. 한 학교에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공부도 했고 일도 하면서 몇 년 전부터는 후배들과 음대 안에서 작은 말씀 나눔 모임을 만들어서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제가 섬기고 있는 캠퍼스 사역을 통해 배우고 있는 일들에 대해 짧은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앞에서 언급 했듯이 짧지 않은 시간을 한 학교에서만 있다보니 어느새 새로온 유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학교생활에 도움을 줄 얘기를 해 줄만한 여유도 생기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늘 식사시간에 모여 앉으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화거리들이 있습니다. 연습, 숙제, 시험, 진로, competition, audition 등 음악과 학문에 관한 얘기들을 주로 나누게 되고 그러면서 마음이 열리면 자연스럽게 교회와 신앙 생활에 대한 얘기들도 자주 나누게 되었습니다.

필라델피아가 한인들이 많이 사는 도시이기 때문에 한인교회도 많다 보니 20명이 넘는 음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얘기를 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다 각기 다른 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각 교회마다 예배를 위해 필요한 반주자와 지휘자, 악기 연주자와 soloist 들이 크고 작은 교회로 흩어져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 입니다. 음대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이 크고 작은 한인 교회에서 음악쪽 사역을 돕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우리 학교 음대생들은 매주일 교회에 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대생들은 교회에 가면 음악의 전문성을 통해 실질적으로 예배를 돕는 자리에서 섬기게 됩니다(대부분의 교회들은 사례비를 지급하지요). 이들 중에는 신앙생활을 우선순위에 두기 보다는 교회의 음악을 도우면서 자신의 경제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교회를 나가는 학생들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많은 학생들은 어릴때부터 교회 안에서 신앙 생활을 하며 자라와서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다.

후배들과 많은 얘기를 하다보니 신앙이 있다 하는 학생들 중에서도 (청년부나 또래 그룹 모임이 없는 작은 교회에서 반주/지휘/솔로이스트로 섬기기 때문에) 예배 외에는 말씀을 공부하며 나눌만한 적절한 모임이 없어 영적으로 열악한 환경가운데 있는 것이 음대 많은 학생들의 현실임을 알수 있었습니다.

후배들과 몇번의 이런 대화들을 통해 내 마음 가운데 내가 음대 안에서 이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언제부터인가 하게 되었고 기도하면서 마음으로 준비를 하다가 몇 년 전 처음으로 몇 명의 후배들과 함께 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을 하나님의 은혜로 지역 교회와 kosta 등의 모임에서 소그룹 리더로 섬겨왔었기 때문에 그 당시만 해도 학교 안에서 후배들과 모임을 시작 하는것에 대한 큰 부담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학이 아닌 음악을 공부한 사람이 교회를 벗어나 학교 안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것이 학교 사람들 눈에 이상해 보였던 것 같습니다. 모임을 시작하자는 마음을 가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사람들을 모임에 오게 하는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걸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함께 말씀공부 하자고 말 해야겠다.. 하는 생각에 학기 초에 연습실 에서 마주친 성악하는 후배에게 성경공부 함께 하자 했더니 돌아 오는 말은 “저는 전도사님이나 목사님 아니면 함께 성경공부 할 맘이 없습니다” 하는것 입니다. 그날 그 후배의 대답이 속된말로 “언니.. 언니가 하는거 그거 ‘야매’로 하는 것 아닙니까?”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교회 건물 안에서는 소그룹 인도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여겨졌지만 교회 건물을 나와서도 같은 일을 하려는 제가 그 후배의 눈에는 새삼 자격 미달자로 미덥지 않게 보였던가 봅니다. 함께 하겠다는 사람도 없고 바라보는 시선도 야릇하던 처음 모임을 시작하던 그때, 가끔 이렇듯 라이센스 없이 전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 취급을 받으면 꼭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 제가 잘 하고 있는 것 맞나요?” 그러나 이런 생각이 늘 오래가지 않았던 것은 지난 수년간 소그룹 나눔 안에서 제자 삼는 일로 나를 훈련 하시고 인도해 오신 하나님께서 (어쩌면 내가 해야할 숙제같이) 이 캠퍼스에서도 나에게 제자삼는 일을 계속 하시길 원하시고 인도하실 것 이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졸업을 앞둔 세명의 후배들과 함께 이렇게 나는 음대 안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마음을 먹게 되고 모임을 시작 할때는 이 일이 진심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게 되었지만 어쩐지 내 마음은 추운 겨울에 코트도 한 벌 없이 길거리로 나가는 사람의 심정 이었습니다. 역시‘라이센스’ 없는 사람 인지라 유년 주일학교 때부터 성경공부 해 왔어도 신학적으로 대단히 뛰어난 지식도 없었고 그렇다고 누구를 사랑으로 품을 자신도 없었기 때문 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돌아보면 음대 안에서 처음 성경공부를 시작하던 그 해 내 마음은 참으로 궁핍하고 외로웠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몇 명의 후배와 둘러 앉아 성경공부 교재를 가지고 말씀을 나누기를 시작한지 어느덧 일년이 지났습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궁색한 마음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모임을 인도했던 것 같지만 일년이 지나다 보니 그런 느낌마저도 어느정도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방학이 되어서 여름 코스타를 참석해서 처음으로 학원사역에 관한 세미나를 신청해서 듣게 되었습니다. 그 세미나를 가면 나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수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세미나를 인도하시던 집사님께서도 본인이 실제로 현재 캠퍼스 사역을 하고 계신 분 이었고 power point presentation 을 하시면서 자신이 캠퍼스에서 성경공부를 하면서 겪었던 은혜와 노하우를 나눠주셨는데 참 많은 위로와 은혜를 받은 시간 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세미나를 생각하면 생생하게 생각나는 집사님의 간증 같은 말씀이 하나 있습니다. 내용을 짧게 옮겨보자면, 그 집사님께서 어느날 말씀 공부 모임을 생각 하시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캠퍼스를 걷다보니 한국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답니다. 그 집사님 마음에 저 학생들이 예수님을 모르고 살다가 구원을 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예수님을 믿지 않는 학생들의 영혼이 불쌍하고 그 캠퍼스 사람들이 눈에 밟혀서 견딜수 없었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그런 마음으로 캠퍼스에서 말씀을 나누었고 학생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학원 사역자들이 이렇듯 영혼을 바라보며 마음 아프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의 말씀 이었습니다.

어찌 생각하면 이 말씀이 다른 사람들에겐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었던 간증인지 모르겠지만 그 말씀이 내겐 음대 안에서 처음 모임을 시작하고 지난 일년동안 왜 내 마음이 그렇게 궁핍하고 추웠는지 말해 주는 것 만 같았습니다. 예수님의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해 안타까와 하시는 그 마음을 알지 못했기에.. 한 영혼에게 예수님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성경공부는 내가 해야할‘일’이라는 의무감이 내 맘을 더 많이 채우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공들여 말씀공부를 준비하고 모임을 위해 노력했던 지난 일년 이었지만 내 마음은 늘 춥고 궁핍했었던 것 같았습니다. 정말이지 그 후배의 말처럼‘야매’로 말씀공부를 인도하고 있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학기에 함께 말씀을 나누던 후배들이 졸업과 함께 대학원 진학, 한국으로의 귀국을 하면서 모두 흩어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성경공부 모임은 다시 텅 비게 되었습니다. 또 다시 함께 성경공부 할 지체들을 찾아 모임을 시작해야 하는데 이제 내겐 더 이상 자신이 없었습니다. 소그룹 모임을 인도해본 지난 몇 년의 경험도, 다른 사람보다 학교 생활을 더 잘 알고 있다는 상황도 별로 내 마음에 힘이 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난 아직 캠퍼스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지 않은데.. 이렇게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하게 되면 내 맘이 또 춥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모임을 내 맘대로 없앨수 없었기에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지요. “ 하나님, 이제 우리 성경공부 모임에 아무도 남아 있지를 않습니다. 연습실에서 만나는 새로운 후배들은 나이가 많이 어리고 아직 그들과 개인적인 교제도 제대로 나눠본적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아직도 캠퍼스를 보면 눈물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직도 제가 이 모임을 계속 하길 원하시면 한 명의 동역할 사람을 만나게 해 주세요. 그래 주신다면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는줄로 알고 계속 모임을 이끌어 가겠습니다.” 아직도 잃어버린 영혼을 바라보며 마음이 아프신 예수님의 마음을 갖는데는 자신이 없었지만 그날은 그렇게 기도 드렸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나의 못남과 부족한 모습에 상관하지 않으시고 마치 내가 낙심 할까 걱정이라도 되셨다는듯이 기도를 한 그 날로 응답을 주셨습니다. 그날 오후 다른 학교에서 transfer를 해온 새로온 후배에게 말씀 공부 얘기를 했더니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듯이 눈을 반짝 거리면서 “언니, 우리 교회에는 청년부도 없고 저는 교회가서 그냥 반주만 하는데, 저 누구랑 말씀 공부하고 그런거 너무 해보고 싶었어요” 하는게 아닙니까.. 제 기도 응답이 된 그 후배와는 지금도 2년째 한 주도 빠짐 없이 말씀을 공부하고 나누는 귀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그 학기에 말씀공부와 나눔을 통해.. 참 귀한 배움과 은혜를 경험 했습니다. 더 이상의 인원은 없이 그 후배와 단 둘이 말씀을 나눴지만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말씀 묵상과 그 후배와의 교제를 통해 많은 은혜를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후배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제 마음에 알게 해 주심으로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갈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나의 귀한 동역자이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후배와 한 학기의 말씀 공부를 통해 나의 메말랐던 마음에 주님의 은혜의 샘물이 다시 흐르게 되었습니다. 몇 학기를 더 지나면서 말씀 공부 고정 멤버가 조금 더 늘어났고 기도와 나눔은 더욱 풍성해 졌습니다.

아직도 저는 마음이 차갑고 부족해서 캠퍼스를 바라보며 더욱 예수님의 눈과 마음을 갖길 갈망하고 기도하고 있지만 주님께서 말씀으로 옷 입혀주시고 내 안에 채워주시는 은혜로 지금은 더 이상 마음의 추운 겨울 안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보여드렸더니 빈 마음을 보시고 그곳을 은혜로 채워주셨습니다. 나의‘일’을 내려놓게 하시고 주님의‘은혜’가운데로 불러주셔서 나를 생명을 살리며 제자 삼는 곳에 함께 동참 시켜주셨습니다. 오늘도 저는 주님께서 불러주신 말씀 공부라는 모임을 통해 주님께서 하시는 일을 바라보며 주님을 배워가며 주님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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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7년 3월호

일단 감사합니다. 참 감사합니다. 생활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를 허락하시고, 그 안에서 잘못된 부분, 작지만 소중한 부분, 들려 주시려는 하나님의 음성,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부분들을 보게 하시고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들을 생각해보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지난 달인 12월 말 즈음에 시작하여 이런 저런 나름대로의 깊은 생각을 하며 한 해를 정리하고 새 해를 시작할 수 있도록 인도하심에 감사합니다.

제자로서의 삶’에 대한 글을 부탁하시는 말씀을 들었을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내 평소 생활을 생각하면서 써보면 어떨까’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깊은 회개의 기도를 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득, 하지만 선명하게 들었던 생각은 ‘제자가 자신의 생활을 생각하면서 써야지 ‘제자로서의 삶’이지, 제자가 아닌 사람이 자신의 생활을 적어보면 그건 ‘제자의 삶’에 대한 글이 아니지 않은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아직도 자신있게 ‘나, 제자입니다’ 라고 말 할 수 없는 것인가라는 부끄러운 생각도 들고, 또 한편으로는 ‘이번 기회에 ‘빡세게’ 기도 한번 하고 잘 써보자’라는 생각도 들고, 여러가지 생각이 드는 한 달㈏?시간이었습니다. ‘제자의 삶’이라는 것을 ‘제자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내지는 ‘제자의 삶이란 이런 것일 것이다’ 라는 글이 아닌, 제 생활을 돌아보면서 어떤 삶이 제자의 삶인지 생각해 본 것을 짧게 나눠보고 싶습니다. 제자의 삶에 대한 중요한 내용들은 이미 eKOSTA게시판에도 여러 좋은 글들이 있고, 많은 신앙의 선생님들과 선배님들이 많이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제가 여기저기에서 인용해서 다시 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제자의 ‘삶’이라는 단어 자체가 너무 긴 시간과 많은 분량으로 다가와 부담이 든 나머지, 부끄럽지만 저는 제자로서의 일상의 생활이 어떤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생활하는가, 제 생활을 생각해 보면서 나누겠습니다.

약 3년 반 전에 결혼을 하고, 저의 하루하루의 생활은 어느 정도 단조로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보통 우리들이 살면서 겪어보지 않을 수 있는, 그리고 그렇지 않기를 바라기도 하는, 그런 힘든 일들도 그 짧은 기간에 여러 차례있었습니다만…) 저의 생활에서의 주 활동 반경을 생각해 보면 크게 가정, 직장, 그리고 함께 성경공부를 하는 캠퍼스 정도가 되더군요. (사실, 교회가 집에서 좀 멀어서 거의 주일에만 교회를 가고, 유치부 교사로 섬기는 일 외에는 여러 주 중의 다른 활동에 참여가 많지 않아 주 활동 반경에 포함하기는 조금 힘듭니다. 요즘 들어서 많이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골3:23)

제가 늘 마음에 두는 말씀들 중의 한 구절입니다. 저는 결혼을 하고California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Thousand Oaks라는 곳에 있는 Amgen이라는 한 제약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학부 때 전공이 Biochemistry여서 동부에 살 때는 주로 Lab안에서 조용히 일을 했는데요, 이 회사에서 IT쪽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그것도 management쪽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환경 가운데에 있습니다. 지금은 IT Project Management Consultant로 일하고 있구요. 사는 곳이 Southern California이고 다니는 직장이 Biotech에 IT라 그런지, 회사안에서의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이 꽤 높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힌두교도인 인도인들인데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도 꽤 있어서 가끔 성경의 한 부분들을 나눠보곤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주로 금요일 성경공부를 위해 준비하는 본문의 말씀들을 금요일 성경공부 전에 또는 후에 주변 사람들과 나눠보기도 합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성경공부 준비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말씀을 들여다 보는 시간도 있고, 본문 말씀이나 다른 자료들을 프린트해서 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옆에서 그걸 본 사람들은 관심을 보이고 물어보기도 하고 (한국말로 써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말씀을 놓고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 말씀으로 다가가게 하신다는 것이지요. 자연스럽게 말씀을 생각하며 사람들을 대할 때, 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생각해 보게 되고, 또 그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되고, 그러면서 함께 일하는 부분들이 좀 더 자연스러워지더군요. 문득, 어느 날 제 마음 한 켠에 두려움이 급습을 한 날이 있었는데요, 이제는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제가 크리스챤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크리스챤으로서, 우리가 흔히 세상에서 생각하는, ‘잘 할 것’을 저한테 기대한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사실, 그것을 알게 된 후에 더욱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조심하게 되고 하는 일에도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더군요. 저는 솔직히, 너무 제 안의 교만함이 많아서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이 잘 될 때, 많은 주변의 사람들이 제가 하고 있는 일들을 좋게 평가하며 함께 나누었으면 할 때, 너무나도 무서운, 평소에 늘 있으나 제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제 안의 무서운 점을 보게 됩니다. 그 때 마다 늘 골로새서 3장23절의 말씀을 생각하며, 주변 사람들을 대할 때, 그리고 저에게 주어진 일 을 할 때 조심합니다. 저는 또한 개인적으로 제 일에서 만족을 누리려고 노력합니다. 사실 지금하고 있는 일이 나한테 정말 맞는 일인가 묻는 경우도 꽤 있기는 한데요, 그러면서도 만족을 누리려고 하는 이유는이제는 제가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이 직장에서의 제 생활이 제 자신안에 형성된 하나님의 디자인을 발견하는 의미있는 사역의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어떤 자리로 어떤 모양으로 인도하실지는 모르지만 이런 직장과 이런 일에 저를 허락하실 때에는 그 위에 하나님의 뜻이 함께 하심을 확신합니다. 만족이라는 것이 일을 성취할 때의 희열이라던지, 나의 시간과 노력과 노동을 투자한 후에 얻는 금전적 또는 정신적 보상 등의 것으로도 물론 표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무슨 일을 하든지 진심으로 헌신과 정열을 다해 할 때 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무엇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 그리고 그런 작은 일이지만 그 일을 하고 있는 나와 하나님께서는 함께 해 주신다는 감사함이 들 때 꽤 깊은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여라.” (눅17:10)

California에서 살게되면서 UCLA에서 UCLA학생들, 또는 말씀을 함께 공부하고 싶어하는 UCLA주변의 자매님들, 형제님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3년여가 지난 지금은 LA서쪽의 Santa Monica에 있는 Santa Monica College(SMC)라는 Community College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함께 사랑과 헌신으로 섬기시는 많은 지체들과 각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열정과 계획을 갖고 참여하는 지체들로부터 많은 격려와 도전을 받습니다. 성경공부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지만 성경공부를 통해서 만나게 된 여러 자매님들, 형제님들과 교제를 나누며 삶의 많은 부분들을 배우기도 하구요. 성경공부를 함께 하다보면, 성경공부에 참여하는 지체들의 숫자가 늘기도 하고 줄기도 하고, 저를 포함해서 성경공부 식구들이 나름대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듯 하다가 멀어지는 듯 하기도 하고, 멀어지는 듯 하다가 가까이 나아가기도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서, 믿음이 잘 성장하는 경우도 있고, 안타깝게도 아직은 때가 이르지 않아서 성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구요. 함께 성경공부를 통해 섬기시는 간사들 가운데에 저는 딱히 UCLA에 소속을 두고 있는 경우가 아니라서, 지금은 옆 동네 학교인 SMC에서 섬길 수 있는 특권도 누리고 있는데요, 이 성경공부 모임은 이제 막 (2006년 가을 학기부터 시작) 시작한 모임이라, 서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나누기를 소망하며, 그런 날이 올 것을 믿으며, 서로 ‘모이기에 힘쓰는’ 모임입니다. 캠퍼스를 섬기며 갖게되는 작은 소망은 이런 저런 작은 모임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실 일꾼들이 길러지는 하나님의 귀한 캠퍼스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사실 저에게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무살에 미국에 와서, 처음에 영어에 익숙하지 않고, 문화에도 익숙하지 않아 적응이 쉽지 않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 때에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많은 신앙의 선배님들의 보살피심이 있어서, 쉽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고생스럽지 않게 적응할 수 있는 감사함이 있었습니다. 캠퍼스에서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며 공부하는 학생들이, 올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 말씀을 통해 자신에게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함께 발견하고, 또 발견함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바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에 이 정말 쓸모 없는 종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조용히 사라져 또 어느 곳으로 옮기실 지는 모르지만 그 준비를 겸손하게 하고 싶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곳을 향하는 나그네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저에게 원하시는 거룩함과 겸손함과 순종함을 유지하고 싶습니다. 여러 곳에 여러 모양으로 흩어져서 곳곳에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한 마음을 품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계속하여 세우시고 성령의 끈으로 연결시켜 주시는 그 일에 계속 동참하고 싶습니다.

“너의 헛된 모든 날, 하나님이 세상에서 너에게 주신 덧없는 모든 날에 너는 너의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즐거움을 누려라. 그것은 네가 사는 동안에, 세상에서 애쓴 수고로 받는 몫이다.” (전9:9) “당신들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당신들의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명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아 있을 때나 길을 갈 때나, 누워 있을 때나 일어나 있을 때나, 언제든지 가르치십시오.” (신 6:5-7)

저는 제 아내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제 아내가 UCLA에서 공부를 하는 중이어서, UCLA학생 아파트에서 약 3년 정도 살다가 지금은 LA에서 약 30마일 정도 떨어져있는, 제가 다니는 회사로는 좀 더 가까운 곳에 있는 Calabasas라는 꽤 시골 분위기가 나는 조용한 곳에 살고 있는데요, 제 아내가 공부를 해서 그런지, 아직 아이가 없어서인지 집안 분위기는 꽤 조용하고 차분한 편입니다. 항상 서로가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려고 하고요. 매일 금요일에 있는 성경공부를 서로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경공부가 있는 금요일 전 후로 그 주에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누기도 하구요. 제가 좀 TV를 오래 보거나 잠깐 졸려고 하면 가차없이 지적을 (꽤 부드러운 표현입니다만) 하기도 하구요. 사실 결혼을 하면서 전도서 9장 9절의 말씀이 새삼 감사하게 받아들여 졌습니다 - 사랑하는 아내와 더불어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사는 동안에 애쓴 수고로 받는 몫이라는 말씀. 이 구절, 사실은 저희들의 주례설교를 해 주셨던 목사님께서 주신 칼라 성경책에 빨간색 밑줄이 쫙 그어져 있는 구절이거든요. 꽤 오랜 기간 교제를 하고 결혼을 해서 그런지, 전 제 아내를 많이 사랑합니다. 제 아내도 저를 많이 사랑하구요. 저의 생활의 다른 주된 공간인 직장에서나, 성경공부를 하는 캠퍼스에서 힘든 일이 있거나, 어려운 일이 있어도 아내와 함께 있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쉼을 허락하실 때에 참 깊은 감사가 있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일들을 함께 나눌 때도 물론 그렇구요. 그런데, 전도서 9장 9절의 말씀이 전도서라는 책의 본문의 위치나 앞 뒤의 내용 구조를 볼 때, 그리고 또 그 때에는 아내와 더불어 즐기는 것이 아닌 다른 첩들 내지는 다른 방법으로 즐기는 것들에 대한 시대적인 배경에서 나오는 잠언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내가 원하는대로, 이 한 구절 말씀만으로 ‘가정에 대한 의미를 ‘힘든 삶 속에서의 쉼터’, 내지는 ‘아내와 즐기는 곳’으로 한정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런 의미는 믿는 사람의 가정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당연하게 매우 기본적이며 또한 당연히 그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도록 서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말씀의 다른 부분들을 생각할 때,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바로 그 도를 전수하는 터이며 (신4:9-10, 신 6:5-9),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는 (행10:2), 바로 ‘부부’라는 두 사람이 동역하며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사역의 출발점이 되는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기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7)

제 생활의 주된 부분의 단면들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살아가며 제가 하고 있는 생각들입니다. 이런 생활을, 이런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이런 공간이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많은 것들을 제 삶에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별 큰 어려움이 없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시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원하시고 바라시는 점들이 있음을 생각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것들 마저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제가 ‘잘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한 표현임을 깨닫게 됨을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그 사랑의 바탕위에서, 직장에서 진실되게 충성하기를 원하시고, 저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일들 가운데에서 거룩하고, 겸손하고, 순종하며, 사랑을 실천하기를 원하시고, 제 가정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며, 헌신하는 사역의 출발점이 되도록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저는 주님께서 저를 데려가실 때에 디모데후서 4장7절의 고백을 할 수 있기를 늘 원합니다. 그리고 밑에는 제가 참 좋아하는 찬송, 434장입니다. 1, 2, 3절 다 감사하고 좋은 데요, 1절 만 적습니다. 어렸을 때, 아주 어렸을 때 부터, 중간 중간의 말 뜻도 구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던 때 부터 좋아하던 찬송이라, 어른들께서도 이상해 하셨던 기억이 있는데요… 함께 하고 싶습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내 주 안에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 위로 받겠네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형통하리라

항상 인도하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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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o.k 2008/06/06 06:19  Addr Edit/Del Reply

    용진간사님~~아직도 두분 너무 보기 좋으세요~~
    제자되어 제자삼고 계신 간사님 화이팅!!

  2. 정지웅 2008/06/17 10:39  Addr Edit/Del Reply

    오랜만에 글을 읽으며 두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늘 한결같은 은혜로 가슴벅찬 길을 걷고 계신 두분을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이코스타 2007년 1월호

노스캐롤라이나 샬롯에 온 것이 2001년 1월. 보스턴에서 청년부모임을 통해 청년사역과 자매사역이라는 비젼을 품고 달려 왔던 이곳. 하지만 보스턴 모임과는 달리 이곳 샬롯에 오니 너무나 다른 환경이었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 하면 적막하다고나 할까? 섬기게된 교회의 특성상, 청년부 모임도 할 수 없었고,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마저 함께 할 수 있는 성경공부 모임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하나님께 왜 이 곳에 있게 오게 되었는지 기도하던 중에 우연히 학교 성경공부 모임에 대해 기도하던 지체들을 만나 작게나마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5년이 흐르게 되었다. 그 세월동안 나에게도 변화가 있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양육하게 되었다.

그 5년간의 일을 돌아보며 미래를 생각해본다. 앞에서 이야기했던 것 처럼 몇몇 뜻이 맞는 사람들과의 모임으로 시작한 이 성경공부 모임이 그 규모가 조금씩 커져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학생들만의 모임으로 시작 되었던 이 학교 성경 공부 모임이 예상과는 달리 조금 다른 모양을 가지게 되었다. 이 성경공부 모임이 이 학교에서 처음으로 모이는 한글어 성경공부 모임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관심 있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픈 되어졌고 지역 성경 공부의 양상을 띠?된 것이다. 예로, 교제와 말씀에 목말라 아이를 데리고 성경공부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자매, 언니 집에 방문하러 이곳에 와 단기간 머무르는 동안에 함께 했던 자매, 군대 제대 후 학교 복학 하기 전에 미국여행 와서 만났던 형제, 청년들에게 마음이 있어서 간식으로, 물질로 섬기셨던 집사님 등등. 나이도 형편도, 그리고 하고 있는 일도 모두 달랐다. 나이차가 어떨땐 30년 이상이 나기도 했다. 이 다름 아닌 다름은 지체들을 모으고 함께 하는데 약간의 어려움들을 갖게 하였다. 학생에 촛점을 맞출 수 만도 없고 그렇다고 학생이 아닌 지체들에게 촛점을 맞출 수도 없었던게 사실이었다. 더우기 지역적인 상황때문에 나에게 주어져 있는 상황과 생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공동체 마저 없었다는 것이 너무나 많이 나를 힘들게 하였다. 그래서 인지 처음엔 왜 이런 상황에 내가 있어야 하냐고 하나님께 많이도 따져 물었던 것 같다. 늘 학생들에게 만 관심을 기울이던 나에겐 참으로 새로운 경험이긴 하였지만 지금까지 내가 섬겨오던 성경 공부의 모습과는 또 다른, 즉 나와 비슷한 상황의 지체들하고만 했던 성경공부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좋은 경험이었다 라고 지금은 말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땐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 처럼 불편했던 것을 고백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그게 하나님께서 만든신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인데 말이다. 가난한자와 부유한자, 배운자와 배우지 못한자, 나이가 어린자와 나이가 많은자, 모두가 함께 어우러 질 수 있는 곳, 천국이란 곳… 다시 돌이켜 보면 학생이라는 작은 단위에 집중하다가 정말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시며 나누라 하시는 것을 잃어버릴 뻔 하기도 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보스턴에서의 청년모임처럼 같은 또래들과의 교제를 갈망했던 나에게 한 경험을 허락 하셨는데 그게 바로 2003년 노스 케롤라이나 gpKOSTA 였다. 이 지역 코스타를 통해그린스보로와 랄리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만나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네트워크를 그리고 있던 나에게 내가 있는 곳만 지엽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이곳과 같이 힘들지만 말씀으로 제자 삼고 격려하는 모임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가끔 지체를 섬기고 말씀공부 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울 때, 다른 곳에서 비슷한 상황에 힘들지만 꿋꿋이 말씀 공부하며 섬기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긴다. 지역 코스타 이후로 매년 같은 곳에서 노스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 학생들이 모여 수양회를 열어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말씀으로 새로워지니 더욱 감사하다. 이제는 나에게 주어져 있는 이 모든 것이 축복인 것을 조금은 안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랑이 나누어지는 곳에선 그 어떤 배경도 상황도 포함하여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힘이 있음을 경험하였다. 때로는 비슷함에 대한 그리움도 있지만 오히려 다른 상황과 지체들을 생각하며 큰 그림을 보며 학생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나중에 우리 지체들간에 더 유익이 있음을 믿는다. 학생사역을 통해 더 크고 넓게 섬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안에 있게 됨이 감사하다.

현재 나에게 주어져 있는 상황에 더욱 솔직해 지면 젊은 학생들과 그리고 특히, 자매들에게 마음이 있었던 나에게, 결혼과 아이 양육의 큰 변화는 사역의 모습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학교에서 일하며, 아이를 양육하며, 그 전에 섬겼던 모임과 사역을 똑같이 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모임의 지체들은 이런 나를 이해하고 격려하며 기도해 주었지만, 내 안엔 늘 안타까움과 아쉬움들이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모임도 그 전과 같이 자주 나가기가 어렵고, 섬기는 일도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이런 저런 모양으로 끊임없이 만나게 하시는 지체들을 위해 개인 성경공부나 만남으로 권면하고 기도로 섬기고 있다. 내가 있는 곳, 나를 있게 하시는 곳, 그곳에서 주신 영혼을 위해 함께 말씀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것이 나에게 주시는 비젼이고 소명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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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현진 2008/08/17 03:47  Addr Edit/Del Reply

    배선영 자매님과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할 지 몰라 답답하네요. 저희 가족도 2001년부터 노스캐롤라이나 샬롯에서 지내면서 많이 갈급해하고 있습니다. 지금 선영 자매님께서 샬롯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계신지, 어떻게 제자 삶기 원하는 사람과 제자 삶는 사람들이 서로 만나고 계신지, 앞에 언급하신 그 성경 공부는 계속하고 계신지 정말 궁금합니다. 연락을 할 수 없는게 참 답답하네요.

  2. JK 2008/08/20 17:59  Addr Edit/Del Reply

    http://jj.kostausa.org 방문해 보세요. 배선영 자매님은 jjKOSTA 6지역 코디로 섬기고 계시니까, 6지역 게시판에 글을 남기시면 연락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코스타 2006년 11월호

유학생으로 미국 땅을 밟고 지낸 7년, 그리고 직장인으로 2년 남짓 보낸 시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나와 내 가정에게 참으로 많은 축복을 내려주셨다. 무엇보다 하나님 안에서 꿈꾸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또 그 비전을 붙잡고 기도하게 하셨다. 나의 내딛는 한발 한발을 주의 친절한 팔로 이끄신 곳은 이 곳, 테네시 주립 대학이다.

처음 교수라는 직분으로 이 곳에 왔을 때, 나는 온통 기쁨과 감사,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쓰임받겠다는 열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코스타에서 뵈었던 교수님들의 모습, 캠퍼스에서 제자 삶기에 열심이셨던 그 분들의 모습이 떠올랐고, 나도 그렇게 되리라 기대하고 기도했었다. 그러나,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 또 나를 다지시길 원하셨다.

교수로서 일을 시작하며 가장 큰 문제는 내가 가르치는 학부 학생들, 주로 미국인 학생들과의 관계였다. 젊은 동양인 여교수가 수업을 가르칠 때 반응은 두가지였다. 호의 아니면 무시.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서툰 영어라도 나올 때면 의례 주늑이 든 나 자신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때가 더 많았다. 학생들 눈빛 하나 하나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한 번씩 무례한 행동을 하는 학생에 대해서는 며칠을 끙끙 앓아대며 내심 ‘어떻게 혼내줄까’ 궁리를 하고 있었다. 교회 기도 모임에 가면 기도 제목은 늘 똑같았다. “실력있는 교수가 되어서 teaching 에 자신감을 갖게 해주세요.” 그러나, 수업과 학생들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나님, 여기까지 보내셨을 때는 능력과 지혜도 함께 주셨어야죠.” 어느새 내 기도 속에 불만이 베어나오기 시작했다. 이번 학기, 여전히 실력과 지혜를 달라고 기도를 하는 중, 성령께서 문득 ‘이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아니다’ 라는 생각을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이 주신 대답은 간단했다. “사랑하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실력있는 교수가 되기 보다 먼저 학생들을 사랑하는 교수가 되길 원하셨다. 그 후로, 수업 시간에는 학생들의 반응이 아니라, 이 수업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수업인가에 촛점을 맞추었고, 행여나 아쉬운 소리를 해야하는 학생이 생기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도록 기도했다. 나의 기도는 ‘실력과 지혜’가 아닌 학생들과의 relationship building 로 바뀌었다..

그렇게 얼마가 흐른 후, 하나님께서는 ‘통하는’ 길을 보여주셨다. 수업 중 학생들의 반응에 가슴 졸이는 것에서 해방되었고, 학생들이 내게 마음을 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학생은 ‘당신이 얼마나 이 수업을 위해 애쓰는지 알고 있습니다. 힘내세요.’ 라는 이메일을 보내주었고, 수업에서 늘 불만을 얘기하던 한 인도 여학생은 인도 학생회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초대해 주기도 하였다.

연말이 되면 꼭 학생들에게 주는 숙제가 있다. Vision Project. 그 과제를 통해 나는 학생들이 미래를 좀 더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그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또한 이 과제를 주며 나는 학생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얘기하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분이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 그리고 그 목적을 찾아 이루어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를 원한다. 실제로, 지난 해 이 과제를 제출한 학생들 중에는 그들의 인생 계획 중 ‘mission’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얼마나 반가웠던지… 나의 사역의 방향을 ‘한국인’에게 너무나 고정시켜 놓았었다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서 있는 이 미국 땅에서 외국인들에 대해 마음을 쏟게 하신다. 나의 하루 24시간 중 삼분의 일을 함께 하는 이 학생들에게는, 왜 내 마음이 그토록 강팍하였을까? 이제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과 relationship을 쌓고, 또 그들과 하나님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선생이 되기를 기도한다. 좋으신 선생님이었던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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