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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가 제대로 준비가 안 돼 교회가 더 부흥을 못합니다.”

 제직회에서 교육부 보고를 하던 자리에서 어느 나이 많은 집사님이 내게 던진 말씀이다. 미국의 경우, 신학교가 없는 작은 도시의 이민교회에서는 담임목사님 외에는 부교역자를 찾기 어렵다. 십여년 전 내가 섬기던 교회도 작은 도시에 터를 잡고 개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교회였다. 그런데 갑자기 교인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의 수도 계속 늘어나 교육부 전체를 평신도 여집사 한 사람이 유치부부터 청년부까지 각기 다른 연령의 아이들을 예배 인도부터 성경공부까지 모두 감당해야 했고, 그것이 교인들 눈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으로 보인 듯했다. 솔직히 스스로도 교회의 부흥이 반갑기보다는 아이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두려웠다. 주일마다 몇 개의 예배와 성경공부를 인도하느라 너무 피곤한 탓에 큰 부담으로 주일을 맞이하곤 했다. 교육부 사역자의 증원을 요구하는 교인들의 요구는 계속 커져 갔지만, 부교육자를 청빙할 형편도 안 되는 터에 평신도 리더들은 남들 눈에 띄는 성가대나 찬양팀, 안내나 어른들 사역 쪽으로는 많이 관심을 보이고 지원을 하면서도 아무도 알아주지도 않고 아이들에게 시달려야 하는 교육부는 영어에 자신이 없다는 핑계로 동참하는 것을 꺼렸다. 그러면서도 학부모와 교회의 제직들은 모이기만 하면 피상적인 충고와 대책을 늘어놓으며, 해결을 위한 도움보다는 지금 무엇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를 비판하는 미팅을 계속하고 있었다.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많이 상한 채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며 기도하던 중, 당시 주말마다 인도하던 청년부 리더들의 소그룹 모임이 이 문제를 함께 풀어주었다. 그 주에서 가장 큰 대학을 다니는 학부 학생과 대학원 학생들이 중심이 된 청년대학부는 수가 점점 늘어 많은 학생이 성경공부에 나오고 있었다. 전체 모임은 내가 인도했지만, 성경공부 시간은 인원이 너무 많아져서 여러 개의 소그룹으로 나누어 각기 리더를 세우고, 그 리더들과 정기적으로 모여 훈련과 함께 여러 가지 일을 의논하는 형태로 운영하고 있었다.

 교육부의 큰 문제를 처음 그들에게 나누고 기도를 부탁할 때는 그저 답답한 마음에 함께 기도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솔직히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합심하여 기도를 한 후, 그 청년들은 교회가 당면한 교육부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건설적이고 긍정적인 의견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먼저 정리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다양한 시각에서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적 자원의 한계 속에서 많은 필요를 충족시킬 최고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과 대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때 그 다섯 명의 리더가 각기 자신의 경험과 은사에 따라 각 부서의 담당자로 자원했다. 유치부, 유년부, 중등부, 고등부, 대학부를 부서별로 맡아 책임을 지고 사역하기로 한 것이다. 각 부서를 맡은 사람이 부서에 필요한 선생님을 청년부와 대학부, 장년들 중에서 발굴하고, 내가 세미나 등을 통해 그분들에 대한 정기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맡아주면, 각 부를 책임진 담당자들이 선생님들을 돌보고 양육하면서 그 부서에 필요한 활동들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었고, 이렇게 하여 연령별로 필요한 행사를 통해 모든 부의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게 되었다. 나는 담당자들과 정기적으로 모여 말씀 앞에 서로를 훈련하고, 사역을 검토하고 격려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통해서 교회의 열악한 교육상황을 얼마나 놀랍게 바꾸시는지를 목도할 수 있었다. 모든 부서에 젊고 창의적인 청년 선생님들이 헌신적으로 섬기게 되었다. 그때 세워진 청년 리더들은 지금 건강한 평신도 사역자로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 기둥과 같은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있다.

 심각한 갈등이나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한 개인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그것을 헤쳐 나가는 것이 무척 난감하고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소그룹이 각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의견과 각자 가지고 있는 은사들을 동원하여 문제를 대하게 되면, 탁월하고 객관적인 해석을 찾게 되고, 모두 주인의식을 가지고 함께 찾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헌신하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모두가 함께 일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함께 일하는 소그룹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경험하게 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니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나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4장 9절-12절) 

 리더십 개발

 좋은 소그룹 인도자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그룹원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의 본을 보이고, 강의하여 주입하는 학습법이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자이다. 이런 인도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소그룹 사역의 성패는 프로그램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인도자들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 말씀과 사람들을 사랑하고, 성령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또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며 늘 기도하는 사람이 좋은 소그룹 인도자가 될 자질을 갖춘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길 잃은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일에 열정을 다하고, 늘 복음을 증거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들과 함께 인도자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중요한 임무는 다른 리더들을 양육하는 일이다.

 그것은 소그룹 리더는 소그룹 안에서 가장 잘 개발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리더십의 개발은 소그룹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소그룹 사역의 생명은 소그룹원들의 영적 성장뿐만 아니라 재생산과 증식을 통하여 교회가 수적, 질적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그룹 사역의 성패는 유능한 인도자들을 발굴하고 양성하여 새로운 소그룹에 투입하는 전략을 효과적으로 수립하는 데 있다.

 소그룹 안에서 소그룹 인도자들을 가장 잘 개발할 수 있는 이유는 소그룹 경험을 통해서, 또 이미 세워진 인도자들의 모범을 보면서 강의로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단번에 몸에 익히고 배울 수 있을 뿐 아니라, 먼저 세워진 인도자의 친밀한 멘토링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소그룹을 인도할 때 필요한 중요한 지침들을 반복해서 학습하는 훈련을 장기간에 걸쳐 확실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 소그룹 사역을 위해 인도자들을 세워야 할 때, 목사님이 몇 번의 훈련을 하신 후 그동안의 신앙생활로 대강 평가하여 소그룹에 바로 투입하는 방법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목사님과 준비된 사람들이 함께 소그룹 모임을 충분히 가져서 목사님이 소그룹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멘토링의 모범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들이 소그룹을 시작하도록 돕는 한편, 그분들이 다른 리더십 개발을 위해 부인도자를 선임하여 그 사람을 멘토하고 양육하게 하여 필요시에 목사님께서 인도자로 인준하는 방법이 가장 건강하게 소그룹 인도자들을 세워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러스티 칼웰(Rusty Calwell)은 멘토링의 공식을 “내가 하면 당신은 보십시오. 그리고 도우십시오. 당신이 하면, 내가 돕습니다. 그리고 봅니다.”라고 표현했다.

 이 공식을 리더들에게 설명할 때 나는 UCLA에서 경험한, 개구리를 물에 삶는 실험과정을 설명해 주며 이해를 돕는다. 개구리를 처음부터 끓는물에 넣으면 바로 튀어서 도망가기 때문에 먼저 찬물에 넣어야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찬물의 온도를 0.036도씩 올려서 개구리가 물의 온도에 익숙해지도록 하면, 그 물이 끓어도 개구리가 아주 편안한 상태에서 반항 없이 죽는데, 그 시간은 2시간 30분 후라고 한다.

 누구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바로 소그룹 인도자가 되라고 하면 개구리가 튀어 나가듯 거절한다. 그래서 먼저 찬물에 넣는 단계가 필요하다. ‘제가 할 때 그냥 보시기만 하시지요.’가 바로 그 단계이다. 이 단계를 통해 그들은 인도자가 어떻게 인도하고 모든 상황에 대처하는지 관찰하게 된다. 그후 ‘제가 도움이 좀 필요한데 저를 도와주시겠어요?’라는 단계로 넘어가는데, 이 단계는 다시 몇 단계로 나뉜다. 처음에는 머리를 안 써도 되는 가벼운 일들을 부탁한다. 그렇게 몇 개월을 함께하며 교재를 몇 권 정도 공부하고, 또 인도자 훈련 워크숍을 받게 한 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서 한 달에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소그룹을 인도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때 준비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함께 돕겠다고 하며 반드시 지시가 아니라 부탁하는 자세로 해야 한다. 그리고 몇 달 동안 그 사람에게 인도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주면서 그때마다 건설적인 피드백을 준다. 어느 정도 준비가 되고, 또 소그룹 인원이 너무 많아져 분가를 해야 할 때가 되면 ‘당신이 하면 내가 돕습니다. 내가 봅니다.’의 단계로 넘어가서 그 사람에게 힘이 되어 줄 소그룹원들을 맡기고, 기존의 리더가 조금 어려운 사람들을 맡아서 분가하도록 한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이제 인도해 보세요. 제가 옆에서 늘 지켜보며 필요한 일이 있으면 항상 돕겠습니다.’ 분가 후에도 지속적으로 돕고 보살펴야 하므로 멘토링의 금기사항과 권장사항을 기억하여 좋은 멘토가 되어 주어야 한다. 

멘토링의 금기사항 

1.    지배하지 않기: 자신이 선임 인도자라고 하여 자기 생각대로 따르는 것이 영적 질서를 지키는 일인 것처럼 교육하거나 강요해서는 안 된다. 존경받는 리더십은 강요로 얻어지는 절대 복종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투명하고 진실한 삶의 모습을 통해 상대방의 마음을 감동시켜 함께 목표를 이루어 나가게 하는 힘이다.

2.    경쟁하지 않기: 혹시 소그룹원들이 자신보다 새로 세워지는 사람을 더 좋아하거나 따르지 않는지 노심초사하며 자신이 더 유능한 리더임을 보여주려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다른 소그룹 인도자들과 양적 부흥을 놓고 서로 경쟁적인 태도를 보이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부흥은 소그룹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가운데 그들의 삶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기: 새로 세워진 인도자가 선임 인도자인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놓거나 자신의 의견에 반대할지라도, 감정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반목하고 대립해서는 안 된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감사함으로 받고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려는 태도야말로 많은 사람으로부터 더한 존경심을 일으키게 하는 겸손하고 진실한 리더의 태도다.

멘토링의 권장사항 

1.    모범 보이기: 멘토링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좋은 모범을 보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상대의 말보다는 행동을 보며 따라한다. 그러므로 선임 인도자들은 항상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소그룹에서 인도자로서 좋은 모범을 보이도록 하여야 한다.

2.    영적 지도력 발휘하기: 영적 지도력이란 멘토가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으로 결정하지 않고, 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이끄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기도와 말씀을 떠나 외적인 환경과 상황으로 판단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도록 늘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3.    후원하는 태도: 소그룹 안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어느 자리에서도 양육하는 사람들을 세워주고, 긍정적인 격려와 구체적인 칭찬을 주며 후원하는 멘토는 지치고 두려운 발에 힘을 실어주고,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갖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리더이다.

 지금 이렇게 평신도 소그룹 사역자로 감히 쓰임을 받을 수 있게 되기까지 나를 길러주신 많은 영적인 선생님들, 멘토들이 계셨다. 어릴적,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정말 잘한다며 박수 치며 칭찬해 주시고 마음을 다해 내 생각을 경청해 주신 아버지가 따뜻하고 존경스러운 영적 리더셨고, 처음 강의를 위해 길을 떠나던 날, 다니며 배고플 때 밥이라도 사먹으라며 용돈을 주신 담임목사님을 잊을 수 없다. 목사님은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던 나를 일으켜 교회에서 새벽예배나 수요예배를 인도할 수 있도록 세워주시고 자신감을 키워주셨을 뿐 아니라 앞으로 세계적인 강사가 될 거라며 늘 비전을 불어넣어 주셨다. 그리고 지금 대표를 맡고 있는 커피 브레이크 사역의 전 대표는 지금도 영적인 멘토로 격려와 후원을 아끼지 않으시고, 늘 기도하시며 부족한 사람을 세워주시고 계신다.

 성경적 리더십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과 불신자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상호 사역의 기회로 인도하는 목적을 갖고 있기에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자신이 주님과 친밀하고 성숙한 관계를 유지하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늘 인식하며, 다른 사람을 세우려는 비전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소그룹 사역은 교회 목회의 전부도, 목회의 만병통치약도 아니다. 그저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의 일부를 이루는 겸손한 도구일 뿐이지만, 소그룹 환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생명의 복음을 각기 처한 삶의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도록 전하는 소중한 사역이기도 하다. 소그룹 사역을 통해 사랑과 권면, 서로 동역함의 필요가 아름답게 나누어지고 채워질 수 있는 것이다.

소그룹 사역의 관건은 잘 훈련된 사역자들이므로 교회는 리더십 개발에 주력하여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건실한 소그룹 사역자들이 소그룹 안에서 많이 세워지도록 해야 한다.그래서 새들백 교회나 윌로우 크릭 교회처럼 소그룹 중심의 교회들이 수없이 일어나서 이 마지막 때에 많은 영혼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데 귀하게 쓰임 받는 아름다운 주님의 교회들이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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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루베리 치즈케이크를 만들려고 재료를 사러 장에 갔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그날 따라 블루베리가 보이지 않았다. 가족들에게 오늘 저녁 후식은 블루베리 치즈케이크라고 광고를 한 터라 잔뜩 기대를 하고 들어올 게 뻔해 꼭 만들어야 했는데, 블루베리가 아닌 다른 토핑(topping)은 아직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어 시도하고 싶지 않았다. 사과나 산딸기로도 만들 수 있지만 용기가 없어 결국 디저트로 과일만 내놓았다. 그날 저녁 가족들의 실망이 대단했는데, 특히 어느 식당엘 가더라도 먹어 보지 않은 음식은 절대 시키지 않아 늘 같은 음식만 먹는 작은딸이 한마디 했다.

 제게는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다고 하시더니 엄마는 왜 새로운 토핑을 시도해 보지 못했어요?

 그때 큰딸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엄마! 내일 우리랑 같이 만들어요. 저희들에게 치즈케이크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전 산딸기 치즈케이크를 꼭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다음날 우리는 블루베리보다 훨씬 더 맛있는 산딸기 치즈케이크를 후식으로 먹을 수 있었다. 

 지금 우리는 주위의 모든 것이 급변하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날마다 우리 삶 속으로 날아드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천과 교회 리더십은 이처럼 변화하는 환경에서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위해 모험을 시도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놓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리더십이 직면하는 심각한 문제는 한국교회의 성도들 중 많은 분이 아직은 모험을 하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하는 교회들의 사례를 통해 소그룹 사역이 바로 이 부분을 도울 수 있는 중요한 도구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은 혼자일 때보다 소그룹이 함께할 때 더 큰 모험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소도시에 있는 한 교회에서 여태까지 친교 중심의 구역예배를 해온 모임들을 전도 목적 소그룹 모임으로 바꾸기 위해 목사님이 이름부터 다 바꾸자고 제안하시자,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장로님들이 반대하여 온 교회에 큰 분란이 일어난 일이 있었다. 그때, 목사님께서 소그룹에 관한 세미나를 해달라고 부르시며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도와달라고 하셨다. 갔더니 세미나에 참석하신 분들의 표정이 너무도 살벌했다. 마치 적군이 침입했다는 듯 무장을 하고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그분들에게는 모임의 내용과 목적이 어떻게 바뀌느냐보다 이름이 어떻게 바뀌느냐가 더 심각한 문제인 듯했다. 자신들이 익숙한 이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세미나를 통해 그분들은 소그룹의 목적이 개개인이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생명력 있게 성장하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목적을 정확히 알고 모이는 것이 이름부터 다르게 바꾸고 시스템을 다 바꾸는 것보다 더 시급한 것이라는 데 동의하게 된 목사님과 교회 리더들이 구역예배라는 이름은 그대로 둔 채 각 모임을 더 작은 규모로 나누고, 각 그룹에서 자신들의 소그룹에 맞는 좋은 이름들을 붙이도록 하셨다. 그리고 밥 먹고 친교하다가 헤어지는 소그룹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삶을 나누고, 불신자 전도를 위해 함께 계획을 세우고, 자신이 속한 소그룹의 성격에 따라 창조적인 이름을 붙이고 이 그룹의 이름으로 선교지를 후원하고 교회 안의 여러 기관들을 돕기 시작하면서 이름으로 시험에 들어 화가 났던 시간들이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그 교회는 다른 어느 교회보다 소그룹 사역을 활발히 하면서 많은 불신자들이 찾아오는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

 목적을 정확히 알고 소그룹원들이 함께 모험과 변화를 시도하면 익숙한 것들로부터 떠나는 일이 의외로 쉽게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서로 믿고 후원하는 소그룹 안에서는 큰 감정적 소요 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하게 된다. 소그룹에 대한 새로운 세계관을 가지고 교회 안의 소그룹 사역을 개혁하고자 하시는 목사님들은 이름이나 책임자를 먼저 바꾸는 것보다 새로운 목적과 비전을 심어주어 내면을 먼저 바꾸고 소그룹 안에서 그분들에게 맞는 겉옷을 각자 입도록 하면, 결국 소그룹의 힘을 통해 건강한 소그룹 사역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많은 교회가 겉옷부터 바꿔 입히려다 분란이 일어나서 내면의 변화를 시도해 보지도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을 겪는 것을 보는데, 그것은 사소한 것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을 잃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소그룹에서는 서로에게서 자신들이 시도하는 새로운 일에 필요한 피드백을 얻게 되어 자신감을 가지고 성장하게 된다.

 지금은 탁월한 소그룹 인도자로 사역하고 있는 한 집사님의 이야기다. 그분은 어릴적부터 주입식 교육을 받아 온 탓에 질문 만들기 세미나를 몇 번이나 듣고서도 교회로 돌아오면 자기도 모르게 다시 강의와 주입으로 인도하는 모습을 보며 무척 괴로우셨다고 한다. 그런데 리더들이 다 모이는 리더모임을 강의와 지침을 전달하던 시간에서 리더들이 각자 만들어 온 질문들을 나누고 서로에게서 그 질문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시간으로 바꾸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기쁨을 누렸다고 한다. 그 집사님께서는 정말 지혜로운 선택을 하셨다. 왜냐하면 리더모임을 강의로 이끌면 그 리더들도 그들의 소그룹에서 강의를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리더들은 질문을 나누는 리더모임을 통해 질문을 잘 만들어 오는 다른 리더들에게서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또 자신이 만든 질문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서로가 주는 피드백을 통해 알아 가면서 소그룹 인도에서 더 건설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한다.

 리더모임을 통해 자신들의 질문에 대해 더 자신감을 가지고 인도하게 된다는 리더들을 자주 만나면서 새롭고 모험이라고 생각되는 일이라도 소그룹 안에서 함께 의견을 나누고 알아가며 함께 시도하면 더 큰 자신감을 가지고 변화를 경험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원리는 가족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존재이고, 그 연약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 가정이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소그룹의 성원들은 서로 이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함께해 주고 피드백을 주며 성장과 변화를 도와야 할 책임이 있다.

 둘째 딸은 큰아이와 달리 수줍고 글로 표현하기를 좋아해 사람들 앞에서 뭔가 발표하는 일은 늘 어려워한다. 그러나 미국 학교는 발표를 통해 학생들이 수업 진행에 참여하는 것을 권장하기 때문에 자주 발표를 준비하게 한다. 5분 말할 것을 준비하느라 며칠씩 땀을 흘리는 딸에게 엄마도 너와 똑같은 연약함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기도하며 열심히 노력했더니 이제는 8시간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아이가 준비한 것을 가족들이 먼저 시간을 재면서 들어주고, 좋은 점과 시정해야 할 부분들을 온 식구들이 나눠 주었더니 아이가 점점 자신감을 회복해 사람들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던 연약함을 조금씩 극복해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서 서로를 더 믿고 신뢰하는 소그룹으로서의 가정이 되어 가는 것을 경험했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은 소그룹에서 서로의 삶을 지켜보며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상황을 대하는 태도를, 다른 세계관을 배울 수 있게 된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이곳 미국에서도 가정문제로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특히 결혼 전에 평안한 가정에서 지내다 결혼과 함께 힘든 삶이 시작되어 회의와 갈등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다 결국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혼은 죄라는 식의 피상적인 설교나 충고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오히려 반발심으로 교회와 소그룹을 떠나게 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한국교회에서는 아직도 이혼한 분들이나 미혼모처럼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을 돌보기 위한 노력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고, 이분들도 자신의 처지를 부끄럽게 여겨 숨기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30~40대의 이혼율이 20%를 넘긴 최근의 현실을 생각할 때 이분들을 더는 방관해서는 안 된다.

 5년 전 남가주 얼바인에서 4명의 소그룹원과 함께 시작한 성경공부 모임이 2년 반이 넘어가면서 100여 명으로 늘고, 소그룹도 12그룹이나 새로 생겼다. 그중에는 자폐아를 둔 어머니들이 모인 그룹, 이혼한 분들이 모인 그룹, 대학 진학을 앞둔 자녀를 뒷바라지하느라 바쁜 부모님들의 그룹, 결혼한 지 얼마 안 되는 새댁들의 그룹, 딸과 며느리를 돌보느라 여러 가지로 힘든 마음을 위로받기 위해 모이는 어머니들의 그룹 등이 있었는데, 특히 아기를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분들이 모이는 그룹은 모임에 나올 때마다 아기용품을 다 챙겨 들고 나오시느라 어려움을 겪기도 하셨다. 리더들을 통해 그분들의 아픔을 듣기는 하지만, 직접 그 많은 분들을 돌보기에는 힘이 많이 부쳤다.

 고향과 부모님을 떠나 당하는 어려움은 고행할 때 겪는 어려움과는 또 다른 슬픔을 준다. 그래서 많은 경우 감정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데, 이때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과 소그룹 활동을 함께 하며 말씀 앞에 자신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 나가는지를 보면서 스스로 만들어 놓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자신의 현실을 보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우리를 넓혀 주시고 새롭게 해주시는 세계관을 통해 관계의 어려움과 자신의 연약함을 보게 되면서 건강한 회복을 위한 노력을 시작하게 된다. 이런 때 소그룹은 피상적인 충고와 정죄가 아닌 공감대와 슬픔을 함께 나누며 함께 기도하고 회복을 돕는 따뜻한 하나님의 손길로 쓰임을 받게 된다.

 그리고 소그룹은 자신들의 새로운 시도가 실패하여 계속하기 두려워졌을 때, 친밀한 격려와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자신의 용감한 시도에 대해 소그룹원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으며 더욱 힘을 얻어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은 소도시일수록 남자들의 도박이 심각한 문제다. 미국 사람들이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의 문화와 삶을 도태시키기 위해 그들의 생활비를 대주면서 보호구역(reservation)이라는 곳에서만 거주하도록 한 뒤, 그 주위에 도박장을 많이 세워 그들에게 주는 돈을 다시 거두어들이는 방법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도박이야말로 한 사람과 인종을 망하게 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번 도박에 빠지고 나면 목사님이 찾아가서 타이르고, 온 가족이 매달려도 고쳐지지 않는다. 급기야 목사님들이 벼락맞을 거라고 협박성 설교까지 해도 소용이 없다.

 내가 아는 한 소그룹은 손가락을 잘라도 발로 도박을 하겠다던 한 형제의 도박벽을 함께 이겨냈다. 도박을 끊으려는 노력이 거듭 실패했지만, 그 형제를 결코 정죄하지 않고 유혹을 견디기 힘든 순간에 같이 있어 주고 기도해 주어 1년 반 만에 그분이 온전히 도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함께 있어 주고, 함께 돌봐 주는 소그룹의 아름다운 기능은 좋을 때보다 위기의 시기에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상승작용(Synergy)

 시너지(Synergy)는 에너지(Energy)와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로, 각기 다른 악기를 연주하여 장엄한 오케스트라를 이루듯 작은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 내는 어떤 핵 같은 힘을 말한다.

 그 동안 소개한 소그룹의 원리들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 후원과 소속감의 원리, 학습효과, 변화의 힘, 상호책임의식,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모험과 경험의 원리는 다른 원리지만, 모두 서로 깊은 연관을 갖고 있는 것들이다. 이 원리들이 한 개인이 아니라 소그룹에 적용되었을 때, 많은 일들이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성취된다고 한다. 그리고 소그룹원들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연결되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을 이루어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위대한 일들을 이룰 수 있게 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함께 일할 때 더 큰 동기를 부여하고 더욱더 헌신하게 되어 각각의 재능과 탤런트가 시너지를 일으켜 더 구체적이고 특별하게 일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몇 사람이 모여 교회를 개척하고 목사님을 모셔왔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모여드는 통에 이분들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난감했던 적이 있다. 유치부부터 성인 성경공부까지 교육부 일을 다 맡아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정신없이 사역하다 청년 소그룹 모임과 평신도 리더모임을 통해 여러 사람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분들을 유치부와 유년부, 중고등부와 성인 소그룹의 리더로 훈련하여 세우는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교육부만큼은 든든하게 자리를 잡아 갈 수 있었다. 남자들이 모여 무슨 말을 할 게 있느냐며 시작을 꺼려하던 남성 소그룹은 몇 달도 안 되어 수가 배로 증가했고, 모든 교회일에 핵 같은 존재가 되었다.

 모험을 싫어하는 사람도 소그룹 안에서 새로운 변화를 위해 함께 모험을 시도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는 일을 위해 섬기는 자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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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그룹의 힘: 상호책임의식(Accountability) 
 
“담배 한 대 피우게 5분만 쉬었다 합시다!” 

 한창 소그룹 성경공부를 인도하고 있는데 새로 온 자매 한 분이 큰소리로 휴식시간을 요청했다. 거미가 줄을 뽑아내듯 웬 말들이 그리 많으냐며 쉴 시간도 안 준다고 따지는 그분 앞에서 그런 일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나는 순간 무척 당황스러웠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그러죠. 10분 쉴 테니 모두 담배를 피우도록 하시지요.” 

 짐짓 담담한 듯 이렇게 말했더니 모두 배를 잡고 웃었다. 그 뒤로 우리 소그룹은 모일 때마다 10분씩 휴식을 했다. 

 3개월이 지나고 그 자매님이 소그룹 기도 시간에 담배를 끊고 싶다며 함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무도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얘기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몸을 건강하게 잘 관리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임을 스스로 깨닫고 오랜 습관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하신 듯했다. 그 후 6개월 동안, 10년 넘게 피워 오던 담배를 끊고 금단현상을 극복하기까지 우리 소그룹 식구들은 그분과 함께 기도했다. 그리고 조금씩 참는 날수가 늘 때마다 함께 손뼉을 쳐주고, 열흘간 금연에 성공하실 때마다 다같이 나가서 외식을 했다. 한국 식당이 하나밖에 없는 마을에서 열흘에 한 번 다같이 한국식당에 가서 몇 안 되는 메뉴 중에서 한 가지씩 골라서 먹던 행복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기쁨이었다. 그리고 힘들게 노력하다가 실패하면 진심으로 위로해 드렸다. 물론 함께 외식할 수 없어 얼마나 서운한지 모른다며 은근히 부담을 드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그분이 온전히 오랜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소그룹 식구들이 모두 함께 도왔다. 담배를 피우는 습관에서 벗어나신 후, 그분은 말씀 가운데 하나님을 점점 더 알아가고, 교회 여러 사역에 헌신하며 새로운 삶을 여시게 되었다.

 많은 분이 평신도인 내가 지금의 위치에 서서 사역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이 공부를 했는지, 어떤 학위를 받았는지 묻곤 하신다. 그분들께는 매우 실망스러운 대답이 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시키시기 전에 15년 동안 심령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사이로 나를 보내셔서 그분들과 함께 서로의 변화를 책임질 수 있는, 소그룹을 인도하는 일을 맡겨주셨다. 당시에는 너무 힘들어서 어서 속히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기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곳은 어디에서도 배울 수 없는 중요한 것들을 가르쳐 준 배움의 터전이었다. 말과 글만으로는 사역이 불가능한 소그룹 현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소그룹 사역에 대해 새로운 세계관을 열어주셨다. 깨어지고 상처 입은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기 위해 연약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자아를 내려놓고, 일의 성취와 관계없이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는 일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통해서 서로의 변화를 돕고 책임질 수 있는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서 소그룹 인도자들이 꼭 알아야 할 중요한 요소들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첫째는 각자 변화하기로 결심한 것을 실제 삶에서 스스로 훈련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함께 도와야 한다.

 십여 년 전, 내가 섬기던 교회는 여덟 개의 소그룹 목장으로 나뉜, 교인이 모두 백여 명도 안 되는 작은 개척교회였다. 그때 그 목자모임을 잊을 수가 없다. 훈련되지 못한 평신도들이 소그룹을 인도해야 하는 위치에 서야 했지만, 열정만으로는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역할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각자 변화되고 개발되어야 할 부분들을 말씀하셨다. 그리고 목자모임의 리더이신 담임 목사님은 목자들에게 변화되어야 할 부분들을 스스로 발견하게 하시고, 명확한 기준과 기대치를 가지고 자신을 훈련하도록 인도하셨다. 말씀을 대강 읽지 않고 깊이 묵상하기를 원하는 목자들은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요약한 것을 목사님께 제출했다. 나같이 사람들 앞에 서기를 꺼려하는 목자들을 위해 돌아가며 설교할 기회를 주시고 서로를 건설적으로 평가해 주는 시간도 있었다. 그때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애써 참으며 말씀을 전하는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주시고,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목자님들 덕분에 지금 이렇게 각지를 다니며 강의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아이들을 낳고 내 자신을 훈련하고 개발하는 일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살아가던 내게 그 목자모임은 엄청난 도전과 훈련이었다. 사랑으로 격려해 주고 건설적으로 평가해 준 소그룹모임 덕분에 익숙해져 버린 게으름에서 나와 포기해 버린 자기 개발에 다시 시동을 걸 수 있었다. 

 그리고 거의 새 신자들로 구성된, 내가 인도하던 소그룹에서도 아침에 일어나서 아이들 학교 보내고 맨 처음 하는 일이 서로에게 전화 걸어 수다 떨다가 점심 때 모여서 같이 식사하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먼저 기도하고 말씀을 보는 시간으로 하루를 여는 훈련을 시작했다. 먼저 함께 시간을 정하고 스스로 큐티를 한 후에 서로 점검해 주고 점심 때 만나면 다른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오늘 본 말씀을 나누는 훈련을 하면서 싸움도 줄어들고 새로운 삶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렇게 변화를 위해서는 소그룹원들의 격려와 서로를 검토해 주는 환경도 중요하지만,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자신을 끊임없이 훈련하고 개발해 옛 모습에서 벗어나 새롭게 되어야겠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변화를 결심하고 그 과정 속에 함께하는 소그룹은 서로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훈련과 후원을 주어 함께 변화하는 공동체가 된다.

 둘째는 힘을 뺀 대화법과 실패를 안아주는 넓은 가슴이 필요하다.

 

후원과 소속감을 주는 소그룹에서 언급했듯이, 서로를 깊이 후원하는 소그룹이 되기 위해서는 리더의 힘빼기가 가장 우선이다. 리더가 소그룹원들을 위치나 나이로 지배하려 하면 후원하는 환경을 조성하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이 일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화를 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I language를 쓰는 방법이 있는데, “너는 앞으로 이런 것들을 고치는 게 좋겠어’’, “당신도 그러지 마”라는 말투보다 “저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자매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하면 상대를 지배하려는 자세로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면 내 생각을 먼저 말해 상대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여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하게 하는 대화법은 자신을 변화시키고 훈련해야 함을 알려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을 진솔하게 나눌 수 있는 효과를 준다. 

 서로를 후원하는 소그룹이 되기 위하여 중요한 것이 또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서로의 실패를 용납하고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이다. 많은 사람이 변화를 결심하고 새로운 삶을 시도하지만, 의지도 약하고 유혹도 많아 오래된 습관에서 단번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하게 마련이다. 이런 때에 정죄와 비난이 용납과 격려보다 더 강하게 느껴지게 되면 변화를 시도하려던 용기는 반으로 쑥 줄어버린다. 서로의 실패를 용납하는 것도 소그룹이 함께 배워야 할 진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가족들에게 우리의 잣대를 들이대 계속 그들을 측정하고, 실패의 시간에 정죄와 자극적인 말들을 던지면, 우리가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들이 일어날 기회를 점점 잃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복음 13장 34절, 35절) 하신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배신과 실패 속에서도 끊임없이 인내하시고 용서하시며 늘 새로운 기회를 주시며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그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라는 부탁이시다. 이 말씀이 마음과 손과 눈빛으로 실천되는 곳이 바로 서로를 깊이 후원하는 소그룹일 것이다. 실패를 나누었을 때 더 큰 관심과 돌봄이 주어지는 소그룹은 어린 영혼들이 쑥쑥 자라날 수 있는 따뜻하고 편안한 요람이 될 것이다.
 
셋째로 서로의 변화를 책임질 수 있는 소그룹이 되기 위해서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수많은 불신자와 어린 신자들이 기독교인의 진실하지 못한 이중적인 모습에 상처를 받고 교회에서 발길을 돌린다.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들보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에게서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삶의 관객이 오로지 하나님임을 인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많은 사람 앞에 있을 때와 같이 행동할 것이다. 특히 소그룹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완벽한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서 진실이 아닌 말과 행동을 하면, 언젠가는 본 모습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늘 진실하게 사람을 대하고,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나누면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하나님이 얼마나 강한 분인지 저절로 자랑하게 된다. 그런 리더와 소그룹원들이 있는 곳은 연약한 사람들이 편안히 모여들 수 있는 공동체가 되고, 자신의 어려움을 나누고 변화 받기를 소원하는 결단이 일어나는 공간이 된다. 

 예전에 초등학생 예배를 인도할 때의 일이다. 한창 설교를 하는데 졸고 있는 학생들이 있어서 아이들을 깨울 방법을 생각하다가 그냥 솔직하게 그날 내가 얼마나 힘든지를 아이들에게 말하기로 결심했다. “애들아, 사실 나 오늘 교회 오기 정말 싫었어. 여러 가지로 준비도 안 되었고, 그래서 집에서 그냥 쉬고 싶었어.” 거기까지 말하자 100여 명의 아이들이 졸던 눈을 크게 뜨고 공감 어린 눈빛으로 내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힘주시기를 기도하고 이렇게 왔더니 내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승리의 기쁨을 주셨어. 너희들과 이렇게 함께 예배하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 그 다음부터 그저 멀리서 인사나 하고 지나가던 아이들이 나만 보면 뛰어왔다. 그리고 큰 비밀이나 되는 것처럼 말했다. “저 오늘 교회 오기 싫었는데 왔어요.” 비록 그 아이들과 교회 오기 싫은데 오는 사람이라는 참으로 민망한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지만, 아이들과 아주 가까워져서 얼마나 큰 수확이었는지 모른다. 

 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마 25:40)”라는 말씀으로 주신 주님의 뜻을 헤아려보면, 우리의 가치기준으로 도무지 내게 유익함을 줄 조건을 가지지 못한 자에게 대접한 것이 곧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난하고 마음과 몸이 지친 사람들이 소그룹을 찾게 되었을 때,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받아보지 못한 따뜻한 환영과 후원을 베풀어준다면, 그들이 아픔과 고통을 주저함 없이 나누고 그 소그룹을 피난처와 안식처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교회 건물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미혼모를 위한 주차장이 있는, 빌 하이벨스(Bill Hybels) 목사님이 사역하고 계시는 윌로우 크릭(Willow Creek) 교회에 가서 다른 교회에서는 보지 못한 이혼하신 분을 위한 라운지와 장애인을 위한 특별시설을 보고, 어려운 분을 위해 무료로 차를 정비해 주는 그룹을 만난 적이 있다. 누가 내 일을 자신의 일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관심과 사랑으로 돌봐줄 때 우리는 감동을 받게 된다. 그것이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서로에게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시간과 소유를 희생할 때, 심장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면서 얼어붙었던 마음이 따뜻해지게 된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라(요일 3:18)”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 희생에 대해서도 사역을 해갈수록 새로운 세계관을 갖게 된다. 예전에는 그저 누군가를 위해 돈과 시간을 희생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희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역을 해갈수록 돈과 시간을 희생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쉬운 희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소유를 희생한다는 것은 그 부분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인데, 십일조를 드리고 많은 시간을 하나님을 위해 드리면서도 감정까지 내어드리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그것을 드리지 못해 잘 참고 사역하다가도 불끈 화를 내서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리고 우리의 고정관념과 남보다 더 말하고 싶은 욕심, 또 사람들에게 더 인정받고 싶은 마음, 대접받고 싶은 마음, 다스리고자 하는 욕심 등도 다른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내려놓고 희생해야 하는 부분임을 갈수록 깨닫게 된다.

 힘든 변화를 가능케 하고, 새로운 삶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곁에서 함께해 주는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소그룹에서 투명하게 자신을 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비밀이 새어 나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려운 마음이 들면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편안한 소그룹이 될 수 없으므로 커피 브레이크 소그룹 인도자 훈련 워크숍에서는 소그룹 사역자들에게 소그룹의 규칙을 소개하고 있다. 많은 목사님과 소그룹 리더들이 이 규칙을 활용하고 있으며, 이 규칙을 잘 지키겠다고 서약하고 소그룹을 시작하는 교회들도 많다. 이런 규칙을 먼저 주고 시작하는 것이 효율적인 이유는, 모두가 규칙을 알면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어려운 말을 하지 않고 그저 “규칙 아시죠?”라고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기 때문에 리더들이 훨씬 편하고, 또 새로 오시는 분들에게도 안정감을 줄 수 있어서다. 특히 개인적으로 나눈 비밀을 지키는 규칙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계속 언급하고 교육해야 한다. 그 규칙 때문에 새 가족들이 더욱 안정감을 느끼고 나오실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과정을 함께하며 격려하고 어려움을 함께 책임져 주는 소그룹은 순한 싹이 자랄 수 있도록 햇볕을 가려주는 그늘 많은 나무가 되고 장대비를 받아주는 우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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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이시면서도 농사를  좋아하시던 아버님께서는 어릴적 살던  양옥집 옥상에 흙을 퍼다 올리셔서  밭을 만드셨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옥상부터 올라가서 딸기와 참외, 토마토를  따서 먹고, 저녁 반찬거리로 고추와  가지 등을 따서 내려오곤 했다. 뿐만  아니라 식구들이 겨우내 먹을 김장배추까지  옥상 농장에서 재배했다. 교인들이 키우다가  병이 들어 가져온 각종 실내 화초와 나무들이 입원해 있는 공간도 있었다. 

새벽 등산길에서 농사를 지으며 목회를 배운다며 농부의 마음과 수고에 대해 설명해 주시던 아버님의 말씀을 그때는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굳은 땅에 식물과 과실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땅을 경작해야 한다. 굳은 땅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물을 뿌려가며 개경(改耕)해야 할 뿐 아니라, 거름을 주어 마르고 굳은 땅을 옥토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씨를 뿌리고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긴 시간 기다리다 보면, 어느 날 아름다운 푸른 싹을 보게 된다. 이런 생명의 경이로움에 박수를 보내며 기뻐하는 농부의 심정, 그 수고와 사랑이 곧 영혼들을 돌보는 사람들의 것이어야 함을 열심히 설명해 주시던 아버님의 말씀을 이제는 그림자만큼이나마 깨달아 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의 변화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 설교말씀을 들을 때도, 성경공부를 할  때도 이 말씀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생각난다. 어떤 분은  큐티를 할 때도 오늘 하신 말씀이 꼭 필요한 사람이 생각나면, 그 날은 그 사람이 이 말씀을 받고 변화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조금 일찍 큐티를 끝내고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고 한다. 그리고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큐티를 하라고 당부하고 오후에 다시 전화해 큐티를 했는지 확인하고 무슨 감동을 받았는지 물어보기까지 한다고 한다. 가정의 리더인 부모님이나 교회의 영적 리더들도 따르는 이들의 변화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사역을 하신다.  

목사님과 소그룹 리더들을  만나면 많은 분이 사람들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이런 말도 해보고 저런 말도 해보고, 얼러도 보고 협박도 해보지만, 사람들을 변화시키기가 너무도 힘들다고 하신다. 소그룹 성경공부를 통해 삶이 변화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변화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결론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인 듯하다. 내 경우에는 늘 내가 변화시키려고 애쓴 사람들보다 나를 먼저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을 자주 경험했다.  

가정과 교회에서 변하지  않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려고 힘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영적 리더들은 많은  시간과 수고를 투자한 후에 지치고  절박한 심정으로 심각한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왜 사람들은 변화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누구의 역할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먼저 찾아야 얻을 수 있는 답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역할과 다른 이의 역할을 구분하지 못할 때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하고 많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배소서 2장 말씀과  로마서 12장 말씀을 보면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은혜로 살리시고,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여  주시는 이는 하나님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하지만, 육신도 영혼도 생명은 하나님께  있다. 그리고 영혼이 변화하고 새로워지게  하는 힘도 하나님만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역할이 아니다.  

그러면 우리의 역할은 과연 무엇일까? 씨앗을 심을 수 있는 부드러운 땅으로 만들기 위해 사랑과 이해로 후원해 주고 따뜻이 대해주어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는 일, 함께 학습하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안내하는 일이다. 말씀의 씨앗에 물을 주고 햇볕과 폭우를 막아주는 그런 일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용하신다. 이런 역할은 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모두 골고루 행할 수 없는 일이기에 소그룹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발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그룹에만 존재하는  네 가지 기능이 있다. 그것은 함께  있기, 함께 배우기, 함께 돌보기, 함께 일하기이다. 소그룹의 아름다움은 함께하는 것이다. 

함께  있기를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것은 우리들에게 올 유익함을 계산하는 마음과 우리가 정해둔 타이밍(timing)이라고 생각한다. 김혜자 님이 쓰신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 두 소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기자들이 준 사과 하나조차 들고 갈 수 없을 만큼 쇠약해진 형이 배고픔에 쓰러져 있는 동생에게 사과 반쪽을 들고 간다. 죽은 듯 누워 있던 동생은 형이 씹어서 넣어주는 사과를 받아먹는다. 그들은 이렇게 연명해 온 것이다. 두 소년을 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형이 늘 자신과 함께 있음을 믿고 지내온 동생은 기력을 회복한 반면, 형은 끝내 살릴 수 없었다고 한다.  

또 도종환 시인의  산문집에 나오는 「그 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에 등장하는  도마뱀은 3년 전 목수들의 실수로 몸에  못이 박힌 채 죽어가는 친구 도마뱀을  위해 끼니 때마다 먹이를 물고 나타난다. 그리고 해가 지면 함께 얼굴을 맞대고 함께 두려움을 견뎌낸다. 그 도마뱀의 사랑으로 못이 박힌 도마뱀은 3년의 고통을 이겨내고 살아난다. 그 도마뱀들이 어떤 관계인지 무척 궁금했다. 단순한 친구인지, 모자간인지, 부부인지……. 아줌마들에게 물어보면 남편은 절대로 아니라고 확신하셨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어쩌면 어느 부분엔가  못이 박힌 채 살아가는 것 같다. 가난한 이들에게는 재물이, 병약한 사람에게는  아픈 몸이 못이 될 것이다. 그리고 공부를 하는 아이들은 공부 자체가 순순한 배움으로 여겨지기보다 자신을 꼼짝 못하게 억누르고 있는 못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죄의 못이 그들을 늘 누르고 있을 수 있다. 가정에서나 소그룹에서 우리는 모두 못박혀 사는 서로를 위해 필요를 채워주고, 두렵고 힘든 기다림의 시간에 함께 있어 주어야 한다. 서로가 그 못에서 자유롭게 될 때까지 격려해 주고, 서로의 존재를 늘 느끼게 해주며, 위로와 기쁨을 주어 소망을 주는 것이 함께 있기이다. 이때 이미 박혀 있는 못을 더욱 두들겨서 더 깊이 박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시간을 독촉하며 협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해둔 타이밍에 그들의 못이 떨어지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지만 우리의 타이밍은 그들의 시간과, 아니 하나님의 타이밍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빨리빨리 못에서 나와서 살아나고 변화되어서 우리의 계획대로 진행하고 싶은 욕심이 모든 리더에게 있는데, 많은 경우 그것이 못을 더욱 깊이 박아버리는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함께  배우기를 위해 내려놓아야 할 것은 sins of power 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강의식이 아니라 질문을 통해서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눈을 열어주고, 발견한 것을 스스로 삶에 적용하며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나눌 때 가장 효과적인 배움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런 배움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소그룹을 인도하는 리더나 구성원들이 나눔을 가능하게 하는 태도로 함께 배울 수 있도록 진행해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보다 자기  생각을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다가  리더라는 위치가 주어지면 그 욕구에  힘이 실리게 되어 열심히 강의하고  주입하게 되며,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시간보다 자신이 말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 항상 진리인  것처럼 선포한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실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모든 빈 공간을 자신이  채워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sins of power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나눔을 위해서는 일단 리더가 힘을 빼고 본문에 근거한 개방식 질문을 통해 그룹원들에게 발견의 창을 열어주어야 한다.  

5년 전, 교회에서 유년  주일학교 사역을 맡았다. 미국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발견학습법으로 공부를 하기  때문에 설교도 되도록이면 각자가 관찰하고  해석하고 발견하도록 준비했다. 어느 주일,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며 대학생들에게 간단한  연극을 하게 하여 읽은 본문의 내용을 눈으로 보며 관찰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그룹은 작은아들 그룹, 한 그룹은 큰아들 그룹, 나머지는 아버지 그룹이었다. 각 그룹들에게 만약 그 사람이라면 어떤 감정을 느끼겠냐고 질문했다. 작은아들 그룹의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하고, 목욕을 안 해서 몸이 가려울 거라고 하고, 부끄러울 것 같다고 했다. 큰아들 그룹 아이들은 질투와 분노와 억울함을 얘기했다. 아버지 그룹은 용서의 기쁨과 아들들에 대한 사랑을 얘기했다.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너희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시니? 그러자 아버지 그룹에 있던 3학년 남자아이가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하나님께 늘 거짓말하는 우리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하세요. 어떤 여자아이는 하나님께 늘 고함을 질러대는 우리 엄마를 용서하라고 하세요. 몇 가지 질문들을 더 던져보니 아이들 집안 사정이 다 쏟아져 나왔다. 내가 만약 그 본문으로 강의식 설교를 준비했다면 감히 부모님께 품은 마음을 쏟아 놓게 하고, 그 아이들의 가장 아픈 부분이 부모들이라는 사실을 과연 알 수 있었을까? 그 아이들은 그날 자신들에게 실망과 아픔을 준 부모님들을 용서하는 기도를 아주 진지하게 드리고 돌아갔다.  

질문으로 그룹을 인도하는  것은 성령님께 각 사람의 마음을  열고 역사하실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드리는 것이다. 질문은 마음의  밭을 경작하는 마지막 단계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함께  돌보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한 관계 형성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어린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과 소망을 소유하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시작하다가 사람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겨 잘 심겨진 씨앗과 새싹들이 된서리를 맞고 폭우를 맞아 다시 긴 시간이 흐르도록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몇 년 전, 세미나  인도를 위해 하와이를 방문한 적이  있다. 행사가 끝나면 바로 돌아와야  하는 일정이라 몇 시간 정도 빨리  도착해서 택시로 하와이 섬의 힐로(Hilo)를  혼자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만난 택시 운전사는 하와이에서 태어나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성실한 가장이었다. 내가 미국 장로교단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자, 그는 자신의 절박한 삶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어린 아내가 도박에 맛을 들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아주 가산을 탕진하고도 헤어나오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 아내를 데리고 교회를 찾아 말씀으로 희망을 얻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도움을 바라고 나눈 얘기들이 온 동네에 돌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을 정죄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이 상처를 받아 이제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눈시울을 적시며 내게 부탁했다. 병원처럼 자신들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좋은 교회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빌 하이버스(Bill Hybus) 목사님은  『진정한 크리스천(Authentic Christian)』이라는  책을 통해 관계 형성을 위해 가장  중요한 품성으로 진실함(Authenticity)과 긍휼(Compassionate), 희생(Sacrifice)을 꼽았다. 많은 사람이 진실치  못한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고 교회를  떠난다. 그리고 하찮아 보이는 사람도 주님께서 그러하듯 긍휼한 마음으로 돌보고, 다른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보다 더 귀하게 생각하며 시간과 노력을 들일 때, 사람들은 깊은 감동을 받고 마음의 위로를 받는다고 한다. 사람들이 변화될 수 있도록 그들을 따뜻이 돌보는 힘은 정죄하고 교육하는 말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에, 깊이 안아주는 넓은 팔에 있다고 생각한다. 

함께  일하기의 단계는 말씀의 씨앗이 새싹이 되어 돋아난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고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하는 기쁨을 주어 더욱 깊은 변화와 성장을 줄 수 있는 단계인데, 이 작업을 위해서는 기존 리더들이 리더십 개발을 위한 열린 세계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도록 기회를 주고, 최선을 다했을 때 결과에 상관없이 칭찬해 주어 자신감을 가지고 기쁨으로 동참하게 하면, 건강하고 유능한 새로운 리더를 개발할 수 있다. 많은 리더가 이 단계에서 상대를 지배하려고 하거나 경쟁하려고 하여 새로운 리더들을 개발할 기회를 잃곤 하는데, 무척 슬픈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지배하려는  리더보다 연약함을 나누고, 도움을 구하고, 함께 일을 하자고 초대하는 리더들을  따르게 마련이다. 자신의 연약함을 나누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연약함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자랑하고자 하는 믿음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 

모든 소그룹은 예수님의  생명 때문에 유기체이다. 모든 유기체가  그렇듯 소그룹도 생명주기를 거치게 된다. 탄생하고, 성장하며, 침체되기도 하고, 병이 들기도 하고, 때가 되면 분리되기도 한다. 위에서 소개한 소그룹의 아름다운 네 가지 기능들이 소그룹이 생명주기를 지날 때마다 지혜로운 리더십으로 인해 잘 활용되었을 때,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든 소그룹 가운데 고요하지만 확실하게 일어나리라고 믿는다.  

변화시키는 분은 하나님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손과 발을  빌어 돌 같은 마음의 땅을 부드럽게  개경시키시고, 때에 맞춰 사랑의 비로 적셔주고, 햇볕이 너무 셀 때는 그늘도 만들어 주고, 잡초도 뽑아주게 하신다. 하나님과 함께 짓는 농사는 늘 풍년가를 부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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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30년 전, 고등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에서 사춘기를 보낸 탓일까. 그 시절 나는 학교에 가고 싶은 날보다 가기 싫은 날이 더 많았다.

모든 과목이 힘들었지만, 체육시간이 내게는 가장 끔찍했다. 그 당시 내가 다니던 미국 학교에서는 체육시간이 실기와 필기로 나뉘어 있었다. 한 운동종목의 규칙과 경기방법을 강의하고 시험을 본 후, 남은 시간에 실기를 하는 것이다. 체육시간에 A학점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는 것으로 기억하지만, 필기시험만은 항상 100점을 받았다. 규칙과 방법을 잘 이해해 시험은 잘 봤지만, 실제로 경기를 할 때는 늘 실수를 해 사고를 치곤 했다. 농구시간에 공을 잡아서 패스를 해야 하는데, 공을 뺏기지 않으려고 계속 들고 뛰다가 제일 키 큰 남학생을 골대로 잘못 보고 점프해서 공을 그 남학생 코에다 박아 코피가 터지게 만드는가 하면, 미식축구 시간에는 공을 받아서 눈을 질끈 감고 뛰어야 할 반대 방향으로 열심히 뛰어서 모든 아이가 배를 잡고 구르게 하기도 했다. 수영시간에는 너무 긴장한 탓인지 한참 잘 가다가 물 속에서 기절해 선생님들을 다 물 속에 뛰어들게 만들기도 했다. 이론을 아는 것은 실제로 경험하여 알 때까지 배움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부터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 듯하다.

Tell me and I will forget, show me and I will remember. Involve me and I will learn.
(말해주는 건 잊게 되고, 보여주는 것은 기억하지만, 직접 참여하면 배우게 된다.)

미국에 살면서 자주 만나는 말인데 생각할수록 만고의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에드거 데일(Edgar Dale)의 『효과적인 배움』이라는 연구 조사서에 따르면, 배우는 방법에 따라 그 내용을 얼마나 잘 기억하는지가 달라진다고 한다. 강의를 들었을 때는 5%를 기억하고, 혼자 읽었을 때는 10%를 기억한다. 그리고 시청각 교육을 통해서는 20%를 기억하고, 누군가 시범을 보여주었을 때는 30%를 기억한다고 한다. 그런데 토론에 참여했을 때는 50% 이상을 기억하고, 실제로 배운 것을 자신에게 적용했을 때는 75% 이상을 기억하고, 또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나누었을 때, 그러니까 배움의 적용을 바로 실생활에 응용하고 그것을 다른 이들과 나누었을 때는 90% 이상을 기억하게 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나눔이 살아 있는 소그룹에서의 배움은 확실하고 효율적인 교육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소그룹에서 확실한 배움을 얻기 위해서는 정확한 목적과 건강한 나눔을 인도할 수 있는 훈련된 인도자와 확실한 교육자료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든 소그룹 모임은 중요한 두 가지가 갖추어진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그룹 사역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인도자가 잘 준비되지 않았을 때이다. 소그룹 사역은 인도자에 그 사역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은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준비되고 훈련된 인도자는 배움이 있는 살아 있는 소그룹을 위해 너무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교회마다 소그룹 사역을 시작하면서 많은 목사님이 평신도들을 소그룹 리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 여러 교회에서 소그룹 인도자 훈련을 진행하면서 평신도 리더들의 고충을 들어보면, 거의 비슷한 어려움을 털어놓는다. 사역을 향한 열정은 있지만, 구체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막상 실제 소그룹 상황에서 인도자로서 알아야 할 방법들을 모르다 보니 점점 지치게 되어 기쁨으로 시작한 사역이 부담이 되어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교회들을 방문해 보면 너무 많은 사역을 맡기지도 않을 뿐 아니라, 꼭 필요한 몇 가지 사역만 하더라도 그 사역을 잘할 수 있도록 평신도 사역자들을 위한 정기적이고 구체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평신도 사역자를 자신이 하는 일에 기쁨과 의미를 느끼는 전문적인 사역자로 양성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열정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소그룹 사역자들도 나눔을 잘 인도하여 은혜로운 나눔을 통한 배움이 살아 있는 소그룹으로 인도할 수 있는 기술(SKILL)이 부족한 것을 가장 힘들어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소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어떤 기술이든 기술은 개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래되고 익숙한 방법들을 내려놓고 새롭고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향해 늘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방법들을 익히기 위해 스스로 도전하고 노력하면, 어느 방면에서든 전문가적인 기술을 가질 수 있다.

26년간 소그룹 성경공부를 인도해 왔지만 15여 년 전, 성경발견학습법이라는 새로운 도구를 만나기 전에는 소그룹 인도를 강의식으로만 해왔고, 그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목사님이신 아버지의 서재에는 많은 주석서가 있었고, 매주일 주제별 성경교재를 가지고 여러 주석들을 동원에서 좋은 강의 하나씩을 준비해 가면 그룹원들로부터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고, 그 칭찬이 좋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강의하는 것이 좋아서였는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미리 공부해서 전달하는 소그룹 인도자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고 있었다.

그 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리더십 개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을 때이다. 나와 오랫동안 함께 소그룹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소그룹의 인원이 너무 많아져서 그룹을 나누어 인도자를 세우려고 하면 아무도 인도자로 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처럼 주석이나 참고자료가 풍성하지도 않았고, 또 나처럼 아는 것을 쉽게 전달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저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 음식을 받아먹는 데만 익숙했던 그들은 스스로 먹고 또 다른 사람들을 먹여주는 일 앞에서 도무지 자신이 없어했고 쥐어주는 숟가락을 자꾸만 떨어뜨려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커피브레이크 인도자 훈련 워크숍에서 성경발견학습(Discover Bible Method)이라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이 방법은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보이지 않던 세계를 볼 수 있는 새로운 눈과 듣지 못했던 것을 들을 수 있는 새로운 귀를 열어 주었다. 그리고 주입해 주는 강의를 편하게 들어왔던 소그룹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왜냐면 성경발견학습은 강의식으로 인도하는, 소그룹원들이 인도자 혼자 뛰는 운동경기를 관람자로 앉아서 구경만 하는 방법이 아니라, 소그룹원들이 모두 함께 직접 경기에 참여하여 뛰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이었다. 성경발견학습이란 소그룹의 성격에 맞는 열린 질문(개방형 질문)으로 인도하는 귀납적 학습법이다. 그리고 이 방법은 도입과 관찰, 해석과 적용의 점진적 질문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학습법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는 질문이다. 성경 본문을 위한 귀납적 질문으로 인도하는 방법은 한국에서 여러 기관이 이미 사용하고 있지만, 성경발견학습과 기존의 귀납적 공부와의 차이는 맞춤형 질문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미 교재에 다 나와 있는 질문이 아니라, 뼈대가 되는 질문이 어느 정도 나와 있는 교재를 가지고 그룹의 신앙 정도와 성격에 맞는 보충질문을 인도자가 만들어 쉽고 마음에 와닿는 진행으로 인도하는 것이 성경발견학습이다. 보충질문들은 도입질문과 관찰질문, 해석질문과 적용질문들로 본문 속에서 만들어 내고, 인도자는 강의를 하지 않고 그 질문들을 통해서 소그룹원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 그 답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이 소그룹의 학습효과를 극대화하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일 수 있는 까닭은 질문을 받고 스스로 고민하고 애써서 발견한 진리는 강요하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강의식 인도를 하면서도 가끔 질문을 던지곤 했지만, 질문 만들기를 배우고 나서 뒤돌아보니 나의 질문들은 대부분 주입식 질문이었고 폐쇄형 질문이었다. 좋은 질문 만들기 강의를 통해 확실한 답을 얻은 나는 새로 배운 발견학습방법을 소그룹에게 바로 적용해 보았다. 열심히 강의 준비를 하던 시간에 머리를 싸매고 질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그 질문들을 소그룹에 던져 보았다. 그 후 내가 인도하고 있던 소그룹들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맛보기 시작했다. 소그룹원들이 말씀을 그들의 삶에 적용하고 주중에도 전화를 걸어 말씀이 자신들에게 준 놀라운 발견들을 나누는 것을 보면서,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를 해결한 듯한 기쁨이 찾아왔다. 모일 때마다 풍성한 나눔의 장이 열렸고, 말씀과의 깊은 만남은 사람들을 실의와 절망에서 일으키기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자 새로운 리더들이 기쁨으로 헌신했고, 많은 소그룹이 교회 안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 후, 교회에 어려운 상황이 닥쳐서 담임목사님이 6개월도 넘게 공석일 때가 있었다. 이민 교회 현실에서 상당히 이동이 많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한 명의 교인도 요동하지 않고 교회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서로를 후원해 주며 말씀을 깊이 배우고 나눌 수 있었던 소그룹의 힘이었다고 생각한다. 소그룹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십수 년을 구체적인 교육 없이 강의식 인도자로 살아왔던 나는, 성경발견학습으로 인도하면서 건강한 나눔이 얼마나 엄청난 학습효과를 주는지 현장에서 생생히 경험할 수 있었다. 힘든 노력과 의지가 뒤따라야 했지만 성경발견학습법을 열심히 익히며 맞춤형 질문으로 인도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던 중, 전혀 기대하지 못한 때에 미국 교단의 부름으로 소그룹 사역자들을 훈련하는 강사로 서게 되었다.

소그룹 인도자 워크숍에서는 성경발견학습과 소그룹의 원리, 상황 대처법, 소그룹을 통한 전도와 실습 등을 훈련하게 되는데, 참석자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것이 바로 성경발견학습이다. 이 학습법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 만들기’를 학습하고 직접 질문 만들기를 해보게 하고, 만든 질문들을 수정해 드리는 시간을 갖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어문화가 질문보다는 주입식이기 때문에 질문 만들기를 힘들어하시는 분이 많은 것 같다. 소그룹 모임을 시작할 때는 어색함과 침묵을 날리기 위한 도입질문부터 시작해야 한다. 사적인 질문보다는 일반적인 질문, 심오한 질문보다는 재미있는 질문, 성경적인 지식보다는 자신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질문이면서도 오늘 나눌 말씀과 연관될 수 있는 질문이 좋은 도입질문이다. 도입질문으로 나눔을 시작하고 본문을 합독한 후, 관찰질문과 해석질문으로 들어간다. 관찰질문은 본문 속에 답을 찾을 수 있는 질문이고, 해석질문은 답이 본문에 그대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본문을 근거로 관찰한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는 성경발견학습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적용질문으로 하는데, 적용질문을 할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를 질문하여 다른 사람이나 교회를 비판하는 적용보다는 스스로에게 주시는 말씀을 나눌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과 과거 상황에서의 적용이 아니라 미래에 다가오는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지를 질문하여 미래지향적인 답을 나눌 수 있도록 한다.

이 학습법은 그 후 15여 년이 넘게 맡아 인도해 온 모든 소그룹 사역을 더욱 풍성하게 했고, 귀한 분들과 나눈 아름다운 시간들과 말씀들은 내게 생명과 같은 배움과 축복을 주었다. 수없는 감동의 나눔들이 기억 속에 있지만, 여호수아서를 공부할 때 소그룹에서 나눈 것들을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 싶다.

 “좋은 리더가 떠나고 새 리더가 섰을 때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라는 도입질문으로 시작했더니 진지하고 재미있게 한국에 살 때 대통령이 바뀌던 때의 심정부터 교회에서 목사님이 바뀔 때의 느낌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함께 여호수아를 합독하며 관찰질문과 해석질문들을 시작했는데 그중에서 모두에게 생명의 말씀을 남겨 준 발견질문이 있었다.

“3절 말씀에서 어떤 땅을 다 주신다고 하셨나요? ”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다 주신다고 하시네요.”

해석질문으로 “그때 당시 누가 땅을 발바닥으로 밟고 다녔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을까요?”라고 질문하자, 모든 소그룹원이 아마 노예들, 종들이었을 거라고 대답하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가 왕과 같은 자세로 그 땅을 정복하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수고하고 섬기고 순종하며 그 땅에 나아가기를 원하셔서 그렇게 명하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나요?”라는 적용질문이 던져지자 많은 소그룹원이 편하게 어떤 일을 이루어 보려고 기도하고 있던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이제는 자신들이 맡은 모든 일을 이루어 나갈 때, 왕같이 군림하고 편안히 하려는 것이 아니라 더 수고하고 더 노력하며 섬기는 자세로 해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말씀하신다고 나누어 주셨다. 그 다음주에 세미나 인도를 위해 한국을 나왔을 때 짧은 기간 안에 여러 도시와 교회를 다니며 긴 일정을 소화해야 했을 때, 좀 쉽고 편하게 사역하고 싶은 유혹이 찾아올 때마다 그 때 주신 말씀이 생명의 말씀으로 나의 심령을 바로잡아 주었다.

소그룹은 학습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많은 여건을 갖춘 곳이다. 후원과 소속감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말씀을 앞에 두고 깊이 경청하며, 또 좋은 질문들을 서로에게 던져서 고민하고 생각하면, 그 시간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각자에게 꼭 필요한 적용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우리의 눈과 귀를 열어 주신다. 소그룹은 참석자들로 하여금 대화의 기술과 발표력, 관계 형성의 중요한 윈리들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그런 원리들은 삶의 모든 분야에서 유용하게 활용되는 중요한 기술이다. 특히 질문 대화법은 일상 생활에서 우리에게 풍성한 대화의 삶을 여는 소중한 재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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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공대 총기사건은 전 미국을, 아니 온 세계를 충격과 슬픔 속에 몰아넣었다.하지만 신문의 사회면을 보면 조승희 사건 같은 대형사건 외에도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자식이, 친한 친구들이 서로 때리고 죽이고 자살하는 끔찍한 일들이 곳곳에서 날마다 벌어지고 있다.이제 미국은 사회단체와 학교, 병원이 힘을 모아 사람의 내면에 쌓여 있는 분노와슬픔이 얼마나 심각한 살상무기로 변할 수 있는지 인정하고, 예방과 치유와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실행하기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람의 내면을 세심하게 돌보는 일은 많은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하기 어렵다. 소그룹 모임에서, 특히 소그룹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에서 각 개인의 마음이 열리고,용납받고, 상처가 치유되고, 돌봄을 받아 건강한자아상을 회복하는 일이 일어나야만 한다.

최근 각 분야에서 소그룹 안에서 일어날 수있는 놀라운 역사들을 인식하면서 많은 한국 교회와 기업들이 소그룹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도입하고 있고, 가정 사역도 더욱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모든 리더가 소그룹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교육을 통해서 영혼 구원과 전인 치유가 이루어질 수 있는 작은 교회로서의 소그룹을이끌어 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소그룹 전문 사역자로 미국의 여러 교회와유수한 기업체의 소그룹 리더들을 훈련하고 멘토하시는 데이비드 스탁(David Stark) 목사님으로부터, 소그룹의 원리와사람들이 소그룹을 통해 어떻게 단계적으로 변화하고 성장해 갈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배울 기회가 있었다. 막연히소그룹의 목적은 영혼 구원이어야 한다 정도만 알고 있다가 구체적인 원리들을 배우고,또 그 원리들을 실제 소그룹 활동을 통해 확인하면서 소그룹에 대한 세계관을 더욱 견고히 정립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소그룹의 주요 원리가 숨어 있는단계들을 거치면서 믿음이 성장하고 삶이 변화되는 체험을 하게 되는데, 먼저 후원과 소속감으로 소그룹의 일원이 되는 기본적인 단계를 거친다.그리고 함께 공부하면서 혼자 할 때보다 더 엄청난 학습효과를 실감하게 된다. 그 후, 삶에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 변화되는 삶을 위한 서로의 결심과 노력을 존중하고 도와주는 상호 책임의식은자신 없고 두렵지만 새로운 삶과 습관을 시도해 보려는 모험을 가능케 하고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한다. 이 모든 단계를 거쳐 결단하고 문제들을 헤쳐 나가는 리더십의 단계에 이르면 다른 사람들을 후원하고 소속감을 주며 양육할 수 있는새로운 리더가 탄생하게 된다. 이 모든 단계들이 어우러져서 성공적인 소그룹의 반석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리더들은 이 보이지 않는 원리가 건강하게유지되고 있는지 관찰할 수 있는 시각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소그룹의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소그룹을 편안하면서도 건강한 유기체로 성장시킬 수 있다. 

(커피브레이크 소그룹 인도자 워크숍 강의안 10) 


소그룹이 주는 후원과 소속감 

소그룹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영적 변화의 단계에서 가장 먼저 소개되고 있는 후원과 소속감의 원리는 소그룹 사역자와 리더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할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가장 소홀히 여기는 부분이기도 하다.

누구든 개인적으로, 또 영적으로 개발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어딘가에 반드시 소속되어야 하는 간절한 필요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형상대로 만드신 후 홀로 있음을 보고 보시기에 좋지 못하다고 하셨다. 관계의 하나님께서 우리도 관계를 열망하고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만드셨기에, 우리는 관계에서 아픔을 겪고 난 후에도 또 다른 관계를 열망하며 끊임없이 어딘가에, 또 누구에겐가 소속되기를 원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미국에도 갱단 조직이 많다. 슬픈 것은 그 갱단 중에 한국 청년들로 구성된 조직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목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 청년들 중에는 의외로 이민생활에 성공하여 기반도 든든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는 가정의 자녀들이 많다고 한다. 그 아이들에게 좋은 집을 두고 왜 이렇게 길에 나와 이런 사람들과 함께 사느냐고 물으면 I belong here!(난 이곳에서 소속감을 느껴요!)라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가족과 집에서 느끼지 못한 소속감을 갱단의 친구들에게서 느끼게 했을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사랑과 구원을 부르짖는 가정과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것일까? 

결혼하고 나서 약 15년을 남편의 연구소가 있는 미국 남서부의 작은 도시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개척교회를 섬기며 주일학교와 새신자 소그룹을 맡게 되었다. 인근 대학교에서 한인 학생 성경공부 인도도 함께 하고 있었지만, 학생 사역은 학생들의 섬김으로 오히려 큰 힘이 되었다. 주일학교도 몸이 힘들긴 해도 아이들을 워낙 좋아해서 나름대로 즐겁게 할 수 있었는데, 가장 어려운 사역이 새신자 그룹 인도였다.

처음 새신자반 소그룹을 시작했을 때는 솔직히 좀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한마디로 그 사역을 과소평가한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돌보아야 할 사역 대상자들이 거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예전에 잠시 믿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사람들이었다. 비록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던 사람들이었으나 그들 모두 누군가로부터 받아들여지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소원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 그룹의 구성원은 거의 대부분 국제결혼을 하신 분들이었다. 국제결혼도 여러 가지 케이스가 있다.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어릴 적부터 공부하며 미국인과 사랑하게 되어 결혼하는 경우도 있고, 한국에서 주한미군을 만나 결혼한 후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온 분들도 있다. 그때 그 소그룹 구성원들은 거의 두 번째 케이스로 남편을 따라와서 낯선 곳에서 살고 계신 분들이었다. 게다가 대부분 가족의 따뜻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지 못한 탓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모님의 사랑과 비교하여 설명할 수도 없었다. 소그룹 사역을 향한 나의 비전과 헌신, 대학교 때부터의 경험과 훈련 같은 것들은 그분들에게 아무런 감동도 줄 수 없었다.

그분들은 하고 싶은 말을 거침없이 토해 냈다. 요리책을 보고 열심히 김치를 만들어 가져다 드리면 이렇게 맛없는 김치는 찌개를 해도 맛이 없어라고 하셨고, 내가 그쪽같이 좋은 부모 만나 공부하고 결혼 잘 해 잘 살면 나도 당신이 믿는 그 하나님 믿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찾아갈 때마다 거부감을 표현하는 거침없는 말들 앞에 목까지 올라오는 눈물을 삼킨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꽤 늦은 밤에 병원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다. 자신을 늘 부정적으로 말하며 가장 험악하게 거절하던 자매가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손목을 그었다가 다행히 목숨은 건졌는데, 너무 이상한 것은 정신이 들자마자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절박한 순간이 오니 하나님을 찾고 싶었던 것일까? 그분이 병원에 있는 동안 곁에 있던 내게 마음을 여시더니 두 살 때 길에 버려진 이후 기구했던 자신의 삶을 나누기 시작했다. 나도 그동안 내게 찾아온 힘든 나날들, 병약했던 어린 시절들을 나누게 되었고,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더 친해지게 되었다. 병문안 온 친구들과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삶을 포기하려고 손목을 그은 그 자매를 눕혀 놓고, 사람들은 가면을 벗고 서글픈 자신들의 삶을 서슴없이 나누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이방인처럼 나를 대하고 무섭게 거절하던 분들까지 만삭의 몸으로 하루 종일 병원에 있는 것에 감동하셨다며 귀하게 여겨 주시고 돌봐 주기까지 하셨다.

그분이 퇴원한 후 우리 소그룹은 수가 두 배로 늘었다. 그분들은 예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공감대를 함께 나누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좋아서 나오기 시작했다. 이곳에 오면 모두 가면을 벗고 서로의 아픔과 연약함, 슬픔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그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것 같았다. 소외되고 외롭던 그들에게 소속감을 준 소그룹 모임으로 인해 그들의 마음의 밭이 부드러워지고 풍요로워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하나님의 말씀이 재미있다며 동네 사람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의 삶이 회복되도록 서로를 돕는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 손목을 그었다가 퇴원한 자매가 몸을 회복하기까지 모두들 함께 도왔고, 몸과 마음을 회복하도록 힘과 위로가 되어 주었다. 골수암에 걸린 자매가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을 때에도 돌아가며 아이들을 돌보고 음식을 해다 주며 다시 일어설 때까지 곁에 있어 주었다. 내가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할 때도 모두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오셔서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소그룹 모임을 인도할 때나 다른 교회 일을 해야 할 때는 차례로 우리 아이들을 업고 안고 돌보아 주시기도 했다.

우리 소그룹은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기 시작했고, 함께 울고 웃으며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자신이 아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서 후원해 주었다. 하나님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지만 어딘가에 속하고 싶고 누군가로부터 도움과 후원을 받고 싶었던 그들은, 교회보다 먼저 소그룹에서 하나님을 어렴풋이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같은 어려움을 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소속감을 느끼고 후원을 주고받는 것이 더 필요했던 것이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그들의 마음이 소그룹의 돌봄과 사랑으로 부서지고 부드러워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도록 풍요롭게 준비되어 갔다. 그리고 그들은 기쁨으로 교회에 등록했고, 성가대와 아기방에서 봉사하고 체계적으로 성경을 공부하며 말씀 가운데 삶이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그 새신자 소그룹은 어려웠던 개척교회를 잘 섬기고 부흥시킬 일꾼의 산실이자 요람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감당하기 너무 힘들어서 빨리 그 사역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지난 25년간의 소그룹 사역 중에서 가장 많이 기억나고 그리운 소그룹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때 얻은 소중한 경험은 이후의 소그룹 사역을 풍성하게 해주는 보석 같은 재산이 되었다.

먼저, 사람을 개발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소속감과 후원임을 많은 사례를 통해 체험하게 되었다. 외롭고 지친 사람들이 소속감을 얻고 힘과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공간이 바로 소그룹임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를 후원하는 아름다운 소그룹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리더부터 힘빼기를 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몸에 힘을 빼야 물 위에 뜰 수 있는 것처럼, 리더라는 위치로 누르거나 지배하려는 힘을 온전히 뺄 때, 하나님께서 리더에게 영적인 권위를 주어 띄워 주시는 것이다.

그런 소그룹은 사람들의 연약함과 실수를 받아주고 용납해 주고 안아 주는 그런 공동체이다. 리더가 자신의 연약함을 투명하게 나누면 그때부터 힘빼기가 시작된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리더 앞에 자신들도 투명해지고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안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들이 연약함을 나누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리더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강함이 자랑된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러시듯, 그들이 마음을 열 때까지 재촉하거나 협박하지 말고 곁에서 조용히 기다려 주는 것도 너무나 중요한 소그룹원과 리더의 역할이다. 강요로는 마음을 열고 나누는 일을 결코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상처와 절망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우리의 가정이, 큐티방이, 소그룹 성경공부 모임이 그들을 안아 주어야 한다. 그들의 내면의 고통을 이해해 주고, 도울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도와주고, 그들이 소속감과 기쁨을 누리며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소그룹이 되어 주어야 한다.

도움을 받고 싶고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하나님에게 관심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느끼고 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인도할 친밀한 소그룹이 먼저 필요하다. 친밀한 사람들끼리는 나눔이 자연스럽다. 나눔은 내면의 회복을 준다. Depress(눌림)의 반대말은 express(표현)이다. 자신을 표현하기에 안전하고 편안한 소그룹은 치유와 회복을 주고,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확립시켜 준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소속감을 주고 그들의 필요를 후원해 주는 친밀한 소그룹이야말로 하나님을 모르거나 떠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끄는 강력하고 소중한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가정과 소그룹 모임들이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 안내하는 세상의 소망으로 곳곳에 우뚝우뚝 푸르게 심어져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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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6년 전에 캘리포니아로 유학을 나왔고, 졸업 후에도 같은 동네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캠퍼스 성경 공부 모임에서 계속해서 양육 받으며, 섬기며 지냅니다. KCF (Korean Christian Fellowship) 라 불리는 저희 모임은 유학 나온 지 1년째 되던 여름, 제가 다니는 교회 NCBC (New Community Baptist Church) 목사님의 인도와, 말씀에 갈급했던 여러 유학생 지체들의 뜻이 모여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초신자도 많았고, 호기심에 찾아오는 형제 자매들도 많았던 우리 모임 안에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많은 사랑을 보여주셨고,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이들은 주님께서 인도해주시는 기도의 삶, 말씀의 삶, 예배의 삶을 통해 신선한 경험들을 즐기며 지금까지 오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하는 형제 자매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중보해 시간은 너무나 값진 보물과도 같습니다.

eKosta를 통해 나누고 싶은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저희 공동체가 처음으로 귀납적 성경 연구 방식을 접하고 함께 공부해나가며 경험한 주님의 인도 하심과 말씀의 열매를 나누고자 합니다. 

2007년 겨울이 끝나갈 무렵, KOSTA 순회 간사님으로 섬기시는 이재천 목사님께서 저희 모임에 오셔서 귀납적 성경 연구에 관한 세미나를 이틀간 해주십니다. 세미나 중에 우리는 각자의 학습 유형을 알고 이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귀한 시간을 가졌고, 여러 유형의 지체들이 모여서 함께 귀납적 성경 연구를 나눌 더욱 풍성해지는, 그룹 성경 공부에서의 역동을 경험할 있었습니다. 늘 연역적으로 정리되어있는 교재를 중심으로 공부하던 것과 달리 스스로 구문을 관찰, 분석하며, 의문점들을 갖고 이를 해결하며, 그리고 삶에 적용해나가는 일련의 과정은 무척 새로웠습니다. 그리고 과정 속에서 스스로 말씀의 단맛을 찾아내고, 나와 다른 형제 자매들과 그것을 공유하며 깊이가 또한 배가 되는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너무 귀했습니다.

세미나 이후로 KCF의 많은 형제 자매들이 귀납적 개인 성경 공부, 그리고 이어지는 그룹 토의를 통해, 각자가 지속적으로 깊게 말씀을 있도록 돕고, 또한 그것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갖기 원했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진 십여 명의 형제 자매들이 주일 저녁마다 모여서 성경 공부 나눔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고, 우리의 걸음은 ‘요나서’였습니다. 우리 모두 귀납적 성경 공부에는 신입생이었지만 모두 열정이 넘쳤고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풍성한 나눔, 그리고 깨달음으로 응답해주셨습니다. 

우리는 요나가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이야기할 때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서로 생각을 나눴고, 물고기 뱃속에서의 기도를 각자의 속에서의 기도로 읊으며 우리 속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봤습니다. 결국 니느웨로 가야 했던 요나, 그리고 그렇게 인도하신 하나님을 함께 묵상했고, 니느웨를 멸망치 않게 하신 하나님과 이에 크게 노했던 요나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속에서 정말로 중요시 생각하시는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서로 이미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우리는 서로의 학습 유형이란 것을 통해서, 그리고 각자 조금씩 다르게 말씀에 접근하고 색다른 보석을 발견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서로를 새롭게 이해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명을 너무나 귀하고 특별하게 만드셨음을 있었습니다. 우리 공동체가 참으로 주님의 말씀 안의 진리를 발견함을 통해서 하나가 되어가는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개인적인 말씀 연구를 통해서 성경을 더욱 깊이 있는 계기가 되었고, 말씀을 예전보다 사모하는 마음마저 이를 통해 허락하셨습니다. 그 이후로도 귀납적 성경 공부와 토론 모임은 누가복음과 룻기로 이어졌고 많은 형제 자매님들이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유학 생활,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으로 인도하신 것은 공부나 자체를 위함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주님과 동행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며, 더 가까운 친구가 되어가길 원하시는 과정이라고 깨닫게 됩니다. 그 시간 속에서 이렇게 귀한 영적 동지들을 만나게 해주셨다는 거, 그들과 어떤 다른 나눔보다 값진 주님 말씀의 빛을 공유할 있다는 거, 어떤 다른 학문의 연구보다 깊고 영원한 말씀을 소중하게 여길 있게 하셨다는 거… 그리고 시간이 나에게 기쁨이 됨이, 그러한 주님의 뜻의 증거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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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7년 11월호

샬롬!

저는 텍사스 러벅에 있는 홍성혁이라고 합니다. 코스타 수련회는 2005년부터 참석하기 시작했구요. 이번 2007년이 3년째입니다. 제가 이 글을 통해서 미국 유학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어떻게 저를 인도 하셨는지를 나누고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이 말씀처럼, 지금까지 제가 살아온 기간을 돌아보면 제가 계획해서 모든 것을 한것 같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특별하면서도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99년 1월에 미국에 유학을 오기전에 저는 대학 졸업후95년부터 99년까지 4년간 효성중공업 정보지원팀에 입사를 해서 전산기획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장인어른이 효성그룹 계열사에서 일을 하셨기 때문에 회사내에서 좋은 인맥을 만들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95년부터 회사대표로 전국핀수영선수권 대회에 참가해서 메달을 따면서 자연스럽게 효성그룹 월간 소식지와 사내 사보에 제가 메달딴 소식과 함께 사진이 실렸고, 회사내 많은 사람들에게 저의 존재를 잘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회사생활은 즐겁고 재미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 직장에서 안정되게 회사생활을 할것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저의 직장 환경을 갑자기 변화시키셨습니다. 98년 이후 회사가 IMF위기를 격으면서 각 사업부가 독립된 단위 회사로 나누어 지면서 제가 있던 정보지원팀도 나눠지게 되었습니다. 각 사업부 관리팀에 전산담당자로 발령이 나면서 전산업무보다는 영업관리업무를 더 많이 하게 되었고 이것이 저로 하여금 다른 직장을 찾게 하였습니다. 그런던중에 98년 말 전세계적으로 Y2K 문제가 발생해서 Y2K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프로그래머가 필요하게 되었고, 때마침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는 저에게는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여기 저기 해외채용업체에 지원을 하였습니다. 채용절차는 1차 서류심사와 2차 영어 인터뷰와 면접이었습니다. 어떻게1차 서류 심사는 통과했는데, 2차 영어 인터뷰때 말도 않되는 말을 하고있는제 자신이 참 한심하게 느끼면서 인터뷰를 대충 마쳤습니다. 그때 이후로 영어공부와 전공공부에 대한 부족을 실감했고, 결국 유학을 결정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해외채용업체를 알어보던98년그때만 해도신혼 살림을 강남에 잘 마련했기 때문에 만약 유학을 결정하게 되면 잘 꾸민 아파트도 처분하고, 차도 팔고, 온갖 가구를 다 팔아야 하는 번거러운 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졸업후 6년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유학했던 아내의 동의로 쉽게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고등학교 졸업후 6년동안 유학생활을 했고, 한국에 나와서 저와 결혼후8개월간 살다가 다시 미국으로 유학가게 된것을 너무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금의 아내를 만난것도 다 유학가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중에 하나라는 것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별다른 계획없이 무작정 떠났지만, 현지에 계셨던 아내의 이모부 가족의 도움으로 학교를 정하고 정착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유학가기전 98년 여름에 아내의 이모부께서 지금 제가 졸업했던 Texas Tech University에 Visiting professor로 1년간 가게 되었는데, 저희부부가 그때 공항까지 마중을 가서 선물도 드리고 잘 배웅을 했었습니다. 그때는 왜 내가 이런일을 해야 되는가 궁금했지만 지나고 나니까 그때 그렇게 했던 것이 나중에 유학생활때 도움을 잘 받을 수 있돌고 하나님께서 계획 하신것으로 지금은 믿고 있습니다.

미국에 오긴했지만 아무런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저는 오자마자 Texas Tech어학원에 다니면서 99년부터 1년간 토플과 GRE를 준비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2000년 5월 Computer Science에 입학 할때도 경쟁이 워낙 치열해서 들어가기가 힘들었지만 하나님의 놀라운신 역사로 쉽게 입학하게 되었고, 2007년 8월에 박사학위 받게 되었습니다. 유학생활동안 늘 기도했던 것은 학위를 잘마칠 수 있도록 기도했고, 성령충만함을 위해서 기도한적은 별로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마태복음 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늘 목마른 기도를 하면서 정말 중요한 것을 구하지 못한 것을 요즘들어 후회를 많이 합니다.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런 기도도 필요하지만 그것이 주가 되어서는 않된다는 것을 요즘 많이 깨닫고 있습니다.

학위문제가 해결되자 진로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또그것을 놓고 오랫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하지만 제 뜻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2007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job search를 시작했고 미국에 있는 거의 모든 학교에 지원했던것 같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코스타에서 알게된 Computer Science 교수님이신 김현주 자매님과 이화정 자매님과에도 지원했는데, 결과는 서류심사에서 탈락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미국내 teaching job에 더집중하기 위해서 졸업하면 가기로 했던 보험과도 같았던 삼성전자에 가지 않겠다고 통보를 하고 비장한 각오로 Job search를 했지만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200군데 넘게 지원을 했는데 단 3곳에서만 인터뷰 요청이 있었고 나머지는 서류심사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지원자가 450명이 넘어서 자격이 되는 지원자를 뽑는 것이 참 힘들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망연자실하게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인터뷰한 대학에서도 아무런 연락을 못 받아서 미국에서 teaching job을 잡는 다는 것은 제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았습니다. 삼성에 않가기로 결정한 제 자신을 한탄하였고, 아내의 끊임없는 구박이 그때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게 아닌가 보다 하면서 제 자신의 잘못된 판단을 후회했습니다.

그러던중 7년간 기다렸던 석박사 통합과정 defense를 지난 6월에 마치면서 점점더 진로에 대한 불안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도 저처럼 defense후 1년씩 job이 없어서 놀다가 한국에 돌아가는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저도 그렇게 되는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전혀 예상 하지도 않았던 job을 저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지난 8월OPT card를 받으러 Office of International Affairs에 갔다가 우연히 international counselor 중 한명이 제 전공을 물어봤고, 제 전공이 Computer Science 라는 것을 알게 되자 바로 저를director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director는 우리와 같이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director는저를 처음보는 자리에서 저를 보고 우리들의 오랜 기도 응답이라고 말하면서 International Affairs의 총책임자인 Vice provost 에게 저를 소개했습니다. 그분은 여기는 아주 일하기 좋은 곳이라고 자랑하며너 마치 new employee대하듯 저를 대했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job 인터뷰같은 것을 하게 되었고 계속해서 그분과 이메일로 연락을 하면서 진행상황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일 후 정식으로 job공고가 Texas Tech job site에 실렸고 저는 온라인 지원서를 작성해서 지원했습니다. 얼마후 director로부터 이메일이 왔고, 최소10일동안 Job공고를 해야 하는 것이 학교 규정이라는 내용과 함께 인터뷰 일정을 알려 줬습니다. 인터뷰날에 저는 집에서 5분도 않걸리는International Affairs에 금방 도착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인터뷰에 임했습니다. 인터뷰를 위해서 저희 학교 IT department의 director 와 manager가 와서 컴퓨터에 관한 전문적인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하기에 앞에 Computer Science Ph.D. 앞에서 컴퓨터에 관해서 질문하는 자신들이 참 어처구니 없다는 말을 먼저 꺼내며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아주 편하게 인터뷰를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후 불과 1시간도 않되서 만장일치로 저를 뽑기로 했다는 이메일을 받고 바로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저 말고도 다른 지원자들이 많았을 것을 예상이 되는데 더 이상 인터뷰를 하지 않고 끝을 내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했습니다. 그 동안 Job을 위해서 기도도 많이했고 미국내 Teaching Job을 잡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거라고 스스로 판단하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저와 다른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그 계획이 저에게 가장 최선의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얻을 수 없었던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주 쉽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박사과정하는 동안 쭉 연락을 해왔던 한국의 한 교수님으로 부터 메일이 왔는데, 이번에 신규 교수채용을 하게 되는데 자네가 지원하는게 어떻겠냐고 하시면서 이제 우리학교도 우리학교 출신 교수를 뽑을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자네 전공으로 공고를 낼 수 있도록 자네가 미리 교수들에게 이력서를 보내서 분위기를 만들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교수님 말씀대로 그렇게 했고, 교수회의때 교수님들이 다 제 전공으로 신규채용을 하는 걸로 합의를 하고 지금현재 공고가 나있습니다. 아직 제가 임용된것은 아니지만 그 교수님이 왜 그렇게 저를 교수로 임용하기 위해서 헌신적으로 노력하시는지 이유를 지금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번 일들을 통해서하나님께서는 제가 바라는 것을 다 알고 계시며 그것을 위해서 일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계획하고 그계획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고 기도했지만 이제는 제 계획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기도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기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어디서 무엇을 할까에 대한 고민은 내려놓고 오직 성령충만함으로 하나님의 뜻만 분별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할때 다른 구하지 않는 저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확신이 생겼고, 이번 코스타 주제강의때도 손희영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 처럼 진로를 위해서 기도도 많이 하고 어떤 길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지만 그런것에서 자유함을 가지고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살면 그것이 결국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되고, 비록 우리가 순간 잘 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바로 잡으시고 선한길로 인도하신 다는 말씀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제가 어디서 무슨 일을 하게 될지 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길로 인도하시든지 저에게 가장 최선의 것을 준비하시고, 지금도 일하고 계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지금 제가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할때 우리가 바라는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더하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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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코스타 2007년 9월호

목적이 이끄는 삶...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몇백만부가 팔린 릭 워렌 목사님의 책 제목...이 아니라, 이곳에서 잠시 나누고 싶은 제 삶의 이야기 마당의 제목입니다. eKOSTA 원고 청탁을 받고서 무엇을 어떻게 나누어야 하나 생각하던 중, 뭔가를 일부러 생각해내기보다 그저 저의 삶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로 벌써 미국에 온지 7년이 되었습니다. 2000년 7월 31일과 8월 1일의 경계 즈음에 낯선 아이오와라는 땅에 도착하던 날, 태어나 처음으로 정해진 주소지가 없이 막연히 보낸 그날의 밤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실 제가 미국에 오게 된 것은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과 반복된 깜짝 파티의 연속이었습니다. 유학을 결심하고 어드미션을 기다리기 전까지, 제 인생에서 소위 '실패'라는 걸 경험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공부에 관한 고민을 별로 하지않아도 될 만큼 성적이 좋았고,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없어서 고민한 적이 없었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학비를 걱정해본 적도 없었고,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안정된 직업을 보장하는 치과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그런데, 문득 대학을 졸업하기 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정말 제가 과연 평생을 바쳐 하고 싶은 일인가...대답은 아니었습니다. 인턴시험을 포기하고, 관심 있어 했던 공부를 더 해보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즈음에도 제게 모든 일은 잘 풀리는 듯 보였습니다. 제 삶에 하나님께서 들어오실 필요가 없어보였습니다. 다니던 학교 대학원에 얘기도 다 끝나고 모든 일정이 순조롭게 잡혀있었습니다. 1997년 9월, 대학원 시험을 1달여 앞둔 어느 하루, 교수님께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저를 받아주시지 못하겠노라고...막막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은 저기 멀리 계신 분인 양 그렇게 살았으면서도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며칠 후, 학교 선배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다른 학교 대학원에서 마침 대학원생을 모집하는 중이라고. 저는 또 언제 그랬냐 싶게 좋아서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습니다. 이런 양은 냄비 같은 저를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다음 3년을 또 계획하시고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풍성하게 책임져주셨습니다.

대학원 석사 과정을 마쳐가는 중에 유학을 가보지 않겠냐고 하는 얘기들이 하나 둘씩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뭔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기분, 그것을 얻었을 때 맛보는 짜릿함, 거기에 '나 정도면 충분하지'하는 끝이 보이지않는 자만심이 합쳐져 유학준비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제일 좋다는 의대 대학원을 나오고, 외국 저널에 논문도 내고, 게다가 DDS학위까지 있으니 문제 없겠지 하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만심 하나로 미국 내 Neuroscience로 유명하다는 대학원들에 지원서를 하나씩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다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1월초부터 4월초까지, 지원한 학교 중 거의 대부분의 학교에서 rejection letter가 왔습니다. 처음 한 두번은 '그럴 수도 있지'하는 심정으로 넘겼지만, 그 횟수가 반복될 수록 저의 삶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한꺼번에 절망들이 다 몰려올 수 있는지,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하나님을 원망하고, 그분의 뜻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묻지도 않았으면서 '원하는 마음을 주셨으면 끝까지 책임져 주셔야지 이렇게 중간에 포기 시키시는 게 어딨냐'고 매일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2000년 4월 19일 아침,절망적인 심정으로 이메일을 열었습니다. 이제는 포기하겠노라, 하나님께서 저를 이끄신다는 말을 못 믿겠노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오는 심정으로 연 이메일들 중에 발신자가 'University of Iowa'인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이메일로도rejection letter를 보내나 하는 실패한 사람의 심정으로 열었던 그 글은, 사실 3달 여동안 저를 그 고통의 시간 가운데서 단련시키셨던 하나님의 깜짝 선물이었습니다.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메일의 글귀들을...Neuroscience program에 extra fund가 생겨서 계획에 없었던 외국 학생을 선발할 수 있게 되었노라고, 아직도 관심이 있느냐고...그리고 지금 이곳, Iowa City로 하나님께서 저를 이끌어오셨습니다.

여기까지가 2004년 이전의 제 시각으로 보았던 저의 삶의 고백입니다. 2004년 코스타, 고난받는 공동체, 그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제가 이 곳에 있어야할 이유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셨던 것은, 바로 저 자신이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 저를 이곳 저곳, 이모양 저모양으로 다듬어 이 곳, 아이오와로 부르신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 그저 편안하고 세상적인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면 제 육신은 좀 더 편안하고 풍요롭게 살 수 있었겠지만, 제 영혼은 매순간 죽어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2004년 7월에 저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2007년 7월, 제 나침반의 바늘이 제 자리를 찾았습니다. 태어나서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6년을 빼고는 늘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공부, 그 공부를 왜 하고 있는지를 하나님께서는 5박6일의 시간을 통해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저를 치과대학에 보내셔서 생명의 소중함, 모방할 수 없는 창조의 섭리를 더 구체적으로 알게 해주시고, 한국에서의 대학원 과정을 통해 제게 연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고 크리스쳔 지도 교수님을 통해 멘토의 모델을 보여주시고, 3달여의 기간동안 수많은rejection letters를 받으면서 제가 믿고 있었던 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깨닫게 하시고, 그로 인해 이 곳 아이오와로 유학의 길을 열어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달아 알게 하신, 그리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제 손을 다시 잡아 일으켜주신 하나님.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지난 30여년 동안 제 인생이라는 퍼즐에 쓰신 한 조각 조각임을 이번 코스타를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다시 돌아가봅니다. 제 삶에는 하나님께서 가지신 분명한 목적이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 목적을 모른 채 눈먼 사람으로 살아온 저의 삶도 결국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그 목적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었다는 것을 하루하루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씩 저의 눈을 열어가고 계심도 느낍니다. 삶의 목적을 조금씩 알아가며, 저의 생각의 나침반은 이전과는 다른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나의 성취, 나의 욕망, 내 편안함과 풍요를 위해 달려가지 못하게, 나침반의 바늘이 다른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제 삶에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목적, 그 곳을 향해 흐트러짐 없이 나아가도록 매 순간 저를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음을 느낍니다. 물론 아직도 저의 삶의 많은 부분이 예전에 가리키던 방향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래도 그 싸움이 예전과 다른 것은, 그 싸움에서 이긴다 할지라도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몰랐던 시간이 예전의 삶이라면, 이제는 그 싸움 이후에 제가 바라볼 곳이 생긴 것입니다. 제게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 살아가는 삶 대신, 다른 길을 선택할 때마다 제가 다시금 바라보고 돌이킬 이정표가 생겼습니다.

목표가 있고, 삶의 목적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결코 길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 길에서 넘어질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고 지칠 수는 있어도, 그래도 그 길 외에 다른 길로 잘못 들어서지는 않습니다. 이 깨달음이 지난 7년의 시간동안,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진 아이오와에 저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 제 인생의 날들 가운데 넘어질 수도 있고 상처받을 수도 있고 지쳐 주저앉을 수도 있지만, 제게 주신 이정표만 따라가면 언젠가 제 삶을 통해 하나님의 목적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땅에서 Diaspora로 살아가는 모든 믿음의 씨앗들 위에 동일한 나침반이 되어주신다는 것을 또 믿습니다.

모든 삶의 목적이 되시는 하나님을 제게 주신 모든 것으로 찬양 드리며, 늘 제게 힘주시는 말씀으로 이 글을 마칠까 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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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스타 2007년 6월

A는 한국에서 고등학교 때 성당에 다니면서 막연히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힘든 유학생활 중에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성경을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요즘들어 가요대신 찬양 CD를 귀에 꽂고 다니며 찬양하기도 하고, 길을 걸으면서는 하나님과 대화하며, 말씀이 자꾸 읽고 싶어져 성경책을 책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닌다고 하면서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되니 너무 좋다고 인도자인 내가 좋아하는(?) 말만 골라하는 것이었다. 성경공부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서도 큐티지의 말씀을 읽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내게 불쑥 전화를 해서 이 말씀은 무슨 뜻인지 궁금하다며 설명을 해달라고 하곤 했다. 그러면서 다음 주에 할 큐티지는 언제 나오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러던 A가 박사학위를 위해 지원했던 학교가 되지 않아 속상해하더니 진로가 막히는 것 같다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왜 자신를 안 도와주시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리고, 슬슬 성경공부에 나오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더니 얼마 안되서 들려오는 소문은 어느 형제와 사귀기 시작했다며 요즘 연애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후로는 A가 미국에서의 醍?것을 정리하고 한국에 들어갈 때까지 A를 다시 볼 일이 많지 않았다. 어쩌다 만나도 A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만 하고 긴 얘기는 하지 않았다. A의 신앙이 한참 성장하는 순간에 만나서 함께 나누고 기뻐하였던 때가 아스라이 느껴지면서 마음 한 구석이 참 많이 아파왔다.

B는 이미 교회에서 지도자로 섬기는 자매였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매우 신실하고 늘 말씀과 기도로 사는 것 같았다. 단지 조금 유별나게 보였던 것은 자신이 결혼을 하지 않아 불완전하다는 생각을 좀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나이 또래 사람들이 결혼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은 욕구를 가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B는 종종 결혼이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말하면서 키크고 잘생긴 형제가 이상형이라고 말하곤 했다.

B를 알고 지낸지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밤에 B가 불쑥 나에게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맥주 한 팩이 들려있었다. 나는 그동안 전혀 B가 술을 마시는 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놀랐다. 아무말 없이 혼자 맥주를 마신 B는 갑자기 나에게 고백할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한참을 망설이더니 지난 몇년간 아무도 모르게 사귄 남자친구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 모든 스토리를 적으면 소설 한편이 나올 정도로 기가 막힌 이야기를 다 털어놓더니 B는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왜 내가 이렇게 될 줄 아셨으면서 그 X와 만나게 하셨냐’고…… 그리고, 얼마 전부터 피우기 시작했다며 담배를 꺼내더니 거실에 내가 틀어놓은 찬양을 듣기가 괴롭다며 “저거 끄면 안되니?” 라고 물었다. 그날 밤 나는 처음으로 고해성사를 받는 신부의 괴로움을 상상할 수 있었다.

A와 B를 만나고 헤어지면서 가장 먼저 내 자신에게 했던 질문은 ‘내가 무얼 잘못했을까?’였다. A를 보면서는 ‘내가 말씀을 전한다, 그 영혼을 사랑한다, 기도한다고 하면서, 정작 그의 신앙이 저렇게 식어버리도록 방관하고 있었단 말인가’ 라는 자책과 함께, 매주 말씀을 보고 그 말씀에 능력이 있다고 선포했는데, 그 말씀을 들은 A는 정작 변화되지 않은 것 같아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라는 회의가 내 안에서 맴돌았다. 또, B를 보면서는 ‘B가 수년동안 교회에서 말했던 신앙고백과 전했던 말씀들(B는 성경공부를 인도했었다)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무언가 크게 속고 살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론 가까이 살고 있었음에도 그 지경이 되도록 나에게 아무말도 못할 정도로 내가 부담스런 존재였나 싶어 B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제 2, 제 3의 A, B들을 캠퍼스와 교회에서 만나게 되었다. 하나같이 신앙이 한창 성장하는 과정 중에 있었고 열심도 있었으나, 앞서말한 A와 B처럼 진로나 이성교제, 결혼의 문제에 걸려 결국에는 실망하거나 상처를 받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거나 원망하곤 했다. 나는 그들을 만나 대화하면서 단순히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권면을 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단순히 ‘하나님의 연단이니 견디라’며 달래거나, ‘당신의 죄때문이니 회개하라’고 말하는 것은 별로 소용도 없고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언가 좀더 “근본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결혼을 한 뒤 얼마 안되어 성경공부 수련회에서 이성교제에 관한 세미나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이 왔다. 이제 갓 결혼한 내가 나와 나이 터울도 별로 안지는 이들에게 무엇을 전할 수 있을까 싶어 주제넘게 느껴졌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말씀을 전하고 싶은 열망(?) 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 결혼하기까지 조금 긴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면서 나름대로 말씀을 붙잡고 고민했던 것들, 남편과 교제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동안에 체험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룻기, 에베소서 말씀 등등 결혼과 이성교제에 관한 말씀들을 묵상하면서 말씀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성령님께서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을 떠오르게 해 주셨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바로 이 말씀이야 말로 내가 전하려는 메세지를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내가 고민하던 그 “근본적”인 해결의 열쇠도 이 말씀에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아무리 말씀을 전한다 하고 또 듣는다 해도, 그 마음이 말씀의 능력으로 깨어져 새롭게 되지 않는다면 결국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면서 입으로만 “주님”을 찾는 연약한 종교인이 되고야 마는 것임을 많은 A와 B들을 만나면서, 또한 나 자신의 연약함을 접하면서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앞서말한 A와 B의 경우를 이 말씀에 비춰 다시 살펴보면 A의 경우는 하나님께 가까이 하고 싶은 열심은 있었지만, A는 세상의 가치, 즉, 유학을 나와서 이름있는 학교에서 번듯한 학위를 따고 한국에 들어가 좋은 곳에 취직하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성공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나름대로 가지고 있던 성공관에 손실이 왔을 때 그만 견디지 못하고 좌절하게 되었고 결국은 하나님에 대한 섭섭함의 벽이 쌓이게 되어 첫사랑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B의 경우 역시 말씀을 많이 아는 것 같았지만 세상의 것과 섞여 있던 그의 결혼관, 이성교제관은 꿈쩍하지 않고 있었다. 남자친구와 사귀면서 그의 영혼을 보고, 그의 신앙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외모와 능력에 매료되어 결혼도 하기 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준 댓가는 B의 인생에 지울 수 없이 큰 상처만 남기게 되었다.

말씀을 읽고, 듣고,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한다해도 말씀 앞에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 내어드리지 않은 바로 그 부분이 도리어 나에게 큰 걸림돌이 되어 삶에 적잖은 고통을 더하게 된다. 겉으로 보이는 문제들이 나를 괴롭히고 내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걸 막는 것 같지만, 사실 가만 생각해 보면 가장 큰 장애물은 그 말씀으로 수술을 받지 않은 나의 가치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씀이 나의 전인격을 다스리고,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뒤흔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접하는 나에게 그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과연 내가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 분의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지 돌아봐야할 일이 아니겠는가?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내가 해야하는 일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요즘이다. 솔직히 조금 많이 지쳐있는 게 사실이다. 내가 지난 수년간 선포했던 말씀들이 과연 말씀을 전하는 나와 내가 마음에 품고 사랑했던 그 영혼들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스스로에게 물으면서 괴롭기도 하다. 한 사람의 영혼이 말씀으로 변화되고 그 삶이 온전히 주님께 드려지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괜시리 하나님 앞에 서럽기도 하다. 그리고 갈증이 나기도 한다. 하나님의 말씀, 그 살아있는 말씀의 능력이 나의 삶을 온전히 변화시키고, 내가 선포하는 말씀가운데 임하기를, 말씀을 보는 나의 사랑하는 지체들에게 진정으로 임하기를 갈망하며 보기원하는 그 갈증이다.

하지만, 이러한 회의나 아픔에도 불구하고 말씀을 전하는 것을 계속해야하는 이유를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그것은 캠퍼스나 교회에서 만나는 젊은 영혼들—아무리 그들이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것 같고, 기가막힌 행동을 한다해도—에게는 아직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그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돌처럼 단단하게 굳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말씀을 선포할 때 그 말씀으로 깨어지고 가치관과 세계관이 변화될 여지가 분명 70대 노인보다는 크다는 것이다.

이번 코스타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화를 받아…”라는 주제로 열린다. 얼마나 시기적절하고 중요한 주제인가 공감을 하면서, 코스타를 통해 선포되는 말씀이 참석하는 모든 이들의 심령과 골수를 쪼개고 그 깊은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가치관과 세계관까지 뒤흔들어서 온전히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예비하신 풍성한 생명을 누리고 회복되는 역사가 임하기를 사모하게 된다. 그래서 나를 비롯하여 A와 B같은 지체들의 성공관, 결혼관, 이성교제관, 물질관등의 가치관들이 세상의 것과 분리되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게 되는 역사가 가득하게 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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